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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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구
釜山鎭區 / Busanjin-gu

파일:부산진구.jpg

구청 소재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시민공원로 30(舊 부암동 666-16번지)

국가

대한민국

광역시도

부산광역시

면적

29.68km2

행정동

20개

법정동

11개

인구

365,195명
(2018년 9월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

12,386.39명/km2

구청장

서은숙 (더불어민주당)
초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구의회

파일:theminjooreverse.jpg 더불어민주당 11석

파일:libertykorealogo.jpg 자유한국당 8석

광역시의원

① 배용준

② 정상채

③ 손용구

④ 이현

국회의원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3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이헌승 (자유한국당)
재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링크

홈페이지


부산진구의 상징물

파일:attachment/17512_SAM_0021.jpg
부산진구청. 주소는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시민공원로 30(舊 부암동 666-16번지). 홈페이지

1. 개관2. 역사3. 줄임말4. 교통5. 지역 특징6. 교육7. 정치8. 행정 구역9. 관내 철도 목록10. 관내 각급학교11. 같이보기

1. 개관[편집]

부산광역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자치구. 이름은 조선시대 설치된 부산진성(釜山鎭城)에서 따왔다. 이름만. 부산진성터나 부산진역, 부산진시장 등은 모두 동구에 위치해 있다. 부산에 구가 생길 때부터 쭉 동구에 있었다. 낚이지 말자.[1] 대체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불명.

줄여서 진구라고도 부르고 진구청 이렇게 지도를 찾을 때도 있고 유동잡지나 포스터 통신문 같은 데 보면 약칭으로 쓰인다.

현대 부산의 지리적, 문화적 중심지이다.[2] 부산 최대의 상권 서면이 이 구의 가운데에 있다.

2. 역사[편집]

파일:attachment/부산진구/jeedo.jpg
▲ 1963년 직할시 승격 당시의 지도. 옆 동네와 함께 크고 아름다웠던 부산진구 영역.

부산진구를 가리키는 옛 명칭은 동평이었다. 정확히는 동구 범천동과 범일동, 좌천동에 이르기까지 넓은 영역을 포괄하였는데 현재는 부산진구 당감동부암동 일부만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1914년 부산부가 동래군부산부로 나뉠 때 동래군 서면에 속했다가 1936년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1957년 부산시에 구(區)제가 실시되면서 설치된 6개 구 중 하나로 부산진구가 설치되었으며, 1959년 동구 범일동 일부를 편입하여 범천동을 신설하고, 1963년 동래군 구포읍과 사상면을 편입하였다. 이 때의 부산진구는 지금의 남구, 북구, 사상구 지역까지 관할하던 매우 넓은 구였다. 그러다가 1975년에 남구, 1978년에 지금의 사상구 부분을 포함한 북구를 분리시켰다.

3. 줄임말[편집]

부산 사람들은 이름을 줄여서 흔히 진구(鎭區)라고도 많이 부른다. 예를 들면 부산진구에 거주하는 사람이 자기 집 주소를 쓸 때 부산(광역시)시 진구 XXX로 YYY'[3] 식으로 적거나 부산진구 XXX로 YYY[4]. 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 사실 광역단체의 명칭이 기초단체의 명칭에 또 들어가 있는 전국에서 유일한 사례[5]라서 그렇다. 물론 진구로 써도 딱히 걸리는 것은 없어서 진구도 많이 쓰인다. 사실 이건 부산진구만 이런건 아니고 비슷하게 기초단체의 명칭이 행정구역의 명칭에 또 들어가 있거나 한 경우에도 이렇게 쓰이는 경우가 많다. (기장군 기장읍을 그냥 읍이라고만 쓴다던지)

4. 교통[편집]

부산 교통의 요지로 부산 도시철도 1호선(범내골역, 서면역, 부전역, 양정역)과 부산 도시철도 2호선(개금역, 동의대역, 가야역, 부암역, 서면역, 전포역)이 모두 지난다.

특히 서면역은 이용 승객 수도 수도권 전철 이용객 상위권(신도림역, 홍대입구역 등) 역에 꿀리지 않을 정도로 대단할 뿐더러 역 인근에는 부산 최고 상권이 형성되어있다. 동해선 부전역, 범일역부전선가야선 가야역이 위치하고 있다. 범일역과 가야역은 여객 운송은 중지되었지만 부전역동해선경전선의 시종착역 역할을 하고 있다. 청량리역에 가보면 가끔 부전역근성열차가 있는데 바로 이곳으로 향하는 열차이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신해운대역ITX-새마을 열차도 부전역에 정차한다. 참고로 부산진역은 부산진구에 없다.부산교통공사:페이크다 이 병X들아! 이유는 '개관' 목차에서 이미 설명했다.

5. 지역 특징[편집]

부산 최대의 상업 중심지인 서면이 여기 속하는데, 서면이라는 지명은 부산진구 일대의 행정구역이 과거 동래군 서면이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1936년 서면이 부산부에 편입되면서 현재는 서면이라는 행정구역은 없으나, 여전히 널리 쓰이는 지명이다.[6] 그러니 부산 현지인들이 서면이라고 하면 서면역근처 일대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며 정확히 정해진곳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부전동과 전포동 일대 상가 밀집 지역을 가리킨다.

