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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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1895년에 도입되었다. 하지만 대한제국 시기에는 양장이 비싸서 아무나 사 입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일본 제국의 쇼세후쿠처럼 두루마기 차림의 한복 교복에 모자도 같이 딸려나오거나, 혹은 모자만 학생모를 쓰는 식이었다. 하술한 대로 이 당시 독일 제국의 학교 복장 규정도 정해진 교복이 없는 대신에 모자만 지정하는 식인데, 서양식 교육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대영제국과 러시아 제국의 경우처럼 서양식 제복형 교복을 따로 제정하기에는 비용이 너무 비싸니, 독일 제국의 제도를 참고해서 모자만 지정한 것이다. 이 교복은 일제강점기 중기 이후 가쿠란이 완전히 대체하기 전까지 혼용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심상소학교→국민학교(초등학교), 중학교(5년제), 구제고등학교(초급대학교, 2년제), 5년제 상업학교, 공업학교, 농업학교, 사범학교(경성사범, 대구사범, 평양사범), 대학교의 교모로 사용되었다. 내지(일본)와 마찬가지로 겨울철에는 가쿠란 위에 망토를 착용하는 것은 의무였다.
휴전 이후에도 국민학생(초등학생)용의 학생모는 1970년대 초반까지, 대학생용의 각모는 1972년까지(일부 학교에서는 1975~1976년까지), 중고교생용의 학생모는 1983년 2월까지 사용되었고 교복 자율화 이후에도 일부 학생들은 1988년까지도 착용하였다. 다만 의외로 학생모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교련이 사라진 이후[4]의 일로, 교련 시간에 한해서 학생모를 착용하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1994년까지도 드물게 착용하는 사람을 볼 수 있었으며, 2015년부터는 야후 저팬 쇼핑, 라쿠텐 등의 쇼핑몰에서 구입하여 각모를 착용하는 사람들도 나타났다.
여학생은 남학생과는 달리 학생모를 착용하지 않았으나 일부 학교에서는 베레모와 비슷한 학생모를 착용하기도 하였다.
여학생은 남학생과는 달리 학생모를 착용하지 않았으나 일부 학교에서는 베레모와 비슷한 학생모를 착용하기도 하였다.
일본에서는 카이세이 학교가 1873년에 최초로 지정했다. 각모(角帽)는 도쿄대학이 1886년에 정한 것이 시초라고 전해진다. 무엇보다도 메이지 시대 전기는 학교 교육 제도의 시행착오가 계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학생모가 나타났다.
옷이 비쌌던 근대 초기에는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서 제모를 교복보다 먼저 정하는 학교가 많았으며 학생들의 모습은 기모노와 하카마라는 전통적인 일본식 복장에 서양식 학생모를 맞춘 것이 많았지만(쇼세후쿠: 서생복[書生服]), 근대화의 진전과 함께 서양식 옷이 보급되면서 쇼와 2년(1927)부터 학생모와 가쿠란은 학생의 상징으로 정착되었다.
구제 고등교육기관에서는 구제고등학교 · 대학 예과 2개 또는 3개의 하얀 선을 두른 둥근 모자, 대학 본과 (학부) · 대학 전문부 · 구제 의학전문학교가 각모, 구제 전문 학교 · 일부 사립대학의 예과는 검정 주름진 둥근 모자를 자주 사용했다.[5]
1895년부터 도쿄대학에서 겨울철 방한복 대책으로 가쿠란 위에 망토를 걸치게 한 것이 시초가 되어 가쿠란+학생모+망토 차림은 남자 학교인 중학교, 각종 직업계열 학교(상공농, 사범), 구제고등학교, 대학교 학생들에게 착용시켰다. 가쿠란에 망토를 걸친 패션은 1942년까지 남학생을 의미하는 아이콘이었다.
다이쇼 시대(1912~1926) 이후에는 중절모를 제모(制帽)로 지정한 학교도 등장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과 태평양 전쟁의 격화에 따라 물자의 통제가 엄격해져 남학생의 복장은 국민복과 군모라는 스타일이 종전까지 이어졌다. 전후 경제부흥에 따라 교복 및 학생모도 다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널리 착용되기 시작했으나 사회인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서 모자를 착용하는 습관이 점차 쇠퇴함에 따라 교칙에 의한 규정이 없는 학교, 특히 대학에서는 1965년 무렵부터 대부분 착용하지 않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통학모가 퍼지고 고등학교 및 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두발과 교복이 자유화되는 가운데 서서히 사라져 가는 등의 요인이 겹치면서 현재 통학모를 의무화하는 학교는 전국적으로 극소수다.
