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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الله 이슬람의 종파 (마드하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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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피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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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발리파)

와하브파

→ (와하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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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키파

자히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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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드파/5이맘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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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탈리파

니자리파 (어쌔신)

드루즈파 *

12이맘파

자파리파

알레비파 **

알라위파 **

하리지파

이바디파

수피즘 · 아마디야 · 기타

* 이슬람과는 별개의 종교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음
** 시아파와는 별개의 종파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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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시자

무함마드 [1]

시작 시기

610년 경 [2]

규모

약 18억 명 (전 세계 2위) [3]

언어별
명칭

한국어

이슬람, 회교(回敎)

아랍어

الإسلام

영어

Islam

그리스어

Ισλάμ

러시아어

ислам

중국어

伊斯蘭教

일본어

イスラム

에스페란토

Islamo


1. 개요2. 이슬람의 기본
2.1. 마드하브(이슬람의 주요 학파)2.2. 종교의 특징
3. 이슬람 문화
3.1. 이슬람의 성원과 예배3.2. 종교와 식품3.3. 이슬람에서의 성관념3.4. 이슬람에서의 여성 인권
3.4.1. 여성 인권을 강조하는 이슬람 일파 및 조직
3.5. 민속 이슬람3.6. 종교 용어의 차이
4. 역사
4.1. 초기~중세 이슬람4.2. 이슬람 황금기 (Islamic Golden Age)4.3. 근대~현대의 이슬람
5. 다른 문화권이나 종교와의 관계
5.1. 이슬람의 타 종교 탄압 사례5.2. 타 종교 및 국가의 이슬람 탄압 사례
6. 이슬람 근본주의7. 이슬람 국가들의 특징8. 이슬람의 출산율9. 이슬람=아랍=중동?
9.1. 원인9.2. 국가별 무슬림 비율
10. 한국과 이슬람
10.1. '할랄 단지' 사건10.2. 문화 갈등
11. 창작물에서의 이슬람
11.1. 이슬람에 관한 창작물
12. 인터넷 접미사 ~슬람
12.1. 예시12.2. 과도한 사용
13.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freeislamiccalligraphy.com/allah-akbar-black.jpg

아슈하두 안 라 일라하 일랄라 와 아슈하두 안나 무함마단 라술룰라

أشهد أن لا إله إلا الله وأشهد أن محمد رسول الله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습니다. 무함마드는 그분의 사도입니다.[4]

파일:external/www.clipartbest.com/7caRKnEni.png

알라후 아크바르
الله أكبر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다

크리스트교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중동 최대의 종교

이슬람은 무함마드를 신의 사도로 여기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이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동굴에서 자다가 날개가 600개 달린 대천사 지브릴(جبريل)이 전해준 계시에 의해 아내와 어린 조카에게 신의 말씀을 전한 것에서 시작되어 2018년 약 18억 명의 신도가 있는 세계 4대 종교 중 하나. 무함마드는 메카메디나에서 활동했는데, 메카에서 말로 13년 동안 설파하고 설득해서 얻은 개종자는 150 명뿐이었으나, 메디나에서 하층민들과 소외자들을 규합해 메카 귀족들을 향해 정복전쟁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고 한다.[5]

이슬람(اسلام)이라는 말은 아랍어 어근 'س ل م(S-L-M)'에서 온 것인데, 이는 아랍어로 (신에게) 복종이라는 뜻이다.[6] 평화를 뜻하며, 구체적으로는 '(하나님에게) 복종함으로써 얻는 마음의 안식과 평온함'을 의미한다. 무슬림들의 인삿말 "앗살라무 알라이쿰"(평화가 당신께 함께 하기를), 유대인들의 인삿말 "샬롬"[7]에 이 낱말이 들어가있다. 성경에서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 앞에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말한 것도 이런 셈족 언어의 전통에서 이해하면 된다. 예수가 생전에 썼던 아람어도 셈어족에 속하므로.[8]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서울 성원의 인터넷 주소는 이곳이다.

한자로는 회교(回敎)라 표기한다.[9] 회흘(回吃; 현재 중국의 신장 위구르족 자치구 행정구역) 지방에서 건너온 종교라는 뜻으로 추정되며. 명나라 때에는 회흘 지방에서 건너와 중국에 정착한 기독교인과 유대인도 회회인(回回人)이라 칭하였다.(이를테면 기독교인 십자회회(十字回回) 유대인은 남모회회(藍帽回回)등등 회회 앞에 특징을 붙여 칭함) 그러나 명나라 때에 이르자 명의 쇄국 정책의 일환으로 서역 출신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결혼하는 것을 금하고 한족하고만 혼인하도록 강제 하는 정책으로 이들을 한화시켜버렸고 이에 따라 이슬람 회회인 이외에 기독교와 유대교 회회인은 아예 한족과 동화되어 버리거나 차라리 중국 내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였고 결국에는 '회회'라는 말이 무슬림을 칭하는 말로 굳어지게 된다.[10]

2. 이슬람의 기본[편집]

'알라'라는 호칭은 이슬람과 아랍계 기독교에서 많이 사용되는 아랍어 단어로 아브라함계 종교의 유일신을 뜻하는데, 어원적으로는 히브리어에서 신을 가리키는 보통명사 '', 고대 가나안 종교에서 만신전의 주신인 '엘'과 뿌리가 같다. 아랍어, 히브리어, 고대 가나안어 모두 셈어파이기에 이렇게 된 것.

언어적으로 좀 더 상세히 설명하자면 알라(الله)는 알(ال, the)과 일라(إله, diety)가 합쳐진 단어로, 영어로 단순히 직역하면 The diety 라는 뜻이며 한국어로는 '경배받을 존재'라는 뜻이다. 이슬람 이전 고대 아랍 다신교[11]에서 '알라'는 고대 가나안 종교의 '엘'처럼 창조신이나 최고신을 일컫는 단어로 쓰였다. 또 당시 아랍 지역에 있던 기독교도들도 신을 '알라'로 지칭했고, 가산 왕국과 남아라비아 등지에서 기독교도들이 '알라'라는 단어를 사용한 흔적이 발견된다. 지금도 시리아, 레바논 같은 아랍권 기독교인들은 '알라'라는 명칭을 쓴다. 이후 뒤따라 이슬람도 '알라'를 사용하게 된다.

이런 광범위한 용례때문에 이슬람의 '알라'와 아랍 다신교의 "알라"를 동일시하여 이슬람을 아랍 토속신을 믿는 종교로 여기는 경우가 있는데, 설사 이슬람이 '알라'를 아랍 다신교에서 가져왔다 할지라도 신의 성격과 신을 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이상 이슬람에서 말하는 '알라'와 아랍 다신교에서 말하는 '알라'는 이미 동일하지 않으며 서로 단절된 관계라 할 수 있다. 어쨌든 무함마드가 증거한 '알라'는 유대교와 기독교의 그 유일신을 지칭한다는 것이 이슬람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알라 신'이란 표현은 '역전 앞'과 같아서 틀린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는 '역전 앞'같은 어법 측면에서 틀린 게 아니라 종교적인 관점에서 허용되지 않는 표현이다. 이슬람은 일신교이기 때문에 유일신인 알라(야훼) 외에 다른 신은 없다고 간주한다. 따라서 애초에 신은 알라뿐이고 그 알라가 곧 신이기 때문에 신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종교적인 관점에서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이슬람과의 교점이 별로 없고, '사하라 사막'이 아랍어로 사막을 가리키는 '사흐라'에서 나왔지만 북아프리카에 있는 특정 사막만을 뜻하는 의미로 쓰듯, 알라 신 또한 종교적 판단을 떠나서 의미를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생겨난 한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이슬람교에서는 알라를 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라고 한다.

무함마드에게 계시를 내린 천사는 지브릴(جبريل). 히브리어로는 가브리엘(גַברִיאֵל). 이슬람에서는 천사에게는 종족 번식이 필요없다. 필요에 따라 신에 의해 생산이 된다 생각해 따로 성별을 따지지 않는다.

경전은 쿠란이다. 번역으로 인한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쿠란은 번역이 금지되어 있다.[12][13]

물론, 이건 아랍어로 된 쿠란만이 유일하게 정통성이나 종교적 가치가 있다는 것이니까 번역 자체를 금지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말로 번역한 쿠란은 쿠란과 동등한 지위를 갖지 못하며, 번역본은 쿠란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설명서 정도의 지위만 차지할 뿐이다. 이런 식으로 번역된 쿠란에는 항상 '의미의'라는 수식어가 붙거나 '주해서'라는 단서가 달린다. 예를 들어 한국어 번역본의 이름은 '성 쿠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 때문에 만약 번역본을 아랍어로 된 쿠란과 동급으로 여기는 풍조가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독특한 지역적 차이로 간주된다.[14]

무슬림이 되는 방법은 무슬림이 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하고 아래의 샤하다(신앙고백)의 의미를 이해한 상태에서 아랍어로 샤하다를 낭송하는 것이다. 샤하다를 혼자 해도 유효하지만, 아무개가 샤하다를 했음을 확인해줄 무슬림 증인들 앞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다. 근처에 있는 성원의 이맘 앞에서 이맘이 샤하다를 천천히 낭송하면, 입교자가 이를 따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님 외에는 신이 없으며 무함마드는 그의 예언자(لَا إِلٰهَ إِلَّا ٱلله مُحَمَّدٌ رَسُولُ ٱلله)

이슬람에서는 모든 기도나 신앙 행위를 할 적에 신앙을 위해 한다는 명확한 목적의식이 있어야만 유효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전혀 무슬림이 될 생각이 없는 사람이 입으로만 샤하다를 했다고 무슬림이 되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일반인들의 상식상으로는 이슬람은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유대교를 뿌리로 두고 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정작 무슬림들은 이슬람은 아담 때부터 시작된 종교로 유대교와 기독교는 원래의 순수한 유일신 신앙이 변조된 것으로 이슬람은 인류 창조부터 시작된 종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가졌던 신앙과의 동일성을 강조하며[15], 무함마드부터가 "아브라함의 종교"라는 표현을 적극 사용하고 확산시킨 장본인이었다.

성서의 백성들[16]아 너희가 모세오경과 복음과 너희의 주님께서 너희에게 지금 내려주신 것(쿠란)을 따라 행할 때까지 너희는 아무것도 없느니라

오 성서의 백성들아 왜 너희가 진리를 허위와 뒤섞어 의도적으로 진리를 은폐하느뇨?

그리고 스스로 ‘우리는 기독교인이요’라고 하는 자들로부터도 내가 약속을 받았으나 그들은 그들에게 보내어진 메시지 중에서 선한 부분을 저버렸노라. 그리하면 부활의 날(저들이 하나님의 책을 버리고 하나님의 메신저들과 그분의 질서들에 복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율을 범하였을 때)까지 그들 가운데에 증오와 대립을 내가 심었노라 그리하여 곧 하나님께서는 그들 자신들이 행해온 것이 무엇인가를 그들에게 알릴 것이니라.

성서의 백성들 가운데 (1)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2) 최후의 날을 믿지 아니하며, (3)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도께서 불법이라 한 것을 불법으로 지키지 아니하며, (4) 진실의 종교(이슬람)를 따르지 아니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그들이 세금을 기꺼이 납부하고 그들 스스로 복종할 때까지 싸우라 그리고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우자이르[17]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고 기독교인들은 메시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니라 그것이 바로 그들이 자신들의 입으로 말하는 것이노라 그들은 그들 이전에 믿지 아니한 자들의 말을 흉내내는 것이니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에게 있으니라 얼마나 저들이 진리로부터 벗어나 미혹되어 있는가?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예수(이슬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예수하느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으며 예수에 대한 해석이 기독교와 꽤 다르긴 하지만, 사칭이니, 사기꾼 예언자니, 하면서 예수를 부정적으로 보는 유대교와는 달리 예수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본다. 이슬람에서 예수는 25명의 정식 예언자[18]중 하나로 인정받으며, 예언자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급 - 신이 보낸 중요한 예언자 3명 중 1명(나머지 둘은 모세와 무함마드)-으로 대우받는다. 여기서 모세와 예수를 무함마드와 동일하게 보는 게 아니라 두 예언자도 신의 예언자가 맞지만, 신이 완전하게 만들 목적으로 무함마드라는 예언자를 보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교리상으로는 무함마드가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예언자이다.[19] 동정녀 마리아의 예수 잉태를 인정하고, 예수가 행했던 모든 기적도 인정하며, 최후의 심판일에 예수가 재림할 것이라는 것도 인정한다.[20] 애초에 무함마드가 '예수 바로 다음에 온 최후의 예언자'라고 광고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삼위일체나,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주장은 믿지 않는다는 데에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 이슬람에서의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고, 신이 권능을 발휘하여 예수 대신 이스카리옷 유다를 십자가에 매달리게 하여 예수를 구해줬다고 해석한다.[21]

그렇다고 이슬람에서 무함마드를 기독교에서의 예수와 같은 위치에 두는 것도 결코 아니다. 기독교의 예수는 성삼위 중 성자 포지션이므로 참 인간인 동시에 참 하느님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슬람에선 무함마드는 아무리 위대하든 말든 결코 신이 아니며 인간에 불과한 존재이며 인간으로서의 약점 역시 갖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때문에 주류 수니파 이슬람은 기독교를 우상숭배를 금지한다면서 자기네들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고 깐다. 특히 가톨릭의 성모 공경으로 인한 마리아상의 존재 같은 것은 영 좋지 않게 본다. 다수의 수니파와 소수의 시아파 및 기타 등이 있는데 나라마다 파의 비율은 다르다. 예를 들어 이집트는 인구의 대다수가 수니파이지만 이란은 시아파 국가이고, 이라크는 시아파 인구가 절반을 약간 넘는다.[22] 교파가 갈리는 건 무함마드의 후계자인 칼리프 자리를 놓고 일어난 분쟁에서 시작된 것으로, 몇몇 교리를 놓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근데 이 수니파와 시아파의 차이가 가톨릭개신교의 격차 따위는 상대도 못 할 만한 수준이라. 거기다 수니파와 달리 시아파는 분파를 인정하기 때문에 분파도 꽤 많은 편이다. 무함마드가 살아 있었을 때 "내가 죽고 난 뒤에 이슬람이 72개로 쪼개질 것이다"란 말을 했다는 말이 있는데, 진짜인지는 몰라도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아무튼 저런 이유로 나름 잘 싸우고 사이도 영 좋지 않다. 중동을 고향으로 하며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모두 공통으로 나타나는 특성이다.

2.1. 마드하브(이슬람의 주요 학파)[편집]

  • 수니파 - 샤리아법 해석에 따른 4대 학파는 다음과 같다.

    • 하나피 학파 - 중앙아시아, 터키, 남아시아에서 우세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현지의 관습을 존중하고 유연한 해석을 적용하는 학파로 중세시대에는 조금이지만 술을 먹어도 좋다는 해석까지 내놓았을 정도로 관용적인 학파. 실제 중앙아시아와 터키에서는 길거리에서 대놓고 만취한 모습을 보이는 정도는 경계하지만 술은 전통주건 독한 보드카건 잘만 마신다. 그러나 이건 국가 정체성이 세속적인 정부의 영향이 크고, '다른 쪽'으로 유연한 해석을 적용해 극단적으로 뒤틀린 이슬람 근본주의를 받아들여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처럼 되는 경우도 있다.

    • 말리키 학파 - 북/서아프리카에 주로 분포. 마그레브라고 불리는 북아프리카서아프리카 이슬람은 죄다 말리키 학파. 메카의 전통에 가장 충실하다. 기도 전 준비의식 같은 행위에서도 말리키 학파가 제일 엄격하다고 한다.

    • 샤피이 학파 - 소말리아를 비롯한 동아프리카예멘, 동남아시아에서 우세. 한발리 학파 이전까지는 아라비아 반도에서도 우세적인 학파였다. 하나피와 말리키 학파 사이에서 중용을 취한다.

    • 한발리 학파 - 가장 엄격하고 보수적인 학파이자 이슬람 극단주의만악의 근원이 된 학파.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에서만 우세.[23]

  • 시아파 자세한 정보 (한겨레)

    • 열두 이맘파 - 시아파의 대다수이자 이란 인구의 대다수.

    • 이스마일파 (일곱 이맘파) - 시아파에서 두 번째로 큰 종파. 암살단으로 유명한 어새신파가 여기에서 갈라져 나왔다(!!!).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무함마드보다 알리를 더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

    • 자이드파 (다섯 이맘파) - 북예멘에 많다.

  • 알라위파, 드루즈파 - 시아파에서 갈라져 나왔으나 별도의 종파. 사실 원리적인 무슬림들의 대다수는 알라위파는 시아파보다 더 사악한 이단으로, 드루즈파는 아예 '별도의 종교'로 본다. 심지어 드루즈파는 20세기 말 레바논에서 기독교인들과 무슬림들 간에 내전이 벌어졌을 당시 이에 개입한 이스라엘군과 동맹을 맺고 다른 무슬림들과 싸웠을 정도. 알라위파는 '알리를 섬기는 이들'이라는 뜻으로 눗사이리라고도 하는데 용어로서는 알라위는 레바논 지역을 프랑스인이 통치하면서 생긴 말이다. 시아파의 주요 세 종파에서 열두 이맘파에 가까운데, 알리를 중히 여기는 시아파라서 알리를 따른다는 말이 자기들도 좋았던 듯. 이란은 이들을 시아파로 인정하고 있으며, 알라위는 현재 시리아의 지배계층으로 군림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논란거리인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알라위이며, 그를 떠받치는 군사, 정치 엘리트가 거의 알라위라고 보면 된다.

  • 수피즘 - 위의 종파 구분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이슬람 신비주의. 즉 순니파 수피도 있을 수 있고 시아파 수피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수피즘 분파에선 관용을 우선시[24]하면서 비이슬람이나 무신론자와도 교류를 해왔기에 같은 이슬람에게도 이단 취급을 받았다. 또한 오스만 제국 당시 예니체리들이 가장 많이 따르던 종단이 바로 이 수피종단이었다. 특히 벡타쉬파 같은 경우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전통을 융합시켜 발전해왔기 때문에 원래 기독교인이었던 예니체리들이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종파였다. 그래서 예니체리가 사라지고 오스만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한동안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이 계속 오스만 제국의 부활을 주장하며 충돌을 일으키자 아타튀르크는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워 이들의 춤을 금지했다. 그나마 이들의 심벌이 되어버린 세마댄스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면서 금지정책을 폐지했다.

  • 이바디파 - 하와리즈 운동에 영향을 받은 학파로 오만에서 유행하였다. 이바디파는 시초는 매우 극단적이고 과격한 하와리즈(카와리지)파였으나, 이후로는 주류 수니파에 비해서도 꽤나 온건하고 중용을 취하는 종파로 변했다.

2.2. 종교의 특징[편집]

- "믿는 신앙인이란 하느님과 선지자를 믿되 의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그들의 재산과 생명으로 성전(지하드)하는 자들이 바로 믿는 신앙인들이라 (쿠란 49:15)"#

- "믿는 자들이여 너희 가까이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투쟁하고 그들로 하여금 너희가 엄함을 알게 하라 하나님은 항상 정의로운 자들과 함께 하시니라 (쿠란 9:123)"#

우상숭배를 매우 배척하는 게 특징. 물론 이건 유대교, 기독교 역시도 공유하는 특징이지만 이들보다 이슬람은 조금 더 철저하게 우상숭배로 오해될 수 있는 것마저도 매우 싫어한다. 이에 성화와 성상은 물론 기독교십자가 같은 상징마저도 만들지 않는다. 그 덕택에 발전한 예술이 아라베스크 양식과 아랍식 서예다. 3D보단 2D, 2D보단 텍스트 이 우상에 대한 배척은 다른 어떤 종교도 못따라갈 정도로 매우 강력한 수준.[25] 그래도 나라별로 차이가 있어서 좀 덜한 곳도 있다고 한다. 특히 시아파는 이런 면에서 좀 더 관대한편이다. 이란에서는 알리와 그 아들 하산, 후세인의 초상화 등의 성상이 있는 경우도 보이며 무함마드가 들어간 우편이나 초상화를 팔기도 한다. 무함마드 얼굴이 직접 나온 그림이 보면 십중팔구 시아파 신자가 그린 그림이다.

아무리 그래도 아예 징표가 없으면 곤란한지라, "알라(الله)"를 적은 아랍어나 무함마드, 초승달과 별 정도는 사용한다. 무함마드메카에서 탈출할 때 빛이 되어서 앞을 밝혔다고 한다.

과거 상대적으로 타종교인에게 관대했다고 하는데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그때그때 달랐다. 사실 다른 종교보다 더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1066년 그라나다에서는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나 그곳의 유대인 공동체가 말살되었고, 1126년 안달루시아에는 수천~만명에 이르는 기독교 신자 주민들이 모로코에 노예로 팔려갔다. 10~11세기 코르도바의 학자이자 시인인 이븐 하심(994~1064)은 기독교를 반박하기 위해 『분파의 서(Kitab al-Fistal)』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이후 12세기 모로코에서 등장한 알모하드 왕조는 안달루스를 장악하고 나서 딤미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이슬람으로 개종하든지, 나라를 떠나든지, 아니면 순교하든지 선택할 것을 강요하여 많은 비무슬림들이 북쪽의 기독교 국가나 동쪽의 관대한 타 이슬람 국가들로 이주하였고, 남아있던 사람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개종하거나 죽음을 택해야 했다. 훗날 스페인이 그라나다를 함락시킨 뒤 무슬림 및 유대인에게 행한 조치와 비슷해서 더 씁쓸한 부분.

이슬람 통치 하의 타 종교인들은 이슬람 당국의 허가없이 새 교회 건물을 짓거나 개축 및 보수할 수 없었고 공적인 종교 행렬도 거행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 시절의 경우, 밀레트(종교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은 가능했다. 그 외에도 쿠란에 기독교와 유대교 신자들에게 대한 차별 조항을 명시해 놓는 등 타 종교에게 마냥 관용적인 것은 절대 아니었다. 시대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었지만, 결국 전체 역사적으로 볼 때 중근동의 수만 개의 타종교 교회나 시설들이 점진적으로 파괴당했다. 단적으로 생각해서 이슬람 전성기가 막 시작될 때만 해도 중근동 지역에 매우 많던 기독교 신자들이 지금은 소수를 빼면 다 어디 갔는지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따뜻한 관용'과 '관용의 상징인 견딜 만한 세금'이 있었다면 절대 지금처럼 비이슬람 소수종교가 괴멸 수준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는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단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슬람권이 기독교인과 유대교인들인을 박해 및 차별하지 않았다거나 평등하게 대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타종교인들은 무슬림만 보이면 공손한 태도를 유지해야만 했고, 말을 타는 것조차도 금지되었다. (현대로 치면 타종교인은 자동차를 못 타게 하는 수준이다.) 근대를 거치면서 이러한 가시적인 차별은 많이 사라지는 듯 했으나, 사실상 타종교에 대한 이슬람의 극심한 불관용은 많은 이슬람 국가들에서 현대에 와서도 현재진행형이며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소위 관용의 상징으로서 타 종교인에게 세금(지즈야)을 부과했다는 것도 타 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차별조항이지만, 이슬람측에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지배자들과 비교하면 차별수위가 낮고 상대적으로 적은 세금을 징수했기에 이 장점이 원동력이 되어 주변 종교보다 늦게 창시된 불리함을 극복하고 급속히 전파될 수 있었다" 고 변론한다. 당시 이슬람 정권은 25% 가량의 토지세를 내는 조건으로 사유재산을 인정했다. 개종자에겐 약 10%의 인두세를 추가로 면제해줬다. 이 같은 정책은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던 주민들에게 대량 개종의 길을 열어줬다. 세금 부담을 피하기 위해 개종자가 너무 급증하자, 이슬람 정부는 한때 세수 확보를 위해 개종금지백서를 발효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종을 하지 않고 인두세를 포함해도 비잔틴제국이나 페르시아제국 등 기존의 비이슬람 국가들에게 착취당하던 세금에 비하면 그 액수가 가벼운 편이었으므로 이슬람이 이렇게 급속도로 널리 퍼져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물론 기존의 동로마, 페르시아 양국이 장기전을 치루느라 세율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고려되어야 할 것이고, 이슬람이 세수확보를 위해 조세부담을 분산하기보단 딤미들에게 부담이 편중되어있던 기존 구조를 유지시키는 개종금지정책 등으로 문제를 해결코자 했던 부분은 한계점으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슬람의 관용이라는 것은 시대, 지도자, 사회에 따라 달랐으며, 소위 '관용'이라는 기준도 들쭉날쭉이어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을 때도, 우리가 생각하는 관용과는 한참 멀거나 가혹했을 때도 많았고, 타종교인을 그럭저럭 대했던 시기만큼 타종교에 폭력적이고 가혹했던 시기도 많았다. 이슬람 초창기 우마이야 왕조는 당대에 박해받던 마니교를 향해서도 해꼬지 없이 내버려뒀고 오히려 학자나 칼리프 중에 마니교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동조하는 사람들까지 있었을 정도로 나이롱이었지만 바로 다음의 압바스 왕조에선 그들을 악마숭배자 취급하여 씨를 말려버렸다. 그런가 하면 무굴 제국의 경우 악바르대제 당시 유럽에서 온 기독교 성직자가 "그건 좀 아니라고" 뒤에서 비판할 정도로 무신론자도 우대했고, 지즈야가 폐지되기도 했다. 그러다 이후 이슬람 광신도 황제였던 아우랑제브 황제 때에 재정 부족을 메우려 지즈야를 부활시키자 힌두교, 시크교를 비롯한 비무슬림들이 농민부터 토호까지 곳곳에서 들고 일어나 진압하는데 애를 먹었고 이것이 그의 사후 제국의 걷잡을 수 없는 쇠퇴와 분열로 이어지는 단초를 제공한다. 오스만 제국의 경우도 기존의 동로마와 같은 기독교국가가 있던 땅에 자리잡다보니 그리스인이나 아르메니아인 등 기독교인을 즐겨 등용하기도 했다가[26] 이후 오스만 제국이 망해갈 때가 되자 기독교도들에 대한 시기심으로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일으켜 수십만에서 백만에 이르는 기독교도들을 대학살했다.

또한 주류 학파인 하나피파는 법정에서 짐미(이슬람의 보호를 받는, 즉 통치를 받는 기독교, 유대교 신자들)의 증언이 무슬림과 동일한 위력을 갖는다고 보았던 반면에 샤피파와 말리키파는 짐미의 증언은 무슬림에 비해 1/2밖에 안되는 효력, 가장 이교도에 배타적이고 이슬람 근본주의에 가까운 한발리파는 1/8밖에 안되는 효력을 갖는다고 주장했다.[27] 그러나 다른 종교들도 마찬가지지만, 이슬람 역시 역사적으로 힘이 있을 때면 주변국을 침공해 쓸어버리는 것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했다. 이슬람 탄생 때부터 다신교도들과 마니교, 야지디교를 비롯한 소수종교, 무신론자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었고, 조로아스터교 대학살을 자행한 적도 있으며, 초기 이슬람과 오스만 제국 말기는 탄압의 강도가 장난 아니었다. 유럽 기독교 왕국들의 유대인 처우가 들쭉날쭉했던 것처럼 이슬람의 종교정책 역시 지도층의 필요나 사회분위기에 따라 관용과 억압 사이를 오갔다.

또한 이슬람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는 배교자에 대한 살해, 즉 비이슬람 종교로의 개종하는 사람에 대한 살해를 경전에 명문화하고 상당수 신자들이 이를 실제로 집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근대에야 개종자에 대한 가혹한 박해와 살해는 문화권을 가리지 않고 빈번하게 있어왔으나, 21세기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이런 극심한 논란을 일으키는 종교는 이슬람 뿐이다. 배교자에 대한 살해 논란은 현대 세계 4대 주요 종교 중 이슬람이 거의 유일하다(현대 기독교, 불교 힌두교 등에서는 개종자에 대한 반감을 가지는 경우는 있어도 이를 죽이는 행위를 '교리적으로' 명문화하고 실천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수단, 알제리, 파키스탄, 예멘, 이라크, 브루나이,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북부지역 등을 비롯해 이슬람 국가들 거의 대부분[28]의 '국민 정서'가 타 종교로의 개종을 죽을 죄 로 보며, 많은 무슬림들이 개종자는 죽어야 한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정부나 집권층 차원에서 개종자에게 가혹한 처벌을 현재까지도 시행하는 국가가 매우 많다. 또한 이들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들이 아니더라도 가까이는 비이슬람 문화권에 이민온 이슬람 가정에서부터 터키 같은 세속적 이슬람 국가들에서까지 잊을만 하면 개종자에 대한 살인/살해위협과 가혹한 박해가 이어지고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런 극악무도한 교리는 현대사회에서는 옴진리교같은 사이비 종교에서나 하는 짓으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교리다. 진보적이거나 온건한 무슬림들이 어떻게 변명하든지, 21세기 현재에도 지구상의 셀 수 없이 많은 이슬람권 정부와 공동체, 신자들을 막론하고 상당수 무슬림들은 비이슬람 종교로의 개종자에 대한 각종 박해와 살해, 명예살인을 실천하려 하고 있다. 이집트의 한 판사의 증언에 따르면 "이슬람은 최종적이고 완전한 진리이기에 무슬림은 이미 완전한 종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이며 다른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29] 이 때문에 비이슬람 문화권, 그리고 종교의 자유를 위해 노력하는 인권단체 및 비무슬림들과의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으며 굉장한 비판을 받고 있다.

사제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적으로는 신과 인간은 감히 만날 수 없다 생각하여[30] 그 사이를 연결해 줄 뭔가가 필요 없다 여기며, 이슬람이 주류인 지역에서 태어나면 부모님들이 알아서 관련 교육을 해주기 때문에 사제가 필요하지 않다. 때문에 무슬림은 전부 다 전도사사제가 될 수 있다. 다만 예배 인도 역할을 이맘이 하는데, 신도들은 이맘보다 예배를 먼저 거행해선 안 되고 순서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혼자서 예배를 할 때는 자기가 이맘이 되고, 가족이 함께 예배를 할 때는 제일 웃어른이 이맘이 되는 등 비교적 유연하다.