서면 인접지역은 서면의 배후지 성격이 강하고, 부분적으로 슬럼화되는 경향이 있다. 특징적인 산동네가 2군데 있는데, 엄광산 자락을 타고 서쪽으로 사상구 주례동, 동쪽으로 동구 범일동까지 이어지는 가야동 및 범천동 산동네와, 황령산 자락의 양정동 및 전포동 산동네가 그것이다. 구 전반적으로 8,90년대 많이 들어서기 시작한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주택가가 혼재되어있다. 심지어 산동네에도 노후주택가와 일반주택가,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섞여있는 부산 특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보니 부산 시민들에게 주거지로서 부산진구의 이미지는 그렇게 좋지 못하였으나, 2017년 들어 본격적으로 전포동 일대가 재개발이 진행되고, 부산시민공원 주변은 초고층 아파트 단지들이 건설될 예정이라 새로운 주거지로 떠오르고 있다.

부산 내에서 비교적 노인 인구도 높은 편이라 어린이대공원 일대와 부전시장 일대에서 연세드신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으며, 대부분 지역주민이다. 서면에 놀러가는 젊은 사람들은 상당 부분이 다른 지역에서 놀러온 유동인구인 것과 대조된다.

부산 밀면의 양대산맥인 가야밀면과 개금밀면이 모두 이 구에 위치하고 있다.

6. 교육[편집]

4년제 대학으로는 인제대학교 부산캠퍼스와 동의대학교가, 전문대학으로는 동의과학대학교부산여자대학교가 있다. 뭐 인제대학교 부산캠퍼스는 사실 부산백병원이 부산진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의과대학만 남겨둔 것이기는 하다만... 또한 한국과학영재학교와 부산국제중고등학교가 위치하고 있고 이 학교들은 각각 이과와 문과에서 부산 최고라고 평가받기도 하다만 한국과학영재학교의 경우에는 전국구라 '부산 최고'라고 칭하기도 좀 애매하기도 하고... 어쨌든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덤으로 과거 부산 4대 명문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일반고로 전환하면서 개성고로 이름을 바꾼 부산상업고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7]

7. 정치[편집]

19대 대선 부산진구 개표 결과

정당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격차

투표율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95,042
(38.76%)

79,545
(32.44%)

40,636
(16.57%)

16,855
(6.87%)

12,045
(4.91%)

+ 15,497
(△6.32)

76.07%

[ 펼치기 · 접기 ]

정당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격차

투표율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1위/2위)

(선거인/표수)

부전1동[8]

33.19%

41.15%

14.99%

5.53%

4.71%

▼7.96

66.02

부전2동[9]

38.39%

29.83%

18.31%

7.40%

5.62%

△8.56

69.39

연지동

37.02%

35.56%

16.12%

6.78%

4.18%

△1.46

78.25

초읍동

32.71%

41.63%

15.19%

6.02%

4.07%

▼8.92

74.47

양정1동[10]

38.18%

33.19%

16.37%

6.91%

4.95%

△4.99

78.98

양정2동

36.65%

35.75%

15.67%

6.76%

4.76%

△0.90

69.20

전포1동

37.14%

32.52%

16.54%

7.43%

5.99%

△4.62

67.47

전포2동

37.79%

34.47%

15.95%

6.81%

4.61%

△3.32

73.55

부암1동

38.95%

33.65%

16.45%

6.56%

4.01%

△5.30

73.04

부암3동

41.18%

30.46%

16.84%

6.69%

4.34%

△10.72

76.38

당감1동

39.47%

33.02%

16.58%

6.21%

4.38%

△6.45

75.76

당감2동

38.92%

32.55%

17.19%

6.50%

4.43%

△6.37

79.78

당감4동

42.88%

29.46%

16.30%

6.54%

4.37%

△13.42

76.03

가야1동[11]

36.87%

34.36%

17.02%

6.54%

4.77%

△2.51

70.83

가야2동

35.97%

36.30%

16.23%

6.80%

4.29%

▼0.33

76.52

개금1동

39.77%

30.56%

16.21%

7.48%

5.63%

△9.21

73.49

개금2동

36.39%

34.43%

16.44%

7.05%

5.26%

△1.96

75.11

개금3동

39.62%

31.66%

16.51%

7.11%

4.63%

△7.96

78.05

범천1동

37.47%

34.58%

16.23%

6.28%

5.12%

△2.89

70.29

범천2동

34.51%

34.44%

20.26%

6.23%

4.17%

△7.96

78.05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격차

거소·선상투표

38.78%

20.74%

29.12%

6.39%

3.12%

△9.66

관외사전투표

46.85%

20.36%

16.49%

8.77%

6.98%

△26.49

재외투표

61.64%

7.10%

14.57%

4.17%

12.15%

△47.07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격차

투표율

부산진구 갑[12][13]

37.91%

34.64%

16.18%

6.47%

4.39%

△3.27

74.99

부산진구 을[14][15]

37.47%

33.38%

16.95%

6.90%

4.89%

△4.09

72.95

7회 지선 부산진구 개표 결과

부산광역시장 선거

정당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격차

투표율

후보

오거돈

서병수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98,314
(54.22%)

67,354
(37.14%)

+ 30,960
(△17.08)

57.63%

부전1동[16]

46.88%

45.54%

△1.34

43.91

부전2동[17]

