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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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特別市廳 / Seoul City Hall /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 ソウル特別市役所 / 首尔市政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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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건물은 2012년 1926년에 지어진[1] 구청사(당시 경성부청, 현 서울도서관)이고 뒤의 복합기건물이 2012년 8월 27일 완공된 신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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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플라자에서 바라본 서울특별시청과 세종대로.

1. 개요2. 본관
2.1. 시계2.2. 본관 철거, 그리고 부활(?)
3. 신관
3.1. 다섯 번의 설계3.2. 외관 공개
4. 서소문 청사5. 기타 청사6. 그 외

1. 개요[편집]

서울특별시의 행정을 총괄하는 기관이자 그 기관이 입주한 건물. 줄여서 서울시청이라고도 한다. 바로 맞은편에 서울특별시청을 견제하는 서울특별시의회[2]가 있다. 한국에서 시청 앞 광장을 말하면 보통 이곳 앞에 있는 서울광장을 가리킨다.

흔히 서울시청하면 서울광장 앞에 있는 일제 때부터 있던 본관 그리고 이후 지어진 신관만을 생각하는데 인구 천만의 거대도시 서울특별시의 조직을 신관만으로 수용 가능할 리는 당연히 없고, 덕수궁 돌담길 바로 옆에 서소문 청사[3], 무교동 청사[4], 남산 청사[5], 청계 청사[6] 등이 따로 있다. 참고로 을지로 별관[7]은 그래뱅 뮤지엄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 중 서소문 청사의 규모가 상당하여서 서울 시청 복원 및 신청사 건설 기간 동안에는 시장실 등의 기관이 입주하여 본관 역할을 하였다. 처음에 시청을 새로 짓는 떡밥 중에 하나가 분산된 청사로 인해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고 시청을 찾는 민원인 불편도 불편해질 것이라는 이유가 있었지만 현재의 부지에 걸린 각종 제한요소들 때문에 높고 넓은 빌딩 설계해 갈 때마다 문화재청 등에서 딱지 먹어서 점점 높이를 줄이고, 시민들을 위한 공간을 추가한다며 이런 저런 시설을 넣고, 구 청사는 전체를 도서관으로 활용하다 보니 현재의 청사와 같은 설계가 나왔고, 통합청사 떡밥은 철저히 묻혔다. 결국 신청사에 입주할 수 있는 직원들은 30% 정도였고, 시장실과 업무상의 밀접한 관련을 갖는 부서들만 들어가고 나머지 대부분의 기관들은 서소문 청사 및 인근 민간빌딩에 위치하게 되었다. 따라서 민원인의 입장에서 서울시청에 방문하게 된다면 해당 부서의 위치를 먼저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원래 초기 계획대로 녹사평역 인근의 현 용산구청 부지로 이전할 때에는 완전한 통합청사 계획이었다. 현재 있는 별관들을 전부 팔아서 건축비를 회수한다는 계획이었다. 높이는 남산 고도제한이 걸리는 최대 한계인 180m까지 세우고, 건폐율을 높게 잡아 건물을 높게 한다는 계획이었으나.. 결국 무산되고 만다.

2. 본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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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청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조선 한성부 청사는 지역별로 서부, 동부, 남부, 북부, 중부 청사로 나뉘어져 있었으며 이중 중부 청사는 세종로의 미국 대사관 인근에 있었다. 이후 고종 대에 경희궁 인근으로 이전하였다가 여러 장소를 전전하였고 일제강점기를 맞아 경성부청으로 바뀌었다.

경술국치 직후엔 현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과 한국SC은행 제일지점을 합친 부지에 있던 일본영사관 건물에 경성부청이 입주했었다. 이후 현 서울시청 본관 부지에 있던 매일신보 건물을 허물고 그 자리에 경성부청을 지은 것. 일단 건축 설계 총책임은 일본인 3명으로 이와이(경성부 간부), 사사, 이와츠키로 되어있는데 조선인 장연채도 참여했다고 되어있다.

