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르망디
최근 수정 시각:
[ 펼치기 · 접기 ]
| ||||||||||||||||||||||||||||||||||||||||||||||||||||||
행정 단위 | 레지옹 | |
중심 도시 | ||
면적 | 29,906㎢ | |
인구 | 3,327,000명(2024년) | |
인구 밀도 | 116명/㎢ | |
지역 언어 | ||
레지옹 지사[1] | 장브누아 알베르티니 | |
레지옹 의회의장 | 신중도당 | 에르베 모랭 |
FR-NOR | ||
FRD | ||
INSEE 코드 | 28 | |
위치 |
영어: Normandy
노르만어: Normaudie
잉글랜드와 가까운 프랑스 북서부 지방(région). 1956년에 노르망디를 바스노르망디와 오트노르망디로 분할했던 것을 2016년 1월 1일에 실시된 레지옹 개편으로 다시 합병하여 출범했다. 다섯 개의 지방(데파르트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요 도시로는 루앙, 르아브르, 페캉, 디에프, 캉, 셰르부르옥트빌 등이 있다.
북유럽 해상 무역의 중심지들 중 하나로, 영국과 프랑스는 물론 독일, 덴마크, 네덜란드, 벨기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적의 배가 드나든다. 위치에서도 알아볼 수 있듯 인종과 기후가 북유럽에 가까워서 요리로 유명한 프랑스에서도 이 지역만큼은 음식이 단촐하다. 포도가 자라기 어려워 사과로 만든 시드르와 칼바도스가 발달했다.
상징 | ||
깃발 | 문장 | |
서유럽 전역이 그랬듯 서력 전에는 켈트족이 자리를 잡고 살다가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으로 고대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이후 로마 제국의 분할로 서로마 제국에 속하였다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프랑크 왕국령이 되었다. 9세기 경에는 대대적인 노르드인의 침략을 겪었고 샤를 3세 시대에 결국 버티지 못하고 지역 내 유력한 바이킹 집단의 수장 롤로를 루앙 백작으로 임명하였다. 롤로와 그 후손들이 루앙 인근으로 지배영역을 넓히면서 오늘날과 거의 같은 경계까지 확장하였고 이 지역의 이름도 노르드인의 땅이라는 의미로 '노르망디'라 명명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노르망디가 성립한 시대에 대한 상세한 서술은 노르망디 공국 문서 참고.
이들은 이곳에서 라틴화를 겪으면서 기존 노르드인에서 분화한 노르만족 정체성을 형성하였고 정복왕 윌리엄 1세 시대에 잉글랜드 왕국을 정복하면서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잉글랜드의 국가 기틀을 닦게 된다.[2] 윌리엄 1세 이래 노르망디는 잉글랜드와 동군연합 상태였는데 노르만 왕조 및 그 후계 왕조의 권세가 대단한 데다 핵심적인 왕실령이었기 때문에 오랜 기간 정치적으로 잉글랜드 왕국에 종속되었다. 법적으로는 프랑스 왕국령이었으므로 양국 왕가 간 분쟁의 요소였으며 백년전쟁 때 프랑스가 승리하면서 비로소 완전하게 프랑스에 귀속되었다.[3]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프랑스 왕국과 분리되어서인지 지역색이 강한데 그래서 프랑스로 귀속된 후에도 부침이 계속되었다. 종교 개혁기 노르망디 지역 도시들은 프랑스 정부에 반기를 들어 개신교에 투신하였다. 결과적으로는 노르망디 지역이 다시 한 번 피로 물들게 되었고 부르봉 왕조의 절대왕정 시기를 보낸다. 이후 프랑스 혁명 시대에는 파리의 자코뱅에 대항하여 연방공화국 설립을 추진하는 파벌에 가담하였다가 또 피를 보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격전지 그 자체였다. 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오드프랑스가 주 전장이었던 것과 비슷하게[4]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비롯해 연합국의 프랑스 탈환 작전인 오버로드 작전이 노르망디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자연스럽게 양측 병력이 맞붙는 최전선이 되었다. 이 때문에 주요 도시들의 연합국의 맹렬한 폭격을 받았고, 주요 도시의 다수가 파괴되는 참사를 겪어야 했다. 실제로 프랑스의 도시들 중 2차 세계대전에서 큰 피해를 입었던 도시들은 대다수가 노르망디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은 이곳에서 라틴화를 겪으면서 기존 노르드인에서 분화한 노르만족 정체성을 형성하였고 정복왕 윌리엄 1세 시대에 잉글랜드 왕국을 정복하면서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잉글랜드의 국가 기틀을 닦게 된다.[2] 윌리엄 1세 이래 노르망디는 잉글랜드와 동군연합 상태였는데 노르만 왕조 및 그 후계 왕조의 권세가 대단한 데다 핵심적인 왕실령이었기 때문에 오랜 기간 정치적으로 잉글랜드 왕국에 종속되었다. 법적으로는 프랑스 왕국령이었으므로 양국 왕가 간 분쟁의 요소였으며 백년전쟁 때 프랑스가 승리하면서 비로소 완전하게 프랑스에 귀속되었다.[3]
오랫동안 정치적으로 프랑스 왕국과 분리되어서인지 지역색이 강한데 그래서 프랑스로 귀속된 후에도 부침이 계속되었다. 종교 개혁기 노르망디 지역 도시들은 프랑스 정부에 반기를 들어 개신교에 투신하였다. 결과적으로는 노르망디 지역이 다시 한 번 피로 물들게 되었고 부르봉 왕조의 절대왕정 시기를 보낸다. 이후 프랑스 혁명 시대에는 파리의 자코뱅에 대항하여 연방공화국 설립을 추진하는 파벌에 가담하였다가 또 피를 보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격전지 그 자체였다. 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오드프랑스가 주 전장이었던 것과 비슷하게[4]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비롯해 연합국의 프랑스 탈환 작전인 오버로드 작전이 노르망디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자연스럽게 양측 병력이 맞붙는 최전선이 되었다. 이 때문에 주요 도시들의 연합국의 맹렬한 폭격을 받았고, 주요 도시의 다수가 파괴되는 참사를 겪어야 했다. 실제로 프랑스의 도시들 중 2차 세계대전에서 큰 피해를 입었던 도시들은 대다수가 노르망디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1] 센마리팀 데파르트망의 지사가 노르망디 레지옹의 지사를 겸임한다.[2] 예컨대 현대 영국(정확히는 잉글랜드)의 상징인 사자는 원래 노르망디의 상징이다. 노르만 정복 이전에 영국의 상징은 앵글로색슨계 왕국인 웨식스의 상징인 용(정확히는 와이번)이다.그런데 정작 웨일즈인 또한 앵글로색슨인의 침공으로 쫓겨난 선주민들이다.[3] 다만 채널 제도만큼은 아직도 영국령이다.[4] 참고로 영국과의 거리가 제일 가까운 칼레가 오드프랑스에 있기 때문에 독일군은 연합군이 칼레로 들어오리라 예상하였으며 그쪽에 병력을 집중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그렇게 되었다면 또다시 오드프랑스가 주 전장이 되었을 것이다.[5] 레지옹 의회 소재지[6] 레지옹 청사 소재지, 주도[7] 이들 중에는 잉글랜드계도 있다.
![]()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