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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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영의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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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영 馬一英 | Ma Ilyoung | |
출생 | |
국적 | |
학력 | |
신체 | 178cm | 95kg |
포지션 | |
투타 | |
프로 입단 | |
소속팀 | |
지도자 | |
병역 | 공익근무요원 (2005~2007) |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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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단 첫해부터 1군 생활을 시작하여 5승 5패 2세이브, ERA 3.38로 1년차 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성적을 올렸고, 그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진입하면서 데뷔 첫 해 우승반지를 끼는 기쁨도 누렸다.
2년차인 2001년부터는 선발투수로 자리잡으면서 152⅓이닝 10승 5패 ERA 3.96을 기록하면서 전년도에 비해 부진했던 팀 선발진을 책임졌다.[7] 그러나 이듬해인 2002년에는 7승 4패에 그치는 등 2001년 이후 성적이 점차 내려가더니 2003~2004년은 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거하게 말아먹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었으나, 돈만 내고 병역면제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친 뒤 2007년 소집 해제되어 팀에 복귀했는데, 그 2년 동안 현대 유니콘스는 모기업 사정으로 완전히 절단나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몇 경기 등판하지 못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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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현대가 해체된 뒤 히어로즈로 재창단한 시즌인 2008년에 화려하게 부활,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총 173이닝을 던져 11승 11패 ERA 3.49, 탈삼진 83개. 꿈도 희망도 없던 히어로즈의 2008 시즌 승수가 총 50승이니 22%를 혼자 책임진 셈인데, 함께 원투펀치를 구성했던 장원삼이 12승을 건졌으니 두 명이서 히어로즈 승수의 거의 절반을 책임진 셈이다. 특히나 이 해 마일영은 간간이 구사한 너클볼로 방망이를 이끌어 삼진을 잡는 모습이 화제를 모아 더욱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9 시즌에는 전년도 무리한 후유증[9]으로 부진하여 5승 7패, ERA 6.72을 찍었다. 이 해 히어로즈는 장타력을 앞세운 타선이 준수하게 활약해 줬고, 불펜진도 이보근, 황두성 등이 분투하며 나름대로 역할을 해줬지만, 선발진이 무너지면서 시즌을 망치고 말았다. 이현승의 포텐이 드디어 터졌지만 트레이드 무산의 여파로 장원삼이 무너지고 마일영마저 부진하면서 선발진이 와장창 깨져버린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시적인 부진이라고 생각하는 팬이나 전문가들도 꽤 있었으며, 드디어 이현승의 포텐도 터졌으니 장원삼-마일영-이현승으로 구성되는 젊은 좌완 트로이카는 어둠 속 히어로즈에게 한줄기 빛이었다.
하지만 재정 문제에 시달리던 히어로즈는 이미 2008시즌 종료 후 장원삼의 현금 트레이드를 시도하다가 무산된 전적이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좌완 트로이카는 오래가지 못하고 2009년을 끝으로 세 명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장원삼이 삼성, 이현승이 두산으로 팔려나간 가운데, 마일영은 2010년 시범경기 도중 마정길[10]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었다.[11][12]
이 트레이드로 고향 팀에서 뛰게 되었으나, 정작 본인은 현대 유니콘스 시절부터 10년 넘게 뛰어 온 팀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적잖아 착잡해했다. '한화행' 마일영, "그저 멍할 뿐이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9 시즌에는 전년도 무리한 후유증[9]으로 부진하여 5승 7패, ERA 6.72을 찍었다. 이 해 히어로즈는 장타력을 앞세운 타선이 준수하게 활약해 줬고, 불펜진도 이보근, 황두성 등이 분투하며 나름대로 역할을 해줬지만, 선발진이 무너지면서 시즌을 망치고 말았다. 이현승의 포텐이 드디어 터졌지만 트레이드 무산의 여파로 장원삼이 무너지고 마일영마저 부진하면서 선발진이 와장창 깨져버린 것.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시적인 부진이라고 생각하는 팬이나 전문가들도 꽤 있었으며, 드디어 이현승의 포텐도 터졌으니 장원삼-마일영-이현승으로 구성되는 젊은 좌완 트로이카는 어둠 속 히어로즈에게 한줄기 빛이었다.
