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에타노 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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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타노 시레아의 역임 직책 | ||||||||||||||||||||||||||||||||||||||||||||||||||||||||||||||||||||||||||||||||||||||||||||||||||||||||||||||||
가에타노 시레아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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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타노 시레아의 기타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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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前 축구 코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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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가에타노 시레아 Gaetano Scirea | |
출생 | ||
사망 | ||
국적 | ||
신체 | ||
직업 | ||
소속 | 선수 | |
감독 | 유벤투스 FC (1988~1989 / 수석 코치) | |
국가대표 | 78경기 2골 (이탈리아 / 1975~1986) | |
아탈란타 유스 팀에서 1군 팀으로 승격하며 프로에 데뷔하였다. 팀의 핵심 선수였지만 세리에 B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유벤투스가 시레아를 영입한다. 시레아는 안토넬로 쿠쿠레두, 클라우디오 젠틸레, 안토니오 카브리니와 함께 포백을 이루며 세리에 A 7회 우승과 UEFA컵 및 유러피언컵위너스컵 우승을 차지한다. 특히 1984-85 시즌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승리하여 빅 이어를 들어올렸다.[2] 이후 1987-88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시레아는 유벤투스에서 총 552경기에 출전하여 통산 출전 3위[3]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시레아는 유벤투스에서 총 552경기에 출전하여 통산 출전 3위[3]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1975년에 국가대표에 데뷔한 시레아는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4위에 그쳤고, 유로 1980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에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4위에 그쳤다.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우승에 공헌했는데, 이때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최후방부터 드리블을 몰고 가서 원투 패스로 독일 진영을 완전히 유린하고 마르코 타르델리의 득점을 도와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16강에서 탈락했고,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우승에 공헌했는데, 이때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최후방부터 드리블을 몰고 가서 원투 패스로 독일 진영을 완전히 유린하고 마르코 타르델리의 득점을 도와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16강에서 탈락했고, 이후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이탈리아식 리베로의 상징. 보다 공격적이고 과시적인 성향이 강했던 독일식 리베로와는 다르게 안정성을 우선한 경기 운영을 꾀했으며, 침착성에서 비롯된 리딩 능력이 뛰어났다. 상당히 지능적인 선수로, 상대의 패스 흐름을 정확히 예측하여 차단하는 인터셉팅 능력, 수비 조율, 커버 플레이, 안정적인 클리어링, 정교한 태클 등, 커맨더형 수비수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시대를 풍미한 리베로답게 그의 공격력 또한 짚어보자면, 중앙에서 뿌려주는 정확한 중장거리 패스로 팀 빌드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가 하면, 타이밍을 빼앗아 한 번에 수비 지역까지 들어갈 수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드리블링이나 스피드가 뛰어났다기보다 볼을 운반할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잘 잡았던 탓이 크다. 공격 전개 시 자칫 실수로 팀을 위기에 빠뜨리는 모험적인 플레이를 극도로 기피했으며 철저하게 계산된 플레이 내에서 적재적소에 공격 가담을 하는 확고한 플레이 스타일을 지니고 있던 선수로 회자된다.
시대를 풍미한 리베로답게 그의 공격력 또한 짚어보자면, 중앙에서 뿌려주는 정확한 중장거리 패스로 팀 빌드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가 하면, 타이밍을 빼앗아 한 번에 수비 지역까지 들어갈 수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드리블링이나 스피드가 뛰어났다기보다 볼을 운반할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잘 잡았던 탓이 크다. 공격 전개 시 자칫 실수로 팀을 위기에 빠뜨리는 모험적인 플레이를 극도로 기피했으며 철저하게 계산된 플레이 내에서 적재적소에 공격 가담을 하는 확고한 플레이 스타일을 지니고 있던 선수로 회자된다.
1988년 현역 은퇴 이후 유벤투스의 수석 코치로 임명됐으나, 1년 3개월이 지난 1989년 9월 3일에 유벤투스와 구르니크 자브제의 UEFA컵 경기 해설을 위해 폴란드 자브제로 이동하던 중 밥스크에서 트럭과 정면으로 추돌하는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차량에는 가솔린 캔 4개가 실려 있었는데,(당시 폴란드에는 가스 파동이 발생해 비상시를 위해 가솔린 캔을 차에 싣고 다니는 일이 흔했다) 추돌과 함께 폭발했고, 그와 함께 동승한 2명도 함께 명을 달리했다. 향년 36세.
그 후 1990년 신축된 스타디오 델레 알피에는 '쿠르바 가에타노 시레아'라는 이름의 서포터석이 설치되었고, 유벤투스 측은 매년 시레아를 기리는 행사를 열고 있다.
또한, 신사적인 태도와 빼어난 활약상으로써 본보기로 회자되었던 그의 이름을 따, 가에타노 시레아 경력모범상(Premio Nazionale Carriera Esemplare "Gaetano Scirea")를 신설했는데, 이 상은 현역 시절에 위업을 세우고, 재능을 뽐냈으며, 신실한 태도를 보인 전설적인 선수들에게 수상되었다.
그 후 1990년 신축된 스타디오 델레 알피에는 '쿠르바 가에타노 시레아'라는 이름의 서포터석이 설치되었고, 유벤투스 측은 매년 시레아를 기리는 행사를 열고 있다.
또한, 신사적인 태도와 빼어난 활약상으로써 본보기로 회자되었던 그의 이름을 따, 가에타노 시레아 경력모범상(Premio Nazionale Carriera Esemplare "Gaetano Scirea")를 신설했는데, 이 상은 현역 시절에 위업을 세우고, 재능을 뽐냈으며, 신실한 태도를 보인 전설적인 선수들에게 수상되었다.
세계 최고? 수비에서라면 그건 시레아를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다. 모든 수비수들은 시레아의 '그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디에고 마라도나
상대가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공을 걷어내던 우아함...- 프랑코 바레시
가에타노는 확실한 스타일과 함께 모든 면에서 예외적인 사람이었다.- 디노 조프
충실하고 영리하다. 상대했던 몇몇 선수들과 함께 '가치있음'의 예시.- 주세페 베르고미
베켄바워를 제외하면 우리 팀 리베로들이 최고였다. 원래 리베로들은 극도로 수비 지향적이지만, 그들은 모두 진화하기 시작했고 결국 경기를 조절하는 선수들이 되었다. 가에타노 시레아가 그 첫 번째 진화를 거친 선수였는데, 그는 항상 공이 있는 곳에서 경기했다.
베켄바워와 시레아 모두 미드필더 출신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리베로의 전형을 만들었다. 공을 가지고 전진하거나 필드 전방위에 걸쳐 플레이를 진행했다. 그들이야말로 우리의 본보기였다.- 레나토 자카렐리
가에타노 시레아는 언제나 나의 캄피오네였다.
모든 이의 모범. 가에타노는 정직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세르조 브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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