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솁추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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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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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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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유리 솁추크
Ю́рий Шевчу́к | Yuri Shevchuk
Yuri Shevchuk TA...
본명
유리 율리아노비치 솁추크
Ю́рий Юлиа́нович Шевчу́к
출생
국적
직업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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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유리 솁추크 서명
 
 
 
 
 
 
 
 
 

1. 개요2. 생애3. 활동
3.1. 푸틴 정권에 대한 비판
4. 어록5. 여담

 
 
 
 
 
 
 
 
 
 
 
 

1. 개요[편집]

 
 
 
 
 
 
 
 
 
 
 
 
소련 및 러시아의 가수. ДДТ의 리더 겸 기타리스트이다.
 
 
 
 
 
 
 
 
 
 
 
 

2. 생애[편집]

 
 
 
 
 
 
 
 
 
 
 
 
유리 솁추크는 마가단주의 시골 마을 야고드노예의 우크라이나인 아버지와 타타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1964년에 날치크로 이사했다가 1969년 우파에 정착하였으며, 솁추크는 그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길렀다.

그는 어린 시절 셔츠에 '예수히피이다'라는 글귀와 그림을 그리고서는 말썽을 피우다 경찰에게 연행되는 등 상당히 활동적인 성격이였다.

이후 1980년, 우파에서 빅토르 시가쵸프와 함께 ДДТ를 결성하게 된다.
 
 
 
 
 
 
 
 
 
 
 
 

3. 활동[편집]

 
 
 
 
 
 
 
 
 
 
 
 
유리 솁추크는 ДДТ에서 40년 이상 활동하며 다양한 곡들을 만들었고, 밴드의 발전에 리더로써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초기에는 KGB의 감시를 받아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등 당대 보수적인 소련 사회를 비판하던 많은 밴드들이 겪던 어려움을 견뎌야 했다.

1차 체첸 전쟁때 비판적인 입장을 가졌졌던 유리 솁추크는 전쟁을 결정한 정부와 실제로 전쟁에서 싸우는 병사들을 다르다는 생각으로 전선에서 군인들을 위한 아쿠스틱 공연을 했었다.

또한 그는 사회 운동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反옐친 운동, 反푸틴 운동에도 참여하며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대표적인 반정부 인사로써 거듭나게 되었다. 2010년대에는 알렉세이 나발니 후보 지지를 공언했으며,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또한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었다. 현재도 러우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ДДТ 멤버로서도 자주 활동하고 있으며, 개인으로도 여러 음악들을 발매하고 있다.
 
 
 
 
 
 
 
 
 
 
 
 

3.1. 푸틴 정권에 대한 비판[편집]

 
 
 
 
 
 
 
 
 
 
 
 

2010년에는 The Little Prince라는 자선 공연을 주최한뒤, 푸틴(당시 총리)을 만나 면담을 가지면서 그의 정권에 대해 공개적으로 많은 비판을 해 이목을 끌었다.

푸틴은 셰브추크를 기선 제압할 목적으로 "당신은 누구입니까?(Как вас зовут?)"라고 물었는데, 셰브추크가 망설이지 않고 즉각적으로 "유라 셰브추크, 네. 유라입니다. (Юра Шевчук, да. Это Юра .)"라고 대답한 장면이 유명하다. 단순한 자기소개 같지만, 공적인 자리에서 본인을 유리의 애칭인 '유라'로 부름으로써 수평적 관계를 선언한 것이다. 또한 푸틴은 문화에 관심이 많으며, 소련시절부터 유명했고 KGB의 집중 감시 대상이었던 밴드 ДДТ의 리더 셰브추크를 모를 리가 없다. 의도적으로 무시함으로써 셰브추크를 당황하게 하려는 시도도 실패했기 때문에 많은 네티즌의 비웃음을 샀다.

푸틴은 이어진 셰브추크와의 대화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시선이 불안정하고, 말이 빠른 모습을 보인다. 이는 평소 푸틴이 미디어 앞에 보여준 모습과는 거리가 먼 이례적인 모습이다. 푸틴은 민주주의와 법치는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았다. 이 영상으로 국민가수로 인기가 높았던 셰브추크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고, 푸틴은 압제자의 가면이 벗겨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면담 기록(영어)


2022년 5월 18일, 우파(уфа)에서 전설적인 발언을 남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푸틴 체제에 대해 정면비판하는 메시지는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이하는 그 내용이다.

"И сейчас убивают в Украине людей, зачем наши пацаны там гибнут? Зачем? Какие цели, друзья?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왜 그곳에서 죽어야 합니까? 왜입니까? 여러분, 목적이 무엇입니까?

