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딩로딩중

역사

최근 수정 시각: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동음이의어에 대한 내용은 역사(동음이의어)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나무위키+하위문서.png   하위 문서: 역사 관련 정보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사학

언어별 명칭

한자

歷史

그리스어

ιστορία

라틴어

historia

영어

history

프랑스어

histoire

스페인어

historia

독일어

Geschichte

아이슬란드어

saga

베트남어

lịch sử

일본어

歴史

중국어

历史/歷史

태국어

ประวัติศาสตร์

러시아어

история

이탈리아어

storia


1. 개요2. 어원3. 특징
3.1. 역사의 발전?3.2. 역사에 만약은 없다?3.3. 권력/정권의 정당성 부여 수단3.4. 왜곡의 방법?
4. 분류5. 명언6. 기타
6.1. history = his story?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계속적인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다.


에드워드 카, 『역사란 무엇인가』 중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로잡고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

변화의 과정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단순히 과거의 일을 공부하는 것은 고고학이나 인류학도 있으며, 가장 기본적인 역사의 정의는 시간에 따른 인간생활의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앞의 선택과 재구성은 '기록으로서의 역사', 뒤의 인간과 변화는 '사실로서의 역사'를 의미하는 문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생활변천을 나타내며, 이를 증거할 만한 문자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시대는 선사시대라고 구분하여 그 이후(역사시대)와 별칭한다. 일반적으로 문자의 사용 시작은 청동기시대 이후로 보지만 국가나 지역에 따라 그 연대가 달라질 수도 있다. 다만 자체 기록이 없더라도 인접국의 기록이 있다면 어떻게든 유추가 가능하며, 유목민족 같은 경우에는 그 시초와 소멸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을 역사학 또는 사학이라고 하며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다양하다. 역사를 연구하거나 바라볼 때에는 객관적인 시각을 기준으로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봐야 한다.[1]

(연도를 입력하면 당시 세계 지도를 보여주는 웹사이트)

2. 어원[편집]

역사라는 단어 자체는 메이지 유신 당시 'History'를 일본에서 한자화한 단어다. 고종실록 이전까지는 단 한 차례도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한 적이 없으나, 그 전부터도 한자 문화권에서는 '史'[2]가 역사 또는 역사를 기록한 편찬물[3]에 두루 쓰였다.

한편 서구권에서의 단어 유래는 다음과 같다. 기원전 5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서인 'ἱστορίαι'의 한국어 이름. 인류 최고(最古 : 가장 오래된) 역사서라고 여겨진다. 전 9권으로, 당시 아시아-유럽간 분쟁의 유래로부터 페르시아 전쟁까지를 서술하고 있는데 마지막권은 미완성이다. 자세한 사항은 헤르도토스 항목 참조.

이 책 이름이 단어 History의 어원이다.

또한 독일어는 다른 어원을 가지고 있다. 독일어 단어 'Geschichte'는 '일어나다', '발생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 'geschehen'에서 유래한 말로, 일어난 일, 발생한 사건을 뜻하는 동시에 발생한 사건에 관한 지식과 관련된 야야기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3. 특징[편집]


역사를 정의할 때,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역사는 "과거의 사실이 전달자(주로 역사가)에 의해 선택되고 재구성된 것"이라고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사이비 역사처럼 역사가 왜곡되어 전달되었다는 게 아니라, 과거의 사실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전달하든 간에 선택 및 재구성하게 되어 있다는 점을 뜻한다. 자신의 입장과 가치관에 따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있는 만큼, 그 이후의 자료 수집도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정리된다는 것이다[4]. 그러므로 객관적인 역사란 없다.

과거 인류가 거친 노하우나 과오를 기록한 것이 역사이다보니 아래와 같은 사건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역사교육의 중요성이 거듭 강조되고 있다. 과거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는 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라 하여 역사서에 鑑(거울 감)으로 끝내는 제목의 역사서가 많을 정도다. (자치통감동국통감 등)

학계에서 역사의 정의는 항상 사학자들과 철학자들의 고민거리이다. 특히, 러브조이, 푸코와 데리다같은 역사학자인 척하는 철학자들과 엘튼 같은 랑케식 역사관의 소유자들은 역사의 정의에 대해 마찰을 일으키고는 한다. 위의 에드워드 카의 역사에 대한 격언 또한 많은 역사의 정의들 중 하나일 뿐이며, 이를 마치 신앙처럼 되새길 필요까진 없다. 특히 한국에서는 에드워드 카의 저서가 부림사건에 엮인 것 때문에 카의 인지도도 덩달아 올라감으로써 마치 역사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주는 끝판왕 같은 인식이 따르곤 한다. 당연히 판단은 독자의 몫이며, 역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수많은 서적들과 주장들이 나와있다. 직접 공부해보고 스스로 결정하기를 권한다.

