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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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A 산하 대회

대한민국의 축구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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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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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명

남자

프로

K리그

1부 리그

K리그1

2부 리그

K리그2

R리그

2군 리그

R리그 중부

R리그 남부

세미프로

내셔널리그

3부 리그

내셔널리그

아마추어

K3리그

4부 리그

K3리그 어드밴스

5부 리그

K3리그 베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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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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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리그

디비전6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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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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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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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주니어
(U-18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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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주니어
(U-17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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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8

전국 초중고 축구리그
(고등 리그)

U-15

전국 초중고 축구리그
(중등 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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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초중고 축구리그
(초등 리그)

동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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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그 고등부
(U-18 리그)

U-15

아이리그 중등부
(U-15 리그)

U-12

아이리그 초등부
(U-12 리그)

U-10

아이리그 초등부
(U-10 리그)

U-8

아이리그 초등부
(U-8 리그)



K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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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K리그

영문명칭

K League

창설연도

1983년 (수퍼리그, 현 K리그1)
2013년 (K리그 챌린지, 현 K리그2)

연맹 총재

권오갑

리그 구성

1부 리그 K리그1
2부 리그 K리그2

리그 주관

한국프로축구연맹

참가 팀 수

22개 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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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명칭에 대해서1.2. 리그창설 배경과 준비
1.2.1. 리그 출범 초기 (~1983)1.2.2. 새로운 변화 (~1992)
2. 참가 구단의 변동3. 소속 구단 (2018 시즌)4. 관련 방송5. 상금 규모6. 우승 트로피7. 리그 패치8. 공인구9. 시즌별 일람10. 리그 연혁
10.1. 역대 K리그1 우승팀10.2. K리그1 우승횟수10.3. 역대 K리그2 우승팀10.4. K리그2 우승횟수10.5. 역대 승강팀
11. 역대 개인상12. 역대 스폰서 및 엠블럼
12.1. 역대 스폰서12.2. 역대 스폰서 엠블럼
13. 역대 홍보 대사14. 외국인 선수15. 더비 매치16. 문제점17. 올스타전18. 특색19. 여담 20. 관련 문서
20.1. 대회/규정20.2. 역사20.3. 관련 프로그램
21. 둘러 보기

1. 개요[편집]

  • 본디 단일리그였으나 2012년 승강제 도입을 통해 1부리그 K리그 클래식(이후 K리그1으로 리그명 변경), 2부리그 K리그 챌린지(이후 K리그2로 리그명 변경)의 2개 디비전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넓은 의미의 K리그는 두 개의 리그를 포괄한다. 또한 더 넓은 의미로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의 공식 약칭이기도 하다. 리그 포맷은 잉글랜드 풋볼 리그와 유사하며,[3] 춘추제로 운영되고 있다. 본래 포스트시즌(K리그 챔피언십)을 개최하였으나, 2012년 승강제 도입 이후 폐지하여 정규시즌만을 운영하고 있다.

1.1. 명칭에 대해서[편집]

  • K리그의 1998년 이전 공식명칭은 한국프로축구대회였고, 1983~85년에는 슈퍼리그, 축구대제전 등의 별칭이 많이 쓰였다. 이후 평범하게 프로축구로 불리다 1994시즌부터 코리안리그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다. 이 명칭은 한국프로축구대회와 별도로 코리언리그라는 별칭을 사용하는 실업축구리그가 굴러가던 시절에는 프로축구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K리그(또는 K-리그)가 한국프로축구리그의 정식명칭으로 채택된 것은 1998년이었다. 이 타임라인 때문에 K리그라는 명칭을 1993년 출범한 일본프로축구리그의 약칭인 J리그에서 베껴왔다는 평을 듣곤 한다. 하지만 K리그가 J리그의 완전한 모방이라는 명제에 대해서는 반만 맞다고 할 수 있다.

  • 한국프로축구대회가 공식명칭을 코리안리그로 변경한 1994년 당시 협회측에서 리그 명칭을 K리그로 줄여 칭한 사례나 그렇게 홍보한 사례는 없었다. 당시 기자들은 '코리안리그'라는 명칭을 가진 두 종목인 실업농구와 프로축구를 전부 K리그로 줄여적기를 즐겼는데, 예컨대 축구는 축구K리그, 농구는 농구K리그와 같은 식으로 표기했다. 여기에 더해 신문선이 중계만 했다하면 멀쩡한 공식명칭 놔두고 K리그 타령을 해대기도 했다. 그러다 1998년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명칭변경사유나 이것이 무엇의 약칭인지 등 부연설명 없이 공식 명칭을 'K-리그'로 변경, 2010년부터 가운대의 대시를 빼고 'K리그'로 다듬으면서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K리그는 코리안리그의 약칭이 아니라 그냥 K리그이다. 특이한 것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정식 약칭도 K리그다. 반면 J리그는 비공식적인 애칭 내지는 약칭에 불과하다. 일본 프로리그의 정식명칭은 출범 당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일본프로축구리그'이며 공식 약칭같은 것은 지정하지 않았다.

  • 따라서 K리그라는 단어 자체가 일본의 J리그에서 영감을 받아 1994년부터 비공식적으로 쓰인 것은 사실이나, 실업농구 역시 K리그로 줄여부른 시절이 있었다는 점에서 단순히 매번 '코리안리그'라고 다섯자나 할애하기 번거로워 쓴 것일 뿐 누군가 의도적으로 일본을 의식하고 베끼거나 한 것은 아니다. 한국프로축구협회는 70년대부터 종목을 불문하고 마르고 닳도록 쓰인 코리안리그(또는 코리언리그)라는 명칭 대신 쓸만한 것으로 국내에서 가장 널리 쓰이던 별칭인 K리그를 공식적으로 선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점은 맞으나 일본을 의식해 뜬금없이 지정한 짝퉁명칭이냐고 하면 아니다.

