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젠나로 가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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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1978년 출생
- 칼라브리아 주 출신 인물
- 이탈리아의 남자 축구 선수
- 중앙 미드필더
- 공격형 미드필더
- 라이트윙
- 1995년 데뷔
- 2013년 은퇴
- AC 페루자 칼초/은퇴, 이적
- 레인저스 FC/은퇴, 이적
- US 살레르니타나 1919/은퇴, 이적
- AC 밀란/은퇴, 이적
- FC 시옹/은퇴, 이적
- UEFA 챔피언스 리그 다회 우승 선수
- 이탈리아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
-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참가 선수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선수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FIFA 월드컵 우승 선수
- UEFA 유로 2004 참가 선수
- UEFA 유로 2008 참가 선수
- 2009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2000 시드니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이탈리아의 남자 축구 감독
- FC 시옹/역대 감독
- 선수 겸 감독/축구
- 팔레르모 FC/역대 감독
- OFI 크레타 FC/역대 감독
- 피사 SC/역대 감독
- AC 밀란/역대 감독
- SSC 나폴리/역대 감독
- ACF 피오렌티나/역대 감독
- 발렌시아 CF/역대 감독
-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역대 감독
-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역대 감독
- SS 라치오/역대 감독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젠나로 가투소의 역임 직책 | ||||||||||||||||||||||||||||||||||||||||||||||||||||||||||||||||||||||||||||||||||||||||||||||||||||||||||||||||||||||||||||||||||||||||||||||||||
젠나로 가투소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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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나로 가투소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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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à Sportiva Lazio S.p.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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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젠나로 가투소 Gennaro Gattuso | ||||
본명 | 젠나로 이반 리노 가투소 Gennaro Ivan Rino Gattuso | ||||
출생 | |||||
칼라브리아주 코릴리아노칼라브로 | |||||
국적 | |||||
신체 | |||||
직업 | |||||
주발 | 오른발 | ||||
경력 | 선수 | ||||
감독 | FC 시옹 (2013 / 선수 겸 감독) US 팔레르모 (2013~2014) OFI 크레타 FC (2014~2015) AC 피사 (2015~2017) AC 밀란 프리마베라 (2017) AC 밀란 (2017~2019) SSC 나폴리 (2019~2021) ACF 피오렌티나 (2021)[2] 발렌시아 CF (2022~2023)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23~2024)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 (2024~2025) 이탈리아 대표팀 (2025~2026) SS 라치오 (2026~ ) | ||||
국가대표 | 73경기 1골 (이탈리아 / 2000~2010) | ||||
정보 더 보기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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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투소는 1995년 AC 페루자 칼초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레인저스로 방출되고 만다. 가투소는 리그 34경기에 출전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이탈리아로 복귀했는데, 짧은 기간만 레인저스에서 뛰기는 했지만 스코틀랜드 리그 특유의 거친 플레이스타일을 익힌 일은 이후 가투소의 경력에 큰 도움[3]이 되었다. 이후 가투소는 살레르니타나 칼초를 거쳐 AC 밀란으로 이적한다.


그때 가투소는 유럽 최고의 팀 중 하나였던 AC 밀란의 명성에 어울리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에서 호나우두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팀의 중원의 핵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가투소와 피를로를 같이 뛰게 하며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게 만들었고, 가투소와 피를로는 2000년대 밀란 제너레이션의 성공 시대를 이끈다.
2002-03 시즌에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유벤투스를 승부차기 끝에 제압하고 빅 이어를 들어올렸으며, 2003-04 시즌에는 스쿠데토를 차지한다. 2004-05 시즌에도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했지만, 리버풀과의 결승전에서 3:0으로 리드하다가 3:3으로 따라잡히고, 승부차기에서 패해 이스탄불의 악몽을 경험하게 된다.
이맘때쯤 AC 밀란의 주축 선수들의 나이가 30대에 접어들며 노인정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었는데, 2006-07 시즌 세리에 A에서 4위에 그치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카카를 앞세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고, 가투소도 피를로, 세도르프와 함께 중원의 지배자로 군림하여 맹활약을 펼쳤다.
AC 밀란은 바이에른 뮌헨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격파하며 다시 한 번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했다. 특히 가투소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꽁꽁 묶는 대활약을 펼쳤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상대는 2년 전 이스탄불의 악몽을 안겨주었던 리버풀이었고, 필리포 인자기의 멀티골로 2:1로 승리, 복수에 성공하며 빅 이어를 들어올렸다.
피를로가 부상으로 이탈했던 2008-09 시즌에 안첼로티가 울며 겨자먹기로 피를로 자리에 가투소를 잠시 썼는데 그 시기 초, 중반만 해도 갑자기 절친인 피를로의 영혼이 빙의했는지 안드레아 가를로 모드가 된 적이 있다. 바로 전시즌에 그의 명성에 미치지 못했던 활약을 만회할 정도의 활약이었으나 키에보전에서 무릎 부상을 당하며 시즌 아웃이 됐다. 이 당시 부상의 전말을 알아보니 경기 초반에 십자인대가 파열되고도 풀타임을 소화한 것이 알려졌다.
2009-10 시즌 들어서는 노쇠화와 부상여파로 폼이 심각하게 하락해버렸고, 그의 공백은 신임 주장 암브로시니가 메꾸게 된다. 이는 피지컬 위주의 파워풀한 플레이도 한몫한다. 시즌 초반 밀란더비에서 역습을 막다가 PK를 허용하며 경고를 받은 상태에서 이후 웨슬리 스네이더에게 거친 태클로 범해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한다. 이때 퇴장 당하며 몹시 흥분한 나머지 그가 찼던 주장 완장을 던져버리는 행동을 한다. 이런 무례한 행동은 밀란팬들 조차도 실드를 칠 수 없을 정도였고 경기마저 인테르에게 대패하며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된다.
2010-11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토트넘 홋스퍼와의 원정경기에서 상대팀 코치를 거세게 밀치고 흥분해서 백태클을 하는 등의 거친 행동을 하다 경고 누적으로 다음경기 출전이 불가능하고 팀도 0:1로 졌다. 경기 끝나고도 토트넘의 코치에게 박치기를 시전하는 등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4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2차전 출전정지까지 더해 5경기 출장 정지.