일단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만큼 근대문화유산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건축미학적 면에서 따지면 딱히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인정되지 않는다. 식민지 시스템의 일부였다는 점에서는 조선총독부와 유사한 사례. 다만 평가절하되는 원인 중 하나가 보통 "위압감"인데, 이와츠키가 한 "관청건물이 추구하는 위엄성을 배제하여"란 말로 볼 때 일본인 건축가들은 의외로 건물이 주는 위압감을 낮춰보려고 했던 모양이다. #[8]

또한 시청에 가야 하는데로 대표되는 민주화의 성지라는 상징성이 더해지면서 서울시청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랜드마크로 인정되게 되었다.

2.1. 시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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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올림픽 즈음의 모습. 대형 전광판 시계가 설치되어 있다. 디데이 남은 일자를 볼 때 촬영 일자는 1988년 9월 7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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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가 나름 유명하다. 1975년에 처음 디지털 시계로 설치되었고, 1999년 유사한 디지털 시계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몇 년 안 지난 2003년, 시청 건축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날로그 시계로 교체되었다. 이 2003년의 시계에는 이름이 붙었는데 옛날 보신각종에 있던 이름인 "바라"이고, 대한상공회의소스와치의 기부를 받아 설치되었으며 GPS 신호를 받아 정밀하게 시간을 맞춘다.

그러나 시계는 또 몇 년 후 본관이 철거되면서 떼어지게 된다. 그래도 본관을부수기 리모델링하기 위해 세운 가리개 조형물에 시계가 있어서 모양새는 갖추었다.

새 시청이 지어지는 사이에 서울특별시장이 박원순으로 바뀌었고, 또 시계는 바뀌었다 (...) 어쩔 수가 없었던 게, 이명박이 설치한 스와치 시계를 어딘가 보관은 하고 있었으나 수리가 어려울 정도로 고장나서 새 시계를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중소기업 활성화 차원에서 국내기업 로만손이 만든 시계로 바꿨다고.#

2.2. 본관 철거, 그리고 부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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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을 거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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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 호텔?
망했어요 쓰나미 피해

그야말로 파사드만 남겨두고 새 건물을 짓고 있다. 이제 근대 건축이 아니라 현대 건축이다 (...)

이 철거 과정은 오세훈 시장이 두고두고 까이는 이유 중 하나로,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시청 본관은 2003년에 등록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를 무시하고 조선총독부처럼 아주 없애버리려고 했다.[9] 물론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건물 역시 1920년대에 지어진 대법원 건물을 입면만 살려서 다시 짓는 식으로 복원하는 등 이런 식으로 문화재 복원한 전례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만, 까는 사람들은 이런 것도 파사디즘이라고 까는 현실이라 논란이 될 법한 방식임은 여전하다.

그리고 기습 철거를 시도했는데[10],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문화재청의 반대로 그나마 다시 짓겠다고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시청의 뒷부분을 지하로 수직이전 시켰고 정문을 아예 뚫어버려서 시청이 아닌 신청사 출입문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옛날의 그 건축과는 동떨어져 버렸다.

시 측에서 내놓은 이유로는 건물의 안전 문제가 있었다. 일단 건물을 복원 혹은 리모델링하는 방법 중에는 철거 후 재사용 가능한 자재들을 이용하여 다시 짓는 해체 복원도 존재하긴 하다. (심슨 기념관이라든지..) 그런데 이 건물은 해체복원이 필요할 정도로 원형 훼손이 심한 건물은 아니었고, 시청 본관은 1996년에 이미 안전하다고 판정되었고 그 후 잘 관리되어 왔다.

보통은 시청을 부순 오세훈 시정(市政)과 뒷북이나 친 문화재청을 까는 경우가 많고 물론 이들에게 쉴드를 칠 필요는 전혀 없으나, 깔 존재가 하나 더 있다. 신관을 설계한 건축가 유걸. 이 사람은 본관을 부수고 신관의 일부로 만드는 전제하에 신관을 설계했고, 본관은 부수는 편이 낫다고 혹평했다. 그런데 이 분은 막상 조선총독부 건물은 아름답고 가치가 있으니 헐지 말자고 했었다... 언급 자체는 개인의 예술관이니 상관할 부분이 아니지만 시청은 이 사람이 내놓은 건축을 좋다고 선정했다.