  • 단일리그였던 K리그는 2013년 승강제 도입으로 두 개의 리그가 되었는데, J리그를 베낀 이름이라는 풍문때문에 명칭 변경에 대한 의견 취합을 거친 결과 전통 차원에서 명칭을 유지하기로 하고 1부를 K리그 클래식, 2부를 K리그로 명명한다. 상위리그(또는 하위리그) 신설 과정에서 최상위 리그의 명칭을 새로 짓고 기존 명칭을 하위리그에 넘겨주는 일은 의외로 흔한 방식[4]이지만 이렇게 되면 1부리그를 K리그로 줄여부를 수 없게 되어 명칭 혼란에 대한 지적이 많이 나왔고, 연맹은 이를 받아들여 개막전 전까지 2부리그의 명칭을 바꾸겠다고 발표한다. 그리고 2013년 3월 11일 2부리그의 명칭이 K리그 챌린지로 확정된다. 기존에 프로클럽들이 운영하던 U-18 리그인 챌린지리그와의 명칭 충돌이 있었는데, 챌린지리그는 팬 투표를 통해 K리그 주니어로 개명하게 되었다.

  • 2018년부터는 각각 K리그1, K리그2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다만 혼란을 막기 위하여 2018년에만 한하여 'KEB하나은행 K리그1 2018 (클래식)', 'KEB하나은행 K리그2 2018 (챌린지)', 'K리그1 (클래식)', 'K리그2 (챌린지)'와 같이 기존 명칭을 병행한다.관련기사 지난 10년 사이 공식 리그명이 바뀌는 것이 어느덧 3번째인데, 너무 자주 바뀌다보니 리그명 변경에 따른 혼란가중에 대한 비판이 크다. 이럴거면 5년 전에 리그명 공모는 왜 한 것이며, 클래식/챌린지 명칭에 혼동의 여지가 있었다면 애초에 선택하지 말았어야 옳다. 그게 아니라면 그 유럽의 주요 리그들처럼 K리그 클래식이라고 하면 누구든 자연스레 1부 리그라고 떠올릴만큼 오랜 시간에 걸쳐 정통성과 가치를 부여했어야 옳다.관련기사 오죽하면 리그 개막을 코앞에 앞둔, 당사자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조차 혼란스러움을 나타낼 정도이다.관련기사 또한 이번 리그 명칭은 각각 K1, K2로 줄여 쓰기도 어려운 것이 각각 동일명사의 전차나 소총, 의류브랜드를 떠올리기가 쉽기 때문이다.


1.2. 리그창설 배경과 준비[편집]

1.2.1. 리그 출범 초기 (~1983)[편집]

실업축구로 진행되던 한국의 성인 축구리그는, 최순영 前신동아회장이 대한축구협회장에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프로화의 닻을 올리게 된다. 최 회장의 공약 중의 하나가 바로 프로화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실업리그를 1부리그와 2부리그로 나누고 승강제를 진행하려는 노력이 1975년에도 있었고, 1980년에도 시도하려다 실업팀의 반발로 실패한 적이 있었다.

또한 당시 정권의 3S정책에 힙입은 바도 있었고, 무엇보다 전두환 대통령이 축구광이란 점이 가장 큰 배경이었다. 1981년 5월 청와대 비서관들이 국민의 관심을 돌리고자 프로스포츠를 만들기로 했고, 6월에 실업야구 롯데 감독 박영길과 최순영 전 대한축구협회장이 청와대로 불려갔다. 최회장은 축구의 프로화계획에 대해 물어보기에 ‘축구는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다고 확신을 갖고 말했지만, 청와대 수석참모들이 축구 대신 야구를 밀어줬다고 회고한다. 박영길 감독은 1976년 재미사업가 홍윤희가 주도해 만든 프로화 청사진이 이미 있다고 어필했다. 청와대는 어느 종목이든 정한 것이 아니었고, 어느 쪽이든 구체적인 실현 가능한 계획이 나오기를 바랐던 것. 축구계는 경기장 시설 투자 등 프로화 비용으로 139억원을 국비로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하였는데, 야구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주요인물이었던 이호헌/이용일이 정부지원 없이[5] 프로야구를 만들 수 있다고 해 야구를 일단 프로화 하기로 한다.

1981년 10월 기사를 보면 기존의 할렐루야 팀에 1982년 3개팀을 추가해 4개, 1983년 4개팀을 추가해 총 8팀을 만들겠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원하는 대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1983년 2월에는 슈퍼리그 창설위원회가 축구협회 산하에 만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끊임없이 장애물들은 등장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브라질 프로팀 초청 건이었다. 국가대표팀과 브라질 프로팀과 초청경기를 통해 축구열기를 지핀다는 계획은 참신했지만, 당시 지방의 각 시도의 협회 지부는 "프로야구 때문에 관객유치가 곤란하다. 적자를 내면서까지 대회를 유치할 수는 없다"며 반대한다. 뿐만 아니라 프로화에 대해 오히려 실업팀이나 프로팀마저 슈퍼리그에 제각각의 이유를 대며 딴지를 거는 통에 협회는 내부간 싸움까지 겹쳐 어수선한 상태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일신한 것은 그해 개최된 대통령배로, 협회는 첫 개막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를 무료로 개방함으로써 72게임 동안 20만명의 관중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고, 이는 주택은행한일은행 그리고 현대자동차가 슈퍼리그 참가를 요청해 올 정도로 열기는 무르익게 된다.

