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식(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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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식 金商植 | ||
출생 | ||
국적 | ||
신체 | ||
직업 | ||
가족 | 아버지 김영기 | |
학력 | ||
병역 | ||
실업 입단 | 1990년 기업은행 농구단 | |
소속 | 선수 | |
코치 | 안양 SBS-KT&G (2004~2007 / 수석 코치) 대구 오리온스 (2007 / 수석 코치) 서울 삼성 썬더스 (2012~2014 / 수석 코치)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2015~2018) | |
감독 | 안양 KT&G 카이츠 (2006~2007 / 대행) 대구 오리온스 (2008 / 대행) 대구 오리온스 (2008~2009) 서울 삼성 썬더스 (2014 / 대행)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2018 / 대행)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2018~2021) 안양 KGC인삼공사-정관장 레드부스터스 (2022~2025) 서울 삼성 썬더스 (2026~) | |
대한민국의 농구인. 現 서울 삼성 썬더스 감독.
농구인 2세로 기업은행의 간판 슈터였고 KBL 프로 출범 후 나산, SBS에서 활약했다. 위치에 상관없이 외곽슛을 터트리면서 '이동 미사일' 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했다.
지도자로서 감독대행 전문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감독대행 위주로 활동하다가 늦은 나이인 22-23 시즌에 감독으로 드디어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농구인 2세로 기업은행의 간판 슈터였고 KBL 프로 출범 후 나산, SBS에서 활약했다. 위치에 상관없이 외곽슛을 터트리면서 '이동 미사일' 이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했다.
지도자로서 감독대행 전문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감독대행 위주로 활동하다가 늦은 나이인 22-23 시즌에 감독으로 드디어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부친은 1950~1960년대 한국 농구를 책임졌던 스타 선수이자, 한국프로농구 출범에 크게 기여하고 KBL 2대 총재를 역임한 김영기. 아버지의 뒤를 따라 농구 선수가 되었고 고려대 시절에는 외곽슛을 주무기로 제법 우수한 실력을 뽐낸 선수였다. 청소년 대표를 거쳐 고려대의 주포로서 활약했다. 다만 한 시대를 풍미한 아버지의 명성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졸업과 함께 일찌감치 기업은행으로 진로를 정하고 입단하는데, 이유는 부친인 김영기가 기업은행 선수와 지도자로 활동했기 때문. 그래서 기업은행의 주포로서 농구대잔치 무대에서 꾸준한 득점력을 선보였다. 군복무 시절인 1993-94 농구대잔치에서는 정재근, 오성식과 함께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지만, 당시 엄청난 돌풍을 일으킨 연세대에게 패하면서 농구대잔치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리고 기업은행이 금융팀인지라 다른 팀과의 스카우트 경쟁에서 밀리면서 실업농구 시절의 김상식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약팀에서 고군분투하는 고독한 에이스로 각인되었다. 상무 시절이던 1993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1993 자카르타 ABC에 참가하였다.
졸업과 함께 일찌감치 기업은행으로 진로를 정하고 입단하는데, 이유는 부친인 김영기가 기업은행 선수와 지도자로 활동했기 때문. 그래서 기업은행의 주포로서 농구대잔치 무대에서 꾸준한 득점력을 선보였다. 군복무 시절인 1993-94 농구대잔치에서는 정재근, 오성식과 함께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지만, 당시 엄청난 돌풍을 일으킨 연세대에게 패하면서 농구대잔치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리고 기업은행이 금융팀인지라 다른 팀과의 스카우트 경쟁에서 밀리면서 실업농구 시절의 김상식은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약팀에서 고군분투하는 고독한 에이스로 각인되었다. 상무 시절이던 1993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1993 자카르타 ABC에 참가하였다.
프로 출범 후에는 기업은행을 인수해서 출발한 광주 나산 플라망스 소속으로 원년에 평균 20득점을 넘기면서 용병 에릭 이버츠, 이민형과 함께 팀을 6강 PO로 이끌었다. 이듬 해인 1997-98 시즌에도 괜찮은 모습을 보이면서 팀의 주포로서 활약했지만 당시 나라를 뒤흔든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 속에 모기업이던 나산그룹이 부도가 났고 모기업의 경영난이 농구단 운영 차질로 연결되고 말았다. 결국 나산은 팀의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 간판 선수였던 김상식을 현금 2억 원에 안양 SBS 스타즈로 이적시켰다.


