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오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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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역사
야오밍 프로필 사진
휴스턴 로켓츠 No. 11
야오밍
姚明 | Yao Ming
출생
국적
학력
상하이교통대학 (경제학 / 학사)
신장
227.3cm (7' 5.5'')[1]
체중
141kg (310 lbs)[2]
윙 스팬
226cm (7' 5")
후원사
포지션
드래프트
소속 구단
가족
배우자: 예리(Ye Li, 1981. 11. 20.생)[3]
자녀: 야오친레이(Yao Qinlei, 2010. 5. 22.생)[4]
링크
인스타그램 아이콘 | NBA 로고
 
 
 
 
 
 
 
 
 
 
 
 
 
 
 
 

1. 개요2. 선수 경력3. 자주 부상을 당하는 이유4. 명예의 전당 헌액5. 플레이 스타일
5.1. 공격5.2. 수비5.3. 약점5.4. 종합
6. 평가 및 위상7. 수상 내역8. NBA Career Statistics9. 말말말10. 여담
10.1. 얼굴 개그
11. 관련 문서12. 둘러보기

 
 
 
 
 
 
 
 
 
 
 
 
 
 
 
 
 
 
 
 
 
 
 
 

1. 개요[편집]

 
 
 
 
 
 
 
 
 
 
 
 
 
 
 
 
 
 
 
 
 
 
 
 
 
 
 
 
 
 
 
 
 
 
 
 
 
 
 
 
 
 
 
 
 
 
 
 
 
 
 
 
 
 
 
 
 
 
 
 
 
 
 
 
 
 
 
 
 
 
 
 
 
 
 
 
 
 

3. 자주 부상을 당하는 이유[편집]

 
 
 
 
 
 
 
 
 
 
 
 
 
 
 
 
 
 
 
 
 
 
 
 
농구 선수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키가 너무 큰데 샤킬 오닐마냥 체격이 두터운 것도 아니었으며[5] 벌크업 전에는 그보다 훨씬 마른 몸이었다. 과거 휴스턴 로켓츠에서 하킴 올라주원과 트윈타워로 대활약했던 223cm의 랄프 샘슨이나 231cm의 초거인 게오르그 뮤레산, 마누트 볼 등 220cm를 넘는 초거대 선수들이 NBA 같이 82게임 풀시즌이라는 매우 빡빡한 스케줄에 운동량이 엄청난 리그에서 오래 살아남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야오밍 또한 제대로 뛴 시즌이 7년에 그쳤다.[6] 유일하게 12년이라는 긴 커리어를 보낸 228cm의 초장신 숀 브래들리는 매우 마른 체격으로 신체에 오는 부담을 최소화한 데다가 평균 출장 시간이 30분이 넘은 시즌이 세 번밖에 없을 정도로 관리를 받았으며, 커리어 후반의 세 시즌은 경기당 15분 미만으로 뛰었다. 애초에 그는 수비 전문 선수라서 팀 내에서 맡는 역할이 제한적이었는데도 커리어 내내 부상에 시달렸다. 그러나 야오밍은 브래들리처럼 마른 체격도 아니면서 신발신은 키가 228cm에 육박했고, 팀의 기둥으로서 막중한 역할을 맡은 데다가 루키 시즌과 5 경기 만에 아웃된 마지막 시즌을 제외하고는 줄곧 평균 30분 이상을 뛰었으니 몸에 무리가 올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가 이렇게 자주 부상을 당한 결정적인 이유는 NBA 시즌이 끝난 후 여름에는 중국대표팀 일정까지 소화하면서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NBA팬들과 중국팬 그리고 중국농구협회는 "야오밍의 부상 책임이 누구한테 있느냐"에 대해서 엇갈린 의견을 가졌다. NBA팬들은 "중국농구협회가 야오밍의 몸상태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무리하게 국가대표로 차출시켜서 오늘날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한다.[7] 실제로 야오밍은 잇단 국가대표 차출로 인해서 과부하가 걸린 상태였고, 결정적으로 베이징 올림픽에 참가한 것이 독이었다. 이때 야오는 부상에서 회복된 지 얼마되지도 않았기에 당연히 컨디션이 좋을 리 없었다. 아무리 자국에서 열리는 첫 번째 올림픽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참가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것이 부상을 더 키우고 말았다. 반면 중국농구협회와 중국팬들은 야오밍의 부상은 휴스턴 구단의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야오밍의 백업요원만 영입했더라면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의견이다. 실제로 야오밍을 받쳐줄 백업요원은 팀 내에서 디켐베 무톰보 정도였지만 그는 이미 불혹을 넘긴 노장이었기에 야오밍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그러나 당시에는 NBA에 쓸 만한 센터가 적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척 헤이스가 있었다곤 하지만 센터로서는 심각한 언더사이즈인 198cm였고, 그나마 데려온 센터들은 10분을 맡기기도 힘든 선수들이었다. 1차적인 책임은 야오밍 하나에만 의존한 CBA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근시안적인 대표팀 운영으로 인해 NBA에서 전성기를 보내야 했던 야오밍은 30세가 되기도 전에 은퇴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는 위의 2가지 악재가 전부 다 적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분명히 7피트6인치, 310파운드가 넘는 거구는 태생적으로 신체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약 그가 숀 브래들리급은 아니더라도 중국 팀이건, 휴스턴이건 어느 정도 관리를 해 줬더라면 그래도 커리어를 이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가장 큰 책임은 국보급 스타를 국제 대회마다 차출해서 부려먹은 중국농구협회에 있겠지만, 휴스턴 로켓츠 또한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야오는 출장 시간과 별개로 공수에서 엄청난 부담을 져야 했다. 또한 05시즌까지는 29~32분으로 출장 시간 관리가 잘 되었으나 06시즌부터 야금야금 출장 시간이 늘어나더니 08시즌엔 평균 37분까지 늘어났다. 사실 07시즌도 시즌 전체 수치만 보면 33.8분으로 관리가 어느 정도 된 것처럼 보이지만, 경기당 기록을 자세히 보면 초반 26경기 동안 35.7분 동안 뛰게 하다가 부상 당한 이후 출장시간이 줄어든 것이다. 당시 기록출처을 보면 40분 넘는 경기도 종종 보이고, 48분 뛴 경기까지 보이는 등, 야오가 거인 센터라는 걸 전혀 감안하지 않고 그냥 뛰게 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야오밍에 앞서 NBA에 진출한 왕즈즈는 NBA 경력을 위해 국대 선발을 거부했다. 문제는 왕즈즈가 군경 구단 바이 로켓츠 출신으로 현역 군인(중령) 신분이었다는 점이었다. 왕즈즈가 NBA에서 실패하고 중국에서 돌아왔을 때 CBA와 바이 로켓츠는 국대 선발을 거부한 왕즈즈에게 징계를 내려야 한다는 여론이 다수였다. 하지만 당시 중국 체육부대장이었던 천자오디 소장이 이병으로 강등시키는 조건으로 복귀를 허용해서 겨우 CBA에서 커리어를 마칠 수 있었다.

야오의 전성기 당시 중국 팀은 후웨이동의 노화 이후 그 자리를 메워 줘야 하는 류웨이, 쑨예 등 외곽선수들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야오에 대한 비중이 커졌고, 야오에 대한 의존도는 20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왕즈즈가 국대에서 제명되면서 더욱 커졌다.

실제로 야오는 부상에서 복귀하는 오프시즌에 중요한 국제 경기를 치른 경우가 잦았다. 야오가 부상악령에 본격적으로 시달리기 시작한 게 05-06시즌이었는데, 이때 야오는 4월 10일에 시즌아웃급 부상을 당했고 이 부상은 6개월 휴식을 요구했다. 그러나 야오는 이해 8월에 일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했으며, 많은 출장 시간을 소화하며 25.3점 9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회복 기간을 줄여가면서 장거리 여행을 해 아시아까지 건너가서 대표팀에 합류하고, 국제 대회를 뛰었던 것이다.

뒤이어 야오는 2008년 2월 도중 또 한번의 시즌아웃급 부상을 당하지만, 고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7월에 대표팀에 합류했으며 마찬가지로 팀을 캐리하며 8강 진출을 이끌었다.

보통 시즌아웃급 큰 부상을 당하면 천천히 재활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회복 기간이 끝나더라도 출장시간을 조절하거나 오프시즌이라면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위에 보다시피 야오는 휴식은커녕 오프시즌에 재활 기간을 줄여가면서 국제 대회를 치렀다. 시즌 중이나 플레이오프에서 부상투혼을 보이더라도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오프시즌에 무리해 경기에 출장하면 휴식 시간이 없어지기 때문에 더욱 무리가 올 수밖에 없다.[8] 이 때문에 많은 선수는 수술할 게 있으면 오프시즌에 수술하고 충분한 회복 기간을 가진 뒤에 시즌을 치른다. 그런데 회복 기간이었어야 할 오프시즌을 국제 경기 참석으로 날렸으니 부작용이 없을 수가 없다.
 
 
 
 
 
 
 
 
 
 
 
 
 
 
 
 
 
 
 
 
 
 
 
 

4. 명예의 전당 헌액[편집]

 
 
 
 
 
 
 
 
 
 
 
 
 
 
 
 
 
 
 
 
 
 
 
 
그리고 미국 현지 시간으로 2016년 9월 9일, 샤킬 오닐, 앨런 아이버슨과 함께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사실 파격적인 기량의 보기 드문 아시아인 NBA 스타라는 상징성을 제하고 본다면, 야오의 명전 입성은 의견이 갈리는 구석이 없잖아 있다. 물론 기량이야 어지간한 명전 빅맨들에게 꿀리지 않았고, 수상 이력 역시 세컨팀 2회에 서드팀 3회면 부족하지 않다. 올스타 선정도 8회나 되며, 사실상 중국인 투표자들의 지지덕분에 거저먹은 첫 시즌과 마지막 시즌을 제외해도[9] 6회로 나쁘지 않다. 즉, 기량과 수상 자체는 명전 입성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였던 게 맞다.

그럼에도 좀 애매하다는 평을 받는 건 통산 누적 때문. 부상 때문에 통으로 날린 09-10, 딱 다섯 경기 소화한 10-11 시즌을 제하면 야오밍이 NBA에서 제대로 뛴 건 사실상 일곱 시즌 정도이며, 통산 출전 경기도 486경기에 그쳤다. 누적 스탯은 9247득점에 4494 리바운드로 10000득점 5000리바운드를 찍지 못했을 정도인데, 명전이 누적을 꽤나 중요시하는 걸 생각하면 이는 사실 치명적인 감점 요인이 될 수 있다. 원래라면 (빈약한 누적으로 인해) 원 큐에 입성하기보단 꾸준히 입성 후보에 오르며 시간이 흘러 입성에 성공하는 정도의 커리어였다고 정리할 수 있다.

단, 이건 NBA 커리어만을 봤을 때의 얘기이고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은 엄연히 '농구' 명예의 전당이지 'NBA' 명예의 전당이 아니기 때문에 NBA 커리어만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유럽 레전드인 토니 쿠코치, 블라디 디박, 드라젠 페트로비치, 아비다스 사보니스 등 NBA 커리어만으로는 야오에게 확연히 못 미치는 선수들도 유럽 리그와 국제 무대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명전에 입성하는 마당에, 야오처럼 기량 자체는 톱클래스였고 수상 이력도 받쳐 주는 선수라면 다른 리그나 국제 무대에서의 활약이 더해질 경우 명전 입성이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야오는 중국 CBA에서 MVP(+파이널MVP)와 우승을 차지했고, FIBA 아시안 컵에서 세 차례의 MVP와 네 차례의 우승을 거머쥐었다. 농구계에서 아시아권 무대의 위상이 유럽에 비해 많이 낮긴 하지만 NBA와 국제 무대 양쪽에서 이만한 실적을 쌓은 선수는 굉장히 드물다. 중국의 농구 영웅이라는 지위와 NBA 최초의 슈퍼스타급 아시아 선수라는 상징성은 덤. NBA의 수준과 위상이 프로농구 리그 중 독보적으로 높아서 그렇지, 명예의 전당 입성이 꼭 NBA 커리어만으로 이뤄지는 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10]

야오밍은 이 날의 스피치로 본인의 위트있고, 유머러스한 성격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딸은 농구 대신 축구를 선택한 벌로 안 데려왔다"[11], "내가 첫 순서로 무대에 올라온 이유를 모르겠다. 첫 순서는 위대한 아이버슨에게 줬어야 한다. (청중 박수) ...난 아이버슨보다 연습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12], 여기에 더해 자신의 전성기 때 가장 큰 라이벌중에 한 명인 샤킬 오닐에게는 "좋은 손을 가진 덕분에 저놈보다 10000개 이상의 자유투를 안놓침"하며 재치있는 디스전도 장착했고, 자신이 오늘에 있게 해준 자신의 부인, 부모님, 중국농구계 관계자들, 자신의 비즈니스팀[13]에게 감사를 표하며 마무리를 지었다. 무엇보다 영어가 아주 유창하다.