엄밀히 따지면 이슬람 외에도 사제가 없는 종교가 몇 있다. 예를 들어 개신교는 만인사제설을 주장하기에 목사는 사제가 아니라 평신도로 분류된다. 이슬람의 경우 수니파는 예배시 일반 신도들 중 한 사람이 맡는 '이맘'이라는 사회자를 맡지만, 시아파에서의 '이맘'은 분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준 예언자 수준의 의미를 갖는다. 율법 공부를 전문적으로 해서 경전 해석에 큰 영향을 주는 율법학자가 있긴 하지만, 이들 역시 이슬람에서는 평신도다. 무함마드와 같이 예언자는 신이 계시를 내리기 위해 일부러 파견한 경우가 있지만 무함마드를 마지막으로 사제가 없다는 게 명시되다 보니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같은 신 아래에서 평등성이 강조되어, 종교적인 문제라면 말단 직원이 사장에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스스럼 없이 지적을 할 수도 있다. 심지어 노예가 왕에게 "이건 이슬람에 저촉됩니다!!"라고 비판하는 것이 허용될 정도였다. 그 때문에 라마단 금식 등 종교적인 계율을 종교에 대한 신념을 떠나 남의 눈과 지적이 따가워서 잘 지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선의 유학자들이 당시 각 분야에서 미친 영향력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학자의 위치와 영향력은 성과 속이 통합되어 있는 이슬람의 특성상 오히려 많든 적든 정교분리가 이루어진 다른 종교문화권의 성직자보다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종교 자체는 사제를 두지 않고 모두 평신도라고 할지 모르지만 실질적으로 이슬람 율법학자들의 권한은 다른 어느 종교 문화권보다도 막강하다. 한 예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이슬람 율법이 헌법을 대신하고 있는 정교일치 국가이기 때문에 이슬람을 잘 아는 전문가들이 실질적으로 법을 만든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이 어떻게 이슬람 교리를 해석하냐에 따라 국법이 시시때때로 바뀌기 때문에 이슬람 학자들의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볼 수 있겠다. 또 한 가지 예로, 일반 무슬림들과 이슬람 얘길 하다가 꾸란 구절을 두고 논란이 발생하면[31] 대개 자신들보다 더 잘 아는 이슬람 학자들의 책을 읽어보거나 만나서 얘길 해볼 것을 권하고 본인들은 더 이상 논의를 거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르게 말하면, 자기들은 권위있고 신망있는 이슬람 학자들의 해석을 따르겠다는 뜻이다.

사제가 없다는 특징은 초기 이슬람의 전파 양식이 상좌부 불교나 초기 기독교와 같은 문화적인 전파가 아닌 지배이념으로써 무력에 의한 정복 형태에 주로 의존하게 하였다.[32]

무슬림들은 육신오행이라 부르는 하나님, 천사, 성전(쿠란), 사도, 최후의 심판, 정명[33]을 믿을 것(육신)과 따라야 할 5가지 의무(오행)를 갖는데, 샤하다(신앙고백), 살라트(메카를 향해 매일 5차례씩 올리는 기도)[34] 자카트(자선기부), 사움(라마단 기간 해가 떠있는 동안 금식하는 것. 그냥 '라마단'이라고도 한다), 핫지(일생에 한 번 메카성지순례를 떠나는 것)이다.

하루에 5번 이상 "라 일라하 일랄라, 무함마둔 라술룰라"(하나님 외에는 경배받을 존재가 없으며,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예언자다.)라고 증언하는 것을 신앙 고백이라고 하며, 이는 이슬람의 첫 번째 의무다.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가난한 유목민이나 노동자들도 샤하다는 빼놓지 않고 하고 있다고.

하루 5번 드리는 예배(살라트) 시간은 해의 위치와 그림자의 길이를 기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계절마다 예배 시간이 달라진다. 아랍인들이 시간 감각이 매우 무딘 편인데 이는 아랍인들이 시간을 우리처럼 1시 2시 이렇게 24시각을 기준으로 계산하기보다는 예배 시간에 맞춰서 시간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이 5번 예배는 정해진 시간 안에 완수하면 되지만, 제 시간이 되자마자 기도하는 것을 신자로서의 가장 바람직한 자세로 여긴다.

  • 파즈르(Fajr): 동쪽 지평선에 빛줄기가 보이고 검은 실과 흰 실을 구분할 수 있을 때부터 일출 전까지. 규정 자체가 모호한 만큼, 현대 이슬람계에서 정확한 파즈르 시작시간은 주요 이슬람 공동체마다 의견이나 기준이 다르다.[35]

  • 두흐르(Duhr): 태양이 한낮에 남중하여 서쪽으로 기울어질 때부터 아스르 기도 전까지.[36]

  • 아스르(Asr): 어떤 물체의 그림자가 정오 때의 그림자 길이+물체의 높이만큼 되었을 때부터 일몰 전까지. 하나피 학파에서는 시작시간이 물체의 그림자가 정오 때의 그림자 길이 + 물체 높이의 2배가 되었을 때의 그림자 길이라고 본다. 한국어로 이 기도시간을 설명한다면 '늦은 오후 예배'라고 이름 붙여야 할 듯?

  • 마그립(Magrib): 일몰 후 박명 시간 중에 드리는 예배. 즉 해가 졌지만 아직 빛이 보이는 때에 드리는 예배이다. 아직 빛이 보이는 시간이 언제인지는 역시 주요 이슬람 공동체마다 기준이 다르다.

  • 이샤(Isha): 마그립 후, 즉 완전히 어두워진 후부터 밤의 중간까지. 여기서 밤의 중간이란 이샤가 시작할 때부터 다음 파즈르까지의 중간이다. 파즈르와 마찬가지로 이슬람 내부적으로 정확한 시작시간에 대하여 꽤나 이견이 많다.[37]


자카트는 정기적으로 납부하는 구빈 희사세로 대개 순수익의 2.5%를 지불하며, 비슷한 개념으로 원하고 싶을 때 기부하는 사다까라는 기부 개념도 있다.

라마단은 1달 동안의 단식으로, 1달 내내 단식을 하면 사람이 당연히 죽으니까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단식을 행한다. 대략 새벽 3시부터 저녁 7시 반까지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흡연하지도 못한다. 여담으로 《흡연의 문화사》라는 책을 보면 이란에서는 해가 지자마자 사람들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고, 나중에는 결국 이란의 유력한 이슬람 분파 시아파 내에서 라마단 중에 흡연을 해도 된다는 율법 해석이 나왔다. 물론 시아파를 싫어하는 다른 아랍 나라에서는 이 일로 이란시아파를 엄청 비난했다.

핫지는 정해진 기간 동안 정해진 규칙을 거쳐 메카에서 순례를 하는 것으로써, 정해진 기간 이외에 다른 기간에 방문한 것은 소순례로만 인정된다. 현재 성지 순례의 기착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이슬람 인구 1,000명당 순례자 1명으로 각 나라당 순례자를 제한한다. 귀화인 포함 한국인 무슬림 15만 명이고, 그 중 순수 한국인 신자만 2만 명이라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잘못 보고된 덕택에, 한국에서 성지순례 가기는 굉장히 쉬운 편이다. 몇 년을 기다려야 하는 외국과 다르게 대한민국은 성지순례를 갈 신도가 없어서 못 보내며, 덕분에 한국에 거주하는 이슬람 국가 재외국민들은 하지를 몇 번이고 다녀올 수 있다고 한다. 매년 갈 수 있는 한국이 좋은 나라라고 한다나.

단, 예외적으로 하지는 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안 해도 된다고 한다. 모든 신자가 매년 메카로 순례를 올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대부분 하려고 한다. 늦더라도 죽기 전에는 다들 하려고 하기 때문에 매년 수많은 순례 인파가 메카에 몰린다. 때문에 신종플루가 기승을 부렸던 때에는 개인 위생 문제 때문에 뉴스가 되기도 했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니 질병 따위는 두렵지 않다'고 하며 신경을 안 썼기 때문. 순례를 마치면 자기 이름 앞에 '하지'라는 호를 붙일 수 있고, 그 사람은 많은 존경을 받는다.[38]

그 중 살라트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무함마드가 천국에 있는 동안 신에게 한 가지 맹세를 했는데, '모든 무슬림들은 하루에 50번씩 기도를 드린다'라는 내용이었다. 뭔 깡으로 이런 맹세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옆에서 보고 있던 모세가 어이가 없었는지 "게으르고 건망증 심한 백성들이 그런 걸 지킬 수 있을 것 같은가?"라고 태클을 걸어 다행히(?) 하루 50번 기도는 무산되었고, 무함마드는 신과의 협상을 통해 하루에 드리는 기도의 횟수를 지금과 같이 5번으로 줄였다.

메카의 방향과 거리를 나타내주는 iOS, 안드로이드 어플도 나와있다.

3. 이슬람 문화[편집]

3.1. 이슬람의 성원과 예배[편집]

이슬람 성원은 아랍어로는 마스지드(مسجد)라고 하며 모스크(Mosque)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보통은 성원 옆에 세면장이 있으며 예배 전에 '우두'라 불리는 세정의식을 하고 들어가게 한다. 우두는 얼굴, 입안, 귀, 콧속, 머리, 그리고 팔다리를 흐르는 물로 씻는 과정을 말하는데, '아흐다쓰'라는 불결함의 상태가 될 때에는 무조건 하루 5번 기도 전에 해야 된다. 이슬람에서 예배 전에 세정의식을 해야 되는 더러움의 조건이란 방귀#, 소변, 를 만졌을 때[39], 여자와의 의도적이고 사심 있는 접촉, 흘림[40], 잠이 들었을 경우 등이다. 성관계 등을 하거나 금요일 정기 예배에 갈 때는 구쓸이라고 불리는 샤워를 무조건 해야 된다.[41] 아랍어 쿠란을 만지려면 위의 세정 의식을 해야 되고 생리 중인 여자는 맨 손으로 쿠란을 만지는 것도 안 된다. 다치거나 물이 귀하든지 해서 씻기가 힘드면 땨암뭄이라고 해서 돌이나 모래로 씻는 시늉만 해도 되긴 한다. 그래서 모스크엔 돌이 놓여져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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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일요일을 주일이라 부르며 교회에 예배를 드리거나 성당에 미사를 드리러 가고, 유대교에서는 토요일을 안식일이라 하여 아무 노동도 하지 않는다면, 이슬람에서는 금요일을 '주무아'라고 부르며 합동 예배를 시행한다. 이 예배는 금요일 오후 1시 즈음부터 이맘이 나와서 민바르라 불리는 나무 계단 위에 앉아서 교리나 일상생활 도덕과 관련한 훈화를 경청한 뒤 예배를 근행하게 된다.

적어도 쿠르드인들은 성원에 예배할 때 복잡한 절차, 예를 들어 필수는 아니지만 양말을 벗어야 하는 행위를 생략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성원에 앉아서 노가리를 까건 말건 상관 안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예배 행위를 방해하는 데 대해서는 꽤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남이 뭘 하건 상관 안 하는 분위기다.

어쨌든 성원 내부를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없다. 방석 비슷한 융단과 비치된 쿠란뿐이다. 자세한 것은 모스크 문서 참고.


그 외에도 하루에 5번[42] 기도를 해야 하니 게으른 사람은 절대 못 할 종교 같지만, 아라비안 타임으로 약간은 봐준다. 만약 빠뜨릴 경우 바로 전에 예배를 합쳐서 더 예배를 보면 된다. 또한 금요일엔 여건이 된다면 반드시 합동 예배를 보아야 한다. 중요한 건 기도고, 이것만은 빼먹으면 안 된다. 굳이 사원이 아니라도 그냥 카펫[43] 하나 가지고 다니다가 길바닥에서 메카를 향해 절만 하면 되니까 다른 종교에 비해 예배를 올리는 장소를 찾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 기도 시간 동안 관공서까지 전부 쉬다 보니 말이 많아서 약식으로 대체하는 곳도 많다.

항공기 내부에서는 안전을 위해 앉아서 하라고 권한다.

예배 방법은 먼저 얼굴과 손과 발을 깨끗이 씻는 것부터 시작하는데 이를 '우두[44]'라고 하며, 사막의 경우 깨끗한 모래로 씻어도 인정해준다.[45] 그 다음 쿠란의 제1장인 알 파티하(개경장)을 외우고, 정해진 순서에 따라 무릎을 꿇고 절하는 동작을 반복하는데 이 예배[46]는 몇 분 만에 끝나는 게 보통이다. 기독교 식으로 1~2시간씩 끌지 않는다. 금요예배에서는 이맘, 호자, 아야톨라 같은 예배를 인도하는 이가 설교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나마도 그리 길진 않은 편이다.

3.2. 종교와 식품[편집]

금지된 음식은 '하람(haram)'음식이라고 하는데 이 '하람'이라는 말은 아랍어로 '금지'란 뜻이다.[47] 무슬림이 못 먹는 하람 식품으로는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개고기, 및 맹금류의 고기와 병사한 동물의 고기가 있으며, 심지어는 사냥한 고기도 화살이나 총알로 잡은 동물의 고기는 먹을 수 없고, 오직 개나 매, 치타를 이용한 동물이 잡아서 물어온 동물의 고기만 먹을 수 있다.

이 하람에 관한 율법이 유대교와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데 쉽게 설명하자면, 돼지고기를 금지하는 것은 유대교와 같지만 유대교의 경우에는 장어미꾸라지 같이 비늘이 없는 물고기와 해초, 토끼고기와 낙타고기, 고기의 상체를 제외한 하체부분을 전부 못 먹는다. 참고로 이란의 주류인 시아파는 비늘이 없는 해산물 즉, 오징어, 문어 등도 먹지 않는다. 단, 새우 같은 갑각류는 먹을 수 있다.

반면 이슬람에서는 해산물은 비늘이 없는 생선은 먹을 수 없으며(단 본인이 속한 마드하브나 지역에 따라 세부적인 것은 다르다. 자세한 것은 할랄 푸드 참조.) 채소와 농산물은 모두 허용. 고기는 상체만 먹고 하체는 못 먹는 식의 율법은 없다. 구분 영역이 생기는 부분은 오직 날짐승과 들짐승 고기로, 무슬림이 이슬람식으로 도축한 고기가 아니면 먹지 못한다. 즉 돼지를 제외한 소, 닭, 양, 염소의 고기라도 이슬람 도축법에 의해 도축되지 않았을 경우 돼지고기랑 똑같이 금지사항이라는 것. 때문에 이슬람의 세력이 작게나마라도 있는 나라에는 거의 항상 할랄 푸드를 다루는 가게가 있다. 이태원 이슬람 성원 옆에도 할랄 육류 판매점이 있다.

그리고 유명한 이슬람 관련 음식금기로 '금주'가 있다. 사실상 세계 주요종교 중 가장 강력하게 음주를 철저히 금지하는 걸로 유명한데, 과 관련하여 쿠란에서는 세 가지 계시가 나와있다.

첫 번째 계시는

사람들이 너희에게 술과 도박에 대해서 물으면 다음과 같이 말하라. '이는 커다란 죄악으로서, 약간의 좋은 점도 없진 않다. 그러나 그 해악은 그 이익보다도 훨씬 크다'라고 (쿠란 2:219)

두 번째 계시는 술취한 상태에서 예배드리지 말라는 계시로서

그대 신앙인들이여. 정신이 흐려진 상태에서는 예배드리지 마라. 적어도 스스로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쿠란 4:43에서 발췌)

세 번째 계시는

그대 신앙인들이여. 취하게 만드는 것과 도박하는 것, 돌들(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것), 화살(을 이용해서 점을 치는 것), 그리고 맹목적인 증오는 사탄의 작품이다. 이러한 것들을 멀리한다면 너희는 번영하게 될 것이다. (쿠란 5:90)

로서 생각보다는 간접적인 금지 문구를 담고 있다. 물론 무슬림 중에는 이를 아전인수로 생까고 농담 반 진담 반 "그래 번영 안 해도 돼" 하고 마시는 사람이 적지는 않다.

다만 몇몇 아랍 국가들에서는 포도주맥주를 계속 금하는 대신, 오래 전부터 마셔오던 대추야자술인 아락 같은 토속주라든지 양젖이나 염소와 낙타 젖을 발효시킨 술은 예외로 쳐주는 경우도 많다. 사막권 유목민들에게 술은 생명수 같은 존재나 다를 게 없어서 무작정 금지했다면 이슬람"아니? 이슬람 저것들이 술 못 마시게 하는데, 우리더러 죽으라고 할 놈들이다!"라며 아랍 지역에서 비난 속에 소수 종교로 사라졌을 것이다. 대추야자 말고도 온갖 동물 젖을 발효시킨 술은 물과 같은 유일한 마실 것이었기에, 이거 마시지 말라는 건 그냥 죽으라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도 상당수 유목민들은 생필품이 부족한 사막에서 여전히 발효된 술을 물처럼 마시는데, 이거에 대해선 할랄 같은 인정을 하는 편이다.

한 SF 소설에서도 이런 게 나오는데 이슬람을 싫어하는 과학자가 타임머신으로 과거로 가서 무함마드를 만나 미래의 첨단 장비를 이용해 자신이 대천사 지브릴(가브리엘)이라고 속여서 무함마드를 그냥 기독교인으로 남게 하여 이슬람이 영원히 생기지 않게 만들었다. 이슬람과 비슷한 종교들이 생겨났지만 그 종교들이 술을 금지하자 아랍 유목민들에게 미친 놈들이라고 비난만 듣고 사라졌다는 이야기와 같이. 그렇게 이슬람은 사라지고 아랍은 기독교가 주류 종교인 곳으로 남게 되었는데... 헌데 문제는 아랍 기독교로 이어져서 미래에 이슬람 대신 아랍 기독교가 샤리아를 받아들이고, 유럽과 미국 기독교가 아랍 기독교는 이단이라고 주장해서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고 현대에도 근본주의 아랍 기독교인들이 테러를 저지르는 등, 단편적인 역사는 달라진 게 전혀 없었다. 그냥 이슬람이 아랍 기독교로 바뀌었을 뿐. 그 과학자는 털썩 주저앉아 버리면서 끝난다.

술은 어느 정도 풀어주는 나라도 있지만, 개와 돼지고기는 기피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못 먹는다.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같이 아주 널널하게 믿는 나라 사람들은 있으면 먹기도 하는데 이슬람권에서는 특이 케이스. 물론, 사막 한 가운데서 남은 음식이 돼지고기 밖에 없는 경우와 같이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안 먹고 굶어죽으면 또다른 이슬람의 금기 자살이므로 먹어도 된다는 이슬람계의 공식적인 율법 해석이 있다. 단 나중에 회개 기도를 올릴 것.[48] 이 때문에 식재료에 돼지고기가 들어가는 한국이나 일본, 중국등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요리들은 이슬람 사람들에게 맞지 않을 때가 많다[49] 혹시 친구나 지인등이 무슬림일 경우 먹어도 되는 음식인지 꼭 사전에 확인해 보는 것이 좋다.[50]

또 대한민국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이슬람은 돼지 못지않게 도 혐오하는 종교로 유명하다. 이유는 개를 극도로 싫어했던 무함마드의 개인취향과 개는 더러운 동물이라는 가르침 때문. 개고기 역시도 돼지고기처럼 하람(금지)이며, 개의 침은 일곱 번 닦아내야 깨끗해진다고 교리로 정할 정도로 혐오한다. 말레이시아 등지의 사례처럼 개를 만지거나 기르는 것 자체에 재제를 가하려는 국가도 있으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도 개를 매우 기피하는 편. 물론 사람에 따라 케바케로 집밖 등지에서 개를 기르는 무슬림들도 있기는 하다.

한국이나 일본, 미국, 유럽 등 비이슬람 지역의 다른 국가들에서 사는 무슬림 외국인들과 현지의 무슬림 개종자 대부분은 돼지고기나 술 등 하람 음식을 먹는다. 안 먹으면 다른 나라 사람들과 지인, 형제들과 생활하고 부대끼는 데 무리가 있기도 하거니와, "구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잖아!!!"라고 하소연하기도 한다. 물론 일부 무슬림 사람들은 돼지고기에 대한 격렬한 거부감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 서방 등 비이슬람 문화권 국가들에 와서도 쇠고기나 닭고기, 생선 등만을 먹거나 육식을 못 하고 과일이나 채소 등 채식을 하기도 하니 경우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특히 개방적인 터키북아프리카 튀니지, 이집트, 동유럽 보스니아알바니아 같은 나라들의 무슬림들은 거리낌 없이 술과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다. 그 밖에도 규율을 엄격하게 지키는 지역에서도 가끔 약용이라는 명목으로 술을 마시는 일도 드물게나마 있다는 등 반드시 엄격하게 지켜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사실 술에 대해서는 그 엄격하다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들도 할 말은 없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외국에 나와서 술 마시는 경우는 정말로 많다. 특히 바레인.

술을 금지했기 때문에 아랍 반도 근방의 술 조제 기술은 상당히 쇠퇴해 버렸다. 그러나 의료용 알콜[51]을 얻기 위해 술을 증류하는 기법은 발달했으며, 이 증류기술이 서구로 전파되어 브랜디, 위스키, 보드카 같은 증류주가 등장하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술 문제 때문에 커피를 무지하게 마셨다고 한다.[52]

캐나다 등 비이슬람권 국가에 온 젊은 무슬림 유학생들이 돼지고기를 먹는 사례도 있다. 유학 오기 전까지는 돼지고기 맛을 몰랐을 텐데 어찌 맛을 아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답하기를 "중국인 친구들이랑 어울리면서 돼지고기 맛있는 줄 알게 되었다"나.

또한 널리 알려진 것 중 '단식' 문화인 '라마단'도 있다. 이 라마단은 이슬람력으로 9월을 의미하는데,[53] 이날 금식을 하는 이유는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은 달이기 때문이다. 단식해야 하는 시간은 이른 새벽부터 해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의 약 12시간 정도. 이 시간 동안에는 음식이나 음료수 등을 일체 섭취하지 말아야 하고, 성행위도 금지되고 흡연도 피해야 한다. 하지만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나면 정말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 먹는다. 이것을 이프타르라고 부르는데, 비무슬림도 이 때는 꽤 배불리 얻어먹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기간 동안은 다들 살이 빠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찐다고 한다.[54][55]

라마단 기간에 터키에 놀러가면 야시장이 굉장히 볼 만하다고 한다. 하지만 좀 빡빡한 중동권 국가들은 라마단 기간에 여행온 신혼부부에게 '사람들 눈에 띄니까 식사하려면 화장실에서 하라'고 한다나. 물론 이것도 사람에 따라 달라서 저런 나라에서도 좀 봐주는 이도 있다. 라마단 기간 중 이집트를 여행하던 어느 여행자는 이집트인 친구가 낮에 거침없이 밥먹는 걸 보기도 했다고 한다.

2015. 9월의 유럽 난민 사태 때 헝가리를 지나는 시리아 난민들에게 준 식량에 돼지고기가 들어있다고 버리고 간 사진이 공개되어, 비이슬람권 사람들 사이에서 비난이 일었다.[56]

3.3. 이슬람에서의 성관념[편집]

남녀 할것 없이 매우 보수적이며, 동시에 기독교나 힌두교 문화권[57]과 달리 남성만이 4명까지 아내를 둘 수 있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된다.

이슬람에서 여성만 성적으로 방종하지 않아야 한다고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쿠란은 남성도 성적으로 방종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야동이나 자위행위 같은 행위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 이외에는 사실상 금지되어 있다.

원체 현 중동 분쟁 지역에 지하드 알 니카와 같은 극단적으로 왜곡된 형태의 성범죄가 만연해서 무슬림 남성은 비무슬림 여성과는 프리섹스를 즐겨도 문제가 없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마찬가지로 간음으로 간주된다. 각종 율법 소개 사이트 등에서는 비이슬람 여성이 머리카락이나 신체 일부를 내보였다면 그것을 보아도 상관은 없으나 속으로 음탕한 생각을 하거나 옷으로 가리고자 했던 부분을 보고자 하는 행위[58]는 죄악임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사상적으로는 원리주의를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사실 극단주의 테러리스트 상당수는 고등교육은커녕 중등교육조차도 제대로 받지 못해 율법에 대한 이해도가 그다지 높지 못하다. 무아트 알 카사스베 중위 분살[59] 같은 짓을 저질렀는데 ISIL이 저질렀다고 해서 이걸 이슬람 율법을 따랐다고 볼 수 없듯, 왜곡된 성관념과 욕구불만에 싸인 몇몇 무슬림 남성들이 성범죄와 삐끼짓을 한다고 해서 샤리아 자체가 무슬림 남성의 비무슬림 여성과의 성관계를 눈감아주는 것은 아니다.

터키에 거주하고 있고, 터키에서 문화사회학을 전공하면서 이맘이나 모스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 이에 대해 문의했으나 적어도 터키의 이슬람 주류 해석은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관계라도 혼전 관계나 결혼 후 (이미 배우자가 있는 가운데) 비무슬림과의 연애조차도 간통(Zina)으로 간주되며, 터키 공화국 형법으로는 간통죄 조항이 없으므로 세속적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나, 이슬람적 관점에서는 간통자로 여겨지며, 이슬람에서 벗어난 자(즉 불신자)로 간주한다고 보고 있다.

물론 터키는 샤리아 법을 적용하는 종교국가가 아닌 세속국가이므로 이슬람차원에서 이들을 비난만 할 뿐, 처벌할 방법도 딱히 없기는 하다. 그러나 중혼이나 조혼은 터키 공화국 헌법으로 분명히 금지하고 있으며 상당히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초창기 이슬람, 즉 9~14세기의 이슬람 세계만 해도 동성애에 관해서 타 문화권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하였다.[60] 샤리아법에 동성애는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대놓고는 못하지만, 동성애를 해도 거의 처벌을 받지 않고 쉬쉬하는 분위기였으며 상류층의 경우에는 동성 애인을 갖는게 유행이기도 했다.

그러나 18~19세기 이슬람 근본주의의 대두와 함께 배척받고 처벌받기 시작했다. 현재 들어와서는 자유주의의 확대로 비교적 처벌이 느슨해져 요르단, 터키 등 몇몇 세속 국가에서는 처벌을 하지 않지만 아직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파키스탄을 비롯한 많은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심각한 사회적 터부 내지는 중범죄로 감옥행이고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극단주의 국가에서는 채찍형에 처한다. 간통까지 했을 경우에는 사형이다. 이란에서는 국가 주도로 투석형까지 시행했을 정도.

3.4. 이슬람에서의 여성 인권[편집]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라 이는 하나님께서 여성들보다 강한 힘을 주었기 때문이라 남성은 여성을 그들의 모든 수단으로써 부양하나니 건전한 여성은 헌신적으로 남성을 따를 것이며 남성이 부재시 남편의 명예와 자신의 순결을 보호할 것이라 순종치 아니하고 품행이 단정치 못하다고 생각되는 여성에게는 먼저 충고를 하고 그 다음으로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말 것이며 셋째로는 때려 줄 것이라[61][62] 그러나 다시 순종할 경우는 그들에게 해로운 어떠한 수단도 강구하지 말라 진실로 하나님은 가장 위대하시니라 <파하드 국왕 쿠란 출판청에서 쓴 '성 쿠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 4장 34절. 마침표는 원문에도 없음.>

이슬람은 그 당시의 아랍권 민족의 문화 혹은 관습(사실은 인습)보다는 상대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존중했던 편이었다. 하지만 근대를 지나도 여전히 그 시대에 머물면서 21세기가 된 현재는 다른 종교보다도 더 여성을 혹독하게 차별하는 종교가 되었다.

꾸란 4:3 만일 너희들이 고아에게 공정하지 못할 것같이 생각되면 누군가 마음에 드는 두 명, 세 명, 네 명의 여자와 결혼해도 좋다.[63] 만일 공평하지 못한 생각이 들게 된다면 한 명으로 하든가 너의 오른손에 소유하고 있는 것[64]으로 하라. 그러는 것이 불공평하게 될 염려가 없다.

꾸란 4:43 믿는 자들이여, 너희가 아프거나 여행 중일 때 화장실에서 돌아왔을 때, 여성을 만졌을 때 물을 발견하지 못했을 때는 깨끗한 흙위에 따이얌뭄(이슬람식 세정의식)을 하고 너희 얼굴과 양손을 문질러 깨끗이 하라.[65]

꾸란 33:59 예언자여, 그대의 아내과 딸들과 믿는 여성들에게 베일을 쓰라고 이르라. 그때는 외출할 때라. 그렇게 함이 가장 편리한 것으로, 그렇게 알려져 간음(강간)되지 않도록 함이라. 실로 하나님은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

이를 토대로 현실에서 적용되는 샤리아 율법에서도 아내에 대한 체벌을 포함한 성차별 논란이 되는 규율들을 규정하기도 한다. 일단 이론적으로는 위의 조항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여성에 비해 우월한 육체적 조건을 이용하여 여성을 부양하는 반대급부로서의 권리 보장이며, 여성이 남성에 헌신하는 것도 이러한 남성의 역할에 대한 보답 형태라고 경전에 규정되어 있긴 하다. 그리고 심지어 그 중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듯한 대목까지 있어 타 종교로부터의 비난 대상이 됨은 물론 무슬림끼리도 견해가 갈리는 등 항상 비판의 대상이 된다. 아내를 때릴 때에도 에티켓이 있다는 동영상(영어 자막)도 참조.[66]

경전상에 이와 같은 차별 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은 오히려 아라비아 반도 지역의 여성 인권을 크게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이슬람 교리 이전부터 중동지방의 민족 전통이었다.[67][68] 이슬람 이전에는 여성은 남성 소유의 물건 정도의 취급을 받았고, 남성은 재력이 허용하는 한 아내를 원하는 만큼 거느릴 수 있었다. 이를 무함마드가 "너희는 그 많은 아내들을 모두 만족시켜주지 못할 것이다"라며 4명까지로 제한하자 아라비아 귀족들이나 부유층들은 불만을 가지고 이슬람에 반대하는 경우도 꽤 많았다.[69] 그 밖에도 쿠란 4장의 니싸아에서 결혼시 지참금 지급, 재산상속, 분명한 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학대 금지, 아내 편애 금지,[70] 여성을 간음죄로 고발 시 4명의 증인 필요 등 여러 구절을 통해 여성의 지위를 보장하였고,[71] 심지어 이를 지키지 못할 거면 결혼을 하지 말라고까지 못박아뒀다. 히잡, 니캅, 부르카 등 현대에는 반대 여론이 심각한 여성 옷차림도 당시 기준으론 무슬리마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그러나 보호의 순기능이 불필요한 현대사회에까지도 수구적으로 계속되는 강요로 여성들을 옥죄는 탄압의 굴레라는 평가가 많다.

