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동예술극장
최근 수정 시각:
명동예술극장 明洞藝術劇場 | Myeongdong Theate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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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 | |
개관일 | |
소재지 | |
운영 | 재단법인 국립극단 |
관할 | |
우편 번호 | 04534 |
연락처 | 02-1644-2003 |
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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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좌(明治座) 전경 (1937년 6월 이후) |
명동예술극장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명치좌(明治座)라는 극장으로 개관하였다. 명치(明治), 즉 메이지라는 명칭은 일본 왕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며, 당시 명동 일대를 명치정(明治町)이라고 불렀다. 당시 건축주는 일본인 이시바시 료스케(石橋良祐)였고 건축가는 다마타 기쓰지(玉田橘治)가 설계를 담당했으며 부민관, 황금좌 등과 함께 1930년대 일본인 위락시설의 역할을 담당했으며 주 고객이 일본인이였기 때문에 주로 일본영화만을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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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전당 명치좌 (1938년 6월) |
당시 관객 수용인원은 1178명(1층 664명, 2층 354명, 3층은 160명)으로 지하 1층, 지상 4층의 바로크 양식 건물이었고, 옥탑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평지붕이었다. 철골 철근 콘크리트조에 붉은 벽돌로 벽체를 마감하였고 명동의 안쪽 사거리에 위치하여 건물의 모서리 부분을 정면으로 하여 양 측면이 같은 모양으로 지어졌다. 5층으로 보이도록 옥탑부까지 부벽(扶壁)을 세웠다고 옥탑 상부는 원형판을 올려놓은 것 같아 전반적으로 곡선이 강조된 느낌이다. 2009년, 재개관 당시 이전부터 건물의 보존을 주장해온 '김정동' 목원대 건축공학과 교수에 따르면 이 건물은 1930년 일본 도쿄 아사쿠사에 있었던 유명 극장인 오가츠칸(大勝館)을 그대로 베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디자인이 똑같다고 한다. 같은 해에 착공하여 같은 해에 준공된 국도극장 또한 똑같다고 전했다. #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미 군정청 시대가 되며 국제극장이란 이름으로 재개관했다. 당시 한국의 공연예술인들은 자유롭게 예술세계를 펼칠 수 있는 공연장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국립극장 설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여러 예술가들의 연이은 건의에 미군정 당국은 당시 국제극장으로 불리던 명동예술극장을 국립극장 건물로 내밀히 지정하지만 국제극장을 영화관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몇몇 영화배급업자들의 반발로 계획은 무산된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 미 군정청 시대가 되며 국제극장이란 이름으로 재개관했다. 당시 한국의 공연예술인들은 자유롭게 예술세계를 펼칠 수 있는 공연장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국립극장 설립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여러 예술가들의 연이은 건의에 미군정 당국은 당시 국제극장으로 불리던 명동예술극장을 국립극장 건물로 내밀히 지정하지만 국제극장을 영화관으로 사용하고자 하는 몇몇 영화배급업자들의 반발로 계획은 무산된다.
이후 1947년에는 서울시 소유가 되어 시공관(市公館)이란 이름으로 집회시설로 쓰이거나 연극 등을 공연하는 곳으로 바뀌었으며 1948년, 남한정부가 수립되고 새 정부는 그 사이 서울시공관이 되어버린 명동예술극장을 다시 한번 국립극장 건물로 지정하려 하지만 서울시의 반발로 결국 부민관을 국립극장으로 정하게 된다. 그러나 개관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6.25 전쟁이 일어나고 국립극장은 피란간 대구에 임시로 거처를 마련하여 운영되다가 1957년 뒤늦게 환도하게 된다. 정부는 파손된 부민관 대신 서울시공관을 새로운 국립극장의 터전으로 정하고 1957년 6월 1일, 시공관은 다시 명동예술회관이란 이름으로 바뀌며 국립극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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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국립극장 개관 초기 모습 (1962년 4월 30일) |
1961년 서울시가 서울시민회관으로 이전함에 따라 건물은 온전히 국립극장 소유가 되고 옥상 일부분을 증축, 지붕 처마선을 복잡하게 엮는 등 대대적인 개보수를 거쳐 1962년 3월 21일 명동 국립극장으로 재개관하게 되며 1973년 10월 17일 남산 장충동 국립극장이 개관될 때까지 10여년간 국립극장으로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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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투자신탁증권 종합금융본부 시절 모습 (2000년 5월) |
국립극장이 장충동으로 이전한 후 당분간 산하 예술극장으로 쓰이다가 1975년 정부가 국립극장 신축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대한투자금융(훗날의 대한종합금융)에 건물을 매각하면서 폐쇄되었고 매각 이후 금융기관으로 활용되던 중, 건물 철거소식이 알려지고 1995년에 문화예술계 및 지역인사를 중심으로 건물 되찾기 운동이 전개되었다. 1999년 대한종금이 IMF 외환위기 여파로 퇴출된 후 현대투자신탁증권 종합금융본부가 자리잡다 문화관광부로부터 보존건물로 지정,# 2003년에 문화관광부에서 400억 원에 땅과 건물을 매입하고 복원 및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해 2009년 6월 5일 국립 명동예술극장으로 새롭게 개관하였다. 명동예술극장의 발자취, 70주년 맞은 연극의 메카 '명동예술극장'
-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이 이곳에서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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