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레반 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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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반 지하철 Կարեն Դեմիրճյանի անվան Երևանի մետրոպոլիտե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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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통년도 | ||
소유자 | ||
운영자 | 예레반 지하철 | |
영업거리 | 13.4 km | |
노선수 | 1 | |
일일 승객 수 | 약 8만 명 | |
정거장수 | 10 | |
궤간 | ||
운행최고속도 | 80km/h | |
급전방식 | ||
예레반 지하철은 1개 노선 10개 역(13.4km 길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형적인 소련 스타일 지하철로 궤간 또한 광궤이다. 첫 구간은 1981년 3월 7일 개통되었는데 소련에서는 8번째로 개통된 지하철이다. 4차례에 걸쳐 연장되었으며, 가장 최근의 연장은 1996년 12월 26일 차르바흐(Charbakh, 아르메니아어 Չարբախ)역 지선 연장이었다.
2호선과 3호선을 건설할 구상은 있으나 아직 이렇다 할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예레반 외 캅카스 지역에서는 조지아의 트빌리시와 아제르바이잔의 바쿠가 지하철이 개통되어 있는 도시들이다.
예레반 지하철은 바쿠 지하철보단 열악하고, 트빌리시 지하철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창문 열고다니는 시끄러운 객차야 똑같지만, 노선도 가장 짧고 연장 또한 1996년 이후로 없었으며 이용객도 가장 적다. 요금은 100드람(300원)인데, 카드를 사용하는 트빌리시나 바쿠 지하철과 달리 토큰을 사용한다.
2호선과 3호선을 건설할 구상은 있으나 아직 이렇다 할 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예레반 외 캅카스 지역에서는 조지아의 트빌리시와 아제르바이잔의 바쿠가 지하철이 개통되어 있는 도시들이다.
예레반 지하철은 바쿠 지하철보단 열악하고, 트빌리시 지하철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창문 열고다니는 시끄러운 객차야 똑같지만, 노선도 가장 짧고 연장 또한 1996년 이후로 없었으며 이용객도 가장 적다. 요금은 100드람(300원)인데, 카드를 사용하는 트빌리시나 바쿠 지하철과 달리 토큰을 사용한다.
예레반 지하철 개통 역사 |

역명 | 개역(開驛)년도 | 위치한 구 | 비고 | |||
◉ | 바레카뮤툰 | Բարեկամություն | 1981 | 아랍키르구 | 기점. '우애' '우호'라는 뜻 | |
◉ | 바그라먄 원수 | Մարշալ Բաղրամյան | 1981 | |||
◉ | 예리타사르다칸 | Երիտասարդական | 1981 | 켄트론구 | ||
◉ | 공화국 광장 | Հանրապետության Հրապարակ | 1981 | 켄트론구 | ||
◉ | 안드라닉 장군 | Զորավար Անդրանիկ | 1989 | 켄트론구 | ||
◉ | 사순의 다비트 | Սասունցի Դավիթ | 1981 | 셴가비트구 | 지상역. 예레반 철도역과 연결. | |
◉ | 고르차라나인 | Գործարանային | 1983 | 셴가비트구 | 지상역. '공장', 공단(工團)'이라는 뜻 | |
◉ | 셴가비트 | Շենգավիթ | 1985 | 셴가비트구 | ||
◉ | 가레긴 느주데흐 | Գարեգին Նժդեհի Հրապարակ | 1987 | 셴가비트구 | ||
역명 | 개역(開驛)년도 | 위치한 구 | 비고 | ||
◉ | 셴가비트 | Շենգավիթ | 1985 | 셴가비트구 | |
◉ | 차르바흐 | Չարբախ | 1996 | 셴가비트구 | 지상역 |
예레반 지하철에 얽힌 비화가 있다. 소련에서는 인구 100만 이상 되는 도시에 지하철을 짓고, 그 이하 도시에서는 노면전차를 확장하는 정책을 취했는데, 1970년대말 예레반의 인구는 100만을 갓 돌파한 시점이었다. 당시 아르메니아 SSR의 제1서기 카렌 데미르챤[5]이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를 설득하기를, "승객들도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많을 것이고, 게다가 해외 거주 아르메니아계들도 조국에 돌아올테니 2000년이면 예레반이 150만이 아니라 200만 인구가 됩니다. 그러니 지하철 좀 지어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라고 했다고 한다. 그런 설득이 먹혔는지 예레반 지하철이 건설되었고, 1999년 12월부터 데미르챤의 이름이 지하철 명칭에 붙게 되었다. 참고로 예레반 인구는 2026년 기준으로 113만 명이다.
[1] 개통 당시 사랄란지 역이었으나, 1982년 이반 바그라먄 소련군 원수가 서거하자 현재의 이름으로 개칭.[2] 1992년까지는 레닌 광장역.[3] 1991년까지는 혹템베랸역이었으나, 독립운동가 "안드라닉 장군" (본명 안드라닉 오자냔)의 이름을 따 개명.[4] 1992년까지는 아르메니아계 볼셰비키 '수렌 스판다랸'의 이름을 딴 '스판다랸 광장역'이었다. 가레긴 느주데흐는 아르메니아의 독립운동가.[5] 1974년부터 1988년 동안 14년간 아르메니아 제1서기였다. 1999년 10월 국회의장 재직 당시 의사당 총격사건으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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