“미국·소련 탓” “한국전 때문” 분단 원인 말다툼 끝 살인극
'천안함 사고원인' 놓고 시비 벌이다 살인으로 비화

3.1. 역사의 발전?[편집]

역사학자들마다 역사가 어떻게 발전하는지, 역사 발전의 원동력은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 예를 들어 헤겔의 경우에는 역사란 '세계정신(Weltgeist)'이 자신을 전개해가며 인간의 자유를 발달시켜 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헤겔을 깠던 최초의 근대사학자로 흔히 일컬어지는 랑케의 경우, 각 시대마다 그 시대의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시대가 발전할수록 역사가 무조건 발전한다는 사고를 경계하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 헤겔을 더 신나게 깠던 마르크스의 경우에는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발달에 따라 역사가 진보해간다고 보았다(사적유물론). 막스 베버 또한 이런 사고관의 소유자였으며, 가장 대표적인 저서 중 하나인 <기독교 정신>을 보면 중국을 이러한 생각에 근거해 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을 whig history라고 영어권에서는 부른다. [5]

'역사의 진보'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어서 테오도어 아도르노 같은 경우에는 '역사는 야만에서 인간성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투석기에서 핵폭탄으로 발전할 뿐'(<부정변증법> 中)이라 말했고, 포스트모더니즘 역사학자들의 경우에는 역사의 진보라는 개념을 부정할 정도.

사실, 역사가 '발전한다'라고 보는 시각은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다. 볼테르가 '역사의 진보'라는 아이디어를 가진 학자들 가운데 가장 이른 사람인데, 그마저도 18세기 사람이다. 그 전에는 역사가 순환한다고 보거나 때가 되면 최후의 심판이 임한다거나 하는 정도로 생각해오고 있었다.

전에는 "학문이 역사를 발전시킨다"라는 짧은 내용이 들어 있었는데, 반론을 말하자면, 발전된 학문이나 기술이 나와도 시대적 환경에 의해 묻히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일례로, 고대 그리스의 헤론증기기관을 발명했지만, 노예노동의 효율에 밀려 묻혀버렸다가, 천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부활하여 산업혁명이 시작되게 되었다.

3.2. 역사에 만약은 없다?[편집]

역사에 대한 경구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역사에 만약은 없다."이다. 누가 이 말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역사에 대한 관념과 객관적 실증주의에 가까이 있던 레오폴트 폰 랑케의 주장이 와전되었다는 말도 있다. 숱한 오해와 달리 액면 그대로 역사는 정해져 있는 것이며 바꿀 수 없는 뉘앙스로 받아들이면 곤란한 말이다. 애초에 "만약에"가 없으면 세상에 어떤 이론도 있을 수 없고, 어떤 학문도 존재할 수 없으며 앞서 서술한 것과 같이 과거의 역사를 토대로 배움을 얻을 수도 없을 것이다. 제 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의 상황을 그린 8월의 포성에서 저자 바바라 터크만은 "역사엔 언제나 '만약'이라는 질문이 따르기 마련이다."라고 적었는데 쿠바 미사일 위기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이 책을 읽어서 자칫 섣부른 결정이 큰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주의하였다는 비화가 있다.

실제로 역사적 사건 사이에 가정을 집어넣는 건 대학교 수준 이상의 역사교육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영어권에서는 이런 가정을 'counter-factual'이라고 하며, 이 기술을 이용하여 실제 역사에 대한 정확한 판단의 정도를 판별하기도 하며 실제로 저명한 역사학자들의 저서들에도 많이 쓰이곤 한다. 가정을 정확히 하려면 그만큼 그 시대에 대해 정확한 분석을 하고 냉철하게 판단하는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가정을 넣어 환빠스러운 소설을 쓰는 게 아닌, 철저한 역사적 사실의 검증 능력과 공부를 통해 역사의 흐름의 이해 등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단지, 가정을 넘어서 만약이 사실 왜곡에 이르거나 하면 곤란하다는 것만 염두에 두고 있으면 되며, 당연하지만 이런건 초등학생도 아는 정도의 상식이다. 정상인이라면 굳이 저런 격언을 만들어가며 자기검열을 할 필요가 없다.

