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세 아르메니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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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라투니 아르메니아 Բագրատունիների թագավորություն Bagratuni KingdomᆞBagratid Armenia | ||
깃발 | 문장[1] | |
바그라투니조 아르메니아 왕국의 강역, 서기 1000년경. | ||
880년대 ~ 1045년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위치 | ||
수도 | ||
정치체제 | ||
민족 | ||
언어 | ||
종교 | ||
이슬람 정복 후 이슬람 제국령 아르미니야 주에 편성되었던 아르메니아 지역은 아랍계 총독들의 지배를 받았고, 9세기 들어 그러한 총독들은 점차 자립하여 아르메니아 토후국 (إمارة أرمينيا)이라 불리기에 이르렀다. 또한 이따금씩 칼리파들은 아랍인 총독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대신 충성을 맹세한 아르메니아인 기독교도 호족을 총독으로 봉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9세기 후반 압바스 왕조가 일명 '사마라의 혼란'이라 불리는 내전으로 쇠퇴하자 바누 샤이반 가문의 지배를 끝으로 아르메니아 지역에선 기독교도 호족들이 점차 주도권을 장악하였고, 그중 아르샤쿠니 왕조 시절 귀족 가문의 후예이자 다윗의 후손을 자처한 바그라투니 가문이 두각을 드러내었다.
바그라투니 가문은 이미 8~9세기에 아쇼트 3세, 슴바트 7세, 아쇼트 4세, 바그라트 2세 등의 총독을 배출하였다. 그리고 아쇼트 4세의 손자인 아쇼트 5세가 885년 압바스 칼리파 알 무타미드로부터 왕관을 하사받아 국왕 아쇼트 1세로 즉위하며 중세 아르메니아 왕국이 시작되었다. 기독교 군주가 무슬림 황제에게서 받은 왕관으로 대관식을 치렀던 것이다. 이는 단순한 칼리파의 호의나 제후국화가 아닌 정치적인 수였다. 당시 동로마 제국이 말라티아를 점령하는 등 고토 회복에 나서자 압바스 왕조는 아르메니아가 그에 합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예 자체적인 왕국으로 격상시키고 명목상의 종주권이라도 유지하려는 의도로 그런 결정을 한 것이다.
10세기 아르메니아 왕국은 함단 왕조, 부와이흐 왕조 등과 경쟁하며 옛 아르메니아 지역을 대부분 회복하고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에 기반한 문화를 꽃피우는 등 번영을 누렸으나 1045년 결국 동로마 제국에 병합되어 멸망하였고, 일대는 얼마안가 셀주크 제국에게 정복되었다. 마지막 왕인 가기크 2세는 리칸도스에서 영주를 지내다 1079년 5월, 지역 정교회 사제랑 마찰이 생겼고 이후 카파도키아 지역 로마 귀족들에게 살해당해, 저잣거리에 매달리는 최후를 당한다.
이당시 아르메니아의 인구는 600만명으로 동로마 제국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정도의 지역강국이었다. 수도였던 아니는 10~20만명의 대도시였고 봉신국 중 하나였던 바스푸라칸 왕국 또한 100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대국이었다.
바그라투니 가문은 이미 8~9세기에 아쇼트 3세, 슴바트 7세, 아쇼트 4세, 바그라트 2세 등의 총독을 배출하였다. 그리고 아쇼트 4세의 손자인 아쇼트 5세가 885년 압바스 칼리파 알 무타미드로부터 왕관을 하사받아 국왕 아쇼트 1세로 즉위하며 중세 아르메니아 왕국이 시작되었다. 기독교 군주가 무슬림 황제에게서 받은 왕관으로 대관식을 치렀던 것이다. 이는 단순한 칼리파의 호의나 제후국화가 아닌 정치적인 수였다. 당시 동로마 제국이 말라티아를 점령하는 등 고토 회복에 나서자 압바스 왕조는 아르메니아가 그에 합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예 자체적인 왕국으로 격상시키고 명목상의 종주권이라도 유지하려는 의도로 그런 결정을 한 것이다.
10세기 아르메니아 왕국은 함단 왕조, 부와이흐 왕조 등과 경쟁하며 옛 아르메니아 지역을 대부분 회복하고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에 기반한 문화를 꽃피우는 등 번영을 누렸으나 1045년 결국 동로마 제국에 병합되어 멸망하였고, 일대는 얼마안가 셀주크 제국에게 정복되었다. 마지막 왕인 가기크 2세는 리칸도스에서 영주를 지내다 1079년 5월, 지역 정교회 사제랑 마찰이 생겼고 이후 카파도키아 지역 로마 귀족들에게 살해당해, 저잣거리에 매달리는 최후를 당한다.
이당시 아르메니아의 인구는 600만명으로 동로마 제국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정도의 지역강국이었다. 수도였던 아니는 10~20만명의 대도시였고 봉신국 중 하나였던 바스푸라칸 왕국 또한 100만 이상의 인구를 가진 대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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