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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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과정3. 사례
3.1. 한국
3.1.1. 상고시대 및 삼국시대3.1.2. 후삼국고려3.1.3. 조선3.1.4. 근현대사
3.1.4.1. 대한민국3.1.4.2. 북한
3.2. 중국3.3. 일본3.4. 아프리카3.5. 태국3.6. 중동3.7. 중남미3.8. 터키3.9. 그리스
4. 변형된 쿠데타
4.1. 긍정적(?) 쿠데타4.2. 친위 쿠데타4.3. 역쿠데타
5. 현재 대한민국에서의 가능성6. 여담7. 이를 소재로 한 외국의 작품들8. 관련문서

1. 개요[편집]

지배층 내의 특정한 세력이 무력에 기반하여 정권을 전복시키고 비합법적으로 정권을 얻는 행위.

프랑스어에서 정변(政變)을 뜻하는 Coup d'État에서 유래된 말이다.[1][2][3] 영어에서는 간단히 쿠(coup)라고 표현하며,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군부 세력에 대해서는 훈타(junta)[4] 혹은 군부 정권(military regime)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조선에서는 반정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자주 '쿠타'라고 잘못 표기하는데, 아마 바리케이포르투의 예처럼 앞의 거센소리 때문인 것 같다.

쿠데타에 대해서 혁명이냐 쿠데타이냐 반란이냐 같은 용어혼란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용어혼란의 원인은 긍정적으로 여기는 사건에 대해서 부정적인 용어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생긴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쿠데타와 반란이고 긍정적으로 말하거나 미화하여 말하면 혁명이다. 세계사에서 긍정적이고 혁명으로 알고 있는 여러 사건들은 객관적으로 말하면 쿠데타와 반란인데 이렇게 말하면 부정적이고 폄훼하는 느낌이 되기 때문에 직시하지 못하고 또한 보통은 그렇게 부르지 않아서 이런 말장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또한 혁명이라는 표현을 굳이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라도 여러 용어 모두에 포함되는 사건에 대해서 여러 용어 중 하나만 선택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런 말장난 문제가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

2. 과정[편집]

쿠데타 세력은 일단 소수의, 믿을 만한 군사 지휘관들을 포섭한다. 의외로 규모는 전군에 비해서 그리 크지 않으나, 수도를 직접 공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정예병력이 필수적이다. 대체로 직접적으로 움직이는 쿠데타 병력은 1개 사단 내외가 된다. 쿠데타에 끼어든 사람의 규모가 너무 크면 보안유지가 어렵고, 반대로 너무 적으면 일이 풀리지 않기 때문이다. 쿠데타가 벌어지면 사전에 계획된 방침에 따라 주요 요인들을 제압하고 병력을 동원해 방송국, 통신시설, 공항 등 국가 기간망을 장악한다. 최종적으로 의회와 정부 주요기관을 통제하고는 무력을 통해 반대파를 제압한다. 어떤 경우는 의회같은 세력을 무력으로 위협하여 표면적으로는 합법적인 정권 획득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일이 꼬여서 조기 정권 장악에 실패하고, 정권이 반격에 성공하는 경우에는 거의 쿠데타 군의 실패로 끝나게 된다. 쿠데타에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에는 한계가 있고, 보급능력도 여의치 않아[5] 정국을 빠르게 장악하지 않으면 쿠데타 군의 군사력과 통제력은 빠르게 한계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쿠데타는 극비리에 진행해야 하므로 모든 장성들을 사전에 음모에 끼워넣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쿠데타 과정이 지지부진하게 정체되면, 즉시 다른 장성들이 나서서 쿠데타 군을 진압한다. 이것도 국가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이라는 영예를 얻게 될 기회인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의 사례과 같이 말 그대로 '국군으로서 국가에만 충성하는' 장성들도 있으므로 이런 사람들에게 괜히 말을 잘못 꺼냈다가는 일을 벌이기도 전에 잡혀들어갈 수도 있다. 또한 장군, 영관급의 지휘관들은 포섭할 수 있지만, 그 아래의 위관급 장교나 부사관, 일반 사병들까지 광범위하게 포섭하는 것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구체적인 계획은 모르고 단지 지시에 따라서 쿠데타 병력으로 동원되는 경우가 많은데, 상황이 지지부진하다보면 바보나 로봇이 아닌 이상 자신들이 명분이 없는 불법행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이렇게 되면 쿠데타 병력은 통솔력을 상실하고 공중분해되어버린다.

일단 쿠데타에 성공한 다음에는 반대파를 제압하고, 중도파나 찬성파를 회유한다.[6] 이 과정에서 피아간의 식별이나 진압군의 병력 동원 문제 등으로 인해 상시 일정병력을 통제하고 있는 소장 및 고급 영관급 장교들이 공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7] 쿠데타 과정의 복잡한 상황은 정치 드라마 제3공화국(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MBC)과 코리아게이트(SBS)에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쿠데타 계획은 사후에 보면 '어떻게 이렇게 일이 흘러갈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허술한 경우가 많다. 이것은 거꾸로 생각해보면 현실적으로 정권의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확실한 쿠데타 계획'을 짜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때문에 성공한 쿠데타는 '정권 측의 더 어이없는 실수'가 겹쳐진 경우가 많다. 5.16 같은 경우도 장면 총리나 윤보선 대통령 둘 중 한 명이 진압을 결심했으면 즉각 진압할 수 있었으나, 장면은 수녀원으로 도망갔고, 윤보선은 어정쩡한 위치를 차지하여...[8] 12.12의 경우도 반란군과의 신사협정을 믿는다는(...)[9] 육군본부의 뻘짓이 아니었다면 반란군 측인 1, 3, 5공수여단보다 진압군 측의 9공수여단이 먼저 서울에 진입하여 보안사령부와 30경비단을 제압하고 반란을 조기에 진압할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반란 진압에 실패했던 것은 진압군의 총 지휘자인 노재현 국방장관의 행동이 묘연했던 것도 큰 원인 중 하나인데, 노재현은 총소리가 들리자 가족들과 함께 도망다니다가 하나회 수중에 떨어진 육군본부로 왔다 결국 붙잡혔다(...).[10]

3. 사례[편집]

3.1. 한국[편집]

3.1.1. 상고시대 및 삼국시대[편집]

3.1.2. 후삼국고려[편집]

  • 왕건태봉궁예를 몰아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 신검이 아버지인 견훤을 몰아내고 동생인 금강을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 강조의 정변

  • 헌종의 선양

  • 무신정권 시대의 7대 정변

    • 무신정변

    • 갑오정변 : 1174년 12월 정중부와 그 아들 정균 등이 선의문 밖에서 이의방을 살해하고 그 도당 이준의 등을 제거한 사건.