이후 2023년에는 FIBA 명예의 전당에도 입상하였다.
 
 
 
 
 
 
 
 
 
 
 
 
 
 
 
 
 
 
 
 
 
 
 
 

5. 플레이 스타일[편집]

 
 
 
 
 
 
 
 
 
 
 
 
 
 
 
 
 
 
 
 
 
 
 
 


 
 
 
 
 
 
 
 
 
 
 
 
 
 
 
 
 
 
 
 
 
 
 
 
 
 
 
 
 
 
 
 
 
 
 
 
 
 
 
 
 
 
 
 
 
 
 
 
야오 밍 드림쉐이크
드림쉐이크를 멋들어지게 성공시키는 야오밍.[14]

커리어 내내 준수한 득점 기록을 냈음에도 그 막강한 공격력이 스탯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스타일이다.

일단 기술 면에서는 센터에게 필요한 모든 공격 기술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선수이다. 기술적으로 그의 가장 큰 장점은 손끝 감각. 슈팅 터치가 상당히 부드러워 슛이 안정적일 뿐 아니라 한 손으로 올려놓는 훅슛도 대단히 정확하다. 이 때문에 전성기 시절에 그가 림 근처에서 볼을 잡을 경우 막을 방법이 거의 없었다. 일반적인 센터들은 예나 지금이나 1.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우격다짐식 덩크, 공격 리바운드 후 세컨드샷, 앨리웁 받아먹기 등에 특화된 선수들과, 2. 빅맨답지 않은 볼핸들링 능력이 있어 레이업/핑거롤이 주무기인 선수들로 양분되어 있지만, 야오밍은 덩크건 핑거롤이건, 좀 떨어진 거리에서 훅슛이건 전부 능했다.

야오밍은 기술적으로도 대단히 완성도가 높은 빅맨이었지만 이 기술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그의 무지막지한 피지컬. 228cm란 말도 안 되는 초장신에 윙스팬도 키에 비하면 좁긴 하지만 그래도 키와 비슷한 수준이라[15] 타점이 무지막지하게 높아서 기습적으로 타이밍을 잘 잡지 않으면 블럭이 거의 불가능하다. 실제로 샤킬 오닐은 216cm 장신에 팔도 긴데도 야오밍은 그의 블럭을 크게 신경쓰지 않고 공격했으며, 알론조 모닝이나 드와이트 하워드 같은 키 작은 센터들은 그에게 거의 털렸다.[16]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그의 파워다. 사실 야오밍의 상체는 NBA 센터치고 튼실한 편이 아니었다. 커리어 내내 계속된 것이 오프시즌 벌크업→개막 후 좀 지나면 다시 팔이 가늘어지는 패턴이었는데, 야오가 아무리 노력파라도 NBA의 가혹한 스케줄은 지구력이 좋은 편이 아닌 그에게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타고난 어마어마한 하체가 있었다. 한때 중국인 의사들이 "농구 선수로서 대성하기 힘들 것"이라고 한 이유인 튼실한 엉덩이와[17] 나무 줄기 같은 굵은 종아리로 밀고 들어가는 야오를 정면으로 막아낼 수 있는 빅맨은 거의 없었다. 야오가 이 백다운으로 상대하지 못한 상대는 샤킬 오닐뿐이었고[18]오닐에게조차 어느 정도는 로우포스트에서 들이댈 수 있는 선수가 바로 야오밍이었다.[19]

야오밍은 골밑에서 파괴력만 대단했던 것이 아니라 공격 범위도 넓었다. 앞서 언급된 골밑 마무리/훅슛 외에 10~15피트 거리에서 턴어라운드 페이더웨이, 그보다 먼 거리에서 중거리슛도 장착하고 있었다. 슈팅 능력에 있어 야오밍은 당대 센터들과 비교해서는 안 될 수준이었다.

사실 농구 선수, 특히 빅맨들은 키가 크고, 그 큰 몸집에 비해 날렵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이기 때문에, '손끝 감각'에 있어서는 농구 잘 하는 일반인 이하인 선수들도 적지 않다. 4 중에서는 패트릭 유잉이 슛 터치가 부드러운 것으로 유명했지만, 자유투 성공률은 74.0%로 하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과 비교해서 근소하게 앞서는 정도였다. 야오밍과 같은 시대 중거리샷이 뛰어난 빅맨으로 이름난 카를로스 부저 또한 자유투율은 72.2%에 그쳤다. 그에 반해 야오밍의 통산 자유투 성공률은 무려 83.3%로 전문 슈터 못지않은 수준이었다.[20] 그러다 보니 팀 내 최장신이면서 한때 휴스턴 로켓츠에서 테크니컬 파울 자유투를 전담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3점슛까지 쏘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당시는 센터들이 너도 나도 3점을 던지는 시대는 아니었기 때문에 커리어 통틀어 10개 던져서 2개 성공했을 뿐이다. 가장 많이 던진 게 한 시즌에 2개. 전문가들은 대부분 그가 지금 뛰었으면 3점슛을 장착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21]

야오의 공격력은 2000년대 센터들 중 샤킬 오닐을 제외하면 탑을 달릴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실제로 그는 1옵션으로 중용된 08-09시즌에 33.8분만을 뛰며 평균 25점을 넣었다.

추가로 더블팀 대처 능력과 볼핸들링이[22] 뛰어난 선수이기도 했다. 이 점 역시 샤킬 오닐과 공통점인데, 야오나 샤크는 둘 다 위력이 대단한 반면 느리기 때문에 공을 잡으면 두세 명에게 금방 둘러싸이는 게 일상적이었다. 그러나 두 선수는 워낙 압도적인 사이즈 덕분에 수비수들이 팔을 뻗어 공을 쳐내기 힘들었고, 시야가 좋았기 때문에 둘러싸인 상태에서도 금방 동료를 찾아 공을 빼주는 능력이 좋았다. 야오밍은 샤크 정도의 파워는 없었기에 수비수를 뭉개버리고 욱여넣는 능력은 떨어졌지만[23] 득점 범위가 더 넓고 무엇보다 키가 더 컸기 때문에 더블팀을 당해도 당황하지 않고 수비수의 위로 슛을 던져넣거나 패스를 빼주는데 익숙했다. 야오와 샤크를 보면 로우포스트에서 공을 잡을 때마다 우선적으로 주변을 살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상대 수비를 읽고 공격을 할 것인지 공을 빼줄 것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야오는 거대한 덩치에 걸맞게 손 너비가 11인치 정도로 NBA에서도 굉장히 큰 축에 속했다.# 전체적으로 둔하고 손가락에 비해 손바닥이 더 긴 편이라[24] 소위 말하는 글루핸드(glue hand)까진 아니었지만, 센스가 좋아서 볼캐칭 능력이 뛰어나고 볼을 놓치더라도 곧바로 잡아내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야오밍은 파트너인 트레이시 맥그레이디가 부상이 잦은 편인 데다 그가 뛰던 시절 휴스턴의 공격력이 빈약한 편이라 수비 집중도가 높았는데, 이처럼 탁월한 더블팀 대처력과 볼핸들링이 없었다면 주 득점원으로 위력을 발휘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의외겠지만 수비 면에서 야오는 딱히 특출나지 않았다. 지나치게 큰 덩치로 인해 수비에 매우 중요한 사이드스텝이 매우 느렸다. 루키 시즌에 스테판 마버리와 스위치되었을 때 제대로 엉덩방아를 찍으며 굴욕을 당한 적도 있다. 사이드스텝이 아니더라도, 어느 방향으로든 재빨리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그가 3점라인 부근까지 나왔다면 수비는 실패한 것으로 봐도 될 정도였다.

그래도 맨투맨 수비에선 괜찮은 모습을 보였는데, 바로 그의 사이즈 덕분. 키도 키지만 몸무게도 140kg을 상회하는 야오밍은 샤킬 오닐을 제외하면 NBA에서 가장 무거운 선수였고, 그 누구도 그를 상대로 쉽게 포스트업으로 밀지 못했다. 서장훈이 무릎팍 도사에서 야오밍의 위압감에 대해 "마치 자동차 와이퍼가 백보드를 닦는 것 같았다"고 표현한 바 있다. 그의 블럭 수치는 가장 높았을 때가 2개 정도로, 출장시간을 감안해도 특급 블러커는 아니었지만 일단 그 존재로서 돌파를 주저하게 만들거나 무리한 슛을 하게 만드는 효과는 확실했다.

다만 거구 때문에 느린 편이라, 발이 빠르고 기술이 좋은 빅맨은 막기 힘들어 했는데, 대표적으로 유타 재즈카를로스 부저에게 플레이오프에서 털린 적이 있다.[25]

종합하자면 수비력 면에서 샤킬 오닐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만하다. 오닐과 야오 둘 다 골밑에서 멀어지면 수비가 안 되고 팀 수비가 딱히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림프로텍터로선 최상급이고 맨투맨 수비가 뛰어났다. 다만 키는 야오보다 작아도 운동능력이 좋았던 오닐과 달리 야오는 발이 너무도 느렸고, 이로 인해 맨투맨을 비롯한 종합적인 수비력은 오닐보단 확연히 아래였다. 그래도 야오가 오닐보다 더 나은 것은 높이와 적극적인 의지. 오닐은 디펜시브 세컨팀에도 든 뛰어난 수비수였고 블럭 능력 자체는 더 뛰어났으나 굴욕당하는 걸 굉장히 싫어해서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당할 것 같으면 수비를 포기해 버리거나, 가드와 스위치될 것 같으면 그냥 골밑으로 뒷걸음을 쳐버리는 안 좋은 습관이 있었다. 그 엄청난 신체 능력에도 오닐이 수비수로서 아주 대성하지는 못 했던 이유도 이 때문. 반면 야오는 오닐 이상으로 수비에서 약점이 많았지만 수비하려는 의지가 오닐보다 뛰어나서 굴욕을 당하더라도 끝까지 블럭을 시도하는 선수였다.
 
 
 
 
 
 
 
 
 
 
 
 
 
 
 
 
 
 
 
 
 
 
 
 
 
 
 
 
 
 
 
 
 
 
 
 
 
 
 
 
 
 
 
 
 
 
 
 
평균 20점을 넘긴 시즌이 세 번에 불과할 정도로, 야오밍은 위력에 비해 항상 득점 스탯이 비교적 낮은 편이었다. 스티브 프랜시스,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처럼 볼 소유가 많은 가드들과 뛴 영향도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약점인 지구력 때문이었다.

덩치가 거대한 야오밍은 움직일 때마다 지구력 소모가 엄청났다. 이 때문에 그는 커리어 내내 출장 시간을 관리받아야 했으며 전 경기를 출장한 1, 2년 차 시즌, 80경기를 뛴 3년 차까지도 출장 시간은 29분, 32.8분, 30.6분에 그쳤다. 또한 그가 뛰는 도중에도 지구력이 고갈되면 로우포스트로 밀고 들어가지 못하고 페이더웨이를 쏴야 했는데, 당연하지만 이는 야투율 하락의 원인이 된다.

당연히 이러한 지구력 문제는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루키 시즌 첫 한 달 동안 64%, 첫 30경기 동안 57.1%에 달하는 성공률을 자랑하던 그가 결국 49.8%에 그친 것은 후반으로 갈수록 지구력 고갈로 인한 경기력 난조로 슛의 기복이 심해진 것이 컸다.

