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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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천민 집단 사이의 관계3. 팔천(八賤)4. 칠반천역(七般賤役)

1. 개요[편집]

賤民

고려, 조선 시대의 신분 계급 가운데 가장 낮은 신분을 가리키는 말. 상놈 또는 상것이라고도 불린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천민은 곧 노비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양인들에게 천시되는 계급은 노비에만 그치지 않았다.

조선시대 왕족이나 관료, 양반의 입장에서는 자신들보다 하층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나이를 가릴 것 없이 무조건 말을 편하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서 나이가 어린 사람이 양반의 자식이라고 하면, 나이가 늙고 많아 보이는 사람이라도 천민의 속박에 있다면 존댓말이나 우대를 하는 경향이 있었다.

양반이라도 대역죄로 몰락하였을 때는 무조건 천민으로 격하되며, 그 후손도 마찬가지로 천민으로 격하되어 취급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국가에 공로를 세웠거나 왕에게 충성을 다 바쳤던 행적이 인정된 경우, 국왕의 어명하에 면천(免賤)되어 신분이 상승하는 경우도 있다. 광해군/인조대의 무신이였던 정충신도 본래는 천민 출신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점을 인정받아 선조로부터 면천을 받아 양인이 되었고, 이후 무과에서 급제해 양반이 되기도 하였다.

외국에서도 비슷한 개념은 있었다. 중국의 경우 세습은 되지 않지만 노비 계급이 있었고,[1] 일본노예가 없지만 천민은 조선과 비슷하게 존재했다.

일본의 천민들은 일반인의 눈을 피해 특정한 지역에 서로 무리를 지어 살았는데 이들을 일컬어 부라쿠민이라고 한다. 불행하게도, 그 후예들은 오늘날까지도 일반인에 비해 불리한 위치에서 온갖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과거에 비해서는 그 대우가 많이 개선되었지만, 마치 인도 공화국에서 아직도 불가촉천민 출신들을 탄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일본 사회에서는 부라쿠민에 대한 차별이 아직 은근히 남아 있다.

서유럽에서도 카고라는 천민 비슷한 계급이 20세기 중반까지 남아 있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사라졌다. 주로 사형 집행인과 같은 천대받는 직업군이 카고의 주요 구성원이었다. 19세기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성인인 성 요한 보스코 신부는, 생전에 아는 신자의 집에 가려다가 집을 착각해서 망나니의 집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마침 망나니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있었는데, 청하지 않았는데도 신부가 자기네 집에 와주었다는 사실에 그들은 대단히 고마워했다. 그 바람에 요한 보스코 신부는 "잘못 들어왔습니다" 라는 말을 못하고 그대로 눌러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신부조차도 차별하는 존재라는 뜻이니, 망나니들을 포함한 카고에 대한 사회적 천대가 어느 정도였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 천민 집단 사이의 관계[편집]

이 계급은 일단 같은 천민으로 묶이기는 했지만, 팔천의 신분 서로 간에 연대의식은 희박하고 서로가 서로를 천시하기도 했다. 사극 등에서는 현대적인 계급 의식이 반영되어 "우리는 다 같은 천민이잖아?" 라는 식으로 서로 연대의식을 드러내는 묘사가 많지만, 실제로는 천민들끼리도 부류에 따라서 서로가 서로를 멸시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천민이라고 한데 묶여있기는 했지만, 이들은 '천시당하는 이유'도 '생활 양식'도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연대 의식을 가지기 어려웠던 것이다. 개화기 때 해방운동이 벌어질 때도 각각의 집단을 대표하는 조직은 별도로 활동했지 "천민 계급으로서"의 연대 의식을 가지지 않았다.

예를 들어, 개화기에 형평사(옛 백정 출신들의 단체)에서 잔치를 열고 기생들을 불렀지만, 권번(기생조합)에서 "지저분한 백정 놈들 술 따라주는 것은 싫다!!"고 거부하고 가지 않아서 형평사와 권번이 충돌한 사건도 있다.

3. 팔천(八賤)[편집]

  • 노비

  • 승려 : 숭유억불 정책에 따라 천시되었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불교가 국교였기 때문에 임금이나 왕족 못지않은 대우를 받아왔지만 조선시대부터는 아예 신분이 내려가게 되었다[2][3].

  • 백정 : 현대에도 백정의 후신 직업군이라 할 수 있는 도축업자나, 육류 가공업자들이 차별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언론에서조차 그들의 실명이나 얼굴 공개를 꺼리는 경향이 있을 정도이다[4][5].

  • 무당 : 이쪽은 승려와 비슷한 경우이다. 나름대로 영험한 존재로 여겨져서 민중들에게 추앙을 받기도 했고, 심지어 성종 대에는 인수대비가 아들 성종의 감기를 낫게 한다며 궁궐로 무당을 불러서 유생들을 충공깽에 빠뜨린 일도 있었다. 그러나 구한말에 가톨릭개신교가 전파되면서 미개한 문화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망했어요[6].