2010-11 시즌 개막전에서 팀 동료 네스타와 부딪힌 후 경기 출전을 계속 하지 못하였다. 확인 결과 축구선수 생명의 위기인 외전신경마비가 왔고 이증세는 물체가 2개로 보이고 심하면 안면 신경마비까지 온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반드시 필드에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많은 팬들을 감동시켰다.#
2012년 5월 11일 밀란을 떠나는 것이 확정되었다.

그때 가투소는 유럽 최고의 팀 중 하나였던 AC 밀란의 명성에 어울리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에서 호나우두를 상대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팀의 중원의 핵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가투소와 피를로를 같이 뛰게 하며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게 만들었고, 가투소와 피를로는 2000년대 밀란 제너레이션의 성공 시대를 이끈다.
2002-03 시즌에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유벤투스를 승부차기 끝에 제압하고 빅 이어를 들어올렸으며, 2003-04 시즌에는 스쿠데토를 차지한다. 2004-05 시즌에도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했지만, 리버풀과의 결승전에서 3:0으로 리드하다가 3:3으로 따라잡히고, 승부차기에서 패해 이스탄불의 악몽을 경험하게 된다.
이맘때쯤 AC 밀란의 주축 선수들의 나이가 30대에 접어들며 노인정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었는데, 2006-07 시즌 세리에 A에서 4위에 그치며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카카를 앞세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고, 가투소도 피를로, 세도르프와 함께 중원의 지배자로 군림하여 맹활약을 펼쳤다.
AC 밀란은 바이에른 뮌헨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격파하며 다시 한 번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했다. 특히 가투소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꽁꽁 묶는 대활약을 펼쳤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상대는 2년 전 이스탄불의 악몽을 안겨주었던 리버풀이었고, 필리포 인자기의 멀티골로 2:1로 승리, 복수에 성공하며 빅 이어를 들어올렸다.
피를로가 부상으로 이탈했던 2008-09 시즌에 안첼로티가 울며 겨자먹기로 피를로 자리에 가투소를 잠시 썼는데 그 시기 초, 중반만 해도 갑자기 절친인 피를로의 영혼이 빙의했는지 안드레아 가를로 모드가 된 적이 있다. 바로 전시즌에 그의 명성에 미치지 못했던 활약을 만회할 정도의 활약이었으나 키에보전에서 무릎 부상을 당하며 시즌 아웃이 됐다. 이 당시 부상의 전말을 알아보니 경기 초반에 십자인대가 파열되고도 풀타임을 소화한 것이 알려졌다.
2009-10 시즌 들어서는 노쇠화와 부상여파로 폼이 심각하게 하락해버렸고, 그의 공백은 신임 주장 암브로시니가 메꾸게 된다. 이는 피지컬 위주의 파워풀한 플레이도 한몫한다. 시즌 초반 밀란더비에서 역습을 막다가 PK를 허용하며 경고를 받은 상태에서 이후 웨슬리 스네이더에게 거친 태클로 범해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한다. 이때 퇴장 당하며 몹시 흥분한 나머지 그가 찼던 주장 완장을 던져버리는 행동을 한다. 이런 무례한 행동은 밀란팬들 조차도 실드를 칠 수 없을 정도였고 경기마저 인테르에게 대패하며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된다.
2010-11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토트넘 홋스퍼와의 원정경기에서 상대팀 코치를 거세게 밀치고 흥분해서 백태클을 하는 등의 거친 행동을 하다 경고 누적으로 다음경기 출전이 불가능하고 팀도 0:1로 졌다. 경기 끝나고도 토트넘의 코치에게 박치기를 시전하는 등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4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2차전 출전정지까지 더해 5경기 출장 정지.
2010-11 시즌 개막전에서 팀 동료 네스타와 부딪힌 후 경기 출전을 계속 하지 못하였다. 확인 결과 축구선수 생명의 위기인 외전신경마비가 왔고 이증세는 물체가 2개로 보이고 심하면 안면 신경마비까지 온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반드시 필드에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많은 팬들을 감동시켰다.#
2012년 5월 11일 밀란을 떠나는 것이 확정되었다.
"안녕을 고할 시간이다. 난 1년간 떠나있는다. 날 위한 시간이 더 이상은 없을 거라고 깨달았고, 난 이곳을 떠난다. 1년 안에 만약 우리가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면 그 때를 기다려보자."
2000년에 국가대표로 처음 선발되어 2002 한일 월드컵에 출전한다. 16강에서 후반 교체선수로 출전하여 빠른 패스로 나름대로의 활약을 펼쳤다. 이 경기는 토티 등 선배들마저도 멘탈이 나가서 반칙을 범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상대적으로 얌전하게 플레이했다. 심지어 연장 후반에 설기현의 실수로 이운재와 1대1 찬스를 맞았으나, 아쉽게도 이운재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안정환의 골든골로 이탈리아는 16강에서 탈락했다. 경기 후 그라운드에 망연자실하게 뻗어있던 가투소를 마테라치가 위로해 주는 장면이 찍히기도 했다.
유로 2004에서도 조별 리그에서 탈락한 이탈리아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반전을 노렸으나, 이탈리아 축구계를 뒤흔든 칼초폴리 승부조작 사건이 일어났고, 심지어 대회 도중 알레산드로 네스타가 부상으로 낙마하는 등 분위기가 안 좋았다.
하지만 마테라치가 네스타의 공백을 훌륭히 메우고 주장이었던 파비오 칸나바로와 함께 철벽을 세웠으며, 가투소는 피를로와 함께 중원의 핵으로 맹활약을 펼쳤다. 이탈리아는 가나, 체코, 호주, 우크라이나, 독일을 격파하고 결승전에 진출했고,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승부차기 끝에 꺾으며 월드컵 4회 우승을 차지한다. 또한 월드컵 올스타팀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유로 2008부터 폼이 하락하기 시작하더니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조별 리그 탈락 후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유로 2004에서도 조별 리그에서 탈락한 이탈리아는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반전을 노렸으나, 이탈리아 축구계를 뒤흔든 칼초폴리 승부조작 사건이 일어났고, 심지어 대회 도중 알레산드로 네스타가 부상으로 낙마하는 등 분위기가 안 좋았다.