커리어 내내 야오의 발목을 잡은 게 이 지구력 문제인데, 사실 야오는 루키 시즌 49.8%, 5경기 출전한 커리어 마지막 10-11시즌에 48.6%를 기록한 것 외엔 매번 5할 이상, 커리어 52.4%를 기록했다. 그러나 야오의 경기를 보다보면 체감상 이보다 더 높아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은데, 압도적인 높이를 활용해 쓱 올려놓는 10피트 이내의 슛들은 거의 빗나가는 경우가 없고, 페이더웨이 성공률도 엄청나게 높기 때문. 문제는 야오가 지구력이 있을 때와 없을 때 경기력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오래 뛸수록 효율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부상에서 회복한 07-08시즌에 야오를 37.2분이나 뛰게 했을 때는 야투율이 50.7%에 그치며 55경기 출전에 그쳤고, 출전시간을 33.6분으로 제외한 바로 그 다음 시즌엔 야투율이 54.8%에 77경기나 뛰었다. 이 점에서 분명히 슈퍼스타긴 했지만 시대를 지배하는 선수가 되기엔 한끗 부족했는데, 야오가 지구력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MVP급으로 올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야오밍의 가장 큰 문제는 지구력이었지만, 전반적으로 운동 능력이 안 좋은 편이었다. 물론 그 어마어마한 신장과 높은 체급을 고려하면 그보다 운동 능력이 좋기는 힘든 노릇이지만, NBA 센터들 전체를 놓고 보면 가장 젊고 건강할 때에도 NBA에서 가장 느리고 점프가 낮은 센터들 중 하나였다.

야오밍 뿐만 아니라 NBA에서 초장신 센터들이 크게 성공하지는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이유는 이러한 운동 능력과 지구력 문제가 크다. 수비자 3초룰, 여타 선수들의 미친듯한 스피드, 빠른 경기 페이스 등의 환경으로 인해 거인들이 갖는 메리트보다 디메리트가 더 크기 때문. 대표적인 예시가 세르비아 국가대표 센터보반 마르야노비치이다. 보반은 220cm를 넘기는 신장에 스티븐 아담스 등의 파워 센터들조차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의 힘,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부드러운 슛터치에 BQ까지 겸비하여 농구에 통달한 기술자형 선수라는 평을 받았지만, 기동성의 한계로 가드 및 포워드를 막는데 심각한 약점을 보였고, 거기다가 NBA의 페이스를 따라가기엔 지구력이 부족하기까지 하여 벤치에서 10분 정도를 출장하는 데 그친다.

물론 위에 언급되었다시피 야오밍은 이런 초장신 센터들 중에선 독보적인 운동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보반보다 기동력, 지구력, 점프력, 스피드 등 모든 항목에서 앞선다. 실제로 야오는 당시 '7초 이하 공격' 방침을 세웠던 피닉스 선즈와 붙을 때에도 평균 30분 이상, 가장 많을 때는 40분(2007년 11월, 31점 13리바운드 2블럭)을 뛰며 활약했다. 포인트는 저렇게까지 큰 센터들의 경우 기동성의 한계 때문에 실력에 비해 실제 위력이 한단계 내려간다는 것이다. 스타급이 됐을지도 모르는 마르야노비치는 오래 뛰지 못해 평범한 벤치멤버급이 됐고, 실력으로 보면 리그의 지배자급이 됐을지도 모르는 야오밍은 평범한 슈퍼스타급(?)에 그쳐야 했던 것이다.

사실 키가 워낙 크다보니 점프력이 낮아도 NBA 최고의 높이를 자랑했지만[26][27], 그러나 민첩성과 스피드는 확실히 문제였고, 이는 위에 언급된 수비력 저하에 한몫을 했다. 그러다 보니, 중거리 슈팅력이 있고 민첩한 빅맨들에게 약했다. 대표적으로 플옵에서 만나 털린 카를로스 부저.

이와 같은 기동력 문제 때문에 야오밍의 커리어 후반기에 휴스턴 로켓츠는 자기 팀이 자유투를 쏘는 상황에서 팀 내 최장신인 야오를 리바운드 쟁탈에 참여시키지 않고 보통 가드들이 서는 코트 중앙 지역에 세워, 빨리 백코트를 하게 했다. 이렇게 되면 공격리바운드 확률이 낮아지지만, 그것보다 팀 내 최장신을 수비에서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플레이스타일 말고 커리어 전체적으로 보면 가장 그의 발목을 잡은 문제는 바로 내구도였다. 초창기 3년간은 82,82,80경기 출전을 했지만 이때는 평균 29분, 32.8분, 30.6분으로 출장시간이 조절되던 상태였다. 그러나 출장시간이 34.2분으로 늘어나 05-06시즌에 바로 부상으로 57경기 출전, 그 다음 시즌에 48경기, 37.2분이나 뛴 07-08시즌엔 55경기, 08-09시즌이 되어서야 77경기를 뛸 수 있었고 이 해 플레이오프에 부상당해 다음 시즌을 통으로 쉬었다. 그리고 피나는 노력끝에 재활에 성공해 그 다음인 10-11시즌에 복귀하지만 5경기만에 어이없이 부상이 재발해 은퇴한다. 위에 언급되다시피 이 시점의 야오는 여러 부위의 스트레스 골절이 수차례 재발하는 등 몸의 내구도 자체가 이미 바닥나 운동선수로서 생명이 끝난 상태였다.

위에서 자세히 설명했다시피 이렇게 낮은 내구도는 야오의 선수가치와 전체적인 커리어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주었다. 일례로 06-07시즌 클리퍼스전에서 부상당하기 전까지 야오밍의 기록은 26.8점 9.7리바운드 2.3블럭 2.1어시스트 야투율 52.3% 자유투 86.5%였다. 이 시즌 NBA에서 이보다 높은 득점수치를 낸 선수는 단 네 명 뿐이었으며 전부 외곽선수였다. 이 시즌 MVP였던 디르크 노비츠키의 기록이 24.6점 8.9리바운드 3.4어시스트 0.8블럭 야투율 50.2% 자유투 90.4% 3점슛 41.6%였고, 팀 던컨조차 20점 10.6리바운드 3.4어시스트 2.4블럭 야투 54.6% 자유투 63.7%였다.

야오의 시즌 기록인 25점 9.4리바운드 2어시스트 2블럭 야투율 51.8% 자유투 86.2%만 하더라도 이에 비견될 기록을 낸 빅맨은 케빈 가넷의 22.4점 12.8리바운드 4.1어시스트 1.7블럭 야투 47.6% 자유투 83.5% 정도뿐이었다.[28] 한마디로 06-07시즌의 야오는 개인기록이나 기량으로 볼 때 분명히 MVP 경쟁을 할 수 있는 선수였으나, 낮은 내구도 때문에 MVP는커녕 All-NBA서드팀, MVP투표에서도 5위표 한장을 받는데 그쳤던 것이다. 야오는 그 특성상 장단점이 극명한 선수였지만, 그 약점(낮은 지구력과 떨어지는 운동 능력)을 감안하고라도 '건강한 야오'는 MVP급 선수였다. 비극은 야오는 건강했던 적이 매우 드물었다는 것.[29]
 
 
 
 
 
 
 
 
 
 
 
 
 
 
 
 
 
 
 
 
 
 
 
 
 
 
 
 
 
 
 
 
 
 
 
 
 
 
 
 
 
 
 
 
 
 
 
 
큰 신장에도 그 신장대에서는 가장 뛰어난 기동력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게오르그 뮤레산이나 숀 브래들리와는 비교가 거부되는 선수. 슛 범위도 넓고, 포스트업 능력도 좋았으며, 상체는 빈약해도 하체 힘이 좋아 막상 밀고 들어가면 막을 선수가 거의 없었다. 특히 2000년대에는 힘과 기술을 겸비한 센터가 드물어서 더욱 그랬다. 패싱 능력도 뛰어났기 때문에 골밑에서는 다양한 공격 옵션을 구사할 수 있었다. 수비 능력은 많이 부각되는 편은 아니지만 탄탄한 하체를 바탕으로 버티는 힘이 있고, 블록 능력도 수준급었다.

NBA 경력 내내 심판 때문에 손해 보는 것이 컸지만 그럼에도 공격력은 NBA 최상위권 수준이라 드와이트 하워드와 함께 센터의 최고를 다투었다. 2000년대 들어 NBA 센터진의 높이가 전체적으로 낮아진 이후 7피트(213cm) 미만 센터들에겐 재앙이나 다름없던 존재였다.

당대 최고의 수비수 드와이트 하워드는 올해의 수비수상을 휩쓸던 시절에도 야오밍을 만나기만 하면 털렸다. 공격력이 강한 야오와 수비력이 강한 하워드의 기량은 백중세였지만 매치업에서는 야오가 하워드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 구체적인 기록을 살펴보면, 두 선수 간 총 9번의 맞대결에서 야오밍은 23.5점 10.4리바운드 1.2어시스트 0.7스틸 2.1블럭을, 하워드는 12.2점 9.8리바운드 0.8어시스트 1.3스틸 1.7블럭을 기록하여, 스틸한 부문을 빼곤 전 부문에서 야오의 우위를 나타냈다. 심지어 하워드가 야오보다 명확히 뛰어났던 영역인 리바운드와 블록에서도 야오가 앞섰으며[30], 득점은 절반 수준이었다. 참고로 둘이 맞붙었던 기간은 04-05 시즌부터 08-09 시즌까지였는데, 이 기간 동안 야오밍은 21점 9.6리바운드 1.6어시스트 0.4스틸 1.9블록을, 하워드는 17.3점 12.5리바운드 1.4어시스트 0.9스틸 2블록을 기록했다. 물론 종합적인 기량이라면 투박해도 무시 못 할 공격력에 역대급 수비력을 자랑했던 하워드가 야오보다 부족하다고 보긴 어렵고, 커리어 역시 파이널 진출 이력과 풍부한 수상 내역을 가진 하워드가 당연히 더 앞선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상성상의 이유로 야오는 하워드를 만나면 거의 모든 분야에서 평상시보다 잘했고, 하워드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평상시보다 못했다.[31] 하워드 본인도 훗날 자신이 가장 막기 힘들었던 상대로 야오를 꼽았을 정도.

알론조 모닝은 전성기 시절 7피트 센터들과 대등하게 매치업하고 말년에도 출전하는 짧은 시간만큼은 확실하게 활약하는 선수였음에도 야오밍에게 많이 고전했다. 벤 월러스는 2년 차이던 야오에게 생애 최초 20득점 20리바운드 이상을 허용하기도 했다. 애초에 벤 월러스는 프로필만 6-9이지 실제 신장은 6-7(201cm) 정도로 야오밍이랑 거의 30cm 차이가 나는데 이 정도면 수비력이 무의미할 정도의 신장 차이다.

국제 무대에서는 적수가 없었다. 중국의 한 쿼터 득점을 혼자 한 적도 있었다. 물론 다른 중국 선수들과의 수준 차가 있었지만, 아딜잔 은퇴 후 한국 가드들에게도 탈탈 털리던 중국 국대의 식물 가드진을 밖에 두고도 그렇게 활약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32]

종합적으로 보면 그는 전형적인 NBA식 정통 센터였다. 사실 슈팅 터치가 더 부드럽다는 것과 키가 매우 크다는 걸 빼면 플레이스타일상 그는 패트릭 유잉에 가장 가까운 선수다. 무지막지한 피지컬의 샤킬 오닐, 엄청난 스피드를 앞세운 데이비드 로빈슨, 현란한 풋워크로 수비를 농락하는 하킴 올라주원 등에 비하면 림 바로 아래까지 도달하는 능력이 다소 떨어져서 중거리 점퍼를 많이 던져야 했지만 그것이 정확하고 타점이 높아 매우 강력한 무기였고 그렇다고 골밑에서 파괴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평범한 센터들을 상대로는 어렵지 않게 뱅크샷, 핑거롤, 덩크 등으로 득점을 올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심지어 기동력이 뛰어나지 못해서 리바운드가 덩치에 비해 좀 약한 것까지 닮았다. 물론 유잉의 기동성과 역동성은 야오밍보다 훨씬 뛰어났고, 수비력 역시 야오보다 월등했다. 다만 야오의 알면서도 막을 수 없는 1대1 공격력만큼은 유잉보다 더 위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33]

실제로 야오가 샤킬 오닐을 로우포스트에서 상대하는 방식은 유잉이 한 것과 비슷하다. 유잉은 힘에서 오닐에게 밀리는지라 굳이 힘을 빼가며 백다운하지 않고 로우포스트에서 자리를 잡은 뒤 페이더웨이를 쏘거나 패스를 받아 점퍼를 던지거나 페이스업에서 돌파, 혹은 훅슛으로 마무리하는 식의 공격을 많이 보였는데, 야오는 여기에 키가 훨씬 크다는 장점 덕분에 공격하기가 더 수월했다. 반면 유잉은 기동력이 더 좋아 페이스업 상태에서 돌파능력이 더 좋았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면 야오는 지구력이 약해 대등하게 매치업하다가도 지구력이 빠져서 오래 못 뛰었지만, 40분 내내 투닥거릴 수 있는 유잉의 공헌도가 더 높았다.[34]

어찌보면 샤킬 오닐이 야오를 (처음엔 안 좋아했지만)[35] 그렇게도 좋아하고 존중한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오닐 이후 정통 센터들이 사실상 맥이 끊긴 상태에서[36] 야오밍은 그의 뒤를 잇는 마지막 슈퍼스타 정통 센터였기 때문이다.
 
