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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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게르만 대침입기2.2. 중세 이후
3. 매체4. 관련 문서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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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Alan
라틴어: Alani
한자: (엄채)

게르만족의 대이동 당시 고대 로마 영토로 고트족반달족 같은 게르만 부족들과 함께 들어와서 게르만족이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있으며 실제로도 게르만족과 접점이 많은 편이었지만 게르만족과는 언어와 문화가 다른 별개의 민족집단으로, 이들은 이란계 민족이었다. 이들의 이름부터 고대 인도이란어에서 '고귀한'을 뜻하는 아리아(Ariya)에서 유래된 것으로 사르마티아 혹은 마사게타이에서 분파된 민족으로 추정된다.[1]
 

2. 역사[편집]

 

2.1. 게르만 대침입기[편집]

 
원래 알란인은 중앙아시아에 살던 이란계 민족이였으나, 후에 강거의 침입을 피해 서쪽으로 피난온 세력이었다.

고대 로마의 역사서에 따르면 1세기 말에 처음 로마와 접촉하게 되었으며 다른 게르만인들과는 말이 통하지 않으며 사르마티아와 비슷한 생활반경과 문화를 가졌다고 이야기된다. 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알란인은 72년 대군을 이끌고 메디아를 기습하여 주민과 가축이 풍부한 땅을 마음껏 약탈하였다. 메디아 속왕[2] 파코루스는 저항하지 못한 채 도망쳤고, 왕비와 후궁들마저 포로가 되었다가 막대한 몸값을 지불하고서야 풀려났다. 이후 알란인은 아르메니아까지 진격하여 국토를 황폐화하였다. 당시 아르메니아[3] 속왕 티리다테스는 직접 맞서 싸웠으나, 전투 중 올가미에 사로잡힐 뻔했다가 칼로 줄을 끊고 가까스로 탈출하였다.

2세기 초에는 볼가강 하류와 쿠반지역을 장악했다. 원래 이지역에는 아오르시와 시라케스는 타 이란계 부족민들이 정착해있었지만 알란인들은 이들은 정복하거나 동화시킨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 부족들은 역사서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135년엔 캅카스를 넘어 메디아아르메니아를 다시금 유린했다. 그러나 결국 카파도키아 총독 아리아누스에게 격퇴되었다.

이렇듯 알란인은 흑해 북부에 정착해 로마 제국의 캅카스 지역이나 파르티아 제국을 주로 약탈하고 다녔으나, 3세기 초중반(215년~250년경)에 고트족의 침략으로 게르만족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알란인들은 고트족의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으며, 알란인의 미술 양식도 받아들인것으로 보인다.

고트족이 흑해 방면으로 진출한 이후 알란인들은 돈강 방면으로 후퇴한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훈족과의 접촉이 있었던것으로 보인다.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는 알란인이 "훈족과 다소 비슷하지만 생활 방식과 풍습은 덜 야만적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요르다네스는 알란인이 "전투력은 훈족과 맞먹었지만 문명, 풍습, 외모에서는 훈족과 달랐다."라고 평가하였다.
奄蔡國改名阿蘭聊國, 居地城, 屬康居. 土氣溫和, 多楨松·白草. 民俗衣服與康居同.
엄채국(奄蔡國). 이름을 고쳐서 아란료국(阿蘭聊國)이라 부르고, 거처는 지성(地城)이며 강거에 복속해 있다. 토지와 기후는 온화하고 정송(楨松)과 백초(白草)가 많다. 사람들의 풍속과 의복은 강거와 동일하다.

동아시아에선 4세기에 나온 후한서의 서역전에서 엄채국(奄蔡國) 혹은 아란료국(阿蘭聊國)이란 표기로 나오며 여기선 강거에 복속된 국가 중 하나로 언급된다.
Proceri autem Halani paene sunt omnes et pulchri, crinibus mediocriter flavis, oculorum temperata torvitate terribiles et armorum levitate veloces.
알란인은 대개 몸집이 크고 외모가 아름다우며, 머리 색은 적당히 노랗고, 눈빛이 무척 강렬하고 갑옷이 가벼워서 움직임이 날렵하다.

- 4세기의 로마의 역사 학자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에 따르면, 알란인과 훈족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는 훈족이 돈강 유역의 알란인을 공격하면서 깨졌다. 훈족은 많은 알란인을 학살하였으며, 살아남은 알란인들과는 다시 동맹을 맺었다. 이 알란인들은 375년 고트족을 침공하는데 성공하였으며, 다른 사르마티아 부족들과 함께 서쪽으로 이동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378년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와도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4세기경부터 로마 제국이 급격히 약화되는것이 눈에 보이게 되면서, 일부 알란인들은 로마 제국 편에 서서, 다른 알란인들은 반달족, 수에비와 함께 로마 제국을 침공했다.

406년 12월 31일 반달족이 라인강 방면으로 이동할때 로마 제국 갈리아 속주를 지키고 있던 프랑크족과의 전투가 있었는데, 이때 알란인 부족의 왕 레스펜디알이 반달족편에 서서 반달족들을 구해냈다고 힌다.

