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트주의 이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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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공화국 الجمهورية العراقية Iraqi Republic (1968~1991) 이라크 공화국 جمهورية العراق Republic of Iraq (1991~2003)[1] | ||||||||||||||||||||||||||
국기 (1963-1991) | 국장 (1965-1991) | |||||||||||||||||||||||||
국기 (1991-2004) | 국장 (1992-2004) | |||||||||||||||||||||||||
지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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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 ||||||||||||||||||||||||||
국가 | ||||||||||||||||||||||||||
역사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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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 ||||||||||||||||||||||||||
1968년 7월부터 멸망시까지 혁명지도평의회라는 국가기관이 정치를 담당했었다.
처음에는 사회주의(아랍 사회주의) 성향의 일당제였으나 사담 후세인 집권 이후에는 일종의 군사 독재 체제로 변했다.[3] 물론 이후에도 사회주의는 공식적으로서 어느 정도 유지되기도 했었지만 실상은 아랍 민족주의에 가까웠으며 사회주의 성향이 약해지고 오히려 반공주의에 가까워졌다. 사담 후세인 후기는 종교인과 종교단체의 후원과 사담 페다인 민병대를 동원해 매춘부를 처벌하는 등 샤리아에 근거한 여성 권리의 제한과 이슬람주의 선전이 이뤄지는 등 공식적으로 완전한 세속주의는 아니었으나 대신 여전히 이슬람 근본주의 및 이슬람 극단주의를 탄압해서 종교적 근본주의를 약화시켰다.[4]
사회주의 성향이 있었지만 이라크 공산당을 탄압했는데 언급했듯이 사담 후세인 이후 세속주의에 기반을 둔 아랍 민족주의로 변했던 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5]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집단농장의 시행 역시 사회주의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둔 후세인 정권의 타협으로 부분적으로만 이뤄지거나 실질적으로 도입하지 않았다. 남예멘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점.
단원제에 해당되었던 국민의회가 이 시기 이라크에도 있었으나 혁명지도평의회가 국회의 힘을 무효화할 수 있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직전 이라크는 242,000명의 군인과 2,350대의 탱크, 340대의 공군기를 보유했고 이는 아랍 세계 전체에서 이집트 바로 다음 2위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이라크는 실제로 아랍 세계에서 산유국이라는 경제적 이점과 아라비아 반도의 최대 인구 대국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많은 무시할 수 없는 인구 규모를 내세워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와 역내 패권국 경쟁을 했고 실제로 북예멘의 지지를 얻는 등의 위신도 실제로 얻었다.
처음에는 사회주의(아랍 사회주의) 성향의 일당제였으나 사담 후세인 집권 이후에는 일종의 군사 독재 체제로 변했다.[3] 물론 이후에도 사회주의는 공식적으로서 어느 정도 유지되기도 했었지만 실상은 아랍 민족주의에 가까웠으며 사회주의 성향이 약해지고 오히려 반공주의에 가까워졌다. 사담 후세인 후기는 종교인과 종교단체의 후원과 사담 페다인 민병대를 동원해 매춘부를 처벌하는 등 샤리아에 근거한 여성 권리의 제한과 이슬람주의 선전이 이뤄지는 등 공식적으로 완전한 세속주의는 아니었으나 대신 여전히 이슬람 근본주의 및 이슬람 극단주의를 탄압해서 종교적 근본주의를 약화시켰다.[4]
사회주의 성향이 있었지만 이라크 공산당을 탄압했는데 언급했듯이 사담 후세인 이후 세속주의에 기반을 둔 아랍 민족주의로 변했던 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5]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집단농장의 시행 역시 사회주의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둔 후세인 정권의 타협으로 부분적으로만 이뤄지거나 실질적으로 도입하지 않았다. 남예멘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점.
단원제에 해당되었던 국민의회가 이 시기 이라크에도 있었으나 혁명지도평의회가 국회의 힘을 무효화할 수 있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직전 이라크는 242,000명의 군인과 2,350대의 탱크, 340대의 공군기를 보유했고 이는 아랍 세계 전체에서 이집트 바로 다음 2위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이라크는 실제로 아랍 세계에서 산유국이라는 경제적 이점과 아라비아 반도의 최대 인구 대국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많은 무시할 수 없는 인구 규모를 내세워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와 역내 패권국 경쟁을 했고 실제로 북예멘의 지지를 얻는 등의 위신도 실제로 얻었다.
초기에는 아랍 사회주의 국가들과 협력을 많이 했으나 사담 후세인 후기부터는 팽창정책으로 인한 여러 분쟁들로 인해 주변 국가들(쿠웨이트와 이란)은 물론이고 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 바트주의 시리아 등 일부 같은 아랍 사회주의 국가들로부터도 불신 및 손절을 받기도 했다. 하마 학살 당시 무슬림 형제단과 친이라크 바트주의자들의 동맹을 노리고 하마의 봉기를 배후에서 지원했으니 당연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반미-반서방주의 정책이 있었다보니 북예멘, 팔레스타인 등과는 협력을 강화하기도 했었다.[6] 다만 이 시기 바트당 집권 이라크는 반미와 반서방주의 정책을 같이 펼치고 있었다 보니 무작정 이란, 바트주의 시리아와의 분쟁 및 갈등이 계속되게 둘 수 없었다. 이에 1990년대부터 이란과 관계를 개선했으며 2000년에는 여전히 거리를 두긴 했지만 바트주의 시리아와 다시 수교를 맺기도 했었다.