 
 
 
 
 
 
 
 
 
 
 
 
 
 
 
 
 
 
 
 
 
 
 

6. 평가 및 위상[편집]

 
 
 
 
 
 
 
 
 
 
 
 
 
 
 
 
 
 
 
 
 
 
 
 
아시아 선수 최초로 NBA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받았으며, 휴스턴 로켓츠에 입단해 영구 결번이 되고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도 입성한 이견 없는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농구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제레미 린, 이젠롄, 왕즈즈, 하승진, 타부세 유타, 하메드 하다디, 와타나베 유타, 조던 클락슨, 하치무라 루이, 카와무라 유키, 양한센 등 아시아계 선수들이 NBA에 진출했지만 이들 중 야오밍에 비견될만한 족적을 남긴 이는 아직 한 명도 없다. 거기에 2000년대 올림픽 농구 본선과 FIBA 농구 월드컵 본선에서 조별리그나 1라운드를 넘어서기라도 한 아시아 국가는 야오밍이 주전이던 중국 농구 국가대표팀밖에 없었다.
 
 
 
 
 
 
 
 
 
 
 
 
 
 
 
 
 
 
 
 
 
 
 
 

7. 수상 내역[편집]

 
 
 
 
 
 
 
 
 
 
 
 
 
 
 
 
 
 
 
 
 
 
 
 
수상 내역
NBA 로고 NBA 올스타 8회(2003-2009, 2011)
NBA 로고 올-NBA 세컨드 팀 2회(2007, 2009)
NBA 로고 올-NBA 서드 팀 3회(2004, 2006, 2008)
NBA 로고 NBA 올-루키 퍼스트 팀(2003)
FIBA-Logo FIBA 아시안 챔피언십 MVP(2001, 2003, 2005)
아시안 게임 로고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은메달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2016)
올림픽 리바운드왕(2004)
 
 
 
 
 
 
 
 
 
 
 
 
 
 
 
 
 
 
 
 
 
 
 
 

8. NBA Career Statistics[편집]

 
 
 
 
 
 
 
 
 
 
 
 
 
 
 
 
 
 
 
 
 
 
 
 
[ 정규시즌/펼치기 · 접기 ]
시즌
경기 수
시간
필드골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락
턴오버
트루슈팅
02-03
82
29
.498
.500
.811
13.5
8.2
1.7
0.4
1.8
2.1
.570
20.6
03-04
82
32.8
.522
.000
.809
17.5
9
1.5
0.3
1.9
2.5
.586
21.9
04-05
80
30.6
.552
-
.783
18.3
8.4
0.8
0.4
2
2.5
.614
23.2
05-06
57
34.2
.519
.000
.853
22.3
10.2
1.5
0.5
1.6
2.6
.592
25.6
06-07
48
33.8
.516
.000
.862
25
9.4
2
0.4
2
3.5
.601
26.5
07-08
55
37.2
.507
.000
.850
22
10.8
2.3
0.5
2
3.3
.587
22.5
08-09
77
33.6
.548
1.000
.866
19.7
9.9
1.8
0.4
1.9
3
.618
22.7
10-11
5
18.2
.486
-
.938
10.2
5.4
4.8
0
1.6
1.4
.579
19.8
커리어
486
32.5
.524
.200
.833
19
9.2
1.6
0.4
1.9
3.3
.596
23


[ 플레이오프/펼치기 · 접기 ]
시즌
경기 수
시간
필드골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락
턴오버
트루슈팅
03-04
5
37
.456
-
.765
15
7.4
1.8
0.4
1.4
2.6
.497
14.9
04-05
5
31.4
.655
-
.727
21.4
7.7
0.7
0.3
2.7
2.7
.693
29
06-07
7
37.1
.440
-
.880
25.1
10.3
0.9
0.1
0.7
4.7
.557
19.9
08-09
9
35.9
.545
-
.902
17.1
10.9
1
0.4
1.2
1.9
.634
21.5
커리어
28
35.3
.519
-
.833
19.8
9.3
1
0.3
1.5
2.9
.599
21.5

 
 
 
 
 
 
 
 
 
 
 
 
 
 
 
 
 
 
 
 
 
 
 
 

9. 말말말[편집]

 
 
 
 
 
 
 
 
 
 
 
 
 
 
 
 
 
 
 
 
 
 
 
 
부상 없이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면 그가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센터 다섯 명에 드는 위대한 선수로 기억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37]
샤킬 오닐. 야오밍의 은퇴식 헌사.
 
 
 
 
 
 
 
 
 
 
 
 
 
 
 
 
 
 
 
 
 
 
 
 
 
 
 
 
 
 
 
 
 
 
 
 
 
 
 
 
 
 
 
 
 
 
 