7차 십자군 전쟁 때 이집트에서는 여성 술탄 샤자르 알 두르가 즉위하여 아이유브 왕조를 청산하고 맘루크 시대를 열기도 했었다. 샤자르 알 두르의 즉위 시기는 80일로 극히 짧았는데 이는 7차 십자군 전쟁중 남편이던 원 술탄이 병사하자 병사의 사기를 고려해 그의 죽음을 숨긴 채 대리 정치를 행한 것. 이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그녀를 기준으로 아이유브 왕조가 끝나고 맘루크 시대가 열렸으며 학자에 따라선 그녀가 맘루크 시대의 첫 번째 술탄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로 술탄의 권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현대로 나아가며 과학과 학문이 발전할수록 인간들은 이성과 두뇌를 활용해야 한다는 믿음을 강화한다. 현대에 비교하여 당시에는 전사, 즉 남성의 몸을 가진 이들만이 약육강식의 강자였다. 그러나 현대로 오며 육체적인 폭력이 제한됨과 동시에 사람들은 육체의 힘이 아닌 두뇌의 힘을 활용하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하고, 이에 따라 여성의 인권의 부분이 크게 성장하였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옛날 옛적, 전사들의 전쟁이 숱하던 당시 육체가 남성에 비해 약한 여성들은 부속품이나 동물 취급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았고, 쿠란에 명시되어 있는 것들은 그 당시 여성의 인권을 한 단계나마 끌어올리고자 노력했다고 봐야 한다. 1단계에서 2단계로 뛰는 것은 비교적 타협이 가능하지만, 1단계에서 갑자기 4단계로 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른 문명권이 여성인권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거나[72] 최소한 개선하려는 시늉이라도 내가는 식으로 끊임없이 개혁을 추구했던 때[73]에 정작 이슬람은 이슬람 근본주의로 대표되는 수구사상에 빠져들어 개혁과 인권상승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버렸다는 것이다.

여성 인권 문제가 제대로 해동되기 시작한 현대에 와서는 이슬람의 교리가 오히려 여성의 권리를 억압한다고 비판 받고 있다. 이는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한 제도들의 진정한 의미를 외면한 채 남성 이슬람 학자들이 "경전에 명시된 것이 여성에 대한 권리의 전부"라고 주장한 데에서 비롯되었다.[74] 이로 인해 과거에 혁신적이었던 여성 보호 조치들의 시대와 동떨어지게 된 요소들을 현대사회에서 그대로 적용함에 따라 오히려 여성차별적인 논란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다.

특히 샤리아 정교일치 체제인 이슬람 국가에서는 국법 자체에 이러한 여성차별적 논란이 되는 요소들이 포함되기 때문에 이슬람 외부에서 볼 때는 여성 인권에 대해 큰 비판과 우려를 가지고 있다. 사실 근본주의가 대세인 이슬람 주류 대중에게 씨알도 안 먹혀서 그렇치 여성의 권리부분을 재해석하는 학파들이나 학자들도 존재는 하며, 이슬람 페미니즘도 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정치와 주류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종종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가 다른 문화권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지경으로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서 문제가 되고 있다. 명예살인의 경우 2010년 명예살인의 세계적 추세 연구에 따르면 현재는 그 수가 더욱 증가하고 국가별로 제대로 집계도 되지 않아 신뢰할 수 있는 추산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전까지(2000년도 UN 추산) 1년에 무려 약 5천 명의 무슬리마들이 이슬람과 가부장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살해당했으며[75] 전 세계 명예살인의 90%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이었다.


애초에 인권이 뭐고, 민주주의가 뭐고, 평등이 뭐고, 생명 존중 사상이 뭔지를 알면 악습이 줄어들겠지만 이런 상식적, 인권적인 관점조차 서구 세력의 반이슬람 사상으로 여기는 이슬람 근본주의 무슬림이 많기 때문에 현실은 안습 그 자체다. 오히려 서구식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너무 적은 탓에 민주주의 도입이 오히려 차별을 더 낳는 결과까지 보여주고 있다. 당장 무슬림 여성들조차 쿠란은 남성의 길과 여성의 길을 딱딱 나눠서 가르치고 있으니 쿠란의 가르침대로만 살아야 하며 서구 문화에 물든 남녀평등운동이나 페미니스트들의 선동에 놀아나지 말라고 주장하는 답이 없는 상황이 계속 심해지고 있다. 그러나, 세속적인 국가에서 비무슬림 가정에서 자라다가 정상적인 신앙 활동을 위해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의 경우 어릴 때 국가에서 받은 세속주의적 교육에 의해 자기 스스로 교리와 현실의 차이를 인식하여 개방적인 인식을 보인다. 한 한국인 무슬림 개종자의 증언에 의하면 전근대적인 이슬람권에서 자란 무슬림보다는 비무슬림인 한국인과 사상적으로 훨씬 더 동질성을 느낀다고 한다. 뭐 같이 종교 민족이 달라도 같은 나라에 살면서 부대끼는 만큼 당연한 일이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갤럽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샤리아를 실정법으로 반영해야 하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한 찬반 비율이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남녀간의 차이는 크지 않아, 무슬리마는 샤리아로 인해 특별히 차별을 받고 있지 않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하며, 갤럽은 이를 통해 무슬림의 여성 인권에 대한 태도는 생활 수준이나 취업률 등 경제적, 사회적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한 여성이 먼저 이혼을 요청할 권리를 허용해야 하는지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여성 인권에 대한 견해에 종교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응답한 쪽은 찬반 의견이 5:5였으나 종교가 영향을 끼친다고 응답한 쪽은 7:3으로 나와, 대다수 무슬림들은 이슬람 교리에 따른 가치판단을 하는 사람이 보다 여성 인권을 보장한다고 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설문조사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종교가 가치판단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대답한 사람은 실제로는 자기 스스로의 가치관과 종교 사이의 갈등을 겪지 않은 사람(즉 응답자인 이슬람권 상당수 여성들의 사고방식 자체가 이미 이슬람 및 남존여비적인 문화에 젖어있어 자기들이 명백히 이슬람 교리에 따라 불합리한 처우를 받고 있음에도 이슬람이 여성차별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많기 때문이다.

2015년 3월 발표된 여성 인권에 대한 UN 보고서에서도 이슬람 국가와 비이슬람 국가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례들을 나열하며 극단주의와 보수주의의 대두가 여성 인권의 장애라고 명시하였고, 이를 인용한 많은 기사가 "이슬람이 아닌"이라는 설명을 제목에 달았다. 여성 인권 침해는 어디에나 존재하며 그러한 침해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무마하기 위한 핑계거리를 마련하는데, 그 핑계가 어디에서는 게임이나 동영상이고 이슬람권에서는 쿠란이라는 차이일 뿐이다. 결국 문제는 이슬람 자체가 만악의 근원라기보다는 전근대적인 남성 우월주위에 기반한 악습에 따라 극단적인 행동을 벌인 뒤 종교를 정당화 수단으로 악용하는 쓰레기 같은 무슬림 남성들과 이들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기득권 종교 지도자들이라고 한다.

실제로 힌두교 신자가 80% 이상인 인도에서도 명예살인의 양상은 이슬람권에서의 그것보다 덜 악랄하고 드물지 않다. 반대로 이슬람 국가인 튀니지우즈베키스탄(#)은 명예살인의 오명과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남녀평등이 비교적 잘 정착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도 무슬림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역시 별 관련이 없는 데 반해[76] 비교적 세속적이고 종교적 색채가 옅은 편인 터키, 모로코, 요르단에서는 명예살인 뉴스가 간간이 들린다. 이런 사실로 볼 때 이슬람 이전부터 중동 일대에 존재하던 악습이 현재도 행해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77] 이란만 하더라도 서구적 근대화를 추진하고 지금보다 여권이 보장된 팔라비 왕조 때에도 여전히 명예살인은 있었다.[78]

이슬람 학자나 지도자들은 명예살인은 종교 정신에 위배된다고 비판한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Khamenei)는 명예살인은 이슬람의 정신에 위배되며, 만일 간음과 같은 죄를 저지르더라도 관대한 처벌에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집트 아즈하르 대학교 신학자 셰이크 아티야 사끄르(Sheikh Atiyyah Saqr)는 "이른바 명예 살인이라고 불리는 행태는 도덕과 법을 무시한 무지의 소치에 불과하다. 이러한 관행은 일벌백계로 다스리지 않으면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질책의 목소리를 높였다.[79] 하메네이가 저 말을 한 게 06년 이전인데 그때는 이란에 투석형이 남아있던 시절이다.

명예살인이 가장 빈번한 파키스탄에서 최근에 처벌 강화 법안이 통과되었다.[80]

결론적으로, 21세기 현재 많은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사실이다. 아랍권 민주화 운동에서 여성들이 큰 활약을 하면서 이들의 발언권이 어느 정도 커졌고 덕분에 여권 신장이 느리게나마 진행되고 있지만, 민주화 이후 사회 혼란을 틈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이 뿌리를 내리는 지역이 많아지는 데다가, 진작에 깊게 뿌리 내린 견고한 남존여비, 이슬람 근본주의의 벽은 쉽게 깨지지 않고 있어 한숨을 내쉬게 한다. 이집트 새 헌법, 여성 권리 제한 논란 (연합)

3.4.1. 여성 인권을 강조하는 이슬람 일파 및 조직[편집]

비록 주류 이슬람에서 이단 취급당하는 소수이지만, 이슬람권에서도 여성 인권을 강조하며 여성에 대한 교육과 권리 향상 등을 주장하거나 정책적으로 시행한 지도자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지휘관이였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와 터키의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튀르크, 튀니지 초대 대통령 하비브 부르기바, 전 알제리 대통령이었던 후아리 부메디엔, 현 오만 국왕인 카부스 빈 사이드 등이 있다.

  • 헤즈볼라 - 장교급 간부 중에는 여성도 있으며[81], 헤즈볼라 여군들이 니캅 같은 베일을 입고 쓰는 것도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한다고. 헤즈볼라 소속의 여성 정치인도 있다. 이 때문에 다에시알 카에다 같은 많은 극단주의 조직과는 대단히 사이가 좋지 않다. 애초에 시아파라서 종파부터가 다르기도 하고.

  • 쿠르드족 - 쿠르드인들은 여성의 지위가 굉장히 높다. 특히 다른 이슬람을 믿는 민족보다 비교적 세속적인 탓에 히잡을 강요하지 않아서 서구적으로 사는 여성이 많다. 특히 시리아의 쿠르드족 자치체인 로자바는 남녀평등, 철저한 프랑스식 정교분리(라이시테)를 추구한다.

  • 드루즈파 - 일부다처제가 금지되어 있고 여성의 지위가 남성과 동등하다. 단, 이걸 가지고 여성을 존중하는 이슬람 일파 운운하기가 뭐한 것이 절대 다수 무슬림들은 드루즈파를 아예 별개의 종교로 인식하고 같은 이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 알라위파 - 이들은 일단 여성들에게 히잡이나 니캅 같은 폐쇄적 복식을 강요하지 않는다. 또한 예배랑 축제 때에는 남녀가 동석하여 같이 예배한다. 또 소수 종파인 특성상 생존을 위해 기독교 세력과의 연합 및 서구의 세속주의를 많이 받아들여 여성 인권이 굉장히 높다.[82] 기성 주류 이슬람에서는 아예 상상도 못할 일이다.[83]

  • 이슬람 사회주의 - 이란사회주의 성향 이슬람 조직인 '무자헤딘 할크' 등이 있었는데, 당연히 이란 대다수 이슬람계에서 이단 취급을 받고 호메이니 시절에 철저히 왕따당하고 박살이 났다. 현실은 시궁창.


대체로 석유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낮을수록 여성의 위상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자원의 이득 없이도 국가경제를 꾸려나가야 하므로 여성의 사회 참여 기회도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84]

3.5. 민속 이슬람[편집]

사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이슬람이 다수를 차지하는 국가, 공동체의 문화는 결코 단 하나의 동일체가 아니다. 많은 무슬림들이 무함마드 시절의 이슬람 공동체(=움마)를 이상향으로 여기고, 본받아야 할 모범으로 여기는건 사실이지만, 당장 민족감정이나 지역감정, 부족감정도 심하기 때문. 심지어 학파에 따라 율법을 적용하는 방법이나 기준도 전부 다르기 때문에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여기에 현지의 토착관습과 이슬람 교리가 융합하면서 실제 현지인들의 종교관은 쿠란, 하디스를 중심으로 하는 소위 제도권 이슬람과는 영 딴판으로 변했다. 이를테면 아이를 잉태하면 무함마드에게(...) 아기의 순탄한 출산과 산모의 건강을 비는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이나, 쿠란을 아무 페이지나 넘겨서 거기 나온 구절에 따라 점을 치는 풍습, 터키를 비롯한 레벤트 지방에 널리 퍼져있는 푸른색 눈모양의 부적(나자르본주), 신비한 숫자와 글자를 종이에 적어서 만드는 부적(무스카) 등은 이슬람 율법학자들이나 지하디스트들이 없애고자 애를 쓰는 '민속이슬람'이다. 즉 이론과 실재는 이 바닥에서도 구분된다. 당연하지 여기도 사람사는 동넨데 어떤 풍습들은 "얘네 무슬림 맞아?" 싶을 정도로 이질적이라 학자들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도 있다. 민속이슬람 자세히 보기

심지어 인도네시아에는 이슬람식 무당빠왕(20:30초 부터)도 있다. 정확히는 퇴마사에 가까운 듯 보인다.

3.6. 종교 용어의 차이[편집]

이슬람에서는 무함마드 시절의 아랍어인 '푸스하'만을 예배용어로 사용한다. 하지만 애초에 아랍 문자의 특성상 모음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는 구분이 어렵기도 하고, 시대가 흐르면서 아랍어 음운도 지방에 따라 매우 이질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꽤 크게 차이가 난다. 특히 과거 페르시아 문화권이었던 이란과 페르시아를 통해 이슬람을 받아들인 터키, 위구르, 중앙아시아 국가들에서 통용되는 종교용어는 아랍과 비교했을 때 매우 차이가 크다. 개중 간단한 것들만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한국어 의미

표준 아랍어

페르시아어

터키어

예배

Ṣalāt(살라트)

Namâz(나머즈)

Namaz(나마즈)

예언자

Rasūlullāh(라술룰라)

Peyqambar(페이감바르)

Peygamber(페이감베르)

세정

Wuḍūʼ(우두)

Âbdast(업다스트)

Abdest(압데스트)

라마단

Ramaḍān(라마단)

Ramazân(라마전)

Ramazan(라마잔)

희생

Aḍḥā(아드하)

Qorbân(고르번)

Kurban(쿠르반)응?[85]

축일

ʿĪd(에이드)

Eyd(에이드)

Bayram(바이람)

신앙고백

Šahāda(샤하다)

Šahâdat(샤허다트)

Kelime-i Şehadet(켈리메이 셰하뎃)

아침기도

Fajr(파즈르)

Sobh(소브)

Sabah(싸바흐)

정오기도

Ẓuhr(주흐르)

Zohr(조르)

Öğle(외을레)

오후기도

ʿAṣr(아스르)

Asr(아스르)

İkindi(이킨디)

일몰기도

Maġrib(마그립)

Mağreb(마그레브)

Akşam(악샴)

밤기도

ʿIšāʾ(이샤)

Ešâ(에셔)

Yatsı(야트스)

모스크

Masjid(메스지드)

Masjed(마스제드)

Cami(자미)

4.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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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탄생: 대천사 지브릴(가브리엘)의 계시를 받는 무함마드. 자세한 사항은 무함마드 문서 참고

4.1. 초기~중세 이슬람[편집]

파일:Capture+_2018-03-28-07-43-18-1-1.png

무함마드 사후, 선지자와 친했던 장로 중에서 후계자&교황이라 할 수 있는 칼리프를 선출하였다. 그 후 아라비아 반도 밖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633~656년 사이에 시리아, 이라크, 이집트 등을 정복하고 교세를 크게 넓혔다.

그 후에도 정복사업은 계속되어 우마이야 왕조 시대에는 서쪽은 북아프리카의 대서양 연안까지, 동쪽은 중앙아시아, 인도 북서부까지 영향을 주었다. 동아시아 근방까지 진출하여 751년 탈라스 전투에서 고구려 출신의 고선지가 이끈 당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중앙아시아의 통치권을 확립하였다.

자세한 역사는 무함마드, 이슬람 팽창, 우마이야 왕조, 아바스 왕조, 셀주크 제국, 오스만 제국 등의 문서 참고.

인도로의 이슬람 확장은 가즈니 왕조, 구르 왕조, 델리술탄왕조, 무굴 제국 참고. 스와힐리 (동아프리카), 인도네시아 방면 이슬람 포교는 무역으로 이루어졌다. 중국 서부의 위구르 자치구도 마찬가지.

4.2. 이슬람 황금기 (Islamic Golden Age)[편집]

요람에서 무덤까지 지식을 탐구하라[86]

유럽의 의료 체계는 기원뿐만 아니라 구조에 있어서도 아랍식이다. 아랍인은 유럽인의 지적 조상이다.[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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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스도교 학생을 가르치는 안달루스의 대학자 이븐 루시드. 아리스토텔레스 연구의 권위자였다.

8 ~ 13세기의 이슬람권은 문화권과 종교에 상관없이 자신한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지식은 무엇이든 배워서 더욱 발전시켜나갔고 마이모니데스와 같은 비 무슬림 학자들도 왕성하게 저술활동을 할 수 있는 융통성있는 사회였다. 특히 그중에서도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산을 계승한 지적 결과물들은 서유럽 세계로 번역되어 르네상스에 영향을 주었다. 죽쒀서 남줬다

이사람들, 이 당시에는 이단의 지식이든 뭐든(그 그리스와 로마는 '다신교'였다!!) 싸그리 무시하고 필요하다 싶으면 다 받아들이던 세대였다. 요즘 중동의 이슬람 근본주의와 비교하면 이때가 전성기였던 이유가 있었던 셈. 오히려 이때가 타 문화권의 생각을 잘 받아들이고 수용했던 때라 요즘보다 더 낫다고 봐도 될 정도.

중세 후기 이전까지만 해도 로마 제국 멸망 이후 퇴화해버린 서유럽에 비해 아랍의 이슬람 문화권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학문들을 받아들여 매우 발전되어 있었다. 위상이 이렇다보니 서구권의 교회에서도 이븐 시나, 이븐 루슈드 같은 무슬림 저자의 주해서를 읽을 수 있게 허용했다. 당장 알코올과 알칼리, 알고리즘 등의 단어가 아랍어에서 유래된 말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88]

이 시기 이슬람은 이성을 중시하는 무타질라 학파의 융성으로 인해 대놓고 무신론임을 선언해도 처벌받지 않는(요새 그나마 이슬람권 국가 중 세속화가 잘 되었다는 터키에서도 무신론자라는 단어는 욕설로 사용되는 것을 감안하면 이때의 상황을 익히 짐작할 수 있다.) 매우 관용적인 사회였고 과학, 철학, 사회 등 모든 부분에서 압도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중세 유럽바이킹의 침공으로 기록물이나 연대기조차 제대로 쓰이지 않을 시기였고 중국당나라 말기 ~ 5대 10국 혼란을 겪을 때였다.

하지만 지금의 isis는 그 반대로 가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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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집에서 공부하는 학자들. 지구본이 인상적이다.

이슬람권의 대표적인 도시 바그다드만 해도 사람들 사이에 지성의 요람, 문명의 요람이라고 불리워 세계 3대 도시에 등극하는 위엄을 보여준다. 특히 바그다드와 카이로에 세워진 지혜의 집은 중세 지중해 권역과 페르시아, 인도의 학문이 집대성된 곳이었고 이탈리아의 학자들이 시칠리아, 스페인, 모로코, 알제리 등 (당시 기준으로) 이슬람 지역의 학교에서 천문학, 철학, 수학, 화학 등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그중 대표적인 학자가 바로 피보나치.

파일:1154_world_map_by_Moroccan_cartographer_al-Idrisi_for_king_Roger_of_Sicily.jpg

파일:Diagrammatic_T-O_world_map_-_12th_century.jpg

1154년의 알 이드리시 지도

12세기 서유럽의 TO 지도


그 외에 시칠리아 왕국의 로제르 2세의 부탁으로 제작된 알 이드리시 지도도 이슬람 지리학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고 그 지식은 바닷길을 통해 조선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도 영향을 주었다. 칠정산 역시 이슬람 천문학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 15세기 르네상스 이전까지 유럽에 존재하던 거의 모든 의학서 역시 이슬람권의 서적들을 아랍어로 번역한 것에 불과하였으며, 서유럽의 과학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갈릴레오 갈릴레이 이후에야 이슬람 학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외에 과학자 알 비루니 (973 ~ 1048년), 대수학을 집대성한 우마르 하이얌 (1048 ~ 1131년)과 기야스딘 하산, 신학자 겸 천문학자 나시룻딘 투시[89] (1201 ~ 1274년), 아리스토텔레스 연구가 알 파라비, 신학자 알 아시리 등이 활약하였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기를 거치면서 유럽이 종교에서 벗어나 점차 각성하기 시작한 반면, 아랍 지역은 중세 후기 십자군 전쟁몽골의 침입 등으로 큰 고난을 겪고 종교에 좀 더 의지하기 시작하면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즉 유럽은 11세기 이후로 나름 평화를 유지하며 각성이 시작되었지만 이슬람권은 11세기에 튀르크, 12세기에 프랑크(십자군), 13세기에 몽골 등의 민족 이동 및 침략을 겪으며 보수화된 것이다. 몽골군에 의한 마디나트 알 살람 (바그다드) 함락은 알 무스타심 문서 참고.

4.3. 근대~현대의 이슬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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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의 그림자

근대 이후 과학적, 사회적 발전은 전부 기독교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적 사고를 중요시했던 서구 중심으로 일어났기에 새로운 가치관들과 분쟁은 많아 보여도 과학적 사고와 이성적 토론을 통하여 상호간의 합의점을 나름이나마 밟아가고 있다. 반면 종교 중심적 사고를 유지하고 있는 이슬람 사회의 경우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과정을 통하여 나온 가치관들은 그들의 종교적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근본에서 나온 것들이기에 배척하기가 훨씬 더 쉽고, 바로 이러한 점들 때문에 이와 관련한 교리적인 발전은 기타 서구 종교들에 비해 한참 미진하다고 볼 수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무슬림의 순진함. 물론, 이 작품의 경우는 노골적으로 감독의 신성모독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동안 타 종교들이 신성모독적인 매체에 보인 태도와는 격이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종교라는 권위가 약해지고, 풍자의 대상이 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면도 있지만, 그러한 풍자화는 기독교든, 불교든, 이슬람이든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보다 유연한 적응이 필요해보인다. 웬만해선 타종교인들은 종교 비판/왜곡, 풍자 매체에 반대할망정 폭동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한국처럼 서구의 문화를 발전된 것으로 받아들인 문화권일수록 이슬람과의 충돌 요소는 더욱 많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한 인식이 아닌 실제적인 접근에서도. 말하자면 기독교에 의해 왜곡돼서 한국에 들어온 것이 맞긴 하지만, 설사 그게 아니라 해도 기독교와 달리 현대문명과의 충돌 자체를 비켜 나갔기에 현대문명을 살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상당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부 진보적 무슬림들은 이런 현대 사회와 교리 사이의 모순점을 풀기 위해서 노력을 하기도 하는데, 이중에는 쿠란을 '신의 말씀 그 자체'가 아니라 '무함마드가 신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전달하기 위해 쓴 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도 생겼다.통역? 이 논리는 무함마드는 예언자로 선택될 만큼 비범한 인물이긴 했지만 어쨌든 인간이라서 신의 말씀을 완벽하게 인간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고, 그렇기에 신의 말씀을 그 당시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쿠란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니 쿠란은 신의 말씀 그 자체라기 보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질 만한 신의 말씀의 '번역본'같은 셈이므로 세월이 꽤 지난 현대 사회에서는 당연히 모순점이 생길 수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이론도 가장 기초적인 신에 대한 자세 등에서 딴지를 걸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이론에 따르면 주요 종교 교리, 그러니까 과거부터 내려온 종교법이 현대 사회와 안 맞을 수 있으니 현실에 맞게 재해석 해도 괜찮지 않냐...는 것이다. 허나 이 사고방식은 아직 완전하지 않으며 진보적 무슬림들과 수꼴보편적인 무슬림들 세계에서 논란이 될 만한 문제를 안고 있다.

왜냐하면 무함마드 이전에 신의 말씀을 전한 이사(=예수) 등의 예언자들이 있었는데도 또다시 무함마드와 쿠란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 전에 전해진 '말씀'들이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고 왜곡 변형되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식이면 쿠란도 상황에 따라 마음대로 자의적으로 해석해도 되거나 쿠란 자체가 원래 온전하게 전해진 신의 말씀이 아니라는 주장이 이슬람의 정체성 자체를 뒤흔들게 되는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주류가 아닐 수밖에 없다. 영국의 Quilliam Foundation만 해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테러리스트들의 이슬람 교리 해석을 반박하고 도덕적으로 옳고 진보적인 해석을 제공함으로써 "사상적으로 극단주의를 몰아낸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단체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상당수 영국 무슬림들로부터 무시 또는 비난을 당하고 있는 처지이다. 창립자인 마지드 나와즈는 저널리스트 무르타자 후세인으로부터 베란다 원숭이(porch monkey; 미국 흑인을 상대로 한 멸칭)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이슬람 근본주의가 창궐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무렵부터다. 실제로 와하브파를 창시한 무함마드 빈 압드 알 와하브부터가 18세기 사람이고, 이슬람주의에서 중요한 이념가들인 사이트 쿠틉이나 아불알라 마우두디 등은 아예 20세기 사람이다. 따라서 '근대적 이슬람'은 긍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IS같은 놈들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밀어주는 막장스런 와하비 이슬람도 비교적 근대적인 현상이다. 전통적 이슬람이라 칭해지는 것들이 오히려 온건한 편이다(...). 굴곡이 많은 이슬람의 근대사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비판도 있다. 전통적 이슬람이 온건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칫하면 이슬람의 전통적 교리에 대한 비판을 희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쿠란/논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배교자와 이교도에 대한 살인을 직접적으로 명하는 구절이 있다. 그리고 성노예를 인정하고, 지하드 등을 통해 순교한 남자들은 천국에서 72명의 처녀를 보상으로 받는다는 구절이 있는 등 분명히 현대의 도덕 관념과 명백히 상충되는 교리들이 있다. 이를 볼 때 전통적 이슬람과 근대 이슬람을 애써 구분하고 옛날은 더 좋았지라고 너무도 간단하게 생각해버리는 것은 큰 착각이다.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교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통적 이슬람과 근대 이슬람 간에 흐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교리 자체에 있는 전근대성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다. 물론 이쪽에 대해선 전통적인 교리야 애초에 현대적인 가치관이 세워지기 전에 만들어진 교리였다는 것을 일단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에는 이러한 교리들이 시대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적용되기도 하였으나, 현대에 득세하는 극단주의적 흐름에선 오히려 변화한 시대에 비해 교리의 해석은 교조적으로 변하고, 해석의 흐름도 시대에 역행하는 흐름을 띄게 되었다는 게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테러리즘으로 잘 알려져 있고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4개 조직인 ISIL, 보코 하람, 탈레반, 알 카에다는 모두 이슬람 계통이다.

5. 다른 문화권이나 종교와의 관계[편집]

오 성서를 받은 백성(유대인, 기독교인)들이여, 무함마드에게 계시한 것을 믿으라, 그것은 이미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타나크, 신약)을 확증하는 것인데, 우리가 얼굴을 지우고(코, 입, 눈 등이 없는 뒷목처럼 만들어서)그것을 뒤쪽으로 돌려놓거나 안식일을 범한 자들을 저주한 것처럼 저주하기 전에 믿으라. 알라의 명령은 항상 수행되노라.(무신 칸 역)

꾸란 22:19-21 불신하는 자들은 불길 속에서 옷이 찢기며 그들의 머리 위에는 끓는 물이 부어지리라. 그것으로 인하여 그들의 내장과 피부가 녹아내릴 것이라. 그 외에도 저들을 징벌할 철로 된 회초리가 있노라. 그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마다 저들은 다시 그 안으로 되돌려와 불의 징벌을 맛보는 소리를 듣노라.

꾸란 3:56 불신자들이여 내가 너희에게 현세와 내세에서 가혹한 징벌을 내릴 것이라. 그러나 그들은 구원자를 찾지 못할 것이라.

꾸란 3:61 그대에게 지식이 이른 후에도 예수(의 신성)에 관하여 논쟁하는 자가 있다면, 거짓말 하는 자들 위에 하나님의 벌이 있게 하여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라.

꾸란 3:118 믿는 자들이여 불신자를 친구로 택하지 말라. 그들은 너희를 해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아니하며 그들은 단지 너희가 파괴되기를 바랄 뿐이라. 그들의 입들에서 증오가 발산되며 그들의 마음은 더욱 사악하도다.

꾸란 5:57믿는 자들이여 너희의 종교를 조롱하고 희롱하는 자들을 친구로 삼지 말라. 이들은 너희 이전에 성서를 받은 자들로 믿음을 배반했노라 너희가 믿는 자라면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라.

꾸란 5:72 하나님은 마리아의 아들 메시아일 뿐이라 말하니 그들은 분명 불신자들이라.