하지만 재정 문제에 시달리던 히어로즈는 이미 2008시즌 종료 후 장원삼의 현금 트레이드를 시도하다가 무산된 전적이 있었고, 아니나 다를까 좌완 트로이카는 오래가지 못하고 2009년을 끝으로 세 명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장원삼이 삼성, 이현승이 두산으로 팔려나간 가운데, 마일영은 2010년 시범경기 도중 마정길[10]을 상대로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었다.[11][12]
이 트레이드로 고향 팀에서 뛰게 되었으나, 정작 본인은 현대 유니콘스 시절부터 10년 넘게 뛰어 온 팀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적잖아 착잡해했다. '한화행' 마일영, "그저 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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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모습을 보여주어 2군에도 갔다오는 등 전반적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한화의 열악한 불펜진 사정으로 인해 불펜투수로 계속 나왔지만 1아웃잡기도 힘든 그런 투수가 되었다. 볼만 남발하며 1아웃 잡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을 정도. 결국 5월 29일 아예 경기를 내주는 경우도 나오고 말았다. 자책점도 11점대로 거하게 망가져 반쯤 퇴물이 된 상황.
5월 29일 이후로는 계속 등판하여 6월 28일까지 무실점으로 막았다. 특히 6월 17일 경기에서는 심판의 편파적인 스트라이크 존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순간 1⅔이닝을 잘 막았다. 6월28일 경기에는 선발 류현진이 담으로 5이닝만 채우고 내려간 상황에서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류현진과 팀의 승리를 챙겼다. 6월 30일 경기에는 1사 1, 3루의 터프한 상황에 등판하여 병살타로 이닝을 끝내고 다음 이닝도 병살타를 잡아 1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막는 대활약을 펼쳤다.
중요한 순간, 혹은 갑작스런 투수 난조로 교체할 투수가 준비가 안 된 상황 등에 나서서 잘 막았으며 평균자책점도 6점대까지 내렸다. 참고로 6월에 8⅓이닝 동안 평균자책점이 0.00이었다.
7월 2일의 경기에서는 선발 장민제와 신주영이 초반에 무너진 상황에 등판하여 KIA 타이거즈의 강타선을 3⅓이닝동안 1실점으로 막으며 승리를 챙겼다. 팀 승리에 크게 기여함은 물론 방어율도 5점대까지 내렸다.
4, 5월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박정진과 더불어 한화이글스의 필승불펜진의 위용을 보였다.
5월 29일 이후로는 계속 등판하여 6월 28일까지 무실점으로 막았다. 특히 6월 17일 경기에서는 심판의 편파적인 스트라이크 존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순간 1⅔이닝을 잘 막았다. 6월28일 경기에는 선발 류현진이 담으로 5이닝만 채우고 내려간 상황에서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으며 류현진과 팀의 승리를 챙겼다. 6월 30일 경기에는 1사 1, 3루의 터프한 상황에 등판하여 병살타로 이닝을 끝내고 다음 이닝도 병살타를 잡아 1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막는 대활약을 펼쳤다.
중요한 순간, 혹은 갑작스런 투수 난조로 교체할 투수가 준비가 안 된 상황 등에 나서서 잘 막았으며 평균자책점도 6점대까지 내렸다. 참고로 6월에 8⅓이닝 동안 평균자책점이 0.00이었다.
7월 2일의 경기에서는 선발 장민제와 신주영이 초반에 무너진 상황에 등판하여 KIA 타이거즈의 강타선을 3⅓이닝동안 1실점으로 막으며 승리를 챙겼다. 팀 승리에 크게 기여함은 물론 방어율도 5점대까지 내렸다.
4, 5월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박정진과 더불어 한화이글스의 필승불펜진의 위용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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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즌 후 류현진의 LA 다저스 이적, 박찬호의 은퇴, 양훈의 경찰청 입대 등 한화 투수들의 뎁스가 얇아지는 결과가 나타났기에 베테랑 좌투계투로 활약을 바라고 FA를 했지만, 별 활약은커녕 패전처리로도 나오지 못하며, 먹튀라고 욕먹었다.