 
fpy35.34
  • 농구 선수라면 어느 나라든 키가 거의 다 크지만 가족들도 전부 장신이다.[38] 야오밍의 키 때문에 벌어진 착시효과인데, 사진의 가운데 부인 역시 중국 국대 출신 농구 선수로 키가 190cm다.[39] 왼쪽의 외동딸 야오신레이는 6~7세쯤 되어 보이지만 당시 만 3세였다.[40] 농구 선수 집안 딸답게 이후에도 쑥쑥 커서 2020년 기준 10살의 나이에 170cm를 돌파했으며, 2022년 기준 12살의 나이에 185cm를 돌파했다.[41]
  • 가족 관련해 "중국 정부가 중국에서 가장 큰 선수들을 강제 결혼시켰다"라는 낭설이 영미권에서는 널리 퍼져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일단 그의 부모도 일반인 기준으론 엄청난 장신이긴 하지만 208cm가 농구 선수 치고는 그렇게까지 희대의 장신은 아니며, 야오의 아버지 세대였던 무톄주(49년생)는 228cm로 야오 아버지는 물론 야오보다 큰 선수였다. 게다가 야오는 독자였는데 만약 중국이 운동선수를 강제 결혼시켜서 우수한 인재를 뽑아 내려고 했다면 고작 한 명만 낳았을 리가 없다. 또한 야오 역시 외동딸을 두고 있으며 그녀는 농구를 하지도 않는데 "중국 정부 개입설"이 맞다면 자국 역사상 최고의 농구 선수 DNA를 저런 식으로 날려 버리는 것도 말도 안 된다. 야오의 부모님은 같은 업계 사람이기에 만날 기회가 많아 결혼하게 된 것이며 야오는 1980년생이라 당시 도입된 한 자녀 정책에 따라 독자인 것이고, 키가 큰 사람은 확률적으로 키가 큰 사람이 이상형인 경우가 많다는 걸 감안하면 야오의 가족 구성에는 이상한 요소가 전혀 없는 그냥 평범한 "농구 선수 집안"이다.
  • 일각에서는 야오밍이 너무 느렸기 때문에 최근 달리는 농구가 트렌드가 된 이후에는 위력이 없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지만 이는 한쪽만 바라본 시각이다. 야오는 현역 시절에도 NBA에서 가장 느린 선수 중 하나였고 이는 빠른 팀들을 상대로 할 때 큰 약점으로 작용했다.(야오가 전성기 때에도 피닉스 선즈뉴저지 네츠 등 속공을 중시하는 팀이 없었던 게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위력적이었던 것은 그 약점을 커버할 정도로 장점이 극명했기 때문이다. 227cm, 140kg의 파워와 기술을 겸비한 야오는 1대1로 막는 게 거의 불가능한 선수였고, 실제로 206cm, 113kg의 벤 월러스, 211cm, 120kg의 드와이트 하워드[42]는 둘 다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뛰어난 수비수들이었음에도 야오를 1대1로 못 막아 털리곤 했다. 또한 수비력이 1급은 아니었고 발도 느렸지만 워낙 큰 덩치 덕분에 rim protector로서 역할을 준수하게 해냈다. 달리는 팀이 더욱 많아진 2010년대에 그 약점이 더욱 부각되긴 하겠지만 센터진의 높이가 전체적으로 더 낮아지고 수준급 1대1 빅맨 수비수가 줄어든 지금 그를 막긴 더욱 힘들 것이다. 또한 당시 휴스턴은 야오의 느린 코트왕복 속도를 보완하기 위해 속공시 야오를 제외한 네 명이 공격을 빠르게 전개하든가, 같은 팀이 자유투 당시 야오를 공격 리바운드에 참여시키지 않고[43] 상대편 코트 근처에서 대기시키는 등 다양한 전술을 활용했다. 즉, 앨런 아이버슨과 마찬가지로 활용하기가 까다로운 선수지만 잘만 활용한다면 굉장한 위력을 낼 수 있는 선수였다.
  • NBA 시절 숨만 쉬어도 파울콜을 줘버린 심판들 덕에 인종차별을 받는다는 소리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경기 도중 해설진이[44] "파울이잖아!"라고 소리지른 적도 있다. 편파판정이 극에 달한 경기 장면인데, 이때 야오밍의 매치업은 벤 월러스, 그리고 헐리우드 액션으로 유명한 앤더슨 바레장이었다. 두 선수가 파울유도 액션을 하면 어김없이 파울을 선언하는가 하면 리바운드를 잡고 세컨샷을 시도하는 도중 바레장이 대놓고 야오의 손을 두 차례나 갈겼는데도 파울을 안 줬다. 위에 언급된 "파울이잖아"가 이 플레이에서 나온 멘트. 이후 이 해설자는 "장난해요? 심판이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거죠?? 15미터 밖에서도 잘 보이네요."라고 했으며 그의 파트너는 "그냥 두들겨맞고 있네요.(Just hammered)"라고 했다. 이후 리플레이에서 한번 더 파울성 플레이가 있었던 게 드러났으나, 바로 앞에서 보던 심판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참고로 야오밍은 NBA 선수 치고 심판에게 항의를 안 하는 축에 속하는데, 이 경기에서는 항의가 잦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리 잡으면서 양손을 머리 위로 쭉 들고 전혀 밀지 않았는데도 공격자 파울을 불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콜이 계속 나와서 누적된 파울로 인해 제대로 뛰지도 못했다.
  • 위에 기술된 대로 찰스 바클리에게 온갖 까임을 받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찰스의 생일날 축하 메시지를 보내 주기도 하는 대인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었고[45] 샤킬 오닐이 자신을 도발하는 발언을 할 때도 "샤크의 팔꿈치는 물렁해서 아플 것 같지 않다."라고 대답하는 등, 무뚝뚝한 얼굴과는 달리 상당히 위트가 있다.
  • NBA에 진출한 중국선수 중 유일하게 다른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왕즈즈, 이젠롄, 쑨웨 등 대부분의 중국 선수는 필요한 의사소통은 통역을 통해서만 하고, 영어도 적극적으로 배우지 않으며, 이동 시에 헤드폰 끼고 자기 할 것만 하는 걸로 악명이 높다. 반면 야오는 영어를 거의 못 하는 상황에서 미국에 온 것은 마찬가지지만, 루키 시즌부터 떠듬거리는 영어로 주변 사람들과 농담도 하고 얘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며 4년 차부터는 아예 전담 통역사를 쓰지 않았으며 인터뷰나 방송 출연도 혼자서 영어로 했다. 영어 실력을 평해 보자면 목소리가 낮고 발음이 좋진 않아(th를 완전히 S로 발음한다. 생큐, 아이 싱크(i think) 등) 알아듣기는 조금 힘들지만, 꽤나 유창한 편이다. 이때 야오의 전담 통역사였던 콜린 파인은 당시 초짜 통역사였고 그를 고용한 로켓츠 구단은 경험이 전무한 파인을 못 미더워했는데[46] 실제로 파인은 어린 시절부터 중국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야오보다 훨씬 더 불안해했다. 야오의 루키 시즌을 다룬 다큐멘터리 "The Year of Yao"에 보면 한 번은 경기 후 기자 회견에서 파인이 깜빡 잊고 휴대 전화를 안 꺼놔 전화벨이 울렸는데 죄송하다며 버벅이는 파인을 보고 야오가 씨익 웃으며 어설픈 영어로 "All rookies, huh(우리 둘 다 초짜네요)?"라고 농을 던지자 파인이 두 손을 들며 "초짜입니다!(Rookie!)"라고 받기도 했다. 당시 기자 회견장은 웃음바다가 됐지만 단 한 사람 웃지 않는 이가 있었으니 로켓츠 구단 관계자. 그는 여러 번 야오에게 통역을 바꿔 줄 수 있다고 건의했으나 이미 파인과 친해진 야오는 이를 거절했다. 한 번은 휴스턴의 기자가 야오에게 "NBA 생활하면서 가장 감사한 게 뭐냐?"고 묻자 야오는 웃으며 말없이 파인을 가리킨 적이 있다. 이를 계기로 야오와 친해졌으며 지금도 종종 연락한다고 한다. 지금도 야오가 가끔 통역을 부탁할 때도 있다고 한다.
  • 휴스턴과의 재계약 협상 때 휴스턴이 처음 제시했던 계약을 한번에 수락하기도 하는 쿨한 모습도 보여 주었고, 또 자신의 원소속 구단이었던 샹하이 샤크스가 경영난으로 허덕일 때 구단을 사들여 구단주가 되기도 했다. 은근히 자신이 속한 팀에 대한 의리도 남다르다. 위에도 나오지만 현역 중령이었던 왕즈즈가 NBA 커리어를 위해 국대 소집에 불응했는데, 야오밍은 지구력 한계에도 꼬박꼬박 이에 응했다가 선수 생활을 갉아먹은 것을 보면 애국심도 남달라 보인다.
  • 은퇴 후에는 상하이의 구단주로 지내다가 최근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와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또한 샥스핀을 반대한다는 발언을 해서 몇몇 중국의 호텔에서 샥스핀이 없어지게 하는 등의 공도 있다. 영화에도 나오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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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국에서 개최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회식에서 중국 선수단의 기수를 맡았다. 그의 국내외적 명성을 반영한 모습이다.[47]
  • 2012 런던 올림픽 중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고의 패배로 탈락한 중국 여자 배드민턴 선수들을 '희생양'으로 표현하며 심정적으로 옹호하였지만 이들을 실격 처리한 국제배드민턴연맹의 조치에 대해서는 지지하는 입장을 표했다.
  • 휴스턴 로켓츠 후배인 제레미 린뉴욕 닉스 시절 뉴욕포스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매 경기가 끝나고 그에게 조언을 얻는다고 했는데, 실제로도 제레미 린의 롤 모델은 야오밍이라고 한다.
  • 야오밍은 8살 때 왼쪽 귀의 청력을 상실하는 사고를 겪었다. 야오가 8, 9살 때 병을 앓았고 약을 먹었는데, 알고 보니 야오는 이 약에 알레르기가 있었고 이 부작용으로 왼쪽 청력의 60%을 잃은 것. 이 사실은 야오의 2년 차 시즌이 끝나고 나온 자서전 "Yao: A Life in Two Worlds"에 나와 있다. NBA 관계자들뿐 아니라 팬들 사이에서도 한참 전부터 유명한 얘기였고 야오가 딱히 숨긴 적도 없다. 아래 기사는 야오의 2년 차 시즌 초반에 나온 기사인데, 야오의 루키 시즌에 치르던 경기 도중 한 심판이 야오가 자기 얘기에 반응이 전혀 없자 휴스턴 벤치로 가서 "저 친구 왜 저래요?"라고 묻자, 코치진이 "왼쪽 귀가 안 들려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야오 본인은 "좀 영향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문제가 되진 않아요"라고 답했다. 재밌는 것은 그의 동료이자 당시 로켓츠의 스타 포인트 가드였던 스티브 프랜시스 역시 02시즌 당시 겪었던 극심한 편두통으로 인해 왼쪽 청력이 좀 안 좋았다는 것. 이로 인해 로켓츠는 수신호를 자주 사용했다고 한다.
  • 성격이 상당히 점잖고 유쾌한지라 미국 내에서도 팬이 많다. 휴스턴에 처음으로 도착해서 한 첫 마디가 "저를 보러 많은 분이 와주셨는데 다 싸인을 못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였으니 팬들이 호감이 갈 수밖에. 높은 인기와 유니크한 스타일 덕에 야오밍의 현역 시절 미국에서 키 큰 동양인은 백이면 백 야오밍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최희섭의 경우도 그를 야오밍으로 착각한 미국 어린이에게 사인을 해 주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 트래쉬토킹이나 비매너 플레이도 안 하고, 자주 부상을 당하는 몸에도 엄청난 노력파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냥 순둥이만은 아니라서 커리어 중반기로 가면서 자신감을 쌓기 시작하자 매치업 상대에게 득점을 먹이고 "넌 씨x 날 막을 수 없어!(You can't fuxxing stop me!)"라고 소리지른 적도 있다.[48] 또한 2009년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의 서부 준결승 1차전 당시 심한 부상을 입고 코치진이 뛰지 말라고 만류하는데도 코치진과 싸우고 억지로 나와서 경기를 승리로 이끈 적도 있다. 다만 안타깝게 야오는 이때 부상 이후 결국 예전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은퇴하고 만다.
  • 모범적인 사생활, 불평을 안 하는 성격, 노력파, 그리고 국가대표 소집을 거절하지 않고 매번 참석 한다. 그런데 야오는 의외로 빵 터지는 유머감각을 소유하고 있다. 그의 유머감각을 알 수 있는 좋은 예로 기자가 그에게 "좋아하는 미국 노래가 있나요?"라고 하자 "미국 국가(anthem)죠"라고 대답하면서 "1년에 적어도 82번(정규 시즌 게임이 82경기이고 매 경기 시작마다 국가가 흐른다.)은 듣거든요"라고 하면서 기자들이 다 빵 터졌다.[49]
  • 13년도에 한국에 방문하면서 NBA에서 같이 뛰었던 아시아 선수였던 하승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50]
  • 2017년 2월 23일, 만장일치로 중국농구협회 주석(회장)에 선임되었다. 이때 나이는 불과 37세. 야오밍 중국농구협회장 만장일치 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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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오밍은 중국의 국민적 스타로서 시진핑 정부의 축구굴기 같은 무리한 축구 진흥책으로 중국 학교들이 무리한 학원 축구를 시도하며 농구하던 학생들에까지 축구를 강요한 것에 대하여 비난하는 인터뷰도 했다. '왜 농구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에게 억지로 축구를 시키느냐?'라는 비난이니 시진핑 정권에게도 뭐 정치적으로 얽매일 아무 것도 없고 저렇게 억지로 축구시켜 봐야 유망주 죽이기밖에 되지 않기에 중국에서도 야오밍의 비난이 맞다고 동조하며 이런 학교들을 비난하는 여론이 많다. 야오밍의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에 야오밍을 달래고자 중국 정부에서 야오밍에게 중국농구협회뿐만 아니라 중국축구협회 간부직까지 제의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있다.
  • 코로나19 사태로 2019-20 시즌에 리그가 두 달간 중단되었다가 다시 재개되었고 재정적 압박을 받은 중국 농구 협회 임원들은 임금 삭감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회장 야오밍은 3년간 무보수로 일해 온 사실이 밝혀졌다.
  • 2005년경에 야오밍의 부모가 휴스턴에 식당을 오픈했는데 이곳의 VIP룸은 야오 식구처럼 키 큰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제작되었다고 한다. 통로의 높이는 무려 9피트(270cm)에 달하고 테이블과 의자 모두 덩치 큰 사람들이 편히 앉도록 특수 제작되었다고 한다. 야오는 여기서 당시 휴스턴의 백업 센터 디켐베 무톰보(218cm)와 레전드 센터이자 코치이던 패트릭 유잉(213cm)와[51] 함께 식사를 하면서 대담을 나눈 것이 기사화된 적이 있다.https://vault.si.com/vault/2005/03/14/dinner-at-yaos
  • 중국과 NBA 간 갈등 사태중국 농구 협회 회장으로서 갈등 해소에 많은 역할을 해 주었다고 한다. 대릴 모리 단장의 홍콩 민주화 운동 지지 발언 이후 중국에서 NBA 중계를 중단했는데 이후 야오밍의 중재가 큰 역할을 하여 완화되었다. 야오밍의 명성은 중국 농구뿐만 아니라 중국 정치계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큰 덕분이다.
  • 발 크기는 390mm이다.
  • NBA 시절에는 리복과 계약하여 내내 리복 제품을 신었다. 특히 2년 차에는 아예 야오밍 시그니처가 발매되었는데 2026년까지도 단일 시즌 가장 많이 팔린 농구화로 기네스북 기록이 남아 있다. 그 어떤 에어조던 시리즈도 단일 시즌 기준으로 야오밍 시그니처의 판매량을 넘어서지 못했다.
  • 다만 시그니처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지는 않았는데, 겸손한 성격의 야오밍이 자기는 일반 농구화로 충분하다며 이후 시그니처 발매를 한사코 거부했기 때문. 대신 리복은 자사의 농구화 제품에 야오밍을 위해 금색 용을 새겨놓는 등의 특별한 디자인의 PE(Player Exclusive)을 따로 제공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 진짜 예외적으로 한국에서 안까이는 스포츠 스타다. 혐중 감정이 심한 한국 특성 상 대다수의 중국 스포츠 선수들이 하나라도 꼬투리 잡히면 그걸로 계속 까이는 경우가 많은데 야오밍은 꼬뚜리 잡을 것도 없어서인지 예외적으로 안까인다. 물론 이는 축구가 강세인 한국 특성 상 농구에는 별 관심을 주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농구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아시아 역대급 농구 스타여서인지 높은 평가를 받는 것도 있다. 심지어는 우파, 내지는 극우 성향이 강한 인스타그램 릴스에서도 안까이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행보가 좋았는지 알 수 있다.[52]
 
 
 
 
 
 
 
 
 
 
 
 
 
 
 
 
 
 
 
 
 
 
 
 

10.1. 얼굴 개그[편집]

 
 
 
 
 
 
 
 
 
 
 
 
 
 
 
 
 
 
 
 
 
 
 
 
한국내에서는 소수 NBA 매니아들이 붙인 별명이나 해외에선 의외로 많이 알려진 야오밍의 코믹한 사진 모음. 그 어떤 미남 미녀라도 순간 캡처하면 얼굴 개그가 나오긴 하나 야오밍은 유독 이런 코믹한 사진이 많이 알려져 있다. 검색해 보면 알겠지만.[53]

유명한 사진 몇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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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코비 브라이언트: 한눈에 봐도 미스매치.[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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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얼굴 표정은 4chan 필수 요소(meme)인 Bitch Please의 원본으로 더 유명하며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밈 중 하나인 熊猫人로도 유명하다.[55]
 
 
 
 
 
 
 
 
 
 
 
 
 
 
 
 
 
 
 
 
 
 
 
 

11. 관련 문서[편집]

 
 
 
 
 
 
 
 
 
 
 
 
 
 
 
 
 
 
 
 
 
 
 
 
 
 
 
 
 
 
 
 
 
 
 
 
 
 
 
 
 
 

12. 둘러보기[편집]

 
 
 
 