몇 년 뒤, 신청사 (신관) 완공 후 공개된 모습은 일단 태평홀이 지하로 이전 (...) 된 걸 빼면 시장실 등등이 보존되어있어 너무 좌절할만한 수준은 아닌 모양이다. 자세한건 2012년 10월 26일에 일반 공개가 되어야 알겠지만... 덧붙여, 태평홀이 수직 이전 된 것에 나름 변명을 하자면 신청사와 본관 사이가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어서,보존하려면 할 수 없이 택해야 했던 것 같다.

옛 시청 상당수 공간에 서울 도서관이 입주하였고, 현재 옛 시청은 이 서울 도서관 현판을 달고 있다.

3. 신관[편집]

3.1. 다섯 번의 설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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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 백화점 사옥 호텔 (...)
보다시피 다섯 번이나 설계를 해서 만든 건물이다. 그것도 다 유리궁전으로(...)
결론은 유리궁전

문화재법상 덕수궁의 경관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어려운 조건이 붙었다.

문화재 근처의 고층건물은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허가를 얻으려면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삼우 건축 설계의 다섯 개 안이 모두 덕수궁의 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으며 서울시에서는 이에 따라 명망 있는 건축가들의 디자인 설계를 공모해서 컨센서스를 이끌어내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공모에서 선정된 것이 건축가 유걸의 작품.

1과 2는 같은 설계자가 했다. 참고로 두 설계 모두 런던 시청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위치도 위치고 건물의 상징성도 있어서 둥글둥글 항아리나 저고리 모양 등에서 가져온 곡선을 써봤으나 거대한 건물이 주는 위압감이 덕수궁의 경관을 해친다고 해서 딱지를 먹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태극 모양을 가져왔으나 이번에도 같은 이유로 딱지. 그리하여 3번째가 나왔는데 거대한 매스가 주는 위압감을 줄여보기 위해 매스를 분절시켜 보았으나 대중들의 반응은 po성냥갑wer 크리 (...) 문화재청에서 디자인 자체는 그럭저럭 승인하였으나(?) 문화재 앙각 규정 등으로 높이나 형태 등에 일부 수정을 요구하였고 이렇게 4번째 안이 나왔으나 이번에는 너무 단순 무식해서 서울 시청의 위치나 역사적인 면에서 상징성이 부족하여 서울시쪽에서 딱지(...).

결국에는 높이가 대폭 낮춰지고 한옥의 처마선을 딴 형태가 나오게 되었다. 문화재청에서 항아리나 태극은 덕수궁의 경관을 해친다면서 처마선은 괜찮아 보였는지 이번에는 통과... 이 문제에 대해서 유리궁전 양식 그 자체가 문제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일단 서울시 청사의 경우 대지에 걸린 제약 자체가 엄청난 난제였다. 모든 설계안이 전체적으로 동고서저의 형태를 띄는데 이는 덕수궁 담장에서 27의 각도로 올려다 볼 때 이 높이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문화재 앙각 규정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건축적으로 보았을 때는 그냥 시청 이전이 더 간단한 해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때부터 전체적인 연면적이 축소 되고 시민들을 위한 각종 시설들이 들어오면서 통합청사 떡밥은 거의 묻히게 되었다.

3.2. 외관 공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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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에 가림막이 완전히 철거되면서 외관이 완전히 공개되었다. 그런데 막상 외관이 드러나자 구청사와의 언밸런스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일단 외벽이 유리로 된 것부터가 구시대적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특별한 유리를 사용해서 에너지 효율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게다가 너무 튀는 외관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인근의 건축물들과 조화를 생각해야 되는데 지나치게 화려한 디자인으로 마치 나만 잘났다는듯이 서있는 건물은 좀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현재의 건축 트렌드의 반영이라는 옹호도 있다.