옷이 비쌌던 근대 초기에는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서 제모를 교복보다 먼저 정하는 학교가 많았으며 학생들의 모습은 기모노와 하카마라는 전통적인 일본식 복장에 서양식 학생모를 맞춘 것이 많았지만(쇼세후쿠: 서생복[書生服]), 근대화의 진전과 함께 서양식 옷이 보급되면서 쇼와 2년(1927)부터 학생모와 가쿠란은 학생의 상징으로 정착되었다.
구제 고등교육기관에서는 구제고등학교 · 대학 예과 2개 또는 3개의 하얀 선을 두른 둥근 모자, 대학 본과 (학부) · 대학 전문부 · 구제 의학전문학교가 각모, 구제 전문 학교 · 일부 사립대학의 예과는 검정 주름진 둥근 모자를 자주 사용했다.[5]
1895년부터 도쿄대학에서 겨울철 방한복 대책으로 가쿠란 위에 망토를 걸치게 한 것이 시초가 되어 가쿠란+학생모+망토 차림은 남자 학교인 중학교, 각종 직업계열 학교(상공농, 사범), 구제고등학교, 대학교 학생들에게 착용시켰다. 가쿠란에 망토를 걸친 패션은 1942년까지 남학생을 의미하는 아이콘이었다.
다이쇼 시대(1912~1926) 이후에는 중절모를 제모(制帽)로 지정한 학교도 등장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과 태평양 전쟁의 격화에 따라 물자의 통제가 엄격해져 남학생의 복장은 국민복과 군모라는 스타일이 종전까지 이어졌다. 전후 경제부흥에 따라 교복 및 학생모도 다시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널리 착용되기 시작했으나 사회인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서 모자를 착용하는 습관이 점차 쇠퇴함에 따라 교칙에 의한 규정이 없는 학교, 특히 대학에서는 1965년 무렵부터 대부분 착용하지 않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통학모가 퍼지고 고등학교 및 중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두발과 교복이 자유화되는 가운데 서서히 사라져 가는 등의 요인이 겹치면서 현재 통학모를 의무화하는 학교는 전국적으로 극소수다.
북유럽에서는 졸업식을 비롯한 교내 행사용 모자로 사용된다. 덴마크에서는 십자가가 붙어 있고 스웨덴과 핀란드는 하프 형상이 붙어 있다. 다만 평소에는 학생모를 착용하고 다닐지 말지는 개인의 자유라서 멋내기 용도로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잘 없다.
독일에서는 독일제국 시대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사관학교와 일부 사립/종교학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에서 정해진 교복이 없는 대신에 학생모를 착용하고 다녔다. 그래서 서양식 복장이 비쌌던 시절에는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서 학생모부터 지정한 경우가 많았다. 다만 독일에서도 여학생은 따로 교모를 지정하지 않았다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여학생도 교모를 쓰는 경우가 늘어났다. 그러다가 나치독일이 집권하면서 교모가 계급적 오만의 상징이라며 폐지되었고, 그 대신 히틀러 유겐트 단원복이 대용 교복으로의 역할을 했으며, 나치가 멸망하고 나서도 대부분의 학교에서 재도입되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독일제국 시대와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사관학교와 일부 사립/종교학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교에서 정해진 교복이 없는 대신에 학생모를 착용하고 다녔다. 그래서 서양식 복장이 비쌌던 시절에는 독일의 사례를 참고해서 학생모부터 지정한 경우가 많았다. 다만 독일에서도 여학생은 따로 교모를 지정하지 않았다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여학생도 교모를 쓰는 경우가 늘어났다. 그러다가 나치독일이 집권하면서 교모가 계급적 오만의 상징이라며 폐지되었고, 그 대신 히틀러 유겐트 단원복이 대용 교복으로의 역할을 했으며, 나치가 멸망하고 나서도 대부분의 학교에서 재도입되지 않았다.
일본의 학생모는 가죽 또는 비닐으로 된 챙이 달려 있으며 정모와 마찬가지로 턱 끈도 달려 있다. 전면에는 학교의 상징 마크나 '大學' 등의 표시가 있는 것이 일반적인데 모자에 구멍을 뚫어서 끼우는 방식으로 부착하며 모자의 안쪽을 통해 쉽게 뺄 수도 있다.
형상에 따라 구별하면 천장의 모양이 둥근 모자와 사각형을 이루는 각모가 있다. 소재는 블랙 라샤 재질이 가장 많지만 소수의 예외도 있다. 여름철에는 흰색의 덮개 천을 씌우는 경우도 있다.
형상에 따라 구별하면 천장의 모양이 둥근 모자와 사각형을 이루는 각모가 있다. 소재는 블랙 라샤 재질이 가장 많지만 소수의 예외도 있다. 여름철에는 흰색의 덮개 천을 씌우는 경우도 있다.