 
 
 
 
 
 
 
 
 
 
 
 
 
 
 
 
 
 
 
 
야오밍의 수상 이력

C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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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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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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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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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27

CBA
역대 파이널 MVP



FIBA 아시아 컵 로고
2001
2003
2005

NBA 로고
NBA 드래프트 전체 1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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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1997
1999
20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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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Tallest first overall pick in the basketball NBA draft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자 중 가장 키가 큰 선수)
대상
기록
장소
등재 시일
야오밍
미국 뉴욕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ternal/www.hoo...
헌액 연도

포브스(기업) 로고 화이트
포브스 선정 중국 유명 인사 1위
[ 펼치기 · 접기 ]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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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오밍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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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6
No. 11
No. 22
No. 23
No. 24
빌 러셀
(Bill Russell)
야오밍
(Yao Ming)
켈빈 머피
(Calvin Murphy)
모제스 말론
(Moses Malone)
No. 34
No. 44
No. 45
CD
하킴 올라주원
(Hakeem Olajuwon)
엘빈 헤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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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디 톰자노비치
(Magic Johnson)
캐럴 도슨
(Carroll Dawson)

Shanghai Sharks ...
상하이 샤크스
영구 결번
[ 펼치기 · 접기 ]
No. 15
야오밍
(Yao Ming | 姚明)

휴스턴 로켓츠 등번호 11번
브라이스 드루
(1998~2000)
야오밍
(2002~2011)
 
 
 
 
 
 
 
 
 
 
 
 
 
 
 
 
 
 
 
 
 
 
 
