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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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 (1920~1922) Հայաստանի Սոցիալիստական Խորհրդային Հանրապետություն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Совет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Армения Socialist Soviet Republic of Armenia | |||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1922~1991) Հայկական Սովետական Սոցիալիստական Հանրապետություն[1] Армянская Советская Социалистиче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Armenian Soviet Socialist Republic | |||
아르메니아 공화국 (1990~1991) Հայաստանի Հանրապետություն Республика Армения Republic of Armenia | |||
국기 | 국장 | ||
1920년 12월 2일 ~ 1990년 8월 23일 | |||
성립 이전 | 소련 붕괴 이후 | ||
국가 | |||
위치 | |||
수도 | |||
정치 체제 | |||
언어 | |||
민족 | |||
종교 | |||
통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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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2월 2일 ~ 1922년 2월 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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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2월 2일 ~ 1922년 3월 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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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3월 2일 ~ 1937년 3월 23일[2] |
1937년 3월 23일 ~ 1940년 9월 6일 |
1940년 9월 6일 ~ 1952년 12월 17일 |
1952년 12월 17일 ~ 1990년 8월 23일 |
1990년 8월 23일 ~ 현재 |
제정 러시아의 붕괴로 독립했던 아르메니아 제1공화국이 1920년 붉은 군대에 점령되면서 세워졌다. 1922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와 함께 자캅카스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을 형성했고, 같은 해 소련에 가맹한다. 1936년 자캅카스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이 해체되며 소련 내 공화국으로 분리, 소련 붕괴 전까지 이어졌다.
1926년에 인구가 88만 명이었으나, 1989년에는 330만 명으로 4배 가량 증가했다. 비교적 높은 출산율에 따른 자연적 증가와 해외 아르메니아인들의 이주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해외에서 아르메니아인이 꾸준히 이주하고 러시아인의 이주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1989년 집계에서 러시아인의 인구비율이 1.8%로 공화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1988년 12월 7일 일어난 아르메니아 대지진으로 인하여 북서부 지방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1988년부터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자치주였지만 아르메니아인이 다수였던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로 아제르바이잔과 분쟁이 점점 커졌다. 1990년 8월 23일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1991년 3월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제안한 소련 존속에 관한 전연방 국민투표에서 발트 3국, 몰도바, 조지아와 함께 반대하였다.
아르메니아는 소련의 공화국 중에서 제1민족의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이는 아르메니아인의 이주가 활발한 데다 민족월경지 다수가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웃나라들도 아르메니아 내에 민족월경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규모는 아르메니아인 민족월경지보다 훨씬 작았으며 특히 조지아는 점이지대를 죄다 먹어치우는 이득을 보았다.[3] 아르메니아는 소련 정부가 국경을 지나치게 불공평하게 설정했다며 자신의 처지에 끊임없이 불만을 표출했고, 1988년 페레스트로이카의 여파에 힘입어 소련 내 민족주의가 활발해지면서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두고 아제르바이잔과 갈등을 일으켰다. 이는 훗날 제1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으로 이어지면서 양국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1926년에 인구가 88만 명이었으나, 1989년에는 330만 명으로 4배 가량 증가했다. 비교적 높은 출산율에 따른 자연적 증가와 해외 아르메니아인들의 이주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해외에서 아르메니아인이 꾸준히 이주하고 러시아인의 이주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1989년 집계에서 러시아인의 인구비율이 1.8%로 공화국 가운데 가장 낮았다. 1988년 12월 7일 일어난 아르메니아 대지진으로 인하여 북서부 지방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1988년부터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자치주였지만 아르메니아인이 다수였던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로 아제르바이잔과 분쟁이 점점 커졌다. 1990년 8월 23일 독립을 선언하였으며 1991년 3월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제안한 소련 존속에 관한 전연방 국민투표에서 발트 3국, 몰도바, 조지아와 함께 반대하였다.