1.2.2. 새로운 변화 (~1992)[편집]

전년도의 성공적인 흥행과 함께, 운영에 자신감을 얻은 기업들이 대거 참가하는데 힘입어 1984시즌에는 참가팀이 8팀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할렐루야, 대한석유공사, 럭키금성, 대우, 현대자동차 프로 5개 클럽과 포항제철, 국민은행, 한일은행 실업 3개 클럽의 참가가 결정되었다. 상금도 대폭 늘어 1억 4천만원이 늘어난 3억원으로 결정되었다. 우승팀은 1억원, 2위팀은 7,500만원, 3위팀은 5,000만원 정도였다. 특히 선수단의 규모도에 있어서도, 해외선수들의 국내복귀와 외국인 선수의 영입 등이 이어지며 그 질과 양이 대폭 개선되었다. 또한 관중을 불러오기 위해 경품 제공량도 원년의 1억 3천만원에서 3억 5천만원 가량으로 크게 늘리게 되었다. 한편 리그 명칭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외래어 사용이 심하다는 정부의 지적으로 인해 「슈퍼리그」라는 명칭 대신 “축구대제전”이라는 말을 쓰도록 체육부가 지시한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언론이나 대중들에게는 축구대제전과 슈퍼리그라는 2개의 말이 병용되었다.

1985시즌엔 이러한 리그 확대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시즌 중이던 할렐루야는 7월 18일 이수정 단장이 선수단을 불러놓고 해체 의사를 밝힘으로써 3차 리그 참가를 포기했다. 또 아마추어로 전환할 선수만 받아서 새롭게 팀을 구성하겠다고 밝혀서 프로축구계에 충격을 던졌다. 특히 구단주인 최순영 당시 대한축구협회장은 '선교에 방해만 된다'고 말하며 어째 최근의 모팀이 떠오르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해체입장을 밝혔다. 할렐루야의 해체가 리그에 미친 충격은 대단했다. 재정난에 시달리던 프로축구에게 있어서 할렐루야의 해체는 다른 축구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최순영 축구협회장에게 사임을 요구할 정도로 축구계는 격앙되어 있었다. 이런 와중에 최순영 협회장은 오락가락하며 의사를 번복하다 결국 해체의사를 다시 밝혔고 결국 할렐루야는 해체되고 말았다.

1986시즌은 리그의 운영과 신인 충원에 있어 굵직한 사건이 일어난 해이다. 우선 실업클럽과 프로클럽이 격돌하는 ‘축구대제전(기존의 수퍼리그)’과 별도로 프로클럽만 참가하는 ‘프로축구선수권대회’로 리그를 분리해 운영했다. 축구대제전은 지난해 우승팀 럭키금성을 비롯 대우, 포항제철, 현대, 대한석유공사 등 프로 5개 팀과 한일은행이 참가했다. 춘계리그와 추계리그로 나누어 각각 30경기씩 60경기를 치렀고, 각 리그 우승팀이 챔피언결정전을 가져 종합 우승팀을 가렸다. 프로 5개 클럽만 참가하는 "프로축구선수권대회"는 연고지를 순회하며 경기를 가졌다.[6] 한편, 김종부[7]를 둘러싼 각 클럽의 스카우트 파동이 일어났다. 선수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우와 이적 결정권자인 모교 고려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현대의 싸움으로 인해 김종부는 무적선수로 월드컵에 출전한다. 결국은 김종부는 제3의 클럽 포항제철로 가게 된다.[8]어부지리 개꿀

1987시즌은 한일은행이 제외되어 프로 5개 클럽만의, 본격적인 프로리그가 시작되었다. 리그의그리고 축구계의 숙원이었던 대회 운영방식이 단일리그,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입장 수입을 홈 팀이 관리하게 되었다. 또한 축구협회로부터 프로축구위원회가 출범하여 독립적으로 대회운영에 관한 사무를 주관하게 되었다. 또한 선수에 대한 연봉지급도 기본급과 수당으로 나눠 출전 수당을 지급하기로 하는 등 여러가지로 변화가 많았다. 특히 연고지 정착을 위해 대우 로얄즈는 홈 시즌티켓을 도입했고 나머지 팀들도 연고지 정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88시즌엔 전 시즌까지 행했던 주말 2연전을 선수 보호차원에서 폐지하고 1경기만 치루도록 해 경기수는 작년보다 줄었다. 한편 올림픽도 있고 하여 프로스포츠도 그 바람을 타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있었지만 잔디보호를 명목으로 서울 등 올림픽이 치뤄질 곳에서 경기를 치르지 못하게 지시하는 병크를 저지른다.축구팬이라며? 응 국대팬이야 전대갈을 조집시다 이러한 이유로 제주, 청주 등 중소도시만 돌아다닌 까닭에 관중 동원력은 좋지 못했고 평균 3~5,000여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9]

1989시즌에는 일화의 리그 참가로 6개 클럽 체제가 이루어졌으며 그로인해 한시즌동안 소화해야 할 경기 수가 증가하였다. 4강 신화의 주역인 박종환빠따박감독으로 한 일화는 연고지를 서울 동대문운동장으로 하였으며 잠실에서도 경기를 하였다.리그3연패의 시작

1990시즌에는 도시지역연고제가 전면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로 인해 럭키금성은 충청에서 서울로, 현대는 강원에서 울산으로 연고지를 이전하였다. 2군 리그가 처음으로 도입되었으며 대우동독의 프랑크 엥겔 감독을 선임하며 최초의 외국인 감독을 탄생시켰고, 일화는 사리체프구리신家시조를 데려오며 최초의 외국인 골키퍼를 영입하였다. [10]

2. 참가 구단의 변동[편집]

년도

팀명

구단 형태

연고지

기타

1983

할렐루야 축구단

프로/종교[11]구단

강원,충남,충북

최초 프로축구팀. 1986년 실업리그 행,1998년 해체

유공 코끼리

프로/기업구단

서울,인천,경기

서울(동대문운동장 )→부천 SK(부천)→제주 유나이티드(제주)

대우 로얄즈

실업/ 기업구단

부산,경남

현대산업개발에서 인수.부산 아이콘스부산 아이파크

포항제철 돌핀스

실업/기업구단

대구,경북

포항제철 아톰즈포항 아톰즈포항 스틸러스

국민은행 축구단

실업/기업구단

전북,전남

1985년 실업리그 행.1997년 해체[12]

1984

럭키금성 황소

프로/기업구단

충북, 충남

충청→LG 치타스(서울)→안양 LG 치타스(안양)→FC 서울(서울)[13]

현대 호랑이

프로/기업구단

인천,경기

경기→강원(1987)→울산(1990).울산 현대의 전신

한일은행 축구단

실업/기업구단

없음

실업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14] 1987년 실업리그 행.