Опять гибнет молодость России и Украины. Гибнут старики, женщины и дети ради каких-то наполеоновских планов очередного нашего цезаря, да?
또다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청춘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노인과 여성, 아이들이 우리 ‘카이사르(푸틴)’의 나폴레옹 같은 야망을 위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렇죠?

Родина, друзья, это не жопа президента, которую надо все время мусолить, целовать. Родина — это бабушка нищая на вокзале, продающая картошку. Вот это Родина!
여러분, 조국은 우리가 항상 비위를 맞추고 입을 맞춰야 하는 대통령의 엉덩이가 아닙니다. 조국은 기차역에서 감자를 파는 가난한 할머니입니다. 이것이 바로 조국입니다!"

공연이 끝나자마자 러시아 특수부대(ОМОН) 요원들이 대기실로 들이닥쳤다. 당초 셰브추크를 체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나 1시간 취조 후 행정소송 통지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귀가조치 되었다. 22년 8월, 셰브추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법원에 출석하지 않고 변호사를 통해 반전 신념을 담은 서면 성명서를 제출한다. 이 사건으로 당시 갓 도입된 러시아군 명예훼손 혐의로 5만 루블이라는 벌금형 및 공연금지 처분을 받는다.

2023년 셰브추크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잠시 해외에서 재활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그는 많은 가수들이 해외로 망명한 것과 대조적으로 오랫동안 러시아를 떠나지 않았다. ДДТ는 유튜브를 통해 체제를 비판하는 신곡을 공개하거나, 2026년 유럽과 오세아니아를 잇는 대규모 해외 투어 일정을 공개하는등 러시아 내부에선 말할 기회는 박탈 당했지만, 여러 수단을 통해 끊임없이 메시지를 알리고 있다.
 
 
 
 
 
 
 
 
 
 
 
 

4. 어록[편집]

 
 
 
 
 
 
 
 
 
 
 
 
А потом просто дело дошло до того, что они мне дают бумагу, где буквально написано: я обязуюсь никогда не петь своих песен. Второй пункт: я обязуюсь всячески препятствовать их распространению. Третье: я обязуюсь впредь никогда их не сочинять…

그리고 나중에는 그들이 저에게 종이 한 장을 내미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에는 글자 그대로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첫째, 내 노래를 절대 부르지 않겠다고 서약한다. 둘째, 내 노래가 퍼지는 것을 온갖 방법으로 막겠다고 서약한다. 셋째, 앞으로 절대 노래를 만들지 않겠다고 서약한다...[1]
Цитируя своего любимого Николая Бердяева, он очень хорошо сказал: «В глазах российских солдат я не вижу глаза убийц». Это тонкие вещи. Вот в миру ты идешь по улице, ты видишь больше глаз убийц, чем в глазах воинов.

제가 좋아하는 니콜라이 베르댜예프의 말을 인용하자면, 그는 아주 훌륭한 말을 했습니다. "러시아 군인들의 눈에서 나는 살인자의 눈을 보지 못한다." 이건 아주 미묘한 문제입니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길을 걷다 보면, 참전 군인들의 눈에서보다 살인자의 눈을 더 많이 보게 되니까요.
От страха злыми становились люди.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악해졌습니다.
Иногда мне кажется, что в наше время быть человеком — уже подвиг.

가끔 저는 요즘 시대에 인간으로 남는 것 자체만 해도 하나의 위대한 업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Каждый концерт должен быть как последний, иначе это ложь.

모든 공연에는 마지막인 것처럼 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Какой я музыкант? Вот ребята в группе ДДТ — прекрасные инструменталисты.

제가 무슨 대단한 음악가겠습니까? 여기 데데테 밴드 멤버들이야말로 훌륭한 연주자들입니다.
Раньше рок-н-ролл был приключением. Неважно, как, на что жить. Нет гитар- отыграем и на деревяшках. Это был мир из звуков, чувств, белых пятен. Мы сами себя открывали. Это было приключением, религией. А теперь- это маркетинг, работа.

과거 락앤롤은 모험이었습니다. 어떻게, 무엇으로 먹고살지는 중요하지 않았죠. 기타가 없으면 나무토막으로라도 연주했습니다. 그것은 소리, 감정, 그리고 미지의 영역으로 이루어진 세계였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발견해 나갔습니다. 그것은 모험이었고 종교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마케팅이고 직업이 되었습니다.
Мы боимся будущего, потому что ничего о нём не знаем. И поэтому всё время хотим вернуться в придуманное прошлое.

