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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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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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 추존 국왕 · 왕비 · 추존 왕비 · 왕세자 · 왕세자빈
후궁: 환조 ~ 연산군 · 중종 ~ 고종
왕자: 목조 ~ 연산군 · 중종 ~ 고종
왕녀: 익조 ~ 연산군 · 중종 ~ 철종
※ 정식 후궁 첩지가 있는 사람만 기재
조선 연산군의 후궁
숙용 장씨 | 淑容 張氏
출생
미상
사망
한성부 군기시 앞
재위기간
조선 숙원
조선 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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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흥덕 장씨(興德 張氏)
녹수(綠水)
부모
아버지 장한필(張漢弼)
어머니 장한필의 측실[1]
배우자
자녀
슬하 1녀
딸 - 이영수(李靈壽, 1502 ~ ?)
봉작
숙원(淑媛) → 숙용(淑容)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에서
3.1. 소설3.2. 드라마3.3. 영화3.4. 노래
4. 함께 보기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아버지는 문의현[2]령을 지낸 장한필(張漢弼)이고 어머니는 장한필의 첩이다. 동복언니의 이름은 장복수(張福壽)로 연산군에 의해 면천되기 전까지 내수사 여종이었다.[3] 그러므로 장녹수의 어머니는 천첩이며 일천즉천(一賤則賤)의 원칙에 따라서 장녹수도 천민의 신분이다.[4]

연산군일기》에서는 장녹수는 본래 제안대군의 가비(家婢)였다고 썼다. 처음에는 집이 매우 가난하여 몸을 팔아서 생활하고 혼인도 여러 번 하였다. 그러다가 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의 가노(家奴)의 아내가 되어서 아들 하나를 낳고 노래을 배워서 창기(娼妓)가 되었다. 따라서 유부녀에 연산군보다 연상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반적인 대중의 생각과 달리 외모는 평범하여 미인은 아니었다. 대신 엄청난 동안으로 30대에 16세 소녀로 보였으며 연산군이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비위를 잘 맞추는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연산군의 최측근이 된 비결은 용모가 아닌 그녀의 언행과 교태였다.[5] 연산에게 반말은 기본에 조롱, 심지어 아랫사람 부리듯 하대까지 하였으나 이도 장녹수가 연산의 기분을 알고 한 교태였으므로 연산은 화를 내기는커녕 그녀만 보면 눈 녹듯 화가 풀리며 늘 장녹수에게 맞춰주며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고 한다. 노래 실력이 출중해서 연산군이 궁중으로 불러 들였다고 한다. 야사에 따르면 연산군이 미복 차림으로 제안대군의 집에 들렸는데 장녹수가 노래를 선보이자 연산군은 장녹수의 노래를 듣고 반하여 궁중으로 불러들었다고 한다.
노래를 잘해서 입술을 움직이지 않아도 소리가 맑아서 들을 만하였으며, 나이는 30여 세였는데도 얼굴은 16세의 아이와 같았다.······얼굴은 보통을 넘지 못했으나, 남모르는 교사(巧詐)와 요사스러운 아양은 견줄 사람이 없었다.······왕을 조롱하기를 마치 어린아이같이 하였고, 왕에게 욕하기를 마치 노예처럼 하였다.

연산군일기》 연산군 8년 11월 25일

입궁한 장녹수는 애교와 말재주로 연산군의 환심을 사 후궁이 되어 1503년(연산군 9) 종4품 숙원(淑媛)으로 책봉되었고 1504년(연산군 10) 종3품 숙용(淑容)으로 품계가 올랐다. 1504년 3월 연산군은 무명 5백 필을 그녀의 집에 하사하는가 하면 그녀의 집이 여염집 사이에 있어 화재가 나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주변의 집을 헐어버리고 새로 지어주었다.

장녹수의 형부인 김효손(金孝孫)은 사정(司正)[6]에 제수되었다가 함경도 전향별감(傳香別監)[7]이 되어서 집안이 크게 부귀영화를 누렸다.

1504년, 동지중추부사 이병정이 자신의 노비에게 꾸지람을 한 일을 빌미삼아 그를 감옥에 보냈고, 이병정은 가산을 털어 장녹수에게 뇌물을 바친 후에야 풀려났다. 하지만 이후에도 이병정은 장녹수에게 몇 번이나 더 뇌물을 바쳐야 했다.