52.51%

38.58%

△13.93

45.17

연지동

51.44%

41.16%

△10.27

60.29

초읍동

46.89%

46.83%

△0.06

56.99

양정1동[18]

53.71%

38.20%

△15.51

60.18

양정2동

52.16%

38.98%

△13.19

47.93

전포1동

52.19%

38.88%

△13.32

47.25

전포2동

51.89%

39.07%

△12.81

54.42

부암1동

54.85%

37.69%

△17.16

54.85

부암3동

57.38%

35.21%

△22.17

58.36

당감1동

55.03%

38.25%

△16.78

56.91

당감2동

53.87%

37.93%

△15.94

61.32

당감4동

58.19%

34.75%

△23.44

54.19

가야1동[19]

50.63%

38.41%

△12.23

51.03

가야2동

50.28%

39.72%

△10.56

59.71

개금1동

56.20%

33.04%

△23.15

52.23

개금2동

49.92%

39.40%

△10.53

57.27

개금3동

54.35%

36.21%

△18.14

59.57

범천1동

52.60%

39.33%

△13.27

48.20

범천2동

53.33%

37.72%

△15.62

53.66

후보

오거돈

서병수

격차

거소·선상투표

54.13%

30.82%

△23.31

관외사전투표

65.69%

24.54%

△41.15

후보

오거돈

서병수

격차

투표율

부산진구 갑[20][21]

53.13%

39.46%

△13.67

55.86

부산진구 을[22][23]

52.55%

37.83%

△14.72

53.64

부산진구청장 선거

정당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격차

투표율

후보

서은숙

김영욱

이덕욱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89,399
(50.05%)

70,455
(39.44%)

10,338
(5.78%)

+ 18,944
(△10.61)

57.62%


13대

14대

15대

16대

17대

18대

19대

20대

갑구

정재문/재선
통일민주당

정재문/3선
민주자유당

정재문/4선
신한국당

정재문/5선[24]
한나라당

김병호/재선
한나라당

허원제/초선
한나라당

나성린/재선
새누리당

김영춘/3선
더불어민주당

김병호/초선
한나라당

을구

김정수/3선
통일민주당

김정수/4선
민주자유당

김정수/5선
한나라당

도종이/초선
한나라당

이성권/초선
한나라당

이종혁/초선
한나라당

이헌승/초선
새누리당

이헌승/재선
새누리당



파일:11333113.jpg

??? : 동쪽이 문제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부산진구갑 선거구 나성린 - 김영춘 두 후보간 우세지역. 당감동, 부암동은 김영춘이 앞선 곳이었지만(당감2동 제외) 초읍동, 연지동 등에서 나성린 후보 몰표가 튀어나오면서 그대로 승부가 갈렸다. 특히 초읍동. 초읍동은 3파전이 아니라 나성린 후보의 독주였다.

파일:110022.jpg
특이하게도 부산진구갑은 전략공천으로 꽂힌 뉴라이트(나성린) vs 신흥 친노[25](김영춘) vs 새누리당 탈당 친박 안과 의사(정근)[26] 라는 보기 드문 3자 구도였다.

원래 정근 후보가 부산진갑 지역구 선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전략공천으로 나성린 후보가 꽂히면서 탈당해서 무소속 출마를 감행했던 것. 그리고 지역일꾼 특색 국회의원임을 어필해서 이미지 세탁에 성공. 덕분에 일부 중도-진보층 젊은이들의 표들이 민주당 표에서 이탈했다.[27]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구조사에서 김영춘이 근소한 차로 1위를 했고 하지만 차이가 고작 0.3%라서 사실상 무의미하다 개표 도중 김영춘 후보가이 나성린 후보를 역전하기도 했다. 참고로 두번째 사진은 마지막 역전현상이 일어나기 직전에 찍힌것. 그리고 역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초읍동에서 나성린 몰표가 나와버려 역전당하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김영춘 후보가 뛰어들었고, 새누리당에서는 나성린 - 정근 - 허원제 팽팽한 3파전 끝에 나성린 후보가 경선에서 정근 후보를 누르고 공천장을 따냈다. 국민의당에서는 공천하지 않았다. 무소속 오승철 후보가 초읍동 표를 얼마나 가져가느냐에 따라 결과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앞의 2사람에 비하면 비중이 공기다

출구조사에서는 나성린이 앞서는 것으로 나왔지만 4년전에도 그랬듯이 결국 뒤집혀졌다. 김영춘 후보가 나성린 후보를 3%차로 이겼다.[28]

파일:411110.jpg

부산진을 선거구 개표상황. 시원하게 새누리당이 앞섰다. 김정길이 정계 은퇴한 20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이헌승 의원이 이종혁, 이성권 전 의원의 추격을 뿌리치고 공천장을 받았고, 더불어민주당은 조영진을 공천했다. 또한 국민의당도 공천을 했다. 당연하겠지만 이헌승 의원이 쉽게 재선에 성공했다. 왼쪽 옆 동네오른쪽 옆 동네에서도 윗 동네에서도 심지어 밑 동네도 팝콘먹으면서 개표방송 보는데 우린 왜[29]

역대 선거를 살펴보면, 이 지역은 현재 야권세가 조금씩 상승중이지만,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이 지역에서 민주공화당이 여러번 당선되었다.

