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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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수도이자 최대도시서울특별시의 전경

1. 개요2. 도시의 역사
2.1. 기원2.2. 과거의 도시2.3. 현대의 도시
3. 도시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
3.1. 도시 내부의 지역 분화3.2. 인구 공동화 현상
4. 도시의 입지 조건5. 도시 문제6. 도시 문화7. 관련 이야기8. 도시의 종류9. 관련 문서10. 기타 항목11. 나무위키에 항목이 개설된 도시 목록


都市 / City

1. 개요[편집]

마을보다 커다란 영구적인 정착지. 수천 명 이상의 사람이 모여 수많은 주택, 교통 시설, 위생 시설을 갖추고 생활하는 지역 사회의 허브. 인류가 농경사회로 들어서면서 떠돌아 다닐 일 없이 정착하여 생활을 하게 되었고, 잉여 농산물의 집산과 비축을 통한 인구 밀집도가 증가하고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마을이 더욱 커져 갔다. 그리고 독자적으로 정치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단위로 성장하면서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인류가 만들어낸 부산물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다는 점에서, 인위적인 것이 전혀 없는 자연상태와는 대척점을 이루는 인류문명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2. 도시의 역사[편집]

2.1. 기원[편집]

현재 세계 최초로 도시에 가장 근접한 유적지는 방사성 탄소 측정 결과 BC 7~60세기 경으로 추정되는 차탈회윅(Çatalhöyük)[1]이다. 신석기 문명으로서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그림들은 물론 다수의 방을 가진 가옥집단, 제사의 흔적, 신상 등이 출토되었다. 을 끼고 있으며 5,000여 명으로 추정되는 많은 인구, 고도화된 생활상이 촌락에서 도시로 발전해가는 집단주거지의 특성을 보여준다.

현재까지 밝혀진 제일 오래된 돌로 만든 성벽을 갖춘 유적지는 예리코이다. 예리코에서 발견된 접붙이 무화과로 인해 BC 94세기를 찍어버렸다(...) 예리코는 BC 14세기 예리코의 전투에서 히브리인들에게 멸망당해 초토화하기 이전까지 수천년간 교통의 요지에 자리잡아 번영을 구가한 고대 도시였으며, 농경 발달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참고로 고대의 예리코는 현재의 예리코와 꽤 거리가 떨어져 있어 20세기 초반 유적이 발굴되기 전까지는 전설 속의 도시로 취급되었다.

본격적인 문명 시대의 도시 발달사에서는 BC 40세기로 추정되는 수메르우르가 출발점으로 꼽힌다. 이 시대부터 제대로 된 기록이라는게 등장하게 되었고 군장 단계를 넘어서는 이 출현해 체계화된 도시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 역시 19세기 중반에서야 그 존재가 확인되었고 20세기 초부터 본격적인 발굴과 연구가 진행되었다.

2.2. 과거의 도시[편집]

지역과 시대, 문화에 따라 도시의 형태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으니, 중앙에 통치자의 성이나 궁전, 시청이 존재했다는 것. 그리고 그 바로 옆은 관리들이, 그 옆은 일반 시민들(주로 농민들)이 자리잡았다. 그리고 그 도시를 둘러싸는 성벽이 쌓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통치자(중세로 치면 '영주')의 성 가까이에 성벽을 쌓은 '내성', 그 밖의 중간층이 모여 사는 '외성'으로 나뉘었다. 그리고 가장 못 사는 사람들은 외성 밖까지 나기도 했다. 다만, 이정도는 드물고, 대부분은 관리를 위해 최대한 성벽 안에 머물게 한다.[2]

도시의 핵심은 교통이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이를 잘 설명한다. 즉 어느 길을 가든지 로마로 가게 만들 정도로 길이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었다는 말. 당시엔 마차가 최선의 교통수단이었기에, 말과 수레가 잘 다닐 수 있도록 돌길을 깎아서 도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병력의 신속한 이동하는 데 쓰였다. 물론 점령지에서 약탈한 금은보화를 본국으로 신속배달 하는데도 쓰였다.