1506년 1월에는 내수사의 여종이었던 언니 장복수(張福壽)와 조카들을 면천해 양인(良人)의 신분으로 올렸다.

반정이 일어나기 10일 전 후원에서 잔치를 벌이던 중에 연산군이 초금을 불며 곡조를 두고는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은 것(人生如草露會合不多時)."이라며 읊기를 마치고 눈물을 흘렸는데 장녹수와 전비도 왕을 따라 눈물을 흘렀다고 한다. 이에 왕은 장녹수와 전비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지금 태평한 지 오래이니 어찌 불의의 변이 있겠느냐만은, 만일 변고가 있게 되면 너희는 필시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라고 위로하며 물건을 하사하였다. 즉, 연산군은 자신을 향한 원망의 목소리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반란이 일어나서 자신이 쫓겨나 폐위당할 가능성을 어느 정도는 예측하고 있었고, 전비와 장녹수도 연산군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미래를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1506년(중종 1) 결국 중종반정이 일어나 장녹수는 전비, 김귀비 등과 함께 군기시 앞[8]에서 참수형에 처해졌다. 이때 분노한 군중들이 그들의 성기에 기왓장과 돌멩이를 던지면서 "일국의 고혈이 여기에서 탕진됐다"고 외쳤다. 돌무더기가 산을 이뤘다는데 이후에 시신 처리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슬하에 이영수라는 1명[9]이 있었는데 왕위 계승권이 없는 딸이어서 폐세자 이고처럼 죽임을 당하지는 않았다. 《중종실록》에 따르면 1518년(중종 13)에도 살아있었고 집, 노비, 약간의 토지를 하사받았다.[10] 그리고 1529년(중종 24)에는 권한이 이영수에게 은밀히 장가간 일이 알려진 것을 보면 이때도 생존해 있던 것으로 보인다.[11]
 
 
 
 

3. 대중매체에서[편집]

 
 
 
 
버라이어티한 시대를 한층 드라마틱하게 만든 인물로 연산군을 다루는 사극에서는 대부분 등장할 뿐 아니라 주인공으로 직접 나온 적도 있다. 캐릭터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연산군의 정실 부인인 폐비 신씨조차 제치고 아내처럼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엄연히 고증오류로 볼 수 있는 부분으로, 연산군은 정실 부인인 신씨한테서 가장 많은 자식을 두었고, 후궁한테서는 그리 많은 자식을 두지 않았다. 연산군이 문란한 생활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연산군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변함없이 중전이었다. 재위 후반에 맛이 간 폭군이 되었음에도 신씨 앞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했으며, 죽기 직전에 중전이 보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12] 장녹수의 최후를 실록 그대로 그려낸 사극은 존재하지 않는다.[13]

영화 연산일기(김진아 배우 역) 및 간신(차지연 배우 역)에서는 중종반정 당일 대궐 처소에서 반정군에게 살해된다. 드라마 장녹수(박지영 배우 역) 및 왕과 비(이혜련 배우 역)에서는 반정군에게 체포된 후 도성 거리의 백성들에게 넘겨지고 돌에 맞아 사망한다.

미인은 아니고 평범한 용모였으나 동안이었다는 실록의 기록과 정반대로, 사극에서는 대부분 연산군 배우보다 성숙한 외모인 미녀 배우가 맡는다.[14]
 
 
 
 
 
 
 