1985

상무 축구단

군팀

없음

실업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참가.1986년 실업리그 행.

1989

일화 천마

기업구단[15]

서울

서울→천안→성남(2014년 시민구단 성남 FC로 전환)

1994

전북 버팔로[16]

기업구단

전북

호남 최초의 축구단[17]

1995

전남드래곤즈

기업구단

전남

포항제철의 2번째 구단.

전북 다이노스[18]

기업구단

전북

전북 현대 모터스의 전신.

1996

수원 삼성 블루윙즈

기업구단

수원

1997

대전 시티즌

기업구단

대전

컨소시엄 형태의 기업구단이었으나, 2006년 시민구단으로 전환

2003

대구 FC

시민구단

대구

광주 상무 불사조

군팀

광주

신규구단을 창단하려다가 어려워지자 상무축구단을 이전시켜 창단

2004

인천 유나이티드

시민구단

인천

2006

경남 FC

도민구단

경남

2009

강원 FC

도민구단

강원

2011

광주 FC

시민구단

광주

상주 상무

군팀

상주

광주 상무와 같은 구단이지만, 연맹은 다른구단으로 분류.[19]

2013

경찰 축구단

경찰팀

없음[20]

안산 경찰청 프로축구단→안산 무궁화. 2016시즌을 마지막으로 해체 후 아산으로 연고지 변경 후 재창단.

고양 Hi FC

종교구단

고양

고양 자이크로 FC[21]. 내셔널리그 -> K리그 챌린지 로 프로 입성. 2016시즌을 마지막으로 해체.

부천 FC 1995

시민구단

부천

K3리그 -> K리그 챌린지 로 프로 전환.

수원 FC

시민구단

수원

충주 험멜

기업구단

충주

내셔널리그 -> K리그로 프로 전환. 2016시즌을 마지막으로 해체.

FC 안양

시민구단

안양

2015

서울 이랜드 FC

기업구단

서울

2017

안산 그리너스 FC

시민구단

안산

아산 무궁화

경찰팀

아산

안산 무궁화 해체 후 아산에서 재창단. 안산무궁화의 역사를 승계하지 않음.

  • 1983년에 리그가 창설될 때 프로 팀 2개(유공, 할렐루야)와 실업 팀 3개(대우, 포항제철, 국민은행)를 묶어서 5개 팀으로 시작[22]해서 꾸준히 신생팀의 참가가 이어져 2012년도까지 16개 팀을 갖추게 되었다. 2018년 시점에서는 2개 디비전 체제로 1부 리그에 12팀, 2부 리그에 10팀 체제이다. 특히 2002년 월드컵 이후로 5개 팀(상주 상무를 포함하면 6개)이 새로 창단되어 급속도로 규모가 커졌으나 이들 전부가 지자체구단으로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시민구단 문서 참조.

  • 대전 시티즌이 창단하기 전까지는 10개 팀이 안 되면 FIFA에서 정식 프로 리그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신빙성 있게 돌았으나, 사실이 아니다. FIFA에서는 각국의 리그 운영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도 이를 믿는 사람들이 많은지 대한축구협회에서도 홈페이지의 FAQ에 이 부분을 넣었다.

3. 소속 구단 (2018 시즌)[편집]

4. 관련 방송[편집]

5. 상금 규모[편집]

리그

분류

부문

상금

비고

K리그1 2018

단체상

우승

5억 원

준우승

2억 원

페어 플레이

1000만 원

파울이 가장 적은 팀에게 수여

개인상

득점왕

500만 원

[23]

도움왕

300만 원

K리그2 2018

단체상

우승

1억 원

개인상

득점왕

300만 원

[24]

도움왕

150만 원

  • 2011 시즌까지 K리그 우승 상금은 3억 원이었으나 2012 시즌부터 5억 원으로 67% 인상되었다. 준우승 상금도 1억 5천만 원에서 2억 원으로 인상되었다. 이것은 2006 시즌에 2억 원에서 3억 원으로 인상되고 난 후 6년 만의 인상이다. 참고로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 상금은 3억원이다.

  • 옆나라 일본의 J리그의 우승상금은 2016 시즌까지 1억 엔 (한화 약 10억 7천만 원)으로 이미 K리그 클래식 우승 상금과 2배 이상의 차이가 있었으나 2017 시즌부터는 10배 인상하여 J리그 챔피언 결정전 우승팀에게 10억 엔의 우승 상금이 주어질 것이라 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최근 영국 기업과의 중계권 협상에서 10년간 2조 5천억 원이 넘는 대형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비록 리그 예산 규모에서 J리그에 막대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고는 하나,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J리그와의 리그 경쟁력에서 더욱 열세를 보일 것이라는 점은 불보듯 뻔하다. 5억 원의 저조한 우승 상금과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도 올라왔다. 다만 이 기사에선 J리그의 우승 상금이 한화로 223억이라 소개하고 있다.#

  • 덧붙여 중동의 석유머니, 중국의 축구굴기가 한창 기승인 이적시장에서 현실적으로 K리그 클래식의 우승 상금만 놓고 보자면 메리트 있는 액수는 아니다. 더군다나 5억 원의 우승 상금은 승강제를 구축하면서 2016 시즌까지 강등팀에게 5억 원씩 지원하기로 하면서 강등팀하고 우승팀이 받는 돈이 어떻게 같을 수 있냐며 까인 적이 있을 정도.