꾸란 5:73 하나님이 셋 중의 하나라고 말하는 그들은 분명 불신자들이라.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신이 없거늘 만일 그들이 말하는 것을 단념하지 않는다면 믿지 아니한 그들에게 고통스러운 벌이 내릴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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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체스를 두는 안달루스의 기독교인과 무슬림

기독교보다 뒤에 나온 종교로서, 기독교유대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에 실제로 기독교의 구/신약 성경의 일부를 인용하기도 하고, 예수무함마드 바로 이전의 예언자로 인정하는 등 유사점이 많다. 그러나 이슬람 교리에서는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이슬람의 진리를 곡해하는 쉬르크(우상숭배자)인 '성서의 백성들(People of the Book)'이라고 하며 이들을 무슬림 공동체 주도로 2등시민 취급하며 권리와 생활에서 무슬림들과 철저히 차별하라고 명한다.

무슬림들과 이슬람법 옹호자들은 기독교도와 유대교도를 '구분' 내지는 '보호'하라는 식으로 이러한 차별을 미화하지만, 종교세인 지즈야의 강요와 지즈야를 안 낼 시 교리적으로 지하드를 통한 섬멸과 정복의 대상으로 구분된다는 점[90], 개종 시도를 죽음으로 처벌하는 점, 무슬림보다 열등한 대우 및 결혼 등에서의 차별, 이슬람적 질서에 순응할 것을 명령하는 등 당시 기독교도들과 유대교도들 기준으로도 현대 기준으로도 명백히 불합리함을 느꼈던 종교 차별이 맞다. 흔히 타 문화권의 타종교 배척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며 양비론적 논리를 쓰는 무슬림들이 많은데, 이는 차별이 아니었음을 논증하는 변명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또한 흔히 알려진 이슬람의 종교적 관용정책은 후발주자로 출발하여 이미 타 종교가 뿌리박고 있는 지역들을 다스려야 했던 초기 이슬람의 입장에 기초한 것으로 통치가 완벽하게 확고해진 이후(대략 무함마드 사후 200년 정도부터)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무함마드는 '성서의 백성들'을 실질적으로 박해하고 차별하되 형식적으로는 존중하라고 했으나, 유대인 멸시하지 말라는 성경구절을 빈번히 어긴 중세 기독교인들처럼 무슬림들도 이 가르침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이교도에 대한 강제 개종과 탄압, 심하게는 학살이 잊을만 하면 일어나곤 했다. 세금 우대 정책(지즈야)이라는 것도 달리 말하면 이교도를 타겟으로 한 세금 폭탄이다. 다시 말해, 이슬람이 관용의 종교라는 명제는 역사상 많은 시대에서 틀렸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역사를 보면 이슬람 세력이 위축될 때에는 타 종교에 대한 탄압이 약화되고, 강성해질 때에는 강화되는 고무줄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무슬림들은 비무슬림지역 피정복민들에게 무함마드의 세가지 선택, 즉 개종/복종/죽음을 제시했다. 딤미[91] 신분 피정복민들이 가장 많이 개종하였는데, 이슬람만이 생존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딤미들의 불안정한 처지를 감안한다면 그들 중 다수가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오늘날 다수의 무슬림들은 이슬람은 강요에 의한 개종은 금지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이슬람이 무력에 의해 전파되지 않았음을 강력히 주장한다. 이는 분명 맞는 말이다. 무력에 의해 전파된 것은 이슬람 체제의 정치적, 사회적 헤게모니이다.[92] 이슬람으로의 개종은 이슬람 체제가 전파된 뒤 (기독교도와 유대교도들이) 비참한 삶을 견디지 못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93]

그리고 소위 경전의 백성들이라 한 기독교와 유대교 한정으로 '관용'을 베풀었던 시기에도 교회나 시나고그(유대교 회당) 신축을 금지하거나, 기독교 교회나 성당인데도 십자가를 못걸게 하고 종교 행렬도 금지했으며,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집은 무슬림의 집보다 크게 못짓게 하고, 말과 노새를 타는 게 금지된 기독교도들과 유대교도들은 무슬림들의 앞에서 굴욕감을 느끼라는 목적으로 여자들이 타는 모양새로 당나귀만을 타야 했다.

기독교도들과 유대교도들은 관직에 진출하기 힘들었으며(사실상 권력 자체를 박탈당함) 무슬림보다 낮은 지위를 상징하는 터번이나 허리띠를 강제로 두르고 다녀야 했다. 거리나 목욕탕 등지에서는 무슬림과 기독교인/유대인들이 마주치면, 아무리 신분이 낮은 무슬림일지라도 기독교인/유대인들이 먼저 길을 비켜주거나 공손히 절해야 했다. 또한 법정에서 '무슬림에 대한' 기독교인과 유대인의 증언은 효력이 무슬림보다 못 하거나 아예 없었고 그나마도 증언이 무슬림에게 불리한 것이라면 채택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뜯어보면 현대인이 생각하는 관용과는 꽤나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샤리아로 비무슬림 여성과 무슬림 남성의 결혼은 허용하면서 무슬림 여성과 비무슬림 남성의 결혼은 사형이나 양육권 박탈로 처벌하는 결혼 차별[94][95]에 종교 세금인 지즈야까지 강제했으니 결국 1,400여 년에 걸쳐 서서히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반강제로 이슬람화가 되어갈 수밖에.[96]

이슬람 치하에서 소수파는 주로 특정한 쓰임새가 있을 때, 혹은 관용을 베푸는 것이 정치적이나 경제적 이익에 부합할 때에는 관용되었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자주 배격되었다. 위 항목에서도 서술되어 있는 바와 같이 이슬람 세계에서도 이미 십자군 전쟁 이전부터 기독교인이나 유대인 및 기타 비무슬림에 대한 학살이나 추방, 또는 노예화가 번번히 일어났다. 물론 반대로 이슬람이 침략대상이 되었을 때에는 이교도 아래에서 마찬가지의 재앙에 맞닥뜨려야 했다.

일단, 확실한 것은 여타 종교처럼 전근대 이슬람 역시 종교적 관용에서 한계를 보이며 크고 작은 오점들을 남긴 것이 사실이고, 이는 전근대적 시기 한정으로는 이슬람만 특별히 타종교에 억압적이었다고 보긴 힘들다. 특히 중세 시기 서구권과 비교했을 때 대체로 이슬람쪽의 처우가 나았음을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고대 로마든, 사산조 페르시아든, 중세 서유럽이든, 조선이든 타 종교에 대한 대우는 지도자의 성향이나 필요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이슬람 역시 라시드 칼리프 시대부터 무굴 제국과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해왔고, 팔레스타인 농민반란 당시 무슬림 농민들의 포그롬으로부터 유대인을 보호한 바 있는 이브라힘 파샤의 사례에서 보다시피 같은 사건을 두고도 입장에 따라 저마다 다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이런 다각적인 측면을 무시하고 단순히 관용 혹은 불관용으로 성급히 결론짓는 것은 역사성이 결여된 환원론적 사고방식으로서 지양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부 무슬림들과 이슬람 옹호론자들이 쓰는 주된 레퍼토리인, "이슬람권이 박해 일변도였다면 아직도 중동에 적지 않은 규모로 있는 기독교인, 이스라엘 건국 이전까지 각국에 많았던 유대인 커뮤니티들이 남아있기 어려웠을 것이다."--->"따라서 이슬람은 박해가 크게 없고 온건한 종교다"는 식의 주장은 명백한 오류다. 그런 식으로 접근한다면 서구의 제국주의 식민통치나 일제 강점기 역시 문화 통치같은 온건한 통치기 역시 존재했고, 또 제3세계 국민들이나 상당수 한국인들도 말살당하지 않고 지금도 남아있으니 "서구 식민제국과 일제는 온건했다" 식으로 미화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지도자 성향에 따라 박해가 상대적으로 덜한 시기도 있었다는 것이라던지 아직도 아랍권에 남아있는 기독교인, 유대교인이 있다는 단순한 사실 같은것이 아니라 비무슬림들이 이렇게 약자, 소수종파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로 끈질기고 지속적인 탄압이(강약의 흐름은 있어도) 1400년간 이슬람이 장악한 중동 정치사에서 주기적으로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슬람이 주도하는 박해는 거의 비슷하거나 더 악화된 수준으로 21세기인 지금도 줄기차게 계속되고 있다.

한편, 이슬람이 가장 심각하게 차별하는 대상은 무신론자들로, 하디스에 따라 인간은 종교를 가지고 있어서 짐승과 구분된다고 생각하는 많은 무슬림들은 무신론자들을 아예 인간으로 보지를 않으며, 많은 지역에서 관습상 무신론자는 마음대로 살해해도 아무런 죄가 되지 않는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가장 서구색이 짙은 터키에서조차 무신론자를 뜻하는 'atheist'가 최고로 모욕적인 욕들 중에 하나로 쓰인다. 세계 최대 무슬림 인구 대국인 인도네시아 역시 1960년대 이후 국가공식적으로 무종교/무신론자를 인정하지 않는다.[97] 실제로 무슬림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터키중동 지역의 나라에서 '한국인들은 절반이 종교가 없고, 일본인들은 대부분 다신론자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존재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중동한국인 근로자들을 파견보낼 때, 근로자들의 종교는 일괄적으로 불교로 지정되었던 때도 있었다. 기독교에 대한 이슬람권의 반감과 적개심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물론 무슬림 중에서 무종교인에 좀더 개방적인 사람들도 있긴 해도 예나 지금이나 아랍-북아프리카-남아시아, 말레이시아 등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지역 다수에서는 자신이 무신론자라면 가능한 한 자신이 무교라는 사실을 숨기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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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권 국가들의 종교의 자유 실태. 빨간색 국가들은 이슬람에서 타종교로 개종했을 경우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사형에 처하는 국가들, 갈색 국가들은 개종했을 경우 징역형에 처해 감옥에 보내버리거나 무슬림 남성과 이교도 여성의 결혼을 금지하고 비무슬림의 양육권을 박탈해버리는 국가들, 주황색 국가들은 무슬림을 타종교로 개종시키는 것이 불법인 국가들이다.[99] 터키 같은 특수한 세속 국가[100]나 중앙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들, 그리고 타종교인 비율이 높은 몇몇 국가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우리가 생각하는 현대적인 종교의 자유 개념이 아예 없다. 오히려 (비무슬림들의 눈치를 봐서라도) 종교의 자유를 형식적으로나마 보장해주는 이슬람권 국가들마저 소수인 것을 볼 수 있다.

과거에나 현재에나 쿠란에 씌여있고,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타종교와의 평화 공존 원칙이란

1. 무슬림이 타종교인을 개종시키려 하든 말든 무슬림의 자유지만, 타종교인이 무슬림을 절대로 개종 시도해서는 안 되며[101]

2. 이슬람 문화권 우위의 사회 제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하고 타종교인들은 이슬람 우위의 사회, 무슬림 가치관이 지배적인 사회를 철저히 존중하고 어떠한 신성모독[102]도 하지 않으며

3. 타종교인들이 그들의 신앙을 유지하는 대가로 무슬림에게 지즈야(인두세)를 납부하는 조건에서만[103] 이슬람과 타종교의 평화와 공존을 어디까지나 철저한 무슬림 우월적 입장에서 허용해주는 것이다.

거기에다 상술했듯이 여기서의 '타종교'란 어디까지나 같은 일신교인 기독교, 유대교 정도이며 힌두교불교 등 다신교 성향의 종교와 무신론자들은 최우선적으로 지하드를 통한 말살과 박멸의 대상이며 관용과 평화의 대상에조차도 포함되지 않는 것이 원칙. 이러한 인식은 현대적인 종교의 자유 원칙과 정면으로 위배된다. 즉, 흔히 쿠란을 근거로 무슬림들이 제시하는 '평화와 관용' 원칙은 현대적 의미의 평화, 다종교 공존과 같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많은 비무슬림들의 염원과 달리 여전히 많은 무슬림들이 여전히 이러한 전근대적 가치관과 종교 인식에 경도되어 있는 것이 불편한 진실이다. 갈수록 이슬람 극단주의의 문제가 무슬림들 사이에서 뿌리박혀 있고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기도 한다.

무슬림 남성이 기독교, 유대교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허용되나 무슬리마가 기독교, 유대교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금기시하고 있다. 여성이 남성의 신앙을 따르는 것이 통념이기도 하고, 전통적인 남성우월적 가치관에 따라 이슬람 남성과 타종교 여성의 결혼을 전도의 일환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무슬림 여성과 타 종교 남성의 결혼이나, 같은 이슬람이라도 종파나 국가가 다른 남성과의 결합[104]반이슬람적이고 불명예스러운 행위로 받아들이며 이것이 명예살인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영국인 사랑한 이라크 여성 아버지가 살해 (한겨레) '명예살인' 영국 사회문제 (한겨레)

유럽에선 종종 샤리아유럽 법에도 적용시켜야 한다는 극단주의 무슬림들의 시위가 벌어지곤 하며 영국에서 그 빈도수가 높다. 그리고 그 내용 또한 무슬림 사회 일반에서 받아들여지는 샤리아의 가르침에 토대를 둔 것이라, 이들이 무슬림 사회 기준으로도 극단적 해석을 하고 행동한다고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즉 극단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소위 '일반' 무슬림이 생각하는 샤리아의 가르침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종교의 가르침보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적 극단주의자나 근본주의자의 가르침에 가깝다. 실제 프랑스 거주 35세-44세 무슬림들의 20%, 18-24세 무슬림 청년들의 27%(!), 영국 전체 35세-44세 무슬림들 중의 11%가 ISIL을 옹호하거나 지지했다.[105] 참고로 이 수치는 파키스탄 같은 극단주의 이슬람 나라의 국민적 조사의 ISIL 호감 수치보다 높은 것이다(!). 거기다 더 답이 없는 충격적인 현실은 ISIL의 막장 행각(이교도에 대한 성노예화, 무수한 학살, 기독교 및 야지디 박멸, 세속 문화 파괴, 전통유산 파괴 등)들이 세계 언론들을 타고 적나라하게 알려지자, 오히려 그걸 보고 ISIL에 대한 무슬림들의 지지도가 예전보다 더 늘어났다는 점이다.[106]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샤리아서구 국가들의 법에 적용시켜서 무슬림의 도덕규범을 반영하라는 것인데 여기엔 음주를 금지하고 동성결혼을 불허하며, 현대 민주주의 정신을 부정하는 등의 내용이 들어 있어서 다른 영국인들로부터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는 반응을 자아내고 있다. 게다가 이들이 요구하는 것들 중에는 샤리아 법을 법 전체에 적용시킬 수 없다면, 일정한 구역을 추장국(Emirate)으로 만들어 그 안에선 샤리아 법만 적용시킬 수 있게 하라는 것이어서 이에 따라 반이슬람 시위도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등 마찰과 대립이 커지고 있다. 특히 영국프랑스에선 샤리아 요구 시위를 하지를 않나, 세속적 광고판에 먹칠을 하고, 자기네 거주지를 멋대로 샤리아 구역으로 선포하는 전단지를 도배하고 다니고, 독일과 동런던 등지에서는 이들이 임의로 '무슬림 자경단'을 구성하여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샤리아를 따를 것을 강요하고 다니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려 드는 식의 사건들까지 발생하며 유럽권에서 반이슬람을 넘어선 이슬람 기류 조성에 힘을 싣고 있다.

실제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중앙아시아나 유럽 지역 밖의 무슬림들의 종교적 자유에 관한 인식은 심각한 편. 가령 샤리아를 국법으로 하는 것을 지지하는 무슬림의 비율이 그래도 이슬람권에서는 제일 세속주의적이라는 카자흐스탄(10%)이나 터키(12%)에서도 10%대였으며, 중동권으로 가면 레바논(29%)을 제외하고는 모든 나라에서 과반수를 넘겼고 심지어 이라크(91%)나 아프가니스탄(99%) 같은 곳에서는 90%를 넘어갔다.[107] 말레이시아(86%)나 인도네시아(72%)와 같이 흔히 개방적이라고 알려진 나라들에서도 극단주의 성향의 나라들과 별다를 바 없는 압도적인 비율이었는데, 실제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은 와하비즘과 극단주의가 퍼지며 수구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108]

5.1. 이슬람의 타 종교 탄압 사례[편집]

이슬람 초기에는 그 이후의 시대보다 타 종교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이었다. 중세 말 이슬람 세계 동부에서는 몽골이 서부에서는 십자군 전쟁이 들어닥치고 무슬림 세계가 큰 혼란에 빠졌던 것을 계기로 하여, 이슬람 지성계와 일반 민중 모두 타 종교에 대하여 보다 비타협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현재 이슬람권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이슬람의 학자 중 한 명인 이븐 타이미야로, 다른 종교에 대해 유연한 견해를 가지고 있던 무슬림 학자들을 비판하는 등 강경한 입장으로 유명했다.

대체적으로 유대교기독교가 일반적인 다신교나, 계통이 같지 않은 일신교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은 탄압을 받았으나, 이들 역시 신의 진리를 저버린 불신자로서 이슬람의 깃발 아래 무릎꿇리고 강제로 개종시켜야 할 지하드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피차일반이었다.

오스만 시절에는 정교회 성당을 이슬람 사원보다 크게 만들지 못하게 했고 문을 매우 낮게 만들도록 하여 성당 문을 반지하식으로 만들었다.(정교회 신자들에게 기다시피 성당으로 들어가게 하여 굴욕감을 주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의 예니체리들은 레반트 지역의 아랍 기독교인 상인들을 만만하게 보고 술탄에게 무언가 불만이 생기거나 하면 분풀이로 상습 약탈을 가하였다. 또 가장 대표적이고 유명한 기독교인 대학살 사례로는 오스만 투르크의 아르메니아 대학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오스만 제국과 교역했던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비즈니스 파트너로 같은 기독교인이었던 아르메니아인들을 선호하였다. 서구 열강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간의 경제 교역이 늘어나면서, 아르메니아인들의 경제적, 사회적 입지도 점점 강화되었다. 서구 열강의 경제적 침탈이 빈발하는 한 가지만으로도 서구 열강과 같은 종교를 믿는 소수자였던 아르메니아 기독교인들이 위험해질 요인이 다분했으며, 무엇보다 이들이 능동적으로 변화하는 정세에 맞서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자 제국 내 무슬림들의 질투가 이들에게 몰린 것이 바로 아르메니아 대학살의 근본 원인이었다.

불교는 불상을 우상숭배로 보아 불교 유적에 대한 철저한 탄압이 뒤따랐다. 인도의 유명한 불교 대학이었던 날란다 대학이 무슬림들에 의해 함락당해 파괴된 사건은 불교사 내에서도 인도 불교의 몰락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중앙아시아와 인도에서는 불자들에 대한 제노포비아가 있었다는 속설은 인도와 중앙아시아에서는 보통 외부인들이 힌두교조로아스터교가 널리 퍼진 계급 사회에 들어가면 낮은 카스트를 부여받게 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서 인도에 새로 진출하는 부족들 같은 경우에는 불교로 개종했던 경우가 많았다.[109] 이슬람이 유입되자 인도로 무력을 진출하는 부족들은 평화적인 불교보다 성전을 강조하는 이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늘어났고, 이 덕분에 인도의 불교는 결정적으로 쇠퇴하고 만다.[110]

조로아스터교는 원래 사산조 페르시아의 정권과 강력하게 유착되어 있던 종교였으나, 사산조가 무너지고 나서 발원지인 페르시아에서 망했어요. 오히려 조로아스터교에서 갈라져 나온 마니교, 마즈타크교등의 신흥 종교들이나 페르시아 내에 잔존한 네스토리우스교도들은 적극 저항했지만, 정통파 조로아스터교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멸망 후 제대로 된 저항한 번 못하고 그대로 붕괴되어 버렸다. 페르시아의 뒤를 잇는 이란의 조로아스터교도는 현재 15만여명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고 그나마도 쉬아파 극단주의 세력의 폭행과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 이슬람에 맞서 심지어 우마이야 왕조, 압바스 왕조 하에서도 포교행위를 한 마니교의 경우에는 이슬람에 의해 '잔다크'(사악한 이단)라 불리우며 적극적인 탄압의 대상이 되었고, 마니교는 그나마 간신히 잔존이라도 한 종교들과 다르게 결국 사멸하고 만다.

힌두교를 비롯한 인도 전통 종교들도 역사적으로 이슬람에게 어마어마하게 탄압받은 역사가 있다. 인도에서는 이슬람 왕조의 침략 때마다 힌두교 신상과 신전들이 수도없이 박살났고, 대표적으로 인도에서는 가즈나 조의 마흐무드가 힌두교 신상을 파괴해서 모스크의 계단으로 재활용한 사례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일단 이슬람에서는 힌두교와 같은 다신교 신자들을 교리상으로는 타협하여서는 안되었지만 인도의 비이슬람 인구수가 넘사벽이기 때문에 다른 다신교 민족들처럼 닥치고 학살+정복 및 강제 개종으로 이슬람화 시키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물론 지속적인 힌두교도와의 전쟁, 이슬람 왕조의 난립속에 학살은 계속되었지만) 전근대의 인도 사회는 카스트 제도를 바탕으로 정교하게 산업이 분업화된 사회였고, 무굴제국의 무슬림 위정자들은 이러한 카스트 제도를 바탕으로 한 경제력과 부를 항유하기 위하여 인도의 힌두교와 힌두교인들을 이슬람의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용인한 사례가 수두룩하다.(대표적으로 악바르 대제)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인도의 자이나교는 유일신 신앙을 철저하게 반대하는 교리를 가진 종교이지만, 자이나교 신자들은 무슬림이 다스리는 무굴 제국 하에서 상업을 장악하며 엄청난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이러한 공존은 결국 광신적 무슬림인 아우랑제브 황제의 비무슬림도 인두세 부활 및 힌두교와 각종 인도 전통종교 핍박[111]무수한 이슬람 개종 강요 병크로 인해 힌두교도의 거대한 반란까지 일어났고, 그걸 무자비한 학살과 탄압으로 억누르며 힌두교 및 인도 비무슬림 박해를 계속했다. 그러다 결국 대영제국이 무굴 제국을 멸망시킨 이후에 넘사벽 힌두교와 세력위치가 뒤바뀌어 도로 이슬람이 비주류 소수파로 차별받는 위치가 되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 외 토속신앙도 탄압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들과 인도네시아가 서파푸아를 억압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슬람 국가들 안에서의 소수의 기독교 신자들(가톨릭과 개신교)도 탄압의 대상이 된다.

현재도 대표적인 신정 국가 이란과 또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수단, 이집트, 파키스탄브루나이 인도네시아 아체나 말루쿠, 수마트라를 비롯한 대다수 중동 및 이슬람권에서는 야지디교인이나 기독교인들, 조로아스터교인 등 소수종교에 대한 사적인 차원에서의 각종 집단 괴롭힘과 폭력, 테러, 종교시설 방화가 빈발하고 갈수록 심해지는 중이다.

명심해 두어야 할 사실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슬람에 의한 타 종교 탄압과 학살의 역사는 근대 이후 굉장히 온건해지고 순화된 여타 종교와는 달리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현재 이슬람권이 세계 다른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타 종교 탄압의 강도가 압도적으로 높으며 소수파에 대한 일방적 학살과 테러 역시 갈수록 제노사이드를 방불케 할 정도로 극심해져 가고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현재 이슬람 사회에서 이교도나 소수파들이 받는 억압과 탄압과 박해의 강도는 이슬람이 상대적으로 관대했다고 평가되는 중세와 근대에 비해 오히려 더욱 악화된 실정이다. 심지어 같은 종파라고 할 지라도 민족이나 사상이 다르면 타 종교나 소수파처럼 가혹한 탄압을 한다.[112] 이슬람이 현대 사회에서 자행하는 시대착오적이고 반인권적인 타 종교 박해와 배척, 그리고 학살에 대해서는 세계 어느 곳도 옹호하지 않는다. 사실 현대의 이슬람이 비난받는 이유라면 이러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5.2. 타 종교 및 국가의 이슬람 탄압 사례[편집]

  • 스페인가톨릭: 카스티야와 아라곤 주도의 레콘키스타로 이베리아 반도의 패권이 스페인에게 넘어갔을 때, 1492년 이베리아 반도 최후의 이슬람 국가인 그라나다를 정복하자마자 항복 조약에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 해 놓고, 1년 뒤 강제개종 시도로 촉발된 반란을 구실삼아 모든 영토에서 개종자 이외의 무슬림을 추방했다.유대인 추방은 덤 그런데 골때리게도 출국하려면 정부에 돈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그럴만한 경제력이 없어서 명목상으로만 개종하고 몰래 숨슬람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후 스페인 왕실은 이렇게 개종한 무슬림인 모리스코들조차 못미더워해서 기독교 코스프레 의혹을 제기하며 이슬람풍 복식 금지, 식생활 금지, 아랍어 출판 금지, 아랍어 사용 금지를 했으나 이들은 제대로 지키지 않았고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폭동을 일으켰다. 결국 1600년대 초반에 개종자를 포함한 무슬림 후손 대부분을 강제 추방하였다.

  • 공산 알바니아: 위의 소련과 비슷한 경우. 이쪽은 아예 무신론 국가를 선포했다. 현재 알바니아 역시 구 소련 지역처럼 종교의 영향력이 약한 지역이다.

  • 프랑스: 프랑스의 북아프리카 식민통치는 어떻게보면 소련의 식민통치보다 더 악랄했다고 볼 수도 있다. 나름 평등한 입장에서 대우하고자 한 소련과는 다르게 프랑스의 경우에는 자국민들에게는 인권과 민주, 학문을 강조하면서 정작 북아프리카의 식민지였던 알제리와 모로코, 튀니지에서의 아랍인들의 초등학교 취학률은 6%가 나올 정도로 철저한 우민화와 차별을 시행하였다.[114] 알제리 전쟁 문서를 참조해보면 알겠지만 프랑스의 북아프리카 식민은 지금 현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점거와 매우 유사한 양상이다.

  • 인도힌두교: 현재 인도의 무슬림들은 인도 사회 내에서 대체적으로 가난하고 차별받는 계층에 속해있다. 2014년 총선에서 승리한 모디 총리의 경우 구자라트 지방에서의 무슬림들에 대한 집단 린치를 덮어주었던 전력 때문에, 인도 무슬림들은 현재 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

  • 미얀마불교: 미얀마 정부의 묵인 하에 이슬람을 믿는 로힝야 등 소수민족들에 대한 제노포비아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다. 해당 문서에 나오다시피 로힝야족이 마냥 무결한 피해자라고 보긴 뭐하지만 그밖에도 미얀마에선 카친이나 카렌 등 비이슬람 계열 소수민족 부족들에 대한 박해와 억압이 지속되고 있다.

  • 중국유교: 근대부터 중국의 유학자들은 불교에 대해 "있지도 않은 천당과 지옥을 가지고 민중들을 농락한다"는 말을 자주 입에 담으며, 불교를 혹세무민의 종교라고 비판했었다. 이러한 그들의 종교관은 불교처럼 천국지옥 관념을 가지고 있던 기독교와 이슬람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조선 또한 마찬가지. 고려 시대에 들어와 개성에 살던 이슬람인 집단은 조선의 강력한 성리학 진흥 정책 속에 깡그리 동화되었다.

    명나라 시대에는 "무슬림들은 무조건 한족과 결혼해야 한다"는 혼혈법이 정해졌다. 그래서 현재 중국에서는 더 이상 이슬람을 믿지는 않지만 무슬림이었던 조상들한테 제사 지내는, 사실상 한족이나 다름없는 회족들이 많이 존재한다. 무슬림은 중국에서 나름 사회 상류층에 많이 진출해 있었으나,[115] 18세기 무렵 자흐리야 교단이라는 수피즘 분파의 폭동을 계기로 청나라 조정이 회족들에 대해 억압 정책을 펴면서 고난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정책에 반발하여 19세기 감숙성, 섬서성에서 대규모 회민 반란이 일어나는 등 악순환이 반복되었고, 반란 전 백만명 단위로 밀집해 있던 해당 지역 회족은 진압 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중국에 있는 회족들이 대단위로 이주해 왔던 아랍 무슬림들의 후예임에도 불구하고 신체 외양에서 한족과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것은 이 때의 혼혈과 멸족 때문이다.[116]

    과거에는 교리가 유교와의 공통점을 찾는 형태로 발전하였으나 반란 및 진압 이후로는 원리주의적이고 공격적인 교리가 회족 내에서 인기를 얻게 되었다. 특히 신장 지역의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 같은 테러 단체들이 독립을 요구하며 테러활동을 벌이는 탓에 중국 정부가 많은 군경을 배치하여 막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무슬림 위구르인들은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라는 한족의 편견으로 인해 취업에 큰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 터키세속주의: 터키는 오늘날에도 무슬림 인구가 98%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지만,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집권기부터 종교의 영향을 점차 줄여나가기 위해 거의 박해에 준하는 정책을 가했었다. 1925년 모자법 도입으로 페스를 비롯한 전통모자를 착용하는 것을 금지한 이래로 아잔과 예배를 터키어로 하도록 강요하고, 터키 내에서 통용되는 쿠란도 한때 아랍어 사용을 금지한 적이 있었다. 물론 오스만 제국의 복권이나 반세속주의를 주장하는 이슬람 학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도 세트로 가해졌다. 오늘날 반케말주의 성향의 이슬람 지식인들이 득세하는 것도 그 당시 세속주의 정책이 터키인들에게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라는 인식이 자리잡았기 때문. 1980년 케난 에브렌 장군의 군사쿠데타 이후로는 교육장소에서 히잡이나 종교적 상징을 하고 다니거나, 공무원이 히잡을 착용하는 것도 완전히 금지시켜 버렸다. 그 때문에 오늘날 터키의 학교들은 종교학교인 이맘 하팁학교조차도 남녀공학이 원칙이며, 2000년까지 히잡을 쓰고 다니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터키의 민주주의가 사실상 무너지기 시작하고 이슬람 근본주의가 유행함에 따라 세속주의는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이 2015 총선에서 패배한 것을 보면 아직은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 앙골라 - 이슬람을 금지했다고 한다. 적어도 모스크를 폐쇄하는 등 탄압 정책을 펼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

6. 이슬람 근본주의[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슬람 근본주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슬람 극단주의라고도 불린다.

