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르주 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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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쇠라 Georges Seura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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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사망 | |
국적 | |
직업 | 화가, 제도사 |
최종학력 | |
스승 | 앙리 레만 |
제자 | 샤를 앙그랑 |
사조 | |
주요 작품 |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 등을 보인 자세 |
배우자 | 마들렌 쇠라 (1868 ~ 1903) |
자녀 | 슬하 2남[1] |
집안 대대로 부유한 상인 집안이었으며, 아버지는 법률 관련 고위 공무원이었다. 어머니도 꽤 부유한 집안 태생이었기에 어릴 적부터 경제적으로 전혀 부족함 없이 자랐으며, 교육도 문제없이 잘 받았다. 형제들도 있었는데, 각자 상인 및 아버지처럼 법률직으로 일했기에 쇠라는 뜻대로 그림 공부를 하게 된다. 그리고 집안에서 그림 공부를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1880년 초반부터 열심히 화가로서 활동하지만 주류 예술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하자 인정받지 못하던 젊은 다른 화가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꾸준히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 시절 친구로 지내던 화가 폴 시냑(Paul Signac,1863~1935)과 같이 점묘법을 개발하였다.
'그랑드자트섬[2]의 일요일 오후'가 당대 미술계를 강타하며 엄청난 명성을 얻었다. 색에 관한 최신 과학 논문을 꾸준히 읽어오던 쇠라는 점묘법만이 채도를 낮추지 않고 색을 표현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후 그랑드자트섬을 관찰하며 어떨 때는 배경만, 어떨 때는 인물도 포함해서 그림을 그렸는데 연습작만 60장 이상 그렸다. 말도 안 되는 도트 노가다를 연습으로만 60장을 그린 것이다. 주위 화가들은 쇠라를 수도사처럼 여겼다고 한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한 후 그림을 완성하여 전시했고 반응은 뜨거웠다. 예술의 영역인 미술에 이렇게까지 과학적인 관점을 가지는 게 괜찮은가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부분 호평이었다.
그러나 1891년 3월 29일, 만 31살이라는 너무나도 이른 나이로 갑자기 병으로 쓰러져 죽고 만다. 현대에 와서 그가 걸린 병은 수막염, 폐렴, 전염성 앙기나나 디프테리아 정도로 추정하고 있는데[3],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많은 화가들이랑은 다르게 경제적으로 전혀 어렵지 않았고, 젊은 나이에 차츰 주목을 받은지 얼마되지 않아 너무나도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화가라고 볼 수 있겠다.
자신의 그림 모델인 마들렌과 동거하며 아들 피에르를 낳았는데, 부모에게 소개하여 결혼하기로 한 지 며칠도 안 돼 갑자기 요절했다. 그리고 도트 노가다라고 할 수 있는 점묘법 때문에 시력이 급속도로 나빠졌다고 한다.
그가 죽고 2주 만에 겨우 1살이던 어린 아들 피에르도 그와 비슷한 증세를 보이며 죽었다. 마들렌이 앓은 유전병 같은 게 원인이 아닌가 추정하는데, 마들렌도 쇠라 사후 12년 뒤인 1903년, 겨우 35살로 비슷한 증세로 죽었기 때문이다. 쇠라 부모나 형제들은 제법 오래 산 편이라... 더불어 죽기 전에 마들렌이 둘째아들을 임신해서 유복자로 태어나게 된다.
1880년 초반부터 열심히 화가로서 활동하지만 주류 예술계로부터 인정받지 못하자 인정받지 못하던 젊은 다른 화가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꾸준히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 시절 친구로 지내던 화가 폴 시냑(Paul Signac,1863~1935)과 같이 점묘법을 개발하였다.
'그랑드자트섬[2]의 일요일 오후'가 당대 미술계를 강타하며 엄청난 명성을 얻었다. 색에 관한 최신 과학 논문을 꾸준히 읽어오던 쇠라는 점묘법만이 채도를 낮추지 않고 색을 표현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후 그랑드자트섬을 관찰하며 어떨 때는 배경만, 어떨 때는 인물도 포함해서 그림을 그렸는데 연습작만 60장 이상 그렸다. 말도 안 되는 도트 노가다를 연습으로만 60장을 그린 것이다. 주위 화가들은 쇠라를 수도사처럼 여겼다고 한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한 후 그림을 완성하여 전시했고 반응은 뜨거웠다. 예술의 영역인 미술에 이렇게까지 과학적인 관점을 가지는 게 괜찮은가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부분 호평이었다.
그러나 1891년 3월 29일, 만 31살이라는 너무나도 이른 나이로 갑자기 병으로 쓰러져 죽고 만다. 현대에 와서 그가 걸린 병은 수막염, 폐렴, 전염성 앙기나나 디프테리아 정도로 추정하고 있는데[3],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많은 화가들이랑은 다르게 경제적으로 전혀 어렵지 않았고, 젊은 나이에 차츰 주목을 받은지 얼마되지 않아 너무나도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화가라고 볼 수 있겠다.
자신의 그림 모델인 마들렌과 동거하며 아들 피에르를 낳았는데, 부모에게 소개하여 결혼하기로 한 지 며칠도 안 돼 갑자기 요절했다. 그리고 도트 노가다라고 할 수 있는 점묘법 때문에 시력이 급속도로 나빠졌다고 한다.
그가 죽고 2주 만에 겨우 1살이던 어린 아들 피에르도 그와 비슷한 증세를 보이며 죽었다. 마들렌이 앓은 유전병 같은 게 원인이 아닌가 추정하는데, 마들렌도 쇠라 사후 12년 뒤인 1903년, 겨우 35살로 비슷한 증세로 죽었기 때문이다. 쇠라 부모나 형제들은 제법 오래 산 편이라... 더불어 죽기 전에 마들렌이 둘째아들을 임신해서 유복자로 태어나게 된다.
- 단일 세포 전사체 분석을 위한 R 라이브러리의 이름은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Seurat(쇠라) 이다. 마치 세포 하나하나가 점처럼 보이는 것이 이 사람의 점묘화를 연상시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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