안양에서의 성과는 다소 미흡했다. 이적 당시 김상식은 이미 30줄에 접어들었고,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득점력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적은 출장시간에도 불구 장기인 3점슛과 외곽슛을 무기로 가드진을 이끌며 알토란 같은 활약을 했고 결과적으로 이때의 활약을 통해 SBS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는 스타가 될 수 있었다. 2003년을 끝으로 은퇴한 후, SBS가 코치 연수를 보내준 것이 대표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겠다.

안양에서의 성과는 다소 미흡했다. 이적 당시 김상식은 이미 30줄에 접어들었고,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득점력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적은 출장시간에도 불구 장기인 3점슛과 외곽슛을 무기로 가드진을 이끌며 알토란 같은 활약을 했고 결과적으로 이때의 활약을 통해 SBS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는 스타가 될 수 있었다. 2003년을 끝으로 은퇴한 후, SBS가 코치 연수를 보내준 것이 대표적인 근거라고 할 수 있겠다.
역대 성적 | ||||||||||
시즌 | 소속 구단 | 경기 수 | 2점 슛 | 3점 슛 | 자유투 | 득점 | 리바운드 | 어시스트 | 스틸 | 블록 슛 |
1997 | 15 | 44/83 (53.01%) | 50/109 (45.87%) | 66/79 (83.54%) | 304 | 46 | 27 | 42 | 0 | |
1997-98 | 43 | 134/266 (50.38%) | 116/311 (37.30%) | 172/190 (90.53%) | 788 | 128 | 98 | 82 | 1 | |
시즌 | 소속 구단 | 경기 수 | 2점슛 | 3점 슛 | 자유투 | 득점 | 리바운드 | 어시스트 | 스틸 | 블록 슛 |
1998-99 | 43 | 102/183 (55.74%) | 99/283 (34.98%) | 79/109 (72.48%) | 580 | 71 | 86 | 54 | 0 | |
1999-00 | 40 | 52/98 (53.06%) | 47/127 (37.01%) | 70/79 (88.61%) | 315 | 128 | 62 | 84 | 0 | |
2000-01 | 27 | 23/47 (48.94%) | 22/61 (36.07%) | 30/37 (81.08%) | 142 | 24 | 44 | 19 | 3 | |
2001-02 | 41 | 24/44 (54.55%) | 37/101 (36.63%) | 36/39 (92.31%) | 195 | 55 | 66 | 23 | 2 | |
2002-03 | 19 | 6/14 (42.86%) | 7/31 (22.58%) | 5/5 (100%) | 38 | 15 | 32 | 8 | 0 | |
KBL 통산 (7시즌) | 228 | 385/735 (52.38%) | 378/1023 (36.95%) | 458/538 (85.13%) | 2,362 | 401 | 437 | 263 | 6 | |
- 작전타임 때 화를 내거나 욕(...)을 하기도 하는 다른 감독에 비해 굉장히 나긋한 말투를 쓴다.
- 동명이인인 축구감독 때문에 에펨코리아 등의 커뮤니티에서는 농상식(농구+김상식), 몰상식[1] 등의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상식종신 이야기는 덤. 그래서 전북 현대 팬사이트인 에버그린에서도 자주 언급되는데, 울산 현대 팬들이 현대가 더비에서 건 '느껴라 상식종신' 현수막은 안양 KGC 팬들에게는 오히려 극찬이다(...). 2022 시즌 말부터 2023 시즌 초까지 K리그의 주요 스토리 라인인 김상식 감독·허병길 단장 사퇴 시위 때문에 오히려 농구 김상식 감독은 풍평피해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2022-23 시즌 정규시즌 우승과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통합우승을 일궈냈음에도 스포츠뉴스에는 축구 김상식 소식만 나왔을 정도.[2] 하지만 두 김상식 모두 부임 첫 시즌은 우승을 이끌었고, 그 뒤가 문제가 되면서 감독직을 내려놓은 점이 공통적이다.[3]
- 1년 선배 유도훈과는 KT&G 수석코치와 정관장 감독 시절 자신의 후임 감독으로 인해 사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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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미 오리온스 감독 시절에 성적 부진으로 실패한 경력이 있어서 오리온스 감독 시절부터 불렸던 별명이었지만 잘하면 상식백과사전이 될지도.[2] 참고로 축구 김상식은 농구 챔피언결정전 기간에 사임을 했다.[3] 차이점이 있다면, 이쪽은 축구인 김상식과는 다르게 마지막 시즌 후반기에 확실한 반등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면서 구단에서도 재계약 의사가 있었지만 건강 관련 문제로 인해 재계약을 거절하고 휴식을 선택했다는 점. 다만 본 문서의 인물이 서울 삼성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그 이후 둘 다 다른 팀의 감독으로 부임했다는 점은 공통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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