7. 이슬람 국가들의 특징[편집]

이란이나 사우디 같은 이슬람의 종교법(샤리아)이 매우 엄격한 나라는 맥심 같은 여성의 살이 많이 드러난 잡지는 반입이 불가능하다. 물론 이 중엔 만화도 포함된다. 굳이 가지고 들어가려면 불가능한 건 아닌데 공항 세관에서 유성매직을 덧칠해 맥심의 여성들과 만화의 여성캐릭터에게 챠도르와 히잡을 입혀서 눈만 나오게 한 다음에 가지고 갈 수가 있다. 경험자의 말로는 이란러브히나 전권을 가지고 갔다가 세관원이 한시간 동안 유성매직으로 모든 히로인들을 전통 이슬람풍 여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걸 봐야만 했다고.

이 몽땅 금지되어 있을 것 같지만 모든 나라가 그런 것은 아니다. 쿠란의 해석에 따라 술이 완전 금지인지, 부분적인 금지인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엄격한 한발리파의 경우 소독용 알콜조차도 금지하지만, 이외의 학파들은 술을 마시되 취하진 말라는 쪽과 금지(하람)하는 쪽 등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7~8세기 아랍에서조차도 포도주를 금지하는 대신 대추야자를 발효시켜 만든 술은 허용했고[117] 유목민 무슬림들도 젖이나 염소젖을 발효시킨 술을 즐겨마셨다.

사실 유목민들에게 낙타나 양, 염소의 젖으로 만든 술을 금지하는 건 이슬람에 대한 반발만 일으킬 미친 짓이었다. 사막에서 물을 구하기 어려운 유목민들에게 가축젖은 물이나 다름 없었지만 보관이 어려웠기 때문에 장기 보관을 위한 발효주는 필수품이었으므로 이걸 금지한다는 건 종교를 넘어 생존 문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118] 또 평시에는 술을 금지하지만, 마실 물이 없어 죽을 상황이라면 아무 술이나 허용했다. 이는 자살을 가장 엄격하게 금지하는 이슬람에서 죽는 것보다는 술이라도 마시고 살아난 다음 나중에 신에게 사과하는게 낫다고 여겼기 때문이다.[119]

유럽의 무슬림들은 포도주맥주든 잘 마시며, 북아프리카에서도 많이 마신다. 중앙아시아 역시 술을 잘 마신다. 에 가장 엄격한 나라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있긴 하다. 여긴 심지어 술을 마신다는 신고가 들어오면 무트와라는 종교경찰이 출동하여 주사기로 피를 뽑아 피 속에 들어있는 알콜까지 적발해낸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이 나라 부자들은 비행기타고 이웃나라 바레인이나 요르단, 혹은 이집트모로코, 튀니지처럼 술 판매를 허용하고 있는 이슬람, 아랍권 나라로 여행가서 실컷 마시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바레인의 경우 오죽하면 술에 대하여 보수적인 카타르가 영토 문제를 두고 갈등이 큰 이웃 바레인을 씹을 때도 술이 자원인 나라라 하고, 알 자지라까지도 바레인에 와서 술마시는 사우디 왕족들이나 부유층을 몰카로 찍으면서 대놓고 "뭐? 이래놓고 자국에서 와하비즘이라고 으스대냐?"라고 비웃듯이 비난하는 통에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난리가 났던 적까지 있다. 더불어 사우디아라비아 서민들도 몰래 온갖 과일을 발효시켜 만드는 토종술을 대대로 전수하며 밀주를 만들어 몰래 실컷 즐긴다. 하지만 이런 경우까지 술 마신다고 대대적으로 경찰이 집을 뒤엎을 정도는 아니라고 한다. 다만, 외국인 선교사들을 잡고자 할 때 종종 술이 있다는 이유로 무트와를 동원하여 억지 명분을 만든다고 한다.

또한 이라크시리아, 레바논처럼 기독교인들이랑 여러 종교 가진 사람들이 섞여 사는 경우에는, 비무슬림에 한해서 주류 판매와 음주가 가능하다. 물론 이라크와 시리아는 이라크 전쟁, 시리아 내전 이후 현재 이슬람 원리주의가 득세하는 판에 예전 같지는 않지만...동남아시아의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120]와 말레이시아의 경우 비르 빈땅[121]과 앵커[122]와 같은 자국산 맥주 브랜드가 큼직하게 자리잡고 있고 내외국인 가릴 것 없이 술을 마시는데 별다른 제제가 없다.[123] 유럽 대륙에서 유이한 이슬람 국가인 보스니아와 알바니아 역시 코사차나 티라나, 사라예브스코 같은 자국산 맥주들을 제조, 판매하고 있으며, 또 다른 이슬람 국가인 터키나 요르단, 튀니지, 알제리, 이집트, 모로코에서도 자국내에서 맥주나 포도주 등을 만들어 식당이나 마트 등지에서 판매하고 있는데 튀니지나 알제리, 모로코에서는 아예 양조용 포도와 포도주를 재배, 생산하는 포도 농장들도 있으며 아예 포도주뿐만 아니라 셀티아나 탄구, 스페샬레 플레그, 카사블랑카 같은 자국산 맥주도 있다. 이집트의 경우도 사카라나 룩소르, 스텔라 같은 자국산 맥주가 있고, 요르단은 페트라와 필라델피아, 카라케일이라는 자국산 라거 맥주와 에일 맥주를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네덜란드의 암스텔 맥주도 면허생산하고 있다. 터키같은 경우 에페스와 마르마라, 보몬티가 꽤 유명한 맥주다. 그리고 터키인들은 고유술인 라크를 즐겨 마시기도 하고 각 지방 고유술도 은근히 자주 마시는 전통이 이어져오며 술에 대해선 꽤나 개방적인 곳이다. 터키 사진작가인 아리프 아쉬츠가 한국에서 1년 동안 지내면서 먹어본 것 가운데 가장 터키인들에게 입맛에 맞는 걸로 추천하던 게 바로 복분자술이었단다. 무슬림인 자신이 한국에 와서 소주나 막걸리, 청주, 복분자 등 다양하게 마시는 걸 보고 한국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는데 터키에선 취하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한 이렇게 마시는 자체를 금기시하지 않는다고 썼다.[124]

이란호메이니도 각 지방술을 취하지 않게 몰래 마시는 건 봐주도록 지시해서 서북부 산지로 가면 온갖 산열매로 발효시켜 만든 고유 술제조법을 대를 이어 전수하고 있으며 유목민들도 양이나 염소젖을 발효시킨 술을 자주 마신다.

외국인에게 판매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술이 떡이 되어서 냄새 풍기며 돌아다니면 종교 경찰이 경찰서로 끌고 가니 조심할 것. 종교경찰 : 아싸 실적 ㅋ 사실 국내인들도 "전혀" 안 마시지는 않는다. 어차피 거기도 다 사람 사는 동네다. 가볍게 몇 잔을 마시는 정도를 문제삼지는 않으며 취한다고 해도 조용하게 집에서 취하여 잠을 자는 것까지 뭐라고 안한다. 그러나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종교적으로 잘못된 문제는 서스름없이 위아래 상관없이 지적하는 문화 때문에 본인이 술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접대를 받는 자리에 신자가 둘 이상이 있는 경우에는 서로 눈치를 보며 안 마시는 경우가 많다.

관습법적으로 술 마시는 것이 비교적 자유로운 나라들에서도 적어도 모스크 근처에 위치한 식당, 상점에서는 술을 취급하지 않는다. 터키의 경우 술을 마시려면 대형마트에 가서 사오거나 아니면 술집에서 마셔야 한다. 동네 슈퍼에서 팔기도 하지만 술 판매 허가를 받은 상점에서만 구입할 수 있고(터키어로 TEKEL BAYİİ라고 쓰여있거나 담배, 술 광고가 붙어있다), 이때는 주위사람들의 시선 때문인지 항상 검은 봉지에 담아준다. 하지만 모스크 뒤에 위치한 식당에서 맥주(Efes라는 유명 터키 맥주 브랜드)가 있냐고 묻자, 조용히 들어오라 하더니 머그잔에 맥주를 몰래 담아주기도 한다.

술을 강력하게 금지한다는 사우디아라비아조차도 잘 사는 부자들과 상류층들이 술판매, 음주를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다른 이웃 아랍 나라들인 바레인이나 이집트, 요르단으로 여행 가서 신나게 맥주, 와인 등 술들 마시고 술 깬 다음에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돈없는 사우디아라비아 젊은이들은 술 대신 향수를 마시다가 죽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

돈놀이를 금하는 이슬람 교리 특성상 공식적으로는 채무에 대한 이자를 금지하고 있으나, 현대에는 여러가지 편법을 통해 사실상 금융거래 상 이자가 성립한다.[125] 가장 흔한 방식으로는 만기일을 엄청 짧게 설정해두고 '이자'가 아닌 '벌금' 명목으로 돈을 받는 것이며, 예금에 대한 이자를 받는 대신 투자라는 형식으로 돈을 맡기고 이익을 배당받기도 한다. 어쨌든 교리를 지키면서도 현대적 금융업무를 해결하려는 이슬람 금융은 상당히 흥미로운 모델이며, 21세기 들어서는 해외 투자가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8. 이슬람의 출산율[편집]

이슬람에서의 여성은 남편에게 성적인 만족을 주는 동시에 자녀를 많이 낳을 것을 권장한다. 무함마드는 자손을 번성하게 하여 이슬람의 세력을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슬림 인구가 많은 나라들은 출산률이 높아서 인구감소를 겪는 일이 없다시피한 건 사실이다. 되려 인구가 넘쳐나서 문제인 나라가 태반이다. 전근대에는 높은 출산율에도 인구가 너무 적어서 난리인 곳이었는데 이제는 상황이 정 반대다. 이슬람 아랍 동맹 최다 인구 나라인 이집트만 봐도 20세기초 1,500만 수준이던 인구가 지금은 8,000만 이상으로 늘어나 있다. 이처럼 이슬람권 나라 상당수가 100년 사이에 인구가 3~6배나 늘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유럽 난민 사태와 관련되어 나온 용어가 유라비아.

그 원인으로는 오일머니로 때운 인프라 확충과, 의학의 발전과 더불어 영아사망률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는 점도 있지만 이슬람 국가와 국민들이 하나같이 보수적이라서 피임이나 낙태같은 것을 결사적으로 거부하는 이유도 크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모든 국가들이 그런 게 아니고 탈레반 시절의 아프가니스탄 같은 극단적인 국가가 아닌 이상 낙태를 어느 정도 금기시하는 성향은 있으나 꾸란과 하디스에 구체적으로 명시된 건 아니라서 피임은 용인하는 경우가 다반수다... 그런데 정작 이집트에선 콘돔을 그냥 나눠주면서까지 인구 증가율을 줄이고자 했으나, 나눠주던 공무원들이 사람들에게 돌팔매질까지 당해서 아예 저런 계획을 없애버렸을 정도다.

이미 천주교와 더불어 이슬람 순니파가 12억 인구를 넘어 세계 2위의 종파가 된지 오래이며 빠른 인구증가률을 가진 인도 힌두교(약 8억에서 9억 추정)와 더불어 10억 신도가 넘는 거대 3대 종교 종파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인구 증가세가 떨어지고 있는 추세인데 알바니아[126], 이란[127]처럼 출산율이 1명대로 떨어진 국가도 등장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알제리, 우즈베키스탄, 터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모로코, 튀니지 등의 주요 이슬람 국가에서도 출산율이 2명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알제리는 최근 출산율이 급증하면서 3명대가 되었다. 이슬람 국가들의 출산율이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는것도 편견이다.

그리고 높은 출산국으로 손꼽히던 이라크, 예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은 감소세다.[128]

그러니까 무슬림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쑴풍쑴풍 낳아제끼기만 하는 것은 이제는 아니라는 의미다. 그러나 그 동안의 인구증가세가 엄청났었던데다가 출산율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해도 아직까지는 인구 증가세는 여전하다.

애석하게도 위의 인구 강점은, 터키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처럼 공업화에 어느 정도 성공한 나라에 한정한다. 그외 상당수 무슬림 국가의 국민성과 삶의 질은 여전히 중세시대 수준을 벗어나고 있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정치는 너무 썩어 공화정인 국가들도 부정부패와 독재가 일상다반사이며, 왕정인 국가는 (특히 걸프 연안국) 말할 필요도 없이 막장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로 인해 인구 많아봐야 국가에 큰 도움도 안되고 그저 가난의 대물림만 지속되는 현실이다. 물론 이점은 다른 제3세계 나라들 역시 공유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이슬람 국가들은 별다른 산업이 없다보니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단적인 예로 석유 펑펑 나와 돈이 넘쳐나는 사우디는 그 부를 소수의 왕족들이 점유하여 향락과 사치로 일관하며, 정권 유지 차원을 위해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금전 지원을 국민들에게 할 뿐이며, 국민들은 그돈 받고 그냥 하루하루 처묵처묵하는 돼지로 살며 만족하고 있다. 그리고 사우디의 석유 시추와 정재를 위해 짓는 모든 공사 현장 노동자는 외노자들로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인 노동자들보다 더 높은 급여를 약속해도 사우디 현지인들이 일들을 안한다. 결국 인구 많아봐야 잉여에 불과할 뿐(...). 2013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이걸 바꾸고자 대대적인 외노자 추방을 선언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 노동자들이 아예 폭동까지 일으켜 정부군이 출동하여 총살도 저지를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이는 사우디뿐만 아니라 석유가 나는 다른 이슬람 국가들도 똑같은 문제다.[129]

하지만 '이슬람=무조건 출산율이 높다'는 주장은 아직까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역시 본격적인 경제발전을 이루는 70년대까지는 출산율이 매우 높은 편이었고,[130] 심지어는 당시에도 선진국으로 분류됐던 일본이나 유럽 국가 역시 대체출산율 2배를 웃도는 출산율을 가지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소득 수준이 일정량 이상 도달하면 출산율이 감소한다. 그러나 아직 이슬람 국가들 중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선진국의 문턱에 도달했다고 할 만한 나라는 없다. 대부분의 중동 부국들은 원자재의 수출로만 경제가 돌아가기 때문에 부가 심하게 편중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 충실한 경제 발전 과정을 밟고 있는 터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들이 소득이 선진국에 근접한다면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이 세 국가들 중에서도 여전히 이슬람을 국교로 선택하고 있고 (중동보다야 덜하지만) 아직 종교가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편인 말레이시아의 출산율 추이가 중요할 것이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터키의 출산율은 대체적으로 2명대 초 정도라 프랑스, 미국의 출산율과는 그리 큰 차이는 나지 않는 편이긴 한데, 터키와 인도네시아의 경우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계속 2.1~3명대를 왔다갔다 하며 유럽 국가들과 같은 급격한 출산율 저하가 일어나지 않았고, 말레이시아의 경우 겉으로는 출산율이 2.1명이라지만 무슬림인 말레이인과 비무슬림인 화교, 인도인의 출산율 격차가 엄청나다.[131]

9. 이슬람=아랍=중동?[편집]

가장 흔하게 오해하는 부분. 흔히 이슬람 문화와 아랍문화, 중동문화권을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큰 잘못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흔히 아랍, 중동 국가들을 가리킬 때 이슬람권이라고 하지만 정반대로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 중남미 등을 기독교권이라고는 하지 않는데, 유독 이슬람을 믿는 국가들에게는 중동, 동남아시아 등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렇게 쓰는 경우가 많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Arabic_speaking_world.svg.png

아랍어를 쓰는 국가들(녹색은 유일한 공용어, 짙은 파란색은 주류 공용어, 옅은 파란색은 비주류 공용어). 이중에서도 아랍 민족이 대다수인 국가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흔히 무슬림이라고 여기는 아랍인들의 총 인구는 3억인데 비해 전체 무슬림 인구는 16억이나 된다. 즉, "이슬람 = 아랍인들이나 믿는 종교"라는 고정관념은 "기독교 = 서양사람들이나 믿는 종교"라는 인식만큼이나 잘못된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서구뿐만 아니라 제3세계 지역에도 널리 퍼져 있고 비서구 지역의 신자들이 더 많은 것처럼 이슬람의 경우에도 오히려 비아랍권 신자들의 수가 더 많다. 터키(튀르크계), 이란(페르시아인) 사람들은 중동 지역은 맞지만 아랍인들이 아니고 아프리카의 흑인들이나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인들, 가장 인구가 많은 인도네시아인 무슬림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의 인도인 역시 아랍인이 아니다. 아프리카 흑인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국가들 중에서도 무슬림이 다수인 나라가 많다.[132]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알바니아는 유럽의 발칸 반도 지역이다.

또 이슬람과 중동 문명권을 등치시키는 것도 잘못된 인식인데 이슬람이 주류인 국가들 중 최다 신자 국가는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인도네시아이다. 이슬람은 민족종교가 아니라 전세계에 분포한 보편종교이므로 무슬림을 보고 무조건 아랍인, 중동 사람일 것이라 판단하는 것은 금물. 게다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알바니아, 코소보 등 유럽 국가이면서도 무슬림들이 다수인 나라도 있다. 그 외 코카서스 3국(대부분이 정교권 지역)중 하나인 아제르바이잔은 무슬림(시아파)들이 다수다. 또 다른 유럽의 여러 국가들 중에서도 적은 비율이긴 하지만 20세기 들어 이슬람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생겨난 것이 아닌 그 전 시대에 이슬람으로 개종해서 생겨난 무슬림들도 있다. 이들은 20세기 이후 증가한 이슬람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무슬림들이 많아진 프랑스 같은 나라와 다르게 원래부터 역사적으로 이슬람 국가와의 접촉으로 이슬람이 꽤 오랜 전통 종교로 자리잡고 있었다.

반대로 아랍인이 다 무슬림인 것도 아닌데, 보통 아랍인 중에 기독교 신자가 3천만명 가량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주로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에 집중되어 있다) 콥트 교회, 시리아 정교회, 아시리아 동방교회, 마론파, 칼데아 가톨릭 등의 문서 참고. 이들은 아랍어로 예배를 드리고 하느님을 알라로 부르며 기도한다.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는 이단시되었던 비 칼케돈 계열 교회들도 아랍국가들에서 볼 수 있다. 가장 교세가 큰 콥트 교회의 경우 이집트 인구의 10퍼센트 정도를 차지한다. 1억에 가까운 이집트 인구를 생각하면 얼마나 큰 규모인지 알 수 있다. 아랍 세계의 그리스도교도 수를 모두 합하면 대략 3천만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레바논은 아랍국가인데도 무려 인구의 40% 가량이 기독교를 믿으며, 대통령과 참모총장은 마론파 기독교도, 국회부의장과 부총리는 정교회 교도에게 주어진다. 의회도 절반은 기독교도 의원들이 차지. 시리아도 군인의 상당 수가 기독교도이며, 내전 이전에는 인구 2200만 중 400만 이상이 기독교도였다. 아랍계 기독교인 문서 참고.

아래 표는 2011년 1월 기준 무슬림이 가장 많은 상위 10개 국가의 목록이다.

국명

신자수

신자 비율

인도네시아

204,847,000

88.1

파키스탄

178,097,000

96.4

인도

177,286,000

14.6

방글라데시

148,607,000

90.4

이집트

80,024,000

94.7

나이지리아

75,728,000

47.9

이란

74,819,000

99.6

터키

74,660,000

98.6

알제리

34,780,000

98.2

모로코

32,381,000

99.9


보다시피 1억을 넘는 1-4위 국가를 포함해서 상위 10개국 중 7개가 비아랍 국가이며 비중동 국가도 중동의 정의에 따라 달라지지만 4~7개나 된다.

9.1. 원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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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www.eurasianet.org/4_24.jpg

사우디 무슬림

터키 무슬림

파일:external/news.xinhuanet.com/133694966_14125762164141n.jpg

파일:pakistan-muslim-league.jpg

이란 무슬림

파키스탄 무슬림


서구, 동아시아의 주류매체들이 무슬림을 보도할 때 전 세계가 아닌 터키, 팔레스타인,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파키스탄, 이집트, 예멘 같은 흑발흑안의 코카소이드 인종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을 주로 취재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공통적으로 서구권이 추진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과 연관된 곳이고 할리우드가 퍼트리고 있는 전형적인 아랍 무슬림의 외양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미국, 유럽, 동아시아인들은 터키인, 아랍인, 이란인, 파키스탄인들이 금발벽안의 유럽인들에 비해 공통적으로 흑발흑안이고 짙은 피부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똑같은 민족으로 착각할 정도이다.

그런데 무슬림들은 서구권 언론 매스컴에서도 자주 나오는 이라크나 시리아, 사우디, 이집트 같은 아랍권 주요 국가들처럼 흑발흑안의 코카소이드 인종 계열이 주류인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요르단, 오만, 쿠웨이트, 아제르바이잔 같은 국가들도 그렇고 금발벽안이 있는 보스니아알바니아, 황인종인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흑인종인 아프리카 니제르, 수단, 차드, 말리, 세네갈,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지부티 같은 국가들에도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들은 주류언론에 잘 보도가 안되고 있고 다큐멘터리 등지에서만 주로 알리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이에 반해 기독교는 발상지가 인종이 흑발흑안의 코카소이드인 팔레스타인이었지만 인종이 각각 전혀 다른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필리핀, 한국에서 주로 믿기 때문에 '무슬림=아랍인'이라는 편견과 달리 '기독교인=히브리인'이라는 편견이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시작부터 본진이 콩가루였으니

아랍=무슬림=흑발흑안라는 편견때문에 2009년 한국에서 인도 출신인 보노짓 후세인 교수가 아랍인으로 매도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첫 기소 사례 만든 보노짓 후세인 교수, 아랍이 아닌 인도 출신이 많은 시크교인들이 무슬림으로 오인받아 공격받고 있다. 시크교도 겉모습 무슬림과 비슷… 테러 표적된듯

게다가 남유럽과 남유럽에 속하는 스페인, 포르투갈이 식민지배한 중남미는 흑발흑안의 코카소이드가 많기 때문에 중남미계 미국인들도 아랍인으로 오해받아 한국인에게 아랍어 인사를 듣는 해프닝이 벌어진 바가 있다. 관련 기사 영국에서 브라질 청년이 테러리스트로 오인받아 피살된 사건까지 있었다. 관련 블로그, 관련 위키 문서, 관련 기사

이런 편견이 인도 영화 내 이름은 칸에 나오는 데 영화 중반에 911 테러 사건 이후 시크교도들이 무슬림으로 오해받아 테러당하고 힌두교인인 칸의 아내와 모텔 주인이 테러와 무시를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9.2. 국가별 무슬림 비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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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기독교와 함께 대륙을 가리지 않고 전세계에 널리 퍼진 대표적인 세계종교다.[133] 세계의 무슬림 비율은 다음과 같다. 단, 여기서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무슬림 비율과 이슬람 근본주의가 반드시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일례로 모로코나 터키,타지키스탄 같은 나라들은 무슬림의 비율이 90%를 상회하지만 세속주의 성향이 상당히 강한 나라들이며, 말레이시아는 무슬림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60%대이지만 오히려 이런 나라들보다 근본주의가 훨씬 강하다.

10. 한국과 이슬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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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판 알 이드리시 지도에 표기된 신라. 과거 이슬람권 지도의 특성상 남쪽이 위로 간다. 즉 흔히 아는 북쪽이 위로 가는 세계지도와 180도 뒤집혔다고 보면 된다. 신라가 섬으로 표현된 것은 무슬림들은 남쪽 바다로 항해해 경주에 접근했고 한반도 위쪽으로는 갈 일이 없어서인 듯. 수백년 뒤 유럽인들 지도에서도 한반도를 섬으로 오해한 지도가 나온다.

이슬람은 오래 전부터 '회교' 혹은 '회회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알려졌다. 정수일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이미 9세기~10세기 아랍 세계 지도에서 섬으로 잘못 그려져있긴 하지만 신라가 그려져 있고, 아랍 학자인 이븐 쿠르다드니가 신라에 와서 머물고 신라에 대한 간략한 기록을 남긴 바 있다. 중세 이슬람 세계의 저명한 지리학자겸 역사가 알마수디는 그의 저서 황금초원과 보석광에서 "신라이 넘쳐나서 개줄이나 원숭이줄도 금으로 만들며, 사람들은 무병장수한다."며 지상 낙원이라는 식으로 나와 있다.[147] 이라크 출신 사람들이 특히 많이 신라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흥덕왕릉이나 원성왕릉의 서역인 조각이나 처용이 서남아시아 출신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고려 전기에는 무슬림 상인들[148]이 3차례 개경을 방문하며 교역을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고려사를 보면, 현종 15년(1024년) 대식국(아랍)에서 온 상인 수백여 명이 개경에 머물러 교역을 했다는 기록 등이 있다.

원나라의 침략을 받고 고려원나라에 점령이 된 시기부터는 한국과 이슬람 국가 사이의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당시 몽골인들은 자기들만으로 나라 안팎을 관리하기가 힘든데, 중국인을 쓰자니 믿지를 못하겠고 말도 안 듣고 해서 쓰려하기보다는 없애버리려고 했고, 반대로 많이 싸우면서 그 위력을 실감하게 되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위구르인들을 행정 관료로 적극 활용했다.

회회인(回回人)으로 통칭되던 위구르인 중에는 기독교 신자나 불교 신자, 마니교 신자도 적지 않았지만 많은 수가 무슬림이였으며, 몽골인 다루가치의 수행원으로 많은 위구르 무슬림들이 우리나라에 정착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고려 말에 귀화하여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된 장순룡(張舜龍)을 들 수 있으며, 학계에서는 그가 지금의 신장 위구르 지방에 해당하는 회회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무슬림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외에 색목인으로 규정해서 여러 무슬림들을 자기들보다 바로 다음가는 인종들로 구분하고 여러 고위직에 앉히면서 자연스럽게 고려와도 주기적인 접촉이 이뤄졌다. 고려가요 쌍화점에서는 이슬권의 영향을 받은 만두상점과 회회아비의 묘사가 등장한다. 회회교(回回敎, 즉 이슬람) 자치구역도 있어 개성 한복판에 이슬람 성원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초기까지 이들은 한반도에 남아 살았으며, 조선왕조실록에도 "회교인들이 세종대왕의 생신 잔치나 새해를 맞이하는 궁중 하례 의식에도 초청을 받아 정례적으로 참석하여 쿠란 낭송이나 기도를 통해 국가의 안녕 및 임금의 만수무강을 축원했으니 이를 '회회송축'이라 했으며, 이슬람풍 노래와 음악을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회회조례'라 불렀는데, 이걸 두고 유학자들이 부정적으로 여겨서 세종 이후에 없어졌다고 한다.[149][150] 태종~세종대에 회교인의 행사를 폐지하는 등의 조치 이후로 기록상에서 한반도의 중세 이슬람 커뮤니티는 사라진다.

근대 최초 한국인 무슬림은 샤밀 박(1912~2005)이라는 사람이다. 일제강점기 때, 터키인 아브뒬하크 누만(Abdülhak Numan)이 하던 알타이 양복점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아가다 누만 사장에게 신용을 얻고 양복 재단 기술을 배운 사람으로 한국 이름은 박재성. 사장이 자식 없이 일찍 죽은 바람에 양복점을 물려받고 과부가 된 사장의 아내와 재혼하면서 이슬람으로 개종해 샤밀이란 이름을 얻었다.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에 터키로 가서 귀화해서 살다가 2002 한일 월드컵 관련 당시 터키 방송에서 나온 바 있다.

이슬람이 조금이나마 한국에 알려진 것은 한국전쟁 때다. 당시 토이기군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터키군에서 고아원을 맡으면서 아이들에게 이슬람을 가르친 적이 있었으며, 무슬림인 김진규나 신백현 같은 사람이 나오면서 1955년 제6터키 여단 소속이던 이맘 압뒬가푸르 카라이스마일오울루(Abdülgafur karaismailoğlu) 대위가 한국인을 대상으로 선교를 시작하였다. 1955년 9월 15일 서울 농협대학 강당에서 70여명의 한국인 무슬림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이슬람 협회'가 결성됐고 회장에 김진규, 부회장 겸 사무국장에 윤두영이 선출되었다.

1956년 4월에는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하는 불우 청소년을 대상으로 '청진학원'을 열어 무료로 중등교육과 이슬람 교리 교육을 실시하여 이 학생들 중 일부가 이슬람을 수용하였다. 1956년 10월 압뒬가푸르에 이어 군(軍) 이맘 쥐베이르 코치(Zübeyir Koç) 대위가 부임 이후에도 이슬람을 알리는 활동이 계속되었다. 터키군 지원으로 이문동에 막사 형태의 작은 마스지드가 만들어졌는데, 첨탑도 함께 세웠다. 그 당시 한국인 무슬림은 208명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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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석유전쟁이라든지 여러 자원 문제로 이슬람 성원을 크게 짓자는 의견이 나와서 1975년 본격적으로 이태원동서울중앙성원이 세워지게 되는데, 땅은 한국 정부가 그냥 내주었다. 당시 아랍권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꽤 안 좋았는데, 당시 아랍권이 소련을 지지하던 이유도 있고, 한국이 아랍권이 싫어하는 미국이나 터키, 이스라엘과 우방관계를 맺었던 이유도 있다. 이런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당시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 문제에 대한 아랍권 지지 성명, 아랍권 국가 9개국과의 수교 등 여러 노력을 기울였고 한국이슬람중앙성원 부지 제공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 후 중동 아랍권 국가들에 한국인들이 파견되어 성실하게 일하고, 특히 이란의 경우 아랍국가는 아니긴 했지만 어쨌든 중동 국가로서 여러 교류가 늘어났고, 파견된 한국 노동자들이 전쟁통에 피해를 입으면서까지 여러 작업을 수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대 아랍 관계 개선에 대한 노력은 결국 88 서울 올림픽 때 아랍권 국가들이 일본의 나고야가 아닌 한국의 서울을 지지했던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 건설비는 터키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나라들이 지원했다.