시즌 초반 1군에서 출전 기회를 부여받았으나, 6경기 6⅓이닝 3실점 평균자책점 4.26을 기록하고 4월 15일 자로 2군행.
이후 6월달에 콜업되었으나 별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다가, 7월 13일 첫 선발등판을 나섰지만, 1⅔동안 안타를 쳐맞고 볼넷을 내주며 3실점을 해 무너졌고 결국 패전행.
투구에서 좌투인 것을 제외하고 볼의 위력이 강력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교한 제구를 가진 것도 아니라 WHIP이 투수의 것이라하기에는 너무 높은 1.86을 기록. 피안타율도 .333인데, 이것은 거의 등판시마다 주자를 내보내는 것과 같다.
시즌 초반 1군에서 출전 기회를 부여받았으나, 6경기 6⅓이닝 3실점 평균자책점 4.26을 기록하고 4월 15일 자로 2군행.
이후 6월달에 콜업되었으나 별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다가, 7월 13일 첫 선발등판을 나섰지만, 1⅔동안 안타를 쳐맞고 볼넷을 내주며 3실점을 해 무너졌고 결국 패전행.
투구에서 좌투인 것을 제외하고 볼의 위력이 강력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교한 제구를 가진 것도 아니라 WHIP이 투수의 것이라하기에는 너무 높은 1.86을 기록. 피안타율도 .333인데, 이것은 거의 등판시마다 주자를 내보내는 것과 같다.
KBO 퓨처스리그에서 12경기 무실점을 기록중이다. (5/18 기준) 한화 팬들은 마일영이 올라와서 불펜에 힘이 되어줬으면 하는 모양.
이후 1군에 승격되었지만 평범한 성적을 찍고 있다. 7월 11일 기준으로 19⅓이닝 ERA 6.98. 작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모습이다. 2군과 1군의 격차를 느낄 수 있다.
이후 1군에 승격되었지만 평범한 성적을 찍고 있다. 7월 11일 기준으로 19⅓이닝 ERA 6.98. 작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모습이다. 2군과 1군의 격차를 느낄 수 있다.
김성근 감독이 투구폼을 바꿔보겠다고 밝혔는데, 팔 각도를 낮췄다. 즉, 좌완 사이드암 투수가 되었다. 이혜천 이후로는 보기 어려웠던 희귀한 투구폼이 다시 나타난 셈.[13]
5월 19일 SK 와이번스전에서 바뀐 투구폼으로 등판했다. 이명기와 박재상 2명의 좌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올라왔고, 실제로 두 명 모두 유격수 땅볼로 유도했지만 유격수 권용관이 두 번 모두 실책을 범해 한 타자도 잡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제이크 폭스가 콜업되며 1군에서 말소되었다.
7월 23일, 임경완과 함께 웨이버 공시로 방출당했다. 방출 이후 처음에는 선수 생활 연장의 뜻을 밝히며 개인 훈련을 이어나갔지만 찾는 팀이 없어 여의치 않았고, 이후 11월 5일 한화의 코치 제안을 받아들이며 은퇴했다.
5월 19일 SK 와이번스전에서 바뀐 투구폼으로 등판했다. 이명기와 박재상 2명의 좌타자를 상대하기 위해 올라왔고, 실제로 두 명 모두 유격수 땅볼로 유도했지만 유격수 권용관이 두 번 모두 실책을 범해 한 타자도 잡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제이크 폭스가 콜업되며 1군에서 말소되었다.
