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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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문화4. 건축5. 주요도시 및 관광지6. 요리7. 여담8. 주기의 의미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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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이자 , 그리고 지중해 최대의 섬.

이탈리아 반도를 장화라고 생각한다면, 딱 발 끝 부위에 위치한 차기 좋게 생겨먹은 섬이다.[1] 이탈리아인의 축구실력은 영토에서 예견되었던 것인가 하지만 비유와는 달리 지중해 최대의 섬이다. 면적은 25,426㎢, 인구는 5,015,569명(2011 추계)이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의 중앙부에 위치한데다 이탈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예로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꼽혀 역사적으로 지배세력이 숱하게 바뀌어온 지역이다. 덕분에 다양한 문화가 혼합되어 시칠리아만의 특색이 매우 강하게 드러난다.

시칠리아에는 유럽에서 가장 높고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한 화산 중 하나인 에트나 화산이 있다. 에트나 화산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를 품은 곳이기도 하다.

현대에는 마피아의 본거지[2],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영화, 요리, 순박하고 친절한 사람들, 관광지 및 휴양지로 유명하다. 하지만 농업과 관광업을 제외한 나머지 산업의 발달이 미약하기 때문에 이탈리아 내에서는 경제적으로는 낙후된 곳이다. 2014년 기준 1인당 GDP 16,600유로로, 31,000유로가 넘는 북부 이탈리아의 절반, 한국의 2/3 정도이다.

다만 전형적인 지중해 기후를 가져 연중 온난하고 강수량은 고른데다 화산지형 덕분에 땅까지 비옥한 시칠리아는 농사가 매우 잘 되어 시칠리아의 농산물은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편이다. 고대부터 지중해세계를 먹여살려온 은 물론, 속이 빨간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 피스타치오, 레몬, 올리브, 토마토, 아몬드, 포도 등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웬만한 식재료는 모두 잘 난다. 덕분에 시칠리아 요리가 이탈리아 요리의 뿌리이자 정수로 꼽힌다.

남쪽에는 몰타 섬이 있으며, 시칠리아 제2의 도시 카타니아(Catania)에서 배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몰타와 함께 난민들이 리비아나 튀니지 등지에서 배를 타고 오는 관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바다를 건너 리비아로 월경할 경우 처벌받는다. 리비아는 여행금지국가이기 때문.

2.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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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인 면에서도 엄청난 역사를 자랑한다. 청동기 시대에 시크리 인, 시카니 인, 엘류미 인이 거주, 주석(錫)무역의 중계지로 미케네 문화와도 접촉하며 고유의 문화를 지녔다.

B.C. 8세기에 그리스인이 도래한다. 카르타고인의 모튜에 건설에 따라 그리스화한다. 낙소스, 쉬라쿠사이(현재 시라쿠사:Siracusa), 게라(현재 제라:Gela), 메가라 히부라이아 등 그리스 식민도시의 건설에 따라 선주 민족은 내륙으로 밀리고 해안 지역은 완전히 그리스화했다.

B.C. 6세기부터는 세리누스(현재 세리눈테:Selinunte), 아크라가스(현재 아그리젠토:Agrigento), 세게스타(현재 세제스타:Segesta) 등이 건설되어 마그나 그라에키아의 일부로 됐다. 미술도 그리스 본토와 이오니아 지방과는 달리 부드러운 요소를 지니게 되어 B.C. 4세기 후반 이후 첸투리베 등에서 독특한 도기도 만들었다. 제2차 포에니 전쟁(B.C. 218~B.C. 201)을 거쳐 고대 로마의 속주가 되나 공화정기에는 정체의 시대로 2세기 이후 로마의 곡창으로 번영했다. 고대 말기에는 피아차 알메리나메(Piazza Armerina)에 대규모 모자이크 장식의 별장 등이 건설되었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노예 반란이 좀 일어난 것을 제외하면 평화를 누렸다. 북아프리카카르타고가 이쪽으로 진출하자 로마 제국에 구원을 청하여 그 이후로 길고 길게 이어진 포에니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포에니 전쟁 이후로 로마 세력권에 들어왔으며, 대규모 농장이 건설되어 플랜테이션 농업이 시작되었다. 로마의 밀셔틀 제1호. 당시에는 시켈리아로 불렸고, 시라쿠사, 메사나 등의 폴리스가 있었다.