그 위압적인 광경은 보통 파도, 쓰나미를 연상시킨다며 까인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서울시 청사가 쓰나미를 닮아 일본식 건축물인 구 청사를 덮치는 형세다.' 라고 하여 논란이 되었다고 한다.. 한옥 처마를 재해석해 디자인해서 그렇게 생긴 건데, 건축가는 이 까는 소리를 듣고 파워풀하다며 좋게 받아들였다고.. # 유리궁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모양 자체는 정말 취향 문제니 그렇다 치자.

서울시 내부에서는 디자인만 화려하고 정작 실용적이지는 않은것 같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유리궁전 골조 때문에 시장실조차도 광장 조망이 영 좋지 않으니 호불호를 뛰어넘어 자타공인 시망 건물이 될 것 같다.#박원순 현 시장도 내부 마감재 공사기간에 신청사를 둘러보고 3000억이나 들인 건물이 이렇게 비실용적인가라고 한탄했다 (...)는 보도도 있었다. 조망 부문의 경우 일반인들도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시청사 8~9층에 '하늘광장'이란 이름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공간이 있는데 건물 골조 때문에 조망이 매우 힘들다.

또한 건축 과정을 턴키 방식[11]으로 했다는 것도 문제다.# 이는 건설회사가 건물 지어지는 모든 것을 다 해먹기 때문에 건축주한테는 편해도 건축가의 디자인이 제대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방식이다. 실제로 서울 신청사도 건축가 유걸은 좀더 나은 디자인을 원했는데 턴키의 문제 때문에 건물이 절반쯤 지어진 다음에야 자기 의견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다만 유걸 본인이 “결과만 놓고 말하면 신청사 외관은 내가 상상한 이미지가 거의 그대로 구현된 결과물”이라고까지 말한 것을 보면 턴키의 문제 자체는 인정하지만 딱히 자기 생각을 많이 벗어났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 #

그리고 한국 건축계에선 건축가들의 영향력이 축소되기 때문에 턴키 방식을 과도하게 까는 경향이 있는데 턴키방식은 설계/시공/감리가 일치단결해서 건축자재를 땡겨먹는[12] 등 비리가 하도 많아서 건축과정을 쪼갠 것이다[13]. 일종의 삼권분립으로 그렇게 욕을 먹을 방식은 아니다. 게다가 한국 건축계에선 턴키방식으로 지어져 유걸 건축가의 의도가 반영되지 않았으니 건물 디자인이 괴상한 것은 건축가 탓이 아니라 시공사 탓이라고 자기 식구 감싸기 겸 남탓을 하는데 시공전의 설계도나 건축가가 만든 모형을 보면 건축된 결과물과 똑같다.

그러나 최근에는 국내 공공발주에서 턴키방식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 일단 사업 추진과정에서 온갖 비리와 입찰담합이 발생하기 쉬운데다 일단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설계자들의 의사 반영 여지가 없듯 마찬가지로 발주관청에서 프로젝트에 관여할 여지가 없어지기 때문에 일례로 서울시가 고척돔의 여러문제를 알면서도 개선하지 못했던 것처럼 프로젝트 중간에 설계단계에서 생각치못한 문제점이 발견되어 설계변경이 긴급히 필요해지더라도 발주처는 사실상 아무런 조치가 불가능하다. 애당초 턴키 방식에서는 최초의 설계를 기준으로 전체 프로젝트에 대해 입찰한 것이기 때문에 발주처가 입찰당시와 다른 것을 요구하면 여러가지 계약상의 문제와 입찰에 참여한 타 업체와의 형평성 문제등 골치아픈 문제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기때문에 발주 관청의 입장에서는 계속 진행시키자니 막대한 혈세를 낭비하게되고 그렇다고 프로젝트 중간에 개입하자니 계약문제 등 여러 법적문제라는 진퇴양난이 되기쉬운 것이다. 따라서 윗 문단에서 국내외의 턴키방식에 대한 비판이 과도하다는 반론은 현재의 추세를 감안할때 그다지 적절하진 않다.

