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얀 스탄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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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1978년 출생
- 유고슬라비아의 남자 축구 선수
- 세르비아의 남자 축구 선수
-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은퇴, 이적
- SS 라치오/은퇴, 이적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은퇴, 이적
-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역대 감독
- UC 삼프도리아/역대 감독
- 페렌츠바로시 TC/역대 감독
-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역대 감독
- 유고슬라비아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참가 선수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선수
- 세르비아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00 참가 선수
-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명예의 전당
- 베오그라드 출신 인물
데얀 스탄코비치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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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얀 스탄코비치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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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얀 스탄코비치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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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문서는 간략화한 것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 타 구단으로 임대한 선수는 제외했습니다. |
FK Crvena Zvezd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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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데얀 스탄코비치 Дејан Станковић | Dejan Stanković | |||
출생 | ||||
국적 | ||||
신체 | ||||
직업 | ||||
소속 | 선수 | |||
감독 | 우디네세 칼초 (2014~2015 / 수석 코치) 인테르나치오날레 (2015~2016 / 코치)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2019~2022) UC 삼프도리아 (2022~2023) 페렌츠바로시 TC (2023~2024) FC 스파르타크 모스크바 (2024~2025)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2025~ ) | |||
국가대표 | 103경기 15골 (세르비아 / 1998~2013) | |||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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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4월 22일, 대한민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는데, 2골을 기록해 팀의 승리를 이끌며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이후 1998 프랑스 월드컵 본선 유고슬라비아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어 조국의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그러나 16강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를 만나 1-2로 패하며 탈락했다.
이후 UEFA 유로 2000을 거쳐 2006 독일 월드컵에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대표팀 소속으로 출전했으나 지역예선에서의 수비력과는 달리 조 최하위로 탈락하게 되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사보 밀로셰비치가 대표팀에서 은퇴하고, 몬테네그로가 분리 독립하면서 세르비아로 국명이 변경된 이후 세르비아 대표팀의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도 출전했지만, 두 대회 연속으로 조별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탈락한다.
2011년 10월 11일, 슬로베니아와의 유로 2012 예선에서 0-1로 패해 세르비아의 유로 본선행이 좌절되었고, 경기 직후 스탄코비치는 네마냐 비디치와 함께 세르비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선수 생활을 마감한 후 2013년 10월 11일, 일본과의 친선 경기에서 짧은 시간동안 그라운드를 뛰어 스탄코비치의 세르비아 대표팀 및 선수 은퇴 경기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후 UEFA 유로 2000을 거쳐 2006 독일 월드컵에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대표팀 소속으로 출전했으나 지역예선에서의 수비력과는 달리 조 최하위로 탈락하게 되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사보 밀로셰비치가 대표팀에서 은퇴하고, 몬테네그로가 분리 독립하면서 세르비아로 국명이 변경된 이후 세르비아 대표팀의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도 출전했지만, 두 대회 연속으로 조별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탈락한다.
2011년 10월 11일, 슬로베니아와의 유로 2012 예선에서 0-1로 패해 세르비아의 유로 본선행이 좌절되었고, 경기 직후 스탄코비치는 네마냐 비디치와 함께 세르비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선수 생활을 마감한 후 2013년 10월 11일, 일본과의 친선 경기에서 짧은 시간동안 그라운드를 뛰어 스탄코비치의 세르비아 대표팀 및 선수 은퇴 경기의 대미를 장식했다.
기본적으로 포지션은 공격적인 중앙 미드필더였으나 빠른 발, 강한 제공권 그리고 엄청난 체력에 기반한 왕성한 활동량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박스-투-박스 미드필더로 경기장 왕복 셔틀런을 뛰며 경기를 조율하거나 필요시[1] 수비형 미드필더, 심지어 측면 미드필더까지도 커버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어디 놔둬도 1인분은 하는 멀티 미드필더.또한 성실하고 악바리같이 플레이하는 성격으로, 잔발질 없이 적재적소, 특히 1선 공격진에 깔끔하게 전달하는 패스 능력과 창의력 또한 돋보였다.무엇보다 최고의 강점은 골때리는 수준의 중거리 슛과 강력한 마무리 능력으로, 문서 하단에 자세히 서술된 2011년 UEFA 챔피언스리그 샬케전에서 골문을 비우고 나온 마누엘 노이어를 벙찌게 만든 논스톱 발리슛이나 2009년 제노아전에서 나온 비슷한 발리슛 골# 등등 외에도 커리어 내내 이렇게 두번 생각하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건드린 것 같은데 들어가는 골들이 굉장히 많았다.