    • 기해정변 : 1179년 9월 경대승허승, 김광립, 김자격이 심야에 궁궐로 잠입하여 정중부, 정균, 송유인과 그 일당을 제거한 사건.

    • 병진정변 : 1196년 4월 최충헌, 최충수 형제와 박진재, 노석숭이 미타산에서 이의민을 살해한 사건.

    • 무오정변 : 1257년 3월 최씨가문의 심복 류경, 김준, 임연 등이 최의의 집으로 난입하여 그의 측근들을 제거하고 최의를 살해한 사건.

    • 무진정변 : 1268년 12월 임연원종(고려), 환관 최은, 김경 등과 결탁하여 궐내에서 김준을 유인 살해하고 그 가족들과 도당을 제거한 사건.

    • 경오정변 : 1270년 5월 원종의 밀지를 받은 임연의 인척 홍문계와 송송례가 임유무의 집으로 쳐들어가 임유무를 포살하고 그 측근들을 제거한 사건.

  • 병신정변

  • 위화도 회군

쿠데타로 나라를 빼앗고 쿠데타로 나라가 망했네

3.1.3. 조선[17][편집]

3.1.4. 근현대사[편집]

3.1.4.1. 대한민국[편집]

현대 한국사에서는 박정희, 전두환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인물들이다.

3.1.4.2. 북한[편집]

3.2. 중국[편집]

3.2.1. 후한[편집]

3.2.2. 삼국시대[편집]

3.2.3.[편집]

3.2.4.[편집]

3.3. 일본[편집]

근대 일본에서 군국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 쿠데타다. 물론 그 이전의 봉건 사회에서도 쿠데타가 있었으나 현대적인 쿠데타는 아래의 사건들이 있다. 다만 일본의 쿠데타는 지배 체제의 완전한 전복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국가 정책이나 이념의 수정을 목표로 하는 제한적인 형태의 것들이어서 의미부여에 한계가 있다.

3.4. 아프리카[편집]

아프리카엔 이런 식으로 권력을 잡은 이들이 많다. 아니, 사실 거의 대부분이라 봐도 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냐, 탄자니아, 말라위, 앙골라, 모잠비크, 세네갈, 보츠와나, 잠비아, 모로코 등처럼 쿠데타가 없었던 국가들도 있긴 하지만, 드물다. 그리고 일어나는 국가들에서는 허구한날 일어나서 내전까지 벌인다는 특징도 있다.

대표적으로 바로 라이베리아새뮤얼 케니언 도[21]우간다이디 아민, 콩고민주공화국모부투 세세 세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장 베델 보카사, 소말리아의 시아드 바레, 에티오피아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 등이다.(…) 하지만, 이렇게 무력으로 집권한 이 자들도 결국에는 무력으로 축출당했다.

또 하나의 예로 그 유명한 마가렛 대처의 아들인 마크 대처적도기니 쿠데타에 가담했다가 실패하고 도망쳤는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체포당하기도 했다. 게다가 정글의 법칙에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는 바람에 움직이지도 못햇다.

수단의 가파르 니메이리와 오마르 알 바시르는 둘 다 쿠데타로 집권했으며 이슬람 원리주의와 군부독재를 혼합한 최악의 독재(...)를 실시 중이다. 그리고 모리타니도 잦은 쿠데타로 악명이 높으며 특히 최근인 2008년에 쿠데타가 다시 발생, 국제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다.

알제리는 군부가 이슬람주의 정당들이 집권하면서 종교 근본주의 정치를 하는것에 반발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국가로 만들었다.

이집트는 무슬림형제단을 몰아내려고 2013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압둘파타 엘 시시 장군이 대통령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 이집트인들이 격렬히 군부독재에 반대했으나 탄압당한 후 현재는 숨죽이고 사는 상태. 물론 무슬림형제단도 문제가 많은 정권이었으나 쿠데타는 방법론이 틀렸다.

3.5. 태국[편집]

태국의 경우 심심하면 벌어지는 게 군사 쿠데타다.

태국의 쿠데타는 쿠데타 지휘관들이 국왕 앞에서 무릎 꿇고 질질 짜면서 "죄송합니다 폐하!" 하면 국왕이 등을 다독이며 "내가 니 맘 다 알아 임마." 라고 한다. 쿠데타가 벌어져도 그 대상에서 국왕은 완전히 배제되고 쿠데타군이든 정부군이든 국왕에게 절대 충성하는 특이한 경우이다.[22] 태국의 국왕은 국민들로부터 엄청난 존경을 받고 있기 때문에[23] 국왕을 무시했다가는 민중혁명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 수반들이나 쿠데타를 일으키는 장군들도 결국은 태국 국민인만큼, 무의식 중에 배였을 충성심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태국의 쿠데타는 국왕의 조종으로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태국도 헌법상으로 입헌군주정이지만, 워낙 국왕의 권위가 세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드는 민간정부는 국왕이 저런 식으로 해산한다고 한다. 탁신 총리의 정부를 뒤집은 쿠데타가 이런 경우인데, 태국 국왕은 권력을 늘리는 탁신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탁신의 부패혐의를 이유로 군부에 쿠데타를 사주했다고 한다. 반대로 1991년 수친다 장군이 일으킨 쿠데타의 경우에는 국왕이 처음에는 묵인하여 수친다는 총리로 취임하였으나 1992년 청백리로 이름높은 잠롱 방콕 시장이 주도하는 시민 봉기가 일어나 유혈사태가 벌어지자 국왕이 수친다와 잠롱을 어전으로 불러 수친다를 힐책하였고, 수친다는 총리직을 사임하고 해외 망명을 떠났다.물론 태국 국내에서 이런 말 했다가는 얌꿍......이전에 국민들에게 맞아 죽는다 2014년에도 탁신 총리의 여동생인 잉랏 총리에 대항해서 프라윳 찬오차 육참총장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탁신 때와 마찬가지로 국왕의 승인을 받아 찬오차 장군이 총리직을 꿰찼다.