광복 이후 경성부가 서울특별시로 바뀐 직후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현판이 사라지고 그 위에는 '서울도서관' 이라 쓰인 현판이 등장했다. 옛 현판은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에 소장 중.

매끈한 곡선 스타일의 건물 구조상 겨울철에 위험하다고 한다. 물이나 얼음이 흘러내릴 길이나 완충되는 턱이 없어서 그대로 흘러내리다보니 얼음이 얼었다가 살짝 녹으면 얼음폭탄같이 떨어진다고.## 결국 완공이후 첫 겨울부터 눈 한번 오자 바로 시청 뒷길이 통제되었다. 문제는 이 길이 단순 뒷길이 아니라 서울광장 조성을 위해 교통체계를 바꾼 이후로는 남산 3호 터널 방면에서 세종대로 쪽으로 빠지는 주 통로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문제 때문에 건물 외벽에 열신을 추가해서 얼음이 얼지 않게 하려는 계획이 있지만 잘 되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이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말에 따르면 원래 디자인 과정에서는 그러한 계획이 있었는데 실시설계 단계부터 턴키 방식으로 인해 모든 권한이 넘어가버려서 자신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게 된 이후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고 한다.

2013년 동아일보와 건축전문잡지 SPACE가 건축가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해방이후 최악의 건물들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 건축가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일제도 공을 들인 서울의 심장부에 우리 스스로가 가장 큰 실수를 했다" (...) "주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외계에서 온 건물 같다" (...) 그리고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들어서자 둘이 서로 악평을 비교당하는 신세가 됐다. [14][15] 굳이 변명을 하자면 프로젝트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결과를 내길 강요한 측면이 크다. 당장 구청사, 서울광장, 덕수궁이라는 세 가지 기존 건축과 어울리는 건물을 설계하는 것도 어렵지만, 시청 업무공간과 공공시설물을 위해 최대한 넓은 연면적을 확보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대문 안 고도제한 98m 규정과 문화재 앙각규정 등의 규제를 준수해야 하는 등. 위에서 언급했지만 사실 건축적으로만 따지면 시청을 옮기는 것이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정치적으로 답이 안 나와서 그렇지...

하지만 서울 건축의 맥락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일 된 의견이 없어서 문제라는 주장도 있다. 새로 건물이 올라갈 때마다 서울의 맥락에 맞지 않는다고 하지만 도대체 서울 건축의 맥락이 무엇인지 제시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따라갈 맥락이 없으니 새로 올리는 건축물이 중구난방인건 어쩔 수 없는 결과인 것이다. 그리고 서울시청을 한국 최악의 건축물로 선정한 건축전문잡지 SPACE와 잡지의 전신인 건축사무소 공간의 아버지인 김수근부터가 건축물 외견에 전혀 한옥 양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김수근이 설계한 공간사무소만 보아도 크기만 작을 뿐 딱히 한옥처럼 생기진 않았다. 건축물 자체가 벽돌+한옥+유리궁궐 건축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벽돌 성냥갑+한옥+유리성냥갑이다. 근대건축+한옥+유리궁전이라는 본질만 놓고보면 서울 시청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서울 시청과 광장은 덕수궁+서울시청(근대건축)+신청사(유리궁전)으로 이루어지는데 어떻게 보면 공간 사옥, 지금의 아라리오 갤러리의 건축적 맥을 제대로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신청사 혼자서 튀는 건축을 올린게 하니라 한국 건축의 맥이 원래부터 여러 양식이 혼성되는 맥을 형성해 왔던 것이다.