사학의 진정한 가치는 '팩트'들을 줄줄이 나열해서 외우는 것이 아닌, 역사에 대해 자유롭게 사고하여 인간에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고찰하며 해답을 찾는데 있다. 애초에 이 '팩트'라는것도, 과거에서 벌어진 일들을 인간이 선택/왜곡해서 기록에 남긴 주관적인 기록들일 뿐이다. 가령, 윈스턴 처칠이 한 말들과 정치적 행보(들 중에서도 우리가 중요하다 여기는 부분들만)를 기억하지, 그가 무슨 날짜에 뭘 먹었는지 따위는 기록에 남기지 않는 것이다. (물론, 처칠 개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런 세세한 기록들까지 충분히 연구할 수 있다. 이 또한 역사가 인간의 손을 거쳐가는 과정에 있다는 근거). 기본교육과정까지만 암기식 역사교육을 가르치며, 그 이상으로 넘어가면 논리적이고 창의적인 사고가 요구되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 역사에 '만약'이 없다고 규제해버리면, 그런 역사학 교육의 근본적인 가치, 즉 자유로운 사고를 부정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사고학문의 발전을 이루는 것은 역사뿐 아니라, 다른 인문학의 분야들도 마찬가지다. 랑케의 대표적인 표어 "Wie es eigentlich gewesen", 즉 "단순히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19세기의 역사학자들의 사실기록 위주의 사학관을 잘 보여주는 격언일 것이다. 당연히 역사학이라는 학문은 사실기록 위주로 짜여지지만, 애초에 뭐가 과거에 일어났는지 기록되는 것조차 인간의 손을 거치는 마당에 무미건조하게 사실, 소위 팩트들만 달달 외우는 학문이 당연히 아니다. 위키러 여러분들은 19세기에 묶여있지 말고 역사에 대해 사고할 때 죄책감 없이 자유로이 생각하도록 하자.

다만 '역사에 만약은 없다'라는 말을 조금 더 관용적인 표현으로 사용한다면 "만약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하였다면 지금보다 대한민국이 넓지는 않을까?" 정도로 생각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거기에 아쉬움을 느낄 필요는 없다 정도로 사용할 수 있다. 즉 과거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라는 것.

3.3. 권력/정권[6]의 정당성 부여 수단[편집]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He who controls the past controls the future. He who controls the present controls the past.)


1984》, 조지 오웰


한 사회가 어떤 역사를 쓰느냐, 어떤 역사를 쓰지 않느냐 하는 것보다 더 그 사회의 성격을 뜻깊게 암시하는 것은 없다.[7]


역사학자 E.H.카


역사와 정치가 매우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중립적일 것 같은 학문에 주관성이 들어가고, 역사왜곡이 발생하는 이유다. 사람들이 지나가버린 역사에 '만약'을 왜 상상하는지, 역사에서 관점과 학파 같은 것이 왜 생기는지, 그것을 통해 누가 이득을 보고 손해를 보는지, '족보도 없는 새끼'라는 욕설이 어떻게 존재하고 작용할 수 있는지 합리적으로 잘 생각해보자. 역사책을 건드려 놓으면 국민/백성/시민/민중/민초/인민(이하 국민), 제3자, 제3집단, 제3권력 등이 반대급부 없이 해당 권력의 뜻대로 움직여줄 수 있다.[8] 심지어 권력입장에서는 특정 주체에게 돈이나 땅 등 경제적 대가를 지불하거나 전쟁 같은 폭력을 행사하거나 행정력을 투입하지 않고도 그들이 권력을 위해 서비스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권력입장에서 책 좀 읽고 글 좀 쓰고 머리 좀 굴릴 줄 안다는 먹물집단인 석학들에게 자신들이 지구의 일부분과 일정 자원, 일정 인구를 제어할 수 있다는 학문적 근거와 자격을 받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모두 통하며, 보통 이를 바탕으로 법전도 집필할 수 있다. 인간이 지구 위에 자기들이 긋고 행정력 발휘하는 데 역사는 매우 큰 도움이 된다. '권력의 정당성 부여 수단'이라는 기능의 성격에서 보았을 때 가장 비슷하게 기능할 수 있는 것으로 종교가 있다.