로마가 동서로 갈라지고 서로마가 요단강을 건넌 이후에는 동고트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벨리사리우스가 지휘하는 비잔틴 제국군이 반달 왕국을 멸망시킨 데에 이어 이탈리아까지 병탄하면서 다시 로마에 속하게 된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도 사산조와의 전쟁, 페스트, 그리고 갑자기 출현한 이슬람 제국의 발흥으로 쇠퇴하면서 이탈리아에서 차차 물러나게 되는데 시칠리아도 잃게 되어 이후 북아프리카이슬람 세력과 이탈리아의 그리스도교 세력 사이에서 수시로 점령 세력이 바뀌는 혼란스러운 역사를 겪게 되었다.

그러던 중 11세기를 경계로 노르만족의 침입으로 노르만계 왕국인 시칠리아 왕국이 성립되면서 가톨릭계 왕국이 이 섬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후 시칠리아 왕국은 남 이탈리아를 정복해 세력을 넓혀 근대까지 왕국이 존속하게 되었다. 이른바 양 시칠리아 왕국. 중세왕국의 특징에 따라 단일혈통 왕국이 아닌 결혼과 상속을 통해 계속해서 바뀌게 되었다. 왕국을 성립시키고 발전시킨건 노르만계(오트빌 왕조)지만 이후 이 계통이 단절되면서 사위인 호엔슈타우펜 가문(신성로마제국 황제 가문)이 물려받았다.

그러나 이탈리아 전체를 원했던 호엔슈타우펜 왕가는 결국 교황과 반목하게 되었고 교황은 이에 대처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영향력을 원했던 프랑스와 결탁해 당시 카페 왕조의 왕인 루이 9세의 동생인 앙주백 샤를을 초빙해 호엔슈타우펜 왕가를 물리치고 시칠리아 왕으로 삼았다. 왕이 된 앙주백 샤를은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고 자신의 야심을 실현하기 위한 원정[3]과 원정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가혹한 세금을 시칠리아에 물었고 이는 많은 반감을 사게 되어, 결국 시칠리아의 만종이라는 대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 사건으로 앙주 일가는 시칠리아에서 쫒겨났고 호엔슈타우펜 왕가 출신의 마지막 왕인 만프레드의 사위인 아라곤 왕국의 페드로 3세가 시칠리아 왕이 되었다.

동로마 통치 시대인 827년에서 아랍 통치 시대의 요소는 다음 노르만 왕조 시대(1071~1266)의 미술에 계승되어 팔레르모의 궁정예배당(카펠라 팔라티나:Cappella Palatina), 몬레알레 대성당(Cattedrale di Monreale), 체팔루 대성당(Chiesa di Cefalù)에서 그 유례를 볼 수 있다. 시칠리아의 노르만 미술에는 동로마적 요소와 함께 이슬람 파티마 조의 미술 전통이 존속되었다. 견직물은 아랍인에 의해 시칠리아에서 제조가 시작되고 다시 유럽으로 퍼져감. 남이탈리아와 함께 상아 세공이 발달하여 일군의 채화장식으로 된 상아상자는 12~13세기의 시칠리아 제로 되어 있다. 13세기의 프리드리히 2세[4] 시대는 동서문화의 융합을 꾀하여 시칠리아 르네상스라고도 불리는 시대로 문화적으로 활발하였으나 섬 내에서 당시의 미술 유물은 적다.

1442년부터 다시 나폴리 왕국과 함께 동일한 왕의 관할 하에 있게 되어 남이탈리아와 문화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게 된다. 15세기에 활약한 안토넬로 다 메시나(Antonello da Messina)는 시칠리아가 탄생시킨 가장 유명한 화가다. 바로크 시대의 미술은 스페인의 영향이 강하고 바로크 도시로서의 노토(Noto)는 당시의 양상을 가장 잘 전해주고 있다. 시칠리아의 미술은 지중해 중심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항상 외래미술의 영향을 받았다.