부산진구 갑 지역구의 경우는 4대 총선5대 총선 모두 민주당이 유리했지만 6대 총선에서는 민주공화당 김임식 후보가 당선되었고 7대 총선에서는 신민당 정상구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8대 총선에서는 민주공화당 김임식 후보가 계속 당선되고 중선거구제 이후 9대 총선, 10대 총선, 11대 총선에서는 중선거구제로 민주공화당 김임식 후보가 2등당선을 기록하고 신민당 후보는 1위로 당선되었고, 민주정의당 구용현 후보도 당선되기도 했다. 하지만 12대 총선에서는 모두 야권이 당선, 13대 총선에서는 통일민주당 정재문 후보가 재선에 성공하며 14대 총선, 15대 총선, 16대 총선까지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정재문 의원이 5선에 성공하지만, 당선무효가 되고 재보궐선거에서 역시 한나라당 김병호 후보가 당선되며 보수텃밭으로 변신한다. 17대 총선에서도 한나라당 김병호 후보가 재선에 성공, 18대 총선에서는 역시 한나라당 허원제 후보가 당선, 19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 나성린 후보가 당선되며 연속 보수가 유리한 아성으로 군림했지만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후보가 당선되며 격전지로 변했다.

그리고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6.32프로 차로 이기면서 3당 합당 이후 30년만에 처음으로 민주당계 정당의 후보가 이겼다. 이로써 이 지역도 낙동강 벨트에 속하는 강서구, 북구, 사하구, 사상구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더불어민주당이 해볼만한 지역으로 변화하면서 앞으로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진구 갑 뿐만 아니라 을 선거구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고 지방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유리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부산진구는 저소득층 가구가 밀집한 낙후 지역과 평범한 주택가, 아파트단지가 밀집한 중산층지역이 모두 공존하는데 총선에서 갑, 을 지역구를 가리지 않고 서민 주거지역 다수에 승리를 가져 보수 진영에 위기감을 느꼈는데 대선에서 문재인은 개금동, 당감동, 부암동, 전포동, 연지동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가져왔지만 가야동, 양정동, 범천동, 초읍동, 부전동(부전2동 제외)에서는 오히려 홍준표에서 간신히 1%~5%에 이기거나 아니면 지는일이 있고 부산진구에서 보수세는 완전히 꺾이지 않아서 그 이후 선거에는 이런 축으로 두 당간 경쟁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산진구 : 문재인 95,042(38.76%) > 홍준표 79,545(32.44%) > 안철수 40,636(16.57%)

1위 - 문재인 : 당감4동(42.9%), 부암3동(41.2%), 개금1동(39.8%), 개금3동(39.6%), 당감1동(39.5%), 부암1동(38.9%), 당감2동(38.9%), 부전2동(38.4%), 양정1동(38.2%), 전포2동(37.8%), 범천1동(37.5%), 전포1동(37.1%), 연지동(37.0%), 가야1동(36.9%), 양정2동(36.6%), 개금2동(36.4%), 범천2동(34.5%), 거소/선상투표(38.8%), 관외사전투표(46.8%), 재외투표(61.6%) (17개동 + 관외투표)
1위 - 홍준표 : 초읍동(41.6%), 부전1동(41.1%), 가야2동(36.3%) (3개동)

하지만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오거돈 후보는 부산진구에서 보수의 난공불락 요새로 꼽히던 초읍동(0.69% 차이였다.)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그럼으로써 다음 지방선거 때 김영춘 후보의 부산에서의 재선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8. 행정 구역[편집]

파일:attachment/부산진구/busanjin.jpg

8.1. 부산진구 갑[편집]

8.1.1. 당감 1·2·4동[편집]

당감동(堂甘洞)은 금정산의 주맥인 백양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록에 위치하여 있으며, 삼국시대의 동평현의 치소(治所)로 현재까지 동평현성이 남아있다. 당감동은『동래부지(1740)』방리조에 보이는 동평면의 당리(堂里)와 감물리(甘勿里)의 두 마을을 합쳐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당감리라고 고쳐 부르게 됨으로서 생긴 동의 이름이다. 오늘날 당감동의 고무나무골에 수령이 오래된 고사목(枯死木)이 있었는데, 이 당산나무를 중심으로 동으로 직선을 그어 북쪽은 과거의 당리였고, 남쪽은 감물리였다고 한다. 당리라 한 것은 마을에 오래된 당집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순조 25년(1825)에 세운 영숙사라는 신당이 남아 있다. 감물리가 변하여 감물이 되었다는 설과 신이라는 뜻의 검물내〔神川神水〕라는 설이 있다. 이로 견주어 볼 때 감물내는 부산천을 의미하는 고음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낳게 한다. 당감동은 1914년 당감리에서 출발하여 1951년 당감1·2동으로 분동되었다가 1970년에 당감1동이 당감1동, 동평동으로 분동되었다. 1979년에는 당감1동이 당감1·3동으로 분동되었고, 동평동이 동평1·2동으로 분동되었다. 그리고 1982년에 동평1동이 당감4동으로, 동평2동이 부암3동으로 바뀌었다. 2013년 2월 1일부로 당감1,3동이 당감1동으로 통합되었다.

