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리 캐터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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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前 축구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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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해리 캐터릭 Harry Catterick | |
본명 | 해리 캐터릭 Harry Catterick | |
출생 | ||
사망 | ||
국적 | ||
직업 | ||
소속 | 선수 | |
감독 | 크루 알렉산드라 FC (1951~1953 / 선수겸 감독) 로치데일 AFC (1953~1958) 셰필드 웬즈데이 FC (1958~1961) 에버튼 FC (1961~1973)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1975~1977) | |
캐터릭은 초반엔 아마추어 선수로 뛰다가 1937년 18살의 나이에 에버튼으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당시 2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경기에 자주 뛰지 못하다가 1946년에 26살의 나이로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캐터릭은 이후 에버튼에서 71경기 24골을 기록하였다.
그 후 1951년부터 크루 알렉산드라에서 선수겸 감독으로 뛰다가 1953년 선수에서 은퇴했다.
그 후 1951년부터 크루 알렉산드라에서 선수겸 감독으로 뛰다가 1953년 선수에서 은퇴했다.
캐터릭은 1961년 자신이 선수시절 뛰었던 에버튼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캐터릭은 당시 에버튼의 구단주였던 존 무어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토니 케이같은 선수를 큰 돈으로 데려올 수 있었고 이미 팀에 있던 알렉스 영과 로이 버논의 활약에도 힘입어 첫시즌에 리그 4위를 기록한 뒤 다음시즌인 1962-63 시즌엔 팀의 6번째 리그 우승을 달성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다 1965-66 시즌에 리그 11위 중위권 순위를 기록하며 경질 위기에 닥쳤으나 같은 시즌 기적적인 FA컵 우승에 성공하며 경질을 면할 수 있었다. 이후 팀의 유스 출신인 콜린 하비와 잉글랜드 최고 이적료로 영입한 앨런 볼, 그리고 1967년 하워드 켄달을 영입한 캐터릭은 이 셋으로 에버튼 역사상 최고의 미드진인 '성 삼위일체'를 구축하였고 1969-70 시즌 케터릭은 이 셋의 활약에 힘입어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 이후엔 안 좋은 순위를 기록하기 시작했고 1973년에 건강상에 이유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 후 1975년에 프레스턴 노스 엔드의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2년 정도 팀을 이끌었다.
그 후 1975년에 프레스턴 노스 엔드의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2년 정도 팀을 이끌었다.
- 셰필드 웬즈데이 FC (1958~1961)
- 풋볼 리그 세컨드 디비전 승격: 1958-59
- 에버튼 FC (1961~1973)
-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 1962-63, 1969-70
- FA컵: 1965-66
- FA 채리티 실드: 1963,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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