3. 문화[편집]

시네마 천국, 말레나 등을 연출한 이탈리아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고향이자 그의 작품 속 배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실상 시칠리아 올로케이션. <말레나>에서 모니카 벨루치가 걸어가던 광장은 시라쿠사의 광장이고, <시네마 천국>의 마을은 팔레르모 남쪽의 작은 시골마을 서너군데에서 촬영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팔레르모에서 근교 투어를 알아볼 때 여러 마을들이 서로 시네마 천국의 배경이라고 홍보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4. 건축[편집]


1693년의 대지진으로 시칠리아의 동쪽의 도시와 마을들이 파괴되자 당대의 유명 건축가들이 새로운 도시계획안을 들고 시칠리아를 재건하는데, 이를 "시칠리아 바로크 스타일"이라고 부른다. 카타니아(Catania), 라구사(Ragusa), 노토(Noto), 모디카(Modica), 시클리(Scicli), 칼타지로네(Caltagirone) 등의 도시/마을들이 그 영향을 받아 재건되었고 그 특유의 화려하고 그로테스크하며 웅장한 건축양식으로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다. 이 바로크 타운들은 대부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5. 주요도시 및 관광지[편집]


이탈리아 본토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면 팔레르모나 카타니아에 도착하게 된다. 기차를 타고 온다면 메시나에 도착하게 된다. 기차를 타고 올 때는 기차를 통째로 베에 싣고 메시나 해협을 건넌다!! 매우 이색적인 경험이지만, 야간열차로 오는 길이 매우 길고 고된 반면, 비행기 값은 그리 비싸지 않으므로 가능하면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을 더 추천한다.

  • 팔레르모: 시칠리아의 주도이자 최대도시. 시칠리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도시 중 하나. 유서 깊은 도시이고, 노르만 궁전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들이 많으며, 구도심은 그 특유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매우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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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르모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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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르모 근처 휴양지 몬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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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르모 구도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콰트로 칸티. 4거리의 각 코너를 모두 조각상으로 화려하게 꾸며놓았다.

  • 몬레알레 대성당: 팔레르모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산골 마을에 대주교가 있던 대성당이 있다. 노르만 양식과 아랍 양식이 뒤섞여 매우 화려하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트라파니: 시칠리아 섬의 서쪽 끝에 위치한 마을이다. 휴양지이자 고대에서부터 이어지는 시칠리아식 염전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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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파니 구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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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파니의 염전

  • 카타니아: 한국에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으나 시칠리아 제2의 도시이다. 도시에서는 기차 혹은 자동차로 약 1-2시간 거리에 있는 에트나 화산이 어디서나 보이는데, 지형이 화산지형이라 도시 건물들이 대부분 어두운 잿빛에 가까운 회색으로 된 화산석으로 건설되어 매우 이색적이다. 또한 콜레세움 등 로마 시대 유물도 곳곳에 숨어있다. 매년 2월 5일[5]에는 도시의 수호성인인 성녀 아가타(Santa Agatha)를 기리는 축제가 열리는데 이 시기에 관광객들이 많이 몰린다. 오페라 작곡가 벨리니가 태어난 곳으로 벨리니의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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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니아 대성당과 광장. 구도심의 중심이다.

  • 에트나 화산: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화산. 현재도 매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활화산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다. 날씨가 안 좋으면 분화구를 볼 수 없어 운도 따라줘야 한다. 화산석만의 특성으로 인해 에트나 산에 올라 뛰어보면 점프가 훨씬 잘 된다.(좀 약한 트랜펄린을 타는 기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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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오르미나: 메시나와 카타니아 사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과거 그리스, 로마 시대때부터 겨울 휴양지로 알려진 곳으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유적과 로마 시대의 극장, 저수지, 궁전 등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아름다운 뷰로 세계적인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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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식 극장에서의 뷰가 가장 유명하다. 지중해의 푸른 바다, 멀리 보이는 에트나 화산, 그리고 그리스 고대 유적까지...

  • 시라쿠사: 대항해시대를 한 사람들이라면 알만한 도시. 고대 그리스 시대 항구도시이자 대학도시로 유명했던 곳이며, 말레나의 촬영지로도 알려져있다. 카타니아와 대비되는 새하얀 대리석 건물들이 인상적이다. 육지 쪽에는 그리스 시대 유적이 많이 남아 있어 고고학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구도심인 오르티지아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로 눈물 흘리는 성모상이 이곳에서 발견되어 이를 기리는 성당이 건설되기도 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시라쿠사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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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쿠사의 구도심인 오르티지아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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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쿠사 대성당 광장. 영화 속에서 말레나가 지나다니던 광장.

  • 라구사: 바로크타운의 정수. 언덕 위에 앉은 도시의 모습이 이색적이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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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토: 사암으로 지어 노란 도시의 색채가 인상적이다. 구도심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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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그리젠토: 그리스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6. 요리[편집]

시칠리아 요리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방세계에서 시칠리아는 "하느님의 부엌"이라고 불릴 정도다. 시칠리아는 그 복잡한 역사만큼이나 고대 그리스 및 로마, 아랍, 노르만, 호헨슈타우펜, 스페인을 거쳐온 신세계 식재료 등의 다양한 영향을 받아 독자적으로 특색있게 발전해왔고, 이를 다시 이탈리아 반도에 전수하며 이탈리아 요리의 뿌리라고 불린다.