서울시청 신청사는 한국 건축계가 주도했던 건축 담론의 흐름과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 당선 이전 한국 건축계에선 서울의 건축물들이 너무 성냥갑스럽고 천편일률이라고 비난하고 있었고 이에 청계천 복원과 재건축 등 새로운 흐름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런 흐름을 본 이명박은 청계천 복원을 주장하며 시장에 출마했고 승효상 등 한국 건축가들이 이명박을 밀어줘서 시장에 당선시키기는데 영향을 발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건축가들은 서울중앙우체국이나 용산구청 등에서 썩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성냥갑에서 벗어난 비정형 건축의 정점은 한국 건축가의 손이 아니라 외국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의 손에 의해서 DDP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외국 건축가가 아닌 한국 건축가가 설계한 서울시청 신청사는 한국 건축가의 손에 의해서 설계되었고 덕수궁과의 조화를 분명히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경관과 썩 어울리지도 않고 DDP처럼 비정형 건축의 극치를 보여주지도 못한 어정쩡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와서 한국 건축가들은 사실 서울에 맞는 건축은 성냥갑 형태라고 얘기하고 자신들이 설계를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외국 건축가에게 설계를 맡기거나 턴키 방식으로 시공사가 잘못해서 서울 경관을 망쳤다며 남탓을 하고 있다.

여름에는 이 건물의 유리골조로 인해 여름에 찜통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나름 이 문제를 막기 위해서 적은 에너지로도 효율적인 냉난방이 되도록 신경써서 공조설계를 하였고 더더욱 친환경적인 건물이 될 것이라고 하였으나, 2013년 전력대란으로 인하여 나온 절전 정책은 관공서의 모든 냉방 및 공조장치를 아예 끄도록 하였고, 에어컨을 껐더니 순식간에 내부 온도가 35도 이상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결국 엄청난 폭염의 찜질방내지는 거대한 비닐하우스(...)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4. 서소문 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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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 인근 덕수궁길 15(중구 서소문동 37번지)에 위치해 있다. 본래 대한제국탁지부 청사와 일제 시대의 중추원 건물이 있었던 곳으로 1975년에 대검찰청 청사로 준공되었으며, 검찰이 서초구 서초동 법조타운에 1989년 크고 아름다운 청사를 신축하여 이사를 가면서 서울특별시청에서 사용하고 있다. 2008년 서울시청 본청 공사 기간에는 시장실을 비롯한 본청 주요 부서가 이곳으로 이전됐다가 2012년 본청 공사가 끝나면서 다시 본청으로 사무실을 옮긴 역사가 있다. 서소문별관 안에는 정동전망대와 서울시립미술관이 있으며, 시립미술관 및 서소문 청사 2동과 5동 사이에 서울시청CNG충전소가 있다.

서소문별관의 가스 충전소에는 서울특별시 내 몇몇 지역 마을버스[16]들이 주로 충전하러 들어온다. 2015년 여름까지만 하더라도 502번 시내버스도 충전을 위해 잠시 들어오기도 했을 정도로 밤낮 가리지 않고 바쁘게 돌아가는 충전소다.[17] 가스 충전기는 1대 설치되어 있고, 차량 2대를 동시에 충전할 수 있다. 전용 선불카드나 신용카드로만 결제 가능. 차량이 진입하려면 서소문고가 쪽으로 들어갈 때 고가차도 못 가서 있는 KAL빌딩 근처에 충전소 입구가 있다.

5. 기타 청사[편집]

  • 남산 청사 : 중구 삼일대로 231(예장동 산5-85)에 구 안기부 일부 청사를 활용한 제1청사 및 남산 기슭 곳곳에 제2, 제3청사가 있다. 1청사는 도시기반시설본부와 중부공원녹지사업소, 구 안기부 2청사는 민생사법경찰과, 3청사는 소방재난본부가 사용 중에 있다. 이와 별개로 종로소방서 5층에 교통정보센터가 위치하고 있다.

  • 무교로 청사 : 중구 무교로 21(무교동 45) 더익스체인지서울 3~4층, 7~9층에 입주하고 있다.

  • 청계 청사 : 중구 청계천로 8(무교동 96) 프리미어플레이스빌딩 8층~15층에 입주하고 있다.