  • 대륙컵인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는 2016 시즌부터 우승 상금이 2배로 뛰어 올라 종전의 150만 달러에서 2배가 오른 300만 달러(약 36억 원)를 우승팀에게 수여하기로 하였다. 그렇기에 현실적으로 리그 3위를 지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출전권만 확보한다면 K리그 클래식보단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 올인하는 것이 수익이나 홍보효과를 고려했을 때 너무나 당연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6. 우승 트로피[편집]

  • 그동안의 K리그의 우승컵들은 동네 체육사에서 파는 저가에 급조된 느낌의 우승컵들이었고 그나마도 거의 매년 바뀌어서 우승컵의 위엄과 전통을 나타낼 수 없었다. 2006, 2007 시즌 우승컵 그러나 2008년, K리그 25주년을 맞아 리그의 정통성과 통일성을 확립하기 위해 2007년부터 1년여에 걸친 기획 끝에 현재의 우승 트로피가 완성되었다. 재질은 24K 도금에 높이 50cm, 무게 7kg으로 되어있다.

  • 2013 시즌, K리그가 K리그 클래식으로 개편되고 기존 K리그를 계승하기에 우승 트로피를 그대로 사용한다.

  • 시즌 우승팀은 우승트로피 하단에 우승 시즌, 클럽명이 새겨지며 1년간 보관, 관리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게 된다. 다음 시즌 우승팀이 결정되면 진품은 반납하고 동일한 크기의 황동 복제 우승 트로피가 주어진다. 연속 우승의 경우에는 진품 반납을 하지 않고 전시즌 우승에 대한 복제 우승트로피를 또 수여받는다. 우승 트로피가 바뀐 뒤 첫 시즌이었던 2008 시즌 새 우승컵의 주인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였으며, 2015 시즌 전북 현대 모터스가 드디어 K리그 클래식 2연패를 달성하였다.

  • 2012년 승강제시행으로 2013년부터 K리그가 1부와 2부로 나뉘게 되자 우승 트로피 또한 관심 대상이 되었다. 1부 리그인 K리그 클래식은 승강제 도입 전의 K리그를 그대로 승계한 관계로 기존의 우승 트로피를 그대로 쓰고, 2부 리그인 K리그 챌린지는 우승 트로피를 새로 만들었다.

7. 리그 패치[편집]

8. 공인구[편집]

K리그 역대 공인구[a]

스폰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0px-Logo_NIKE.svg.png
( ~2011년)

파일:external/i.onionstatic.com/640.jpg
(2012년~ )

형태

사용 연도

명칭

파일:2000-01NIKE_GEO_MERLIN(K리그).jpg

2000

Nike GEO MERLIN

2001

Nike GEO MERLIN

파일:2002-03NIKE_GEO_MERLIN_VAPOR(K리그).jpg

2002

Nike GEO MERLIN VAPOR

2003

Nike GEO MERLIN VAPOR

파일:2004-06NIKE_TOTAL90_ARROW(K리그).jpg

2004

Nike TOTAL 90 AEROW Ⅰ

2005

Nike TOTAL 90 AEROWⅠ

2006

Nike TOTAL 90 AEROW Ⅰ

파일:2007-08NIKE_TOTAL90_ARROW2(K리그).jpg

2007

Nike TOTAL 90 AEROW Ⅱ

2008

Nike TOTAL 90 AEROW Ⅱ

파일:2008NIKE_MERCURIAL_VELOCHI(K리그).jpg

Nike MERCURIAL VELOCHI

파일:2009NIKE_TOTAL90_OMNI(K리그).jpg

2009

Nike TOTAL 90 OMNI

파일:2010-11NIKE_TOTAL90_ASCENT(K리그).jpg

2010

Nike TOTAL 90 ASCENT

2011

Nike TOTAL 90 ASCENT

파일:2012 Tango12(K리그).jpg

2012

Tango 12

파일:Cafusa(K리그).jpg

2013

Cafusa

파일:

2014

Brazuca

파일:

2015

Conext15

파일:

2016

Errejota

파일:

2017

Krasava

파일:

2018

Telstar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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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2.bp.blogspot.com/_20162418548.png[25]

9. 시즌별 일람[편집]

10. 리그 연혁[편집]

10.1. 역대 K리그1 우승팀[편집]