하지만 위 상황은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 재위시기에나 가능한 일이다. 푸미폰 국왕의 신성화는 태국의 전통적 성격 + 태국 근대 역사의 상징성[24] + 소승불교 + 미국의 지원 + 푸미폰 국왕의 정치력이라는 복합적 형태로 완성된 것이다. 푸미폰 국왕의 1남3녀 중 유일한 왕자이고, 왕위 계승자로 꼽히는 마하 와찌랄롱꼰에게는 그런 권위가 없다. 워낙 사고를 많이 쳐서 오래전부터 주요 지도부는 왕자 반대 운동을 벌였다.[25]

이 때문에 푸미폰 국왕이 사망하면 진짜 쿠데타가 발생할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예상하였고, 실제로 사망하면서 태국에는 쿠데타와 내전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으나 현재는 정정이 안정된 편이다. 아무리 푸미폰 국왕이 죽었어도 아직도 태국인들에게 존경받는 게 현실이라 무작정 현 국왕에게 반기를 들기도 힘들다.

3.6. 중동[편집]

중동 역시 아프리카나 중남미에 비해 덜할 뿐이지 쿠데타가 만만치 않게 일어났었다. 대표적으로 이라크, 시리아, 예멘, 오만, 카타르, 이란, 이집트 등.... 심지어 구약성경에는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이 아버지에 대항한 쿠데타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다.

3.7. 중남미[편집]

이 동네에서는 아예 쁘로눈씨아미엔또 (Pronunciamiento)라고 하며, 막상 정부를 뒤엎기 전에도 쿠데타 주모자들이 미리 모여서 공개 장소에서 "정부가 이러이러한 이유로 똑바로 기능을 못하고 있으니 국가의 수호자인 군이 나서서 갈아 엎겠다!"고 쿠데타 선포부터 하고 국가 기관을 장악하려고 하는 요상하면서도 고유의 정치적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1868년 이사벨 2세의 정부를 무너뜨린 후안 프림과 프란시스코 세라노 장군의 쿠데타. 20세기 들어서는 이런 전근대 사회 특유의 대중 권력과 기사도에 기반한 쇼맨쉽이 넘치는, 기본적으로 귀족주의적 정서에 기반한 정치적 쇼맨쉽의 약빨이 떨어지기 시작해 1932년 스페인 제2공화국을 상대로 한 호세 산후르호 장군의 쁘로눈씨아멘또는 실패하고, 여기서 한계를 깨달은 우파와 군부는 4년 뒤 오히려 쁘로눈씨아미엔또와 거리가 먼 동시다발적, 기습적 쿠데타를 일으켜 스페인 내전의 서막이 되었다. 이 경우에서는 일반적인 쿠데타를 일으켜 3년간 내전이란 과정을 겪긴 했지만 어쨋든 성공했는데도 불구하고 별로 배운 교훈은 없었는지 프란시스코 프랑코 사후 군부, 국가 헌병대 내 골수 반동 파시스트 세력이 일으켰던 23-F는 전형적인 쁘로눈씨아미엔또 과정으로 퇴행한 이후 당시 국왕과 반쿠데타 세력의 빠른 뒷수습에 데꿀멍하고 망했다(...).

이웃이자 같은 이베리아 반도의 형제국가 포르투갈도 군부 쿠데타로 군부가 영입한 살라자르나 카에타누 등이 집권해 군부독재를 벌인 바 있다. 하지만 둘 다 1975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군부 개혁파들에 의해 쫓겨나 포르투갈은 민주화 된다.

당연히 여기서 많은 걸 배워 간 중남미의 경우 쿠데타계에서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1945년부터 15년간 30명이 넘는 지도자들이 쿠데타에 교체되는 충격적인 기록을 남겼다(...). 하도 쿠데타가 많이 일어나니까, 스페인어로 군부 지도부를 의미하는 훈타(junta)는 이제 영어에서 쿠데타 지휘부를 일컫는 일반명사가 되었다.[26]

중남미의 쿠데타는 냉전의 연장으로서 반미성향이 강한 좌익세력의 확산을 막기 위해 미국의 CIA가 개입한 경우도 많다. 피노체트가 일으킨 칠레의 1973년 쿠데타는 미국이 사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0년대에는 온두라스에서 또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이 지역은 결국... 미국에 등을 돌리고 러시아랑 친해지는 좌익 노선을 택했다. 물론 미국 눈치는 여전히 보고 있어 미국을 대놓고 적대하지 않으며 최대한 자극하지 않는다.

중남미에서 쿠데타가 안 일어난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며, 중미의 코스타리카멕시코 정도이다. 사실 코스타리카는 군대가 없긴 하다. 볼리비아처럼 심한 나라는 지금까지 일어난 쿠데타만 수십 번이라고 한다. 사실 볼리비아는 그 유명한 혁명 전문가인 체 게바라조차 가갔다가 사살당한 곳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사실 멕시코도 산타 안나, 포르피리오 디아즈, 우에르타, 알바로 오브레곤 같은 쿠데타 군부 독재 종자들은 멕시코 혁명기를 전후로 얼마든지 있었다. 다만 그 성격이 단순한 군사독재 뿐만 아니라 민간 세력들도 많았고, 주로 소수 주동자들이 기습적으로 일으키는 쿠데타라기 보다는 좀 더 규모가 크고, 지속된 군사 반란으로서의 성격이 짙어서 그렇지... 그리고 브라질아르헨티나도 군부 쿠데타 이후 독재자들이 등장했었다. 브라질의 경우 제툴리우 바르가스, 아르헨티나는 호르헤 비델라 등이 악명을 떨친 군부 독재자들이다.