8.1.2. 부암 1·3동[편집]

부암동(釜岩洞)은 부전동과 같이 조선시대에는 동평면 부현리에 속하였다. 동천의 상류인 백양산에서 발원하는 감물내를 중심으로 고대리(古代里)에서 옛 개성중학교의 언덕바지 산인 통칭 백양산 앞의 지역을 말한다. 감물내가 시작되는 곳은 조선시대 지명으로 당리이고, 하천이 넓어지기 시작한 곳이 감물리이며, 그 아래 지역을 고대리(古代里, 古垈里)라 하였다. 감물내의 고대리 아래지역을 모두 부현리(釜峴里)라 하였는데, 이 부현리가 오늘의 부암동과 부전동으로 분리되었다. 부전동은 감물내의 동쪽 중 전포·범전의 평지에 붙여진 이름인데 비하여, 부암동은 내 주변의 구릉, 바위동산이 흩어져 있어 바위 암(岩)자가 붙여진 것으로 고대리와 이 마을 북쪽에 뒷골이라는 자연마을이 있었던 지역으로 보인다. 1979년 시조례에 의해 부암1,2동으로 분동되었다가, 1982년 동평2동을 부암3동으로 행정명칭을 개편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8년 부암1,2동을 부암1동을 통합하였다.

8.1.3. 부전1동[편집]

부전동(釜田洞)은 조선시대의 경우 동래부 동평면 부현리(釜峴里)에 속하였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부다대현(釜多大峴)이라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지금의 당감동 즉, 감물리에서 지금의 부암로터리 밑인 고대리로 난 고개까지라는 설이 있다. 이 외에도 오늘날의 하마정에서 송상현 동상까지 마비현(馬飛峴)의 별칭이라는 설이다. 이중에서 부다대현은 부산포에서 다대포로 넘어가기 위해 넘는 고개로 위치상 합당치 못하며, 마비현은 광복 이후까지도 모너머고개 머나머고개로 불리어 왔다. 따라서 부현리의 지명은 감물리에서 고대리로 넘어가는 고개인 현 당감동 입구인 부암고개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8.1.4. 양정 1~2동[편집]

양정동(楊亭洞)은『동래부지(1740)』산천조에는 황령산 아래에서 화지산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말하고 있다. 양정동은『동래부지(1740)』에는 양정리(羊亭里) 라 하였다. 양정(羊亭)이란 정자는 고적조나 루정(樓亭)조에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정자(亭子)가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 지역의 옛 어른들에 의하면, 양정본동 일대에는 수양버들의 실같은 가지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곳을 버들 양(楊)으로 개칭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또 양정은 양지골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한다. 이는 양정동에서 황령산을 바라보면 세 갈래 능선이 갈라져 나가고 있는데, 왼쪽은 당산능선, 중간은 평전(平田)능선, 우측은 취병장(吹兵場)능선이 뻗어 내리고 있다. 왼쪽 당산능선 아래쪽에 양지곡 골짜기가 있다. 양지는 음지의 응달에 비하여 양달이라 하여 햇빛이 많이 드는 땅이라는 뜻이다. 우리말의 양달은 양지의 음이 높아 한자의 양(羊)으로 표기되고 지(地)는 정자골(亭子谷)이 정자꼴로 읽히는 것으로 보아 정(亭)으로 된 것으로 풀이된다. 1970년 양정1,2동으로 분동하고, 1979년 양정1동을 양정1,3동으로, 양정2동을 양정2,4동으로 분동하였다. 1998년 양정3동을 양정1동에, 양정4동을 양정2동에 통합하였다.

8.1.5. 연지동[편집]

연지동(蓮池洞)에는 연못이 있었는데 지금의 연지초등학교 자리이다. 이 못은 조선시대에는 신지언(新池堰)이라 불렀다. 1740년에 간행한『동래부지』에 산천조에 보면, “신지언은 동래부의 서쪽 13리에 있는데 길이는 2백 68척 넓이는 2백 24척이라”하여 동래부에서 둘째로 큰 제언(堤堰)으로 기록되어 있다. 연지라는 동명은 연못골에서 나온 이름으로 이곳 못에 연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조선시대는 이 못을 연지언이라 하지 않고 새못이란 뜻을 가진 신지언이라 하였다. 이는 당시 초읍동에 화지언이란 역사적으로 유래가 오래된 옛 못이 있었는데, 연지동의 못은 그후에 만들어진 새로운 못이라는 뜻에서 신지언이라고 이름 붙인 것으로 생각된다. 일제시기인 1947년 부산출장소 연지동으로 개칭되었다가, 1957년 연지동과 초읍동을 성지동으로 통합하였다. 1963년 인구증가로 성지동을 다시 초읍동과 연지동으로 분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8.1.6. 초읍동[편집]