연도

우승팀

준우승팀

리그방식

1983

할렐루야 독수리

대우 로얄즈

단일 리그

1984

대우 로얄즈

유공 코끼리

전후기/챔피언 결정전

1985

럭키금성 황소

포항제철 아톰즈

단일 리그

1986

포항제철 아톰즈

럭키금성 황소

전후기 리그/챔피언 결정전

1987

대우 로얄즈

포항제철 아톰즈

단일 리그

1988

포항제철 아톰즈

현대 호랑이

1989

유공 코끼리

럭키금성 황소

1990

럭키금성 황소

대우 로얄즈

1991

대우 로얄즈

현대 호랑이

1992

포항제철 아톰즈

일화 천마

1993

일화 천마

LG 치타스

1994

일화 천마

유공 코끼리

1995

일화 천마

포항 아톰즈

전후기 리그/챔피언 결정전

1996

울산 현대 호랑이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7

부산 대우 로얄즈

전남 드래곤즈

단일 리그

1998

수원 삼성 블루윙즈

울산 현대 호랑이

단일 리그/4강 플레이오프

1999

수원 삼성 블루윙즈

부산 대우 로얄즈

2000

안양 LG 치타스

부천 SK

2001

성남 일화 천마

안양 LG 치타스

단일 리그

2002

성남 일화 천마

울산 현대 호랑이

2003

성남 일화 천마

울산 현대 호랑이

2004

수원 삼성 블루윙즈

포항 스틸러스

전후기 리그/4강 플레이오프

2005

울산 현대 호랑이

인천 유나이티드

2006

성남 일화 천마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7

포항 스틸러스

성남 일화 천마

단일 리그/6강 플레이오프

2008

수원 삼성 블루윙즈

FC 서울

2009

전북 현대 모터스

성남 일화 천마

2010

FC 서울

제주 유나이티드

2011

전북 현대 모터스

울산 현대

2012

FC 서울

전북 현대 모터스

단일 리그/스플릿

2013

포항 스틸러스

울산 현대

2014

전북 현대 모터스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5

전북 현대 모터스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6

FC 서울

전북 현대 모터스

2017

전북 현대 모터스

제주 유나이티드

2018

전북 현대 모터스

10.2. K리그1 우승횟수[편집]

우승

준우승

우승 연도

준우승 연도

성남 FC

7

3

1993, 1994, 1995, 2001, 2002,
2003, 2006

1992, 2007, 2009

FC 서울

6

5

1985, 1990, 2000, 2010, 2012,
2016

1986, 1989, 1993, 2001, 2008

전북 현대 모터스

6

2

2009, 2011, 2014, 2015, 2017,
2018

2012, 2016

포항 스틸러스

5

4

1986, 1988, 1992, 2007, 2013

1985, 1987, 1995, 2004

수원 삼성 블루윙즈

4

4

1998, 1999, 2004, 2008

1996, 2006, 2014, 2015

부산 아이파크

4

3

1984, 1987, 1991, 1997

1983, 1990, 1999

울산 현대

2

7

1996, 2005

1988, 1991, 1998, 2002, 2003,
2011, 2013

제주 유나이티드

1

5

1989

1984, 1994, 2000, 2010, 2017

할렐루야 독수리

1

0

1983

-

전남 드래곤즈

0

1

-

1997

인천 유나이티드

0

1

-

2005

10.3. 역대 K리그2 우승팀[편집]

연도

우승팀

준우승팀

리그방식

2013

상주 상무

경찰 축구단

단일 리그

2014

대전 시티즌

광주 FC

단일 리그/승격 플레이오프

2015

상주 상무

수원 FC

2016

안산 무궁화

대구 FC

2017

경남 FC

부산 아이파크

10.4. K리그2 우승횟수[편집]

우승

준우승

우승 연도

준우승 연도

상주 상무

2

0

2013, 2015

-

안산 무궁화

1

1

2016

2013

대전 시티즌

1

0

2014

-

경남 FC

1

0

2017

-

광주 FC

0

1

-

2014

수원 FC

0

1

-

2015

대구 FC

0

1

-

2016

부산 아이파크

0

1

-

2017


10.5. 역대 승강팀[편집]

11. 역대 개인상[편집]


12. 역대 스폰서 및 엠블럼[편집]

  • 1994년 한국 프로 스포츠 중 최초로 타이틀 스폰서 제도를 도입했다. '하이트배 코리안리그'가 시초. 컵 대회를 포함하면 1992년 리그컵 스폰서로 참여한 아디다스배 프로 축구 컵 대회까지거슬러 올라간다. 아디다스는 이후 2003년까지 무려 12년 동안 컵 대회 스폰을 담당하게 된다.

12.1. 역대 스폰서[편집]

년도

스폰서

리그명

금액

1994년

하이트맥주

하이트배 코리안리그

4억원

1995년

1996년

삼성물산

라피도컵 프로축구대회

추가바람

1997년

1998년

현대중공업

현대컵 K-리그

추가바람

1999년

현대증권

바이코리아컵 K-리그

15억원

2000년

삼성전자

삼성디지털 K-리그

18억원

2001년

포스코

포스코 K-리그

20억원

2002년

삼성전자

삼성 파브 K-리그

27억원

2003년

삼성 하우젠 K-리그

35억 8천만원

2004년

32억

2005년

34억

2006년

2007년

33억

2008년

2009년

없음[26][27]

K-리그

없음

2010년

현대자동차

쏘나타 K리그

23억원

2011년

현대오일뱅크

현대오일뱅크 K리그

30억원

2012년

35억원(추정)

2013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 챌린지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KEB하나은행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 / 챌린지

35억원

2018년

2019년

2020년


12.2. 역대 스폰서 엠블럼[편집]

역대 스폰서 엠블럼

설명

파일:K리그 -하이트배.jpg

1994~1996 스폰서 엠블럼

파일:attachment/K리그/1997.jpg

1997 스폰서 엠블럼

파일:attachment/K리그/1998a.jpg

1998 스폰서 엠블럼

파일:attachment/K리그/1999.jpg

1999 스폰서 엠블럼

파일:K리그 2000시즌 스폰서 엠블럼.jpg

2000 스폰서 엠블럼

파일:attachment/K리그/2001.jpg

2001 스폰서 엠블럼

파일:attachment/K리그/2002.jpg

2002 스폰서 엠블럼

파일:K리그 2003시즌 스폰서 엠블럼.jpg 파일:K리그 2004시즌 스폰서 엠블럼.jpg 파일:K리그 2005시즌 스폰서 엠블럼1.jpg
파일:K리그 2006시즌 스폰서 엠블럼.jpg 파일:K리그 2007시즌 스폰서 엠블럼.jpg

2003~2007 스폰서 엠블럼

파일:K리그 2008시즌 스폰서 엠블럼.jpg

2008 스폰서 엠블럼

파일:/image/018/2010/02/26/1267149783.749436_PS10022600059.jpg

2010 스폰서 엠블럼

파일:external/pds.joinsmsn.com/201202221145775664_1.jpg

2011~2012 스폰서 엠블럼

파일:external/img.sbs.co.kr/30000239442_700.jpg 파일:2013 K리그 챌린지 엠블럼.jpg

2013 스폰서 엠블럼

파일:/image/014/2014/03/06/20140306162441554_59_20140306162504.jpg 파일:2014 K리그 챌린지 엠블럼.jpg