 
[1] NBA 공식 맨발 신장.# 착화 신장은 229.8cm(7' 6.5''). 야오밍 신장에 대해 여러 소문이 있는데 드래프트 사전 신체 검사 결과는 맨발 7' 5"(226cm)로 측정되었고 루키 시즌 도중 휴스턴 로켓츠가 자체적으로 측정했을 때는 맨발 기준 7' 5.5"(227.3cm), 착화 신장 7' 6.5"(229.8cm)으로 측정되었다. https://imgur.com/OM4HHiV, https://imgur.com/LbKDHal. 여기에 살이 붙어 맨발 키가 7' 7"(231cm)다, 신발 신으면 7' 8"(233cm)를 넘는다는 식으로 퍼진 것. 위 기사에 나오지만 휴스턴 로켓츠 미디어 담당인 넬슨 루이스 씨가 키가 반 인치 크게 나온 것에 대해 "아직 22세니 지난 5월 이후 반 인치 정도 컸을 수도 있다"고 한 것이다. 기사에도 나오지만 원래 야오가 데뷔할 당시는 7' 5"로 표기되었고, 7' 6"로 표기를 바꾼 것은 그 이후부터였다. 7' 6"로 표기된 숀 브래들리가 "그 친구 나만큼 크진 않다. 만약 그 친구가 7-6이면 나는 7-8일 것.(He's not as tall as me. If (Yao is 7-6), I'm 7-8.)" 라고 한 적도 있고 실제로 둘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들을 보면 브래들리가 약간이나마 큰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야오밍의 맨발 신장은 7' 6" 언저리일 가능성이 높으며 231cm나 233cm라는 설은 너무 터무니없다. 실제로 공식 신장이 7피트 7인치(231cm)인 역대 최장신 마누트 볼은 야오밍은 물론 브래들리보다도 확연히 크다. 참고로 NBA에 지명된 선수들까지 보면 일본의 전직 농구 선수 오카야마 야스타카가 230cm로 가장 크다. 1981년 NBA 드래프트 7라운드에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의해 전체 171순위로 지명되었으며 NBA에 지명된 선수 중 가장 키가 큰 선수였다. 그러나 NBA에서 뛰지 않았다. 만약 야스타카가 NBA에서 뛰었으면 야오밍을 제치고 최장신 아시아 출신 NBA 선수이자 NBA 역사상 최장신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2] 청소년 대표 시절은 115kg였고 은퇴 후에는 체중 관리를 잘 안 해서 200kg 넘게 쪘다고 한다.[3] 2007년 8월 야오밍과 결혼하였다. 2004 아테네 올림픽 중국 여자 농구 대표팀 선수였다. 당시 신장 190cm.[4] 2024년 초 기준, 성장의 정체기에 이른 딸의 신장이 190.5cm를 넘었다고 한다. 부모가 원래 체육을 시키지 않고 공부에 전념케 했지만 13세부터 농구공을 만지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아버지가 활약한 구단의 연고지인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태어났으며 미국 이름은 Amy라고 한다.[5] 사실 야오밍도 300파운드 이상/7피트4인치 이상이라 내구도가 굉장히 뛰어난 편이었고, 오닐이 예외적일 정도로 신체가 뛰어났던 것이다. 데뷔 때 이미 300파운드를 넘겼고 전성기 때 310~20파운드에 몸 관리가 안 될 때 350파운드를 상회하던 거구가 20년 가까이, 1200경기 넘게 뛰었다는 건 거의 불가사의의 영역이다. 오닐이 워낙에 크고 무거워서 부상이 잦았을 뿐, 마이클 조던이나 르브론 제임스 같은 금강불괴 못지않게 타고난 신체를 가졌다.[6] 물론 219cm의 신장으로 마이클 조던 다음 자리를 다투는 카림 압둘자바 같은 예외도 있긴 하다. 그러나 빅맨들 사이에서 10cm 차이는 굉장히 큰 차이이며, 카림도 전체적으로 빅맨들의 평균 체중이 가벼운 시대에 뛰었기에 매우 가벼운 체중을 유지할 수 있었다. 실제 그의 루키 시절 몸무게는 225파운드로 이는 마르기로 유명하면서 카림보다 키가 작은 케빈 가넷의 초창기 몸무게와 비슷했으며 그의 전성기 시절 몸무게도 230-240파운드 사이였을 정도로 가벼웠다. 반면 야오밍은 빅맨들의 대형화가 진행된 시절이라 최소 300파운드, 전성기 때는 310파운드를 상회하는 거구였다. 물론 그걸 감안하더라도 카림이 키에 비해 예외적으로 뛰어난 내구도를 보유했던 것은 분명하다. 또한 카림은 부상을 안 당하게 요가 등을 통해 몸을 유연하게 만든 노력도 병행했기 때문에 쉽게 부상당하는 빅맨이 아니었다.[7] 중국에서 열린 2003년 ABC챔피언십 결승전을 보면 이 문제가 드러난다. 당시 중국은 후웨이동이 대표팀을 은퇴하면서 류웨이 등 젊은 피가 외곽을 담당해야 했는데, 이들은 기량이 그리 뛰어나지 못했다. 실제로 당시 골밑 높이에서 압도당하던 대한민국이 중국을 괴롭힐 수 있던 이유가 외곽에서의 우위로, 이 경기에서도 풀코트 프레스와 3점으로 한국이 4쿼터 막판에 1점차까지 쫓아가는 동안 중국 가드들은 실책을 연발했다. 결국 야오밍이 하프코트까지 나와서 볼 운반을 도와야 할 정도였다. 이 경기에서 야오밍은 평상시처럼 압도적이었다. 유일하게 키가 비슷한 하승진은 아직 애송이 고등학생으로 얼마 뛰지도 못했고, 메인 매치업인 김주성은 무려 23cm나 작았다. (02년에는 서장훈이 약간의 홈콜을 등에 업고 육탄전에 가까운 수비로 막았으나 이 대회는 중국에서 열렸으니 이것도 불가능. 게다가 김주성은 서장훈만큼의 파워가 없었다) 그 결과 골밑을 그야말로 박살내며 전반에 크게 앞서나갔으나 외곽에서 발리며 추격을 허용한 것. 기가 막힌 게 이 때문에 당시 야오밍은 풀타임 출장을 했다. 방금 세상에서 가장 빡센 리그에서 82경기 전부 출장하며 루키 시즌을 보내고 온 선수를 이렇게 굴린 것이다. 야오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그에 따른 과도한 출장시간은 그의 커리어 내내 계속되었다.[8] 야오는 NBA 데뷔하기 전부터 발 수술을 하는 등 거대한 체구로 과부하가 걸린 발과 무릎 부위에 부상이 집중되었다. 그만큼 이 부위의 피부와 근육, 뼈 조직이 재생성될 수 있게 충분한 재활을 하는 게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회복 기간을 늘리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줄였으니 장기적으로 내구도가 깎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9] 마지막 시즌은 고작 다섯경기 뛰며 평균 10득점 5리바를 기록했다. 다만 첫 시즌의 경우 리그를 씹어먹던 샤킬 오닐을 제치고 올스타 주전 센터가 된 것의 임팩트가 커서 그렇지 올스타 리저브 정도는 노려볼만도 했다. 당시는 센터진의 뎁스가 빈약하고 포워드가 포화상태라, 서부 올스타 팀의 센터는 오닐과 야오 둘 뿐이었다. 이해에 동부에서 백업 센터로 뽑힌 일가우스카스와 브래드 밀러는 각각 13-8, 15-8로 야오와 대동소이한 시즌기록을 남겼다. 어쨌거나 서부에 오닐과 야오를 제외하면 올스타로 선발할 만한 센터가 없었기에, 야오가 중국인이 아니었더라도 백업으로나마 올스타에 선발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10] 농구 명예의 전당이란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특정 리그가 아닌 농구란 종목 자체에서 특출난 성과나 업적을 남기는 이들을 기념하는 곳이다. 농구 특성상 세계에서 가장 수준이 높은 리그인 NBA와 다른 리그들 간의 격차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NBA경력이 훨씬 메리트가 크고 절대다수의 헌액자가 NBA경력자일 뿐이다. 2019년 기준으로 NBA에서 단 한경기도 뛴 적이 없는 6명의 선수들이 헌액되었던 바 있고, 미국과 적대적 관계인 소련에서 6,70년대 레전드였던 '소련의 제리 웨스트' 세르게이 벨로브는 92년에 NBA경험이 전무한 선수로 최초로 헌액되었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이는 르브론 제임스가 깨기 전까지 농구 역사상 가장 많은 득점(프로/국가대표팀 총합)을 한 브라질의 오스카 슈미트가 있는데, 그는 브라질,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프로커리어를 보내며 국제무대에서도 레전드급 커리어를 보냈다. 물론 이들은 NBA의 위상이 현재만큼 높지 않은 시기에 뛰었지만(슈미트가 NBA행을 거절한 것은 당시 이탈리아에서 받던 연봉이 더 높았기 때문이었다), 포인트는 NBA 뿐 아니라 국제무대에서 성과 역시 인정된다는 것이고 이 점에서 볼 때 야오밍의 종합적인 커리어는 다른 헌액자들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다.[11] 이건 페이크고, 사실은 학교 첫주라서 결석을 못했기 때문...[12] 아이버슨의 여러 의미로 유명한 "practice" 기자 회견에 대한 가벼운 농담.[13] 이분들은 야오밍이 NBA 신인일 때부터 같이 했는데 이분들한테 한말이..."우리 처음 만난 날보다 다 늙었고 다 살쪘네"[14] 참고로 이 기술의 창시자이자 구단 선배인 하킴 올라주원이 직접 맨투맨으로 야오밍을 단련시킨 바 있다. 하킴스쿨 1기 다만 드림이 야오를 트레이닝시킨 것은 2007년과 그 이후로, 저 드림쉐이크를 성공하던 루키 시즌(2002-03)을 포함해 야오는 이미 로우포스트 동작이 뛰어난 선수였다. 이미 잘하고 있지만 역대 최고 수준의 포스트무브를 지닌 하킴이 후배 봐 준다는 느낌으로 같이 워크아웃을 한 것. 물론 야오가 이른바 '하킴스쿨 1기'는 맞는 게, 야오와 트레이닝을 한 이후로 드와이트 하워드, 르브론, 코비 브라이언트 등에게 수업료를 받고 훈련을 해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15] 즉, 7피트에 팔 긴 디안드레 조던보다 2cm 짧다. 키에 비하면 매우 짧은 거지만 절대적으로 보면 팔도 길고 어깨도 넓은 것. 샤킬 오닐은 7피트7인치(231cm)에 달하는 긴 윙스팬에 짧은 목(키에 비해 높은 어께높이)로 무려 9피트5인치(287cm)에 달하는 스탠딩리치를 자랑하는데, 야오밍은 키와 비슷한 7피트5인치(226cm) 윙스팬에 스탠딩 리치는 무려 9피트8인치(294.6cm)에 달한다. 저 정도면 까치발로 림(305cm)에 닿을 수 있는 무지막지한 높이다.[16] 그리고 알론조 모닝은 전성기 시절 블락왕 자리를 휩쓸고 다닐 정도의 수비력과 높이를 자랑하는 선수였으며 드와이트 하워드는 현재까지도 전성기 기준으로 역대급 피지컬을 자랑하던 압도적인 괴물 센터였다. 그런데 이 둘이 야오밍은 뭔짓을 해도 막지 못하는 것으로 보면 정말 최소한 포스트플레이 기준으로는 높이가 깡패 맞다.[17] 지금에 와서야 하체가 NBA에서의 1등 성공 비결로 꼽히지만 야오밍의 자서전인 "Yao: A Life in Two Worlds"에 보면 청소년 시절 중국 의사들이 "엉덩이가 너무 크다"며 농구 선수로서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으로 봤다는 언급이 나온다. 당시 그의 비교 대상은 세살 위로 호리호리한 몸매와 그에 걸맞은 스피드, 유연성을 지닌 왕즈츠였고, 그와 대비되게 하체가 굵은 야오는 굼뜨기 때문에 그만큼 성장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 컸다고 한다. 그러나 야오는 왕즈츠보다 훨씬 키가 커지며 NBA에서도 피지컬로 압도할 수준이 되었고, 굼뜬 스피드 정도는 커버하고도 남을 정도의 파워와 골 밑 존재감으로 왕이 깨지 못한 NBA스타덤의 벽을 깰 수 있었다. 사실 의사들이 이상한 소리를 했다고 보기도 힘든 게, 아무리 부모 키가 커도 야오처럼 크리란 건 예측하기 힘들다. 야오가 자기 아버지나 왕즈츠 정도의 키였다면 저 정도 하체로도 그렇게까지 압도적인 파워는 없기 때문에 오히려 핸디캡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야오처럼 특출난 기술이 없긴 했지만 야오를 능가하는 파워를 지녔던 멍크 바터의 예를 들 수 있다. 바터는 몽골족답게 떡 벌어진 어깨와 두터운 몸과 NBA에서도 톱급인 힘, 몽골족의 평균 신장을 아득히 넘는 장신까지 갖고 있었지만, NBA에선 센터치고 평범한 211cm란 신장과 너무 느린 스피드로 별 위력이 없는 선수였다. 야오는 힘을 제외하곤 모든 면에서 바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으니 당연히 그보단 더 잘했겠지만, 그가 슈퍼스타로 군림할 수 있었던 주된 이유는 거의 모든 매치업을 미스매치로 만들어 버리는 압도적인 신장이었다.[18] 루키 시즌에만 맞붙은 아비다스 사보니스도 파워 면에서 야오를 능가했지만, 이때 야오는 아직 매우 말랐고 미숙했다. 야오는 전성기 기준 310파운드, 루키 시즌엔 290파운드였는데 이 20파운드(9kg)은 거의 근육으로 키운 거라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실제로 2년 차인 03-04 시즌부터 야오가 플레이할 때 팔근육이 제법 그럴듯하게 잡히는 걸 볼 수 있다.[19] 사실 이때 샤킬 오닐을 상대로 로우에서 지속적으로 일대일 승부를 걸 수 있으며 실제로 통하는 것은 거의 야오밍이 유일했다.[20] 야오밍의 자유투 성공률과 가장 유사한 선수는 마이클 조던으로, 야오밍은 커리어 수치가 78.3~86.6을 오가며 평균이 83.3%, 조던은 78.4~85.7를 오가며 평균이 83.4%였다. 즉 매우 안정적인 중거리슈팅력 자유투 실력을 갖추고 3점슛을 하나의 옵션으로 활용가능했던 조던과 비슷한 수준의 슈팅터치를 갖고 있었다는 것.(같은 나이 대비로 하면 조던은 84.6%로 조금 더 높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야오가 맘만 먹으면 3점을 옵션으로 활용가능했을 것이라 보는 것도 이 때문인데, 이 정도 슈팅터치를 지녔다면 3점슛을 못 쏠리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던같은 스윙맨과 달리 3점라인 밖에 선 초장신 야오는 블럭당할 걱정 없이 거의 와이드오픈 상태에서 세트슛으로 편하게 쏠 수 있다.[21] 야오처럼 중거리 위주의 슛터치가 매우 좋은 빅맨이 팀의 필요에 따라 3점 던지는 빅맨으로 변신하는 경우는 많다. 대표적으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의 파우 가솔. 7푸터들이 3점슛을 쏠 때는 키가 워낙 크고 수비가 심하게 커버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많이들 점프와 동시에 릴리스를 하는 세트슛으로 쏘는데(물론 노비츠키처럼 전문 슈터 수준이라 커버가 심한 경우는 점퍼로 쏜다), 세트슛은 빨리 쏘기 힘들어서 그렇지 상당히 안정적인 슛이다. 야오가 3점을 쏜다면 블럭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실제로 야오가 던진 극소수의 3점슛 모두 세트슛이었다. 그런데 야오처럼 슈팅터치가 좋은 빅맨이 (하체를 적게 쓰는) 세트슛 거리를 약간씩 늘리는 건 상당히 용이하다. 반면 점퍼는 하체를 더욱 활용해야 하기 때문에 슛거리를 늘리는 게 상당히 어렵다.[22] 드리블 능력이 아닌 공을 잡고 후속 플레이를 하는 능력을 지칭한다.[23] 물론 샤킬 오닐의 우겨넣기 능력은 70년대 이후 선수들 중에선 원톱급이었다. 이 정도 위력은 평균 키가 현재보다 5cm 정도는 작았던 시절에 샤킬 오닐과 키가 같았던 전성기의 윌트 체임벌린 정도가 있겠지만 워낙 다른 시대의 선수라 비교하기 애매하다. 비교하면 윌트는 키+점프력에서 오는 높이 자체가 압도적이었기에 위로 솟구쳐서 수비를 피해 위에서 내려놓는 식의 플레이도 많았는데(그 유명한 레이다운), 샤크는 높이가 상당하긴 했어도 윌트만큼 압도적이진 않았기에 파워로 밀쳐내고 우겨넣는 플레이가 대부분이었다.[24] 동양인들은 평균적으로 흑인에 비해 손바닥이 좀 더 넓은 경향이 있다. 하승진도 마찬가지라 손이 꽤 컸음에도 볼 핸들링이 좋은 편은 아니었으며, 대만계인 제레미 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걸 타고난 것이 바로 이젠롄으로 손이 클 뿐만 아니라 손가락이 길고 흑인들처럼 쫙 벌어져있어 볼을 잡기 수월한 구조였다. 뿐만 아니라 작은 머리, 긴윙스팬과 긴 팔다리(키가 비슷한 케빈 듀란트와 허리 높이가 같다) 등 농구 선수로선 모든 면에서 축복받은 피지컬이었다.[25] 오해를 피하기 위해 언급하면 여기서 '털렸다'는 것은 샤킬 오닐vs칼 말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서로 못 막았다는 의미이다. 야오도 매경기 20점 이상, 평균 25.1점 10.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24.6점 11리바운드를 기록한 부저에 비해 1차스탯상으론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평상시에 비해 낮은 4할대의 야투율을 기록하고 턴오버가 많아서 2차스탯에선 좀 차이가 났고, 특히 2차전에서 부저가 41점 12리바운드로 맹활약하는 동안 야오는 27점을 올렸으나 3할대의 야투율을 기록했으며, 6차전에서도 35점14리바운드를 기록한 부저가 우세했다. 