하지만 마테라치가 네스타의 공백을 훌륭히 메우고 주장이었던 파비오 칸나바로와 함께 철벽을 세웠으며, 가투소는 피를로와 함께 중원의 핵으로 맹활약을 펼쳤다. 이탈리아는 가나, 체코, 호주, 우크라이나, 독일을 격파하고 결승전에 진출했고, 결승전에서 프랑스를 승부차기 끝에 꺾으며 월드컵 4회 우승을 차지한다. 또한 월드컵 올스타팀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유로 2008부터 폼이 하락하기 시작하더니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의 조별 리그 탈락 후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가투소는 최고의 '전투형' 미드필더로 수비형 미드필더[5]에 요구되는 직접적인 볼 탈취능력과 힘, 넓은 공간을 커버하는 활동량과 지구력 그리고 상대팀의 전개를 읽어내며 언제나 올바른 위치를 선점하고 전방으로가는 패스 길목을 차단하는 능력은 동시대를 호령했던 어떤 미드필더보다 훌륭했다.[6] 볼 컨트롤 능력은 평범한 편이었지만 엄청난 활동량과 이를 활용한 수비능력, 미드필드 점유 능력으로 세계 수준의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다. 활동량을 바탕으로 상대 선수를 끊임없이 압박하며, 거친 태클로 상대의 기를 꺾고 경기 흐름을 빼앗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집중마크해 경기장에서 지워버린 적도 있을 정도. 요즘으로 치면 은골로 캉테와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이러한 하드워커스러운 플레이스타일 때문에 경고를 많이 받았고, 볼을 다루는 컨트롤도 투박한 편이었다. 물론 가투소는 다른 능력이 워낙 출중했기에 이러한 단점들이 잘 보여지지 않았다.
2000년대 AC밀란의 주 공격줄기는 가투소가 공을 탈취하면 깊게 위치한 피를로에게 공을 건네던지 세도르프에게 공을 건네 플레이 메이킹을 맡겼다. 그렇기에 가투소의 롱패스는 매우 보기 드물었다. AC밀란의 전설의 포백인 말네스카 라인은 제대로 가동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3선에서 상대방 미드필더를 힘으로 찍어누르고 패스길목을 차단하던 가투소가 없었다면 실점을 많이 했을 거라는 의견이 많다. 가투소의 최고 레벨의 지구력과 수비적 지능 때문에 깊은 위치에서 경기를 하는 피를로의 지구력은 온전히 공을 소유하고 공격전개 때만 쓰게 되면서 이는 클럽과 국가대표의 성공으로 이어졌고 이 조합이 유럽에서 통하다보니 둘은 더블 볼란치의 대명사가 되었다. 클럽과 국가대표에서 피를로와 늘 파트너를 이루다 보니 커리어가 지속될수록 패스에도 점차 눈을 뜨게 됐으나 전체적으로는 클로드 마켈렐레와 같이 딱히 특출나게 창의적인걸 기대하기는 힘들었으며 마르코 마테라치와 비슷하게 특유의 성깔과 강력한 태클로 상대 팀을 쫄아버리게 만드는 역할도 자연스럽게 맡았었다.
경기를 보면 오른쪽 윙어처럼 뛰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확한 포지션은 오른쪽 중앙 미드필더, 수비롤을 맡고 있는 메짤라라고 보면된다. 공격가담을 위해 오른쪽 측면으로 전진하는 경우가 많았고 더미플레이나 연계플레이를 즐겨했다. 하지만 박스 근처로 침투하는 빈도는 매우 적었다.
그러나 피를로의 유벤투스 이적 후 본인의 역할과 맞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여담으로 가투소를 관리한 피지컬 트레이너는 가투소의 심폐 지구력 능력은 실제론 평범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어마어마한 활동량[7]을 기록할 수 있는지 물어보자, 선수가 힘들어도 그냥 참고 악착같이 뛰는 거라고 하며 가히 투지와 정신력의 표본이라고 불릴 만하다.
2000년대 AC밀란의 주 공격줄기는 가투소가 공을 탈취하면 깊게 위치한 피를로에게 공을 건네던지 세도르프에게 공을 건네 플레이 메이킹을 맡겼다. 그렇기에 가투소의 롱패스는 매우 보기 드물었다. AC밀란의 전설의 포백인 말네스카 라인은 제대로 가동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3선에서 상대방 미드필더를 힘으로 찍어누르고 패스길목을 차단하던 가투소가 없었다면 실점을 많이 했을 거라는 의견이 많다. 가투소의 최고 레벨의 지구력과 수비적 지능 때문에 깊은 위치에서 경기를 하는 피를로의 지구력은 온전히 공을 소유하고 공격전개 때만 쓰게 되면서 이는 클럽과 국가대표의 성공으로 이어졌고 이 조합이 유럽에서 통하다보니 둘은 더블 볼란치의 대명사가 되었다. 클럽과 국가대표에서 피를로와 늘 파트너를 이루다 보니 커리어가 지속될수록 패스에도 점차 눈을 뜨게 됐으나 전체적으로는 클로드 마켈렐레와 같이 딱히 특출나게 창의적인걸 기대하기는 힘들었으며 마르코 마테라치와 비슷하게 특유의 성깔과 강력한 태클로 상대 팀을 쫄아버리게 만드는 역할도 자연스럽게 맡았었다.
경기를 보면 오른쪽 윙어처럼 뛰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확한 포지션은 오른쪽 중앙 미드필더, 수비롤을 맡고 있는 메짤라라고 보면된다. 공격가담을 위해 오른쪽 측면으로 전진하는 경우가 많았고 더미플레이나 연계플레이를 즐겨했다. 하지만 박스 근처로 침투하는 빈도는 매우 적었다.
그러나 피를로의 유벤투스 이적 후 본인의 역할과 맞는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다.
여담으로 가투소를 관리한 피지컬 트레이너는 가투소의 심폐 지구력 능력은 실제론 평범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어마어마한 활동량[7]을 기록할 수 있는지 물어보자, 선수가 힘들어도 그냥 참고 악착같이 뛰는 거라고 하며 가히 투지와 정신력의 표본이라고 불릴 만하다.
AC 밀란에서는 4-3-3 포메이션을 사용했다.
티에무에 바카요코를 갱생시켜 4-3-3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사용하면서 처참했던 밀란을 5위로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SSC 나폴리에서는 첫 시즌에는 4-3-3 포메이션을, 두 번째 시즌에는 4-2-3-1 포메이션과 4-3-3 포메이션을 혼용했다.