3.8. 터키[편집]

터키의 경우 쿠데타는 일어나는데 정권은 맨날 민간에 이양하는 좀 이상한 경우다. 즉 터키군은 쿠데타를 일으키더라도 직접 권력을 잡지 않는다. 덕분에 터키에서는 쿠데타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 단, 군인이 직접 정치에 입문하는 일은 (심지어 군인이 멀쩡하게 전역해서 정상적으로 정치에 입문하는 경우에도) 금기시되며, 대중의 지지도 얻지 못한다. 터키군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이유는 군대 자체가 케말 아타튀르크 시대부터 국가원리가 된 세속주의와 '서구화 정책'의 강력한 지지세력이기 때문이다. 즉, 보수적 이슬람 세력이 정권을 잡고 세속주의를 후퇴시키려고 하면 쿠데타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쪽도 스페인, 중남미와 같이 정부가 친이슬람 성향으로 가려 하면, 공동성명을 열어 "니들 자꾸 그러면 정부 뒤집는다?" 라고 경고를 하고, 그래도 정부가 듣지 않으면 쿠데타를 일으켜 뒤집는 경우이다. 단 2016년 쿠데타는 기존의 전통(?)과 달리 아무 말도 없이 쿠데타가 발생했기 때문에, 그리고 과정 및 결과가 에르도안에게 너무나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주작설이 돌고 있다.

이러한 터키군의 세속주의에 대한 고수는 오스만 제국 후기, 제조업과 군대 운용 방식의 후진성(당시 근대화 정책의 반대 세력은 보수적 이슬람 법학자(=울라마)집단을 중심으로 모이고 있었다)으로 인하여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의 열강들에게 심심하면 털리던 터키의 쓰라린 기억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이 오스만 제국 시대의 예니체리 반란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27]

2000년대 중순 와서 압둘라 귈 총리를 비롯한 이슬람계 정당의 약진에 터키 군부는 고민중이다. 1960, 1971년, 1983년, 1998년까지 그야말로 10년을 주기로 쿠데타를 벌였고 그럴 때마다 국제적으로 까였으며 여러 모로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이 옹호해주었으나 계속되는 쿠데타에 EU 가입 문제와 여러가지로 마찰을 빚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2000년대 후반에 와서 이슬람계 정당인 정의 개발당에 완전히 정국의 주도권이 넘어갔으며, 이 당 출신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그동안 군부의 눈치를 보던 관행을 탈피하여 "정치군인"들을 주도적으로 해임하고, 쿠데타 모의를 적발했다며 터키군 총사령관 등을 체포하여 종신형에 처하는 강수를 두었는데도 군부는 꼼짝도 못했다.# 아마 여기도 민간 정치의 군부에 대한 우위가 확실해지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그 결과가 오히려 에르도안의 문민독재로 흘러가서 문제지만. 에르도안이 총리직을 버리고 대통령이 된 이후인 2016년 드디어 군부가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에르도안에 역습을 가했으나 오히려 패배하고 말았다. 이번에야말로 에르도안이 군부를 100% 장악하고 길들일 것이라는 전망. 자세한 내용은 2016년 터키 군사정변 참고.

3.9. 그리스[편집]

20세기 그리스는 쿠데타의 시대였다. 1차 세계대전당시 친동맹성향인 국왕을 갈아버린 당시 총리 엘렙세리오스 베니젤로스의 쿠데타 이후로 쿠데타는 일종의 전통이 되어서(...) 터키 독립전쟁의 패배 이후 혁명으로 들어선 공화정부를 1936년 요안니스 메탁사스 장군이 쿠데타로 뒤집고, 2차 세계대전이후 내전, 왕정복고로 들어선 정부도 요르고스 파파도풀로스 장군이 1968년 쿠데타로 뒤집어 1973년까지 집권한다. 대체로 쿠데타군은 왕정복고 및 반공을 내세웠으며, 집권 과정 및 내용은 중남미의 쿠데타와 유사한 편이다.

4. 변형된 쿠데타[편집]

4.1. 긍정적(?) 쿠데타[편집]

"34년 전에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했을 때 저는 모든 적으로부터 국가를 지킨다는 맹세를 했습니다." 알렉세이에프는 냉담한 어조로 말했다. "갈피를 못 잡아 국가를 망치려는 사람들도 역시 그런 적에 포함되는 겁니다!"


몇 안 되는 긍정적인 쿠데타의 예도 있다. 이를테면 포르투갈의 경우 1974년 4월 25일 군부의 청년장교들에 의해 발생한 이른바 '카네이션 혁명'으로 40년 이상 이어진 극우독재정권이 무너졌고, 이 쿠데타를 일으킨 청년장교들은 정말로 민정이양을 하고 본연의 임무로 되돌아갔다. 지금도 4월 25일은 포르투갈에서 혁명 기념일로서 국경일로 기리고 있는 날이다. 논란은 분분하지만 1960년의 터키 쿠데타 역시 일반적으로는 좋은 평을 듣는다. 이슬람주의적이고 다소 독재적이면서도 포퓰리즘적 정치를 하던 아드난 멘데레스 총리[28] 내각을 군부가 전복시킨 쿠데타로, 당시 군부 사령관이던 제말 귀르셀 장군은 최소한의 혼란이 수습된 후 민정이양을 하고 국민들의 존경을 바탕으로 명예직인 대통령 자리에 남는다.

4.2. 친위 쿠데타[편집]

권력을 쥐고 있는 측이 반대파를 숙청하고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해 스스로 벌이는 친위 쿠데타란 것도 있다. 흔히 쿠데타를 기존 정권을 뒤엎는 개념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친위 쿠데타' 라는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단순히 원론적인 쿠데타의 정의를 떠올려보면 가장 이해가 쉽다. "지배층 내의 특정세력이 무력을 앞세워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 즉, 기존의 헌법을 자신들의 권력유지에 유리한 독재 헌법으로 바꾼다거나, 반대파를 무력으로 숙청한다거나, 선거결과를 조작한다거나 하는 것은 모두 넓은 의미에서 쿠데타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렇게 기존의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벌이는 쿠데타를 '친위 쿠데타'라 일컫는 것이다. 10%의 권력을 가진 세력이 70%의 권력을 뺏기 위해 불법적 폭력을 써도 쿠데타지만, 70%의 권력을 가진 사람이 10%의 권력을 뺏기 위해 불법적 폭력을 써도 쿠데타인 것이다.[29] 후자가 친위 쿠데타인 것. 보통은 처음에는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집권자가 친위쿠데타를 통해 독재정권을 수립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하자면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무력을 동원해 국회를 개박살내고 그대로 황제로 즉위해 종신정권을 수립하는 것 역시 친위쿠데타이다.