서로마의 멸망 후 한동안 수축된 도시들은 중세시대 상업의 부흥기를 거치며 다시금 부활하기 시작했고 일부 도시들은 국왕으로 부터 자유와 자치권을 쟁취해 자치 정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대표적인 도시들이 이탈리아의 도시 공화국들이며, 이후 프랑스의 샹파뉴[3]나, 독일의 뤼네부르크등이 있다. 이들 도시민들은 국왕으로 부터 특허장(Charter: Privilegien)을 받아 자체적인 행정체계인 참사회를 구성했고 이들은 도시의 이익과 발전을 도모하며 상업발전에 힘을 썻다.[4] 이 때문에 중세시대에는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만든다.”("Stadtluft macht frei")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며 성 안 사람이라는 뜻의 부르주아라는 말이 이때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한 도시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들어 과밀과 혼잡이 빚어진 것이다.[5] 그러다 보니 위에서처럼 내/외성으로 도시가 나뉘면서 자연히 소속 인원들의 계급이 갈리게 되었고, 바깥의 시민들이 안으로 들어와서 성공하기 위해 더욱 사람이 몰리면서 도시가 발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농촌과 도시의 구분이 두드러지게 된다.[6][7]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는 상황을 맞이했으나 도시를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기술이나 제도 등이 정비되어 있지 않아 수도 시설, 공중 위생, 의료기술 낙후, 건축기술의 한계 등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덕분에 흑사병이 발생했을 때, 저 문제들이 흑사병의 신속한 전염을 유도[8]하게 되었다.

때때로 도시와 건축은 대대로 그 도시를 다스리는 최고 권력층의 위엄을 상징하는 도구로도 사용되었다. 뭔가 거대하고 눈에 띄는 것이 권력자를 칭송하는 업적으로서 제격이기 때문. 단적인 예로 피라미드라든가,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로마부터 시작해서 나폴리, 피렌체, 베네치아 등등), 베르사유, 비잔티움 제국의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 등이 있겠다.

2.3. 현대의 도시[편집]

육로 교통 수단이 마차와 수레로부터 기차로 발전하면서, 멀리 있던 도시들이 서로 연결됨에 따라 도시간의 발전이 가속화되었다. 미국의 경우 '대륙 횡단 철도' 등이 생기면서 철길을 따라 마을, 도시가 생기기도 하였다. 여기에 자동차가 발명되면서 철도가 갈 수 없는 곳까지 사람이 멀리 다니게 되었고, "사람들 다니는 곳에 길이 난다"는 말처럼 그 길을 따라 도시들이 확장을 하게 되었다. 이 현상을 스프롤 현상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이미 바둑판식 도시계획이 등장했으나 중세에 잊혀졌다가 근대에 와서 다시 도시를 짓기 전에 계획을 짜는 방법이 도입되어 도시가 더욱 체계적으로 조성되었다. 뉴욕의 경우 처음부터 교통을 염두에 두고 계획했다고 하며, 쾰른, 만하임, 런던, 피렌체 등은 고대에 계획적으로 조성된 도시들의 대표적인 예이다.

도시 안으로는 예전처럼 아무렇게나 뒤섞이는 일이 없도록 상업 구역-주거 구역-공업 구역 등으로 분할하여 그어 각자의 특색을 살려 발전하게 했으며, 도심 지역과 인근의 인구밀도가 좀더 낮은 지역이 인프라를 공유하면서 형성된 메트로폴리스, 다시 인접한 메트로폴리스들이 서로 연결되어 인구 1천만 명을 넘어서는 거대 도시권인 메갈로폴리스 등을 형성하였다.