약팀 상대로는 공격적인 모습으로 경기를 풀어나가고, 더 큰 체급의 팀을 만났다고 생각되면 양쪽 윙 포워드들을 깊숙한 위치까지 내리는 수비가담을 시킴으로써 전체적으로 수비적으로 내려선 상태로 경기를 치르는 스타일이다. 가장 큰 전술적 특징은 빠르고 직선적인 공격 전개보다는 후방에서부터 차근차근 빌드업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가투소하면 밀란에서의 모습만 본 밀란팬들이나 타팀팬들은 플랜 B의 부재를 꼬집지만, 나폴리에서는 나름 여러 가지 플랜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 시즌에는 주로 디에고 데메를 홀딩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4-3-3 포메이션만을 사용했으나, 두 번째 시즌에는 빅터 오시멘과 드리스 메르텐스를 공존시키기 위해 메르텐스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4-2-3-1 포메이션을 주로 사용했다. 그런데 최전방 공격수로 클럽 레코드를 깬 오시멘을 기용하면서 기존의 메르텐스까지 기용하기 위해 사용했던 이 전술에서 뜬금없이 피오트르 지엘린스키의 포텐이 터지게 된다.
메르텐스가 시즌 초 부상으로 이탈하자 중앙 미드필더인 지엘린스키가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출장하기 시작했고, 지엘린스키가 여기서 기량이 만개한 것이다. 지엘린스키는 부드러운 터치를 이용한 드리블, 빠른 속도, 강력한 슈팅력에 강점이 있지만, 시야가 아주 넓지도 않고 후방에서 빌드업을 돕거나 수비적인 롤을 하기에도 애매한 선수라 그 전까지 애매하다거나 아쉽다는 평을 자주 듣던 선수였다. 그런데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뛰자 본인의 장점만을 발휘할 수 있었고, 리그에서만 시즌 8골 10도움을 기록했으며 시즌 전체 10골 12도움을 기록하며 리그 탑급 공미로 우뚝 섰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엘린스키의 포텐을 터뜨린건 그를 나폴리로 데려온 마우리치오 사리나 주전으로 기용하기 시작한 카를로 안첼로티가 아닌, 가투소다.
가투소는 또한 4-2-3-1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4-3-3도 사용했고, 때로는 3백도 시도해 보는 등 전술적으로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경기 상황에 따라 빠르게 교체 카드를 사용해 경기를 뒤집는 임기 응변 능력도 종종 보여주었다.
이렇게 사람들의 인식과 다르게 여러 플랜을 가지고 임기 응변도 어느 정도 보여주었던 가투소지만, 진짜 문제는 공격 전술이나 수비 전술에서 잘 짜여진 세부 전술이 많이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경기를 본 나폴리팬들이 가투소가 너무 지나치게 선수들에게 맡기는 것 아니냐고 할 정도였다. 좋게 말하면 선수들에게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이지만, 그 정도가 지나쳤기에 결국 전술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팀을 상대로는 그 팀이 중하위권 전력이라도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2020-21 시즌 피오렌티나와 같이 전술적 완성도가 낮던 팀에게는 6-0 대승을 거두는가 하면, 반대로 전술적 짜임새가 있던 빈첸초 이탈리아노 감독의 스페치아나 이반 유리치 감독의 엘라스 베로나에게는 고전했다.
나폴리에서의 두 번째 시즌, 이전과 다르게 전술적으로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었음에도 결국 5위라는 부진한 성적으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한 데에는 이 세부 전술의 부재와 뒤에 따로 서술된 알 수 없는 선수 기용 성향에 있다.
또한 유럽 대항전에서의 성적도 부진했다는 것도 단점이다. 하필이면 그때 부상자가 많았지만 창단 후 유럽 대항전에 처음 진출한 그라나다에게 유로파 리그 32강에서 충격적인 탈락을 기록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티에무에 바카요코를 갱생시켜 4-3-3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사용하면서 처참했던 밀란을 5위로 끌어올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SSC 나폴리에서는 첫 시즌에는 4-3-3 포메이션을, 두 번째 시즌에는 4-2-3-1 포메이션과 4-3-3 포메이션을 혼용했다.
약팀 상대로는 공격적인 모습으로 경기를 풀어나가고, 더 큰 체급의 팀을 만났다고 생각되면 양쪽 윙 포워드들을 깊숙한 위치까지 내리는 수비가담을 시킴으로써 전체적으로 수비적으로 내려선 상태로 경기를 치르는 스타일이다. 가장 큰 전술적 특징은 빠르고 직선적인 공격 전개보다는 후방에서부터 차근차근 빌드업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가투소하면 밀란에서의 모습만 본 밀란팬들이나 타팀팬들은 플랜 B의 부재를 꼬집지만, 나폴리에서는 나름 여러 가지 플랜을 보여주었다. 첫 번째 시즌에는 주로 디에고 데메를 홀딩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4-3-3 포메이션만을 사용했으나, 두 번째 시즌에는 빅터 오시멘과 드리스 메르텐스를 공존시키기 위해 메르텐스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4-2-3-1 포메이션을 주로 사용했다. 그런데 최전방 공격수로 클럽 레코드를 깬 오시멘을 기용하면서 기존의 메르텐스까지 기용하기 위해 사용했던 이 전술에서 뜬금없이 피오트르 지엘린스키의 포텐이 터지게 된다.
메르텐스가 시즌 초 부상으로 이탈하자 중앙 미드필더인 지엘린스키가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 출장하기 시작했고, 지엘린스키가 여기서 기량이 만개한 것이다. 지엘린스키는 부드러운 터치를 이용한 드리블, 빠른 속도, 강력한 슈팅력에 강점이 있지만, 시야가 아주 넓지도 않고 후방에서 빌드업을 돕거나 수비적인 롤을 하기에도 애매한 선수라 그 전까지 애매하다거나 아쉽다는 평을 자주 듣던 선수였다. 그런데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뛰자 본인의 장점만을 발휘할 수 있었고, 리그에서만 시즌 8골 10도움을 기록했으며 시즌 전체 10골 12도움을 기록하며 리그 탑급 공미로 우뚝 섰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엘린스키의 포텐을 터뜨린건 그를 나폴리로 데려온 마우리치오 사리나 주전으로 기용하기 시작한 카를로 안첼로티가 아닌, 가투소다.