초읍동(草邑洞)은 연지동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금정산의 남북으로 통하는 요충지로 북쪽으로 금용산을 등지고, 남으로는 연지를 지나 부산평야로, 동으로는 화지산이 서쪽으로 달려가는 형상의 작은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로는 산(쇠미산)의 산맥이 뻗어있어 천연의 성벽을 이루는 분지이다. 이곳의 동의 명칭이 초읍으로 된 연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동평현이 생긴 후 읍의 치소治所)를 물색하기 위해 명사들이 초읍동을 들러 보았는데, 산의 지세가 좋고 지리가 음양에 맞아 이곳을 우선 읍의 치소(治所)로 선정해 놓고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나하여 현 금정구의 두구동으로 가보니 역시 산세가 좋아 두고 보자한 후 현 동래성에 들렀더니 동으로는 학소대와 남으로는 대조포란형(大鳥抱卵形)이 서울 장안의 산세와 같으므로 이곳을 읍지로 정하였다고 한다. 이리하여 먼저 초한 곳이란 뜻에서 초읍이라 명명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는 호사가들의 일담에 지나지 않고 실제는 새터가 원래의 고을 이름인 것으로 파악된다. 초읍은 초량을‘새뛰’라 부르는 것과 같이 초는 새로 읽히며 읍은 량·탁·벌·성 등의 터로 읽혀 '새터’로 불릴 수 있다. 새터는 새로운 터전, 새로운 자리라는 뜻이다. 즉, 동평현의 치소(治所)가 지금의 당감동 부근이었는데 고려후기 이후 빈번한 왜구들의 침입으로 동평현이 피폐해지자 천연의 요새인 이곳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이란 뜻에서 새터 즉 초읍으로 불렀던 것으로 풀이된다. 초읍동은 조선후기 동래부 서면 초읍리에 속하였고, 그후 동래군으로 편제되었다. 1936년 부산부에 편입된 후 1942년 연지동과 함께 성지동으로 통합되었다가, 1963년 초읍동과 연지동으로 분동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8.2. 부산진구 을[편집]

8.2.1. 가야 1~2동[편집]

가야동(伽倻洞)의 유래는『동래부지(1740)』방리조에 보면,“가야리는 동평면에 속한 지역으로 관문에서 20리 거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가야라는 어휘의 뜻이 무엇인지는 아직 학계에서 정론을 얻지 못하고 있으나,『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6가야의 가야를 의미하는 것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옛날에는 지금의 고관, 즉 수정동으로부터 감고개를 넘어 가야동으로 왕래하였던 까닭에 이곳은 교통의 요충지에 해당되었다. 가야리란 명칭은 이 감고개 아래의 마을이란 뜻에서 생겨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1904년 경부선의 개통으로 동평면과 단절되고 대신 서면의 가야리로 되었다. 1903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한 조선의 성에 의하면, 달성 서씨가 세거(世居:한곳에 대대로 살아 감)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대체로 16대(代)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전후에 이주해 온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1959년 개금동을 흡수하였다가, 1963년 다시 가야동과 개금동으로 분동하였다. 1970년 급격한 인구증가로 인해 가야1,2동으로 분동 되었다가, 1979년 가야2동을 다시 가야2,3동으로 분동하였으며 2013년 2월 1일부로 가야1,3동을 가야1동으로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8.2.2. 개금 1~3동[편집]

개금동(開琴洞)의 조선시대 행정명은 와요리(瓦要里)라 칭하다가 1904년 개금리라 칭한 것으로 보여진다. 가야리와 상대하여 경부철도 건너 북쪽에 있는 마을을 개금동이라 하였다. 이곳 고로들의 말에 의하면, 이 마을의 모양이 꼭 거문고가 길게 늘어져 있는 형상이라 하여 개금이라 했다고 한다. 또 임진왜란 당시 백성들이 토착지를 등지고 하염없이 피난길을 헤매던 어느 날 푸른 산림이 우거지고 맑은 냇물이 흐르는 아늑한 계곡이 뻗어 있는 이곳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은은한 가야금 소리를 듣고, 바로 이곳이 장차 평화의 뿌리가 뻗어날 삶의 터전이라고 생각되어 전란의 시름을 달래면서 처음으로 마음놓고 거문고로 한 곡조를 타고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거문고를 말미암아 이곳에 살게 되었으므로 개금이란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최씨, 배씨, 송씨 등이 오랫동안 거주했으며, 가장 오래된 경주 최씨도 18~19대 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생긴 것으로 보여진다. 개금동의 명칭이 1900년 이전의 읍지에는 나타나지 않고『동래군지(1937)』에 개금리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일제시대부터 개금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으로 보여진다. 1959년 가야동에 흡수되었다가, 1963년 가야동에서 분동되었고, 1975년 인구의 증가로 개금1,2동으로 분동되었다가, 1976년 개금1동에서 개금3동이 분동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8.2.3. 범천 1~2동[편집]

범천(凡川)은 오늘날의 자성대를 사이에 두고 흐르는 강으로 동천(東川)이라 한다. 옛날에는 이 강을 풍만강(楓滿江)·보만강(寶滿江)이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풍만(豊滿)이라는 음이 변하여 생긴 이름이 아닌가 한다. 오늘날 동천을 범천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범천의 물줄기가 원래 자성대의 서쪽으로 흘러 바다에 유입되었는데, 자성대 부근의 매축 때 두 시내를 연결시켰기 때문이다. 동천이란 부산진성의 지성(支城)인 자성대 쪽에서 볼 때 성의 동편을 흐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범천은 증산(甑山)에 인접한 산들이 산세가 험하고 산림이 울창하여 호랑이가 서식하였는데, 호랑이가 이 계곡에서 자주 출몰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따라서 범천은 한자식으로 호천(虎川)이라고도 표기하였다. 따라서 범천동이라는 동명은 범내〔凡川〕에서 유래되어 범내골을 중심으로 그 인근의 지역을 지칭하는 동명이 되었다. 1957년 구제실시로 동구에 편입되었다가, 1959년 시조례에 의해 동구 범일4동을 부산진구에 편입시키면서 범천1,2,3동으로 개칭하였다. 1966년 범천2동이 범천2,4동으로 분동되었고, 1975년 남구의 신설로 범천3동은 남구에 편입되었다가, 1982년 문현5동에 편입되었다.