파스타가 시작된 곳으로 특히 유명한데, 시칠리아인들은 한 해 평균 44kg의 파스타를 먹어 이탈리아인 평균의 1.5배, 미국인 평균의 9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파스타사랑을 보여준다. 시칠리아 음식은 서민적인 느낌의 이탈리아 요리 중에서도 가장 서민적인 음식으로 유명한데, 싸고, 배부르고, 맛있기까지 하다.

그리스인들이 심은 올리브와 피스타치오는 물론, 중국에서 아랍을 거쳐 온 면이 시칠리아에서 파스타로 발전했고(10세기 경 추정), 아랍세계에서 건너온 사프란과 신세계에서 건너온 토마토까지 이탈리아 요리를 상징하는 많은 식재료가 시칠리아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전형적인 지중해 기후로 온난한데다 화산 지형으로 땅도 비옥하여 고대부터 지중해세계를 먹여살려온 은 물론, 속이 빨간 블러드 오렌지(Blood Orange), 피스타치오, 레몬, 올리브, 토마토, 아몬드, 포도 등 농산물이 매우 풍부하고 그 질 또한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지중해 한가운데 떠있는 섬이라 해산물 역시 풍부하여 정어리, 청새치 등으로 만든 요리가 매우 유명하다. 또한 카놀리(Cannoli)를 비롯한 디저트류로도 아주 유명하다.

파일:external/www.sicilianexperience.com/food_06.jpg 블러드 오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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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란치니(단수: 아란치노). 주먹밥에 속을 넣고 튀긴 음식으로 저렴하며(개당 2~2.5유로) 매우 배부르고 세계인 누구에게나 입맛에 잘 맞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속은 다양한데, 미트소스와 모짜렐라 치즈를 넣은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팔레르모 등 서쪽 지방에서는 공 모양에 더 가깝고, 카타니아를 비롯한 동쪽 지방에서는 좀 더 고깔 모양으로 만드는데, 카타니아의 아란치니가 알아준다. 특히 카타니아의 <사비아>가 유명하다. 사비아가 문 닫아도 바로 옆에 있는 가게에서 아란치니를 사먹자. 크게 떨어지지 않는 맛이다. "도대체 사비아는 얼마나 더 맛있는거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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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놀리(단수: 카놀로). 서방세계에서는 매우 유명한 디저트이지만, 한국인에게는 너무 달고 느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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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타(Cassata). 디저트로 유명한 시칠리아가 자랑하는 케이크다. 팔레르모와 메시나 지역에서 주로 먹는다. 겉은 다양하게 꾸미는데, 속이 중요하다. 과일이 많이 들어가는데 반죽은 파운드 케이크 같기도 하고... 꽤 달긴 하지만 그래도 맛있다.

7. 여담[편집]

참고로 서유기에서도 언급된다는 설이 있는데 근거는 부족하다. 서유기의 작가 오승은이 머나먼 유럽의 지리를 알았을지도 의문이고, 정확하게는 사합리라고 하여 해가 지는 땅이라며 저팔계가 59장에서 언급한다. #화염산에 가까워졌을때 일행이 "왜 이렇게 덥냐"고 불평하자 저팔계가 서쪽에는 사합리라는 해가 지는 땅이 있다며, 엄청 덥다고 애기하자 손오공이 사합리는 엄청 멀리 떨어진 곳이라고 핀잔을 준다. 여기서 나오는 사합리는 몇몇 영어 번역에서는 시칠리아를 뜻하는 Sicily라고 되어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시할리[6]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들 중에 상당수가 시칠리아 지방 사람들의 후손이다. 대표적으로 마틴 스콜세지의 증조부가 시칠리아 이민자다. 2차대전 도중에 미군이 시칠리아 섬에 주둔할때 꽤 많은 이탈리아계 미군 병사들이 혹시나 자신들의 먼 친척이 있나 알아보려고 시칠리아 섬을 돌아다녀 봤고, 꽤 많은 이탈리아계 미군 병사들이 본인들도 존재하는지 몰랐던 먼 친척들을 만났다고 한다.

