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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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계원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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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등학교 야구부 No.85 | |
박계원 朴啓源 | Park Gye-won | |
출생 | |
국적 | |
학력 | |
신체 | 186cm | 85kg |
포지션 | |
투타 | |
프로 입단 | 1992년 2차 2라운드 (전체 14번, 롯데) |
소속팀 | |
지도자 | GCL 파이리츠[2] 연수코치 (2003) SK 와이번스 2군 작전·주루코치 (2004~2005) 롯데 자이언츠 2군 수비코치 (2006)[3] 롯데 자이언츠 1군 작전·주루코치 (2006)[4] 롯데 자이언츠 2군 수비코치 (2007~2009) 롯데 자이언츠 1군 작전·주루코치 (2010~2011) 롯데 자이언츠 1군 수비코치 (2012) 롯데 자이언츠 1군 작전·주루코치 (2013)[5] 롯데 자이언츠 2군 작전·주루코치 (2013)[6] kt wiz 작전코치 (2014) kt wiz 1군 작전·주루코치 (2015~2016) SK 와이번스 1군 수비코치 (2017~2018)[7] SK 와이번스 루키팀 수비·작전코치 (2018)[8] 부산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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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시절 | |
빠른 1970년생으로 1년 일찍 학교에 들어가서 1969년생과 친구로 지냈으며[9] 1988년 부산고 졸업, 1992년 고려대를 졸업했고 그 해 아마추어 국가대표 유격수로도 발탁되기도 했다. 유격수 치고는 상당히 큰 186㎝의 피지컬과 강한 어깨로 수비에서 강점을 보였고, 그 때문에 1992년 드래프트 2차 2순위 지명으로 고향팀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프로에 데뷔한 1992년부터 주전 유격수 자리를 차지하여 121경기 .243 6홈런 47타점을 기록하며 신인으로서 유격수 골든 글러브를 수상한 몇 안 되는 선수가 된다.[10] 해당 시즌 롯데가 정규 시즌 3위를 차지하는 데 일조했으며 특히 포스트시즌에 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삼성과 맞붙은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솔로 홈런을 때리는 등 2경기 .429 1홈런을 기록했고, 해태와 붙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연장 10회초, 조계현에게 결승타를 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한국시리즈에서도 17타수 5안타 .294를 기록하며 1992년 한국시리즈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신인왕은 같은 팀 투수 염종석이 차지했지만,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는 것으로 자신의 활약에 충분한 보답을 받았다.
여담으로 이때쯤 수영초등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고 있던 친구를 보러 수영초에 왔다가 엄청난 덩치의 어린이 선수를 만나게 된다. 친구인 수영초 감독에게 "성장 가능성이 매우 커보이지만 집이 가난해서 힘들어 한다"는[11] 얘기를 들은 박계원은 이 어린이 선수에게 야구 장비를 사주는 등 여러모로 도와줬는데 박계원의 도움을 받은 수영초등학교 선수가 바로 이대호였다.[12]
1993년까지 주전 유격수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었지만, 이듬해인 1994년 어깨부상을 달고 무리하게 경기에 출전하는 바람에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이때 방위 복무 중이라 홈 경기에만 출전했음에도 부상이 악화된 것. 1997년에 재활을 마치고 그라운드로 복귀했지만, 그가 빠진 자리를 김민재가 성공적으로 메우며 벤치 멤버로 전락해 1998년 6월 5일 이동수와 함께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됐다.[13]
이후 2006년부터 롯데 자이언츠의 수비코치로 자리를 옮기면서 친정 팀에 복귀했다. 이후 2009년까지 수비코치를 맡았고 2009년엔 작전/주루 코치도 겸하여 2010년부터는 작전/주루 코치로 전환하여 2011년까지 맡다가, 다시 2012년에는 수비코치를 맡았다.
수비코치로의 능력은 공필성보다는 낫다는 게 중론. 실제로 2009년을 제외하고 박계원이 수비코치를 맡은 해엔 롯데의 실책 순위는 3~5위권을 유지했으나 공필성이 맡은 해엔 어김없이 실책 1위를 기록했으니... 실책이 수비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롯데의 수비를 본 사람들이라면 실책이라도 줄였으면 하는 게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라서...
