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르크 데 프랭스
최근 수정 시각:
Le Parc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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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 외부 |
파리 생제르맹 FC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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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크 데 프랭스 | |
Parc des Princes | |
위치 | |
개장 | 1차: 1897년 7월 18일 |
2차: 1932년 4월 19일 | |
현재: 1972년 5월 25일 | |
준공비 | 1억 5000만 프랑 (1972년) |
소유 | 파리 시 |
운영 | |
홈 구단 | |
좌석수 | 47,929석 |
최다관중 기록 | |
피치 크기 | 105 m × 68 m (344 ft × 223 f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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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êvons Plus Grand[1] |
프랑스 수도 파리의 16구에 있는 경기장. 1897년 7월 18일에 개장했으며, 이후 2번 (1932, 1972)의 보수 및 확장공사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파리를 연고로 하고 있는 클럽인 파리 생제르맹 FC의 홈 구장이다. 또한 UEFA가 지정한 카테고리 4 경기장으로서 각종 유럽 대회를 유치하고 치를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경기장이기도 하다. 애칭은 르 파르크(Le Parc).
르 파르크가 들어선 터는 이전부터 유원지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18세기 부르봉 왕가의 사냥터였으며, 19세기에는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이 여가를 보내던 곳이기도 했다.
인근에 스타드 장부앵(Le Stade Jean-Bouin)이 있다.[2] PSG의 메가스토어가 있고 경기 당일 매표소 또한 장부앵에 설치된다.
르 파르크가 들어선 터는 이전부터 유원지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18세기 부르봉 왕가의 사냥터였으며, 19세기에는 귀족들과 부르주아들이 여가를 보내던 곳이기도 했다.
인근에 스타드 장부앵(Le Stade Jean-Bouin)이 있다.[2] PSG의 메가스토어가 있고 경기 당일 매표소 또한 장부앵에 설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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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파르크 데 프랭스 |
1924년 리모델링으로 좌석을 2만 석 가까이 확보했지만 1924 파리 올림픽과 럭비 경기를 위한 임시 증축이라 1932년에 제대로 된 증축을 한다. 원래도 좌석을 26,000석 가까이 늘렸으나 1932년의 증축을 통해 좌석은 38,000석까지 늘어났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쳤으나 다행히 파괴되진 않았고, 1944년 파리 해방 이후 이 당시 르 파르크를 홈으로 사용하던 레드 스타 FC와 라싱 파리가 다시 돌아와 홈경기장으로 사용한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쳤으나 다행히 파괴되진 않았고, 1944년 파리 해방 이후 이 당시 르 파르크를 홈으로 사용하던 레드 스타 FC와 라싱 파리가 다시 돌아와 홈경기장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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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파르크 데 프랭스 건설 당시 모습 |
그러나 전쟁을 거치고 지붕도 없고 노후화까지 된 경기장이라 역시 계속 사용하기엔 무리였다. 드디어 지금의 현대적 건축물로서의 건설을 계획한다.
이 당시엔 럭비를 염두에 두고 트랙을 유지한 게 아쉬운 부분이긴 하나 타원형 지붕과 조명 시설이 결합된 최초의 경기장이었고, 저명한 프랑스 건축가나 예술가들이 파리의 스카이라인까지 신경써서 만든 나름 당시 최신기술들이 접목된 건축물이었다.
이 당시엔 럭비를 염두에 두고 트랙을 유지한 게 아쉬운 부분이긴 하나 타원형 지붕과 조명 시설이 결합된 최초의 경기장이었고, 저명한 프랑스 건축가나 예술가들이 파리의 스카이라인까지 신경써서 만든 나름 당시 최신기술들이 접목된 건축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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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증축이 완료된 후 프랑스와 소련의 국제경기, 쿠프 드 프랑스 결승전 등을 진행하고 파리 생제르맹 FC의 홈으로써 사용된다. 그러나 몇 년 못 가고 1973년 파리 FC와 PSG로 클럽이 두 개로 다시 나뉘고, 현존하는 파리 생제르맹으로서의 르 파르크 첫 경기는 1973년 리그 2에서 같은 파리를 연고지로 하는 레드 스타 FC와의 경기였다.
1974년엔 PSG가 다시 리그 1으로 승격하고, 반대로 르 파르크를 쓰던 파리 FC는 강등당하여 PSG는 파르크 데 프랭스를 자신들의 홈으로 사용할 것을 공식적으로 표명하였다. 당연히 파리 FC는 거부하였고 몇몇 경기는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치르지 못하여 스타드 조르주 르페브르, 스타드 장부앵, 현재 레드 스타 FC의 홈인 '스타드 바우어' 등에서 경기를 해야했다.
