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나톨리 비쇼베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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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1946년 출생
-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
- 키이우 출신 인물
- 소련의 축구 선수
- 공격수
- 1963년 데뷔
- 1973년 은퇴
- FC 디나모 키이우/은퇴, 이적
- 원클럽맨/축구
- 소련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참가 선수
- 소련의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참가 선수
- UEFA 유로 1968 참가 선수
- 소련의 축구 감독
- 러시아의 축구 감독
- FC 디나모 모스크바/역대 감독
- 소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AEL 리마솔/역대 감독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외국인 감독(축구)
-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역대 감독
-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FC 샤흐타르 도네츠크/역대 감독
- CS 마리티무/역대 감독
- FC 톰 톰스크/역대 감독
-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역대 감독
- UEFA 유로 1992 참가 감독
- 올림픽 남자 축구 우승 감독
러시아의 축구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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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아나톨리 비쇼베츠 Anatoliy Byshovets | |
본명 | 아나톨리 표도로비치 비쇼베츠 Анатолий Фёдорович Бышовец[1] | |
출생 | ||
국적 | ||
신체 | 176cm | |
직업 | ||
소속 | 선수 | 디나모 키예프 (1963~1973) |
감독 | 소련 대표팀 유스 (1982~1985) 소련 올림픽 대표팀 (1986~1988) 디나모 모스크바 (1988~1990) 소련 / CIS 대표팀 (1990~1992) AEL 리마솔 (1992~1993) 대한민국 대표팀 (1994~1995) 대한민국 U-23 대표팀 (1995~1996)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1997~1998) 러시아 대표팀 (1998) FC 샤흐타르 도네츠크 (1998~1999) CS 마리티무 (2003) FC 톰 톰스크 (2005)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2006~2007) | |
기타 | ||
국가대표 | 39경기 15골 (소련 / 1966~1972) | |
소련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을 맡은 적이 있으며[2] 2006년부터 2007년까지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감독을 맡았다.
태어난 곳은 우크라이나지만 국적은 러시아다. 소련 축구 전성기의 상징적인 인물로서 FC 디나모 키이우에서 선수 생활 전부를 보냈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소련 대표팀을 이끌고 금메달을 따냈다.[3] 이때 그의 활약이 인상적이었던지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기술고문을 거쳐 한국 대표팀, 한국 U-23 대표팀 감독을 연달아 역임했다.
1996 애틀란타 올림픽 때는 대한민국 U-23 대표팀을 이끌고 2차전까지 48올림픽 이후로 1승을 기록하면서 1승 1무로 선전했으나 마지막 경기였던 이탈리아 U-23 대표팀에게 뼈아픈 1-2 패를 당하면서 대회 11위로 8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후 유럽으로 돌아가서 클럽과 러시아 대표팀 등을 맡았지만 크게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나마 성과라고 한다면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에서의 러시아 컵 우승 정도다. 로코모티프를 떠난 뒤로는 기술고문과 자문위원 등의 역할 정도만을 맡으며 지내다가 2011년 이후로는 그마저도 하지 않고 눈에 띄는 활동도 없다.
태어난 곳은 우크라이나지만 국적은 러시아다. 소련 축구 전성기의 상징적인 인물로서 FC 디나모 키이우에서 선수 생활 전부를 보냈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소련 대표팀을 이끌고 금메달을 따냈다.[3] 이때 그의 활약이 인상적이었던지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기술고문을 거쳐 한국 대표팀, 한국 U-23 대표팀 감독을 연달아 역임했다.
1996 애틀란타 올림픽 때는 대한민국 U-23 대표팀을 이끌고 2차전까지 48올림픽 이후로 1승을 기록하면서 1승 1무로 선전했으나 마지막 경기였던 이탈리아 U-23 대표팀에게 뼈아픈 1-2 패를 당하면서 대회 11위로 8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이후 유럽으로 돌아가서 클럽과 러시아 대표팀 등을 맡았지만 크게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나마 성과라고 한다면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에서의 러시아 컵 우승 정도다. 로코모티프를 떠난 뒤로는 기술고문과 자문위원 등의 역할 정도만을 맡으며 지내다가 2011년 이후로는 그마저도 하지 않고 눈에 띄는 활동도 없다.
FC 디나모 키이우의 유소년 구단을 거쳐 성인 구단에서 뛰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말까지 전설적인 이곳의 공격수인 올레흐 블로힌이 나오기 전까지 주전 공격수였다.
디나모 키이우는 1970~80년대에는 서유럽의 클럽 못지않은 커리어를 자랑했다. 1975년 UEFA 위너스컵[4]에서 우승함으로서 정점을 찍었다.[5]
이때 그는 팀의 핵심 공격수로 소련 챔피언십 4회 우승 (1966, 1967, 1968 3연패, 1971)과 소련컵 2회 우승(1964, 1966)을 차지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소련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나서 4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말까지 전설적인 이곳의 공격수인 올레흐 블로힌이 나오기 전까지 주전 공격수였다.
디나모 키이우는 1970~80년대에는 서유럽의 클럽 못지않은 커리어를 자랑했다. 1975년 UEFA 위너스컵[4]에서 우승함으로서 정점을 찍었다.[5]
이때 그는 팀의 핵심 공격수로 소련 챔피언십 4회 우승 (1966, 1967, 1968 3연패, 1971)과 소련컵 2회 우승(1964, 1966)을 차지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소련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로 나서 4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1973년 은퇴 후 디나모 키이우의 축구학교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1988 서울 올림픽에서는 소련 대표팀을 지도하여 호마리우가 이끈 브라질을 결승에서 연장전 끝에 2:1로 승리하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러시아 클럽과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하고 2006년 FC 로코모티프 모스크바의 감독을 역임했지만 출전을 대가로 선수에게 뇌물을 요구했다가 발각되어 불명예 퇴진을 당했다. 이후 쿠반 크라스노다르의 기술고문으로 일하기도 했으며 FC 우파의 기술고문으로 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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