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알 마드리드 CF/케이로스 체제
최근 수정 시각:
[ 펼치기 · 접기 ]
| ||||||||||||||||||||||||||||||||||||||||||||
감독 | |
회장 | |
코치 | |
주장 | |
계약 기간 | |
계약 종료 (성적 부진으로 인한 경질) | |
연봉 | 미상 (감독 / 추정치) |
전술 스타일 | 공격적인 축구 ┗ 4-2-3-1 & 다이아몬드 4-4-2 혼용 ┗ 빠른 템포와 역습 중심의 극단적인 공격 축구 ┗ 데이비드 베컴의 미드필더 기용 ┗ 호베르투 카를루스의 공격 능력 극대화 ┗ 극단적으로 높은 수비라인 지향 |
역대 전적 | 59경기 34승 11무 14패 (승률 57.6%) |
113득점 76실점 | |
우승 경력 | |
2003년 여름, 케이로스는 느닷없이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 선임과정은 많은 이들의 비판을 받게 된다. 전(前) 레알 감독인 비센테 델 보스케는 선수 시절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였고 감독으로서도 90년대 감독들이 짤릴 때마다 땜빵 역할을 잘 수행했고 1999년부터 2003년까지 4년간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2회, 라 리가 우승 2회,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 1회, UEFA 슈퍼컵 우승 1회, 인터콘티넨탈컵 1회 등 수많은 타이틀을 획득했다. 특히 챔피언스 리그에선 4번 진출해서 4번 모두 4강 안에 드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또한 겸손, 근면하고 소박한 성품으로 언론으로부터 평판이 좋았고 당시 갈락티코 정책으로 팀에 유입된 무수한 스타 선수들을 잘 다스려 한 팀으로 융화시키는데에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경질되었으니 반발이 일어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델 보스케를 경질한 이유에 대해 "델 보스케는 피로를 보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지만, 그가 미래에 적절한 감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델 보스케의 전술은 전통적인 것이며 우리는 더 전술을 중요시하는 인물을 찾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퍼거슨의 '두뇌'로서 탁월한 전술 감각을 선보이는 젊은 감독 케이로스야말로 팀의 미래를 맡길 수 있으며 팀의 전술을 개선시킬 인물이라고 장담했다. 레알 팬들은 델 보스케에 비해 영 미덥지 못한 경력을 지닌 케이로스를 못마땅하게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퍼거슨이 높게 평가할 만큼 능력이 있는 인물이니 팀을 잘 이끌 것이라고 기대했다.[4]
그러나 케이로스는 레알의 흑역사를 초래하고 만다.
플로렌티노 페레스 회장은 델 보스케를 경질한 이유에 대해 "델 보스케는 피로를 보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지만, 그가 미래에 적절한 감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델 보스케의 전술은 전통적인 것이며 우리는 더 전술을 중요시하는 인물을 찾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퍼거슨의 '두뇌'로서 탁월한 전술 감각을 선보이는 젊은 감독 케이로스야말로 팀의 미래를 맡길 수 있으며 팀의 전술을 개선시킬 인물이라고 장담했다. 레알 팬들은 델 보스케에 비해 영 미덥지 못한 경력을 지닌 케이로스를 못마땅하게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퍼거슨이 높게 평가할 만큼 능력이 있는 인물이니 팀을 잘 이끌 것이라고 기대했다.[4]
그러나 케이로스는 레알의 흑역사를 초래하고 만다.

케이로스가 부임한 레알 마드리드는 당대 최고 스타들이 즐비했다. 지네딘 지단, 호나우두, 루이스 피구, 라울 곤살레스, 호베르투 카를루스 그리고 데이비드 베컴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은 영국, 프랑스, 브라질, 스페인, 포르투갈 등의 여러 국가들에서 최고의 선수로 각광받는 선수들이었다. 이 선수들을 잘만 활용한다면 라 리가는 물론이고 빅 이어도 손쉽게 얻을 수 있었지만 케이로스는 이들을 최대한으로 활용할 전술을 개발하는 데 실패했다.