 
  • <숨덕부>의 저자인 오버정우기가 정사와 야사와 작가의 상상력을 더해서 장녹수의 삶을 <녹수별곡>이라는 제목으로 그려냈다.
  • 슈타인호프대체역사소설 <명군이 되어보세!>에서는 연산군에 빙의한 현대인 주인공이 장녹수와 엮이면 안 좋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초대가수 형식으로 잔치 때 불러서 가무를 감상하기만 하지 궁에 들이거나 가까워지지는 않는다. 장녹수는 연산군을 유혹해 보려고는 하나 안되자 재위 9년차 쯤에는 거의 포기한다. 그래도 여기서는 주인공이 빙의한 덕에 연산군이 폭군이 아닌 명군 무종으로 생을 마쳤고 장녹수도 왕과 특별히 얽힌 점이 없었기 때문에 무종 사후에도 큰 기복없이 유명한 가수로 살다가 천수를 누리고 갔을 듯. 외모가 조선 전기 기준으로 평범한 거지 현대인인 주인공이 보기에는 딱 K-POP 걸그룹 센터 같은 미모였다고 묘사된다.
  • <대군으로 살어리랏다>에서는 주인공에 의해 연산군이 중전과 가까워지자 이를 시기해 염매를 시도하다 장씨 집안의 죄가 다 드러나면서 장복수와 장복수의 남편은 물론 관련자들이 처벌을 받는 건 동일하다. 원작에서는 죄를 인정하지 않고 발악하다 거열형에 처해지는 비참한 결말을 맞았는데 웹툰판에서는 일단 죄는 인정했으며 처형 방식도 참수형이었다가 집행 직전 폐서인 및 유배형으로 감형되어 일단 목숨은 건진다. 여기서는 장녹수가 연산군 어머니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 여자로 묘사된다.
 
 
 
 

3.2. 드라마[편집]

 
 
 
 
  • 1983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설중매)》에서는 배우 이미숙이 연기했다. 설중매 후반부 성종 치세 시기에 등장하여 실록의 내용에 비교적 충실하게 묘사되었다. 즉, 제안대군(정욱 배우 역)의 종(차윤회 배우 역)과 혼인하여 아들까지 두었다가 후일 무오사화 이후 시점에서 연산군의 눈에 들어 입궐하여 후궁 봉작을 받는다. 여담으로 정욱 배우와는 MBC '여인열전 황진이' 드라마에서 함께 출연했다(이미숙 : 황진이 역 / 정욱 : 황진이가 유일한 스승님이라고 존경한 학자 서경덕 역) 장녹수의 어머니(성우 김은영) 언니(서영애 배우), 형부 김효손(성우 김기현) 등도 등장한다.
    인수대비 소혜왕후(고두심 배우), 정현왕후(최명길 배우) 등은 모두 장녹수의 출신이 불분명하다며 꺼리고 의심한다. 장녹수가 술을 마시고 취한 상태에서 인수대비, 정현왕후 앞에 들기도 한다. 설중매 드라마는 딱 1504년 인수대비 승하로 막을 내리고, 바로 후속작인 풍란 2회에서 등장한 중종 반정에서 장녹수는 최후를 맞는다. 반정의 밤 류자광(변희봉 배우 역)이 군관 융복을 입고 장녹수의 처소에 들이닥친다. 녹수는 류자광에게 살려 줄 것을 부탁하며, 자기 하나 못 본 척 빼 줄 수 있지 않냐고 묻는다. 하지만 이미 반정의 선봉이 된 류자광으로서도 별 도리가 없었고 장녹수는 군사들에게 끌려나가 바로 살해된다. 장녹수의 가족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풍란 7회에서 마침내 유배가 있던 연산군(임영규 배우 역)도 역질로 세상을 떠난다.
  • 1995년 KBS 드라마 《장녹수》에서는 배우 박지영이 연기했다. 아역은 김민정이 연기했다. 드라마 제목 그대로 장녹수의 출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이 다루어진다. 아버지 장한필(박웅 배우 역)은 양반이지만 어머니는 천민 여종으로, 어머니는 장한필의 정부인 마님에게 구박, 박해를 받아 세상을 떠난다. 녹수는 어린 시절 남사당패에 들어 유랑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다.
    실록에서의 묘사에 충실하게 연산군(유동근 배우 역)과 파탈하고 이런저런 말장난까지 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이다. 연산군 비 거창 신씨(최선아 배우 역)는 왕실의 혈통까지 섞인 명문 가문(세종 임금의 아들 임영대군의 사위가 신승선. 신승선의 자녀들이 신수근, 신수겸, 신수영, 연산군 비 등) 출신으로 우아하고 빈틈없으며 어느 정도의 귀족 의식이 있는 여인상으로 장녹수와는 정반대 성격이다.
    중종반정 이후 연산군과 함께 억류되어 있다가, 류자광(백인철 배우 역)의 건의에 따라 마치 굶주린 맹수떼에 먹이를 던져주듯이, 백성들에게 넘겨지고 백성들이 덤벼들어 때리고 돌을 던져 마침내 세상을 떠난다. 세상을 떠나는 과정은 칼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 1998년 KBS 드라마 《왕과 비》에서는 가수 유니[15]가 연기했다. 무오사화 이후 갑자사화 이전 시점에서, 젊은 군주 연산군(안재모 배우)이 제안대군(박찬환 배우)의 집에 갔다가 장녹수와 연을 맺게 된다. 연산군을 대할 때 첫 만남에서부터 당돌하고 당찬 이미지를 보인다. 반정 얼마 전 연산군은 장녹수 및 여러 후궁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앞날을 예감하는 듯한 시를 짓고.... 반정 당일 장녹수는 반정군에게 체포되어 곧바로 도성 거리로 끌려나가고 백성들에게 돌을 맞아 세상을 떠난다.
  • 2007년 SBS 드라마 《왕과 나》에서는 배우 오수민이 연기했다. 인수대비(전인화 배우)는 노골적으로 장녹수를 경멸한다. 장녹수는 간신 김자원과 합세하여 자신이 연산군(정태우 배우)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꼭 아들을 낳아 대통을 잇게 할 것이라는 야망도 품는다. 반정 당일 밤에도 평상시처럼 처소에서 희희낙낙하다가 들이닥친 반정군의 칼에 얼굴을 맞아 즉사한다.
  • 2017년 MBC 드라마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에서는 배우 이하늬가 연기했다. 배우 본인의 장기를 살려서 국악 솜씨를 잘 보여주었던 덕분에[16] 실제 장녹수에 관하여 기록된 모습들이 극 중에서 구현되었으며 백성들의 돌에 맞아 죽는 것으로 나온다.
  • 2025년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에서는 배우 강한나가 연기했다. 정확히는 웹소설 연산군의 셰프로 살아남기를 드라마화하며 원작 소설에서 나온 장녹수 캐릭터를 강목주라는 가상의 인물로 각색했다. 본작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시도와 함께 원한을 산 이에게 최후를 맞이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 2026년 KBS 2TV 드라마《은애하는 도적님아》에서 배우 송지우가 장녹수를 모티브로 한 가상의 인물 금녹을 연기했다. 장녹수가 연산군보다 실제 4~10살가량 연상이었던 것과 달리 송지우는 본작에서 연산군을 모티브로 한 가상의 인물 이규를 연기한 배우 하석진보다 무려 15살 연하였다.
 