마피아 코사 노스트라의 본거지이며 한때 굉장히 문제가 심각했으나 현재는 다소 잠잠한 편. 시칠리아 출신들이 미국이나 캐나다로 가서 역시 마피아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대부(영화)의 출연배우들 중 상당수가 시칠리아 사람들이다. 일단 주인공 알 파치노의 부모가 시칠리아 사람들이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리얼리티를 위해 시칠리아계 미국인(Sicilian Americans)들을 많이 출연시켰다고 한다.

시칠리아 북부 해안 마을 "카네토"(Canneto)는 악마가 출몰하는 마을미스터리 매니아들에게 유명하다. 2004년을 기점으로 마을 전체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크고 작은 화재가 계속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 때문에 엑소시즘을 해야 한다느니 마을 전체에서 전선을 뜯어내야 한다느니 말들이 많다고 한다. 일단 현재까지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전기 화재" 정도밖에는 알아내지 못한 듯. 위키피디아(영어)

많은 축구팀이 있는데 주도 팔레르모를 연고로한 US 팔레르모가 유명하다.

이탈리아 본토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이탈리아 본토와 시칠리아를 잇는 메시나 해협 대교 건설을 추진중이지만 막대한 공사비용과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사업 재개와 중지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2016년에 다시 추진중이다. 완공시 길이 3.3km의 세계 최장 현수교로 등극할 예정.

이 지역에 황새치 잡는 어부들의 시력이 매우 좋은 걸로 유명하다. 어선의 높은 마스트위에서 수면을 관찰하며 황새치를 찾는데 사람으로서 최상급의 시력을 가졌고 한 어부 집안은 6.0정도 된다고 한다.

경기도와 같은 위도대에 있다. (북위 37~38도)

8. 주기의 의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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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월 4일부터 쓰이기 시작한 시칠리아 주의 상징기인데... 뭔가 약을 빨고 만든듯한 괴리감이 든다(...) 스타벅스 로고와 비슷한 느낌적인 느낌...

가운데 문양은 고대로부터 시칠리아가 써온 문양으로 그 자체로 시칠리아를 상징한다. 이 때문에 이 문양으로 만든 기념품을 시칠리아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 문양은 트리나크리아(Trinacria)라고 부르는데, 이는 시칠리아의 고대 명칭이기도 했다. 시칠리아의 삼각형 모양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가운데 세 개의 다리는 "트리스켈리온 (Triskelion)"[7] 의 일종으로, 시칠리아 뿐만 아니라 독일 퓌센, 맨 섬도 등의 깃발에도 쓰이고 있다. 시칠리아 주기에서는 시칠리아의 삼각형 모양 을 뜻한다고도 하고, 혹은 중세 이슬람 지배기에 확립된 세 행정구역(Val di Manzara, Val di Noto, Val di Demone)을 나타낸다고 한다.이 행정구역은 시칠리아 섬이 다시 기독교국가들의 차지가 되고 나서도 유지되어 19세기 초까지 이어졌다.

가운데 날개달린 얼굴은 메두사의 얼굴이고, 다리 사이로는 밀알이 배치되어 있다. 시칠리아의 풍족함을 의미한다.다산도 의미하려나

배경의 붉은색과 노란색은 앙주 왕가에 대항해 처음으로 연합한 두 도시, 팔레르모와 코르레오네(Corleone)를 각각 상징한다.

[1] 실제로 아이스 에이지4 프롤로그 장면에서 스크랫이 내핵을 건드려 지구의 대륙이 분리되어서 현재의 대륙으로 될 때 유럽이 만들어지는 장면에서 이탈리아 반도가 시칠리아 섬을 차는 장면이 나왔다![2] 외국인이 관광가서 마피아와 마주치거나 범죄에 휘말릴 일은 없으니 여행할 때 안심해도 된다. 이미 시칠리아에서 마피아는 합법적인 지위(로 가장하여)에서 각종 행정과 이권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굳이 강력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없다는 것. 오히려 시칠리아 주민들 중에는 마피아를 이탈리아 정부보다도 더 믿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3] 동로마 제국을 침략하여 자신이 황제가 되려는 야심이 있었다.[4] Friedrich Ⅱ, 1194~1250, 나폴리 시칠리아왕으로는 프리드리히 1세. 1215년 이후 신성로마황제[5] 아가타 성녀의 축일이다.[6] 원본에는 사합리(斯哈哩)로 등장한다[7] 나선형의 모양이 세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모든 상징을 뜻하며, 한국의 삼태극도 여기에 속한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