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누엘 산타나
최근 수정 시각:
[ 펼치기 · 접기 ]
| |||||||||||||||||||||||||||||||||||||||||||||||||||||||||||||||||||||||||||||||||||||||||||||||||||||||||||||||||||||||||||||||||||||||||||||||||||||||||||||||||||||||||||||||||||||||||||||||||||||||||||||||||||||||||||||||||||||
마누엘 산타나 Manuel Santana | |
![]() | |
본명 | 마누엘 산타나 마르티네스 Manuel Santana Martínez |
출생 | |
사망 | |
국적 | |
프로데뷔 | 1968년[1] |
신체 조건 | 미상 |
사용 손 | 오른손 (원핸드 백핸드) |
ATP 싱글 랭킹 | 최고 145위[2] |
ATP 더블 랭킹 | 최고 207위 |
단식 통산 성적 | 116승 45패 (72.05%)[3] |
단식 타이틀 획득 | |
그랜드슬램 성적 | 프랑스 오픈 2회 우승 (1961, 1964) 윔블던 우승 (1966) US오픈 우승 (1965) |
- 개인전 통산 성적 : 116승 45패
- 커리어 통산 타이틀 획득 : 7회[8]
- 복식 통산 성적 : 21승 23패
- 복식 타이틀 획득 : 0회
그랜드슬램 대회 : 우승 4회
- 호주 오픈 : 불참
- 프랑스 오픈 : 우승 2회 - 1961, 1964
- 윔블던 : 우승 1회 - 1966
- US 오픈 : 우승 1회 - 1965
마누엘 산타나의 연도별 메이저대회 성적표
연도 | ||||
1958 | 불참 | 불참 | 1라운드 | 불참 |
1959 | 불참 | 불참 | 3라운드 | 2라운드 |
1960 | 불참 | 8강 | 3라운드 | 불참 |
1961 | 불참 | 우승 | 2라운드 | 불참 |
1962 | 불참 | 4강 | 8강 | 불참 |
1963 | 불참 | 4강 | 4강 | 불참 |
1964 | 불참 | 우승 | 4라운드 | 2라운드 |
1965 | 불참 | 2라운드 | 불참 | 우승 |
1966 | 불참 | 불참 | 우승 | 4강 |
1967 | 불참 | 불참 | 1라운드 | 불참 |
1968 | 불참 | 불참 | 3라운드 | 불참 |
1969 | 불참 | 4라운드 | 불참 | 4라운드 |
1970 | 불참 | 4라운드 | 불참 | 4라운드 |
1971~1976 | X | X | X | X |
1977 | 불참 | 불참 | 불참 | 1라운드 |
복식 그랜드슬램
- 남자복식 : 우승 1회[9]
기타 대회
1938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형이 일하던 테니스 클럽에 식사를 가져다주다가 우연히 테니스를 접했고, 이후 볼보이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스페인에서 테니스는 상류층 스포츠였으나, 산타나는 비교적 평범한 가정 출신으로 정상에 오른 보기 드문 사례였다.
형이 일하던 테니스 클럽에 식사를 가져다주다가 우연히 테니스를 접했고, 이후 볼보이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스페인에서 테니스는 상류층 스포츠였으나, 산타나는 비교적 평범한 가정 출신으로 정상에 오른 보기 드문 사례였다.
1956년 아마추어 무대에 데뷔한 산타나는 1958년부터 본격적인 투어활동을 시작하였다.
산타나는 1961년 프랑스 선수권[11]에서 우승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떠올랐다.
1964년 프랑스 선수권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1965년 미국 선수권[12],1966년 윔블던까지 제패하면서 세계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올랐다.
특히 1966년 윔블던 우승은 당시 스페인 선수들이 잔디코트에 약하다는 인식을 완전히 뒤집은 역사적인 사건이었으며, 이를 통해 커리어 채널슬램[13]을 달성한 11번째 선수이자 오픈시대 이전 달성한 마지막 선수가 되었다.
1965년과 1966년에는 스페인 선수로서는 최초로 세계 1위로 선정되었다.[14]
산타나는 1961년 프랑스 선수권[11]에서 우승하며 세계적인 선수로 떠올랐다.
1964년 프랑스 선수권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고, 1965년 미국 선수권[12],1966년 윔블던까지 제패하면서 세계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올랐다.
특히 1966년 윔블던 우승은 당시 스페인 선수들이 잔디코트에 약하다는 인식을 완전히 뒤집은 역사적인 사건이었으며, 이를 통해 커리어 채널슬램[13]을 달성한 11번째 선수이자 오픈시대 이전 달성한 마지막 선수가 되었다.