가투소는 또한 4-2-3-1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4-3-3도 사용했고, 때로는 3백도 시도해 보는 등 전술적으로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 경기 상황에 따라 빠르게 교체 카드를 사용해 경기를 뒤집는 임기 응변 능력도 종종 보여주었다.
이렇게 사람들의 인식과 다르게 여러 플랜을 가지고 임기 응변도 어느 정도 보여주었던 가투소지만, 진짜 문제는 공격 전술이나 수비 전술에서 잘 짜여진 세부 전술이 많이 부족했다는 것이었다. 오죽하면 경기를 본 나폴리팬들이 가투소가 너무 지나치게 선수들에게 맡기는 것 아니냐고 할 정도였다. 좋게 말하면 선수들에게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이지만, 그 정도가 지나쳤기에 결국 전술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팀을 상대로는 그 팀이 중하위권 전력이라도 고전할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2020-21 시즌 피오렌티나와 같이 전술적 완성도가 낮던 팀에게는 6-0 대승을 거두는가 하면, 반대로 전술적 짜임새가 있던 빈첸초 이탈리아노 감독의 스페치아나 이반 유리치 감독의 엘라스 베로나에게는 고전했다.
나폴리에서의 두 번째 시즌, 이전과 다르게 전술적으로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었음에도 결국 5위라는 부진한 성적으로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한 데에는 이 세부 전술의 부재와 뒤에 따로 서술된 알 수 없는 선수 기용 성향에 있다.
또한 유럽 대항전에서의 성적도 부진했다는 것도 단점이다. 하필이면 그때 부상자가 많았지만 창단 후 유럽 대항전에 처음 진출한 그라나다에게 유로파 리그 32강에서 충격적인 탈락을 기록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AC 밀란과 SSC 나폴리에서 보여준 선수단 장악 능력은 정말 뛰어났다.
우선 밀란의 경우에는 가투소가 명실상부 팀의 레전드였기에 선수단에 의욕과 프로 의식을 심는데 큰 역할을 했다. 본인도 밀란의 레전드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례로 밀란을 떠날 때 계약상 남아있던 11m 유로의 잔여 연봉을 본인의 스태프들이 2년 동안 받아야 할 봉급(총 10m 유로)을 일시 지급받게 하기 위해 포기했다.
나폴리의 경우에 가투소가 부임할 때만 해도 선수단 분위기가 정말 안 좋았다. 전임 감독이자 자신의 스승인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세리에 A 9전 연속 무승을 기록하며, 팀이 중하위권으로 추락해 있었으며, 구단의 합숙 훈련을 선수들이 당일 날이 되어 갑자기 항명하고 거부하면서 구단과 선수단의 관계 역시 박살이 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중도 부임한 가투소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팀을 휘어잡고 선수들이 다시 경기에 최선을 다하도록 만들어냈다. 그 결과 해당 시즌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강등권과 점차 가까워지던 팀을 7위까지 끌어올렸다.
또한 본인의 현역 시절과 마찬가지로 높은 수준의 성실함을 선수들에게 요구했다. 마리우 후이가 훈련에서 성실하게 뛰지 않았다는 이유로 명단에서 제외시켰고, 그 상태로 편하게 집에서 경기를 볼 자격이 없다며 명단 제외 상태로 원정 경기에 대동시킨 적이 있었다. 후이는 항명 사태 때에도 경기장에서 혼자 열심히 뛰는 게 보였을 정도로 열심히 경기를 뛰기로 유명한 선수인데, 훈련장에서 최선을 다해 뛰지 않았다고 명단에서 제외시킨 것을 보면 가투소가 얼마나 높은 성실함을 선수들에게 요구하는 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조금 과했다는 이야기도 팬들 사이에 있다. 가투소는 경기가 안 풀릴 때 조금 더 열심히 그리고 많이 뛰어야 한다고 선수들에게 소리치거나[8]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경기들에서 선수들의 활동량 기록은 항상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또한 경기 중계를 봐도 선수들이 건성으로 뛰는 것 같지 않은데 계속 저런 말을 하니 팬들은 전술적 돌파구를 못 찾아 그러는 거 아니냐는 물음도 표했다. 또는 선수들에게 자신의 현역 시절의 말도 안 되는 활동량을 요구하는 것 같아 과하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팬서비스에 대한 신념도 남다른데, 경기 과정이나 결과가 어떠하든 선수들이 경기 종료 후 무조건 관중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도록 명령했다.
우선 밀란의 경우에는 가투소가 명실상부 팀의 레전드였기에 선수단에 의욕과 프로 의식을 심는데 큰 역할을 했다. 본인도 밀란의 레전드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례로 밀란을 떠날 때 계약상 남아있던 11m 유로의 잔여 연봉을 본인의 스태프들이 2년 동안 받아야 할 봉급(총 10m 유로)을 일시 지급받게 하기 위해 포기했다.
나폴리의 경우에 가투소가 부임할 때만 해도 선수단 분위기가 정말 안 좋았다. 전임 감독이자 자신의 스승인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세리에 A 9전 연속 무승을 기록하며, 팀이 중하위권으로 추락해 있었으며, 구단의 합숙 훈련을 선수들이 당일 날이 되어 갑자기 항명하고 거부하면서 구단과 선수단의 관계 역시 박살이 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중도 부임한 가투소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팀을 휘어잡고 선수들이 다시 경기에 최선을 다하도록 만들어냈다. 그 결과 해당 시즌 코파 이탈리아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강등권과 점차 가까워지던 팀을 7위까지 끌어올렸다.
또한 본인의 현역 시절과 마찬가지로 높은 수준의 성실함을 선수들에게 요구했다. 마리우 후이가 훈련에서 성실하게 뛰지 않았다는 이유로 명단에서 제외시켰고, 그 상태로 편하게 집에서 경기를 볼 자격이 없다며 명단 제외 상태로 원정 경기에 대동시킨 적이 있었다. 후이는 항명 사태 때에도 경기장에서 혼자 열심히 뛰는 게 보였을 정도로 열심히 경기를 뛰기로 유명한 선수인데, 훈련장에서 최선을 다해 뛰지 않았다고 명단에서 제외시킨 것을 보면 가투소가 얼마나 높은 성실함을 선수들에게 요구하는 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조금 과했다는 이야기도 팬들 사이에 있다. 가투소는 경기가 안 풀릴 때 조금 더 열심히 그리고 많이 뛰어야 한다고 선수들에게 소리치거나[8]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경기들에서 선수들의 활동량 기록은 항상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또한 경기 중계를 봐도 선수들이 건성으로 뛰는 것 같지 않은데 계속 저런 말을 하니 팬들은 전술적 돌파구를 못 찾아 그러는 거 아니냐는 물음도 표했다. 또는 선수들에게 자신의 현역 시절의 말도 안 되는 활동량을 요구하는 것 같아 과하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팬서비스에 대한 신념도 남다른데, 경기 과정이나 결과가 어떠하든 선수들이 경기 종료 후 무조건 관중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도록 명령했다.
