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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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랜더스 No.86 | |
윤재국 尹在國 | Yoon Jaeguk | |
출생 | |
경기도 인천시 (現 인천광역시) | |
국적 | |
학력 | |
신체 | |
포지션 | |
투타 | |
프로 입단 | 1998년 2차 1라운드 (전체 6번, 쌍방울) |
소속팀 | |
지도자 | 청원고등학교 타격 인스트럭터 (2010) 인천고등학교 코치 (2011~2012) 인천고등학교 감독 (2013) SK 와이번스 2군 주루코치 (2014~2015) 한화 이글스 1군 주루코치 (2016~2017)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2019)[1] 롯데 자이언츠 1군 작전·주루코치 (2019~2021)[2] 롯데 자이언츠 2군 작전·주루코치 (2021)[3] SSG 랜더스 잔류군 책임·야수코치 (2023) SSG 랜더스 2군 작전·주루코치 (2024)[4] SSG 랜더스 1군 1루 작전·주루코치 (2024)[5] SSG 랜더스 1군 1루주루·외야수비코치 (2025~) |
병역 | 공익근무요원 (2004~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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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시즌을 끝으로 소속팀 쌍방울이 결국 해체되고 2000년 3월 SK 와이번스가 인천을 연고로 하는 신생팀으로 재창단되면서 고향 인천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강병철 초대 SK 감독의 중용으로 2000년부터 주전이 된 그는 0.276, 95안타, 30타점, 7도루라는 성적을 올렸다. 2001년 성적은 0.277, 83안타, 38타점, 10홈런, 11도루로 SK의 주전 외야수로 성장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2002 시즌 초 삼성과의 경기 중, 김종훈의 타구를 잡다가 발목 부상을 당해 2군으로 갔고, 그 사이 조원우, 채종범, 이진영이 주전을 차지해 자리가 없었다. 이때부터 그의 선수 생활이 꼬이기 시작한다.
두산 입단 초기 팬들의 반응은 싸늘했지만, 곧 강봉규, 김창희, 최경환, 전상렬, 장원진 등과 함께 주전 외야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2004년 6월 2일, 잠실 LG전에서 투수 서승화의 고의 태클에 걸려 넘어져 무릎을 다쳤고, 결국 십자인대 파열로 인해 시즌 아웃된다.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시즌 서승화의 태클로 인해 도약할 수 없게 된 셈. 설상가상으로 부상 재활 도중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도 연루되는 바람에 서른이 다 된 나이에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해야 했다.
이후 2년간 공익 복무를 마친 뒤 2007년 초 소집 해제되어 두산으로 복귀하지만, 이미 이종욱, 민병헌, 김현수 등 젊은 선수들로 꾸려진 두산의 외야에는 더 이상 그가 설 자리가 없었다. 결국 2007년 시즌 후, 5,000만 원에 한화 이글스로 현금 트레이드된다.[10]
하지만 2004년 6월 2일, 잠실 LG전에서 투수 서승화의 고의 태클에 걸려 넘어져 무릎을 다쳤고, 결국 십자인대 파열로 인해 시즌 아웃된다.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시즌 서승화의 태클로 인해 도약할 수 없게 된 셈. 설상가상으로 부상 재활 도중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도 연루되는 바람에 서른이 다 된 나이에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해야 했다.
이후 2년간 공익 복무를 마친 뒤 2007년 초 소집 해제되어 두산으로 복귀하지만, 이미 이종욱, 민병헌, 김현수 등 젊은 선수들로 꾸려진 두산의 외야에는 더 이상 그가 설 자리가 없었다. 결국 2007년 시즌 후, 5,000만 원에 한화 이글스로 현금 트레이드된다.[10]
하지만 재기하지 못하고, 2009년 시즌 후 다리 부상이 재발하는 바람에 결국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신인 시절 모습에 비하면 프로 시절이 여러모로 아쉬운 선수. 김성근 감독도 윤재국이 은퇴하자 안타까워했다.
신인 시절 모습에 비하면 프로 시절이 여러모로 아쉬운 선수. 김성근 감독도 윤재국이 은퇴하자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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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18 시즌 종료 후 롯데 자이언츠 코치로 합류했다. 보직은 외야 수비 코치 겸 1루 주루코치.
2019년 7월 23일부터 1군 작전코치를 맡았다.
그리고 시즌 후 1군 트레이닝 코치 김종훈, 2군 배터리 코치 정호진, 2군 트레이닝 코치 류호진, 김성진과 함께 잔류와 동시에 보직을 유지한 몇 안 되는 코치가 되었다.
2020년 7월 1일 NC전에 7회초 2:4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2사 1,2루 상황에서 딕슨 마차도의 안타 때 2루주자가 이대호였음에도 무리하게 돌리는 바람에 추가 점수를 내지 못했고 상당한 욕을 먹고 있다.