레스펜디알 왕이 이끄는 부족들은 409년 반달족과 수에비족을 따라 이베리아반도로 이동했다. 이후 레스펜디알 계통의 알란인은 루시타니아카르타기넨시스 속주에 정착했다. 레스펜디알 계통의 부족들은 418년, 레스펜디알의 뒤를 이은 아타케스(Attaces)왕이 서고트족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이후 이 알란 집단은 반달족의 왕 군데리크에게 알란 왕위를 이어받아 줄 것을 요청하였고, 군데리크가 이를 승락하면서 레스펜디알 계통 알란인의 독립된 민족 정체성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일부 알란인은 이베리아 반도에 계속 남았던 것으로 여겨지지만, 대부분은 429년 반달족과 함께 북아프리카로 건너갔다. 그 뒤 북아프리카의 반달 왕국 군주들은 자신을 '반달인과 알란인의 왕(Rex Wandalorum et Alanorum)'이라고 칭하였다. 이후 이 알란인들의 역사는 반달 왕국 문서 참조.

한편, 고아르(Goar)가 이끄는 또 다른 알란 집단은 곧바로 로마 제국과 동맹을 맺고 갈리아에 정착하였다. 442년 아에티우스는 고아르를 설득해 그의 집단 중 일부를 오를레앙으로 이주시켰다. 고아르 본인 또한 알란인의 중심지를 오를레앙으로 옮겼다. 고아르 치하에서 로마의 알란인은 요비누스를 황제로 옹립하는 데 참여하였다.

고아르의 후계자인 상기반(Sangiban) 시대에는 오를레앙의 알란인이 451년 샬롱 전투에서 훈족의 왕 아틸라의 침공을 막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463년에는 오를레앙 전투에서 고트족을 격파하였고, 이어 466년에는 힐데리크가 이끄는 프랑크족도 물리쳤다.

한편, 베오르고르(beorgor)[4]왕의 치하 부족들은 갈리아 전역을 다녔으나, 베오르고르 왕은 464년에 리구리아로 진입하다가 리키메르와의 전투에서 전사한다.

502년~503년에는 클로비스 1세가 이끄는 프랑크 왕국의 군세까지 물리쳤으나, 알란인은 클로비스와 마찬가지로 칼케돈파 기독교를 믿고 있었으며, 루아르강 북쪽 영토를 노리던 아리우스파 서고트족을 견제하기 위해 클로비스와 우호 관계를 맺기를 원했다. 결국 양측은 협정을 체결하였고, 클로비스는 아르모리카의 여러 민족을 통치하게 되었다.
 

2.2. 중세 이후[편집]

 
카스피해 동쪽에 잔존했던 알란인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불가르, 하자르 등의 튀르크와 충동하기도 했다. 이후 하자르 칸국에게 복속되었으나 9세기 말 하자르의 영향력이 약해지자 독립하여 캅카스 북부에 '알라니아'라고 알려진 기독교 왕국을 세워 13세기 몽골의 침략이 일어나기 전까지 번영한다.

1239년부터 1277년 사이에 대부분의 알란인은 몽골 제국에 복속되었다. 이후 그들은 몽골군의 일원으로 유럽 원정과 남송 정복 전쟁에도 참가하였다.

또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서는 알란인이 강력한 귀족 가문인 오스토야(Ostoja) 가문의 일부를 이루었다.

알란인과 통혼한 우랄어족 유목민은 마자르족의 기원이 되었으며, 마자르족의 판노니아 평원 이주 이후에는 다시 튀르크계 민족들과 통혼하여 쿠미크인, 카라차이인, 발카르인의 기원을 이루었다.

캅카스의 오세트인들이 알란인들의 직계 후예로 알려져 있다. 돈 강 일대에서 발굴된 알란족 무덤의 유골들을 대상으로 하플로그룹 대조 조사 결과에서도 역시 이들과 오세트인 사이의 강한 연관성이 확인되었다. 북오세티야 공화국, 남오세티야 문서 참조.

몽골 제국의 침략 이후 일부 알란인은 동방으로 이주해 몽골에 동화되어 아수드 부족을 형성하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북원의 권신 아룩타이가 있다.
 

3. 매체[편집]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결정판,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원판, 결정판 모두 해당) - 유일하게 공동으로 있는 미션인 훈족의 등장(1에서의 명칭), 카탈로니아 평야(2에서의 명칭)에서 서로마의 동맹 중 하나인 알라니 족으로 등장한다. 이 미션은 서로마와 훈이 맞붙는 카탈라우눔 전투를 다루기 때문. 그런데 뜬금없게도 여기서 알란은 1에서는 히타이트 2에서는 바이킹(원판) 혹은 훈족(결정판)으로 나온다.[5] 1, 2 모두 적어도 저 문명들보다는 알란과 더 가까운 페르시아가 있는데도 굳이 이렇게 문명 설정을 한 것은 미스터리(...). 1과 2 모두에서 알란은 기마궁사계 유닛을 많이 쓰는데 그나마 히타이트와 훈은 이 유닛들이 강하니 1과 2 결정판에서는 정상적인 테크를 탄다고 볼 수 있으나 2 원판에서는 뜬금없다. 바이킹은 보병과 석궁병은 좋지만 기마궁사계 성능은 거의 최악이기 때문이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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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역사가인 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디오 카시우스 역시 이들이 마사게타이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했다.[2] 파르티아의 속국.[3] 아르메니아 왕국파르티아의 속국이였다.[4] 여담이지만 이 인물은 유독 이란계 이름이라기보단 게르만계 이름으로 보여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5] 히타이트는 저 시기보다 훨씬 이전에 아나톨리아에 있던 문명이고, 바이킹은 저 시기로부터 300년은 더 있어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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