박정희10월 유신아돌프 히틀러나치 독일이 친위 쿠데타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박정희는 초법적으로 군대를 동원하여 주요시설을 점거하고 계엄령을 선포하여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정지시켰고, 자신의 영구집권을 위해 소위 "유신헌법"을 만들어 국민투표에 부쳐 통과시켰다. 이는 국회의 동의를 얻지 않고(2/3의 찬성이 필요하다.) 바로 국민투표에 부쳤다는 점에서 위헌적인 것이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실질적 정권을 잡고 독일의 총리가 된 후에 수권법 등을 만들고 장검의 밤이라는 폭력을 통해 히틀러 반대파 세력 주요인물들을 죽여버린 뒤[30],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를 무너뜨리고 스스로 나치 독일 총통의 자리에 올랐다 비슷하게도 1981년에 폴란드에서 반공 소요사태가 발생하자, 군이 공산정부를 수호하기 위해 계엄령을 실시하고 집권했고, 1988년의 버마도 저런식으로 친위 쿠데타를 통해 민주화 시위를 진압했다.

사실 10월 유신의 경우처럼 군사를 동원하지 않으면 무력을 앞세워서라는 부분이 해석이 조금 어렵기 때문에, 정말로 군주가 병사를 동원한 친위쿠데타와는 다르게 설명할 필요가 있기는 하다. 이 때문에 계엄령[31]을 내린 부분을 강조해서 쿠데타라고 하기도 하고, 혹은 그냥 친위쿠데타적 성격의 사건 이라는 식으로 조금 돌려서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서 더 나가면 대통령이나 총리 등의 공화제 정부의 지도자가 친위 쿠데타를 통해 스스로를 아예 왕이나 황제로 선포하고 공화정을 군주정으로 바꿔버리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의 루이 나폴레옹2월 혁명으로 7월 왕정이 무너진 후 노동자와 농민들의 지지를 받아 프랑스 제2공화국의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1851년 대통령 임기가 끝나가자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후 황제 나폴레옹 3세로 즉위하여 공화정을 폐지하고 프랑스 제2제국을 수립한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 장 베델 보카사는 1976년 12월에 정부와 의회를 해산하고 신헌법을 공표해 공화국에서 제국으로 체제를 바꾸어 스스로 '보카사 1세' 로 자처하는 황제가 되었다.

입헌군주제 국가의 국왕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전제군주제로 바꿔버리는 경우도 있다. 스웨덴의 구스타프 3세는 국왕이 된 후 왕당파의 지지아래 근위병을 임용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칼 12세 이후로 50년간 지속되던 의원내각제 체제를 뒤엎고 전제군주제로 회귀시켜버린다. 이로 인해 스웨덴의 자유의 시대(Frihetstiden)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남아프리카의 소왕국 스와질란드는 196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는 입헌군주국이었는데 국왕 소부자 2세[32]가 1973년 헌법을 정지시키고 의회를 해산하여 독재를 시작, 전제군주제 왕국이 된다

그밖의 사례로 리그베다 위키의 운영자 청동청위병들을 동원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자가 되려고 했으나 위키러들이 일으킨 혁명으로 인해 몰락하고 만다

4.3. 역쿠데타[편집]

반대로 쿠데타 세력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이 쿠데타 정권을 뒤엎는 것은 역쿠데타라고 한다. 쿠데타 정권 대다수가 장기집권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역사의 후퇴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역쿠데타 크리까지 터지면 그 나라는 십중팔구 막장테크를 타게 된다.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이 바로 이런 경우인데, 남베트남은 북베트남과 싸우는 중에서도 하도 쿠데타가 많이 일어나니... 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다.

글라이스틴 前 주한 미국대사에 의하면 12.12 군사반란 직후에도 역쿠데타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일부 장성들이 미국에 역쿠데타 지원 여부를 타진했으나, 미국이 거부하여 무산되었다고 한다. 제5공화국(드라마)에서도 이 부분이 다루어졌는데, 역쿠데타를 추진한 장성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만큼 드라마에서도 이름은 언급되지 않은 채로 등장한다. 여기선 하나회 이외 장교들이 주도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항간에선 12.12 사태에 불참한 장성 일부가 주도한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또한 하나회를 고깝게 보던 해군과 공군 장성들이 하나회가 없는 해병대 같은 휘하 육전부대를 동원하려 했다는 설도 있다.

그리스의 마지막 국왕인 콘스탄티노스 2세는 요르요스 파파도풀루스 장군이 쿠데타로 집권하자 그를 몰아내기 위한 역쿠데타를 사주했다가 축출되었다.

5. 현재 대한민국에서의 가능성[편집]

전혀 없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극히 줄었다. 2000년대 중반 어떤 잡지에 익명으로 실린 장군의 인터뷰도 있었다. 일단 쿠데타를 모의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가진 조직이 없다. 이는 하나회가 해체되고 군내 사조직이 철저하게 금지된 탓이 크다. 그리고 고도로 발전된 통신망은 대규모 부대이동을 민간인의 눈에 안 띌 수가 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인터넷이라는 게 있다. 그래서 군사반란은 더 불가능하다. 군사반란이 눈꼽만큼이라도 낌새가 보인다면 그 내용을 인터넷에 올리게 되고 그러면 전 세계적으로 다 알게 되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기껏 군을 움직이고 있는데 지나가던 시민들이 너도 나도 폰카메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비밀리에 동원할 수 있는 쿠데타 병력은 기껏해야 사단급이다. 일단 서울 밖에서의 이동이 군 정보기관이나 지나가던 시민들의 제보로 포착되면 전군과 몇몇 특수부대가 즉각 진압에 나서고, 쿠데타는 당연히 실패로 끝난다. 과거 군사정권의 '통금'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 새삼 실감할 수 있다. 그리고 완전 전산화된 금융 덕도 크다. 거사 자금을 모으기 시작하면 바로 돈의 흐름이 추적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돈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이 더 이상 그런 초헌법적인 사태를 용인하지 않는 것이다. 핵전쟁, 전세계적인 완전 경제붕괴 등 무언가 아포칼립스적 사태로 역사의 흐름이 바뀐다면 또 모르겠지만, 어쨌든 쿠데타는 불가능하다.