  • 광대 : 과거에는 딴따라로 불렸으나, 현대에 와서는 대중에게 인정받고, 청소년층의 장래희망으로 가장 인기 있는 직업으로 탈바꿈했다. 그렇다고 광대가 수만명의 팬을 이끌고 다니며 갖은 사랑을 다 받는 살아있는 꽃이요 저 하늘의 별이었던 건 아니지만 하지만 열애설 같은 거 터지면 욕 먹는 거 보면, 꼭 지위가 오른 것만은 아닌 듯.

  • 상여군(喪輿軍) - 상여를 제작하고 나르는 사람들이다. 흔히 상여꾼이라고 알려져 있다.

  • 창기(娼妓) : 기생은 급이 나뉘어 있었는데, 창기는 이들 중 가장 낮은 이들이었다[7].

  • 공장(工匠) : 공돌이의 원래 의미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낮다. 하지만 현재, 대학의 공대생들이 자신들을 비하하여 '공돌이'라 하는 것과는 천양지차.

4. 칠반천역(七般賤役)[편집]

일단 칠반천역은 신분상 천민이 아니다. 정확히는 신량역천이라고 한다. 신분은 양민이나 노역은 천민과 같다고 해서 붙은 명칭. 또 천민 쪽과 마찬가지로 자식들에게 직업이 강제 세습되었다.

  • 조례 : 중앙 관청에 소속되어 고급 관원의 호위와 사령을 맡았다.

  • 나장(羅將) : 경찰, 순라, 옥졸 역할을 맡은 병사. (오늘날의 헌병)

  • 일수(日守) : 지방 관아나 역에서 사령 등의 잡사에 봉사.

  • 조군(漕軍) : 조곡의 조운과 파선의 수리를 담당.

  • 수군(水軍) : 조선 수군(지금의 해군.)

  • 봉군(烽軍) : 봉화를 담당.

  • 역보(驛保) : 역졸.

[1] 다만 이는 법적으로는 세습이 불가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노비 계급이 세습되었다. 주인이 노비의 자식들을 자기 가문에 입적시켜서 계속 노비로 부려먹던 방법도 있고, 외국에서 조공이나 선물로 보내 온 노예나 군대에서 부리는 노비들은 대대손손 부려먹었다. 자세한 것은 노비 종모법을 참조.[2] 다만, 민간에서는 승려를 천민 대우하는 일이 많지는 않았다. 물론 승려들이 유교 근본주의 성향의 선비들에게 절간이 습격을 받는 등의 모욕을 당한 일이 없지는 않았으나, 이미 고려 때부터 세간의 동경을 받던 이들인지라 불교 세가 강한 지역에서는 상당한 예우를 받았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도 승려들은 영험한 존재로 여겨져 추앙을 받는 일이 많았다. 조선 말기에 미륵불 신앙이 널리 퍼졌던 것이나,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기 전까지 생불로 추앙받던 지족선사 이야기, 그리고 고전 소설인 옹고집전을 보면 생각보다 승려는 조선 시대에도 나름 존중은 받는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사명당이나 서산대사 같은 승병들의 존재나 흥천사 등의 일부 사찰이 왕릉의 원찰로 지정된 것이 대표적이다.[3] 승려가 조선시대에 천대받은 것은 고려시대의 승려들의 부정부패나, 조선 왕조의 숭유억불 정책에 의한 것도 있지만, 이 시기에 자기가 미륵불이라고 자칭하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인간들이 나타나거나, 승려를 가장해 각종 추문을 일으키고 다니는 소위 땡추들이 들끓었던 것도 한몫을 했다. 그래서 조선 전기에는 숭유억불 정책과는 무관하게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승과를 유지하여 가짜 승려들의 난립을 막으려 했으나, 사림파의 득세 이후 승과가 폐지 크리를 먹었다.[4]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서는 성찬에게 협력하던 유능한 육류 가공업자가 자신의 직업이 들통나 딸이 파혼을 당하거나,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언론의 취재를 거부하는 대목이 나오기도 했다.[5] 다만, 당연히도 현대의 도축업 및 육류 가공업 종사자들은 옛날의 백정과 혈연적인 연관이 전혀 없어서, 출신 성분을 보면 유서깊은 양반가 출신이 이 일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6] 김동리의 소설 무녀도개신교의 전파로 인해 무당들이 몰락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7] 다만, 기생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창기가 아닌 그냥 기생도 천민 대우 받지만 않았을 뿐, 사실상 2등 평민 대우받는 등의 차별을 은근히 받았다. 절대로 성접대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술집 호스티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별로 좋지 않은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