결국 르 파르크에서는 PSG, 파리 FC, 레드 스타 FC 등 파리를 연고로 하는 클럽이 돌아가면서 경기하게 되었는데, 지금처럼 완전히 PSG의 홈이 된 이유로는 결정적으로 관중 수 차이가 컸다. PSG는 창단 당시부터 시민들의 서명과 모금을 받았고, 창단 의도 자체가 파리의 빅클럽을 만든다는 것이었으니 PSG의 파르크 데 프랭스 홈경기 관중 수는 당연히 레드스타나 소극적 운영을 하던 파리 FC가 모으는 관중보다 많아 1972년 재개장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큰 경기장이었던 파르크 데 프랭스를 홈으로 쓰는 것에 당위성이 생긴 것이다.
물론 그렇게 끝난 것은 아니고, 파리 FC와 라싱 파리가 리그 1에 있던 가장 최근 시절인 1990년대까지도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그들이 몇 차례 경기를 하긴 했다.[3] 하지만 그 두 클럽들이 끝내 버티지 못하고 리그 2로 강등되어 올라올 낌새가 안 보였고, 반대로 PSG는 카날 플뤼스를 등에 업고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한 90년대로 접어들어 온전히 PSG만의 경기장이 된다.
이후 별 사건사고 없이 시간을 보내다 카타르 자본이 들어서고, 파리 시와 합의하여 2043년까지 파르크 데 프랑스 임대를 연장한 뒤 낡았다 싶으면 리모델링하기 시작했다. 2012년, 2013~14년, UEFA 유로 2016의 진행을 위해 2015~16년까지 3차례에 걸쳐 개수하고, 계주 트랙 사이드에 두 줄 1,200석 등 합계 4,500석의 좌석을 추가 설치하여 수용력을 47,929명까지 늘렸으며 웜업실, 관리실, 탈의실 등을 추가 설치 및 보수하였다. 리모델링에 총 75m 유로를 사용했고 경기장 수입은 기존 20m 유로에서 5배 뛴 100m 유로가 되었다.
사실 카타르 수뇌부는 스타드 드 프랑스로의 홈 이전 or 파르크 데 프랭스 재개발 중 UEFA 유로 2016 문제도 겹쳐 후자를 택한 거라 전체 계획 중 아직 남아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최종적으로 파르크 데 프랭스의 수용력을 60,000석 이상으로 확장시키고, 약 150m~200m 유로로 파리 시로부터 PSG 명의로 경기장 자체를 구입할 계획도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었다.(...) 재개발 계획을 맡은 PSG의 부회장 장클로드 블랑과 카타르 수뇌부가 유럽 유수의 클럽이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로 구단 자체 소유의 대규모 홈구장을 생각하는만큼 어디까지 진행될지 두고볼 일이다.
그러나, 2023년 1월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이 경기장을 팔 생각이 없다고 하여 파리 생제르맹은 그럼 다른 경기장을 알아보겠다며 갈등을 빚고 있다. 50년이 넘어 곳곳에 낡은 곳이 가득하여 고칠 곳도 많은데 파리 시가 이걸 고칠 생각도 하지 않는 상황에 이런 논란이 있다.
2023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스타드 드 프랑스 인수 후보 세 곳 중 한 곳으로 선정되었다.
2024년 2월 나세르 알 켈라이피 회장이 파르크 데 프랭스를 떠나, 새 경기장을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1974년엔 PSG가 다시 리그 1으로 승격하고, 반대로 르 파르크를 쓰던 파리 FC는 강등당하여 PSG는 파르크 데 프랭스를 자신들의 홈으로 사용할 것을 공식적으로 표명하였다. 당연히 파리 FC는 거부하였고 몇몇 경기는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치르지 못하여 스타드 조르주 르페브르, 스타드 장부앵, 현재 레드 스타 FC의 홈인 '스타드 바우어' 등에서 경기를 해야했다.
결국 르 파르크에서는 PSG, 파리 FC, 레드 스타 FC 등 파리를 연고로 하는 클럽이 돌아가면서 경기하게 되었는데, 지금처럼 완전히 PSG의 홈이 된 이유로는 결정적으로 관중 수 차이가 컸다. PSG는 창단 당시부터 시민들의 서명과 모금을 받았고, 창단 의도 자체가 파리의 빅클럽을 만든다는 것이었으니 PSG의 파르크 데 프랭스 홈경기 관중 수는 당연히 레드스타나 소극적 운영을 하던 파리 FC가 모으는 관중보다 많아 1972년 재개장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큰 경기장이었던 파르크 데 프랭스를 홈으로 쓰는 것에 당위성이 생긴 것이다.
물론 그렇게 끝난 것은 아니고, 파리 FC와 라싱 파리가 리그 1에 있던 가장 최근 시절인 1990년대까지도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그들이 몇 차례 경기를 하긴 했다.[3] 하지만 그 두 클럽들이 끝내 버티지 못하고 리그 2로 강등되어 올라올 낌새가 안 보였고, 반대로 PSG는 카날 플뤼스를 등에 업고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한 90년대로 접어들어 온전히 PSG만의 경기장이 된다.