1965년과 1966년에는 스페인 선수로서는 최초로 세계 1위로 선정되었다.[14]
1968년 오픈 시대가 시작될 당시 이미 30세였으며 전성기가 지난 상태였음에도 준수한 활약을 보였다.
1968년 필라델피아에서 아서 에시 등을 제압하며 첫 오픈시대 타이틀을 획득하였고, 이어 4월 템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2번째 타이틀을 획득한다.또한 베를린 오픈에서는 토드 오커를 결승에서 꺾으며 1968년 한 해에만 3개의 타이틀을 획득한다. 정식종목은 아니였지만, 1968년 멕시코 올림픽 테니스 남자단식 금메달을 획득한다.
1969년 2개의 타이틀 획득과 더불어 30승 6패(승률 83.33%)를 기록하며 활약한다.
1970년 바르셀로나에서는 결승에서 로드 레이버를 꺾으며 마지막 우승을 기록하였다.
1971년부터 1976년까지 그랜드슬램 대회는 참여하지 않았으며 주로 유럽권 대회와 남아프라카에서 개최되는 대회를 종종 참여하였다.
1977년 39세의 나이에 US오픈에 참여하였으며 당대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었던 후배 기예르모 빌라스와의 경기에서 1-6, 0-6으로 완패하며 은퇴한다.[15]
1968년 필라델피아에서 아서 에시 등을 제압하며 첫 오픈시대 타이틀을 획득하였고, 이어 4월 템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2번째 타이틀을 획득한다.또한 베를린 오픈에서는 토드 오커를 결승에서 꺾으며 1968년 한 해에만 3개의 타이틀을 획득한다. 정식종목은 아니였지만, 1968년 멕시코 올림픽 테니스 남자단식 금메달을 획득한다.
1969년 2개의 타이틀 획득과 더불어 30승 6패(승률 83.33%)를 기록하며 활약한다.
1970년 바르셀로나에서는 결승에서 로드 레이버를 꺾으며 마지막 우승을 기록하였다.
1971년부터 1976년까지 그랜드슬램 대회는 참여하지 않았으며 주로 유럽권 대회와 남아프라카에서 개최되는 대회를 종종 참여하였다.
1977년 39세의 나이에 US오픈에 참여하였으며 당대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었던 후배 기예르모 빌라스와의 경기에서 1-6, 0-6으로 완패하며 은퇴한다.[15]
더할 나위 없이 스페인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가운데 한 명이다.
라파엘 나달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스페인 최고의 남자 선수로 평가했으며, 오늘날에도 스페인 테니스의 개척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스페인 최초의 윔블던 우승, 스페인 최초의 세계 1위, 스페인 최초의 남자 그랜드슬램 다관왕이라는 상징성은 매우 크다.
또한 스페인 선수도 잔디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16]
라파엘 나달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스페인 최고의 남자 선수로 평가했으며, 오늘날에도 스페인 테니스의 개척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스페인 최초의 윔블던 우승, 스페인 최초의 세계 1위, 스페인 최초의 남자 그랜드슬램 다관왕이라는 상징성은 매우 크다.
또한 스페인 선수도 잔디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증명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16]
1977년 은퇴 후에는 스페인 데이비스컵 대표팀 감독, 마드리드 오픈 조직위원장, 마르베야 Manolo Santana Racquets Club 운영 등을 맡으며 스페인 테니스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1984년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020년에는 ITF 최고 공로상인 필립 샤트리에상을 수상하였다.
2021년 12월 11일 향년 83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1984년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020년에는 ITF 최고 공로상인 필립 샤트리에상을 수상하였다.
2021년 12월 11일 향년 83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산타나는 23세의 나이에 프랑스선수권 우승자에 이름을 올리며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 하였다. 이 시기 보통 젊은 나이에 좋은 성과를 남긴 선수들은 프로 계약 후 프로 테니스로 전향하였다.[17] 하지만, 산타나의 커리어에서 볼 수 있듯, 산타나는 전향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로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었다.
오픈시대 이전에는 아마추어 선수는 그랜드슬램, 데이비스컵, 올림픽에 출전이 가능했다. 반면 프로 선수는 앞서 언급한 대회의 출전이 불가했으며, 프로투어(NTL)과 3개의 프로 챔피언십(웸블리프로, 프렌치프로, US프로) 출전만이 가능했다. 즉, 돈을 벌기 위해 프로로 갈 것인지, 명예를 위해 아마추어에 남을 것인지 선택해야했던 시기였던 것이다.
