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메니아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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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전례를 따르며 교황수위권을 인정하는 동방 가톨릭 교회의 일파. 현재 신도수는 70만 명이라 주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15만여 명 정도.[1] 현재 총대주교좌는 레바논 베이루트에 있다.
십자군 전쟁 때 킬리키아에서 아르메니아 교회와 가톨릭간의 접촉이 있었고, 킬리키아 교회와 가톨릭을 서로 일치시키고도 해봤지만 얼마 안 가 흐지부지되었다. 동방 가톨릭 교회는 중세 당시에는 십자군 운동이 활발했던 중근동 일대에서 유행할 뻔 했으나 십자군 전쟁의 실패 이후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가 세워진 곳은 17세기 폴란드-리투아니아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에는 크림 반도 출신 아르메니아인들이 대거 정착한 바 있었고, 이들은 크림 반도-르비우-실레시아-드레스덴/뉘른베르크-암스테르담/브뤼셀을 오가는 육로 무역으로 번영하고 있었다. 이들의 근거지는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영토에 해당하는 르비우였다. 근세 브레스트 연합(1596년)과 우주호로드 연합(1646년) 전후한, 1630년부로 르비우 주교였던 폴란드인 미코와이 토로소비치가 주도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성당들은 일괄적으로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로 변경되었다.[2] 기존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에 소속된 아르메니아인들은 가톨릭으로 개종할 의사가 없었는데, 뜬금없이 교단이 바뀌니 여기에 항의했지만,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에서는 가톨릭이 교조화되던 상황이라 이들의 항의는 먹히지 않았다.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와 갈등도 있으나 아르메니아인들이 서유럽, 중유럽 진출을 수월하게 해주는 포석 역할도 수행했다. 아무리 같은 그리스도교라 하더라도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교리 차이로 가톨릭과 구별된 교파인데, 종교의 자유라는 권리는 근대에나 와서 확립된 개념이었고, 아르메니아인 상인들이 서유럽, 중유럽에 진출할 경우 유대인이 유럽에서 당했던 것과 비슷한 차별을 당할 위험이 상존했다.
몇 세대 지나지 않아 폴란드-리투아니아가 폴란드 분할로 멸망하고, 유럽 각국에서 철도가 건설되면서 크림 반도와 서유럽을 연결하던 아르메니아인들의 무역로는 경쟁력을 상실했다. 중부유럽 각지에 흩어져 있던 아르메니아인 공동체는 로마 가톨릭이나 개신교로 개종하면서 급속히 현지인과 동화되었다. 아르메니아 가톨릭은 20세기 중반까지 우크라이나 서부 갈리치아 일대 르비우와 루마니아 서부 트란실바니아 공국을 중심으로 근근히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에서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단이 자리를 잡은 지 100여 년 후, 1740년 가톨릭으로 개종한 한 아르메니아인 사제가 스스로 킬리키아의 총대주교라고 선언하였는데, 1742년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킬리키아 카톨리코스(총대주교)좌는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는 쪽과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분열되었다.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한 쪽은 바로 이 아르메니아 가톨릭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이로서 아르메니아 가톨릭은 공식적으로 동방 가톨릭 교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 오스만 제국 정부는 1829년부로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를 정식으로 인가하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에는 크림 반도 출신 아르메니아인들이 대거 정착한 바 있었고, 이들은 크림 반도-르비우-실레시아-드레스덴/뉘른베르크-암스테르담/브뤼셀을 오가는 육로 무역으로 번영하고 있었다. 이들의 근거지는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영토에 해당하는 르비우였다. 근세 브레스트 연합(1596년)과 우주호로드 연합(1646년) 전후한, 1630년부로 르비우 주교였던 폴란드인 미코와이 토로소비치가 주도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성당들은 일괄적으로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로 변경되었다.[2] 기존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에 소속된 아르메니아인들은 가톨릭으로 개종할 의사가 없었는데, 뜬금없이 교단이 바뀌니 여기에 항의했지만, 당시 폴란드-리투아니아에서는 가톨릭이 교조화되던 상황이라 이들의 항의는 먹히지 않았다.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는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와 갈등도 있으나 아르메니아인들이 서유럽, 중유럽 진출을 수월하게 해주는 포석 역할도 수행했다. 아무리 같은 그리스도교라 하더라도 아르메니아 사도교회는 교리 차이로 가톨릭과 구별된 교파인데, 종교의 자유라는 권리는 근대에나 와서 확립된 개념이었고, 아르메니아인 상인들이 서유럽, 중유럽에 진출할 경우 유대인이 유럽에서 당했던 것과 비슷한 차별을 당할 위험이 상존했다.