근거와 사례는 무궁무진하다. "승자의 역사가 역사다"라는 말이 잘 표현해준다. 또 독도 관련된 내용이 한일 양국의 역사책에 등장하고, 일본은 끊임없이 역사왜곡을 하여 세계는 이를 질타한다. 중국의 동북공정 역시 여전히 진행중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책과 북한의 역사책은 같은 민족이라고 자타공인하는데도 대한민국과 북한이 다른 만큼 다르다. 물론 대한민국도 예외없이 역사왜곡을 한다. 북한의 역사책은... 우리나라만 봐도 각 정권이 그렇게 공교육 역사책에 집착하며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며 또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이는 역사학에 대한 논의라기보다는 권력의 정당성 부여를 위한 정치행위이라고 보는 게 옳을 수 있다. 어쩌면 역사학자 입장에서는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는 논문이나 서술을 학계에 발표하는 것이 최고의 아부일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이게 한반도에서 크게 표면화 된 것일제시대다. 하지만 모든 시대와 공간을 통틀어 계속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게 위력이 상당한 것이 한반도 역사상 최고 폐인이라 짐작되는 연산군이 두려워한 유일한 것이 역사라고 한 것에서 느낄 수 있다.

국가적 단위가 아닌 온라인 세상에서는 어떨까? 무슨 이슈가 발생하면 네티즌들은 좌표를 기록해두고 스크린샷을 남겨놓는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댓글 전쟁을 시작한다. 마침내 심화되면 고소장 교환하고, 경찰서 정모나 법원 정모를 통해 현시창판사님의 지엄하신 능력을 체험한다. 어쩌면 나무위키 전체가 온라인의 역사책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수도 있다.

3.4. 왜곡의 방법?[편집]

"역사는 승리한 자의 기록"이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이러한 말이 나온 이유는 첫 번째로 승리한 쪽의 입장에서 역사를 정리하기 때문에 사료 자체가 승자의 것이 많으며, 두 번째로 정치상의 목적을 위해 왜곡되거나 단편적인 진실을 기록한 역사 기록을 남기기도 하기 때문이다.[9] 하지만 근래에 와서는 이런 드립이 남발되는 경향이 있는데, 특정 지식과 연구도 없으면서 '승리자가 쓴 역사(혹은 승리자에게 유리한 내용)니까 무조건 거짓말이야, 진실은 반대편에 있어!' 라는 식의 재평가에 주화입마한 역덕들이 많아져서 문제다. 또한, 실제 역사에서는 횡포를 부리다가 말년에 비참하게 죽었다고 하는 악인(예를 들면 궁예)을 사극에서 나름 멋지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묘사한 것 등을 보고서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니 실제로는 저랬을 거다"라고 우기는 사람들도 정말 많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세상의 수많은 역사 중엔 승자가 아닌 패배자의 역사도 많다. 이에 대해 진화론의 자연선택('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는 자가 강한 것')의 개념을 빌려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아니라, 기록을 남긴 자가 역사의 승자'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이건 수사적인 표현이고, 논리적으로 맞는 표현은 아니다.

예를 들어 칭기즈 칸에 대한 기록의 대다수는 그에게 패배한 아랍인들이 쓴 기록이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대해 우리는 (단기적으로) 승자인 일본 측의 기록이나 자료만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 있던 박은식이 저술한 한국통사나 한국독립지혈사도 참고할 수 있는 것이다. 패배한 자들도 충분히 역사를 남기며, 무엇보다 승자의 역사라고 다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한 기록만 맹신하는 게 아니라 여러 기록을 교차 검증하기 때문. 또한 나중에 고고학적 발굴로 뒤집어지거나 논란이 될 수도 있으므로, 혹 누군가가 요상한 주장을 내세우며 아무런 근거도 없이 '승자의 기록에 사로잡힌 xxx들' 하는 식으로 기존의 학설을 깐다면 일단 의심부터 해 봐야 한다. 99% 사이비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승자/패자가 아닌, 제3자도 충분히 역사의 기록자가 될 수 있다. 후세의 다른 정권이거나, 외국인의 기록이 다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이들 역시 이해관계에서 벗어난다는 보장은 없으며 정보의 원시적인 출처 역시 당사자들의 기록일 수도 있으므로 맹신은 금지. 결국 사서의 신뢰도에 있어서 중요한 건 고고학적 검증, 서로 다른 자료들 사이의 교차검증, 그리고 논리적 검증이라고 하겠다.