2014 스폰서 엠블럼

파일:attachment/_20153310854.png 파일:2015 K리그 챌린지 엠블럼.jpg

2015 스폰서 엠블럼

파일:/image/382/2016/03/04/76810995.1_99_20160304054731.jpg 파일:2016 K리그 챌린지 엠블럼.jpg

2016 스폰서 엠블럼

파일:keb_classic_noR.gif 파일:2017 K리그 챌린지 엠블럼.jpg

2017 스폰서 엠블럼

파일:K리그1 2018 엠블럼.jpg 파일:K리그2 2018 엠블럼.jpg

2018 스폰서 엠블럼

13. 역대 홍보 대사[편집]

년도

이름

직업

2005년

클론

가수

2006년

노브레인

가수

2012년

안정환

전 축구선수[28]

2013년

정준호

배우

2013년

신태용, 유상철, 이운재, 송종국

전 축구선수

2014년

윤두준

가수

2015년

로보카 폴리

애니메이션 캐릭터

2015년

윤두준

가수

2016년

박재정

가수

2016년

김병지, 김태영

전 축구선수

2017년

러블리즈

가수

2018년

감스트

인터넷 방송 BJ

14. 외국인 선수[편집]

  • 프로 리그 창설 시즌인 1983년부터 외국인 선수는 허용되어 있었고 포항제철이 당시 원료 공급사였던 브라질의 Companhia Vale do Rio Doce, (약자로 CVRD) 소속의 세르지오,호세를 임대 영입하면서 K리그의 외국인 선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듬해인 1984년부터 다른 팀들도 앞다투어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기 시작했고 이 외국인 선수들은 K리그 수준 향상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 외국인 선수에 대한 기본적인 규정은 3+1명 보유, 3+1명 출전(아시아 쿼터제 포함), 북한 출신 선수는 내국인 선수로 간주, 골키퍼 용병은 금지다. 이유는 신의손(귀화 전에는 사리체프), 샤샤 등 초창기 외국인 골키퍼 용병들이 너무 잘해서. 단, 경기 도중에 골키퍼가 퇴장당하거나 교체 카드를 모두 쓴 상태에서 부상으로 실려나가서 외국인 필드 플레이어를 골키퍼로 대신 세우는 것은 허용된다.[29]골키퍼 또한 3명 이외에 아시아 용병 선수를 한 명 넣을 수 있는 아시아 쿼터제가 도입되어 수원의 리웨이펑, 강원의 마사 등 일본, 중국 선수들이 진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중국에선 편하게 뛰고 돈도 제때 받을 수 있는 K리그에 진출하고 싶어하는 선수들이 늘어나는 모양...이었으나 CSL의 성장으로 다들 엄청난 몸값 거품이 끼며 중국선수 보기 힘들어졌다. 유럽조차 군소 리그에선 임금 체불이 흔하며 빅 리그에도 경영 파탄으로 돈 못 주는 팀들이 간혹 있다. K리그는 액수는 차이가 있어도 돈을 떼먹진 않는다. 밀리는 경우는 가끔 있어도 현재는 알 자지라(UAE)에 소속된 과거 전북의 레오나르도 또한 원 소속팀인 POAK의 파산 및 임금체불로 인해 헐값에 전북으로 넘어온 케이스이다. 다만 에이전트가 사기쳐서 용병의 돈을 먹고 나르는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 호주가 AFC로 들어온 덕분에 2009 시즌을 앞두고 성남에서는 사샤 오그레노브스키, 인천에서는 호주 국가대표인 제이드 노스를 영입하여 아시아 쿼터제의 수혜를 입기도 하였다. 다만 잘 적응해서 성남의 수비라인의 한 축이 된 사샤와는 달리 큰 기대를 안고 입단한 노스는 팀내 적응 문제 등으로 인해 한 시즌만에 유럽 군소 리그로 이적했다. 이후 많은 호주 선수들이 K리그에 도전했으나 실패가 많았고 그나마 2015시즌까지 활약한 전북의 알렉스 윌킨슨과 최근 중국으로 이적한 제주의 알렉스 정도가 활약다운 활약을 펼쳤다. 호주 A리그가 아챔에선 항상 다크호스 노릇을 톡톡히 하지만 개인 기량에서의 차이는 아직까지 극복하기 힘든 차이로 보인다.

  • 역대 한국에서 활약하고 인기를 끈 용병을 꼽자면 피아퐁(럭키금성), 라데(포항), 샤샤, 마니치(마니산), 데니스(이성남), 싸빅(이싸빅), 산드로, 신의손(사리체프), 마토(수원), 에두(수원 전북), 데얀(인천 서울 수원), 아디(서울) 등이 있다.

  • 가끔 알파이 외잘란 같은 먹튀도 있다. 한 때, EPL 블랙번 로버스에서 활약했던 호주의 브렛 에머튼의 경우 부산으로 입단이 확정되고 계약까지 다 하려고 하는 찰나, 본인이 거부를 해버렸다. 이후 8년간 블랙번에서 활약하다가 자국리그인 시드니 FC로 이적하고 2014년에 은퇴했다.

  • 보통 아시아 리그라고 만만히 봤다가 분데스리가에 필적한다고 자부하는 압박에 고전하다가 떨어져나가는 케이스도 종종 있다. 2008년에는 FC 서울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와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에서 두루 활약한 무삼파를 전격적으로 영입했지만, 2개월 동안 5경기 출전의 초라한 성적만 남긴채 퇴출됐다.