8.2.4. 부전2동[편집]

이 고개에는 바위가 있었는데, 이 바위가 마치 가마솥〔釜〕을 거꾸로 엎어놓은 것 같은 형상을 하고 있어 부현〔가마고개〕이란 지명이 붙여진 것 같다. 이중 부현고개 아래의 범전리·전포리와 인접하는 곳을 부전이라 이름 붙인 것으로 추측된다. 공식적인 명칭으로 사용된 것은 1936년 시·구명 정비 때 부전동이란 이름이 쓰여지게 되었고, 1938년 부전동을 부전1,2동으로 분동하였으며, 1954년 부전1동에서 부전3동이 분동 되었다가, 1959년 부전3동을 부전1동에 통합하였고, 2015년 1월 1일 범전동을 부전1동에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8.2.5. 전포 1~2동[편집]

서면의 동천이 지금 범일동과 문현동 사이로 흘러 바다로 들고 있다. 그러나 먼 옛날로 올라 갈수록 동천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자리는 서면의 북쪽인 육지쪽으로 올라온 자리였다. 말하자면 바다가 지금의 서면의 육지 깊숙이 들어서 있었는데 홍수 때면 서면 주위의 산에서 쏟아지는 물이 토사를 실어내려 바다를 메워 육지를 만들어 갔다. 그렇게 메워진 자리가 갯가가 되고 논밭이 돼 간 것이다. 그 논밭으로는 벼와 보리, 채소들이 재배되었다. 지금은 전포동의 평지는 시가지가 돼 있지만 그때는 갯가의 밭인 밭개였다. 그 밭개가 밭 전(田) 갯 포(浦)의 전포리가 된 것이다. 이 지역의 고로들의 말에 의하면 옛날에는 전포동(田浦洞)의 노막리 또 농막리까지 조수가 들어 배가 많이 정박하였다고 한다. 1949년 전포1,2동으로 분동되었다가, 1970년 인구 증가로 전포1동은 전포1,3동으로 분동되었고, 1975년 전포2동은 전포2,4동으로 분동되었으며 1998년 전포2,4동을 전포2동으로 통합하였다가 2015년 1월 1일부로 전포1.3동을 전포1동으로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0년대에는 운동권과 시민들의 전두환 정권 반대 시위가 많았던 곳이다. 부산이 김영삼의 정치적 기반임을 여실히 보여준 곳들 중 하나. 그래서 생긴 별명이 '전'두환도 '포'기한 '동'네(...).

9. 관내 철도 목록[편집]

10. 관내 각급학교[편집]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

  • 가야여자중학교 (가야동 414-14)

  • 개림중학교 (개금동 445-1)

  • 광무여자중학교 (개금동 55)

  • 덕명여자중학교 (전포동 471)

  • 동양중학교 (부암동 719)

  • 동의중학교 (전포동 12-15)

  • 동평중학교 (부암동 452-17)

  • 동평여자중학교 (부암동 450-1)

  • 부산개성중학교[31](가야동 459-45)

  • 부산국제중학교 (당감동 897)

  • 부산동중학교 (전포동 445-1)

  • 부산진중학교 (범전동 227-1)

  • 부산진여자중학교 (전포동 342-25)

  • 서면중학교 (부암동 127-1)

  • 양동여자중학교 (양정동 25-1)

  • 초연중학교 (초읍동 50)

  • 초읍중학교 (초읍동 510-1)

  • 항도중학교 (전포동 175-33)


초등학교

  • 가남초등학교 (가야동 12)

  • 가산초등학교 (가야동 464-99)

  • 가야초등학교 (가야동 272)

  • 가평초등학교 (가야동 649-19)

  • 개금초등학교 (개금동 467-1)

  • 개림초등학교 (개금동 446-14)

  • 개원초등학교 (개금동 1-18)

  • 개포초등학교 (개금동 58)

  • 개화초등학교 (개금동 404)

  • 당감초등학교 (당감동 271)

  • 당평초등학교 (당감동 517)

  • 동성초등학교 (전포동 358-56)

  • 동양초등학교 (부암동 719)

  • 동원초등학교 (당감동 786-2)

  • 동평초등학교 (당감동 705-1)

  • 부산진초등학교 (범천동 890-1)

  • 부암초등학교 (부암동 275)

  • 부전초등학교 (부전동 450-1)

  • 선암초등학교 (범천동 1223-27)

  • 성북초등학교 (전포동 364-1)

  • 성서초등학교 (범천동 851-6)

  • 성전초등학교 (전포동 164-8)

  • 성지초등학교 (범전동 229-1)

  • 양동초등학교 (양정동 24)

  • 양성초등학교 (양정동 445-386)

  • 양정초등학교 (양정동 273-8)

  • 연지초등학교 (연지동 238-4)

  • 연학초등학교 (초읍동 117-1)

  • 전포초등학교 (전포동 656-1)

  • 주례초등학교 (개금동 630-5)

  • 주원초등학교 (개금동 565-14)

  • 초읍초등학교 (초읍동 540)

11. 같이보기[편집]