선수 기용에 관련하여 안 좋은 말이 많다. 전형적인 이탈리안 감독들의 똥고집을 많이 보여 준다.
나폴리 시절, 티에무에 바카요코가 계속해서 안 좋은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계속 선발로 기용하였다. 팬들도 밀란 시절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좋은 모습을 보여 줄 것이라 믿고 기다려 주었지만 경기만 40경기 넘게 뛰고 끝까지 좋은 모습은 보이지 못해 결국 디에고 데메가 다시 주전으로 뛰었다. 거기에 임대생 신분으로 기존 선수단 선수인 엘리프 엘마스와 스타니슬라프 로보트카 등의 선발 출전 기회를 빼앗은 셈이 되었기에 바카요코도 욕을 많이 먹었다.
2019-20 시즌 엘라스 베로나 수비의 핵심이었던 센터백 아미르 라흐마니가 20-21 시즌 전 영입되었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반년 동안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언론에서도 왜 라흐마니가 출전하지 못하는지 의문을 품었고, 라흐마니가 인터뷰를 통해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으나 가투소는 계속해서 라흐마니를 팀에서 배제시켰다. 하지만 막상 출전하니 로테이션이었던 니콜라 막시모비치보다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로 모자라 라흐마니는 2022-23 시즌 김민재와 함께 벽 듀오를 결성하면서 결국 나폴리의 리그 우승 주역까지 되었다.
나폴리 시절, 티에무에 바카요코가 계속해서 안 좋은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계속 선발로 기용하였다. 팬들도 밀란 시절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좋은 모습을 보여 줄 것이라 믿고 기다려 주었지만 경기만 40경기 넘게 뛰고 끝까지 좋은 모습은 보이지 못해 결국 디에고 데메가 다시 주전으로 뛰었다. 거기에 임대생 신분으로 기존 선수단 선수인 엘리프 엘마스와 스타니슬라프 로보트카 등의 선발 출전 기회를 빼앗은 셈이 되었기에 바카요코도 욕을 많이 먹었다.
2019-20 시즌 엘라스 베로나 수비의 핵심이었던 센터백 아미르 라흐마니가 20-21 시즌 전 영입되었지만, 아무런 이유 없이 반년 동안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언론에서도 왜 라흐마니가 출전하지 못하는지 의문을 품었고, 라흐마니가 인터뷰를 통해 답답하고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으나 가투소는 계속해서 라흐마니를 팀에서 배제시켰다. 하지만 막상 출전하니 로테이션이었던 니콜라 막시모비치보다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로 모자라 라흐마니는 2022-23 시즌 김민재와 함께 벽 듀오를 결성하면서 결국 나폴리의 리그 우승 주역까지 되었다.
가투소는 안첼로티 체제 아래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던 알렉스 메렛보다 다비드 오스피나를 주전으로 기용하였다. 나폴리의 회장인 데 라우렌티스도 메렛을 주전으로 기용하라고 가투소에게 말했지만, 가투소는 오스피나의 빌드업 능력이 좋다는 이유로 메렛을 기용하지 않았다. 팬들의 원성이 심해지자 가투소는 메렛과 오스피나는 번갈아 출전시키는 괴상한 키퍼 로테이션으로 시즌을 진행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메렛은 마음이 상해, 재계약을 거부하고 팀을 떠날 뻔했던 일도 있다. 당시 나폴리 팬들도 "가투소를 자르자", "메렛에게 차기 주장 임명을 약속해서라도 재계약을 해야 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메렛이 주전 키퍼가 아닌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었다. 실제로 메렛은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전임 감독인 카를로 안첼로티보다 심하게 한정된 선수 기용을 했다. 안첼로티는 첫 시즌에 시모네 베르디, 아담 우나스, 케빈 말퀴, 아마두 디아와라 등 서브 선수들도 적당한 때에 선발 출장을 시키며 로테이션을 가동, 주전 선수들의 지구력 안배와 서브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메렛과 오스피나가 정상 컨디션임에도 서드 키퍼인 오레스티스 카르네지스가 무려 인테르와의 리그 경기에 선발 출장한 기록이 있었으니 말 다했다.[9]
전임 감독인 카를로 안첼로티보다 심하게 한정된 선수 기용을 했다. 안첼로티는 첫 시즌에 시모네 베르디, 아담 우나스, 케빈 말퀴, 아마두 디아와라 등 서브 선수들도 적당한 때에 선발 출장을 시키며 로테이션을 가동, 주전 선수들의 지구력 안배와 서브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메렛과 오스피나가 정상 컨디션임에도 서드 키퍼인 오레스티스 카르네지스가 무려 인테르와의 리그 경기에 선발 출장한 기록이 있었으니 말 다했다.[9]
시즌 | 구단 | 소속 리그 | 리그 | FA컵 | 대륙 대회 |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경기 | 득점 | |||
1995-96 | AC 페루자 | 세리에 B | 2 | 0 | 0 | 0 | - | - |
1996-97 | AC 페루자 | 세리에 A | 8 | 0 | 0 | 0 | - | - |
1997-98 | 글래스고 레인저스 | 스코티시 프리미어 디비전 | 29 | 3 | 6 | 0 | 2 | 1 |
1998-99 | 글래스고 레인저스 |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 | 5 | 0 | 0 | 0 | 5 | 1 |
1998-99 | 살레르니타나 칼초 | 세리에 A | 25 | 0 | 0 | 0 | - | - |
1999-00 | AC 밀란 | 세리에 A | 22 | 1 | 1 | 0 | 5 | 0 |
2000-01 | AC 밀란 | 세리에 A | 24 | 0 | 2 | 0 | 10 | 0 |
2001-02 | AC 밀란 | 세리에 A | 32 | 0 | 5 | 0 | 10 | 0 |
2002-03 | AC 밀란 | 세리에 A | 25 | 0 | 3 | 0 | 14 | 0 |
2003-04 | AC 밀란 | 세리에 A | 33 | 1 | 2 | 0 | 7 | 1 |
2004-05 | AC 밀란 | 세리에 A | 32 | 0 | 2 | 0 | 11 | 0 |
2005-06 | AC 밀란 | 세리에 A | 35 | 3 | 3 | 0 | 11 | 0 |
2006/07 | AC 밀란 | 세리에 A | 30 | 1 | 4 | 0 | 13 | 0 |
2007-08 | AC 밀란 | 세리에 A | 31 | 1 | 1 | 0 | 8 | 0 |
2008-09 | AC 밀란 | 세리에 A | 12 | 0 | 0 | 0 | 4 | 1 |