모자 천장의 가장자리를 물결형태로 하거나 허리에 흰 선이나 주름진 직물을 감거나 하는 등 학교 · 모자 가게 · 지역별로 차이가 많다. 구마모토현립 세이세이코우고등학교(熊本県立済々黌高等学校)의 학생모의 허리에는 노란색 선이 1개 들어간다.
장기간 사용을 하면 옷처럼 원단이 마모되거나 털이 나와 모양이 헝클어진다. 너덜너덜한 제복과 함께 입는 관습이 구제고등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반카라(蛮殻) 또는 폐의파모(弊衣破帽)라고도 불리는 이 행위는 매무새에 집착하지 않고 학업 및 기타에 몰두하는 학생의 기상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것이기도 했다. 반카라의 풍조가 높아짐에 따라 신품 학생모도 연륜이 들어간 것이 보이도록 의도적으로 손상시키는 행위가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정당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손상된 것으로 가공시키는 방법은 전승에 다양한 방법이 있으나 일반적인 순서의 예는 다음과 같다.
1. 손으로 주무르거나 접거나 문지르거나 하여 모자에서 신품 티를 제거하고 부드럽게 한다.
2. 라샤의 표면을 가스렌지의 불에 태우거나 다리미로 압력을 가하거나 하여 표면의 보풀을 제거한다.
3. 달걀흰자와 밀랍 등을 써서 표면에 그리거나 기름에 튀기거나 볶거나 한다. 이것은 다음 공정의 사전 준비이다.
4. 위 작업 후 모자가 마르면 구두약을 여러 번 덧칠하고 "흙"으로 한다. 원형을 잃지 않을 정도로 모자 전체에 얼룩이 묻도록 한다.
5. 이상의 절차 외에 고리를 접거나 원단에 잘린 듯한 자국을 내거나 구멍 가공을 추가하기도 한다.
1970년대 서울이나 부산의 일부 지역에는 학생모의 크라운 부분을 일부러 찌그러뜨려 납작하게 눌러 쓰는 유행이 있었다고 한다.[6] 영화 친구에 보면 장동건이 이렇게 눌러 쓰고 다니는 장면이 군데군데 있다.
반카라(蛮殻) 또는 폐의파모(弊衣破帽)라고도 불리는 이 행위는 매무새에 집착하지 않고 학업 및 기타에 몰두하는 학생의 기상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것이기도 했다. 반카라의 풍조가 높아짐에 따라 신품 학생모도 연륜이 들어간 것이 보이도록 의도적으로 손상시키는 행위가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정당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손상된 것으로 가공시키는 방법은 전승에 다양한 방법이 있으나 일반적인 순서의 예는 다음과 같다.
1. 손으로 주무르거나 접거나 문지르거나 하여 모자에서 신품 티를 제거하고 부드럽게 한다.
2. 라샤의 표면을 가스렌지의 불에 태우거나 다리미로 압력을 가하거나 하여 표면의 보풀을 제거한다.
3. 달걀흰자와 밀랍 등을 써서 표면에 그리거나 기름에 튀기거나 볶거나 한다. 이것은 다음 공정의 사전 준비이다.
4. 위 작업 후 모자가 마르면 구두약을 여러 번 덧칠하고 "흙"으로 한다. 원형을 잃지 않을 정도로 모자 전체에 얼룩이 묻도록 한다.
5. 이상의 절차 외에 고리를 접거나 원단에 잘린 듯한 자국을 내거나 구멍 가공을 추가하기도 한다.
1970년대 서울이나 부산의 일부 지역에는 학생모의 크라운 부분을 일부러 찌그러뜨려 납작하게 눌러 쓰는 유행이 있었다고 한다.[6] 영화 친구에 보면 장동건이 이렇게 눌러 쓰고 다니는 장면이 군데군데 있다.
[1] 고등학생용과 같이 한글 '중' 대신 한자 '中'으로 적혀 있기도 하다. 1962년까지 한자, 1963년부터 한글로 변경되었다.[2] 높을 고(高)의 속자인 髙 자가 붙어 있다. 마산고등학교는 저 髙자 옆에 날개가 붙어 있는데 마산고 교표를 그대로 모자에 갖다붙인 것이다. 항목 참조.[3] 해당 모자는 연세대학교의 것으로, 모자 앞에 연대(延大)라는 장식이 붙어 있다.[4] 정확히는 군사훈련 부분이 폐지된 이후.[5] 법령으로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니고 각 학교의 교칙으로 정해져 있었으며 일반적으로 이와 같이 나누어져 있었다.[6] 이러한 형태를 크러쉬 캡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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