그리고 7월 28일 NC전 1회초 2:0으로 2사 1, 2루 상황에서 안치홍의 안타 때 2루주자 또 이대호였음에도 무리하게 돌리는 바람에 주루사를 시켰다. 그 와중 본인은 돌린 후에 벤치로 가려는 장면이 보이자 벤치 들어가려고 주루사 유도한 거 아니냐는 팬들의 의견도 있었다.
시즌 내내 정확하지 않은 판단으로 풍차 돌리기를 하다가 주자를 죽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다른 주자였으면 그나마 말이 없었는데 리그에서 소문난 똥차 이대호로 풍차를 돌리는 건 심각한 일이다.
10월 30일 시즌 최종전에서는 전준우가 사이클링 히트에 3루타만을 남겨둔 상황에 1루 라인 선상 타구를 쳤는데, 접전 상황도 아니고 이미 11점차로 경기가 한참 기울어진 상황에서 그간 열심히 돌리던 풍차를 돌리지 않아 또 까였다. 팬들은 물론이고 캐스터와 덕아웃 선수들 모두 사이클링 히트를 기대하고 있던 시점에서 혼자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인지 전준우 앞 주자인 손아섭을 막아세운 것.
2021년 5월 11일 허문회 감독 경질 여파로 2군 작전, 주루코치로 좌천되었다.
시즌 종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아 팀을 떠나게 되었다.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1998 | 94 | 163 | .227 | 37 | 1 | 4 | 0 | 11 | 25 | 6 | 8 | 27 | .266 | .282 | |
1999 | 108 | 260 | .265 | 69 | 9 | 9 | 1 | 21 | 35 | 15 | 25 | 63 | .325 | .381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2000 | 125 | 344 | .276 | 95 | 14 | 3 | 2 | 30 | 43 | 7 | 18 | 63 | .310 | .352 | |
2001 | 109 | 300 | .277 | 83 | 10 | 2 | 10 | 38 | 40 | 11 | 31 | 57 | .341 | .423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2002 | 32 | 40 | .125 | 5 | 1 | 1 | 0 | 3 | 3 | 2 | 6 | 12 | .239 | .200 | |
2003 | 63 | 167 | .263 | 44 | 7 | 1 | 1 | 13 | 18 | 1 | 17 | 32 | .328 | .335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2004 | 28 | 92 | .250 | 23 | 3 | 0 | 2 | 15 | 13 | 4 | 5 | 20 | .283 | .348 | |
2005 | 군복무(공익근무요원) | ||||||||||||||
2006 | |||||||||||||||
2007 | 74 | 202 | .257 | 52 | 6 | 1 | 3 | 23 | 26 | 5 | 20 | 31 | .321 | .342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2008 | 55 | 143 | .210 | 30 | 7 | 1 | 0 | 9 | 25 | 2 | 23 | 31 | .319 | .273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2009 | 26 | 55 | .273 | 15 | 5 | 0 | 0 | 7 | 6 | 0 | 6 | 14 | .344 | .364 | |
KBO 통산 (10시즌) | 714 | 1766 | .257 | 453 | 63 | 22 | 19 | 170 | 234 | 53 | 160 | 350 | .316 | .34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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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7월 22일[2] 2019년 7월 23일~2021년 5월 10일[3] 5월 11일~[4] ~5월 28일[5] 5월 29일~[6] 당시 쌍방울의 빈약한 자금 사정을 고려한다면 상당한 수준의 투자였다. 당장 그의 동기였던 국가대표 투수 조진호가 쌍방울 입단을 거부하고 메이저리그로 갔던 이유도 계약금 문제 때문이었다.[7] 자신은 원래 4번째 지명 순번 팀이었던 OB 베어스의 지명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OB는 그를 지명하지 않았다.[8] 그래도 투수진에서는 김원형, 성영재, 김기덕 정도가 있었지만 김원형은 시즌 중 당한 타구 직격 부상으로 시즌을 날려먹었다. 더 심각한 것은 야수진이었는데 최태원과 조원우를 제외하면 시망.[9] 한 때 좌타 외야수 유망주였고 최진행, 최형우 등과 함께 경찰 야구단 창단 멤버였으나, 고질적인 어깨 부상으로 인해 끝내 꽃피우지 못하고 군 제대 후인 2008년 방출되어 은퇴. 이후 SK 와이번스 스카우터, 롯데 자이언츠 전력분석원을 역임하다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스카우트 팀을 시작으로 MLB 스카우터로 일하기 시작했고, 2025년 현재는 필라델피아 필리스 아시아 지역 스카우터 겸 양산BC 감독을 역임하고 있다.[10] 이 당시 두산은 윤재국, 강동우 등 팀 내에서 자리가 없어진 준척급 선수들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해 내보냈고, 이경필, 구자운 등의 가망이 없다고 보여지는 선수들을 방출시키는 등 대대적인 선수단 개편을 진행했다.[11] 감독 재임 당시 지도했던 제자가 백승현과 신민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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