요약하자면 좋은 축구지능과 훌륭한 킥 능력을 보유한 공격형 중앙미드필더인데 마이클 에시엔이나 젠나로 가투소처럼 미친듯이 뛰어다니는 스타일. 이런 선수를 감독들이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었으며, 본인 스스로도 라치오 시절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파벨 네드베드, 로베르토 만치니같은 스타 선수들 사이에서 당당히 미드필드 한자리를 차지하는가 하면 조세 무리뉴 휘하에서 트레블을 달성하는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또한 화려하지는 않으나 선 굵은 마초적인 플레이 스타일슛 쏘는 것도 여간 상남자가 따로없는 플레이로 인테르 전성기 시절 동안 성실하게 미드필드 전 지역을 커버할 수 있었던 공수 모두 훌륭한 미드필더였다.
요약하자면 좋은 축구지능과 훌륭한 킥 능력을 보유한 공격형 중앙미드필더인데 마이클 에시엔이나 젠나로 가투소처럼 미친듯이 뛰어다니는 스타일. 이런 선수를 감독들이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었으며, 본인 스스로도 라치오 시절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파벨 네드베드, 로베르토 만치니같은 스타 선수들 사이에서 당당히 미드필드 한자리를 차지하는가 하면 조세 무리뉴 휘하에서 트레블을 달성하는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또한 화려하지는 않으나 선 굵은 마초적인 플레이 스타일
2024년 5월 16일,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감독이 되었다. 계약 기간은 2년이며 2024-25 시즌부터 감독직을 맡게 된다.
2024년 5월 25일, 계약을 2027년까지 연장했다.
2025년 11월 11일, 전반기를 6위로 마치고 상호 합의에 따라 계약을 종료했다.
2024년 5월 25일, 계약을 2027년까지 연장했다.
2025년 11월 11일, 전반기를 6위로 마치고 상호 합의에 따라 계약을 종료했다.
2025년 12월 21일, 친정팀 츠르베나 즈베즈다로 복귀하였다. 이후 후반기 동안 팀을 잘 정비하면서 세르비아 수페르리가 우승과 세르비아 컵 우승으로 더블을 달성하며 오랜만에 성공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1994~1998)
- 세르비아-몬테네그로 1부 리그: 1994-95
- 세르비아-몬테네그로컵: 1994-95, 1995-96, 1996-97
- SS 라치오 (1998~2004)
- 세리에 A: 1999-2000
- 코파 이탈리아: 1999-2000, 2003-04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998, 2000
- UEFA 컵위너스컵: 1998-99
- UEFA 슈퍼컵: 1999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4~2013)
- 세리에 A: 2005-06, 2006-07, 2007-08, 2008-09, 2009-10
- 코파 이탈리아: 2004-05, 2005-06, 2009-10, 2010-11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5, 2006, 2008, 2010
- UEFA 챔피언스 리그: 2009-10
- FIFA 클럽 월드컵: 2010
- FK 츠르베나 즈베즈다 (2019~2022, 2025~ )
- 세르비아 수페르리가: 2019-20, 2020-21, 2021-22, 2025-26
- 세르비아컵: 2020-21, 2021-22, 2025-26
- 페렌츠바로시 TC (2023~2024)
- 넴제티 버이녹샤그 I: 2023-24

- 국가대표 경력 중 특이한 점이 있는데, A매치 데뷔전을 대한민국과의 경기[4]에서, 마지막을 일본과의 경기로 아시아 국가를 통해 처음과 끝을 기록했다.
- 현재 폐간된 잡지인 풋볼 위클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데얀 다미아노비치가 데얀 스탄코비치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스탄코비치가 공을 차면 공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빨랐다고 언급했었다.