2009-10 | AC 밀란 | 세리에 A | 22 | 0 | 1 | 0 | 1 | 0 |
2010-11 | AC 밀란 | 세리에 A | 31 | 2 | 2 | 0 | 5 | 0 |
2011-12 | AC 밀란 | 세리에 A | 6 | 0 | 0 | 0 | 0 | 0 |
2012-13 | FC 시옹 | 스위스 슈퍼 리그 | 27 | 1 | 5 | 0 | - | - |
- 레인저스 FC(1997~1998)
-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 1998-99
- AC 밀란 (1999~2012)
- 세리에 A: 2003-04, 2010-11
- 코파 이탈리아: 2002-03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4, 2011
- UEFA 챔피언스 리그: 2002-03, 2006-07
- UEFA 슈퍼컵: 2003, 2007
- FIFA 클럽 월드컵: 2007
- FIFA 월드컵: 2006
- 이탈리아 U-21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U-21 챔피언십: 2000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4등급: 2006
- 특유의 불 같은 성격으로도 유명했다. 경기 중 사진을 찾아보면 심심치 않게 감독의 목을 조르거나 상대 선수의 얼굴에 대고 악을 버럭버럭 쓰는 사진을 볼 수 있다.[17] 이러한 점은 가투소의 플레이 스타일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감정 조절이 안 되어 안 받아도 되는 카드를 받는 경우도 있다.(2009/2010 첫 밀란 더비 전에서의 퇴장 등) 그래도 카카가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 밀란 훈련장에 놀러 왔을 때 저 멀리서 달려와 핵꿀밤을 먹이는 등의 행동을 보면 단순히 무례하고 난폭한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소속팀이나 대표팀 동료들은 이 불같은 성격을 끄집어내기 위해 온갖 장난을 쳐 댔다. 주요 장난에 대해서는 후술. 물론 단순히 싸가지 없고 난폭한 선수가 아니기는 하지만, 한때 카를로 안첼로티가 AC 밀란의 감독이었던 시절, 안첼로티의 뺨을 부여잡던 전과가 있었다.[18]
그러나 세월이 흘러 2019년 4월 14일, AC 밀란과 라치오의 경기에서 경기가 끝나고 선수단끼리(특히 파비오 보리니와 루이스 펠리페)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 가투소가 다가오더니 그 둘을 말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경기 후 기자 회견을 통해 "난 너무 늙었다. 한창 때만큼 강하지 않다. 저 선수들은 매일 훈련장에서 운동하지 않나"라고 답하며 세월의 흐름에 순응하는 반응이었다. 가투소의 전성기를 아는 팬들은 그저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고 한다.
- 2009-10 시즌 당시 선수단 동료들과 특이한 내기를 한 것이 스포츠 뉴스란에 나오기도 했는데, 동료들은 가투소가 아무리 터프해도 살아있는 달팽이를 먹어치우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고 가투소는 할 수 있다고 주장해서 산 달팽이를 먹고 내깃돈 25,000유로를 벌었다.
- 우리나라 한정으로 가투소와 발음이 비슷한 것을 따와서 "가축소"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의 터프한 스타일과 잘 어울리는 좋은 별명이다. 물론, 안 좋은 일에 대해서는 그냥 까이는 별명일 뿐이었다.
- 십자인대가 파열된 상태에서도 90분 풀타임을 뛰었다고 한다.
- 안드레아 피를로와 절친이다. 둘이서 하는짓을 보면 정말 초딩처럼 논다. 둘이서 한 장난을 몇 가지 보자면 이렇다.
- 가투소가 피를로를 때렸는데(무식하다 놀렸다고 한다.) 피를로는 그에 대한 복수로 밀란의 단장인 아리에도 브라이다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리에도씨, 제가 원하는 걸 주시면(계약 갱신) 제 여동생을 가지셔도 좋습니다". 곧 문자를 발견한 가투소는 피를로를 두들겨 패며 브라이다에게 전화로 "피를로의 멍청한 장난이에요"라고 말했다고 한다.[19]
- 이탈리아 국가대표 경기가 있을 때 다니엘레 데 로시와 피를로는 가투소의 침대 아래에 숨어서 기다리곤 했다. 그 자리에서 30분을 기다린 적도 있다고. 가투소가 잘 준비를 다 하고 막 잠이 들려 할 때, 데 로시는 침대 밑에서 튀어나와 가투소의 옆구리를 잡고 피를로는 옷장 밖으로 나와 끔찍한 소리를 질러 가투소를 놀래켰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데로시와 피를로를 실컷 두들겨 팼다고 한다.
- 2010 남아공 월드컵 유럽 예선을 통과하고 난 뒤 마르첼로 리피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감독은 야간 자유시간을 줬고 대부분의 선수들이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가투소만 혼자 호텔에 남아있었다. 술에 취한 채로 호텔로 돌아온 피를로와 일행은 라운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는데 별로 피곤하지 않아서 가투소를 놀려먹기로 했다.. 그의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소화기를 발견한 데 로시 왈 "가투소를 꺼 버려야겠어" 그들은 가투소의 방 앞에 도착해 방문을 두들겼고 졸린 눈을 비비며 문을 열던 가투소에게 진짜 소화기를 뿌린다. [20] 마지막 한 방울까지 뿌린 데 로시는 부리나케 자기의 방으로 숨었다. 속옷만 입고 거품을 흘리면서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 가투소 앞에 피를로를 남겨두고. 이후 피를로의 따귀를 때려대며 또 추격전 개시. 피를로의 말에 따르면 가투소가 누군가를 쫓아가려 한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필사적으로 도망간다 하더라도 그를 잡아내고 말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가투소는 결국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 밀라넬로에서 식사를 할 때도 피를로와 동료들은 온갖 종류의 놀림거리를 만들어서 그를 놀리곤 했다. 가투소의 문법이 틀릴 때마다 곧바로 달려들어서 놀렸다고 한다. 근데 문법에 맞는 말을 할 때도 그들은 가투소를 약올리려고 그의 말이 틀렸다고 말하고는 했다. 가투소를 놀린 주요 멤버는 마시모 오또, 마시모 암브로시니, 크리스티안 아비아티, 알레산드로 네스타, 필리포 인자기, 그리고 안드레아 피를로였다. 대충 이렇게 놀렸다고 한다.피를로: 가투소, 기분이 어때?