몇 세대 지나지 않아 폴란드-리투아니아가 폴란드 분할로 멸망하고, 유럽 각국에서 철도가 건설되면서 크림 반도와 서유럽을 연결하던 아르메니아인들의 무역로는 경쟁력을 상실했다. 중부유럽 각지에 흩어져 있던 아르메니아인 공동체는 로마 가톨릭이나 개신교로 개종하면서 급속히 현지인과 동화되었다. 아르메니아 가톨릭은 20세기 중반까지 우크라이나 서부 갈리치아 일대 르비우와 루마니아 서부 트란실바니아 공국을 중심으로 근근히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폴란드-리투아니아에서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단이 자리를 잡은 지 100여 년 후, 1740년 가톨릭으로 개종한 한 아르메니아인 사제가 스스로 킬리키아의 총대주교라고 선언하였는데, 1742년 교황 베네딕토 14세가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여 킬리키아 카톨리코스(총대주교)좌는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하는 쪽과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분열되었다.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한 쪽은 바로 이 아르메니아 가톨릭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이로서 아르메니아 가톨릭은 공식적으로 동방 가톨릭 교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았다. 오스만 제국 정부는 1829년부로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를 정식으로 인가하였다.
아르메니아 가톨릭 총대주교청(정식 명칭은 킬리키아의 아르메니아 가톨릭 총대주교청)은 레바논 베이루트에 있으며 직접 관할하는 레바논 내 신도는 1만 2500여 명 정도라고 한다. 아르메니아 본국의 신도 수도 이와 비슷한 규모. 이외에도 시리아의 알레포 및 다마스쿠스, 이라크의 바그다드, 튀르키예의 이스탄불,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이란 이스파한에도 성당과 교구가 있으나 규모는 더 작다. 르비우에 있던 아르메니아 가톨릭 성당은 규모는 작지 않으나 소련 시절 동방 가톨릭 탄압의 여파로 사실상 기능이 정지했다.[3]
오늘날 아르메니아 가톨릭 신도들은 레바논 내전으로 인해 대부분 북미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편이다.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이 밀집한 캘리포니아 LA 근교 글렌데일에 아르메니아 가톨릭 북미 교구가 있으며, 캐나다와 미국 내 아르메니아 가톨릭 신도 3만여 명을 총괄한다고 한다. 프랑스와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 신도 수는 해당국들이 가톨릭 국가인 영향으로 신도 비율이 약간 있는 편이라고 한다. 파리에 있는 교구에서 프랑스 내 신도 3만여 명,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교구에서 신도 1만 6천여 명을 관리 및 수용한다고 한다.
1911년 당시 아르메니아 가톨릭 인구는 13만 6400여 명으로 추산되었는데, 오늘날에도 신자 분포지역만 바뀌었을 뿐 신도수는 비슷하다고 한다.
2025년,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때 이슬람 개종을 거부하다 오스만 제국군에게 살해당한 순교자 성 이냐시오 말로얀(Իգնատիոս Մալոյան) 주교가 시성되었다.vaticannews
오늘날 아르메니아 가톨릭 신도들은 레바논 내전으로 인해 대부분 북미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거주하는 편이다.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이 밀집한 캘리포니아 LA 근교 글렌데일에 아르메니아 가톨릭 북미 교구가 있으며, 캐나다와 미국 내 아르메니아 가톨릭 신도 3만여 명을 총괄한다고 한다. 프랑스와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는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 신도 수는 해당국들이 가톨릭 국가인 영향으로 신도 비율이 약간 있는 편이라고 한다. 파리에 있는 교구에서 프랑스 내 신도 3만여 명,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교구에서 신도 1만 6천여 명을 관리 및 수용한다고 한다.
1911년 당시 아르메니아 가톨릭 인구는 13만 6400여 명으로 추산되었는데, 오늘날에도 신자 분포지역만 바뀌었을 뿐 신도수는 비슷하다고 한다.
2025년,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때 이슬람 개종을 거부하다 오스만 제국군에게 살해당한 순교자 성 이냐시오 말로얀(Իգնատիոս Մալոյան) 주교가 시성되었다.vatican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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