7월 23일, 임경완과 함께 웨이버 공시로 방출당했다. 방출 이후 처음에는 선수 생활 연장의 뜻을 밝히며 개인 훈련을 이어나갔지만 찾는 팀이 없어 여의치 않았고, 이후 11월 5일 한화의 코치 제안을 받아들이며 은퇴했다.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00 | 46 | 93⅓ | 5 | 5 | 2 | 4 | 0.500 | 3.38 | 84 | 7 | 57 | 62 | 39 | 35 | 1.511 | |
2001 | 42 | 152⅓ | 10 | 5 | 0 | 5 | 0.667 (5위) | 3.96 | 149 | 8 | 96 | 110 | 80 | 67 | 1.556 | |
2002 | 30 | 130⅓ | 7 | 4 | 0 | 0 | 0.636 | 4.56 | 132 | 16 | 79 | 98 | 76 | 66 | 1.542 | |
2003 | 20 | 69⅓ | 3 | 6 | 0 | 0 | 0.333 | 5.97 | 81 | 4 | 48 | 32 | 50 | 46 | 1.760 | |
2004 | 26 | 80⅓ | 4 | 4 | 0 | 0 | 0.500 | 4.71 | 99 | 6 | 43 | 46 | 46 | 42 | 1.693 | |
2005 | 군복무(공익근무요원) | |||||||||||||||
2006 | ||||||||||||||||
2007 | 21 | 13⅓ | 0 | 0 | 0 | 2 | 0.000 | 4.73 | 13 | 2 | 8 | 6 | 8 | 7 | 1.425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08 | 28 | 173 | 11 | 11 | 0 | 0 | 0.500 | 3.49 | 155 | 11 | 69 | 83 | 77 | 67 | 1.225 | |
2009 | 27 | 97⅓ | 5 | 8 | 0 | 1 | 0.385 | 6.93 | 127 | 17 | 51 | 51 | 76 | 75 | 1.798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이닝 | 승 | 패 | 세 | 홀 | 승률 | ERA | 피안타 | 피홈런 | 4사구 | 탈삼진 | 실점 | 자책점 | WHIP |
2010 | 47 | 43⅔ | 1 | 3 | 2 | 10 | 0.250 | 7.01 | 51 | 9 | 21 | 26 | 37 | 34 | 1.626 | |
2011 | 51 | 69⅔ | 2 | 5 | 0 | 8 | 0.286 | 5.81 | 75 | 4 | 52 | 32 | 46 | 45 | 1.780 | |
2012 | 55 | 61⅔ | 2 | 3 | 1 | 6 | 0.400 | 5.55 | 86 | 6 | 20 | 31 | 46 | 38 | 1.686 | |
2013 | 13 | 12⅓ | 0 | 1 | 0 | 0 | 0.000 | 6.57 | 17 | 1 | 8 | 6 | 9 | 9 | 1.865 | |
2014 | 19 | 20 | 0 | 0 | 0 | 1 | 0.000 | 8.55 | 32 | 1 | 13 | 8 | 20 | 19 | 2.050 | |
2015 | 2 | ⅓ | 0 | 0 | 0 | 0 | 0.000 | 0.00 | 0 | 0 | 2 | 0 | 1 | 0 | 3.000 | |
KBO 통산 (14시즌) | 427 | 1017 | 50 | 55 | 5 | 37 | 0.476 | 4.87 | 1101 | 92 | 567 | 591 | 611 | 550 | 1.580 | |
- 왠지 억울하게 생긴 외모와 다르게 상당히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고 한다.
- MBC 야구 다큐멘터리인 위닝샷에 투수별 비교짤에 나왔는데, 유희관과 구속이 유사하지만 그보다 공 회전수가 반절밖에 안 된다는 처참한 예시로 등장했다. 일부에서 너클볼을 던지기 시작한 이후 악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다는 말이 있었는데 회전수가 이리 심하게 낮은 걸 보면 관련된 부분이 있지 않나 싶다.