3. 도시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편집]

3.1. 도시 내부의 지역 분화[편집]

도시 내부에서 상업 시설은 어디에 모여있고, 주거 시설은 어디에 모여있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것을 지역 분화라고 한다. 크게 중심업무지역, 상업 지역, 공업 지역, 주거 지역으로 나눈다. 나타나는 원인은 입지조건이 기능마다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주거 기능은 도시의 중심에 위치하면 지대(땅값)이 높은데 반해서 접근성의 영향을 덜 받는다. 접근성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는 것은 상업기능이지만 회사의 본사같은 경우에는 중심지역에 위치하는데, 일단 자본이 많기 때문에라고 볼 수 있다. 공업 지역은 도심에 위치하지 않는데 넓은 토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도심과 너무 떨어지면 교통비 문제가 발생하므로 중간지역에 위치한다. 안산이 그 예이다.

3.2. 인구 공동화 현상[편집]

중심 업무 지역은 낮과 밤의 상주 인구 차이가 커서, 밤에는 인구분포에 공백이 생긴다. 다른 말로 '도심 공동화 현상'이라고도 한다. 일어나는 원인은 도시 내부의 지역 분화 때문. 상황에 따라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4. 도시의 입지 조건[편집]

※ 오늘날은 대부분의 입지조건을 끌어와서 사용할 수 있으므로[9], 옛날 기준으로 서술한다.

  • -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인 만큼, 과거의 도시들은 대부분 강가에 존재했다(세계 4대 문명이 어디서 일어났는지 생각해보자). 도시의 규모가 커져 그 사용량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로마의 경우 물을 끌어오는 수도를 이용하여 해결했다.[10] 혹은 운하(내지 강)를 뚫어서 물길을 트기도 했다.

  • 지형

    • 전략적 - 외부의 적에 대응하기 위해 산을 등지거나 언덕 위, 강이나 호수 등의 섬 등지에 세웠다. 파리[11], 모스크바, 알렉산드리아 등이 이에 해당. 물론 강이나 호수 근처에 세우면 교류에도 덤으로 유리해진다.

    • 상업적 - 방어를 희생[12] 교류를 통한 국력 증진을 위해 교통이 원활한 강가/해안가는 물론, 평야 지대에 자리잡기도 한다. 가끔 광물지대 바로 옆에 있는 광산촌이 도시가 되기도 한다(중세 독일 등등).

  • 풍수지리(동양 한정) - 우청룡 좌백호 한 마디면 끝난다...는 농담이고, 땅의 기운이 그 위에 생기는 도읍지(수도), 무덤 등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여 자연과 어우러지는 지역을 선택했다.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가 무학 대사와 함께 도읍지 후보로 점찍었다가 나중에 와 보니 고작 봉우리 하나가 모자라서 명당이 못 되었던 "원통이 고개" 이야기는 유명하다. 사실 뒤에 산, 앞에 물(강)을 필요로 한다는 점은 비단 무덤뿐만이 아니라 도시의 요건을 설명하는 것과 똑같다(산=방어, 물=식수 및 장사).[13]

5. 도시 문제[편집]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인구를 좁은 공간에 몰아 넣는 과정에서 문제가 안 생길 수가 없었다. 환경, 범죄, 교통혼잡, 교육 등이 그 대표적인 문제로, 이를 효과적으로 제어하여 유권자들의 표를 사로잡는 것은 언제나 위정자들의 중요한 임무중의 하나였다. 너무 복잡한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대다수. 더군다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설을 건설을 해줘도 님비, 핌피 현상으로 인해 공공재를 자신의 사유재산으로 생각하는 몰지각한 현상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6. 도시 문화[편집]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는 생동감 넘치는 공간인 만큼 도시마다 문화도 다양하다. 가장 도시적인 문화라면 대규모 상업지구(=쇼핑가(街))가 있겠다. 대다수의 인원(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다양화된 소비상품들이 오늘도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흔히 '다운타운'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반대로 그 소비자들, 자칭 예술가들이 자신의 끼를 발산하는 장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자주 지나가는 쇼핑가의 중심이나 공원 등에서 이들을 볼 수 있다. 또한 과거의 유물-궁궐/궁전, 고성, 성벽, 사찰/사원/신전 등등-을 도시의 일부로 사용함으로써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신기한 광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차이나타운, 코리아타운과 같이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도시의 일부분이 되는 경우도 있다. 높으신 분들은 자신의 가시적인 업적을 도시문화라고 주장하며 설치하기도 한다