위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서울신문 백무현 만평[33]

전두환, 노태우 등 쿠데타 출신 대통령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쿠데타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덕분(?)에 쿠데타 방지책이 여러가지 마련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결정타를 날린 것은 집권하자마자 15일 만에 전격적으로 하나회를 해체해버린 김영삼... (하나회 항목 참조)

참고로 현재 쿠데타 방지 업무는 국군기무사령부(옛 보안사령부)가 맡고 있다. 수도권 주위에 배치된 부대의 지휘관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 기무사의 주요 임무 중 하나이다. 대통령이 괜히 자신과 밀접한 연줄이 있는 인물을 기무사 사령관에 앉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국가는 항상 만약을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하므로 국가정보원이나 국군기무사령부와 같은 각 정보기관의 경우는 항상 국내의 군부대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습게도 12.12 군사반란하나회가 쿠데타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군내 요직에 자신들 세력을 철저히 심어둔 것 이외에도 이들 정보기관을 좌지우지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34]

따라서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그렇다고 마냥 안심해서는 안된다. 12.12 군사반란쿠데타를 막아야 할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이 주모자였기 때문에 못 막았던 것이고, 집권기에도 미국의 압박으로 무산되기는 하였지만 친위 쿠데타를 준비하였던 적이 있으며, 노태우 정권에서도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에서 보듯 보안사가 청명계획을 수립, 노태우를 위한 친위 쿠데타를 준비했던 흑역사가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인식이다. 여론이 "민주주의가 밥먹여주냐? 차라리 독재자가 더 낫다!"라고 돌아서는 순간, 쿠데타는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특히 최근 무능한 박근혜 정부의 사회 분위기상 쿠데타 소식을 듣고 박수를 보낼 네티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SNS 등의 발달이 쿠데타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은 2014년 태국 쿠데타가 여실히 보여주었다. 시민들의 제보로 쿠데타군이 진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이를 진압할 기무부대나 특수부대까지 쿠데타군의 편이라면? 쿠데타군이 기간통신시설을 장악하여 휴대전화망이나 인터넷망을 일시 차단한다면? 여건만 되면 오늘 밤에도 일어날 수 있다. 더구나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사람이 3선 의원인 지역구가 있는 걸 보면 재발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 힘들었다.

2016년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파국으로 치닫게 되자 인터넷에서는 아예 박근혜를 무력으로 몰아내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씁쓸한 현실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또다른 군대 내 사조직인 알자회가 알려지면서 21세기 한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날 지 모른다며 충격을 받고 있다. 게다가 현재 2017년 기무사령관은 알자회 출신 조현천이라 만약 그들이 일을 벌이면 쿠데타를 막을 수 없을 수도 있었다. 자세한 것은 알자회 항목 참조.

뭐 어쨌든 평화적인 방법으로 탄핵을 이끌어 냈으니 잘 된 일.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송영무 국방장관 임명을 강행하며 장성급 인사로 쿠데타나 항명 가능성이 있는 알자회나 김관진 라인을 날려버리기 시작했다. 당장 위에 말한 조현천이 교체 순위이며 장경석도 마찬가지로 이 둘은 배드 엔딩이 예고된 셈. 게다가 황기철, 김은기 등 구 정부에 원한이 있는 예비역 장성들이 현 정부에 협조하고 있어서 극단적 밀덕들이 한동안 주장했던 쿠데타 썰은 점차 현실과 멀어지고 있다.

6. 여담[편집]

국가/정부의 중추만을 공격하여 들어엎기 때문에 파급력에 비해 실제 동원되는 병력은 그리 많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성패가 결정되는 시간도 기껏해야 하룻밤 정도. 그 이상이 되면 좌절하거나 역사에 쿠데타가 아니라 내전이란 이름으로 남게 된다. 교과서적인 경우가 처음에는 쿠데타로 시작해, 국토의 반쯤은 장악했으나 수도를 비롯한 나머지 핵심 지역 장악에 실패, 3년간 기나긴 피비린내나는 내전 끝에야 전국을 장악했을 때는 이미 쿠데타 세력의 구성도, 목적도 확연하게 변해 있었던 스페인 내전이다. 6개월 정도 걸린 대한민국의 12.12 군사반란세계에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쿠데타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35]

위험성(?) 면에서 본다면, 당연히 반란군과 진압군 사이의 혈투도 위험하지만, 사실 일개 보병으로서는 결국 쿠데타 세력도 조금 전까지는 정부군 또는 세력의 일부였다는 점이 정말 위험하다. 피아식별이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특제(...) 전투복이라도 만들면 당연히 도중에 들킨다. 그래서 쓰는 방법이 그냥 사단 하나를 통째로 빼돌려서 "X, Y, Z사단 빼곤 다 적이라능!!"으로 단정하거나, 원래는 안 쓰는 아이템(예 : 완장, 머리띠 등)을 착용시키거나 반대로 빼도 되는 장비를 빼는 방법을 택한다. (예 : 방탄모 대신 전투모 착용.)

<공수부대 이야기>라는 책에 나오는 1공수여단의 모 원사는 갑자기 한밤중에 비상이 걸려서 뭥미? 북한이 쳐들어온건감?하고서 갔더니[36][37] 그 날은 1979년 12월 12일이었고 그들은 육군본부에 도착했던 것이다.(...) 이렇듯 부대원들에게는 쿠데타 측에서 거사직전까지 전혀 낌새를 주지를 않는다. 병사들중 누군가 기무부대에 편지나 전화 한통 때리면 그대로 GG.[38]

만약 당신이 이런 '쿠데타에 동원된 부대'에 우연히 소속되어 있다가 사태에 휘말린 일개 병사라면, 명령을 거부해도 군법으로는 큰 문제가 없다. 아니, 오히려 거부해야 한다. 명백히 위헌이거나, 무효에 해당할 정도로 위법인 명령(고문 혹은 가혹행위, 포로 학대, 민간인 학살 등)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범죄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을 수도 있지만, 반란은 군인이라면 기본적인 상식 선에서 곧장 답이 나오는 극단적인 죄목이기에 그딴 건 기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까짓 거 성공하면 처벌 안 받는다 물론 용서의 문제는 법정에서의 얘기고, 당장 현장에서 미래의 아바이 수령동지인 '두목님'에게 죽을지도 모르는 것이 현실이니(…) 명예와 목숨을 잘 저울질해보자. 법적으로도 '위협을 받은 증거'가 있다면 '협박당해서 어쩔 수 없이 동참했다'는 것이니 면책사유는 된다고 한다.

