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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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사 趙南史 | Cho Nam-s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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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조남헌(趙南憲) |
자 | 유항(有恒) |
출생 | |
사망 | |
본관 | |
학력 | |
데뷔 | 1947년 방송극연구원 1기 |
가족 | 아버지 조관구, 부인 윤양순(尹讓旬 1930년 2월 10일생), 4남매 |
전주공립공업전수학교 졸업 후 센슈대학으로 유학하였다. 유학 도중인 1943년에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중퇴하게 된다.
1947년 서울방송국에 방송극연구원 1기로 입사하였다. 입사 이후 성우로 활동하다가[2] 극작가로 전향한 후 1949년 한운사, 최무룡, 장민호, 민구 등과 함께 극단 청막극회를 창립하여 대표를 맡았다.
이후 KBS 작가 겸 연출계장을 맡았다.
1953년 김혜영, 한운사, 이수열 등과 함께 신극운동의 일환으로써 신시대극협회를 창립하였다.
1956년 3월 미국무성의 초청으로 반년간 보스턴 대학에서 방송을 공부하였다. 귀국 후 방송극작가협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이 시기에 HLKA FM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라디오 연속극 청실홍실을 집필, 연출하였다. 참고로, 이 작품은 라디오연속극 최초로 1957년 영화화되었으며 1977년 동양방송에서 TV 드라마로 리메이크하였다. TV 드라마 리메이크 또한 조남사가 극본을 맡았다.
1977년 새로 발족된 방송극작가협회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방송극작가협회는 설립 1년만인 1978년에 방송작가협회와 통합해 방송문인협회로 재발족했는데, 이 협회의 초대 이사장도 조남사가 맡았다.
1982년 KBS에 방영된 사랑의 조건 극본을 끝으로 미국에 이민을 갔다.
1986년 KBS의 의뢰를 받아 미국 생활 도중 세월의 극본을 집필했다. 집필한 드라마 세울은 1987년 1월 5일부터 1987년 5월 29일까지 방영되었다.
말년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1996년 8월 22일 오전 7시 50분 강남성모병원에서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1947년 서울방송국에 방송극연구원 1기로 입사하였다. 입사 이후 성우로 활동하다가[2] 극작가로 전향한 후 1949년 한운사, 최무룡, 장민호, 민구 등과 함께 극단 청막극회를 창립하여 대표를 맡았다.
이후 KBS 작가 겸 연출계장을 맡았다.
1953년 김혜영, 한운사, 이수열 등과 함께 신극운동의 일환으로써 신시대극협회를 창립하였다.
1956년 3월 미국무성의 초청으로 반년간 보스턴 대학에서 방송을 공부하였다. 귀국 후 방송극작가협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이 시기에 HLKA FM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라디오 연속극 청실홍실을 집필, 연출하였다. 참고로, 이 작품은 라디오연속극 최초로 1957년 영화화되었으며 1977년 동양방송에서 TV 드라마로 리메이크하였다. TV 드라마 리메이크 또한 조남사가 극본을 맡았다.
1977년 새로 발족된 방송극작가협회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방송극작가협회는 설립 1년만인 1978년에 방송작가협회와 통합해 방송문인협회로 재발족했는데, 이 협회의 초대 이사장도 조남사가 맡았다.
1982년 KBS에 방영된 사랑의 조건 극본을 끝으로 미국에 이민을 갔다.
1986년 KBS의 의뢰를 받아 미국 생활 도중 세월의 극본을 집필했다. 집필한 드라마 세울은 1987년 1월 5일부터 1987년 5월 29일까지 방영되었다.
말년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1996년 8월 22일 오전 7시 50분 강남성모병원에서 숙환으로 사망하였다.
- 1956년 <유전의 애수> (원작[4] / 각본)
- 1957년 <청실홍실> (원작)
- 1958년 <산넘어 바다건너> (원작)
- 1958년 <수정탑> (원작)
- 1958년 <어느 여대생의 고백>
- 1959년 <동심초> (원작)
- 1959년 <자매의 화원>
- 1963년 <동경나그네> (동양방송)
- 1963녘 <언덕 위의 하얀집> (동양방송)
- 1964년 <일본인> (동양방송)
- 1965년 <아빠아빠 우리 아빠> (동양방송)
- 1965년 <붉은침실> (동양방송)
- 1971년 <보라빛 욕망> (MBC)
- 1971년 <선아의 호수> (MBC)
- 1972년 <정> (MBC)
- 1973년 <행복> (MBC)
- 1974년 <기러기> (MBC)
- 1975년 <비밀> (TBC)
- 1975년 <추풍령> (TBC)
- 1975년 <부부> (TBC)
- 1975년 <셋방살이> (TBC)
- 1976년 <맏며느리> (TBC)
- 1977년 <외동딸> (TBC)
- 1978년 <엄마 안녕> (TBC)
- 1978년 <그리워> (TBC)
- 1979년 <사랑도 미움도> (TBC)
- 1980년 <욕망> (TBC)
[1] 회양공파-남산파 26세.[2] 성우로서 참여한 작품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그나마 1948년 3월 30일자 중앙일보 2면의 라디오 편성표에서 밤 9시에 꽃다발이라는 시를 낭송하는 것과 1949년 5월 20일자 조선일보 2면에서 라디오 편성표 중 9시 15분에 신록시 낭독이 조남사의 성우 활동으로 확인된다.[3] 1975년 TBC 라디오에서 리메이크되어 방송되었다. 이때도 동일하게 조남사가 각본을 맡았다.[4] 조남사의 작품인 어느 운명의 별 아래를 개작하여 영화화한 것이다. The Homeless Woman이라는 제목으로 미국화되기도 하였다.[5] 박완서의 소설이 원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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