가투소: 별로야. 어제 우리가 졌잖아. 우리가 만약 이겼다면 좋았을 거야.
피를로: 가투소, 다시 말해봐. '만약 우리가 이겼다면 좋았을 거야'가 맞는 표현이야.
가투소: 그게 그거잖아.
피를로: 아냐. 달라, 가투소.
가투소: 알았어, 알았다고. 만약 우리가 이겼다면 좋았을거야.
피를로: 가투소, 넌 얼마나 무식한 거냐? '우리가 이겼다면 좋았을 거야', 이렇게 말해야지.
가투소: 그게 내가 방금 말한 거잖아.
피를로: 뭐라고 가투소?
가투소: 그거 아까 말한거, 우리가 이기는 거.
피를로: 어떤 거 가투소, 다시 말해 볼래?이러면 가투소는 흥분하기 시작하고 피를로와 동료들은 미리 칼을 모두 숨겨 버렸다. 그러자 가투소는 포크를 집어서 찌르려고 달려들었다. 그중 몇 번은 진짜로 찔러서 경기를 결장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결장에 대한 구단의 공식 발표는 '근육 피로'였다. - 가투소가 화를 내고 한 번은 차분해져서 방으로 들어갔을 때 피를로와 동료들이 그의 방문 앞에 소파를 쌓아 올리고 못 나오게 막아버린 적도 있었다.가투소: 나가게 해줘, 곧 훈련이 시작된단 말이야.
피를로: 알아서 해, 바보야.그리고 다시 화가 난 가투소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부숴버렸다고 한다.
- 안첼로티가 가투소 괴롭힘의 천재라고 칭한 카카베르 칼라제와의 전설적인 일화도 있다. 칼라제는 1월 9일인 가투소의 생일을 앞두고 하루하루 카운트다운을 세면서 "앞으로 그의 생일이 3일 남았어!"! "이틀하고 14시간 남았어!", "3시간 남았어!" 라고 떠들고 다녔다. 선수들이 모두 웃어댔고 비웃음의 대상이 된 것 같다고 느낀 건지 가투소는 정신줄을 놓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1월 9일 당일은 조용했고 그 누구도 가투소의 생일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감독인 안첼로티가 되레 궁금해서 칼라제에게 할 말 없냐고 물을 정도로. 다음날 엄청 슬픈 얼굴을 한 칼라제에게 안첼로티가 무슨 일 있냐고 물었고 그가 "가투소 생일까지 364일 남았어요..." 라고 말하자마자 가투소가 미친 듯 두들겨팼다고 한다.
- 2020년 11월 25일 디에고 마라도나가 사망하자 나폴리를 2020-21 시즌 세리에 A 우승으로 이끌어서 트로피를 영전에 바치고 싶다는 인터뷰를 했다.
- 오랫동안 지병으로 근무기력증을 앓아 왔다고 한다. 2020년에는 우측 눈에 이상이 생겨 외관상으로도 드러날 정도였다.
[1] 중앙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2] 구단과의 마찰로 부임 약 3주 만에 계약 해지[3] 이후 배우자가 될 사람을 스코틀랜드에서 만나기도 하는 등, 여러 모로 레인저스 시절을 좋은 추억이라 여기고 있는 듯하다. 은퇴 이후에도 가투소는 레인저스의 감독직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하고 있다.[4] 이후 레인저스는 파산으로 인해 SPL에서 강등당했다.[5] 수비적인 롤을 맡는 미드필더다. 포지션 위치가 수비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피를로의 이적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다.[6] 이런 스타일이 유럽에도 많이 없었다. 비슷한 레벨의 선수도 마이클 에시엔, 라사나 디아라,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클로드 마켈렐레 정도뿐이었다.[7] 절친 피를로도 한경기에 11km를 찍을 때가 있었지만. 피를로는 전력질주를 최대한 줄이고 살살 뛰면서 꾸준히 위치를 바꿔가는 플레이를 주로한다. 뛴 거리는 더 적어도 스프린터가 더 많다면 지구력 소모는 훨씬 더 심하다[8] 나폴리 재임 시절, 코로나19 사태로 무관중으로 경기가 치러진 기간이 많아 중계로 감독들의 말이 잘 들렸다.[9] 2018-19 시즌 리그 37R. 해당 경기에서 카르네지스는 안정적인 선방으로 마우로 이카르디의 PK를 제외하고는 골을 허용하지 않았다. 해당 경기는 4-1로 대승을 거두었다.[10] Luigi Riccio[11] Dino Tenderini[12] Bruno Dominici[13] Roberto Perrone[14] Marco Sangermani[15] Marco Sangermani[16] Premio Nazionale Carriera Esemplare "Gaetano Scirea"[17] 그로 인해 만화가 주호민이 스포쓰늬우스에서 여러 황소, 흑소, 칡소 등 여러 소들을 소개하면서 마지막에 가투소를 언급하며 그냥 건드리지 말라는 개그 만화를 소재로 한 적이 있다. 이름과 성질을 이용한 유머인데 투우소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18] 안첼로티는 이 행동에 대해 오히려 재미있다는 반응이다. 안첼로티가 안선생님과 기막힌 싱크로를 자랑한다면 가투소는 또 강백호와 잘 매치된다. 지칠 줄 모르는 지구력과 활동량, 근성, 악동 기질, 투박한 플레이 등. 그리고 가투소도 머리를 민 적이 있다.[19] 이에 피를로는 브라이다 단장이 "그것 참 아쉽군"이라는 답장이 오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했다고 한다.[20] 함부로 따라할 장난은 아니다. 소화기에 들어 있는 약품은 사람의 호흡기는 물론 피부에도 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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