- 2018년 5월에 KBO 트레이드 이면 계약 파문에 오랜만에 언급되었는데, 한화가 마일영을 사기 위해 마정길 + 3억이 아닌 마정길 + 12억 5천을 지급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마일영은 2008년 뛰어난 성적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지만 2009년 하락세를 보이고 있었고, 마정길도 2008년의 호성적에 비해 2009년에는 페이스가 조금 저하되고 부상을 안고 있는 상황이었다. 결과적으로 실링에서 큰 차이는 보이지 않았는데, 한화가 2008년의 활약과 좌완 선발이라는 메리트, 그리고 두 살 젊다는 이점을 보고 마정길에 12.5억이라는 거액까지 얹어주는 결단을 한 셈. 그리고 트레이드 이후 마정길은 재활을 마치고 두 시즌간 히어로즈의 주축 불펜으로 활약하고, 부상으로 한 해 쉰 뒤에도 꾸준히 불펜에서 제 몫을 다해준 반면, 마일영은 선발로는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불펜으로도 거의 매 시즌 먼지나게 얻어맞으며 결과론적으로는 한화가 히어로즈에게 준수한 불펜에 돈까지 조공해 준 꼴이 되고 말았다.
- 이사만루2018에서는 올구종에 스플리터 너클볼까지 가지고 있어 대전 액션 플레이 최강자로 불린다.
- 마해영과 이름이 비슷해서 둘이 형제가 아니냐고 오해까지 받기도 했었다.
[1] 경기대학교 스포츠레저학과 학사학위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졸로 표기되어 불쾌했던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로 참조[2] 지명권 양도계약으로 현대 유니콘스 입단[3] ~6월 5일[4] 6월 6일~ 6월 7일[5] 6월 8일~[6] 이를 계기로 규약이 개정되어 지명권 트레이드는 금지되었고, 신인 선수 현금 트레이드 역시 금지되었다. 이후 20년의 시간이 흘러 2020년부터 지명권 양도가 부활했으나 최대 2명까지만 가능하며 지명권끼리 맞교환, 미국에서처럼 먼 미래에 시행하는 드래프트의 지명권 교환은 불가능하다.[7] 2001년 당시 현대 선발진은 정민태가 요미우리로 이적하고 김수경은 전년도에 비해 성적이 추락하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등 구멍이 뚫린 상황이었고, 그나마 임선동과 마일영만 제대로 활약했을 정도로 다승왕 트리오를 보유했던 2000년에 비해 선발진이 빈약해진 상태였다.[8] 그러나 적응과는 별도로 공익 생활하면서 몸을 꾸준히 만들었다. 2007년 소집해제 당시 김시진 감독이 '즉시 전력으로 쓸 정도로 몸 상태 좋다.'고 평할 정도. 공익 근무 중에 틈틈이 너클볼을 연습했다고 한다.[9] 혹사라고 보기에는 애매하다. 173이닝을 던지기는 했지만 출전한 28경기 중 불펜으로 나온 경기는 단 한 경기도 없기 때문.[10] +12억 5천만 원[11] 트레이드 당시 3억 원으로 발표되었으나, 2018년 KBO 트레이드 이면 계약 파문을 통해 12억 5천만 원을 건넸음이 밝혀졌다.[12] 한편, 2010년 시범경기 실시 전인 2월에 넥센타이어와 히어로즈가 스폰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넥센 로고가 박힌 유니폼을 입은 마일영의 사진이 남아있기도 하다. #[13] 랜디 존슨의 그 투구폼이다.[14] 2011년 당시 제구력도 구속도 영 좋지 않아서 붙은 별명으로, 마일영=Mile 0인 것을 이용한 말장난이다.[15] 2011년 한때(5월) 평균자책점 11점대로, 10점대를 넘겨 평균자책점이 10점대라 마10 아니냐는 소리도 들어먹었었다. 그러나 이후 6월달 후반기에 조금은 안정감을 찾으며 6점대로 평균자책을 내려서 다행히도 그 의미의 마텐에서는 벗어났다.[16] 4회가 지나면 급격하게 무너지는 폼으로 인해 선수단에서 그렇게 불리웠다.[17]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2009년에 혀갤에서 카라의 My love란 노래+잇몸미소 짤방과 함께 유행했던 별명이다.[18] 프로야구매니저에서 '씨덜년'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유저가 마일영 선수 카드를 계속 올리면서 꾸준하게 글을 올렸는데 이 때문에 다른 유저들이 마일영만 보더라도 "아 씨덜년이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미지가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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