 
 
 
 
 
 
 
  • 1962년 개봉한 영화 《폭군 연산》에서도 배우 도금봉이 연기했다. 실제 역사와 다르게 연산군(신영균 배우)에 의해 목이 졸려 사망한다.
  • 1972년 개봉한 영화 《사모곡》에서는 배우 윤정희가 연기했다. 너무 순해 보인다는 평을 들었다.
  • 1987년 개봉한 영화 《연산군》에서는 배우 강수연이 연기했다. 세자 시절 생모 제헌왕후 윤씨의 무덤을 몰래 성묘한 연산군(이대근 배우)을 구해주는 것으로 각색된다. 연산군 즉위 후 무오사화 이전 시점에 연산군과 인연을 맺는다. 어머니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임금으로서 힘을 키워야 한다고 충고하고 현재 훈구 세력과 사림이 팽팽하게 대립 중이니 어느 한 쪽 편에 들어 균형을 깨라고 권한다. 즉 감정에 치우치지 마시고 훈구 세력 편에 서라고 이야기한다. 연산군의 외조모 고령 신씨(정애란 배우)와 연산군이 만나도록 주선하고[17] 광기의 극에 달해 정, 엄 두 후궁을 직접 타살하고 할머니 인수대비(정혜선 배우)에게도 당당하게 맞서는 연산군을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이 영화에서는 중종반정이 나오지 않고 임금 연산군이 어머니 제헌왕후의 능을 찾아가 성묘하고 피묻은 금삼을 불에 태우는 것으로 끝난다. 실제 역사에서는 장녹수가 연산군보다 몇 살 연상이지만, 연산군 역 이대근 배우가 장녹수 강수연 배우의 아버지 뻘 나이이다.
  • 1988년 개봉한 영화 《연산일기》에서는 김진규(영화 연산군 시리즈에서 박원종 역, 영화 난중일기에서 충무공 역 등 다수 영화 출연) 배우의 따님인 배우 김진아가 연기했다. 매우 고혹적인 미인으로 등장하며 연산군(류인촌 배우)과 사랑을 나눈다. 중종 반정 당일 처소에서 반정군들의 창에 찔러 눈을 뜬 채로 세상을 떠난다.
  • 2005년 개봉한 영화 《왕의 남자》에서는 배우 강성연이 연기했다. 기자 간담회에서 이준익 감독이 "연산군을 홀린 여자이니 요염하게 등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 중간중간마다 요부같은 연기를 잘했다는 호평이 있었다.
  • 2015년 개봉한 영화 《간신》에서는 배우 차지연이 연기했다. 극 중 창소리를 곁들인 나레이션도 이 사람. 영화 자체는 흥하지 못했지만 차지연의 연륜 있는 연기는 호평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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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함께 보기[편집]