이후 별 사건사고 없이 시간을 보내다 카타르 자본이 들어서고, 파리 시와 합의하여 2043년까지 파르크 데 프랑스 임대를 연장한 뒤 낡았다 싶으면 리모델링하기 시작했다. 2012년, 2013~14년, UEFA 유로 2016의 진행을 위해 2015~16년까지 3차례에 걸쳐 개수하고, 계주 트랙 사이드에 두 줄 1,200석 등 합계 4,500석의 좌석을 추가 설치하여 수용력을 47,929명까지 늘렸으며 웜업실, 관리실, 탈의실 등을 추가 설치 및 보수하였다. 리모델링에 총 75m 유로를 사용했고 경기장 수입은 기존 20m 유로에서 5배 뛴 100m 유로가 되었다.
사실 카타르 수뇌부는 스타드 드 프랑스로의 홈 이전 or 파르크 데 프랭스 재개발 중 UEFA 유로 2016 문제도 겹쳐 후자를 택한 거라 전체 계획 중 아직 남아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최종적으로 파르크 데 프랭스의 수용력을 60,000석 이상으로 확장시키고, 약 150m~200m 유로로 파리 시로부터 PSG 명의로 경기장 자체를 구입할 계획도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었다.(...) 재개발 계획을 맡은 PSG의 부회장 장클로드 블랑과 카타르 수뇌부가 유럽 유수의 클럽이 되기 위한 조건 중 하나로 구단 자체 소유의 대규모 홈구장을 생각하는만큼 어디까지 진행될지 두고볼 일이다.
그러나, 2023년 1월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이 경기장을 팔 생각이 없다고 하여 파리 생제르맹은 그럼 다른 경기장을 알아보겠다며 갈등을 빚고 있다. 50년이 넘어 곳곳에 낡은 곳이 가득하여 고칠 곳도 많은데 파리 시가 이걸 고칠 생각도 하지 않는 상황에 이런 논란이 있다.
2023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스타드 드 프랑스 인수 후보 세 곳 중 한 곳으로 선정되었다.
2024년 2월 나세르 알 켈라이피 회장이 파르크 데 프랭스를 떠나, 새 경기장을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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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스탠드(Tribune Paris): 사진상 A~G가 위치한 파란색 구역
- 오퇴유 스탠드(Tribune Auteuil): 사진상 H, I가 위치한 보라색 구역
- 보렐리 스탠드(Tribune Borelli): 사진상 J~M이 위치한 남색 구역
- 불로뉴 스탠드(Tribune Boulogne): 사진상 N, O, P가 위치한 붉은색 구역
스탠드는 총 2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크게 4가지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먼저 피치로 들어가는 입구와 마주보는 곳에 있는 '파리 스탠드'는 중계 카메라에 주로 잡히는 메인 스탠드이다. VIP석, 미디어석, 고급 시트 등이 집중되어 있으며 Rêvons Plus Grand가 쓰여진 지붕 아래 스탠드는 PSG 엠블럼과 같은 색상의 붉은 에펠탑이 그려져있다. 스폰서, 유명인, 구단 관계자 등이 경기를 보러 오면 대부분 이쪽 스탠드에 있다.
파리 스탠드와 마주보는 위치의 '보렐리 스탠드'는 1970년대부터 PSG 재건에 힘쓴 핵심인물이자 이후 PSG 회장직까지 지내는 프랑시스 보렐리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TV 중계 화면과 같은 시선에서 경기를 볼 수 있고, J석 게이트가 스타드 장부앵과 가장 가까이 맞닿는 위치이며 그쪽 게이트 인근에 PSG 메가스토어가 존재한다. 주로 일반 시즌권자와 중립 팬들이 많이 있다.
'오퇴유 스탠드'는 TV 화면상 왼쪽 골대 뒤에 위치해있는 스탠드이다. 일반 서포터들이 많은데 구단 차원에서 가족친화적인 분위기를 밀고 있는듯 하다.
'불로뉴 스탠드'는 TV 화면상 오른쪽 골대 뒤이다. 1970년대부터 PSG의 하드코어 울트라스 문화가 자리잡은 강성 서포터즈 구역이다. 2000년대 후반 모종의 사건으로 이곳의 PSG 서포터즈 단체 중 하나인 '코프 데 불로뉴'(Kop de Boulogne)가 잠깐 해체되는 일과 PSG 구단 자체의 보안 정책으로 인해 과거에 비하면 굉장히 안전하고 조용(?)해진 상태이긴 하다.
- 유로 트럭 시뮬레이터 2: 파리 지역 확장 MOD에 경기장이 모델링되어 있으며, 골목을 사이에 두고 화물 터미널도 위치해 있다.