알다시피 한국중동지역에 에너지 의존도가 높다. 원유 및 천연가스 같은 에너지원 대부분을 이슬람 국가들에게 의존하여 한동안 이스라엘과 국교를 끊기도 했으며, 2012년에도 중동에 대한 석유의존도가 86%를 넘는다. 원유 중동의존도 사상 최고 (문화) 해외건설 수주에서도 이슬람권인 중동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70%에 이른다. 중동 무너지니 해외 수주 '최악' (조선) 에너지 수급이 불안하면 경제에 차질이 생기니 신경을 안쓸 수 없다.[151]

2011년 논란이 된 수쿠크법과 관련해 이슬람에 대한 한국의 거부감이 알려질까봐 한국 기업들은 노심초사하였다.

한국에서 무슬림을 찾는 것은 외국인이 아니면 어려운 편이다. 15만 명은 된다고 하는데, 이는 외국인도 포함한 수치이며 사실 한국에 살고 있는 무슬림 중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또한 이 수치는 신뢰하기가 힘든 수치인데,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나라에서 이민을 온 이민자들의 수를 합쳐봐야 5-6만 명 내외로 잡히고 있어서 15만 명이라는 수치 자체가 자료가 있지 않으며 신뢰성이 없다. 이게 쿠란의 한국 판매량인지, 한국에 임시로 들렀다 간 무슬림의 숫자인지 뭔지도 아직 알려진 바 없다.

어느 정도 추정할 근거가 있기는 한다. 외국인이 아닌 한국에서 태어난 이른바 "토착 무슬림" 의 경우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종교를 "기타" 로 대답한 16만 3,000명에 포함됐을 것이다. 그러나 "기타" 항목에는 한국의 토착, 민족종교까지 포함됐기 때문에 훨씬 적은 규모일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관계자들은 그 수를 35,000여명으로 추산하는데, 교인 명부를 따로 관리하지 않으므로 정확한 근거는 없다고 한다. 기사

또한 한국인 무슬림의 증언에 따르면, 외국인을 제외한 순수 한국인 무슬림 중에서 기록상 통계 외에 이슬람 교리를 실천하면서 사는 신실한 한국인 무슬림들의 숫자는 매우 적다. 알 자지라 방송에서 수년 전 한국에 사는 무슬림들을 취재한 다큐멘터리가 있었는데, 여기서 한국 이슬람 관계자가 매주 금요일(주무아) 정기예배에 참여하는 한국인 신자는 500명도 채 안될 거라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인터뷰가 등장한다. 정기예배에 참여하는 신자가 500명도 채 안된다면 매일 5번 기도나 할랄 푸드 등의 율법까지 실천하며 사는 한국인 무슬림들의 숫자는 더욱 적을 것이라 추론이 가능하다. 커뮤니티 등에서의 무슬림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애초에 한국 자체가 이슬람적 생활방식에 친화적인 문화도 아니기 때문에 외국인과의 결혼 등의 사유로 형식적 이슬람 개종을 한 한국인들도 할랄 푸드 등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국내 거주 외국인 무슬림은 물론 체류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종교를 조사하지는 않으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슬람의 경우 특정 국가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범(凡)이슬람권에서 온 국적을 기준으로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 조희선(2010)의 논문에 따르면 2009년 10월 기준 한국 체류 무슬림은 79,388명으로 동남아시아계 무슬림이 37.4%로 제일 많고 중앙아시아계(25.7%), 남아시아계(26.9%), 나머지 국가들은 10% 미만이다. 지리적, 문화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출신의 무슬림들이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이란이나 터키, 아랍국가 출신의 무슬림보다 국내에 더 많이 들어온 당연한 결과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 무슬림은 대부분 한국정부에서 산업연수생제도를 이들 권역에 있는 나라들과 체결했던 것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아시아계 무슬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보인다.[152]

실제로 부산시에는 1986년에 무슬림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정규 학교로써는 대한민국 최초의 이슬람 미션스쿨인 알리고등학교가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의 지원을 받아서 부산진구 당감동에 일반계 고등학교 형태로 설립된 적이 있었다.# 교명은 이슬람의 제4대 정통 칼리파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에서 따왔다고... 하지만 부산시일반계 고등학교 평준화 지역이라 일반계 고등학교 선택권이 없는데다가 이슬람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미션스쿨을 설립하여 운영한다는 논란[153]으로 인하여 결국 2년도 채 안돼서 미완성 상태의 알리고등학교를 종교색이 없는 평범한 사학 재단으로 사실상 강제로 넘겨버리면서 흑역사가 되어버렸다. 이후에는 교명까지도 평범한 교명으로 변경하여 종교색이 없는 평범한 사립 고등학교로 남게 되면서 한국에서 이슬람 미션스쿨은 2년만에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고, 그 이후로 한국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이슬람 미션스쿨이 신설된 사례는 없다.[154]

더불어 미국의 영향이 크고 한국에 신도가 없어서인지 이슬람을 테러 종교로 인식하는 것도 적지 않다. 게다가 외신 보도들도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하는 터라 더욱 좋게 보지 않는다. 먼나라 이웃나라 같은 책자에서도 "한 손에는 쿠란, 한 손에는 칼"이라는 이슬람에 대한 서구의 대표적인 악의적 묘사 표현이 그대로 나왔다(초기판). 학습서에서도 이런 걸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그나마 요즘에는 그런 묘사를 찾아볼 수 없다.

인천광역시에 이슬람 박물관이 세워졌다가 2년도 안 돼 갑자기 문을 닫았던 일[155]이 벌어진 바 있다. 그 밖에 중동 문화원도 문을 열었다가 반발로 문을 닫았더니만, 이번에는 아랍권의 반발과 기업들의 반한 감정 문제에 대한 반발까지 연루되자 부랴부랴 재개방하는 추태도 벌어진 바 있다. 중동 문화원 해프닝

한국에 처음으로 이슬람 중학교가 세워질 당시 포털에선 욕설들이 가득했는데, 당시 이 중학교 개교 행사에 참가한 세뇰 귀네슈 감독을 비난하던 일부 무개념도 보였다. 그래서 일부 귀네슈 팬들은 이런 비난에 FC 서울부터 테러리스트 감독을 해임하라고 건의하고, 테러 자금을 지원하는 한국도 아랍산 석유를 일절 불매하고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 비싸게 주고 사오자고 비꼬기도 했다.

이슬람을 바라보는 국내 보수적 기독교 단체의 시각은 매우 영 좋지 않다. 한국장로교총연합회에는 '이슬람대책위원회'라는 단체가 있으며 여기서 이슬람선교훈련원이란 단체도 만들었다.

한국의 이슬람 중에서 한국인 이맘도 존재한다. 이주화 이맘과 이행래 원로 이맘이 대표적.

10.1. '할랄 단지' 사건[편집]

전북 익산시가 수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50만평 단위의 할랄 단지가 건설되고 할랄 인증을 위해 이맘 100만 명이 들어올 계획이며, 정착하는 이맘들을 위해 개인당 수백만원의 정착 지원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또 그들을 위한 이슬람 학교 및 병원 등 이슬람 시설들이 설립 준비에 있으며 전북익산은 이슬람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시작으로 무슬림들이 들어와 땅과 여자를 빼앗아 밭에 씨를 뿌려 혼혈을 조직적으로 일삼아 순수한 한민족의 피가 더럽혀질 것이다.

...는 괴악한 루머가 2016년 1~2월, 인터넷과 SNS 등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으며, 이 때문에 익산시와 정부가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사실 이는 명백한 선동으로, 한국의 식품 수출을 늘리기 위한 종합연구시설인 국가식품클러스터가 익산에 건설되는 건데, 여기에 이슬람권에 대한 수출을 위한 할랄단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 그 외엔 이슬람과 아무 관계가 없으며 이에 대해 정부에서 해명했고 JTBC도 이에 대해 사실 확인을 위한 기사를 내었다.[156]

10.2. 문화 갈등[편집]

가족 제도 문제에서는 중혼, 사촌 간 근친혼 같은 문제로 인해 서구 사회 및 비이슬람 문화권의 상당수 사회들,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와 갈등을 빚는다. 2007년에는 사촌과 결혼한 이슬람도 임란 알리가 한국 국적을 얻었으나 한국에서는 8촌내 결혼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아내를 한국에 초청할 수 없다는 것에 항의하고 언론 보도를 탄 사건이 있었다. 사촌과 결혼… 귀화인 혼인무효 위기 (한겨레)

2011년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파키스탄 출신의 무함마드 아심(36)은 한국인 신미선(29) 씨와 이슬람 식으로 결혼하였다. 하지만 무함마드 아심은 파키스탄에 이미 아내가 있기 때문에 혼인신고를 할 수 없었다. 이슬람 율법에서는 4명까지 부인을 두는 것을 허락하지만 한국 민법은 중혼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한국인 무슬림 (한겨레) 그러나 알고 보니 무함마드 아심은 파키스탄 탈레반 출신의 중범죄 테러범이었다.

한겨레 인터뷰 당시만 해도 선량한 이민자로 보였던 남편의 행보는 철저한 페이크였고, 첫째 아내를 구타하고 폭력과 폭언을 일삼았으며, 비무슬림들은 짐승과 같으니 죽여도 된다. 내가 널 무슬림으로 만든 걸 감사히 여겨라 따위의 등의 망언을 쏟아낼 뿐 아니라 신미선씨를 강제로 시켜 온갖 범죄와 사기행각을 치고, 신미선씨에게도 온갖 변태적인 부부간 성행위를 강요했으며 여동생이랑 언니까지 강간하여 임신시켰다고 한다. 파키스탄에서 이슬람계 인사들에게 도움을 구해보았으나 "무슬림은 남의 가정사에는 간섭 안한다, 그냥 참아라" 수준의 병크만 계속할 뿐이었고 이후 남편을 따라 호주로 간 신미선씨는 죽음의 위협까지 무릅쓰고, 호주 여성난민의 집에 피신했다고 한다. 웃긴 건 남편도 선량한 이민자를 가장하고 호주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는 것. ##[157]하지만 이글의 신빙성이 없다는 기사 호주 영사관에 확인하였는데 관련 사항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원글이 올라온 다음카페의 작성자를 확인하면 신미선씨 본인이 맞는 듯도 하니 확인이 필요하다.[158]

한편 과격한 무슬림의 결혼에서 피해 받은 한국인 여성들의 문제가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 심지어 한국 대사관에서는 결혼 사기에 대한 위험성 경고 글을 공지에 올리기까지 했다.

미국에서 유명해진 사건이 하나 있다. 다정한 매너를 가진 이란인 인텔리 무슬림 의사와 결혼한 미국 여성이 남편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이란으로 돌아갔는데 귀국하자마자 남편은 폭력적인 이슬람 남성으로 사람이 돌변해서 아이들(특히 딸)을 이슬람 방식으로 세뇌교육을 하려 했다. 미국인 아내가 이에 항의하자 "그럼 혼자 떠나고 아이들은 두고 가라"는 협박을 받았고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필사의 탈출을 해서(잡히면 남편 가족에게 명예살인 당하기 쉬우니까) 미국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이 이야기는 책으로 쓰여졌고 그것을 기반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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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솔로몬의 딸(Not Without My Daughter, 1991)이란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가 바로 그것인데 한국개봉당시 극장 간판에 호메이니를 괴물같이 그려서 주한 이란 대사관이 항의하는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덕분에 서울 상영관에서 이 간판이 내려지고 새로 고쳐 그리던 소동이 일어난 바 있다.

영화만 보면 "너무 인종차별적 내용이 아니냐??"고 할 수 있는데 원본 책을 읽어보면 더하다.[159] 영화를 보면 그래도 이란이나 무슬림에 대하여 조금은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예를 들면 남편이 미국에서 살면서 이란인, 무슬림이라고 차별당하여 미국 생활을 지겨워하던 묘사가 나오긴 한다. 하지만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남편이 악마같이 돌변하는 묘사가 나오고 비록 결말은 미국으로 가면서 미국이 더 좋은 나라라고 하는 결말이긴 하지만.

2002년 Without My Daughter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진 바 있는데 바로 이 영화에 나오는 실제 남편의 증언과 주장으로 솔로몬의 딸에 대하여 반론하는 영화이다. 더불어 제작은 미국이나 미국인이 아닌 핀란드에서 제작했으며 감독도 핀란드인(이란에서 협조를 하긴 했지만). 더군다나 감독은 이런 영화의 배경 때문에 관객들이 무조건 이슬람은 악마, 미국은 정의라고 오해하기 딱이라 사전에 이란에 가서 그 남편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 문제에서도 갈등이 있는데 같은 기획보도에서 2003년 한국에 귀화한 상기했듯이 탈레반이었던 무함마드 아심은 한국에 이슬람 종교 학교를 세우고 파키스탄에서 이슬람 학자까지 데려왔으나 교육청에서 대안학교 인가를 내주지 않아 2007년 말에 문을 닫아야 한다는 소식을 알렸다.[160]

무함마드 아심의 장남 알리는 2003년 당시 16살이었고 차남 모하스는 14살이었는데 늦게 입학한 탓에 각각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하지만 두 아이는 교과를 따라가지 못해서 매일 숙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쿠란 공부만 챙겼으며 집에 있는 책이라고는 쿠란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뉴스를 보고 많은 네티즌들은 현실적으로 현대 사회에서 아동을 방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라며 무함마드 아심을 비판했다. 학력 사회 운운하며 이들을 두둔하는 주장이 있으나, 애시당초 한국이든 해외든 세속화/근대화된 아주 가난한 후진국부터 중진국~선진국 중에 기초적인 교육과정도 이수하기를 거부하고 이슬람 쿠란 따위나 공부했을 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세계 세속 국가 어디서든 이슬람 교육만 받고 정작 현대 사회에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다면 결국 이들은 사회 하층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알아둘 점은 무함마드 아심의 고향인 파키스탄탈레반이 생겨난 곳이며 이슬람 국가들에게도 맛탱이 간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라는 비난을 받는 곳이기에 파키스탄과 서남아시아 이슬람인들의 이런 태도를 보고 모든 이슬람인이 이렇다고 섣불리 단정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터키인도네시아에서 중혼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그나마 다른 아랍 국가들과 가까운 터키 동부쪽에서 중혼이 종종 있지만 법적으로 금지되어 밤중에 서둘러 결혼하거나 아내가 아닌 친척이라고 정부기관 조사에서 거짓말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물론 걸리면 엄격하게 처벌받고 결혼도 무효화된다. 하지만... 터키는 이슬람 국가들 사이에서도 증오를 사고 있는 별종 국가이고 오히려 터키 정도의 정교 분리가 이루어지고 있는 이슬람 계열 국가야말로 극소수다. 이슬람 국가들 입장에서 터키는 굉장히 이질적인 국가라는 것. 애초에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 제국은 북만주와 몽골 고원에서 출발하여 지금의 지역으로 건너온 투르크 계통으로, 아랍인들과는 뿌리 자체가 다르다. 또한 다문화 다민족 국가였던 오스만은 평상시에는 피지배 민족들을 방임 수준으로 가만 놔뒀지만, 그들이 개기면 아주 아작을 내곤 했었다. 거기다 권력 구조에서도 오스만은 1순위는 투르크인을, 2순위는 개종한 유럽인[161]들을 썼고, 아랍인들은 등용하는 일이 드물었다. 종교에서도 관대하여 이슬람을 강요하지도 않았고 타종교를 탄압하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철저하게 단속하고 이슬람 교단들을 국가의 지원금을 받는 방식으로 국가가 종교를 통제했다. 그러다보니 이슬람 근본주의가 오스만 내에서는 만연하기 힘들었다. 인도네시아는 이슬람에서도 변방인지라 소위 세속주의 이슬람이 주류인 양 일반화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이슬람 국가의 근본주의 창궐 문제와 한없이 낙후된 여성 인권 문제는 하루이틀 이어진 문제도 아니고 중혼 등의 문제 또한 그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제사 문제의 경우 제사가 전통인지 아닌지는 해석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슬람에서 제사는 시르크로 취급된다. 한국 이슬람교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입장은 밝히지 않았지만, 이슬람에서 제사는 우상 숭배로 간주되어 부정적이다. 수피즘에선 제사가 허용된다고는 하지만.[162] 제사를 드리는 무슬림도 있지만 한국이 비이슬람사회니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될 수 있다면 드리지 말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슬람 vs 비이슬람 거주국가와 문화,종교관의 차이로 인한 법적갈등은 이미 전 세계구급으로 수십차례나 언급이 되어서 굳이 자세히 적을 필요도 없지만, 신원확인 등을 요구해야 하는 자리에서도 니캅 등을 벗지 않는다든가, 프랑스 등에서는 급식이 할랄 푸드 아니라고 단체로 급식 배식거부를 한다든가, 이슬람식 여성할례를 서구사회에서 인권탄압이라고 금지시키니 방학을 이용해 이슬람권 나라로 자녀를 데리고 가서 바득바득 할례시키고 온다든가, 종교적 명예살인 행위가 엄연히 불법인 나라에서 전혀 서슴치 않고 태연히 가족 살해를 저지름으로서 강력범죄사건을 뻔뻔하게 일으키는 등 거주국가내의 무슬림들과 비 무슬림들과의 마찰이 지역을 가리지 않고 대단히 심각하다. 예를 들어 시리아 난민을 대량으로 받아들인 유럽권, 특히 독일에서는 이 골수 무슬림들의 범죄로 인해서 독일 내에 한참 전부터 거주하던 무슬림 2~3세대나 유학생들이 안 좋은 취급을 받거나[163], 독일 내의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좋은 활동핑계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독일 정부가 골머리를 썩히고 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시리아에서 독일로 망명해 온 무슬림 가운데에서는 난민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즉 살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유럽 기독교는 신자 확보를 위해[164] 난민의 개종에 적극적이다. 유럽으로 피난 온 오리엔트 정교회 역시 신자 확보를 하려고 이슬람 국가에서 못하던 선교를[165] 유럽에 피난 온 난민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특히 유럽 기독교에서 개종한 난민 신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기사에서 "일부 개종은 종교적 이유에 의한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내가 세례를 줬던 사람들은 근 100% 난민 승인을 받았다"는 목사의 증언이나, "개종이 난민 승인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지만 이슬람을 버린 진짜 이유는 이슬람은 (배교자나 개종자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한 개종한 무슬림의 인터뷰는 어떻게 보면 섬뜩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씁쓸해지기도 하는 이야기. 때문에 기독교로 개종한 무슬림들은 시리아로부터 같이 망명해 와서 같은 난민캠프에 살며 이슬람을 버리지 않던 주민들로부터 "배신자" 취급을 받으며 살인, 강간범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 난민 개종자들에 대한 극단주의자들의 범죄는 유럽에 반이슬람, 반난민 정서를 가져와 결국엔 난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11. 창작물에서의 이슬람[편집]

테러리스트, 광신도. (보수[166] + 진보 언론의 지탄 및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범죄, 테러, 살해 사건, 이슬람 국가들과 사회의 악명높은 인권탄압과 성차별, 종교적인 불관용 등으로) 사우스 파크 같은 미국의 TV 방송에서는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인 면을 다루기도 했다.[167]

원래도 취급이 좋지 않았지만 9.11 테러나 2010년대 다에쉬의 대두 이후 전반적으로 무슬림이나 이슬람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더 강해졌는데 대부분의 테러리스트를 보면 아랍 출신으로 묘사된다. 한편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이슬람의 묘사에 굉장히 호전적으로 반응하며,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경우 정당한 비판일지라도 살해위협을 받기 때문[168] 창작물에서도 가급적이면 묘사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169] 그야말로 불가침 성역이 따로 없다. 물론 기독교를 비판한 경우 기독교계에서 아예 반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독 이슬람 신자들은 자기들이 조금이라도 풍자 및 비판을 받는 것을 아니꼬워하다 못해 절대 용납을 못하는 편협한 경향이 있다. 쉿 저분들을 놀라게 해선 안돼

대표적인 사례가 악마의 시 사건인데 1988년에 인도 출신의 작가인 살만 루시디가 악마의 시를 출간하자 이란의 호메이니는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다루었다는 이유로 작가를 포함해 악마의 시를 번역, 출판하는 것에 관여한 모든 사람을 죽여야 한다고 파트와(종교적 판결, 선언)를 내렸다. 그 뒤 일본에서 악마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한 사람이 피살된 사건이 일어났으며, 루시디 본인을 포함해 출판 및 번역에 관계된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이후 1998년에 이란 정부에서는 루시디에게 이제는 괜찮다는 듯한 요지의 외교적 발언을 했으나 파트와를 선언한 호메이니가 1989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선언자만 철회할 수 있다는 규정에 의해 파트와 자체는 풀리지 않은 상태다.

특히 서브컬처에서는 이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있어봐야 겨우 몇몇 캐릭터의 프로필에 '출신: 중동 어디어디 국가'라는 식으로 묘사하는 게 전부고,[170] 그나마도 그들의 무슬림으로서의 모습은 거의 묘사하지 않는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서도 이슬람계 캐릭터는 무함마드 압둘우루무드 압둘이 전부였고 그나마 무함마드 압둘도 이슬람적 느낌은 잘해야 캐릭터 디자인에서 중동적 외모가 조금 드러나거나 돼지고기를 기피하는 모습 정도가 전부. 스트리트 파이터 4하칸은 터키 출신이라면서 아예 대놓고 중동스럽게 생기지도 않았다.[171] 종교에 관해서 다루는 대표적인 라이트 노벨인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에서도 이슬람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작가인 카마치 카즈마와 전격문고 편집부는 이슬람에 대해 자료가 방대하고 테러리즘의 위협을 예로 들며 짧게 언급했다. 기독교에 대해 거의 판타지스럽게 묘사하는 것과는 반대다.

특히 미소녀 지상주의로 흘러가는 요즘의 서브컬처의 애니메이션, 라이트 노벨, 에로게, 만화에서는 수녀, 무녀[172] 등은 모에 아이템으로 잘만 활용하지만 이슬람은 나오지 않는다. 잘해봐야 하렘이나 무희, 벨리댄스를 연상시키는 의상 정도. 근데 사실 하렘도 이슬람이라기보다는 아랍 & 페르시아 & 튀르크 문화권에서 따온 부분이고 일반적으로 알려진 중동의 무희 역시 이슬람이 아니라 페르시아 쪽에서 따온 부분이다. 즉, 하렘이나 무희는 이슬람적 요소라고 보긴 힘들고 정말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면 여캐들에겐 히잡이나 차도르를 씌워야하며 외간 남자들 앞에선 절대 벗으면 안 되는데 갈수록 여캐들을 벗기고 있는 서브컬처 창작자들에겐 영 좋지 않다.

풀 메탈 패닉의 주인공 사가라 소스케 정도가 무슬림 주인공의 전부. 쿠란을 암송할 정도라지만 작중 무슬림으로서의 정체성이 딱히 부각되게 묘사되지는 않는다.[173][174][175] 기동전사 건담 00의 주인공 세츠나 F. 세이에이는 중동 출신이지만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무슬림은 아니다.

약간 특이한 사항으로 기동전사 건담 ZZ에 등장하는 아프리카의 지온 잔당 “푸른 부대” 일당이 살고 있는 지역이 이슬람교 비슷한 종교를 믿고 있다. 근데 주민들이 예배시간이 됐는데 난데없이 맨바닥에 없드려서 우두 세정의식도 없이 절을 한다(...).

한가지 특이한 사항으로는 에로게 메이커인 앨리스 소프트가 챔피언 소프트라는 이름을 쓰던 당시에 마지막으로 발매된 PC-98용 게임이 이슬람을 다루었다. 리뷰를 보면 의외로 흥미롭고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메이플스토리자쿰은 이슬람의 지옥에서 자라나는 나무인 زقوم(Zaqqum)이 유래다. 때문에 자쿰 퀘스트 관련 NPC들은 죄다 중동쪽 복장을 하고있다.

일본 매체물은 이슬람에 관심이 없고 보기가 드물지만 서구권에서 제작한 매체물에서는 흔하게 등장은 한다. 하지만 서구권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공포가 다소 존재하기에 서구권의 매체물에서 이슬람은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많다. 특히 이슬람 근본주의의 추태로 인해 이슬람이 게임물에서 더욱 안 좋게 묘사된다. 그 예로 카운터 스트라이크(Counter-Strike) 클로즈 컴뱃(Close Combat: First to Fight), 아메리카스 아미(America`s Army), 배틀필드 시리즈에서 적이 무슬림으로 많이 나온다.[176]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에서도 이슬람인 GLA 진영을 테러집단으로 묘사했다. 중세 판타지의 경우 이슬람은 유럽의 서구권보다 뒤쳐지며 종속되었다는 식으로 많이 나온다. 아예 서구한테 멸망당해 그들의 국민으로 살며 용병, 유목민으로 생계를 이어간다는 설정까지 종종 볼 수 있다.[177] 근데 오스만 제국과 사파비 왕조 페르시아가 쇠퇴하면서 이란과 터키를 제외한 이슬람 국가 대부분이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가 되었던 적이 있기에 이런 모습이 나타나는 게 틀린 것만은 아니다. 현재도 이슬람 국가들 전체가 서구를 증오해도 군사력과 기술력, 경제력에서 상대가 안 되기 때문에 서구의 눈치를 보는 형편이다. 특히 서구권한테 경제제재를 당하면 이슬람 국가들의 경제가 치명타를 입기에 서구권의 말은 절대로 무시 못한다...는 현대의 사정이지, 중세나 판타지, 그것도 명백하게 기독교권이 패배한 십자군 전쟁스러운 시대극에서 이슬람권을 모티브로 한 세력이 왜 미개인이나 피정복민으로 표현될까. 그냥 서구 우월주의의 반영일 뿐이지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능력치 또한 서구권보다 더 약하게 나온다.[178] 그나마 밸런스가 공평한 것이 토탈워 시리즈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시리즈 정도. 이건 역사적 재현성에 비중을 두어야 하는 역사물이니 중세, 근세 이슬람 제국들의 강함을 그대로 표현하는 경향이 더하다. 게다가 이런 게임들은 무슬림 국가에서도 나름 좋게 보여준다고 수요도 있고. 그러다보니 이슬람권에서는 서구의 게임을 굉장히 혐오하는 사람이 많다. 특히 이런식으로 이슬람을 막장 광신도들, 테러 집단, 서방보다 뒤떨어진 국가들, 서방에게 종속된 노예로 묘사한다며 비난한다. 이슬람 국가들은 아예 이 게임들을 금지한다. 물론 이 게임들이 이슬람권보다 비이슬람권에서 잘 팔리고[179] 이익도 거기서 많이 나오다보니 서구의 게임 제작사들은 그런거 신경안쓰고 마음놓고 이슬람을 부정적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이는 이슬람 국가들에게 반서구 감정을 더 강하게 만드는 원인제공을 하기도 한다. 일례로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험악하던 조지 부시 대통령 당시 미국 쿠마 게임사에서 미국 특수부대가 이란의 핵시설을 파괴한다는 내용의 이란 강습(Assault on Iran)을 만들어 이란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2003년에는 페트릴라 엔터테인먼트에서 퀘스트 포 사담(Quest for Saddam)이라는 게임을 제작하여 이라크와 이슬람권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왜냐면 이 퀘스트 포 사담이 미국 특수부대가 그 당시 대통령이던 사담 후세인을 사살한다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슬람권에서 반미감정이 심해졌다.[180] 이러다보니 문화계에서는 게임업계와 대안우파의 접점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

이 반이슬람 게임에 대항하기 위해 이슬람권도 가만있지 않아 알 카에다의 선전 기관인 세계 이슬람 매체에서 부시 대통령을 죽인다는 퀘스트 포 부시를 제작하여 배포하였다. 이외에도 이란의 반미 학생단체 'Union of Islamic Student Societies(UISS)'이 이란 특수부대가 미국으로 쳐들어가 미국에 억류된 이란인 핵 과학자를 구출하는 내용의 게임을 만들었다. 또 2000년대 초반부터 이슬람권에서는 이른바 '돌 던지는 자(The Stone Throwers)'로 불리우는 온라인 게임이 제작되었다. 이 게임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핵심인물들을 맞추는 게임이다. 당연히 이 게임들은 너무나 저질인 똥겜에다[181][182] 세계적으로 금지된 게임이지만 유독 이슬람권에서만 성공하였다. 그것도 청년층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 그만큼 서구 게임 제작사들의 반이슬람 묘사에 대한 분노가 크다는 의미다.

이슬람에 대해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은 의외로 스페인 미니어쳐 게임인피니티 정도다. 여기서는 이슬람이 근본주의에서 탈피한 모습으로 나오는데 이슬람을 호의적인 시선으로 크게 재해석해서 등장시켰다.[183] 다만 내부적으론 해적과 노예 제도가 남아있고 암살자들을 적진에 파견하여 자폭시키는 등의 전근대적이고 부정적인 모습들이 조금 남아있다.

11.1. 이슬람에 관한 창작물[편집]

12. 인터넷 접미사 ~슬람[편집]

이슬람에서 따 온 인터넷 은어 접미사. 무슬림에서 따 와 ~슬림이라고도 하나 이는 잘 쓰이지 않는다.

불특정 집단이 특정한 대상에 대해서 종교적으로 까지 보이는 불합리하고 맹목적인 추종, 옹호, 열광 등의 행동을 보일 때 사용한다. '고리타분하고 꽉 막혔다'는 뉘앙스를 주므로 여기서 말하는 '~슬람(~슬림)'은 이슬람 근본주의 등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면에서 나온 것이다.

12.1. 예시[편집]

  • 개슬람: + 이슬람. 사실 다른 대상을 욕하는 게 아니라 개독교에서 나온 말로, 이슬람 자체를 욕하는 말이다.(개독과 달리 이슬람 전체를 욕하는 뉘앙스가 강하다.) 놀라운 점은 이슬람에서는 개를 더러운 동물로 보고 매우 혐오한다는 것(...). 진짜 가지가지 한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개를 만지는 것조차 하람(부정한 행위)으로 정의했다. 이슬람권에서 병크스러운 사건이 터지면 한 술 더 떠 미개슬람이라고도...