우리는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항상 꾸며낸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Главная моя проблема, а я давно на сцене, — не потерять остроту восприятия, ощущение реальной жизни.

오래도록 공연에 서 온 저의 가장 큰 고민은 예리한 감각, 즉 현실의 삶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Для меня есть три главных слова в жизни: любовь, творчество, свобода. Ни одно из них не может существовать без двух других. Без свободы нет ни любви, ни творчества. А творчество без любви — это просто порнография.

제 삶에 있어서는 세 가지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사랑, 창작, 자유입니다. 이 중 어느 하나도 나머지 둘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자유 없이는 사랑도 창작도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 없는 창작은 그저 포르노그래피일 뿐입니다.
Жизнь – это чудо, чем дольше живу, тем больше это понимаю.

삶은 기적입니다. 오래 살수록 그것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Музыка – это ведь не спорт. Здесь нет мест – первых, вторых, третьих… У меня свое место, у Цоя было свое, у Кости Кинче­ва – свое.

음악은 스포츠가 아닙니다. 1등이니, 2등이니, 3등이니, 그런 순위 같은 건 없습니다... 저에겐 저만의 자리가 있고, 초이에겐 그의 자리가 있었으며, 코스탸 킨체프에겐 그의 자리가 있는 것이죠.
(— Юрий, вам пора на покой? Не устали быть послом рок-н-рола?)
— Быть послом рок-н-ролла – странно звучит. Кто ж тогда меня послал, и так далеко?

(— 유리, 이제 쉴 때가 되지 않았나요? 로큰롤의 대사(大使)로 사는 것에 지치지 않으셨나요?)
— 로큰롤의 대사라니, 이상한 말이군요.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저를 이렇게나 멀리 보냈단 말입니까?[2]
Спорить бесполезно. Дураки всё знают, умные всё понимают. Нам кричат — определись, выбери сторону… Определился, выбрал. Миру — Мир. Нам говорят — война спасёт Россию. Добры молодцы, накопившие за последние годы свою национал-социальную похоть, пишут об этом в блогах, выступают по радио и ТВ. Ищут привычных врагов для своей извращённой эротики. Но это не любовь. А я выбрал. Миру — Мир.

논쟁은 소용이 없습니다. 바보들은 모든 것을 안다고 하고, 똑똑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이해합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외칩니다. 입장을 정해라, 어느 편인지 선택해라... 저는 정했고, 선택했습니다. "세상에 평화를."[3] 사람들은 전쟁이 러시아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최근 몇 년간 국가사회주의적 욕망을 축적해 온 건장한 청년들은 블로그에 글을 쓰고, 라디오와 TV에 출연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왜곡된 에로티시즘을 채워줄 익숙한 적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선택했습니다. 세상에 평화를.
… то, что сейчас творится в стране, — это сословная страна, тысячелетняя. Есть князья и бояре с мигалками, есть тягловый народ. Пропасть огромная. [Вы, В. В. Путин] всё это знаете.
С другой стороны, единственный выход — чтобы все были равны перед законом: и бояре, и тягловый народ. Чтобы шахтеры не шли в забой, как штрафные батальоны. Чтобы это было все по-человечески, чтобы личность в стране была свободная, уважающая себя. И тогда поднимем патриотизм. Потому что патриотизм плакатом не создашь, а у нас очень много я вижу, и я не один — интеллигенция, очкарики, скажем так, — мы видим очень многое.
Мы видим этот плакат, внешние проявления. Попытка проявления патриотизма, какой-то совести в стране путем гимнов и маршей и так далее. Всё это мы проходили. Только гражданское общество и равенство всех перед законом — всех абсолютно: и Вас, и меня — тогда что-то начнётся. Мы будем строить и больницы, и детям помогать… детям, калекам, старикам. Всё это будет от души идти, искренне и честно.