하지만 작전/주루코치로는 다소 의문이라는 평가. 주루는 몰라도 롯데 선수들의 작전 수행 능력이 크게 나아졌다는 평가는 그가 작전코치를 맡은 동안엔 별로 없었다.
어쨌든 2013 시즌부터는 다시 작전/주루코치로 활동한다. 그리고 수비코치는 다시 공필성이 맡았다. 그 때문인진 몰라도 롯데는 2013 시범경기에서 초반 3경기부터 7개의 실책을 저질렀다. 그리고 페넌트레이스 시즌 초 롯데에서 좋지 않은 플레이를 보이게 되자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박현승과 교체되어 2군으로 내려갔다.
수비코치로의 능력은 공필성보다는 낫다는 게 중론. 실제로 2009년을 제외하고 박계원이 수비코치를 맡은 해엔 롯데의 실책 순위는 3~5위권을 유지했으나 공필성이 맡은 해엔 어김없이 실책 1위를 기록했으니... 실책이 수비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건 아니지만 롯데의 수비를 본 사람들이라면 실책이라도 줄였으면 하는 게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라서...
하지만 작전/주루코치로는 다소 의문이라는 평가. 주루는 몰라도 롯데 선수들의 작전 수행 능력이 크게 나아졌다는 평가는 그가 작전코치를 맡은 동안엔 별로 없었다.
어쨌든 2013 시즌부터는 다시 작전/주루코치로 활동한다. 그리고 수비코치는 다시 공필성이 맡았다. 그 때문인진 몰라도 롯데는 2013 시범경기에서 초반 3경기부터 7개의 실책을 저질렀다. 그리고 페넌트레이스 시즌 초 롯데에서 좋지 않은 플레이를 보이게 되자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박현승과 교체되어 2군으로 내려갔다.
2020년 9월 14일에 모교 부산고등학교 야구부의 감독으로 선임됐다.
2022년 9월 3일 봉황대기 8강에서 광주동성고전 연장10회 승부치기에서 3대2 끝내기 폭투로 부산고등학교를 26년 만에 봉황대기 4강진출을 이끌었으며 9월 8일 열린 준결승에서는 북일고에 3:2로 승리를 거두고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추석 연휴 뒤 열린 결승에서 강릉고를 1:0으로 꺾고 팀에 29년 만의 봉황대기 우승[19], 22년 만의 전국대회 우승(전국체육대회 제외)[20]을 안겼다.
2023년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선린인터넷고를 12대3으로 꺾고 4전5기 끝에 황금사자기 첫 우승을 차지하였다.[21]
2025년 청룡기 결승에서는 덕수고에 패해 준우승하였다.
전반적으로 오랜 침체기에 빠져있던 부산고를 부활시킨 고교야구 명장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특히 경남고를 상대로 여러 번 이기면서 부산 고교야구의 주도권을 되찾아온 점이 높게 평가받는다.
2022년 9월 3일 봉황대기 8강에서 광주동성고전 연장10회 승부치기에서 3대2 끝내기 폭투로 부산고등학교를 26년 만에 봉황대기 4강진출을 이끌었으며 9월 8일 열린 준결승에서는 북일고에 3:2로 승리를 거두고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추석 연휴 뒤 열린 결승에서 강릉고를 1:0으로 꺾고 팀에 29년 만의 봉황대기 우승[19], 22년 만의 전국대회 우승(전국체육대회 제외)[20]을 안겼다.
2023년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선린인터넷고를 12대3으로 꺾고 4전5기 끝에 황금사자기 첫 우승을 차지하였다.[21]
2025년 청룡기 결승에서는 덕수고에 패해 준우승하였다.
전반적으로 오랜 침체기에 빠져있던 부산고를 부활시킨 고교야구 명장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특히 경남고를 상대로 여러 번 이기면서 부산 고교야구의 주도권을 되찾아온 점이 높게 평가받는다.