7. 이를 소재로 한 외국의 작품들[편집]

워낙에 정치적인 행사인 관계로 여러 의미에서 논란을 일으키기 쉬워서 문화 매체에서는 그다지 즐겨 사용되는 소재는 아니다. 다만 의미를 잘못 이해해서 '반란' 과 '쿠데타' 를 혼동해서 사용하는 경우는 여럿 있다. 아무튼 정상적인 의미의 쿠데타를 다룬 작품들 중에서 유명한 작품은 명장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이 조국 그리스의 군사정권을 비판한 <Z>(1969)나 칠레 피노체트 군사정권의 실상을 고발한 엘비오 소토의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Il pleut sur Santiago. 1975)를 들 수 있다.

한국에서는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노태우 정권에서 쿠데타를 부정적으로 다루는 건 금지됐다. 1967년 한국영화 <장군의 수염> 원작 소설은 쿠데타군을 다룬 것인데 영화에 나오던 군대는 쿠데타랑 상관도 없는 무슨 남북전쟁 당시 북군 차림 군대로 잠깐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해야 했다.더불어 Z나 계엄령같은 코스타 가브라스 영화들은 20년이나 한국에 개봉금지됐다. 황미나는 만화에서 이세계를 무대로 했다고 해도 쿠데타군이 악역으로 나온 점으로 연재하던 작품(제목 추가바람)이 연재중지되었다.

미국에서의 극우 쿠데타 음모를 다룬 정치 스릴러 <5월의 7일간(Seven Days in May)>(1964)의 예고편. 존 F. 케네디 재임시기 제작이 진행되었으나 케네디의 암살로 인해 개봉이 연기되기도 하여 유명해진 작품이다.[39]

미국의 군사사가 에드워드 루트웍이 쓴 쿠데타 연구의 고전 '쿠데타 입문서(Coup d'État: A Practical Handbook. 1968)' 를 원작으로 영화화한 작품 <Power Play>(1978)의 예고편. 한국에서는 김영삼 정부 이후에 공개되었다.

이 두 영화는 상기 한국 정치 드라마들의 참고서가 되었다는 말이 있다.

게임 스플린터 셀: 컨빅션에서는 정체불명의 흑막인 메기도서드 에셜론의 국장인 톰 리드와 루시우스 갈리아드를 조종하여 워싱턴 DCEMP로 공격한 다음 정권을 장악하는 쿠데타를 벌이려다가 샘 피셔에게 저지당한다.

8. 관련문서[편집]