참고로 롯데호텔 맞은 편 건물로 과거 미국문화원으로 쓰였고 1985년 5월 대학생들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건물을 점거한 사건이 있었던 을지로별관은 밀랍인형 박물관인 그레뱅 뮤지엄에게 내주게 되었다.

6. 그 외[편집]

구청사 본관에 있는 구내식당은 서울시가 직영하기 전까지 외주로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때 운영을 맡은 사람이 서울역 그릴에서 웨이터로 시작해 양식업계의 명사로 거듭난 故 이중일씨였다고 한다. 지금도 나이드신분들 중에는 서울시청 구내식당의 서양음식이 좋았다고 기억하고 계신다고

여의도를 개발하면서 김수근 같은 사람이 여의도 도시계획을 했는데 원래 서쪽에는 국회 동쪽에는 시청이 올 예정이었다 한다.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도 이것과 관련된다. 녹사평역 인근(?) 현 용산구청 부지가 원래 서울시청 신청사 부지였는데, 이 때문에 새로운 시청역이 될 녹사평역은 상당히 건축에 힘을 들였고 3기 지하철 계획의 서울 지하철 11호선 건설에 대비 환승통로를 최적화시키기도 하였다. 다만 역시나 시청은 말아먹고 3기 지하철 계획도 외환위기로 말아먹었기에 현재와 같은 상황이 되었다. 참고로 용산구청은 설계변경을 밥먹듯 하다가 건축가가 자기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단도 있었다. 서울시청도 이렇게 될 뻔했으나 이거보다는 1mg 정도 부드럽게 상황이 끝났고, 이 두 건물은 사이좋게 해방이후 최악의 건물들 목록에 올랐다.

일본인이 한국에 관광오면 이걸 보러오기도 한다. 서울시 청사이기도 하지만, 일제시대 때 지은 일본 건물을 덮치는 해일(...) 같은 모습이기 때문. 불쾌하다며 넷우익들이 자주 들고 나오는 떡밥이기도 하다. 서울 시민들도 병맛 디자인 때문에 볼때마다 불편하다

부산광역시에 있는 구 경남도청 청사와 비슷하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근대건축 관청 건물은 겉모습만 그대로 보존한 채로 내부는 현재 다른 용도로 사용중이고(박물관, 도서관), 그 바로 뒤에 안 어울리는 거대한 유리궁전이 세워져 청사를 압도하고 있다는 점.

