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계 볼리비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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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계 볼리비아인은 이탈리아계 조상이 있거나 이탈리아에 기원을 둔 볼리비아인이다.
볼리비아의 독립 전 이미 수십 명의 이탈리아인이 볼리비아로 이주했다. 19세기 초에 칠레 북부에서 철도 노동자로 일하던 수백 명의 이탈리아인들이 근처 볼리비아에 정착했다. 라파스 지역에 정착한 일부는 섬유 및 식품 산업에 종사했다.
1876년에는 피에몬테 출신 이탈리아인의 후손인 힐라리온 다자 그로젤이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탈리아 영사관에 따르면 1889년에는 약 400명의 이탈리아인이 볼리비아에 살았다. 40명은 라파스, 20명은 오루로, 29명은 코차밤바, 31명은 수크레, 44명은 산타 크루즈, 38명은 타리자, 16명은 포토시에 거주했다.
20세기 초 볼리비아 거주 이탈리아인의 대부분은 상업 활동에 종사했다. 하지만 건축가, 엔지니어, 의사 등의 전문직 종사자와 종교인도 여럿 있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은 후 볼리비아에는 약 2,000~3,000명의 이탈리아인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볼리비아 사회에 동화되었으며, 라파스, 수크레, 산타 크루즈, 코차밤바 등 대도시 지역에 주로 거주했다.
2010년 통계에는 볼리비아 내의 이탈리아계 볼리비아인이 15,000명[1], 볼리비아에 거주하는 이탈리아 시민의 숫자는 2,700명으로 집계되었다.
1876년에는 피에몬테 출신 이탈리아인의 후손인 힐라리온 다자 그로젤이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이탈리아 영사관에 따르면 1889년에는 약 400명의 이탈리아인이 볼리비아에 살았다. 40명은 라파스, 20명은 오루로, 29명은 코차밤바, 31명은 수크레, 44명은 산타 크루즈, 38명은 타리자, 16명은 포토시에 거주했다.
20세기 초 볼리비아 거주 이탈리아인의 대부분은 상업 활동에 종사했다. 하지만 건축가, 엔지니어, 의사 등의 전문직 종사자와 종교인도 여럿 있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겪은 후 볼리비아에는 약 2,000~3,000명의 이탈리아인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볼리비아 사회에 동화되었으며, 라파스, 수크레, 산타 크루즈, 코차밤바 등 대도시 지역에 주로 거주했다.
2010년 통계에는 볼리비아 내의 이탈리아계 볼리비아인이 15,000명[1], 볼리비아에 거주하는 이탈리아 시민의 숫자는 2,700명으로 집계되었다.
[1] 스페인계나 원주민 중에도 이탈리아 혈통을 가진 사람은 이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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