아르메니아는 소련의 공화국 중에서 제1민족의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이는 아르메니아인의 이주가 활발한 데다 민족월경지 다수가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웃나라들도 아르메니아 내에 민족월경지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규모는 아르메니아인 민족월경지보다 훨씬 작았으며 특히 조지아는 점이지대를 죄다 먹어치우는 이득을 보았다.[3] 아르메니아는 소련 정부가 국경을 지나치게 불공평하게 설정했다며 자신의 처지에 끊임없이 불만을 표출했고, 1988년 페레스트로이카의 여파에 힘입어 소련 내 민족주의가 활발해지면서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두고 아제르바이잔과 갈등을 일으켰다. 이는 훗날 제1차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쟁으로 이어지면서 양국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 소련 당시에는 그루지야와 더불어 브랜디 산지로 유명했다. 특히 브랜디의 경우 19세기 말 아르메니아인 사업가들이 프랑스의 브랜디 산업을 벤치마킹해서 아르메니아 본토에 포도 농장과 브랜드 공장을 지었던 덕분에 상당한 수준의 브랜디를 양조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소련 전체 브랜디 양조의 25%를 아르메니아가 책임졌을 정도였으며, 품질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아르메니아 브랜디 중 최상급으로 불리는 아라라트는 얄타 회담 당시 윈스턴 처칠에게 제공되었다고 하며, 그 밖에도 고위급 인사의 접대에 대접되거나 선물, 뇌물용으로 애용되는 등 고급주 대접을 받았다. 브랜디만큼은 아니지만 고대부터 조지아와 더불어 포도주의 탄생지로 알려진 만큼 와인 또한 주요 특산물로 유명했다.
- 공산주의 유머 중에는 일명 아르메니아 라디오(Армянское радио) 또는 예레반 라디오(Radio Eriwan)라는 이름으로 문답식 유머가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유행한 적이 있다. 1960년대 아르메니아 라디오 방송국에서 청취자들의 질문에 농담조로 답변하는 프로그램이 인기였고, 해당 방송국의 아나운서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차이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가 자본주의 세계 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고 사회주의 세계에서는 그 반대라고 답변했다. 이게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고, 해당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유머들이 소련 전역에 유행하여 1970년대까지 소련의 대표적인 유머시리즈가 되었고, 일부는 1980년대까지도 유행하였으며 현재도 추억의 유머로 기억된다. 또한 스푸트니크라는 소련의 해외선전 잡지에서도 아르메니아 라디오 유며 일부를 번역해 실었는데, 동유럽에서도 히트를 쳐서 해당 국가에서도 라디오 예레반 시리즈가 유행했다. 공산주의 유머/소련/정치와 행정 문서에서도 몇몇 예시를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유머가 대히트를 치다보니 당시 아르메니아 라디오 방송사 담당자들이 아르메니아 라디오에서 왔다는 소리를 듣고서 폭소하는 청중들로 인해서 곤혹을 치러야 했다는 후일담도 있었다. 또한 스푸트니크라는 소련의 해외선전 잡지에서도 아르메니아 라디오 유머 일부를 번역해 실었는데, 동유럽 국가, 특히 동독에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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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이카칸 소베타칸 소치알리스타칸 한라페투티윤. Սովետական Հայաստան(소베타칸 하야스탄; 소비에트 아르메니아)라고도 불렀다.[2] 자캅카스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 시절.[3] 국경 조정이 끝나고 실시된 1926년 인구조사에서 아르메니아 내 조지아인은 274명으로 무시해도 될 수준(0.0%)인 반면에 조지아 내 아르메니아인은 307,018명으로 조지아 인구의 11.5%에 달했다. 압하지야나 트빌리시는 그렇다 쳐도 자바헤티같은 지역도 모조리 조지아 차지가 된 것은 아르메니아에 대한 배려가 아예 없었던 것으로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당장 1차대전 후 독일에 대한 복수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던 협상국도 독일령 폴란드(서프로이센, 포젠)를 역사성만 고려해 폴란드에 통째로 넘겨준 것이 아니라 독일인 다수지인 곳은 상당수 독일에 남겨줬다.) 그리고 아르메니아 내 아제르바이잔인도 76,870명(아르메니아 인구의 8.7%)으로 아제르바이잔 내 아르메니아인 282,004명(아제르바이잔 인구의 12.2%)에 비해 훨씬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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