르네 마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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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유도.png   게임 '별이 되어라!'에 나오는 캐릭터(동료)에 대해서는 마그리트(별이 되어라!)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 개요2. 대표작
2.1. 이미지의 반역2.2. 피레네의 성2.3. 겨울비2.4. 집단적 발명2.5. 사람의 아들
3. 그 외


파일:bio_magritte_rene.jpg
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
1898.11. 21 ~ 1967. 8. 15

1. 개요[편집]

초현실주의 화가로 벨기에 출신 화가이다. 처음에는 키리코 풍의 괴상한 물체나 인간끼리의 만남 같은 풍경을 그리다가 1936년부터 고립된 물체 자체의 불가사의 한 힘을 끄집어 내는 듯한 독특한 세계를 조밀하게 그리기 시작했고 말과 이미지를 애매한 관계로 둠으로 양자의 괴리를 드러내 보이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후에 팝 아트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의 양상은 이미지와 언어, 사물 사이의 관계를 다룬 작품과 현실의 미묘한 부분을 뒤틀어 표현한 작품으로 나뉘는데 전자의 경우 철학과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은 볼수록 새롭다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후자의 경우 살바도르 달리나 호앙 미로 등 같은 시대 활동했던 초현실주의 작가들과는 느낌이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여주는데 몇몇 미술사 논문들에서는 이를 두고 마그리트식 초현실주의로 칭하기도 한다. 특유의 현실의 것을 절묘하게 변형시키고 왜곡하는 표현기법은 후에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나 팝아트 등 수많은 분야에 응용되어 지금도 여러 회화작품이나 디자인에서 그가 남긴 영향을 엿볼 수 있다. 몇몇의 경우 거의 대놓고 르네 마그리트에 대한 오마쥬의 형식을 보이는 형태도 많다. 그만큼 현대미술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거장이다.

2. 대표작[편집]

2.1. 이미지의 반역[편집]

파일:attachment/Pipe.jpg
La trahison des images(Ceci n'est pas une pipe.)

르네 마그리트가 초현실주의 기법을 사용하여 1929년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작품. 담배파이프 하나를 그려놓고 밑에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프랑스어로 된 문장을 남겨 관람객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트렸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라니, 그럼 이건 실제 파이프가 아닌 그림이란 것인가?"[1]
그러나 이것은 르네 마그리트의 기법으로, 언어와 이미지의 관계에 대한 그림을 접할때 관람객의 당혹감을 증폭시켜, '파이프를 파이프라 하지 못하는파이프를 파이프라 부르지 못하고' 모순된 어법을 사용한 것이다.
기호학에서 가장 많이 드는 예시로 쓰이는 그림이기도 하다.

2.2. 피레네의 성[편집]

파일:attachment/Le_chateau_des_Pyrenees.jpg
The castle in the pyrenees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주의 작품. 요새 모양의 성이 육중한 바위 정상에 솟아있고, 그 바위는 해변 위로 무중력으로 떠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바위가 갖는 속성인 무거움, 육중함을 공중부양으로 비틀어버린 것이다. 이 작품은 후에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2.3. 겨울비[편집]

파일:attachment/Golconde.jpg
Golconde

르네 마그리트가 1953년 그린 작품으로 중절모에 레인 코트의 신사가 떼로 등장한다. 하늘에서 남자들이 비처럼 내려와? 작품에 중절모에 코트 차림의 사내가 공중에 일정히 떠 있는데, 영화 매트릭스스미스 요원의 무한에 가까운 복제가 이 작품의 영향을 받고 탄생한 장면이라는 설이 있다.

2.4. 집단적 발명[편집]

파일:linvention_collective_rene_magritte.jpg
L'invention Collective (1934)

일반적으로 '인어'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생각되는 인간의 상체와 물고기의 하체를 그리지 않고 역으로 인간의 하체와 물고기의 상체를 그렸다.본격 어인의 원조
권오광 감독의 영화 돌연변이모티프가 되었다. 이 영화의 해외판 제목도 그림과 같다.[2]
네덜란드의 방탈출 게임 Cube Escape 시리즈에서 이를 오마주한 생물체가 등장한다.

2.5. 사람의 아들[편집]

파일:TheSonOfMan.jpg
Le fils de l'homme (1964)

3. 그 외[편집]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화가들의 생애와는 반대되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살아생전에도 인정받고 죽어서는 더 추앙되는 삶을 살았다. 성격도 좋은편이라 인간관계도 원만하고 낭만적인 기질이 다분해 부부사이 금슬도 매우 좋았다고 알려져있다. 이래저래 성공한 승리자.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굴곡이 없었던건 아닌데, 1936년에 바람을 피면서 아내가 눈치 못 채도록 친구를 설득해 아내도 바람피게 만들려고 하다가(...) 아내에게 들켜 4년간 결별하다 재결합한 적도 있다. 어렸을 때 만성 정신병을 앓던 어머니가 자살하여 마음에 큰 상처를 받기도 하였으나, 가정사가 불행한 경우가 많은 다른 화가들과 달리 그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를 잃은 아들에게 많은 사랑을 주고,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응원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정서가 안정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동생도 둘 있었는데, 그중 한명인 레몽 마그리트는 르네와 영 성향이 안 맞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비즈니스맨으로 자라 사이가 별로 안좋았던 반면 예술가적 성향을 공유했고, 편곡가이자 가수가 된 다른 동생 폴과는 평생 우애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피카소를 비롯한 다른 20세기 좌파 예술가들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이쪽도 만만치 않은 평생 골수 좌파이자 벨기에 공산당원이었다. 1950년 벨기에 공산당에 보낸 편지에 나온 내용을 보면 자신의 예술관은 기존 부르주아 문화의 허상적이고 기만적인 사치에 대항하여 노동 계급의 물질적, 정치적 조건 뿐만 아니라 정신적 풍요 또한 성취하기 위한 투쟁이라 선언하며, 사회주의적 예술의 필요 자체는 인정하되 이는 예술의 정치적인 도구화와 통제를 통해 이루어 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기존의 부르주아 문화 뿐만 아니라 근현대 유럽사의 격변을 온 몸으로 겪은 세대인만큼 파시스트 예술 또한 퇴행적이라고 마구 깠다.

폴 매카트니가 르네 마그리트의 팬으로 유명한데, 단적인 예로 비틀즈의 자회사 애플 레코드 로고가 마그리트의 사과이다.

[1] 이 작품을 본 관람객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런 반응이었다고 한다.[2] 영어로 Collective Inven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