...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천 년도 더 된 신분제 국가의 모습입니다. 경광등을 단 공작들과 귀족들이 있고, 과도한 세금과 노역을 부담하는 평민들이 있습니다. 그 격차는 엄청납니다. 당신도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유일한 해결책은 귀족이든 평민이든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해지는 것입니다. 광부들이 징벌 부대처럼 탄광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말입니다. 모든 것이 인간적으로 대우받고, 이 나라의 개개인이 자유롭고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애국심도 높아질 것입니다. 애국심은 포스터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저는 아주 많은 것을 봅니다. 저 혼자만이 아닙니다. 이른바 지식인들, 안경잡이들인 우리는 아주 많은 것을 봅니다.
우리는 포스터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들, 국가(國歌)와 행진곡 등을 통해 애국심이나 이 나라의 어떤 양심을 보여주려는 시도들을 봅니다. 우리는 이미 이 모든 것을 겪었습니다. 시민 사회의 확립과 법 앞에서의 만인의 평등, 당신과 나를 포함한 절대적으로 모든 이의 평등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무언가가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는 병원을 짓고 아이들을 도울 것입니다... 아이들, 장애인들, 노인들을 말이죠. 이 모든 것은 진심과 정직함 속에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게 될 것입니다.[4]
Всё дело за вами: какие песни вы будете петь, такой и будет наша страна… Рок — это не тогда, когда всё хорошо, а тогда, когда что-то плохо! Об этом надо петь и говорить!

모든 것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노래를 부르느냐에 따라 우리나라의 모습이 결정될 것입니다... 락은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잘못되었을 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노래하고 말해야 합니다!"
Что вы всех фашистами называете? На Майдан вышли мои друзья. Либерализм не может быть фашизмом. Потому что либерализм и демократия – это свобода личности. Туда выходят личности, которые ценят свою индивидуальность и свой взгляд на мир, на вещи. Неповторимые личности. А фашизм – это это кирзовые сапоги и вождь во главе угла. И пошли биться с внешними и внутренними врагами. Вот что такое фашизм.

왜 다들 파시스트라고 부르는 겁니까? 유로마이단 당시 제 친구들이 나갔습니다. 자유주의는 파시즘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자신의 개성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소중히 여기는 개인들이 모여듭니다. 대체할 수 없는 개개인들 말입니다. 반면 파시즘은 군화발과 그 정점에 선 영도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안팎의 적들과 싸우러 나서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파시즘입니다."
Если жить по Евангелию, по-настоящему, честно – распнут через неделю.

만약 진정으로 복음서의 가르침대로 정직하게 산다면, 일주일 만에 십자가에 못 박힐 것입니다.
А суть-то она проста очень – нужно жить в мире и любить человека.

본질은 아주 단순합니다. 평화롭게 살며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Успокойтесь, бесы, долбанные кабинетные и кухонные псевдопатриоты... Опять кровушки братской захотели... Мы – люди Украины и России – родня. Мы не допустим братоубийственной бойни.

진정해라, 이 악마 새끼들아, 빌어먹을 탁상공론가들과 방구석의 가짜 애국자 놈들아... 또다시 형제의 피를 원하느냐... 우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람들은 한 핏줄이다. 우리는 형제상잔의 대학살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5. 여담[편집]

 
 
 
 
 
 
 
 
 
 
 
 
  • 소련판 금수저라고 할 수 있는 마조르(мажор) 출신이다. 부친 율리안 셰프추크는 바시키르 공산당의 무역 담당 고위 관료였다.[5] 아버지 "빽" 덕분에 우파에 살던 시절에는 거리에서 주먹다짐하다 경찰에 끌려갔을 때 쉽게 풀려난 적도 있었다. 다만 본인은 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나중에 마조르들을 까는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덤으로 물질적 지원은 그리 받지 못해서, 80년대 세프추크의 일화를 찾아보면 돈이 없어 이리저리 고생한 이야기가 많다. 앨범 취입할 기회를 잡아서 연고지도 없는 도시를 무작정 찾아갔는데 일이 꼬여 앨범은 녹음도 못하고 근처 식당에서 빵을 구걸하던 썰이라거나 피테르에 (불법) 거주하던 시절 무단횡단하다 경찰에게 잡혀 1주일 생활비를 전부 뜯긴 썰이라거나 다만 이후 피테르에서 크게 성공한 것을 본 아버지는 이를 매우 흡족해 했다고 한다.
    Я уехал из Уфы в Ленинград. И потом, много позже, ко мне на концерт приехал отец, а он у меня фронтовик, и он, наверное, спрашивал там, в зале: ну, как вам, ребята, «ДДТ», Шевчук?.. И потом он приходит ко мне за кулисы такой сияющий, я ему: «Понравилось, бать?» А он: «Как на танке до Берлина!»