사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로써 옹호되는 세력은 패자일지는 모르지만 약자는 아닌 경우에 대부분 해당된다. 지배계급 내에서의 싸움에서는 진 패자일지라도 계급적으로는 지배계급의 일원인 인물, 가문, 국가 등이 거론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전근대 사회에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피지배계급인 경우는 드문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왜곡되거나 잘못된 역사지식/사상을 심을 수 있는 역사 수업/공부를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든가, 역사공부를 하기 전에 위와 같은 역사 개론 수업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소수 존재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대학교 사학과 과정에는 대부분 역사 개론 강의가 반드시 들어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이전 과정에서 서론 부분은 존재감이 거의 없다..

또한 역사서에 기록된 문장을 보면 거짓말은 하지 않으면서 사실을 살짝 틀리게 쓰거나, 과장되게 기입하는 경우도 많다.

Q. 당태종주필산 전투를 앞두고 상책이다, 중책이다, 하책이다라고 말한 것이 맞나요?
A. 옛날 사람들은 역사를 쓸 때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써요. 근데 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 승자라고 있던 기록을 무조건 없던 이야기를 쓰진 않아요. 쓰는데 방법이 있어요. 윤지연 아나운서가 방송 시작하기 전에 저에게 감기 걸렸다는 말을 한 거예요. 근데 나만 알아요. 그리고 방송 시작할때 "오늘 몸이 안 좋은거 같네." 이렇게 말을 하는 거에요. 보통 사람은 "와, 저 사람이 신기가 들렸나?!"라고 할 거 아니에요? (승자가) 역사를 쓸 때, 윤지연 아나운서가 나에게 말했다는 걸 빼고 쓴단 말이에요. 당태종 일화도 마찬가지에요. 상책, 중책, 하책이 있지, 왜?를 안썻잖아요.


임용한. [토크멘터리 전쟁史] 44부 고구려-당나라 전쟁


사건, 인물에 대한 평가가 시대에 따라 무조건 똑같은 건 아닌지라, 후대에 이르러 저평가 받았던 게 긍정적인 면모가 부각되어 재평가받거나, 좀 더 덜 까이게 된 경우도 종종 있다. 지금 학계는 물론 역덕후들에게도 상식이 된 사실들도 실은 90년대 이전까지 학계나 역덕후나 대중들에게 전혀 다르게 인식되고 있었던 경우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걸 모르고 당시의 대중서만을 보고 비판할 경우에는 그 책 저자들이 사이비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사실 학계의 책임일 터인데... 90년대 이후 재평가 된 것들은 한국사와 세계사를 가리지 않고 많으며, 그중에는 반동으로 다시 재평가, 즉 재재평가 된 것들도 적지 않다.

4. 분류[편집]

갈래로는 크게 인류사, 정치사, 문화사, 과학사(+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으로 나뉘는데, 기록이 가장 방대한 정치사와 문화사가 주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단, 국가 교육과정 상에서는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문화사로 구분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5. 명언[편집]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고 시대를 통하여 거울이 된다(資治通鑑).


송(宋) 신종(神宗) 조욱(趙頊)사마광역사서를 보고 내린 제목

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 뿐이다.

人君所畏者, 史而已


연산군일기 63권, 연산 12년 8월 14일 辛酉 5번째기사

역사가 되풀이되고 예상치 못한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


조지 버나드 쇼

6. 기타[편집]

물건너 동방의 섬서방의 섬오덕계에서는 흔한 반도 오덕계의 인식과는 달리 역사소재를 가볍게 활용하는 사례가 많다. 이에 쉽게 역사를 접한다는 긍정적이 시각이 있는 반면, 자칫 요상하게 비틀어진 역사가 박힌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역사에 있는 사실 그대로 활용하는 작품들을 좋아하며, 실제 역사를 무시하고 작가 마음대로 역사 관련 작품을 만들다가 생기는 문제인 고증오류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또한 국사 교과서에서 지나치게 민족을 내세워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미래로 갈수록 공부해야 할 역사의 양도 많아지지 않을까'라는 의문도 있지만 되도록이면 중요한 맥락이나 흐름에 관련된 내용 위주로 놔두고 나머지는 점점 축소 및 삭제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위키백과 내에서는 문서의 편집 내역을 이르는 말로 위피키디아 영어판의 history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단어로 로그가 있다. 나무위키를 비롯해 대다수의 한국어 위키들도 똑같은 용어를 사용한다.