  • 나치슬람: 나치 + 이슬람. 서구권에서 이슬람을 비하할 때 쓰는 말이다. 개슬람의 서구 버전. 실제로 前 메이저리그의 선발투수였던 커트 실링무슬림이 나치보다 못하다는 비판 발언을 했다가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 도슬람: 리그 오브 레전드의 악성 유저인 롤독(교)(롤+개독/기독교)에 대치되는 개념으로 만들어진 단어. 원래는 악성 도타유저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언제부턴가 일반적인 도타 유저들도 자신을 도슬람이라 칭하더니 어느샌가 도타 유저 및 팬덤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 리슬람: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리븐을 사용하는 유저들이 리븐은 너프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별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고 실드를 치는 양심없는 유저들을 비난하는 단어. 실제로 리븐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챔피언으로, 다른 암살자 챔피언들과 비교해서 너프를 해야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라이엇 측에서 계속 내버려 두기 때문에 논란이 계속되는 것. 리븐 유저들은 '리븐은 엄청 어려우니까 그 점 감안해서 내버려 두는 거임'이라는 이유를 대기도 하는데, 그런 것이라면 당연히 리메이크된 갱플랭크도 너프를 하면 안 됐었지만 갱플랭크의 화약통 데미지가 말이 안 된다는 등의 소리가 나오면서 결국 난도질 당하였다.

  • 쉐슬람: 그런데 쉐슬람은 자신이 쉐보레 차량을 타고 다니면 자기 자신을 쉐슬람이라 칭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만년필 제조사 쉐퍼의 펜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쉐슬람이라 하기도 한다.

  • 특슬람: 레이 커즈와일의 저서 '특이점이 온다'에서 유래한 드립을 치는 유저들을 비꼬아 특슬람이라고 부른다.

12.2. 과도한 사용[편집]

맘슬람(맘충) 등 단순히 특정 대상에 대한 과도한 추종이라는 뜻이 아닌 단순히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이거나, 단순 비하적 의도로, 또는 자신이 하지 않는 게임 유저들에게 ~슬람이라는 등 무작정 ~슬람을 붙이는 사람들이 있다.

13. 관련 문서[편집]