    저는 우파에서 레닌그라드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훗날, 제 콘서트에 아버지가 오셨습니다. 참전 용사이신 아버지는 아마 관객석에서 사람들에게 물어보셨을 겁니다. "이보게 젊은이들, 저 데데테와 셰프추크란 사람이 어떤가?" ... 그리고 나서 아버지는 환하게 빛나는 얼굴로 무대 뒤로 저를 찾아오셨고, 저는 아버지께 물었죠. "마음에 드셨어요, 아버지?" 그러자 아버지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마치 탱크를 타고 베를린까지 진격하는 것 같았단다!"
  • 활동 초창기, 특히 80년대에는 "한성깔"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3집 녹음 시 동료 뮤지션을 찾아가 앨범 녹음을 도와달라며 협박한 일화는 유명하며[6] 레닌그라드로 무대를 옮긴 뒤 "피테르 투소프카의 싸움꾼" 하면 바로 셰프추크의 이름이 거론되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아크바리움의 그레벤시코프나 키노의 초이[7] 등 여러 동료 음악가들과도 갈등을 여럿 빚었다고 한다. 물론 2002년에도 에스트라다 가수인 필립 키르코로프(Филипп Киркоров)와 다투는 등[8] 가끔 격정적인 모습을 보이긴 하나, 특히 타자크 · 체첸 내전 종군 등 여러 사건을 겪은 이후부터는 성격이 꽤 유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과거 레닌그라드 투소프카 등 친분이 있는 동료 음악가들에 대해서는 노선 차이가 있더라도 공개적인 비판을 잘 안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령 킨체프라던가[9]
  • 성격과 별개로, 러시아 대중문화계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을 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러시아의 "팝사"[10]파네라(фанера) 문화를 싫어하는 면모를 자주 보인 바 있다. 또한 푸틴을 위시한 비정상적 정권에 대한 아부와 과도한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혐오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러시아 영화 브라트 2편 제작 당시 발라바노프 감독이 데데테의 노래에 대한 사용 허락을 구했으나 "그런 괴물같은 민족주의적 영화에는 음악 못 준다"라고 단호히 거부한 일화가 유명하다.
  • 음악은 물론이고 그림 등 예술 전반에서 다양한 재능을 지녔었다. 유년 시절에는 음악보다도 미술에 관심이 많아 여러 대회에 참가하며 상을 받았다고 하며, 대학 시절에도 예술 쪽 전공을 밟았다. 졸업 이후에는 잠시 미술 교사로 일하기도 했다.
  • 팬들 사이에선 '유라 삼촌(Дядя Юра)'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1] 다큐멘터리 영화 "락"(Рок) 출연 당시 한 말.[2] 러시아어 '대사'(посол)와 '보내다'(послать)의 어원이 같은 것을 이용한 언어유희.[3] 러시아어로 '평화'와 '세상'은 모두 Мир로 쓴다.[4] 상술한 2010년 5월 29일 자선 행사 당시 푸틴에게 한 발언.[5] 셰프추크의 회고에 따르면 아버지에게 직책을 이용해서 서방에서 청바지 같은 거 밀수해 오는 건 어떻겠냐고 슬쩍 제의해 본 적 있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6] 데데테 항목 참조.[7] 빅토르 초이 항목 참조. 정작 이러고서는 초이 사망 후 추모식 때 또 류베의 라스토르구예프가 추모사를 말하려 하자 "여긴 진짜배기 락커들을 위한 자리다, 팝이나 불러대는 새끼는 꺼져라"라고 한바탕 싸웠다. 그러곤 나중에 둘이서 같이 코냑 거하게 마시고 풀었다는 뒷이야기가 있다[8] 2002년 12월 29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럽 호텔'에서 두 사람이 충돌했다. 사건의 전말에 대해선 소문만 무성하지만 일단 두 사람 간 갈등이 깊다는 건 사실로 보인다. 2017년 셰프추크는 한 인터뷰에서 당시 자신은 키르코로프가 아닌 그의 경호원들과 충돌했으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그에게 상처를 준 것이 마치 여자를 괴롭힌 것 같아 무척 부끄러웠다는 말을 남겼다.[9] 러시아 락밴드 "알리사"의 리더 콘스탄틴 킨체프와 셰프추크는 80년대부터 친한 사이였으나 이후 서로를 디스하는 것으로 보이는 노래를 발표하는 등 약간의 잡음이 있었다. 특히 킨체프가 러시아 국수주의적 태도를 보이는데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을 성전으로 옹호하는 등의 망언까지 하게 되며 둘의 정치적 견해는 완전히 대립하는 상황이다. 다만 그와 별개로, 킨체프나 셰프추크나 서로를 대놓고 비판하지는 않고 나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10] попса. 영어 pop의 차용어로 러시아의 대중가요를 말하는데 단순 대중가요가 아니라 "싸구려 양산형 저질 대중가요"라는 비하의 어조가 담긴 단어라 막 써서 좋을 건 없다. 셰프추크는 "팝사"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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