사실 서로 주매치업도 아니었던 만큼 '털렸다'는 건 좀 과장이 섞인 서술이긴 하다. 다만 06,07년을 기점으로 전성기를 맞으며 사기급 공격무기의 포스를 뽐내던 야오가 기대치보단 못해주고, 이 시리즈에서 맹활약한 부저를 상대로 (애초부터 미스매치였으니 당연히) 전혀 못 막는 모습을 보이자 그 인상이 팬들에게 강하게 박힌 것. 또한 전성기 야오가 야투율 44%, 턴오버 4.7개를 기록했다면 기대에 비해 못한 게 맞다.[26] 야오밍의 미디어 팀은 그의 (도움닫기 없는) 점프력은 26인치(66cm)였다고 말했으나 야오 본인은 발 부상을 당한 이후 4~6인치가 줄었다고 말한 바가 있다. 이게 사실이라고 본다면 야오밍은 (부상 이후) 도움닫기 없이 제자리 점프만으로 345cm~350cm 지점을 터치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또한 제자리 점프력이 51~56cm란 것. 물론 오닐은 378.5cm, 드와이트 하워드는 381cm를 터치할 수 있다고 한다.(이들의 스탠딩 리치를 감안하면 오닐은 점프력이 91cm, 하워드는 스탠딩 리치가 279cm 정도이므로 무려 102cm란 얘기가 된다) 하지만 이 수치는 도움닫기를 한 최대수치이고 야오밍은 그냥 제자리에서 뛰어도 저 높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애기. 실제로 경기할 때 오픈찬스에서 덩크 정도를 제외하면 풀점프로 뛸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경기 도중 높이는 야오밍이 저 둘보다 월등히 높다. 높이 보강을 원하는 팀들이 점프력 높고 키가 작은 빅맨보다 점프력이 낮아도 키가 큰 빅맨들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27] 여담으로 '키가 크지만 점프력이 낮은 야오밍'과 '키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점프력이 높은' 드와이트 하워드의 높이를 짬뽕시킨 듯한 비상식적인 선수가 나왔는데 바로 차세대 NBA를 대표하는 슈퍼스타 중 하나인 빅터 웸반야마이다. 키는 야오보다 작지만 8피트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윙스팬 덕분에 스탠딩 리치는 오히려 야오보다 높고, 점프력은 하워드 수준은 안 되지만 그 키로는 경이적인 32인치(81cm)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즉 야오보다 약간 높은 곳을 터치하는 선수가 거의 블레이크 그리핀 수준의 점프력을 자랑하는데 민첩하기까지 하다. 물론 마른 몸 때문에 파워는 저들 누구에게도 크게 못 미치지만, 이미 NBA가 로우포스트힘싸움의 비중이 많이 떨어지기도 해서 그 단점에도 불구하고 22세 젊은 나이에 역대 최초의 만장일치 수비왕이 됐다. '야오 같은 높이가 하워드처럼 점프하면 어떨까'란 망상이 거의 이뤄진 셈이다.[28] 주목할 건 저 기록이 33.8분 뛰면서 낸 기록이란 것. 팀에서 관리받던 던컨은 34.1분, 팀이 워낙 압도적이라 여유가 있던 노비츠키는 36.2분, 가넷은 무려 39.4분을 뛰었다. 야오보다 적게(32.8분) 뛴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는 기록도 20.4점 9.6리바운드 1어시 1.3블럭 야투 57.5% 자유투 78.1%로 야투 하나 빼곤 전부 야오보다 확연히 못한 기록을 냈다.[29] 야오는 NBA 드래프트 당시 발부상에서 회복 중이어서 휴스턴 측이 엑스레이 자료를 요구하고 지명을 고민하기도 했었다. 기량이나 스펙은 탐나지만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것 외에 그의 병력이 걸렸던 것.[30] 하워드는 강한 힘과 넓은 어께로 박스아웃 능력이 뛰어났고, 팔이 길고 높은 점프력까지 지녔는데 피지컬에서 압살하는 야오를 상대로는 위력이 급감되었다. 특히 자기보다 20cm 크고 더 무거운 선수가 박스아웃을 하는데 공격리바운드를 따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90년대 최강 리바운더였던 데니스 로드맨은 자신과 키는 비슷하지만 피지컬이 압도적인 칼 말론과 붙은 97,98 파이널에서 평균 7.7개, 8.3개에 그쳤으며, 자신의 최대장점인 공격리바운드에서 1.7개, 3.3개에 그치기도 했다. 참고로 로드맨의 정규시즌 공리/리바운드 수치는 97시즌에 5.8/16.1개였으며 97시즌엔 5.3/15개였다. 수비 리바운드가 유리한 위치에서 '지키는' 리바운드라면 공격리바운드는 불리한 위치에서 민첩성과 힘으로 '따내는' 리바운드인데 피지컬에서 압도당한다면 게임 끝이다. 그나마 하워드의 리바운드 가담률이 야오보다 훨씬 높았고 지구력이 좋아 활동량이 월등했기에 비슷한 수준이라도 간 것이다.[31] 사실 하워드는 포스트업도 못하고 미드레인지도 없는 관계로 닥돌이 안 먹히는, 자기보다 월등히 큰 선수와의 1대1 매치업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니 하워드에 비해 거의 20cm 가까이 크고 기술까지 뛰어난 야오를 막는 건 특히 힘든 일이었을 것이고, 뚫는 것는 더더욱 무리였을 수밖에 없었다.[32] 야오의 플레이스타일 상 NBA보다는 국제 무대가 더 잘 맞기도 했다. 야오의 가장 큰 약점은 그놈의 지구력과 기동력인데, 페이스가 빠르고 경기 시간도 국제 규격보다 8분이나 긴 NBA에서 상당히 문제점으로 작용한다. 전성기에도 야오의 고질적인 문제는 지구력이 빠진 상태에서 경기력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는데 국제 무대에서는 설령 미국국가대표팀이라고 해도 익숙하지 않은 규격의 공, 동료들, 전술 때문에 NBA에서만큼 빠른 페이스의 농구를 하진 못하고 경기 시간 자체가 짧다는 것도 분명한 강점이다. 야오가 지구력이 조금이라도 더 좋았다면 NBA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33] 야오의 키가 유잉보다도 무려 15cm 이상 큰 것과 더불어, 손끝터치가 더 유연했기 때문이다. 유잉은 당시 센터중에선 손꼽히는 수준의 점퍼를 지녔지만, 커리어 자유투 성공률이 80%에 달하던 야오는 더욱 안정적이고 부드러운 슈팅터치를 갖고 있었고, 블럭이 거의 불가능한 타점 때문에 더욱 안정적인 점퍼실력을 갖고 있었다. 또한 유잉은 라이벌 슈퍼스타들과 키가 비슷했기 때문에 훅슛을 던질때는 어깨빵으로 공간을 확보해 훅슛을 올려넣곤 했는데, 야오는 유잉보다 육중하고 키가 더 컸기 때문에 더 가깝고 높은 위치에서 훅을 던질 수 있었다. 손끝감각이 매우 좋은데 거의 살짝 올려놓는 수준이었으니 성공률이 높을 수 밖에 없었다.[34] 물론 이는 순수하게 공격력만 본 것으로 수비에서는 유잉이 월등히 더 좋은 선수였기에 전체 선수레벨을 보면 유잉의 확연한 우세이다. 또한 지구력 역시 경기력을 평가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므로 커리어하이든, 커리어평균이든 더 높은 유잉에게 훨씬 높은 점수를 불 수밖에 없다. 만약 경기시간이 30분이었다면 야오가 더 위력적인 공격수로 평가되었을지 모르지만, 48분 동안 진행되는 NBA경기에서는 전성기 기준으로 야오보다 4,5분은 더 생생하게 뛰어 줄 수 있는 유잉의 공격력이 더 가치가 높다.[35] 사실 안 좋아했다기보단 원래는 관심이 없었는데, 기자들이 하도 야오 얘기를 해대니까 짜증나서 디스한 것에 가깝다. 실제로 둘이 처음 만났을 때 코트에서 평범하게 인사하고, 두 사람의 부모님들도 서로 포옹을 해줬다. (샤크의 경우 양아버지 필 해리스만 와서 야오와 포옹을 나눴다) NBA를 지배하고 있는 빅맨 입장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보여준 적이 없는 루키에 대해 다들 얘기하는 게 짜증날 수밖에... 재밌는 건 이처럼 정상급 빅맨 vs 떠오르는 신예가 주목받는 구도는 오닐이 신예 시절에 데이비드 로빈슨과 보여 준 적이 있는데 오닐의 2년 차 시즌 당시 MVP 레이스를 펼치던 로빈슨에게 자꾸 오닐 얘기만 하자 짜증난 로빈슨이 "대체 그 친구가 누군데요? 내가 왜 그 친구를 그리 신경써야 합니까?"라고 짜증섞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야오와 달리 한 성깔하던 오닐은 로빈슨을 박살내버리겠다고 이빨을 털었고, 이후 10년간 지속된 앙숙관계가 시작되었다.[36] 이후 정통 센터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선수는 앤드류 바이넘 정도인데 바이넘은 애초에 오닐과 야오에 비해 위력도 커리어도 떨어지고, 무엇보다 멘탈쓰레기다. 그런데도 오닐은 바이넘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시절에, 당시 전성기던 드와이트 하워드보다 바이넘을 더 높게 평가하기까지 했다. 오닐 이후 레이커스에서 코비의 새로운 파트너인 파우 가솔 같은 경우에는 정통 빅맨이긴 하지만 본래 포지션은 파워 포워드이며, All-NBA Team에 들어갈 때도 포워드로 분류되었고, 올스타에서 센터로 선정된 건 2006년 한 번밖에 없었다.[37] 샤킬 오닐은 해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매우 프라이드가 강한 인물이다. 물론 은퇴식이기에 립서비스를 해준 것일 수도 있고 라이벌에 대한 존중 혹은 존경일수도 있지만, 샤킬 오닐은 자신을 역대 센터 탑 5로 랭킹시키고 당시 같은 팀메이트(!)였고 그 시점 리그 정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코비 브라이언트에게까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슴지 않고 마음대로 엄청나게 까내린 자존심이 매우 높은 선수이다. 이런 샤킬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그도 라이벌이자 후배였던 야오밍이 부상 때문에 더 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고 그를 선수로서 진심으로 리스펙트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거기다 샤킬 오닐 성격에 "확신"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38] 야오밍의 집안은 대대로 엄청난 장신 집안이라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키가 크다. 아버지의 키는 208cm, 어머니의 키는 190cm. 두 사람 다 전직 농구 선수다. 저 정도 키면 중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전세계 어딜 가도 엄청난 거인 취급 받는다.[39] 이름은 예리다. 야오밍은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첫 눈에 반해서 끈질기게 구애를 했는데 이 둘이 정식으로 사귀게 된 때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끝난 후로 야오밍이 폐막식 때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서 얻은 배지를 모아서 예리에게 선물로 준 걸 계기로 예리도 야오에게 반했고 2007년에 부부의 연을 맺었다.[40] 2010년 5월 22일 미국 휴스턴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이며, 영어 이름은 Amy라고 한다. 저 사진이 찍혔을 당시에 키는 110cm였다.[41] 자세히 보면 얼굴은 12세 소녀답게 앳되지만 키는 성인들보다 훨씬 크고, 키에 비해 다리가 굉장히 긴 체형이라서 긴바지를 입었음에도 끝단이 정강이 위쪽에 올라와 있다. 야오밍은 키에 비해 팔다리가 그렇게까지 긴 편은 아니고 하체가 아주 튼실한 편인데 부인 예리는 팔다리가 가늘고 긴 편이라서 엄마의 체형을 닮은 듯 보인다.[42] 하워드월러스 둘 다 실제 신장은 거의 5cm 정도 작다.[43] 통상적으로 자유투 시 양팀에선 리바운드를 잡을 확률이 가장 높은 빅맨들을 골밑에 대기시킨다. 하지만 수비팀을 골대 가장 가까이 배치시키는 룰이 있어 공격팀은 어차피 자유투 리바운드를 잡기가 불가능에 가깝다.[44] 심지어 휴스턴 지역방송도 아니었다.[45] 사실 바클리의 경우 현역 시절이나 은퇴 이후에나 생각나는 대로 막 말을 하는 경향이 있어서 그렇지 야오밍을 그렇게 깐 건 아니었다. 위의 야오밍 폄훼 발언도 야오가 루키 시즌 초반에, 별로 뛰어난 센터가 아닌 션 브래들리를 상대로 형편없는 모습을 보이자 까면서 한 것. 오히려 야오가 적응을 하고 좋은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자 높게 평가했는데, 이는 픽앤롤, 픽앤팝에 특화된 2000년대 대부분 센터들과 달리 야오밍은 포스트업을 포함해 정통 센터 플레이를 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선수기 때문이다. 바클리와 마찬가지로 현역 시절 막강 포스트업 플레이어였던 샤킬 오닐도 정통센터를 높게 평가하는데 오닐의 경우 바클리보다 더 막무가내로 말하는 성격이라 포스트업이 뛰어난 앤드류 바이넘드와이트 하워드보다 더 뛰어난 센터라도 했다가 다른 패널들에게 까이기도 했다.[46] 파인은 당시 법대를 갓 졸업한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는데 유창한 중국어 실력 덕분에 통역사 자리를 얻었다.[47] 안 그래도 큰 키인데 맨 앞에 있으니 원근감 때문에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들이 죄다 미니어쳐로 보일 정도다.[48] 그러나 이것은 휴스턴 로켓츠 팀원 전원이 원한 거였다.[49] 위에 언급된 자서전에 보면 본인이 개그욕심이 상당하다고 한다. 사실 미국에 처음 갈 당시 단어 몇 개를 빼면 영어를 거의 못 했음에도 엄청난 속도로 영어를 배운 데에는 이렇게 말이 많은 성격 덕이 컸을 것이다.[50] 여담으로 사실 슈퍼스타였던 야오밍과 벤치워머였던 하승진은 정상적으로라면 거의 매치업되지 않았겠지만 둘은 의외로 종종 매치업되긴 했다. 당시 야오밍이나 샤킬 오닐처럼 압도적인 피지컬을 지닌 센터를 상대하는 팀들은, 이들의 지구력을 깎아먹기 위해 저격용으로 피지컬이 저들에 버금가는 떡대들을 붙히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런 케이스가 2004년 파이널, 2005년 동부 파이널에서 샤킬 오닐에게 붙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엘든 켐벨) 포틀랜드는 맨발 220cm가 넘어 피지컬만으론 야오밍에게 비빌만한 하승진을 그에게 붙혔다.[51] 여담으로 여기서 무톰보가 유잉에게 "사실 6피트9인치"라고 놀린 것 때문에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는데 유잉은 드래프트 전 신체 검사 결과가 공표되기 한참 전의 세대라 정확한 신장이 불명이지만 NBA에서 6피트10인치로 표기되는 알론조 모닝이나 6피트9인치인 칼 말론 같은 선수들보다는 확연히 크다. 만약 이게 진짜라면 유잉이 맨발 신장이 6피트 9인치 후반대라든지, 아니면 여기선 유잉이 최단신이므로 키가 작은 유잉을 무톰보가 놀린 것일 수도 있다.[52] 사실 농구 인기가 낮은 것이 이유라기엔 농구팬들 사이에서도 아시아권에서 수차례 한국과 붙으며 02년 정도를 제외하면 한국을 매번 좌절시킨 야오밍은 전혀 까이지 않는다. 농구선수가 까이는 경우 플레이가 더티하다던지, 코트 안팎으로 사고를 치고 다닌다던지, 사생활이나 인성에 문제가 있다던지, 한국을 비하한다던지 등 여러 요인이 있는데, 야오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해당되지 않으며 문제 행동이나 발언을 한 적도 없기 때문에 까일 요소가 없다. 야오만큼 임팩트가 없었던 중국 농구선수들의 경우 그냥 관심조차 없기 때문에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면, 야오는 농구에 관심을 갖는 소수의 농구팬들 사이에서도 인품과 레전드 커리어로 리스펙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53] 사실 이 사진들은 그냥 우스꽝스럽게 을 만들거나 또는 동양인 인종차별 비난하는 사진도 몇개있다.[54] 코비 브라이언트도 198cm의 장신이긴 하나 NBA는 평균 신장이 2m. 다만 야오밍이 약 10cm 공중에 떠 있다.[55] 해당 표정 때문에 대한민국 배우 최성국과 일본의 여자 성우 하나자와 카나와 같이 호쾌한 웃음의 표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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