 
 
 
 
[1] 천민 출신.[2]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3] 연산군일기 61권, 연산 12년 1월 14일 갑오 5번째기사. # [4] 부모 중 한쪽이 천민이면 그 자식 역시 천민이 된다.[5] 이에 대해 연산군에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어머니에 대한 애정 갈구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 장녹수와 연산군을 다룬 작품에서는 장녹수가 연산군을 어린아이를 대하듯 달래주거나 연산군이 장녹수에게 어머니처럼 애정을 갈구하는 모습이 많이 나온다.[6] 5위(衛)에 속한 정7품 무관직.[7] 조선 시대에는 중요한 국가 의식과 제사를 거행할 때는 향을 피웠다. 그러나 왕이 지방까지 직접 가서 축문을 읽고 향을 피울 수 없었으므로 대신 제사를 맡는 관리에게 축문과 향을 전달할 역할이 필요했다. 조선 전기에는 주로 환관이 맡았고 성종 시기부터 주로 충찬위(忠贊尉)와 충의위(忠義衛)가 맡았다.[8] 지금의 서울특별시청 광장이 있는 지점.[9] 미디어에서는 장녹수가 연산군의 총애를 독점한 것처럼 비춰지지만 연산군이 정실인 폐비 신씨에게서 요절한 자식까지 포함해 총 7명의 자식을 낳았던 것과 대조된다.[10] 영수·함금에게 노비 15구와 가사 1좌 전지 15결을 하사하라고 명하다 -《중종실록》 31권, 중종 13년(1518년 명 정덕(正德) 13년) 1월 17일[11] (전략) "권한은 서자(庶子)로서 분수를 모르고 장 숙원(張淑媛)의 딸 【폐주(廢主)의 숙원 녹주(綠珠)가 폐주에게 굄을 받아 낳은 딸이다.】 에게 은밀히 장가들었으니 지극히 놀라운 일로, 본사(本司)가 추문하다가 형장 추문하기를 청하였습니다. (후략)- 《중종 24년(1529년) 6월 1일 갑자 2번째기사》[12] 애초에 임금인 연산군의 마음을 철저히 꿰뚫어 보고 반말이나 하대를 하는 등의 위험천만한 교태를 능수능란하게 할 정도로 남자를 잘 아는 장녹수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몰랐을 리가 없다.[13] 실제로는 정식 절차를 밟아 사형이 집행되고 시체가 거리에 전시된 이후에야 백성들이 몰려들어 돌을 던졌는데 살아있는 상태에서 돌맞아 죽는 것으로 묘사되거나 반정군이 그 자리에서 척살해버리는 식으로 처리되는 게 대부분이다.[14] 영화 <연산군>에서는 연산군 역의 배우가 장녹수 역의 배우보다 20세 이상 연상이었지만 드라마 <왕과 나>처럼 장녹수 역의 배우가 연산군 역 배우보다 연상인 경우도 있었다.[15] 당시에는 아역배우였으며, 개명 전 본명인 '이혜련'으로 활동했다.[16] 실제로 이하늬는 가야금을 전공했다. 그간 가야금을 배웠는데 장녹수 배역을 위해 장구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17] 특이하게도 이 영화에서는 류자광, 임사홍이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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