2003-04 시즌 중반엔 라리가 선두를 찍고 코파 델 레이와 챔피언스 리그를 순항할 때만 해도 모든 게 잘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당시 레알은 스타 선수들을 구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어 정작 중요한 수비 쪽은 제대로 보강하지 않았고 유스들로 수비를 채우고 공격 쪽엔 스타 선수를 채운다는 이른바 지단-파본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러다보니 화려한 공격에 비해 수비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고 급기야 뒷공간을 책임지는 믿음직한 수비 클로드 마켈렐레를 팔아버리고 공백을 메꾸지 않는 우를 범하는 바람에 전력의 균형이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레알은 스페인 국왕컵에서 16강 진출에 그치는 실망스런 성적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챔스 8강에서 모나코에게 3골을 먹히며 탈락했고 리그에서도 마지막 5경기를 모두 패하는 충격적인 결과를 맞이하여 리그 4위에 그쳐 결국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5] 시즌이 끝난 뒤 케이로스는 곧바로 경질되고 만다.
그의 레알에서의 실패 원인은 전력의 불균형이 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타 선수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델 보스케 시절, 선수들은 그의 지시에 절대 복종했고 모두가 한 팀이 되어 팀워크가 잘 맞았다. 그러나 케이로스에겐 그런 리더십이 없었고 선수들은 선수 경력이 보잘 것 없는 그를 경원시했다. 베컴은 아예 그를 "이상한 감독"이라 칭하며 레알 마드리드에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때와는 달리 충분히 체력훈련을 받지 못했고, 소속팀 동료 선수들도 각자 개인훈련으로 체력을 단련했다며 케이로스 전 감독의 훈련 태만을 지적했다. 이에 포르투갈의 피구도 레알 마드리드의 체력훈련에 문제가 있었다며 베컴에게 힘을 실어줬다.#
사실 그의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때까지 그의 경력을 보면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는 포르투갈 국가대표팀과 스포르팅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것뿐이었고 그 외에는 퍼거슨의 수석 코치로 한 시즌 동안 함께 한 것이 거의 전부라고 봐도 무방했다. 누가 봐도 레알 마드리드같은 명문 중의 명문 클럽을 맡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선수로서 레전드였던 것도 아니고 아마추어로서 골키퍼를 몇 년 했던 게 전부였다. 게다가 전임 감독은 레알의 레전드였고 감독으로서도 눈부신 성공을 거두고 레알 선수들에게 깊은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의 공백을 훌륭한 경력을 쌓아온 굴지의 명장들이라고 해도 어려울 판에 케이로스 같은 인물이 어찌 메꿀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2003-04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실패는 케이로스보다는 그를 선임하고 팀의 전력을 흐트러지게 만든 페레스 회장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면 케이로스 체제는 부족했던 상위 레벨 감독 경험과 과유불급인 스쿼드로 인해 실패했다고 평가된다.많은 비판을 받았음에도 아이러니하게 케이로스 체제의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이 갈라티코 1기의 마지막 우승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의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때까지 그의 경력을 보면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는 포르투갈 국가대표팀과 스포르팅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 것뿐이었고 그 외에는 퍼거슨의 수석 코치로 한 시즌 동안 함께 한 것이 거의 전부라고 봐도 무방했다. 누가 봐도 레알 마드리드같은 명문 중의 명문 클럽을 맡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선수로서 레전드였던 것도 아니고 아마추어로서 골키퍼를 몇 년 했던 게 전부였다. 게다가 전임 감독은 레알의 레전드였고 감독으로서도 눈부신 성공을 거두고 레알 선수들에게 깊은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의 공백을 훌륭한 경력을 쌓아온 굴지의 명장들이라고 해도 어려울 판에 케이로스 같은 인물이 어찌 메꿀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2003-04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실패는 케이로스보다는 그를 선임하고 팀의 전력을 흐트러지게 만든 페레스 회장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면 케이로스 체제는 부족했던 상위 레벨 감독 경험과 과유불급인 스쿼드로 인해 실패했다고 평가된다.많은 비판을 받았음에도 아이러니하게 케이로스 체제의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우승이 갈라티코 1기의 마지막 우승이라는 것이다.
![]()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