- 2009-10 시즌 트레블 멤버들이 거의 다 그렇듯이 스탄코비치도 인테르에서 트레블을 함께 했던 주제 무리뉴와 특별히 끈끈한 사제 관계를 자랑한다. 본래 무리뉴는 인테르 부임 이후 왕성하지 않은 활동량 때문에 스탄코비치를 벤치로 내리고 방출도 고려하였지만, 데키는 자신을 증명하고자 더욱 많은 노력을 하였고 끝내 무리뉴를 탄복시키며 트레블의 주역으로 등극한다. 스탄코비치는 이때를 회상하면서 '무리뉴가 자신을 진정한 선수이자 전사로 길러내주었다'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리뉴에 대한 존경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곤 하는데, 이는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는 시점에도 여전하다. 특히 삼프도리아 감독 재임 당시 무리뉴가 이끄때 AS 로마와 경기를 치렀을 때 로마 팬들이 스탄코비치의 출신 국가인 세르비아를 빗대어 '집시' 등으로 단체 인종차별 구호를 외치며 야유를 퍼붓자 무리뉴가 손을 들어 로마 팬들의 인종차별을 멈추게 하였는데, 스탄코비치는 가슴에 손을 대고 감사 인사를 전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은 일화도 있다.
- 무리뉴가 인테르를 떠나고 스탄코비치도 노쇠화되면서 인테르에서의 입지가 점차 좁아질 때, 이탈리아의 예능 프로그램 중 몰카 컨셉 프로그램이 그를 모독한 바 있었다. 당시 구단주였던 마시모 모라티의 성대모사를 하던 코미디언이 스탄코비치에게 전화를 걸어 '너는 팀에 필요가 없으니 당장 내일 방출하겠다'라고 몰카를 짠 것. 스탄코비치는 이 전화를 받고 진심으로 충격 받아 몇 시간을 오열했으며,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자 수많은 인테리스타들이 팀의 레전드를 모욕하였다며 해당 방송국에 항의전화를 퍼붓는 소동이 벌어졌다. 방송국은 유쾌하게 수습하려 했지만 스탄코비치는 이 날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고개를 젓곤 한다.
PL의 3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미드필더이다아이러브사커의 운영진 중 한 명이 제라드 vs 램파드 논쟁이 벌어질 때 뜬금없이 스탄코비치를 PL에서 3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미드필더라고 칭송해 많은 유저들의 의문을 자아내게 한 바 있다. 선수 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스탄코비치는 한 번도 영국 무대에서 뛴 적이 없다. 이 운영자는 한 술 더 떠 그가 시즌당 10골은 충분히 넣어줄 수 있는 미드필더라고 칭송한 바 있지만, 애석하게도 스탄코비치의 커리어 하이 시즌의 기록은 9골에 그친다. 그 운영자는 수많은 조롱을 받았으며, 이후에도 길이길이 남는 알싸의 희대의 밈으로 자리잡았다.
- 그러나 실제로 스탄코비치의 기량이 월드클래스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 때 'EPL의 제라드에 대한 세리에의 대답'이라고 불릴 정도로 공수 밸런스와 파괴적인 중거리 슛 등 세계 정상급 미드필더였던 그였기에, 자국 세르비아를 비롯한 수많은 축구 꿈나무들의 영웅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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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히 2009-10시즌에 에스테반 캄비아소의 부상으로 스탄코비치가 대신 그 자리를 맡았는데, 그럼에도 수비 할 것 다하고 무려 밀란 더비에서 27미터 중거리슛을 성공시키기도 한다.[2] 실점은 20골.[3] 이 때 샬케에서 뛴 선수가 바로 과거 수원 삼성 블루윙즈, 전북 현대 모터스 소속으로 뛰었던 에두다. 이 경기에서 2골을 넣어 팀 승리에 공헌했다.[4] 유고슬라비아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치른 경기로, 해당 경기에서 6:1로 한국을 대파했다.[5] 본래 유고슬라비아 소속이었지만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인하여 나라가 갈라지고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으로 바뀌었고, 이후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로 갈라지며 세르비아 국대로 변경했다. 유고슬라비아가 전쟁을 겪고 발칸반도의 민족 문제가 복잡히 얽혀있어 또 갈라지게 되면서 국가가 두번이나 정부가 바뀌거나 해체되어서 승계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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