[1] 구청사는 허물고 다시 지었으므로 2012년이 맞긴 맞다(…)[2] 1975년 국회의사당이 여의도로 이사 가기 전까지 국회의사당으로 쓰였던 건물.[3] 대검찰청이 1995년까지 본청 청사로 쓰던 건물.[4] 현 시청 본청 뒤편에 있는 더익스체인지 서울 빌딩으로 1997년까지 코오롱그룹 본사로 사용된 건물.[5]국가안전기획부 별관 청사. 남산코렁탕 2호점[6] 청계광장 앞 프리미어플레이스 건물 8~15층을 시청사로 쓰고 있다. 참고로 과거 이 건물에는 여성가족부가 입주한 역사가 있다.[7] 미국문화원으로 쓰였던 곳으로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이 벌어졌다. 등록문화재 제238호로 지정된 건물.[8] 단 本 드립은 걸러듣자. 일제풍수모략설 문서 참고.[9] 참고로 외국에도 이와 비슷한 새로 지으면서 기존 건물이 부분만 남아있는 예가 하나 있다. 일본 도쿄역 앞에 있는 도쿄중앙우체국이 바로 그것. 여기 같은 경우 일본우정이 민영화되면서 먹고사는 주요 수단 (...) 으로 도쿄중앙우체국 자리에 고층건물을 세워 부동산 장사하는 계획이 있어서 역시 건물을 해체했는데, 건물이 해체되기 시작되니 부랴부랴 중요문화재 지정 시도한 점도 그렇고 사건이 일어난 시기도 비슷하여 그야말로 일본판 시청 사건이다.#[10] 등록문화재 문서에서도 나와있듯, 지정되었다고 해서 보존, 관리에 대한 법적 강제성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그 점을 노리고 문제를 제기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기습 철거에 들어간 것.[11] Turn key 방식. 보통 건축 과정은 건축주가 설계회사에 설계를 의뢰한 후 이를 건설회사가 시공하는 방식이나, 턴키 방식은 수주받은 회사가 설계와 시공 모두 일괄적으로 진행한다.[12] 이를테면 철근이 10개 들어갈 기둥인데 7~8개만 넣고 나머지는 비용 처리, 즉 비자금을 조성한다든지[13] 거기다 웬만한 기업집단(그룹)에는 원래 그룹 업무 영역과 무관하게 자체 건설사를 가지고 있으며(교육 전문이나 철강 전문이 건설사를 소유하고 아파트까지 짓는다), 둘 이상을 보유한 그룹도 있다.[14] 근데 서울시청 근처가 애초에 조화와는 거리가 먼 건축군이 들어서 있는지라... 일단 덕수궁과 황궁우는 조선시대~ 대한제국의 건축이고 서울시청과 서울시 의회는 일제의 건축인데다가 근처에 들어서 있는 호텔들이나 국가인권위 건물은 현대 한국의 건축물들이다. 딱히 통일성이랄 것이 없다.(...) 이에 대해서 안일한 접근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한국건축계의 입장이 이명박이나 오세훈 시장이 들어오기 전에는 서울에 건축은 다 성냥갑처럼 생겨서 천편일륜 갔다고 욕하다가 막상 이명박이나 오세훈 시장이 성냥갑을 탈피한 새로운 형태의 건축물을 세우고 이를 외국건축가에게 맡기는 일이 많아지자 이제와서 다시 사실 서울시의 건축 맥락은 성냥갑이다!!!라고 외치는 일이 많아졌다. 정말 서울의 건축적 맥락을 걱정한 것인지 유선형이나 비정형 건축을 제대로 다룰 능력이 없는 한국 건축계가 외국 건축가들에게 밥그릇 뺏기는 것이 아니꼬와서 이제와서 성냥갑 건축을 옹호하는 것인지는 각자 판단해보자.[15] 별개로 저 리스트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신뢰를 피할 필요가 있다. 같은 사람들이 봅은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현대 한국건축계의 주류를 차지하는 건축가들 취향 자체가 특정 건축가 작품, 조화라는 특정 가치에 경도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라...[16] 용산구, 서대문구 등지에서 충전하러 온다. 서대문11번 등. 서대문구 홍제동과 홍은동에서만 도는 노선이라 수색동이나 진관동으로 가스를 충전하러 가기가 대단히 애매하다.(홍제동에서는 시내가 더 가깝다.) 게다가 진관공영차고지는 포화 상태다. 영천시장에서는 서소문별관으로 가스를 충전하러 공차로 이동하는 서대문11번 차량들을 볼 수 있으며, 서소문별관에서 가스 충전을 마치고 독립문극동아파트로 돌아와서 운행을 재개한다.[17] 의왕시에는 CNG충전소가 2015년 2월에 생겼다. 현재는 재개발로 폐쇄된 우신버스의 고천동 영업소에서 지지대고개 방향 남쪽으로 2km 이동하면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이다. 파장동의 수원북부공영차고지가 고천동에서 그나마 가까운 가스 충전소여서 441번은 파장동에서 가스를 충전한 후 고천동으로 돌아와 운행을 재개했다. 영업운전이 아니긴 하지만, 수원시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서울 버스라는 것.... 그러나 502번은 파장동 충전소의 사용 허가를 받지 못해 소공동주민센터에서 승객들을 모두 하차시킨 후 세종대로네거리에서 U턴하여 서소문별관으로 공차로 이동하여 충전하고 한국은행 본부로 돌아와 운행을 재개했다. 2015년 7월에 고천동 재개발에 따라 월암공영차고지로 이전했으며, 월암공영차고지에는 가스 충전소가 있어서 현재는 시청에서 충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