[1] 무슬림들의 견해에 따르면 아브라함, 모세, 솔로몬, 예수에 이은 최후의 예언자[2] 무슬림들은 이슬람은 아담의 창조 때부터 있어왔던 종교인데 유대교와 기독교가 이슬람을 왜곡했다고 주장하고, 7세기에 이슬람을 바로잡고자 보낸 최후의 예언자가 무함마드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무함마드가 이슬람의 창시자라고 하는 걸 싫어하지만, 역사적, 종교학적으로 볼때 사실 이슬람은 무함마드가 유대교와 기독교의 교리를 섞어서 원래 없었던 새로운 아브라함 계통의 유일신교를 창시한 것이 맞다. 그러므로 무함마드를 이슬람교를 만들어낸 창시자로 보는 것은 객관적으로 봐도 잘못된 관점이 아니다.[3] 세계 인구의 24.1%, 출처[4] 그리스도교의 세례성사나 불교의 수계식처럼 이슬람에 입교하기 위한 의식은 바로 위 문장을 적어도 4명 이상의 무슬림 앞에서 입교의 의사를 확실히 전달하고 본인 스스로도 결심한 가운데 선언하는 것이다. 이 중 하나라도 결여되어 있으면 제대로 된 이슬람 입교자라고 간주되지 않는다. 가끔 유튜브에서 아랍어나 터키어를 가르쳐주겠다고 위 문장을 따라하게 시키는 장난 비디오를 볼 수 있는데, 저 말을 단순히 했다고 해서 무슬림이 되지는 않는다.[5] 당시 무함마드가 정복한 메카는 빈부격차가 극심했던 지역이라 하층민들의 불만이 아주 높았다고 한다. 평등사상을 강조한 이슬람 설교가 통했던 것도 이 덕분이다.[6] 좀 더 설명하자면, 이 SLM 어근에서 나온 말 가운데 하나가 비무슬림에게도 유명한 'salaam'이다.[7] 아랍어처럼 "샬롬 알레켐"도 있으나, 그냥 "샬롬"을 많이 쓴다.[8] 사실 이 어근은 '평화'가 주된 뜻인데, 부가적인 뜻으로 복종, 항복, 건강이 있다. (신에게) 복종함으로써 평화가 있고, 서로에게 항복함으로써 평화가 있으며, 몸이 건강하니 몸에 평화가 있다는 것.[9] 그러나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에서는 '회교'는 잘못된 명칭이니 이슬람이라고 불러줄 것을 요청한다.# 비신자는 '그게 무슨 차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당사자들이 요청하는 만큼, 가급적이면 이슬람이라고 불러주자.[10] 고려가요 쌍화점에 "회회(回回)아비"가 등장하는데 회족 출신이거나, 이슬람(회교) 신자로 고려에 온 장사꾼(그러니까 회족이 아닌 민족일 수도 있음)이라는 등 견해가 갈린다. 쌍화점 문서에서는 위구르인으로 소개되어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하면서 한족을 제외한 56개 소수민족을 거느리게 되었는데, 회족(후이족으로도 표기)과 위구르족은 별개의 민족으로 분류한다. 성(省)과 동등한 행정단위인 민족자치구로 닝샤 후이족 자치구와 신장 위구르족 자치구도 별개로 존재한다.[11] 고대 가나안 종교와 마찬가지로 계 종교이다.[12] 본래 한 종교의 경전은 처음 쓰여진 이외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터부시된다. 불경 중 중요한 구절은 중국어음차를 이용해 표기하거나,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읽는 전통주의 가톨릭 신자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기독교도 초기에는 히브리어그리스어 성경만 인정했다.[13] 조금 쉽게 설명하자면,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자신의 말을 전해주고, 무지한 인간을 위해 예언자들을 통해 약간의 특수한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이게 자꾸 곡해되고 왜곡되어 하나님의 말씀은 엉뚱하게 해석되고, 예언자인 예수를 신처럼 숭배하는 현상이 일어나자 마지막으로 아예 '베껴적고 달달달 외우기만 하면 천당에 갈 수 있는 모범답안'으로 인간에게 쿠란을 준 것이다. 그래서 쿠란의 번역을 금지하는 만큼 사도 무함마드가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14] 대표적인 예로는 중앙아시아를 들 수 있다.[15] 이 점에서 '가려져있던 하느님의 빅픽쳐가 뒤로 갈수록 점차 완전히 드러나는' 계시의 점진성을 주장하는 기독교와 대비된다.[16] 유대인과 기독교인.[17] 누구를 지칭하는지 해석이 갈리는데 에즈라, 아자리야/아벧느고 등이 거론된다.[18] 교리에 따르면 이 25명 말고도 전 세계에 수많은 예언자들이 나왔다고 한다. 이 중 쿠란에서 공인된게 25명.[19] 정확히는 신이 마지막으로 보낸 최후의 예언자이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앞선 예언자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책으로 비교하자면 앞서 모세(구약)나 예수(신약)를 집필해 부족한 점이 생기자 무함마드로 최신 개정판(쿠란)을 낸 것이므로, 이쪽이 더 옳은 말이 되는 것이다.[20] 그러나 성경대로는 아니고 지극히 이슬람스러운 전통에 따른다. 가장 흔한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도 사실 페이크고 재림하긴 하는데 십자가들을 부수고 기독교도를 이슬람으로 이끌며 40년 통치 후 죽어서 메디나의 무함마드 무덤 옆에 묻힌다. 보다시피 예수의 신성만이 아닌 신약의 핵심을 싸그리 저격하는 듯한 내용 때문에 기독교 입장에선 되려 뒷목잡을 수도...[21] 사실 예수의 죽음에 관한 이슬람의 전승과 해석은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여러 얘기가 난무했다. 세르기우스라는 사람이 대신 죽었다는 얘기도 있고, 신이 직접 예수를 승천케 했다는 얘기도 있으며, 무덤이 메디나에 있다는 전승이나, 신이 그를 잠깐 동안 죽게 했다가 3시간, 또는 사흘 만에 되살렸다는 전승도 있었다.[22] 이란이라크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시아파가 다수인 몇 안 되는 국가들이다.[23] 이슬람권에서 가장 세속적인 지역으로 꼽히는 중앙아시아에서도 예외적으로 페르가나 계곡 지역은 와하브파가 득세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동부, 키르기스스탄 남부 일부가 해당한다. 하지만 이 쪽이 지역사회 차원에서 규율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성향이 있지만 우즈벡과 키르기스라는 나라 전체적으로 보면 세속적 성향이므로 실제로는 사우디아라비아처럼 꽉 막힌 사회까지는 아니다.[24] 시조격인 메블라나 루미(1207~1273)가 지은 시를 봐도 이렇다. "오라 그대가 무엇을 믿든 믿지 않든, 불을 섬기든, 뱀을 섬기든, 신을 많이 믿든, 십자가를 섬기든 누구든지 오라….여기는 절망의 문이 아니다. 모두가 신에게 가는 길이자 모두가 용서받고 모두가 화목하게 지내며 모두가 자신의 신앙을 존중받아야 하는 곳이다."[25] 이슬람의 율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국가에서는 인형(人形)의 반입도 금지되며, 허락이 된다 해도 목을 떼어내야 한다는 듯하다. 예를 들자면 빅잠은 가능하지만 건담은 불가. 이것도 나라마다 기준이 다른 건지 이집트에서는 넨도로이드도 반입이 가능한 모양이다. 사실 이집트 국내에서도 야시장이나 백화점 등지에서 고대 이집트를 소재로 한 피규어들을 팔기도 하는 걸 보면 이집트는 확실히 기준이 느슨한 듯.[26] 물론 이 이시기에도 기독교도에 대한 멸시, 성당 건축 제한 등의 차별과 기독교도 가정을 대상으로 한 예니체리 강제징집 및 강제개종 등 탄압이 없었던 건 절대 아니다.[27] 그래서 오스만 제국 시절 정교회나 유대교 밀레트에서 해결하기 힘든 재판의 경우, 무슬림이 아닌 경우에도 많은 이들이 하나피파 법관에게 가서 재판을 받곤 했었다.[28] 일부 세속적 이슬람 국가들을 제외하면. 그러나 이런 세속적 정서가 많은 이슬람권 국가들에서도 가정에 따라 계속 쿠란과 샤리아 교리에 입각해 개종자에 대한 명예살인 사태가 끊임없이 일어난다..유럽 이민자 무슬림들이 타종교로 개종한 뒤 겪는 박해와 위협에 대한 증언들이나 뉴스들만 봐도 이슬람권의 개종자 박해가 타종교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정도임을 확인할 수 있다.[29] 이런 주장은 당연히 궤변이다. 이슬람이 최종적이고 완벽한 진리라는 식의 주장은 말 그대로 무슬림들이나 하는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고, 그런 일방적 주장을 가지고 이슬람 신앙을 버리거나 비이슬람 종교를 믿는 것을 선택한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할 권리는 없다.[30] 같은 아브라함 종교계열인 기독교와 달리, 쿠란에서는 신과 인간은 만날 수 없다고 말한다. 반대로 개신교는 개인과 신이 직접 교감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신부나 성모 마리아 같은 중재인을 두지 않는다.[31] 특히 성차별적이거나 전근대적 또는 비합리, 비윤리적인 구절 등.[32] 물론 초창기를 비교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옆동네 기독교도 몸집이 불어나고 국가에 의해 제도권 종교가 된 뒤부터는 북방 십자군이나 스페인 콩키스타도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무력을 동원한 선교활동을 하였다.[33] 正命. 모든 일은 신의 뜻에 따라 이뤄진다는 뜻.[34] 살라트가 유효하려면 청결을 유지해야 하는데, 최소한의 청결을 확보하고자 종교적으로 씻는 행위를 '우두'라고 부른다. 종교적 행위로서 우두를 하려는 의도를 명확히 인식하고 얼굴과 손발, 목, 입 안 등 지정된 부위를 지정된 순서와 방법에 따라 꼼꼼히 씻는다. 물론 우두보다 더 좋은 것은 아예 전신을 목욕하는 것. 다만 예전에 청결한 상태를 유지한 뒤 이를 더럽히지 않았다면 다시 씻을 필요는 없다. 청결함을 깨는 경우는 방귀를 뀌거나, 대소변을 보았거나, 피를 흘렸거나, 잠이 들었을 경우 등이 있다.[35] 현대 이슬람은 시작시간을 태양이 지평선 아래 X도가 되는 시각을 천문학적으로 계산하여 정한다. 지평선 아래 몇 도인지는 주요 이슬람 공동체마다 다르지만, 세계 무슬림 연맹에서는 18도를 기준으로 한다. 몇몇 무슬림들은 항해박명, 즉 12도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36]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질 때부터'가 어느 정도인지 역시 주요 이슬람 공동체마다 기준이 다르다. 남중 시간으로부터 1분만 지나면 된다는 곳도 있고, 5분쯤은 지나야 한다는 곳도 있다.[37] 세계 무슬림 연맹에서는 일몰 후 태양이 지평선 아래 17도로 내려갔을 때를 시작시간으로 본다.[38] 한때는 지하드, 즉 성전이 들어간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39] 그 외에도 예배 중에 개가 앞을 지나가면 그 예배도 무효가 된다. 근데 우습게도 고양이는 괜찮단다. 무슬림들의 관념에 따르면 개는 인간을 신으로 인식하여 인간을 절대적으로 따르고 신뢰하기 때문에 불경하지만, 인간을 적당히 쌩까는 고양이는 인간을 신으로 보는 게 아니라 신의 대리인이란 것을 알고 있는 동물이기 때문. 사실은 무함마드가 개는 싫어하고 고양이만 좋아하는 개인취향에 따라 예배규정을 이런 식으로 한 것이다.[40] 아주 사소한 피 흘림이 아니면 무조건 해야 된다고 한다.[41] 샤워기 없이 손으로 물을 떠서 전통적으로 하는 방법도 있다.[42] 수니파 5번, 시아파 3번(시아파도 기본적으로 5번이다. 3번이라고 오해를 받는 것은 수니파는 예배를 정확하게 다섯 번으로 나누어 하는 반면에, 시아파의 경우 두번째와 세번째를 연달아 하고 네 번째와 다섯 번째를 연달아 하기 때문이다. 즉,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3번만 예배를 하는 것 같지만, 여기서 두 번째와 세 번째는 한 번의 예배가 아니라 약간의 숨을 돌리고 하는 두 예배가 합쳐진 것이다.)[43] سجادة, sajjāda[44] الوضوء, al-wuḍūʼ‎[45] 경건한 것도 좋지만, 건조한 지방에서 물을 헤프게 쓰다간 진짜로 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46] صلاة‎, Salat[47] 하렘과 어원이 같다. 므흣한 그 하렘의 의미는 '금(禁)'남구역이에 해당한다.[48] 사실 이것은 종교적인 것과 실질적인 중동 지역의 현지 환경의 어려움이 합쳐진 것이다. 대부분 사막에 척박한 고산지대들뿐이라 안 그래도 먹을 게 풍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인간과 동일한 먹이를 먹는 경쟁관계의 동물을 키우기는 어려웠다는 점이 작용한다. 이슬람교를 믿는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사육하는 , 낙타, , 염소 등 다른 우제류 가축들처럼 풀만 먹고 고기는 물론 젖, 털, 가죽 등 다른 부산물들까지 같이 제공하면 모를까, 돼지는 고기만 얻는 짐승인 데다 굳이 인간까지 먹는 음식들을 먹여야 하기에 키우려면 엄청난 부담을 강요한다.(물론 돼지도 고기뿐만 아니라 가죽이나 털등 다른 부산물들도 나오긴 하지만, 고기는 물론 젖이나 가죽, 털등 나오는 부산물들이 다양한 낙타, 소, 염소, 양 등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등 이슬람권 지역에서 사육하는 다른 가축들에 비하면 극히 제한적이다.) 게다가 돼지는 때때로 진흙탕에서 굴러 몸을 씻어야 하기 때문에 물도 엄청나게 필요해서 이슬람교의 본산이자 물이 부족한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사육하기에 완전히 부적합한 동물이었다. 그리고 대부분 유목민족들인 이들에게, 하루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매우 짧은 돼지는 아무래도 안 어울리기도 했다.[49] 이 때문인지 한국이나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에 거주하거나 관광, 사업차 방문한 무슬림 외국인들 상당수는 스시, 징기스칸, 가라아게, 스키야키, 규동, 불고기, 안동찜닭 등 생선이나 양고기, 닭고기, 소고기가 들어간 현지 요리들만을 찾아 먹기도 한다.[50] 한국 이슬람 중앙성원 홈페이지에 올라온 질문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질문자가 중동 출신인지 동남아 출신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외국인 무슬림인데, 한국에 와서 사귄 친구에게 선물로 초코파이를 받았다. 새로 사귄 친구에게 받은 첫 선물이라 일단 받고서는 이게 이슬람 율법에 허용되는지 확인해보려고 질문한 것. 그런데 초코파이 마쉬멜로우에 돼지기름에서 추출한 성분이 섞여 있었고 결국 먹어선 안 될 하람이란 답변을 받고 먹지 못하고 버렸다고 한다(...).[51] 사실 알콜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랍어 알쿨(الكحل, al-kuḥl, "화장먹, 아이라이너 같은 가루")에서 나온 단어다.[52] 보통 '밖에서 공식적으로' 먹는 것이 기피되는 편이다. 율법의 원칙과 현실의 욕구 사이에서 적당히 타협한 것. 당연히 원칙적으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집에서 술이나 돼지고기을 먹을 때 "이 정도는 하나님께서 봐주실 거야. 그 분은 자비로우시니까." 하면서 먹는 신도들도 많다. 물론 이건 이 음식들을 쉽게 구하는 한국에서의 얘기다. 아랍국가에서도 이 음식들을 구할 수 있다면 이렇게 될지 모를 일이지만. 이집트나 시리아, 레바논 같은 경우 기독교인이 공존해서인지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시리아와 이집트에서 돼지고기임을 알고도 거리낌없이 먹는 무슬림들을 본 한국인 거주자 글도 있다.[53] 가을이 아니다! 이슬람력은 계절의 변화와는 무관한 순수 태음력이라 반드시 태양력(그레고리력)의 9월 및 계절의 변화와 일치하지 않는다. 이슬람력과 태양력은 대개 1년에 10일씩 오차가 발생하므로 해마다 오차가 누적되면서 라마단은 일정한 주기에 따라 어느 계절이든 거치게 된다. 이슬람력 문서 참고.[54] 애초에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단식을 하는 것은 아니니 상관없다. 단식을 함으로써 정신 상태를 맑고 순수하게 만들면 천사의 속성에 접근할 수 있다고 보았고, 또 굶주린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줄 수 있는 동기를 유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하게 된 것이다.[55] 굶으면 살찌기 더 쉽다. 몸이 양분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양분이 들어올 때 축적해두려고 하기 때문. 굳이 식사량으로 살을 빼려면 단식하지 말고 소식+운동을 하는 게 효과가 있다.(운동이 없으면 근육량까지 같이 줄고 소식이 없으면 건강한 근육돼지가 된다.)[56] 이슬람 계율의 엄격함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굶어죽지 말라고 음식 보내줬으면 아무거나 쳐먹을 일이지 저렇게 뻗대고 거부하다니 배은망덕하다"라는 취지로 분개한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돕고자 하는 행위라고 할지라도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제대로 알아보고 그에 맞춰서 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는 옹호도 있었지만 오히려 분개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러 온 사람들은 우리한테 맞춰줄 필요도 없다는 거냐?"고 더 폭풍까임을 받았다. 사실 이슬람 율법에서도 정말 급할 때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데다 살려고 도망쳐온 사람들이 저 따위로 행동하고 있으니 비무슬림들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을 수밖에. 이는 난민 수용 반대의 주요 근거가 되었다. 외부인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외부인이 그 지역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데 정작 자기들은 존중받기만 원하고 존중하지는 않는다는 이유로. 애초에 난민들이 온 곳은 이슬람 문화권도 아니고, 난민들은 이슬람 문화권을 버리고 온 사람들이니 난민들이 맞춰주는 것이 상식적이다. 게다가 경제력도 그렇게 높지 않은 동유럽 지역이라 지원도 별로 좋진 않은 편이기도 하고 말이다.[57]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힌두교 문화권도 대표적인 일부일처제 문화권이다. 마하트마 간디 같은 인물도 평생 일부일처제를 지켰다.[58] 치마 속을 몰래 훔쳐본다든지.[59] 이슬람에서는 신의 형벌이 불을 통해 가해진다고 믿으므로, 죽은 사람을 화장하는 것조차 극도로 꺼린다.[60] 실제로 쿠란엔 직접적인 동성애 금지 조항은 없다. 참고 그러나 쿠란에 준하는 제2경전인 하디스에 동성애 금지가 나와있기에 사실상 동성애는 이슬람 교리상 죄다.[61] 이 구절은 남편의 아내에 대한 구타가 무죄가 되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주장이 있다. 일부 학자들은 무함마드가 아내를 때린 남편을 규탄하였다는 기록을 근거로 때리는 것이 아닌 이혼을 제안하라는 말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때리다가 맞는다는 주장이 유력하다. 영문 위키 문서위키이슬람 문서 참조.[62] 아랍어로 "아드라부 안후나"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현대 아랍어 문법으로는 해석이 애매하다. 아드라부란 문구로 시작할 경우는 보통 멀리하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뒤에 안후나라는 부분이 구분하는 한정성 때문에 사전대로라면 이 문구는 때리다, 후드려패다(!)라는 문구로 해석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어 쿠란에서는 저 아내를 때리라는 단락에 '가볍게'라는 원문에도 없는 첨언을 달아 번역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63] 우스운 사실은, 이 쿠란의 규정을 어긴 당대의 유일한 무슬림이 무함마드 본인이었다(!). 그는 정치적인 필요(예를들어 정략결혼인 아이샤 빈트 아부 바크르 등)나 개인의 음욕을 충족하려는 목적으로(대표적으로 양자의 며느리와 간통하여 결혼한 자이납 빈트 자흐시, 적 부족장의 아내로서 강간에 가까운 강제결혼을 했던 샤피야 빈트 후야이 등) 죽을 때까지 "본인에게만 허용된 신의 특별 계시"라는 미명하에 무려 13명이나 되는 아내를 두었다. 또 이 아내들을 공평하게 대하라고 본인이 말해놓고 정작 자신은 아내들을 공평하게 대하지 않았으며, 일부 아내만 편애(대표적으로 마리아 빈트 샤문)하는 바람에 아내들끼리 거짓 고발과 다툼이 있게 방조하기도 했다(...). 무함마드 문서 참고.[64] 여종 혹은 포로로 잡히거나 사온 이교도 여자 성노예.[65] 만일 주위에 물이 있다면 소위 '깨끗한 상태'가 되기 위해선 우두(팔, 다리와 얼굴을 씻기), 혹은 구쓸(샤워)를 해야 한다. 여성과의 사심없는 가벼운 접촉 정도는 괜찮다지만(무함마드도 예배 전에 부인과 가벼운 키스를 했다는 기록 때문에 괜찮다고 주장) 조금이라도 사심이 있었다면 바로 세정의식을 다시 해야된다. 한마디로 이슬람에서 여성을 대하고 만졌을 때는 화장실에서 똥을 쌀 때와 마찬가지로 더러운 상태로 취급된다는 것(!).[66] 영어가 안 되는 위키러들을 위해 요약해서 설명하자면, 아내를 때릴 때는 얼굴을 포함한 머리 부분을 때려서는 안 되고, 때리며 아내한테 욕해서도 안 되고, 열 대 이상 때려서도 안 되고, 아내를 다치게 해서도 안 되고, 손을 가슴 높이 위로 처들어서도 안 되고, 몸에 자국을 남길 정도로 세게 때려서도 안 되고, 연속으로 때려서도 안 된다. 막대기로 때릴 때는 작은 막대기로 때릴 수 있고, 때리는 것은 가장 마지막에 택하는 방법이어야 하고, 이전에는 말로 타이르거나, 동침을 거부함으로써 경고하라고 한다.[67] 헤로도토스가 살던 시절에도 나온 걸 보면 이슬람이 생기기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던 걸 알 수 있다. 가령 중왕국 아시리아의 경우, 여성 외출 시 기혼은 베일 착용, 미혼과 창녀는 미착용이 의무였다. 창녀가 위반 시 곤장 50대와 끓는 물 세례를 받았다. 부인은 전쟁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면 2년을 기다려야 했고, 그 뒤 재혼해 새로 애까지 낳았어도 옛 남편이 갑툭튀하면 홀로 그에게 돌아가야 했다.[68] 인도 토속 종교가 카스트와 지참금 같은 힌두교의 신분제도, 여성 인권침해 등의 요소들을 죄다 받아들여 여성차별 종교가 되어버린 사례에 비추어 볼 때, 이슬람이 없었더라도 아랍 전통적 여성 차별 인식으로부터 또다른 여성 탄압 종교가 탄생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69] 하지만 이슬람은 첩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지 않아 사실상의 성노예제도 및 하렘 운영은 가능했다는 게 함정. 때문에 실질적으로 4명 제한은 안 지켜졌다.[70] 잠자리 횟수까지 모든 것을 공평하게 해야 한다고 명시하였다.[71] 그러나 당시 여자는 0.5명 분의 증인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남자가 아무도 증인으로 나서주지 않을 경우 총 8명의 증인이 필요했고, 그중 단 한 명만 부족해도 해당 사건은 증거불충분 처리가 됐다. 즉 개선이 되었건 안되었건 이 교리 자체가 여성차별 규정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규정은 현대까지도 "훌륭한 선지자 무함마드의 가르침"이라는 식으로 변화가 불가능하게 유지되고 있다.[72] 무슬림들과 이슬람을 지나치게 옹호하는 사람들이 명백한 이슬람권의 여성차별을 변명할 때 쓰는 주된 논리가 "전근대 불교기독교도 이슬람과 별다를것 없었다. 그러니 이슬람을 비판하지 말라"는 식의 양비론인데, 사실 이슬람 창설기에도 비잔티움 제국 문화권이나 중화 문화권, 게르만 문화권 등 불교 및 기독교 문명은 이슬람에 비해 딱히 두드러지게 성차별적이지도 않았으며, 또한 근현대 이후 사상적으로 변화해가는 지역의 문화권에 유연하게 적응하여, 현재 불교나 기독교의 실천교리 상으로는 여성을 사회적/생활적으로 차별하는 교리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된다. 반면 이슬람은 21세기에도 쿠란/하디스 및 샤리아에 있는 복장규정, 일부다처제 및 각종 여성차별을 문자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를 집행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슬람이라는 종교 자체를 거의 잠식해가는 수준이다.[73] 율법이나 실천에서 이슬람과 상당히 비슷한 유대교의 경우도 토라에 간통자에 대한 투석형, 일부다처제를 했던 왕들과 지도자들, 각종 전근대적 처벌 규정 등 샤리아를 연상시키는 율법들이 많고, 지금도 실정법이지만(사실 이는 무함마드와 우스만 등 초기 무슬림들이 이슬람법을 만들 때 토라의 율법을 어수룩하게 변형하여 섞었기 때문이다) 유대교는 이미 11세기에 일부다처제를 폐지했으며, 근대에도 현대에도 개혁파나 정통파는 말할것도 없고, 하시딤파나 하레디같은 극정통파마저도 간통자에 대한 투석형이나 개종자에 대한 살해 등 반인권적 율법은 사실상 사문화시켜두고 실천하지 않는다. 물론 유대교 등도 근본주의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현대에까지 샤리아 처벌 강요를 전세계적으로 바득바득 우겨대는 무슬림(근본주의자)들과는 아예 문제의 심각성부터가 다르다.[74] 쿠란의 해석은 후대의 해석을 따르도록 쿠란이 지시하고 있어서 여성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해석해도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남성의 기득권 유지가 목적이라는 분석이 있다.[75] 그 이유도 가관인 게, 서구 남성이랑 연애를 하거나, 비무슬림과 결혼했다는 이유 그리고 다른 종교로 개종하거나 조금이라도 진보적으로 나가 밉보였다는 이유(!) 등이다. 사실상 답이 없는 수준.[76] 인도네시아는 여성 대통령도 집권했었고, 아이돌 여가수 그룹도 대놓고 히잡을 안 쓰고 공연, 활동하는 등 이슬람교의 본산인 중동이나 아랍 국가들보다는 여성 인권이 꽉 막혀있지는 않다.[77] 그 중동의 대부분 국가들에 이슬람이 퍼져 있으니 혼동할 법도 하긴 하다.[78] http://www.landinfo.no/asset/960/1/960_1.pdf, http://www.justice.gc.ca/eng/rp-pr/cj-jp/fv-vf/hk-ch/p3.html, http://en.wikipedia.org/wiki/Honor_killing#Iran, http://www.centerforinquiry.net/isis/islamic_viewpoints/the_lethal_combination_of_tribalism_islam_cultural_relativism, http://www.islam-watch.org/SyedKamranMirza/honor_killing.htm, 이상 팔라비 왕조에서 재발췌.[79] 출처: http://iel.hufs.ac.kr/user/boardList.action?command=view&siteId=hufs&boardId=42002&page=101&boardSeq=86664&search=&column=&categoryId=&categoryDepth=&parent=[80] 이것이 명예살인을 뿌리뽑는 단초가 될지, 여성 인권에 대한 근본적인 의식 개선이 없는 채로 진행되어 성과를 거두지 못할지는 지켜봐야 할 일.[81] 이는 헤즈볼라의 특성이 이슬람주의 단체의 탈을 쓰고는 있지만 실상은 시아파 아랍 민족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 같은 세력보다는 온건한 편이다. 자살특공도 웬만하면 하지 말 것을 권장하는데 하더라도 신중히 여러 번 고려해서 자발적으로 하겠다고 나선 사람만이 한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공격은 금지하고 전사자에 대한 예우를 극진히 하는 데다 이스라엘과 미국을 까는 방송을 래퍼들이 송출하는 녀석들이다.[82] 시리아 내전에서도 히잡을 전혀 착용하지 않은 알라위파 여군들이 정부군 소속으로 매우 많이 참전하며, 알라위 가정들에서도 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83] 알라위파는 와하비즘이나 살라피즘같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비무슬림들보다도 훨씬 더 증오하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맞서 싸운다. 알라위의 본거지인 시리아의 이슬람 근본주의는 수니파들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과거 역사속에서 알라위 교도들에 대한 박해와 학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수니파에 대한 역사적 원한 때문에라도 이슬람 근본주의에 반대하고 여성인권 향상을 정체성화시킨 점도 크다.[84] 예시를 들자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덕분에 경제적으로 삶이 윤택해졌지만 이와는 모순되게 종교적으로는 와하비즘으로 대표되는 이슬람 근본주의와 극단주의가 존재한다.[85] Kurban과 발음이 비슷한 폴란드어 Kurwa는 씨발이란 뜻이다.[86] 아랍 속담.[87] 20세기 학자 도널드 캠벨의 평가.[88] 연금술을 뜻하는 'alchemy'와 대수학을 뜻하는 'algebra'는 모두 아랍어에서 온 말로써, 각 단어의 앞에 붙은 'al-'은 아랍어에서 정관사 (the)의 의미로서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89] 일 칸국의 재상으로서 마라게에 천문대를 지었고 프톨레마이오스를 능가한 천체 관측기를 만들었다. 그 기구로 투시는 지구 공전설을 주장하게 된다. 이후 그 기구를 티코 브라헤도 사용한다![90] 독일 무슬림 출신인 하미드 압델 사미드 등의 이슬람 비평가는 이러한 무슬림들의 행태를 두고 현대사회의 마피아들이 주민들에게 시행하는 '보호세' 갈취 제도와 비슷하다고 평했다.[91] 2등 국민으로 차별받는 기독교도와 유대교도[92] 샤리아에 의한 비무슬림 탄압과 차별 및 세금폭탄 부과와 비무슬림 양육권 빼앗기 등.[93] 로버트 스펜서 저, 《정치적으로 왜곡된 이슬람 엿보기》 163p.[94] 결과적으로 무슬림들에게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전근대 사회에서 아내의 종교는 남편을 따라가게 마련인데, 대놓고 무슬림 남성이 비무슬림 여성을 상대적으로 취하기 쉽게 만드는데 경우에 따라선 일부다처제까지 허용하니...[95] 더욱이 이 결혼 차별 문제는 근본주의적인 이슬람 국가들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말레이시아 같은 비교적 온건하다고 자부하는 나라에서까지 심각한 인권문제가 될 정도로 21세기 현재까지 철저히 현재진행형이다.[96] 동시대 비잔티움 제국은 신분이나 종교에 의한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시켰다.[97] 물론 무신론/무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20세기 중후반의 공산주의 탄압 때문이라고 변명은 할 수 있으나, 그것이 2010년대 후반인 지금까지도 교정되지 않는 것은 이슬람 세력의 반발과 압력 때문임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98] 단, 일부 지역에서는 다소간 예외도 있다. 공산주의 치하에 있었던 중앙아시아나 알바니아, 발칸반도 지역의 보스니아인 거주 지역에서는 무신론을 내세워도 딱히 죄가 되지 않는다.[99] 즉, 선교가 금지인 나라. 사실 선교가 금지인 나라는 이슬람권 국가를 제외하고 꽤 있는 편이고 이 정도면 진정한 종교의 자유라고는 볼 수 없지만 형식상으로는 어느 정도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 주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실질적으로 대다수 강성 이슬람 국가에서 비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은 주요 무슬림 커뮤니티에서 극심한 핍박이나 린치를 받고 지구상 어느 종교권보다도 가혹한 사회매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볼 때 현대 기준으로 위 이슬람 국가들이 꽤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준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100] 카자흐스탄이나 우즈베키스탄 등의 중앙아시아 쪽 국가들은 보통 세속주의적이라고 하지만 이 동네는 이슬람을 포함한 모든 종교가 엄격하게 통제받고 있는 쪽에 가까우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라 보긴 힘들다.[101] 타종교인이 무슬림으로 개종했다가 다시 타종교로 개종하는 것도 포함.[102] 이 신성모독이란 것도 무슬림들 기준에서 판단되는, 대단히 자의적인 기준이다. 일례로 나이지리아에서는 기도하는 무슬림들 앞으로 기독교인 여자가 단순히 그냥 지나갔다는 이유신성모독이라며 기독교도에 대한 유혈폭동이 일어난 적도 있다.[103] 실제로 이집트에서는 해마다 지즈야를 낼 돈이 없는 많은 극빈층 콥트 정교회 기독교인들이 무슬림으로 반강제로 개종당하는 걸로 유명하다.[104] 근데 사실 이슬람 내 세속주의가 힘을 잃지 않았던 20세기 중후반만 해도 중동에서조차 수니파-시아파 무슬림 사이의 결혼은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다. 당사자들도 "같은 무슬림인데 뭐 어때..." 같은 식으로 생각하고 말았다고. 그러나 갈수록 이슬람 근본주의가 부상하고 수니-시아파간 종파갈등이 극심해지면서 지금은...[105] 2014년 ICM 영국, 독일, 프랑스 무슬림 ISIL 지지여부 여론조사 자료 통계. 단적으로 말해 영국에서는 길가다 마주치는 무슬림 중장년 10명 중 1명이, 프랑스에서는 이슬람 청년들 4명 중 1명IS 추종/지지자라는 것이다. 괜히 파리 테러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가 아무 이유없이 일어난 게 아니다.[106] 하지만 ISIL 정도로 극단적으로 가면 무슬림들의 반응 역시 대부분은 부정적이거나, 파키스탄처럼 극단적인 지역에서도 '모른다' 정도가 주된 반응이었다. 물론 ISIL의 극단성을 감안하면 위에 언급된 10-20%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지만. #[107] 하지만 이슬람 율법을 국법으로 도입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무슬림들 중에서도 배교자 처형 등의 극단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크게 갈렸다. 카자흐스탄 같은 경우에는 샤리아 지지자(10%) 중 배교자 처형을 지지한다는 비율은 4%에 불과했고, 인도네시아(샤리아 지지자 중 18%)처럼 샤리아 지지자가 70%가 넘어가는 나라들 중에서도 이런 극단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지지율이 낮은 경우도 있었다. 물론 샤리아 지지자가 99%에 그 중 79%가 배교자 처형을 지지한 아프가니스탄 같은 사례도 있지만. 조사 대상국 전체로 보면 샤리아 지지자에만 한정해도 배교자 처형까지 지지한다는 비율이 과반을 넘긴 나라는 19개국 중 6개국에 그쳤다. #[108] 다른 종교권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보면, 이스라엘 유대인 중 유대교 율법을 국법으로 지정하는 데 찬성하는 비율은 29%였다. #[109] 중국의 오호십육국 시대 당시 비한족들이 유교 대신 불교를 선호했던 이유와 같다.[110] 그 대신에 인도는 힌두교가 득세하는 곳이 되었다.[111] 시크교 같은 인도 소수 토착종교도 이때 광신적 이슬람 세력에게 정말 잔혹한 탄압을 당했다. 시크교 여성과 유아살해는 예삿일이었고 도저히 위키에 쓸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한 핍박을 해댔다. 무굴 제국의 종교공존을 말 그대로 박살냈다.[112] 하와리즈파와 이바디파도 수니파의 지류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탄압을 받은 역사가 있으며, 2014년부터 나타났던 ISIL 또한 이바디파, 하와리즈파를 비롯한 수니파 계열 종파는 물론 같은 수니파라도 이념이 다른 사람들이라면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113] 초기에는 러시아 정교도 탄압받았지만 독소전쟁때 국민결집의 필요성때문에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114] 사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다른 식민 열강들도 해외 식민지에 이런 방식의 식민통치를 취했다. 이슬람 역시 마찬가지.[115] 당시 무슬림들은 무역상, 천문학자, 의사 등으로 활동하였고 유학자들도 많이 배출되었다. "유교와 이슬람은 사실 같은 종교"라고 주장하는 무슬림도 있었다.[116] 한편 반란 진압을 위한 경비 지출로 인해 19세기 중반 발생한 대기근을 대처하지 못해 화북 지방에서 2천만명이 아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신하들이 반란 토벌 시 대규모 병력 투입을 반대하기도 했다.[117] 20세기 초 미국금주법에서도 그렇지만, 당시 아랍인들에게 술이란 '포도주'가 전부였다. 나머지 알콜음료는 술이라는 인식이 없었으며 실제로 무함마드도 생전에 차갑게 만든 대추야자술을 즐겨마셨다는 하디스의 전승이 있다.[118] 마찬가지로 이슬람과 무관한 몽골이 말젖을 발효시킨 술인 아이락(보통 쓰이는 마유주라는 일본 한자어는 옳지 않는데 아이락은 말젖 말고도 양젖이나 염소젖으로도 만들기 때문이다. 근데 그럼 밀이나 쌀로 만든 맥주는?)을 애들이고 어른이고 남자고 여자고 물처럼 마신 것도 비슷한 경우다. 즉 유목민들에게 술은 금지할 수 없다는 것은 어디건 같은 셈이다.[119] 2005년 10월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7만여명이 목숨을 잃을 당시 부상을 입고 매몰된 건물이나 산사태로 묻혀진 사람들은 하필 라마단 기간이라고 음식을 거부하다가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당시 인명 구조를 위해 해외 각지에서 파견된 구조대는 어쩔 줄 몰라했는데, 사정을 잘 아는 터키 구조대가 "라마단에 스스로 죽으려고 단식하는 건 이슬람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자살이다."고 설득하자 사람들이 물과 음식을 받아먹었다. 당시 한국 구조대가 쓴 책인 <슈끄람! 파키스탄>에서 발췌.[120]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명목상은 세속국가다. 하지만 사실상(de facto) 국교가 이슬람이니.[121]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시절 네덜란드인들이 세운 하이네켄 맥주 공장이 시초라고 한다.[122] 원래는 말레이시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싱가포르에서 생산하던 싱가포르 맥주였는데 생산 공장을 말레이시아 본토로 이전하면서 말레이시아 맥주가 되었다.[123] 맥주 정도는 어느 식당이나 마트 등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수도 자카르타나 쿠알라룸푸르를 비롯해 요그야카르타, 메단, 이포, 푸트라자야, 우중판당, 팔렘방 등 일부 대도시 지역에도 술을 파는 바와 클럽, 호텔, 식당, 관광지등이 넘쳐나는데 이는 다른 기독교 세속국가의 유흥가, 호텔, 식당, 관광지 등과 별반 다를 게 없다.[124] 터키와 튀니지, 알제리, 모로코, 이집트, 보스니아, 알바니아, 요르단 같은 경우 전통적으로 터키는 튀르크족이 음주가무를 즐기던 민족이기도 했고 수피즘과 알레비즘 같은 이슬람 신비주의가 정착해 토속화된 결과 술에 대한 금기가 많이 흐려졌다. 특히 오스만 제국시대 기독교 동방정교를 믿는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불가리아인, 세르비아인 등 술문화가 있는 기독교도 타 민족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음주에 대한 인식이 관대로워졌는데다 오스만 제국 멸망 후 들어선 터키 공화국 정부가 강력한 서구화, 세속주의 정책을 추진하여 터키의 종교적, 사회적 분위기가 더욱 더 세속화되면서 음주에 대한 이슬람의 종교적 금기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이집트는 이슬람이 전래되기 전인 고대 이집트 시기에 맥주를 먼저 만들어서 먹었을 정도로 술 문화가 있었고 알제리와 모로코, 튀니지, 요르단, 보스니아, 알바니아 역시 전통적으로 포도주 문화가 있었던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제국의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속해 있었다.[125] 방글라데시 사채업자들은 살인적인 이자로 인해 돈을 못 갚는 집안의 아이를 데려와 아동노동을 시켜 임금을 이자 대신 가로채는 경우가 허다하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그라민 은행의 무함마드 유누스가 채무에 대한 이자를 금지한다는 교리를 무시한다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웃기는 것은 그런 사채업자들과 그들의 뇌물을 받아먹은 성직자들이 그라민 은행이 이자(정해진 이자)를 받는다고 비난하는 것.[126] 공산정권 치하에서 강력하게 세속화가 되었다지만 알바니아는 무슬림들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는 나라다.[127] 이쪽은 아예 신정 국가다. 하지만 출산율 감소속도가 기존의 영미권과는 비교도 할수없이 빨라서 1980년대 후반에 5명대였던 출산율이 불과 2000년대 들자 1명대로 떨어졌고 현재도 1명대 후반정도의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경제난과 생활고로 삶이 어렵다보니 청년층은 출산을 기피하여 출산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어 실질적으로 인구감소가 일어나고 있다.[128] 일부 이슬람국가에서 되려 출산율이 상승하기도 했다.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의 경우는 소련 붕괴 이후의 경제난으로 출산율이 감소했다가 경제사정이 어느정도 풀리자 다시 증가한것에 가깝고 (러시아도 비슷한 추세) 알제리도 출산율이 2000년대 초반 2.4명까지 떨어졌던 출산율이 2000년대 후반들어 2.8명, 2015년에는 3.1명으로 올라갔는데 이쪽도 내전이 끝나고 경제가 2000년대 들어 크게 회복된 지역. 예외로 이집트는 2008년 3.0명이었던 출산율이 2014년 3.5명을 기록하였다.[129] 이는 어찌 보면 나우루와 비슷하다. 이쪽도 넘쳐나는 자원으로 국민들이 외노자에게 일을 시키고 자기네들은 놀고 먹기만 했다. 그나마 차이점이라면 나우루는 진짜 국민들이 잘 먹고 잘 살았을 뿐더러 부의 편중도 크지 않았지만 이쪽은 부가 편중된 것.[130] 한국은 정부의 무지한 산아 제한 정책으로 출산율이 심하게 빠르게 가라앉은 편이다.[131] 2014년 기준 말레이인 2.653명, 화교 1.414명, 인도인 1.384명.[132] 그런 지역은 기독교인들도 상당하다. 때문에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종교분쟁이 끊이질 않는다.[133] 흔히 중동이라 인식하는 지역 이외의 이슬람 지역은 아프리카 동해안과 서해안 나이지리아 일대, 중앙아시아, 그리고 인도네시아 지역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이슬람 지역의 경우 동해안을 따라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랍 유일의 해상 식민제국이었던 오만 제국 때문이다. 오만은 유럽과 아랍에 팔 노예와 상아 등을 얻기 위해 탄자니아까지 남하하여 잔지바르에 수도를 정했었다. 때문에 해안 지역에 아랍계 이슬람인들이 분포하며, 내륙의 흑인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이와 달리 아프리카 서부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는 무역으로 인해 이슬람이 전파되었다. 중앙아시아에도 동남아와 마찬가지로 실크로드 무역으로 전해졌다.[134] 프랑스령 마요트를 포함.[135] 의외로 90%대가 아닌데 그 이유는 원주민인 카타르인들은 거의 무슬림이나 인구의 절반가량은 동남아출신 불교도나 인도에서 온 힌두교도들이다.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로 카타르의 경제를 이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인권탄압 등 여러가지 문제점도 있다. 자세한 건 카타르 문서 참고.[136] 33.9%[137] 서유럽 국가 중 무슬림 비율(%)이 가장 높다.[138] 약 200만명이 넘는 무슬림이 살고 있다.[139] 이태원동 등에 살고 있으며 대부분이 이슬람 국가 출신 외국인이다. 한국 거주 무슬림의 증언에 의하면 한국인 신자는 3만 명 정도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슬람권 출신 이민자는 인도 문화권(주로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중앙아시아, 터키 출신이 대다수를 차지하며 이란, 아랍, 아프리카 출신 무슬림 이민자도 간혹 있다 .[140] 냉전때 서독의 고도 경제 성장기 과정에서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 터키에서 독일로 이주, 정착해 온 터키계와 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전란을 피해 보스니아와 코소보 등 구 유고 지역에서 독일로 이주해 온 알바니아계, 보스니아계 한정그리고 시리아계 예약 추가[141] 위구르인과 회족, 후이족 등의 소수민족. 2%정도 된다. 더불어 소수라고 해도 중국의 인구가 워낙에 많은 탓에 1000만 명이 넘는다.[142] 파타니 나라니왓 송크흘라 등의 말레이인 거주 지역은 이슬람 지역이다. 이 지역은 원래 소규모 에미르국가가 존재했는데 타이가 삼켰다. 현재 태국 정부군과 말레이계 이슬람 분리주의 반군 세력 등이 전투를 치르면서 혼란을 겪고 있다. 승병도 있다.[143] 미얀마에서는 로힝야족이라는 아랍 상인의 후손인 무슬림이 있다. 미얀마는 지금 무슬림과 불교도 간의 갈등이 있다.[144] 참족이 무슬림이다. 참족은 베트남 캄보디아에 거주하며, 참파를 세웠던 민족이다.[145] 남쪽 민다나오 섬의 모로인들이 무슬림이다. 역사적으로 민다나오는 술루 왕국의 술탄이 통치하는 등 일찍이 스페인에 복속된 북부의 섬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으며 이로 인해 오늘날도 북부 지역과 심한 갈등을 겪고 있다.[146] 재일 터키인 및 아랍인들 등.[147] 근데 이 묘사는 그리스인들이 에티오피아인들을 묘사한 문장과 너무 흡사하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죄수들을 금으로 만든 족쇄로 채우며 100년 이상 장수한다는 지상락원이라는 등등. 그래서 신라와는 실제 교류가 있었다기 보다는 신라의 존재가 해당 지역에 알려져 있고 정보가 없어 신비화되는 과정에서 그렇게 묘사된 것으로 추정된다.[148] 튀르크계, 아랍계[149] 출처: <이희수 교수의 이슬람>[150] “회회교도(回回敎徒)는 의관(衣冠)이 보통과 달라서, 사람들이 모두 보고 우리 백성이 아니라 하여 더불어 혼인하기를 부끄러워합니다. 이미 우리나라 사람인 바에는 마땅히 우리 나라 의관을 좇아 별다르게 하지 않는다면 자연히 혼인하게 될 것입니다. 또 대조회(大朝會) 때 회회도(回回徒)의 기도(祈禱)하는 의식(儀式)도 폐지함이 마땅합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9년 4월 4일 기사 참조 http://sillok.history.go.kr/id/kda_10904004_004[151] 그러나 수요 측에서 대안이 널려있는 해외 건설과는 달리, 에너지 수입은 중동 입장에서도 한국은 매우 큰 손이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환율, 성장률에 따라 대략 10~15위를 왔다갔다 하는데 에너지 수입은 원유 5위, 천연가스 11위, 그 외의 원자재도 일본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수준이다. 참고 이는 한국의 산업구조가 제조업 및 에너지 다소비 위주이고, 천연자원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나라이기 때문. 중동의 주요 산유국들의 수출국가 순위를 살펴봐도 한국이 3위 아래로 내려가는 경우는 없다. 즉 중동 국가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한국에 천연자원 수출을 끊어버리면 일단 원자재 시장에서 거대한 혼란이 벌어질 텐데, 수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수출선이 사라졌으니 자연히 가격이 폭락할 테고, 재정수입 또한 급감할 것이다. 한국이 대책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서, 100일 넘게 버틸 수 있는 비축석유로 급한 불을 끄면서 다른 수입선을 찾으면 된다. 사실 이런 대책(?)을 논하기 이전에 주요 산유국들이 담합하여 가격을 올리는 경우라면 모를까 정치적인 이유로 특정 국가에게 수출을 중지하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원유 수입국들은 대부분 산업 강국이자(원유를 대량 수입한다는 게 무슨 의미겠는가?) 군사 강국이기 때문에, 중동의 기름왕국들이 안보에 직결되는 어그로를 끌었다가는(...).[152] 조희선, 영국, 프랑스, 독일 무슬림의 이주와 정착 및 갈등에 관한 연구: 한국 이주 무슬림과의 비교를 위하여, 韓國中東學會 論叢,第31-1號 韓國中東學會, 2010, 105-149.[153] 하지만 당시의 알리고등학교는 이슬람 미션스쿨이기는 했지만, 알부 기독교 계열 미션스쿨처럼 학생들에게 이슬람을 강요하지는 않았고, 일주일에 한번 있는 교양수업에 강제성이 없는 이슬람 교리, 쿠란 낭독 정도나 신청자에 한해 이슬람 체험 활동 정도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걸 신청하는 이들도 거의 없었다고 하며 그 외에도 제2외국어 영역으로 아랍어를 선택할 수 있었다.[154] 한국의 개신교 신자들은 이슬람권 나라에 개신교 선교를 나서면서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이다. 인구 비율로 보면 미국을 압도한다.[155] 사람이 많이 오는 것도 아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운영자금을 지원하겠다고 했음에도.[156] 2015년 중반부터 기독교 언론인 국민일보나 크리스천투데이 등에서 이에 대한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한 걸로 보아 루머의 출처는 기독교계로 추정된다. 기독교계는 국가식품클러스터 사업이 시작할 때부터 맹렬히 비난했으며 할랄 푸드가 '대한민국을 공격하기 위한 이슬람의 공세'라고 주장했고 KBS의 할랄사업 다큐멘터리 방영 때에도 비난기사를 내보냈다. 20대 총선에 출마한 기독자유당의 경우 주요 공약 중 하나로 할랄 단지 반대를 내걸기도 했다.[157] 이 글은 신빙성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신미선씨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신미선씨인 것 처럼 글을 썼다는 것. 실제 기독교 사이트를 중심으로하여 일반 사이트까지 많이 확산되어 있으나, 원글은 게시일자, 사이트주소 등 게시글의 출처를 확인할 수 있는 흔적이 전무하고 오로지 내용 캡처본 밖에 없으며, 언론사를 통해 기사화 된 바도 없다. [158] 해당 카페에서 원문내용을 확인하려면 일단 카페에 가입해서 정회원 승인을 받아야 한다. '알리야&앰버 맘'이란 닉네임으로 사연글을 올렸으며 일찍이 개설한 본인의 블로그(첫 글을 제외하곤 활동은 없지만)도 들어가볼 수 있다.[159] 그러나 그 책은 피해 당사자인 엄마가 쓴 책이므로 엄마의 시선으로만 작성되어 있음을 유념할 필요도 있다.[160] 무함마드 아심이 한국에도 세우려 했던 이 종교학교는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식 '마드라사'이다. 이 마드라사는 그 지역의 테러범 양성소라 불릴 정도로 이슬람 근본주의의 온상으로 악명이 높다. 당장 세우려던 무함마드 아심부터가 파키스탄 탈레반 중범죄 테러범이었고.[161] 특히 그리스인들이나 슬라브인들.[162] 우리나라 무슬림은 대부분 수니파이다. 시아파는 소수파에다가 원리원칙에 집착하는 성향이 강해서 해외 다른 국가들에게 동화되기 힘든고로 국외 진출이 어렵다(기껏해야 고향에서 시아파 믿던 사람이 다른 나라로 갔을 경우 정도). 실제로 국외와 교류가 많거나 국내외적으로 잘 알려진 이슬람 국가들(사우디, 이집트, 요르단, 터키,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인도네시아 등)은 수니파가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163] 특히 독일의 경찰이 이 극단주의자 무슬림들의 범죄 때문에 유독 무슬림에게만 엄격해진다. 이는 독일뿐만 아니라 무슬림이 사는 다른 유럽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다.[164] 왜냐면 유럽은 토착 기독교 신자가 많이 감소한 상황이다.[165]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 선교는 그 자체가 죽음을 각오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다.[166] 주로 비이슬람권의 보수언론들이다.[167] 트레이 파커와 멧 스톤은 이에 대해 무슬림 전체를 비하할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168] 실제로 이슬람을 비판한 유럽의 언론인들이 경찰한테 신변 보호를 받았다.[169] 혹은 사우스 파크처럼 여기에 역자극을 받아 더 악랄하게 하는 경우도(...).[170] 그러나 중동 출신이라고 해서 전부 다 무슬림은 아니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171] 사실 스트리트 파이터는 원래 되도록 무국적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실제로 터키인은 겉으로 볼 때 아랍인보다는 동부 유럽인들과 비슷하게 생겼다. 터키인 문서 참고.[172] 때로는 불교적인 요소를 여기에 융화시키기도 한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도 무속신앙, 도교 같은 전통 신앙이 불교와 어느 정도 융화된 것과 비슷하다.[173] 돼지고기를 거리낌없이 먹긴 하나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돼지고기를 먹는 지역이 있으므로 나이롱 신자라고 하긴 힘들다. 결혼하고 육식하는 일본의 불교 승려보고 땡중이라고 하지 않듯이 그러나 소스케는 돼지고기와는 달리 술의 경우엔 매우 완강하게 거부한다. 가만 종교상의 이유뿐만 아니라 건강상으로도 입맛으로도 너무 안맞아서 안마시는 것이다. 게다가 텟사가 필름이 끊겼을 때를 주제로 한 외전에서 술을 마신 텟사에게 '술을 마시면 마오처럼 됩니다. 이 일을 오래하려면 마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을 한 것 봐선 주변에 심각한 주정뱅이 때문에 술에 대해서 더 안 좋게 생각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174] 하지만 얘는 아프간 출신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래서 소스케가 종교적으로 매우 유연함을 보이는 것일 수도 있는데, KGB의 소년 암살자 출신인 사가라 소스케를 키우고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 중 하나인 '마지드'는 묘사로 보면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전쟁의 아프간의 전설적 게릴라이자 영웅 아흐마드 샤 마수드에서 따 온것이 거의 확실하다. 실존인물 마수드는 이슬람 원리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는 하지도 않았고 여성교육, 인권을 생각하고 타민족과의 포용(종교적 문제까지 포함해서)을 이야기하는 굉장히 깨인 인물 중 하나였다. 마수드가 살아있었으면 아프가니스탄이 지금과는 분명 달랐을 것이라는(긍정적으로) 평가가 주를 이룰 정도의 영걸. 즉 마지드 밑에서 성장한 소스케가 사상적으로 매우 유연한게 당연하다.[175] 또한 소스케는 종교 이전에 '전투와 용병일'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그런 행동방식을 보인다고 봐야한다.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임무완수와 생존이다(소스케의 이런 성향이 치도리 카나메와 사람들과의 교류로 완화되고 고쳐지는 것은 풀 메탈 패닉 작중에서도 중후반 이후다). 어느 환경에서 뭘 먹고 생존하게 될 지 예상하기 어려운데 돼지고기니 뭐니 하며 가리면 활동이 매우 어려워진다. 즉 종교 이전에 군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을 두었다면 별로 이상하진 않은 부분.[176] 애초부터 서구의 게임들은 주인공이나 핵심 진영이 서구다.[177] 일례가 워해머 판타지. 엘더스크롤 시리즈도 이슬람과 무슬림 모티브인 레드가드가 서구를 모티브로 한 제국에 종속되며 살았었다.[178] 사실 이슬람도 근세까지는 유럽과 대등할만큼 강했다. 대항해시대가 대표적인 예시인데 이슬람 진영에 있었던 오스만 제국이 너무 강했기 때문에 동쪽 땅이 아니라 바다로 나간 것만 해도 그 당시 이슬람의 힘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근대가 되면서 경제력과 기술력에 넘사벽의 차이가 나다보니 군사력이 역전되어 유럽한테 이기기는커녕 실컷 쳐맞고 살며 영토 유지도 겨우 하는 형편이 되었다. 지금도 서구권의 군사력과 이슬람권의 군사력은 그야말로 넘사벽이다.[179] 게임에 엄격한 중국만 해도 반이슬람 게임은 신경안쓴다. 당장에 중국군에서 제작하여 발매한 게임 광영사명에서도 등장한 적에서 무슬림이 나온다.[180] 반대로 서구권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와 범죄 때문에 반이슬람 감정이 강해지고 있는 현실이다.[181] 사실 이슬람권에서 만든 게임들은 하나같이 질이랑 성능이 매우 떨어진다. 서구의 게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 사우디에서 그렇게 오일머니로 벌어들인 돈으로 투자한 언어스드도 최악의 게임으로 평가받는다. 이슬람권에서 서구가 싫어도 괜히 서구의 게임을 하는 게 아니다.[182] 이는 이슬람권의 과도한 게임 규제 때문에 그렇다. 뭔가를 할려면 '종교에 어긋난다', '그런 것은 불경하다'며 검열하고 제재하니 게임 산업 자체가 발전할 수가 없다. 해외에서 개발한 게임들조차 정치,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 금지하려드니 유저들은 국가의 규제를 피해서 몰래 해야하는 수준이다. 이러다보니 게임 제작사들도 이슬람권만은 사업하기를 굉장히 꺼린다.[183] 사실 이런 근본주의를 탈피한 이념이 가능한 이유가 원래는 하퀴슬람이 이슬람 국가들에게 이단으로 심하게 억압당했지만 세계관에서 자원의 고갈이 가져온 에너지 대공황과 이슬람 국가들간의 전쟁으로 이슬람 국가들 전체가 몰락했고 그들이 신념으로 삼던 종교인 이슬람교마저 몰락하여 혼란에 빠진 상황이라서 이를 대체할 새로운 이념이 필요했기에 가능했다. 내부적 설정은 이렇고, 외부적으로는 인피니티가 나온 스페인 문화계 자체가 근현대까지 사회를 강하게 억눌러온 카톨릭 신정주의에 대한 반발도 있고, 무엇보다 중세에 찬란한 영화를 누리다가 사라졌지만 지금도 스페인 문화에 엄청난 영감을 주는 알 안달루스의 역사적 경험에 기반한, 돈키호테의 화자 중 하나인 시데 아메떼 베네헬리 처럼 현명한 아랍인 같은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184] 이슬람권보다는 중동권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 애초에 판타지 작품이기도 하고, 작중 종교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185] 주인공인 사가라 소스케가 무슬림이라는 설정이 있다.[186] 정확히 이슬람을 차용한 것은 아니지만 이슬람을 모티프로 한 종교가 작중의 주요 종교다. 특히 문화나 고유명사(자카트샤하다 등)들은 이슬람의 것을 따온 곳이 많다.[187] 근본주의에서의 탈피를 제창한 이슬람 분파에서 출발했다는 설정으로, 그 이름도 '새로운 이슬람' 혹은 '참된 이슬람'이라는 뜻이다. 중세시대의 이슬람 문화권처럼 개방적이면서도 과학 기술적으로 발달한 이미지이다.[188] 아랍 에미리트에서 발간된 최초의 일본식 만화. 영어를 더 선호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아랍어로 된 만화를 그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