역대 성적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92 | 121 | 338 | .243 | 82 | 15 | 5 | 6 | 47 | 48 | 6 | 41 | .370 | .321 | |
1993 | 126 | 410 | .263 | 108 | 15 | 2 | 3 | 43 | 44 | 17 | 35 | .332 | .316 | |
1994 | 67 | 223 | .260 | 58 | 8 | 2 | 1 | 22 | 24 | 9 | 22 | .327 | .325 | |
1995 | 1군 기록 없음 | |||||||||||||
1996 | ||||||||||||||
1997 | 51 | 101 | .218 | 22 | 4 | 0 | 0 | 8 | 9 | 2 | 11 | .257 | .292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98 | 68 | 151 | .219 | 33 | 6 | 0 | 1 | 15 | 10 | 3 | 10 | .278 | .267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99 | 124 | 337 | .252 | 85 | 14 | 1 | 5 | 43 | 43 | 4 | 38 | .344 | .324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2000 | 109 | 232 | .198 | 46 | 6 | 1 | 3 | 32 | 30 | 7 | 20 | .272 | .260 | |
2001 | 48 | 20 | .250 | 5 | 1 | 0 | 0 | 2 | 15 | 7 | 2 | .300 | .318 | |
2002 | 3 | 0 | - | 0 | 0 | 0 | 0 | 0 | 1 | 0 | 0 | - | - | |
KBO 통산 (9시즌) | 717 | 1812 | .242 | 439 | 69 | 11 | 19 | 212 | 224 | 55 | 179 | .324 | .307 | |
- 염종석의 두 번째 등판에서 사실 최연소 완봉승 투수라는 타이틀을 만들어 줄 수 있었으나, 9회에 알을 까버려서 1점을 헌납하게 되었고 완투승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대호의 유튜브에서 밝혀진 내용.
[1] 41회 졸업생이다.[2] 피츠버그 파이리츠 산하 루키[3] ~5월 21일[4] 5월 22일~[5] ~4월 18일[6] 4월 19일~[7] ~7월 13일[8] 7월 14일~[9] 1970년생 부산고-고려대 직속 후배 마해영이 박계원을 형이라고 부른다.[10] 1987년 류중일에 이어 두 번째. 이후 1993년 이종범도 입단 첫해에 수상한다.[11] 알려졌다시피 이대호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듣기 힘들 정도로 불우했다.[12] 이후 이대호와는 2023년 최강야구 부산고등학교전에서 만났는데 이대호가 그 2차전에서 4연타석 홈런을 쳤다. 그리고 2024년 12월 이대호가 부산고에 재능기부를 하러 왔고 이대호 유튜브에 박계원이 출연하였다.[13] 박계원, 이동수 ↔ 김현민, 박성기[14] 오봉옥, 박계원 ↔ 송구홍, 박재용, 송구홍이 준수한 컨택능력은 있었지만 유격수비를 볼 수 없었다는 게 이유일 듯.[15] 이전에 부산고 선배인 김일환이 롯데에서 해태로 이적해 부산 출신 해태맨이었다.[16]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2017 KIA 타이거즈의 우승을 대구 출신인 이범호, 임기영, 김윤동 등이 이끌었지만, 여전히 부산 출신은 많지 않다. 롯데에서 맹활약하여 FA 대박을 이끌어낸 김주찬은 외려 서울 출신. 롯데 방출 후 KIA에 입단한 김재열, 2022년 4월에 트레이드로 KIA에 입단한 박동원이 부산출신이다.[17] 이호준, 박계원 ↔ 성영재, 김호[18] 이때 같은 팀에 있었던 선수가 호세 바티스타다. 물론 본인이 가르친 건 아니다.[19] 1993년 봉황대기 결승에서 성남고에 승리를 거뒀다. 최우수선수는 최부락, 최우수투수상은 주형광이 수상했다.[20] 2000년 대통령배 결승에서 경기고에 10:3으로 승리하며 대통령배 2연패(1999~2000)에 성공했다. 최우수선수는 추신수였다.[21] 고교야구의 징크스 중 하나로 4대 메이저 대회(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대기) 중 유독 특정대회만 우승을 못하는 학교들이 있다. 부산고는 황금사자기만, 경남고는 대통령배만 유독 연이 없었다. 2025년에 경남고가 대통령배 첫V에 성공하며 남은 징크스라고는 선린인터넷고-봉황대기, 대구고-황금사자기, 신일고-대통령배만 남았다.[22] 이 경기에서는 이대호가 상대 팀 투수로 나왔다. 사실 이대호가 본래 투수이긴 하지만...그 뒤 이대호는 12년 뒤에 최강야구에서 부산고를 상대로 4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며 이에 대한 복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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