- 주요 대회로는 1924 파리 올림픽[4], 1938년 FIFA 월드컵, UEFA 유로 1984 결승전인 개최국 프랑스 대 스페인의 경기와 1998년 FIFA 월드컵의 조별 예선과 3,4위전이 치러졌다. UEFA 유로 2016, 2019 FIFA 여자 월드컵 프랑스 대회의 개최지 중 한 곳이기도 하다. 2024 파리 올림픽 축구 경기장으로 확정됐다.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대의 흑역사가 여기서 벌어지기도 했다. 1994 FIFA 월드컵 미국의 유럽 지역 예선에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은 여기서 이스라엘 축구 국가대표팀과 맞붙는 상황이었다. 상대가 당시로서는 진짜 유럽이라고 할 수조차 없는 뜨내기인 이스라엘인 데다가, 홈 경기였기 때문. 그러나 프랑스는 그 경기에서 이스라엘에 2-3으로 패하는 바람에 마지막 불가리아전까지 본선 진출 확정이 미루어졌고, 불가리아와의 경기 역시 비기기만 해도 본선 진출이었지만 종료 직전 라스트 미닛 골을 얻어맞고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하면서 1994 FIFA 월드컵 미국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에는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E조 대한민국 대 벨기에와의 E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무승부 1:1)와 2019 FIFA 여자 월드컵 프랑스 개막전(대한민국 대 프랑스)을 치른 경기장으로 인연이 있다. 그나마 남자 팀은 벨기에전에서 이임생의 상처 한 마디로 설명되는 처절한 플레이, 그리고 유상철의 월드컵 데뷔 골로 벨기에를 무승부 탈락시키는 인상을 남기기라도 했지만, 프랑스한테 0:4로 패한 여자 팀은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3전 전패로 광탈하며 윤덕여 감독이 사퇴하는 흑역사로 남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3년, 유상철의 슛돌이 제자인 이강인이 PSG으로 이적해 PSG소속 데뷔골이자 UEFA 챔피언스 리그 데뷔골을 기록하는 진기록을 달성했다.
- 르 클라시크나 챔스 빅매치 등의 경기를 직관할 때 만에 하나 잘못 걸리면 연기 때문에 매우 빡세다. 축구장에서 과열되면 홍염이야 으레 나오지만, 지붕 안쪽이나 관중석 쪽으로 바람이 불 때면 다른 경기장에 비해 연기가 잘 안 빠지기 때문이다.

2018년 3월 경기 중19-20 시즌 레알 마드리드 CF와의 챔스 조별리그
- 2024년 파리 올림픽 남자축구, 여자축구가 이곳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경기일자 (현지시각) | 홈팀 | 결과 | 원정팀 | 라운드 | 관중 |
1998년 6월 15일 21:00 | 2-0 | F조 1차전 | |||
1998년 6월 19일 17:30 | 1-0 | D조 2차전 | |||
1998년 6월 21일 17:30 | 5-0 | H조 2차전 | |||
1998년 6월 25일 16:00 | 1-1 | E조 3차전 | |||
1998년 6월 28일 21:00 | 4-1 | 16강전 | |||
1998년 7월 11일 21:00 | 1-2 | 3위 결정전 |
경기일자 (현지시각) | 홈팀 | 결과 | 원정팀 | 라운드 | 관중 |
2019년 6월 7일 21:00 | 4-0 | A조 1차전 | |||
2019년 6월 10일 18:00 | 0-0 | D조 1차전 | |||
2019년 6월 13일 21:00 | 0-1 | B조 2차전 | |||
2019년 6월 16일 18:00 | 3-0 | F조 2차전 | |||
2019년 6월 19일 21:00 | 3-3 | D조 3차전 | |||
2019년 6월 24일 21:00 | 1-0 | 16강전 | |||
2019년 6월 28일 21:00 | 1-2 | 8강전 |
[ 펼치기 · 접기 ]
|
[ 펼치기 · 접기 ]연도는 경기일 기준 |
역대 FIFA 여자 월드컵 개막전 개최 경기장 | ||||
7회 | → | 8회 | → | 9회 |
2019 FIFA 여자 월드컵 프랑스 파르크 데 프랭스 | ||||
32회 | → | 33회 | → | 34회 |
2024 파리 올림픽 파르크 데 프랭스 | ||||
→ | 1회 | → | 2회 | |
UEFA 유로 창설 전 | 유로 1960 프랑스 파르크 데 프랭스 | |||
6회 | → | 7회 | → | 8회 |
유로 1984 프랑스 파르크 데 프랭스 | ||||
→ | → | |||
유러피언컵 창설 전 | 파르크 데 프랭스 | |||
→ | → | |||
파르크 데 프랭스 | ||||
→ | → | |||
파르크 데 프랭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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