아랍 사회주의가 아닌 왕정이긴 했지만 요르단과는 나름 우호적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걸프 전쟁 때 요르단은 예멘과 팔레스타인과 더불어 이라크를 지지하기도 했었던 드문 아랍 국가이자 왕정국가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가 아니고 후대에는 샤리아 법에 근거한 처벌이 제한적으로 도입되는 등 성향은 상당히 모호한 국가였지만 아랍사회주의 국가답게 공산권과의 관계는 깊었다. 이라크가 걸프 전쟁에서 패전하고 나서 이라크에 무기를 제공하던 소련, 중국 등 공산국가들은 전쟁 발발 이후 T-72 1,000대, MiG-29 60대,S-300,59식 전차와 69식 전차 추가 계약, 단거리 탄도미사일 개량형, 152mm 포탄과 로켓 탄약 등 모든 진행 중인 거래를 취소하고 무기 금수조치에 동참해야 했기에 수십억 달러 이상의 손해를 보아야만 했다.
이라크는 이 시기 프랑스와도 파트너 관계였다. 아랍권 전반적으로 미라주 3에 대한 명성이 퍼져있던 시기라 바트주의 이라크도 미라주 F1을 다수 도입해 와일드카드로 삼았다.[7] 이라크는 AU-F1 자주포,아에로스파시알 가젤, 롤랑 대공 미사일,밀란 대전차미사일,AMX-10P,파나르 VCR-TH 등도 수입해 전력으로 활용했다. 이라크의 원자력 무기 개발 계기가 될 수 있었던 오시라크 원자로 공습 당시 파괴된 원자로 역시 프랑스 정부의 승인을 받고 수출된 상용 원자로였다. 이라크 방공군의 통합 방공망도 프랑스 기술진이 조언을 제공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라크가 패망한 이라크 전쟁 이후에는 이라크에서 프랑스제 무기 부품이 발견되면서 금수조치가 내려진 이후에도 프랑스가 기밀리에 유지정비를 지원한 것 아니냐는 혐의가 제기되기도 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흐지부지됐다. 프랑스 역시 걸프 전쟁 발발로 무기 금수조치에 동참하면서 미라주 F1 50대 공급이 무산되고 엑조세 미사일 공급 역시 중단하는 등 5억 달러 이상의 손해를 보았다.
아랍 사회주의가 아닌 왕정이긴 했지만 요르단과는 나름 우호적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걸프 전쟁 때 요르단은 예멘과 팔레스타인과 더불어 이라크를 지지하기도 했었던 드문 아랍 국가이자 왕정국가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가 아니고 후대에는 샤리아 법에 근거한 처벌이 제한적으로 도입되는 등 성향은 상당히 모호한 국가였지만 아랍사회주의 국가답게 공산권과의 관계는 깊었다. 이라크가 걸프 전쟁에서 패전하고 나서 이라크에 무기를 제공하던 소련, 중국 등 공산국가들은 전쟁 발발 이후 T-72 1,000대, MiG-29 60대,S-300,59식 전차와 69식 전차 추가 계약, 단거리 탄도미사일 개량형, 152mm 포탄과 로켓 탄약 등 모든 진행 중인 거래를 취소하고 무기 금수조치에 동참해야 했기에 수십억 달러 이상의 손해를 보아야만 했다.
이라크는 이 시기 프랑스와도 파트너 관계였다. 아랍권 전반적으로 미라주 3에 대한 명성이 퍼져있던 시기라 바트주의 이라크도 미라주 F1을 다수 도입해 와일드카드로 삼았다.[7] 이라크는 AU-F1 자주포,아에로스파시알 가젤, 롤랑 대공 미사일,밀란 대전차미사일,AMX-10P,파나르 VCR-TH 등도 수입해 전력으로 활용했다. 이라크의 원자력 무기 개발 계기가 될 수 있었던 오시라크 원자로 공습 당시 파괴된 원자로 역시 프랑스 정부의 승인을 받고 수출된 상용 원자로였다. 이라크 방공군의 통합 방공망도 프랑스 기술진이 조언을 제공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라크가 패망한 이라크 전쟁 이후에는 이라크에서 프랑스제 무기 부품이 발견되면서 금수조치가 내려진 이후에도 프랑스가 기밀리에 유지정비를 지원한 것 아니냐는 혐의가 제기되기도 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흐지부지됐다. 프랑스 역시 걸프 전쟁 발발로 무기 금수조치에 동참하면서 미라주 F1 50대 공급이 무산되고 엑조세 미사일 공급 역시 중단하는 등 5억 달러 이상의 손해를 보았다.
[1] 형용사형 국명 + 국체나, 국체 + of + 명사형 국명이나 한국어에서는 모두 명사형 국명 + 국체로 번역되곤 한다.[2] 1993년부터 국교가 되었으나 이슬람 색채가 강한 편은 아니었으며, 당시 이라크의 이슬람 분포는 시아파 59%, 수니파 31%로 이루어져 있었다.[3] 막상 후세인은 이라크의 첫 민간인 출신 지도자였다.[4] 이라크 쪽이 더 극단적이긴 하나 유사 사례로는 말레이시아가 있다. 여기도 근본주의와 세속주의 경계를 오고가는 등 비슷한 점이 있다.[5] 그리고 이미 아랍 사회주의 역시 아랍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념이기도 했다.[6]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는 걸프 전쟁 도중 이스라엘을 응징하겠다며 수십발의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까지 감수할 정도로 우호적이었다. 물론 걸프전 당시의 이스라엘 공격 자체는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일종의 관심 돌리기용에 불과했다.[7] 이라크 운용분 일부는 걸프 전쟁 당시 이란으로 피신했다가 압류되어 이란 공군 기체로 재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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