산타나 역시 1960년대 초 큰 규모의 프로 계약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하였는데 이의 배경에는 당시 스페인의 스포츠 행정가이자 훗날 IOC 위원장이 되는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의 개입이 있었다. 당시 산타나와 함께 스페인 테니스를 대표했던 스타 안드레스 히메노가 프로 전향을 선택하며 국제 대회에 참여할 수 없게 되자, 스페인 테니스는 국가의 명예를 이끌 스타가 필요했고, 이에 사마린치는 산타나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며 산타나의 프로 전향을 막았다.
결과적으로 산타나는 그랜드슬램에 계속하여 출전하며 스페인 선수 그랜드슬램 최다 우승자로 이름을 남겼으며[18], 데이비스 컵에서 맹활약[19]하며 스페인의 데이비스 컵 준우승을 2번 이끄는 등의 활약으로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오픈시대 이전에는 아마추어 선수는 그랜드슬램, 데이비스컵, 올림픽에 출전이 가능했다. 반면 프로 선수는 앞서 언급한 대회의 출전이 불가했으며, 프로투어(NTL)과 3개의 프로 챔피언십(웸블리프로, 프렌치프로, US프로) 출전만이 가능했다. 즉, 돈을 벌기 위해 프로로 갈 것인지, 명예를 위해 아마추어에 남을 것인지 선택해야했던 시기였던 것이다.
산타나 역시 1960년대 초 큰 규모의 프로 계약을 제안받았으나, 거절하였는데 이의 배경에는 당시 스페인의 스포츠 행정가이자 훗날 IOC 위원장이 되는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의 개입이 있었다. 당시 산타나와 함께 스페인 테니스를 대표했던 스타 안드레스 히메노가 프로 전향을 선택하며 국제 대회에 참여할 수 없게 되자, 스페인 테니스는 국가의 명예를 이끌 스타가 필요했고, 이에 사마린치는 산타나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며 산타나의 프로 전향을 막았다.
결과적으로 산타나는 그랜드슬램에 계속하여 출전하며 스페인 선수 그랜드슬램 최다 우승자로 이름을 남겼으며[18], 데이비스 컵에서 맹활약[19]하며 스페인의 데이비스 컵 준우승을 2번 이끄는 등의 활약으로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1] 아마추어 데뷔는 1956년[2] 오픈 시대 이전 최고 랭킹은 1위 (1965, 1966년, Lance Tingay)[3] 오픈시대 이전 성적 포함시 864승 227패, 승률 79.1%[4] 오픈시대 이전 획득 타이틀 포함시 72개(ITF 집계기준) 혹은 89개(국가협회 집계기준) 혹은 92개(독립대회 집계 기준)[5] 오픈시대 이전까지는 여러 협회가 테니스를 운영했기에 통일된 기준이 적었다.[6] 1961, 1964 프랑스 오픈 우승, 1966 윔블던 우승[7] 1965-1966, Lance Tingay[8] 여담으로 그랜드슬램 우승 4회 기록은 오픈시대 이전에 달성한 것이라 7개에 포함되지 않는다.[9] 1963 프랑스 오픈, With 로이 에머슨[10] 데이비스 컵 통산 92승 28패로 역대 승리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스페인 선수로서는 1위를 기록 중이며, 67승으로 2위를 기록중인 오란테스보다 25승이나 앞선다.[11] 현 롤랑가로스[12] 현 US 오픈[13] 프랑스오픈과 윔블던을 모두 우승하는 것[14] Ned Potter와 Lance Tingay가 산정한 랭킹이며, 공인되지 않은 비공식 기록이지만 위 랭킹 산정은 당대 최고의 공신력 있는 순위로 인정받았다.[15] 1978년 뉴포트 오픈에 참여하긴 했지만, 실질적인 은퇴는 1977년으로 본다.[16] 믈론 산타나의 윔블던 우승 이후 무려 40년이 지나서야 윔블던 결승에 진출한 후배가 등장했으며, 우승기록 경신까지는 42년이 걸렸다.[17] 이 당시 최고의 권위로 불리는 4대 슬램을 비롯한 아마추어 대회들은 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항공권과 숙박비, 대회 기간 중 생활비 정도만을 지원하였다. 반면 프로 테니스는 막대한 상금을 지급하였다. 그렇기에 아마추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남긴 선수들 대부분은 프로로의 전향을 선택하였다. [18] 라파엘 나달이 2008년 윔블던을 우승하며 5개로 경신하기까지 42년간 이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2025년 알카라스의 프랑스 오픈 우승으로 약 20여년간 보유하고 있던 최다승 2위 기록을 넘겨주게 된다. 현재 순위는 다음과 같다. 1위 나달(22개), 2위 알카라스(7개), 3위 산타나(4개)[19] 역대 최다승 5위, 스페인 선수로는 압도적 1위
![]()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