6.1. history = his story?[편집]

영어 history의 어원이 his story라는 주장도 있다. 인터콥 등 단체의 홍보물을 보면 이런 개드립이 자주 보인다. 이 모든 것이 그분의 이야기라는 것. 하지만 영어 history의 어원이 his story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영단어 history는 고대 그리스어 히스토리아(ἱστορία)에서 유래되었다. 단어사적으로 '진실을 탐구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historia, 그 어근인 histor-는 '증인' 혹은 '진실을 밝히는 사람'이라는 뜻과 관련된다.

영어 history의 어원이 정말로 his story라면, 왜 프랑스어에서는 histoire라고 하고 스페인어에서는 historia라고 하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영어의 his에 해당되는 프랑스어 단어는 son 또는 sa이고 스페인어 단어는 su이다. 또한 영어의 his에 해당되는 그리스어 단어는 του이다. history가 his story라는 말이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절대로 이를 진지하게 생각해서, 역사가 남성 중심으로 이어져 왔다는 증거로 내세우는 이불킥하게 될 우를 범하지 말자.

그리고 저렇게 민간어원으로 장난질할 거라면 무궁무진하게 할 수 있다. history의 어원이 his + story라면, '지금까지' 또는 '그때까지'를 뜻하는 단어 hitherto를 hit + her + to로 분리한 뒤 history에는 his가 들어가 있고 hitherto에는 her가 들어가 있으니 공평하지 않냐고 주장할 수도 있고, catholic의 어원이 cat + -holic이라고 주장하며 가톨릭은 고양이를 사모하는 기독교의 종파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7. 관련 문서[편집]

[1]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이다.[2] 원래는 역사가, 또는 사관을 뜻하는 단어였다(노자 항목 참조).[3] 예컨대 중국의 사기, 한국의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4] 예를 들어 삼국사기의 경우 왕과 귀족 중심으로 쓰여서, 왕이 무슨 옷을 입었고 어느 귀족이 뭐라고 말을 했는지는 간혹 기록에 나와도 당시 평민들이 뭘 먹고 뭘 입고 어떻게 살았는지 등에 대한 내용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 반대로 조선 후기 민간 생활사를 연구하는 경우, 왕이 뭘 먹었다거나 어디로 행차했다거나 하는 사료는 거의 참고하지 않을 것이다.[5] 이런 인식이 현재까지 자리잡은 이유 중 하나를 꼽자면, 사학자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학문에 대해 좋게 생각하려는 의도도 있다. 농담하는게 아니다! 스스로의 가치가 과거에 비해 발전했다고 생각한다면 스스로의 학문에 대해 만족감과 자부심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사학관이 무조건 틀렸다고 비판할 것은 아니다. 독자가 스스로 공부해서 판단하도록 하자.[6] 민주정권이라고 예외는 없다.[7] 역사는 아니지만 언어학쪽에서는 역사 대신 자존심과 우리(나)의 표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도 그 사회의 성격을 알수 있다라는 말도 존재한다.[8] 정당성을 뛰어넘는 이해관계가 얽혀들어가면 그런 거 없다.[9] 까놓고 진실을 쓰자는 생각이 별로 없었던 고대에는 대부분 문명에서 날조가 엄청났다. 대표적으로 로마는 피드나 전투에서 교환비 1 : 250이라는 막장 기록을 남기기도 했으며 이유없이 체제상 강력한 군대로 보호받고 있던 중요 도시들까지 싸그리 밀린 경우에는 패배를 엄청나게 삭제했다는 의혹도 상당하다. 물론 현재는 최소한 교환비 1 : 250 같은 것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당연히 거짓말로 여긴다. 참고로 리즈 시절 스파르타에 대해서도 비슷한 과장이 있다고 여겨지는 편인데 그래도 로마보다는 상당히 적다...대충 보병으로 개인당 60명 정도 썰었다는 썰이 있다. [10] 그가 집필한 역사서의 이름이 '역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