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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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
Կիլիկիոյ Հայոց Թագաւորութիւն
Le Royaume Arménien de Cilicie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 국기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 국장
국기
국장
Cilician Armenia...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국의 최대 강역
1198년 1월 6일 ~ 1375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위치
수도
국가원수
공작 → 왕
정치체제
국교
언어
민족
 
 
 
 
 
 
 
 
 

1. 개요2. 역사3. 역대 군주4. 대중 매체에서 등장5.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1080년 조지아아르메니아의 왕가인 바그라티온 왕조의 분파라고 주장하는 루벤 가문이 세운 국가. 다만 루벤 가문의 주장은 근거가 없이 스스로 자처한 것이었다. 아르메니아 본토와는 멀리 떨어진 킬리키아에 건국되었으며, 이 국가 때문에 해당 지역은 '소 아르메니아'라고 불리기도 했다. 수도는 본래 타르소스였으나 나중에는 시스로 옮겨갔다. 처음부터 왕을 칭한 것은 아니며 건국 당시에는 공국이었다.
 
 
 
 
 
 
 
 
 
 
 
 

2. 역사[편집]

 
 
 
 
 
 
 
 
 
 
 
 
십자군 전쟁 당시에는 십자군 편을 들었지만, 동로마 제국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안티오크 공국과도 사이가 나쁜 탓에 안 그대로 룸 술탄국에게도 시달리던 와중에 기독교군과도 연이어 싸워야 했다. 유달리 동로마에게도 허구헌 날 털렸는데 공작 레본 1세는 동로마군에게 잡혀 3년 동안 갇혀있다가 죽었으며 동로마 측은 사로잡은 세자인 루벤을 두 눈을 멀게하고 절망 속에 죽게 했다. 그나마 둘째인 도로스가 탈출하여 도로스 2세로 즉위하여 동로마 제국군을 한번 물리치기도 했지만 곧 반격당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결국 1158년 동로마 황제 마누일 1세에게 항복하고 조공을 바치며 충성을 다짐하면서 동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도로스 2세가 죽고 나서 레본 2세는 십자군과의 관계 개선 및 서방 측과 우호 관계를 맺으며 동로마 정교회가톨릭 측에게 중립적으로 나서는 외교를 했다. 동로마의 반발에 이슬람군 견제를 내세워 명분화했고 아르메니아 공국에서 이름도 아르메니아 왕국으로 바꾼다. 이 시절에 그래도 안정적인 통치를 벌이기도 했지만 이후, 후계자 내분으로 또 동로마 및 기타 세력의 분열과 침공을 받아야 했다. 또한 국민의 다수는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 신자였지만, 왕실[1]은 가톨릭과 우호적이었고 1198년 레본 2세 (왕국 승인 후에는 레본 1세) 교황 승인 하의 대관식을 위해 가톨릭과의 일치를 선언하여 민심을 크게 잃기도 했다. 아들이 없던 레본 2세는 본래 조카 알리스가 안티오크 공국의 공자 레몽 (1199년 사망)과 결혼하여 낳은 종손 레몽 루벤을 후계자로 삼았으나 1216년 늦둥이 딸 자벨이 태어나자 변심하여 그녀로 대체하였다.

1219년 레본이 사망한 후 아르메니아 왕국은 선왕의 어린 딸 자벨과 장성한 종손이자 보에몽 4세의 조카 레몽 루벤 간에 분열되었고, 후자는 교황의 지지와 함께 타르수스를 장악하였다. 하지만 1220년 자벨의 섭정 램프론의 콘스탄티노스가 타르수스를 포위하였고, 이에 레몽 루벤은 동맹인 구호기사단에 도움을 청했으나 그들 역시 안티오크 공국에 맞서느라 여념이 없었다. 결국 3개월 간의 포위 끝에 도시는 항복하였고, 포로가 된 레몽 루벤은 얼마 후 옥사하였다. 1226년 콘스탄티노스는 아들 헤툼 1세와 자벨을 결혼시켰고, 이로써 루벤 왕가는 램프론 출신의 헤툼 왕가로 대체되었다. 헤툼 왕가는 약 800년 전에 멸망한 고대 아르메니아 최후의 왕가인 아르샤쿠니 가문의 아주 먼 후손을 자칭하였다.

13세기 중반 들어 셀주크를 뭉개던 몽골에게 협력하며 일단 몽골의 속국이지만 침략을 받지않고, 몽골군과 같이 손잡고 1260년 다마스쿠스를 뭉개기도 해다. 그러나 새로 일어난 맘루크 왕조에게 보복당해 거꾸로 1275년 수도인 타르수스가 함락되어 수만여 명이 학살당하거나 노예가 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아르메니아를 도우러 온 몽골, 즉 일 칸국군도 1281년 맘루크군에게 참패하면서 이제는 맘루크 왕조에게 굴복하여 속국이 된다. 칼라운에게 온갖 굴욕적인 요구를 당하며 이를 갈던 아르메니아는 1298년 다시 일 칸국군과 손잡고 맘루크군을 뭉개며 설욕했지만 또다시 맘루크군에게 제대로 공격받는다. 1303~04년까지 벌인 홈스 전투를 비롯한 시리아 전선에서 아르메니아-일 칸국 연합군은 참패했고 이후 맘루크의 속국이 되어 시달리다가 십자군을 다시 일으켜 연합하려고 했지만 사전에 들켜 왕이 폐위당하고 맘루크군에게 또 나라가 털리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국왕 레본 4세는 키프로스 왕국과 손잡으려고 했지만 키프로스 측의 강압적인 요구[2]에 백성들은 반발했고, 많은 백성을 억누르며 불만을 탄압하던 레본 4세는 결국 반대파에게 1341년 암살당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레본 4세의 사촌인 기 드 뤼지냥이 콘스탄틴 2세로 새롭게 즉위한다. 하지만 콘스탄틴 2세는 가톨릭 신자였기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가 대다수인 아르메니아 백성들과 충돌이 벌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어 같은 기독교끼리 내분에 시달리던 와중에 맘루크군의 대대적인 공격까지 이어지며 1375년 허무하게 멸망했고 마지막 왕인 레본 5세는 프랑스로 망명하여 1393년에 그곳에서 죽었다.
 
 
 
 
 
 
 
 
 
 
 
 

3. 역대 군주[편집]

 
 
 
 
 
 
 
 
 
 
 
 

4. 대중 매체에서 등장[편집]

 
 
 
 
 
 
 
 
 
 
 
 
  • 크루세이더 킹즈 2 시나리오 바닐라에서 중세 아르메니아 왕국과 킬리키아의 아르메니아 왕국이 구현되어 있다. 바그라투니와 루벤,헤툼 모두 구현되어 마지막 왕인 헤툼왕조의 마지막 왕 레본 4세까지 구현되어 있다.
 
 
 
 
 
 
 
 
 
 
 
 

5. 같이 보기[편집]

 
 
 
 
 
 
 
 
 
 
 
 

[1] 마지막 왕조인 뤼지냥 가문은 당연히 가톨릭이었고, 아르메니아계인 루벤과 파르티아계인 헤툼 가문 또한 대체적으로 친 가톨릭 정책을 폈다. 헤툼 2세는 퇴위 후 가톨릭프란치스코회 수도자가 되었을 정도.[2]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가 다수인 아르메니아 왕조에 국교로 동방 정교를 삼고 개종하라든지 조공을 바치라든지 굴욕적인 요구 사항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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