[1] 서울의 동대문구서대문구와도 비슷한 케이스라 할 수 있어 보이지만, 사실 전혀 다르다. 서울의 동대문(흥인지문)과 서대문터(돈의문)은 원래 각각 동대문구와 서대문구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구 경계 조정 과정에서 동대문은 종로구에, 서대문터는 중구에 편입되면서 현재는 구 이름과 실제 구 이름이 유래된 장소가 달라진 것이다. 부산진과 부산진구는 오히려 수원화성화성시의 관계와 비슷하다.[2] 과거의 중심지였던 중구 남포동 일대는 콩라인+관광지에 가까우며, 근래 새롭게 떠오른 동래권, 해운대권도 전체적으로 서면을 따라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3] 지번주소면 ???동 ZZZ[4] 지번주소면 ???동 ZZZ[5]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전에는 무려 세곳이나 더 있었지만 이제는 옛말.[6] 부산지하철이 2호선까지 밖에 없을 시절에 유일한 환승역인 서면역의 소재지이기도 하다.[7] 원래 서면에 위치했던 부산상업고등학교는 당감동으로 이전하였고, 2004년 일반고로 전환하고 교명도 개성고등학교로 바뀌었다. 舊 부산상업고등학교 부지에는 롯데백화점 부산본점과 롯데호텔 부산점이 들어서 있다.[8] 부전동(일부) · 범전동을 관할하며, 부전역, 부전시장, 서면역 번화가 및 부산시민공원이 있는 동네[9] 서면역 번화가로 이루어진 동네[10] 부산여자대학교, 동의과학대학교가 있으며 부산교육청이 있는 동네[11] 동의대학교가 있는 동네[12] 부전1동, 연지동, 초읍동, 양정1동, 양정2동, 부암1동, 부암3동, 당감1동, 당감2동, 당감4동[13] 지역구 국회의원 :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3선)[14] 부전2동, 전포1동, 전포2동, 가야1동, 가야2동, 개금1동, 개금2동, 개금3동, 범천1동, 범천2동[15] 지역구 국회의원 : 이헌승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재선)[16] 부전동(일부) · 범전동을 관할하며, 부전역, 부전시장, 서면역 번화가 및 부산시민공원이 있는 동네[17] 서면역 번화가로 이루어진 동네[18] 부산여자대학교, 동의과학대학교가 있으며 부산교육청이 있는 동네[19] 동의대학교가 있는 동네[20] 부전1동, 연지동, 초읍동, 양정1동, 양정2동, 부암1동, 부암3동, 당감1동, 당감2동, 당감4동[21] 지역구 국회의원 :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3선)[22] 부전2동, 전포1동, 전포2동, 가야1동, 가야2동, 개금1동, 개금2동, 개금3동, 범천1동, 범천2동[23] 지역구 국회의원 : 이헌승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재선)[24] 02.7.2 의원직 상실(선거법 위반)[25] 지금이야 비노계로 불리지만 당시에는 범친노 정치인이었다.[26] 물론 이 인사가 진정한 친박 인사로 보기에는 논란이 있는 인물이었는데#, 한때는 친노였던 전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권이 정권말기 레임덕 상태가 되면서 친이 노선으로 갈아타며 한나라당을 입당하여 정계입문을 하려 했으나, 계속 공천을 받지 못하였고 그에 반발하여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그 이후에 새누리당에 재입당하여 친박노선으로 갈아탔지만 역시나 공천을 얻지 못하였으며 박근혜 탄핵 이후에 자칭 친홍을 내세웠으나 정작 친홍 세력들과 관계가 틀어지면서 지역구 당협위원장도 얻지 못하고 다시 자유한국당을 탈당해 버렸다. 현재는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의 입당을 노리면서 친문 노선으로 갈아타려는 정황이 보이기는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는 이 인사를 받아들이는데 난색을 표하고 있다.[27] 정근 후보는 친박계 인사 중 하나로, 2015년 새누리당에 복당했다. 브니엘학원과 여러모로 얽혀있는 인사로, 일설에 의하면 브니엘 계열 학교의 여러 비리 때문에 공천에서 배제되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2018년에 다시 새누리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을 탈당하면서 지금은 그냥 친문으로 가려고 하는듯...[28] 부전제1동, 초읍동, 당감제2동, 양정제3동을 제외한 나머지 동에서 승리했는데, 19대 총선때 나성린의 승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초읍동에서마저도 득표수 차가 1000표 정도 줄었으며(20대 총선때는 무소속으로 출마한 보수후보가 없었는데도!), 당감제2동에는 51표 차, 양정제3동에서는 6표차 차이로 나성린이 신승했다.[29] 사상구는 보수표가 갈라졌고, 연제구와 북구와 부산진 갑은 국민의당 후보가 없었다. 그러니 다음 선거는 기대해 보자.[30] 원래는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의 지원을 받은 이슬람교 계열 재단에서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후의 이슬람교 미션스쿨인 알리고등학교로 개교하였다. 하지만 이슬람교 재단에서 무슬림도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일반계 고등학교를 설립해서 운영한다는 논란으로 인하여 불과 2년만에 교사가 완공되지 못한 상태에서 비종교 계열 재단으로 강제로 학교를 넘기게 되면서 교사 완공 및 비종교 사립학교인 경원고등학교로 개명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31] 생각나는 그 사건이 일어난 학교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