7. 관련 이야기[편집]

  • 세계 최대의 도시는 중국충칭이다. 단, 이는 해당 도시의 인구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광역권을 통틀어서 본다면 최대 도시는 일본도쿄이다.

  • 세계 최대의 면적을 갖고 있는 도시는 중국후룬베이얼 시이다.

  • 세계에서 가장 작은 면적과 적은 인구를 갖고 있는 도시는 바티칸이다.

8. 도시의 종류[편집]

9. 관련 문서[편집]

10. 기타 항목[편집]

11. 나무위키에 항목이 개설된 도시 목록[편집]

[1] 지금의 터키 아나톨리아 콘야인근에 위치.[2] 어디까지나 도시의 이야기다. 서양과 동양은 의 개념이 다르다. 흔히 생각하는 도시 전체를 감싸는 성은 수도나 대영주의 중심지를 제외하면 서양에서는 드문 편이다. 시골 영주의 성 같으면 평시에는 성에 영주와 기사 같은 가신들, 하인 등의 관리자들, 장인 등만 살았고 농민같은 대부분의 평민은 성밖에서 살다가 전시에만 성 안으로 피신했다.[3] 영어로 샴페인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흔히 아는 술인 샴페인의 원산지 이기도 하다.[4] 이때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 늑대와 향신료. 중세 도시 관련 내용은 중세 또는 늑대와 향신료의 상업 관련 고증 항목을 참조해보자.[5] 많다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남부 최대의 도시중 하나인 피렌체가 5만~10만(학자에 따라 다르다)이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전혀 많은 수가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시 승격 요건은 인구 5만이지만, 서양에서는 1,500~5,000명만 되어도 도시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정도는 학교나 아파트 몇동이면 넘치는 숫자다.[6] 이는 현대 사회까지 계속되고 있다. 도시의 땅값이 올라가느라 못 사는 사람들은 농촌으로 밀려나고...이촌향도, 귀농 등등의 단어의 뜻을 생각해보자.[7] 도시는 언제나 존재했지만 특허장을 받아 고도의 자유를 누리는 민간거주지라는의미에서의 도시는 중세에 성립됐다.[8] 위생이 없어서 썩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었고, 의료기술이 전무한 시기라 치료가 늦는 등 최악의 상황이 되었다.[9] 예컨대, 라스베이거스 시는 물과 전기를 수 십 km 떨어진 후버 댐에서 끌어온다. 그래서 시저의 군단이 그곳을...[10] 지금도 그 수도교가 남아 있다. 덧붙여 이 수도교는 스페인, 프랑스 등지에도 있다.[11] 파리는 센 강의 시테 섬에서 시작되었다.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그 섬 맞다.[12] 당연하겠지만 당시의 강대국(카르타고 등등)들은 방어를 먼저 하고 상업을 발달시킨다. 물론 교류에 유리한 곳은 방어에 돈이 많이 들지만 그정도야...[13] 현재에는 전문화된 분과로 발전한 학문들이 과거에는 개화되지 못해 철학이나 사상과 구분되지 않는경우가 있었다. 종교를 이용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처럼(사막 지역의 종교에서 물이 많이 필요한 돼지를 금지시키는 것처럼) 중요하기는 한데 이유를 모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설득 시켜야 할때 교리와 규범을 만들고 그것들을 모아 하나의 사상과 세계관을 만드는 식. 나중에는 반대로 그 세계관을 바탕으로 사건을 해석하는 것을 넘어서 그 사상을 바탕으로 일을 처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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