[1] 이원복 선생은 그의 만화에서 '國大打'로 언어유희화. 뭔가 그럴 듯한데? [2] 프랑스어 원어 발음은 '꾸 데따'에 가깝다. 전원책이 저렇게 발음한다 [3] 원어로 해석을 하자면 나라에 한 방 먹인다는 뜻이 된다.[4] 스페인어에서 유래한 단어다.[5] 전투부대 포섭도 바쁘고 잘 안 되는데 군수관련 부대를 포섭할 시간이 있을 리가 없다.[6] 실제로 5.16 당시 이성호 해군참모총장은 쿠데타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나 이후 해공군만으로는 쿠데타를 진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끝에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7] 군단급 정도 되면 예하 부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게 당연한 일이다.[8] 당시 군부에서 박정희를 의심스럽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고, 특히 제2군에서는 진압작전을 위한 출동준비까지 했으나...[9] 육군본부 수뇌부들이 전두환의 신사협정에 응한 가장 큰 이유는 남침의 절호의 기회를 맞은 김일성을 눈앞에 두고 서울에서 대규모 유혈사태를 벌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애초에 상대는 휴전선에 구멍이 나는 것을 알면서도 최전방 예비사단인 9사단을 무단으로 동원한 놈들이며, 또한 쿠데타가 실패하면 내란죄운명 뻔한 이므로 반란군들이 신사협정을 지킨다면 그게 더 신기한 일일 것이다. 그야말로 상대를 잘못 봐도 너무 잘못 본 어리석은 선택이었다.[10] <제 5공화국>에서는 만약 이날 노재현이 제대로 진압했다면, 군부 정권이 들어서는 불행한 일은 없을 것이라 하였다.[11] 한국 역사상 최초의 쿠데타.[12] 모본왕의 죽음 자체는 쿠데타가 아니다. 우발적인지 계획적인지는 알 수 없으나 조직적인 형태의 살인은 아니다.[13] 단 2년 만에 승하했다. 여기에서 근초고왕(부여구)을 비롯한 초고왕/비류왕 계열 왕족들이 고이왕계 왕족이었던 계왕을 시해하고 근초고왕을 왕위에 추대한 것이 아니냐는 가설이 있는데, 확실치는 않다. 심지어 계왕은 백제의 계보를 늘리기 위하여 만들어진 가상인물이라는 가설도 존재한다. 여하간 이로써 고이왕-책계왕-분서왕-계왕으로 이어지는 고이왕계는 완전히 몰락해 버린다.[14] 삼국사기에서는 그냥 진사왕이 사냥 중 행궁에서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일본서기에는 이 상황이 나름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런 정황을 보았을 때, 아신왕의 쿠데타에 가 적극적으로 지원한 듯하다.[15] 아직까지는 유력한 가설 정도이다.[16] 쿠데타와 친위 쿠데타 사이에서 설이 엇갈린다.[17] 여담이지만 조선 초기에는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주동자였던 대왕이 한 분 있었다. 쿠데타 쓰리런 정작 본인은 쿠데타를 일으키지 않았지만, 충녕 거르고 수양 당시에 엄연히 첫째인 양녕대군을 놔두고 셋째가 왕위에 오른다는 것은 왕의 정통성을 의심할 수도 있는 대사건이 맞으므로 그런 의미에서는 세종 본인도...[18] 시작부터 완료까지 6개월이나 걸린, 세계 각국의 쿠데타 중 가장 긴 쿠데타란 타이틀을 얻었다.[19] 하진을 주살하고 권력을 장악 부분까지만.[20] 모의 단계에서 적발되는 통에 실패해서 그렇지 엄연한 쿠데타 시도였다. 그것도 1960년대에 있던 일이다![21] 전두환 시대 때 방한한 적이 있으며, 이때 한국외국어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를 수여하자, 매우 자랑스러워했다는 일화가 있다. 참고로 새뮤얼 도는 원래는 군 하사 출신이다. 쿠데타 당시 계급은 상사. 행보관이 쿠데타를... 흠좀무.[22] 이는 옆나라 일본도 마찬가지여서 5.15, 2.26, 궁성사건 같은 근현대사의 쿠데타에서 천황은 어디까지나 공격 예외대상이었다. 심지어 2.26쿠데타 당시 히로히토 천황에게 쿠데타의 취지를 설명하러 황궁에 들어간 한 장교는 총애하던 각료들이 쿠데타로 죽어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열받아 있던 히로히토가 "감히 어딜 들어오느냐!"며 불같이 화를 내자 사죄하고 밖으로 나가 천황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며 스스로 할복했다고 한다. 1868년 무진전쟁 당시 막부군도 신정부군이 천황가의 깃발인 니시키노미하타(錦旗)를 앞세우자 함부로 덤비지 못하고 도망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23] <옹박 : 두번째 미션>으로 국내에 개봉된 <똠양꿍>이라는 영화에서 이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평생을 가족처럼 애지중지 키운 코끼리임에도 국왕 전하께 코끼리를 바칠 심사대회에 나갈 수 있게 되자, 극중에서 토니 쟈의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합장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은 절대로 과장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태국 국민들의 국왕에 대한 존경심에 비추어 보면 모자란 감이 있을 정도.[24] 비식민지화문제. 다만 이 문제는 운 + 영토 할양 + 일본과의 동맹이라는 복잡한 형태로 완성되었다. 마지막 문제 때문에 태국은 전범국가가 될 뻔했으나, 냉전 상황이라서 넘어갔다.[25] 탁신이 쿠데타로 밀려난 이유가, 탁신의 부패 문제 때문이라기보다는 왕자 지지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 이 입장에서 보면, 탁신을 몰아낸 쿠데타는 왕의 의도일 수도 있지만, 당시에도 건강상으로 문제가 많았던 푸미폰 국왕과는 아무 상관없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높다. 푸미폰 국왕의 권위가 떨어진 증거는 수완나품 국제공항 점거 중단 명령이 무시당한 것을 포함해서 분명히 존재한다.[26]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중방"도 일종의 훈타이다. 그리고 5.16 이후에 세워진 국가재건 최고회의도 영어권 자료에서는 훈타로 소개되고 있다.[27] 오스만 제국 시절 중앙군인 예니체리의 반란은 후기로 갈수록 정권획득을 위한 반동이라기보다는 군의 요구 관철을 위한, 혹은 각 사회계층의 요구를 대리하기 위한 보조수단적인 면이 강했기 때문이다. 실제 반란의 주체가 직접 중앙의 정권을 잡은 경우는 단 한번도 없었으며, 많은 반란이 일방적인 진압이 아닌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종결되었다. 물론 그 후에 정치적으로 보복을 당한 경우도 허다하다.[28] 아드난 멘데레스는 터키 역사상 가장 논란이 되는 인물 중 하나로, 현재의 에르도안 같은 타입의 독재자였지만 어쨌든 민선 총리였고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약식 재판에 의해 처형당했기에 먼 훗날 터키 대법원에 의해 복권되었다. 정작 귀르셀 사령관은 멘데레스를 살리려 했지만 휘하의 쿠데타 주도 세력이 독단적으로 처형해 버렸다는 것이 아이러니.[29] 1%라도 단기간에 더 권력 비중이 커지는 것은 권력층의 안정성에서 차원이 다른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30] 웃긴건 히틀러가 이런 쿠데타를 벌인 명목이 "그들이 쿠데타를 하려 한다"는 것이었다는 것이다.(물론 그들은 그런 적 없고, 거짓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쿠데타를 일으킬 거 같아서, 자기가 그들을 불법적 폭력으로 죽여버리는 친위 쿠데타를 벌였다는 이야기. 쿠데타에게 쿠데타가[31] 이걸 내리면 경찰 대신에 군대가 깔린다.[32] 무려 82년간 재위해 실제로 장수한 왕들 목록에도 올라가 있는 왕이다[33] 이 만평이 개재된 2006년태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했다.[34] 중앙정보부의 장인 김재규대통령암살초유의 사태 때문에 중앙정보부 자체가 보안사의 수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중앙정보부는 한동안 보안사의 시녀 역할을 하는 반쪽짜리 정보기관이 된다.[35] 이건 정권 장악까지 걸린 시간이 6개월이라는 것이지 실제로 쿠데타가 6개월이 걸렸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12.12 사태 당시 군부의 장악에 걸린 시간은 불과 10시간 정도였다. 12.12 사태의 결과는 군부의 장악에만 제한되었다. 물론 당시 한국은 군사독재국가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군부의 장악은 곧 정권을 절반 넘게 장악한 것과 같은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실제로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기위해 5.17 내란을 또 일으켜야 했다.[36] 지금 보면 우스운 이야기지만 7, 8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에 대한 공포심은 어느 정도는 정부에서 부채질했던 것을 감안해도 현재로서는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그걸 감안하면 저런 반응은 그리 이상한게 아니다. 평화의 댐같은 사기극이 먹혀들 수 있었던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37] 국방부가 왜 국방부이고 군인이 왜 존재하는가를 생각하면 저런 반응이 나오는게 당연한 것이다. 한반도에서 비상이 걸릴 가장 가능성 높은 원인이 뭐겠는가. 국가 수장이 국내 최고 정보기관의 장에게 암살당한 시점에서 그 사건의 수사를 맡은 기관이 주축이 되어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해 병력을 소집하려는 것을 일개 원사가 추측할 수 있었을 리가 없다.[38] 12.12는 좀 특수한 사례다. 군부 쿠데타를 막아야 하는 기관이 오히려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상황이기 때문. 굳이 대자면 면역세포가 신체를 공격하는 알레르기 같은 상황이었다고 해야 하니...[39] 실제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에 대한 선제공격 및 핵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군상층부와 계속 대립했다. 쿠바 핵위기 당시 쿠데타가 임박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고, 군부가 대통령의 지시없이 핵실험을 무단 실시해서 소련과의 대결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하였다. 커티스 르메이가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되는 내용의 대체역사물도 있을 정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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