15. 더비 매치[편집]

16. 문제점[편집]

17. 올스타전[편집]

18. 특색[편집]

  • 1983년도부터 1986년까지 각 구단들이 연고지 내에서 홈 경기를 가지지 않고 각 도시를 돌아다니며 투어 형식으로 리그를 운영했기 때문에 연고제가 자리잡을 수가 없었다. 1987년부터 광역연고제가 시행되어 각 구단이 유공은 인천/경기, 포철은 대구/경북, 현대는 강원, 럭키금성은 충청 이렇게 자신의 연고지에서 홈 경기를 개최하였으며 그나마 1988년부터 30년 넘게[30] 경상북도 포항시를 지역 연고도 아닌 도시 연고[31]로 가지고 있는 포항 스틸러스가 연고 정착이 잘 된 케이스. 이는 동시기에 프로야구 구단들이 일찌감치 연고지에 자리잡은 것에 비하면 연고정착이 지지부진한 편이었고, 이에 K리그에서는 대도시보다는 프로야구 연고지와 안 겹치는 중소도시 연고지를 위주로 공략하는 틈새전략을 펼쳤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기의 K리그 르네상스 당시 포항울산동해안 더비가 흥하는 등 중소도시 공략 전략은 어느정도 효과를 봤다.[32] 이때 이후 여러 신생팀이 생기고 또 10년 넘게 시간이 흐르면서 연고정착이 어느정도 이루어졌다.

  • 정부 주도 이전의 프로화 움직임때 승강제까지 갖추고 프로화하자는 안건이 진지하게 논의된 적도 있었지만 구단들의 반발과 정부의 개입으로 졸속으로 급하게 프로화 되어[33][34] 2012년까지는 승강제가 없었으며, 해외에서 본다면 상당히 기묘하게 생각될 시스템을 가진 군 소속의 상주 상무와 아산 무궁화(경찰 체육단 소속) 축구단이 뛰고 있다. 물론 찾아보면 타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꽤 있긴 하지만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러시아의 CSKA 모스크바와 같은 군팀 출신의 프로팀은 전세계에 고루 존재하나 현재는 어엿한 프로구단이다. 단, 아산 무궁화의 경우 의무경찰 폐지 결정에 따라 차후 해체가 예정되어 있다.

  • 한국의 프로스포츠들이 그럿듯이 기업구단들은 대기업이 운영하고 있는데, 이 점에서 기업명이 하나도 안들어간 J리그의 팀들을 예로 들며 K리그를 까는 사람들도 있다. 애초에 외국 팀들은 기업명이 안들어갔다는 주장 자체가 잘못되었으며[35] 게다가 J리그도 이름만 그렇지, 사실은 기업 구단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세계적인 유수 클럽들 중에서도 순수 시민구단은 상당히 드물다. 사람들이 기업이 구단을 운영하는 걸 까는 이유는 아무래도 유럽 대다수의 구단들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설립하거나, 종교적 이유, 또는 노동자들이 모여 스스로 구단을 창설한 경우가 많다는 걸 이제야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36] 그리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같은 일부 기업구단들도 기업소유에서 벗어나 독립법인화하여 자체적으로 법인을 설립하여 프로팀을 운영하기 때문에, 일단 법적으로는 기업으로부터 독립해 있는 모습이다. 물론 스폰서라는 명목으로 모기업에서 지원을 해 주지만 이전보다 여러가지 절차가 까다로워진건 사실이다. 또한 기업명이 들어간다고 비아냥대는 일부 축구팬들도 있는데 기업들이 적자덩어리인 축구단을 운영하는 이유가 홍보와 세금감면등의 이유인 것을 생각해볼때 축구판에서 전혀 득될것이 없는 논란거리이다. 기업명 떼자는 사람들은 기업구단들이 시민구단 돼바야 정신 차리지 세계적인 추세로도 레드불 그룹과 같은 스포츠 자본 그룹의 활성화로 축구의 기업화가 심화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 출범 당시에는, 유럽과 같은 자유계약제도를 채택하였지만 1987년 시즌부터 축구에는 어울리지 않는 드래프트 제도가 도입되었다. 일명 김종부법 때문인데, 당시 한참 주가를 올리던 김종부를 잡기 위해 현대 구단[38]이 김종부가 재학중인 고려대에 상당한 지원을 했고, 결국 김종부는 본인 의지와 무관하게 학교측 설득으로 현대에 입단하기로 가계약한다. 하지만 김종부는 대우 로얄스행을 원했기 때문에 이 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했고, 이 사건으로 인해 고려대 축구부에서 제명되고 축구협회의 선수등록을 말소당하는 우여곡절 겪는다. 그러나 1986년 월드컵 활약 후 축구협회가 현행 선수등록 규정을 개정해주면서 가까스로 대우에 입단할 길이 트였다. 그러자 격분한 현대 구단이 팀해체 선언이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왔고, 결국 제3의 구단인 포항제철에 입단하기로 타협함으로써 흔히 말하는 김종부 파동은 일단락되었다. 결국 이로 인해, K리그에 드래프트 제도가 도입되고 만다. 그 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개최가 확정되자 K리그에 드래프트 같은 구시대적인 제도의 철폐 여론이 불었고, 결국 2001년 다시 자유계약 제도로 바뀌었다. 그러나 2005년 박주영 파동으로 다시 드래프트제 도입둘다 고대 선수다, 2012년 현재까지도 드래프트 제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2013년부터 부분 자유계약제 도입을 시작으로 2016 시즌부터 드래프트가 폐지되었다.덕분에 서울 이랜드는 상당히 신인선수 수급에 피를 보고 시작했다.

  •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인프라가 크게 확충되었고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4개 팀이 새로 창단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전체적인 리그 모습을 봐도 2010년 시점에서, 10년전인 2000년의 리그 모습과 지금의 리그 모습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 그러나 단기간에 그러한 발전을 보였음에도 주변의 J리그등과 비교했을 때 아직까지 미흡한 점이 여러가지로 많으며, 무엇보다 사람들이 해외축구를 손쉽게 접하게 되면서 정작 K리그의 발전상은 많이 가려진 측면도 없지않아 있다. 한마디로, 빠르게 많이 발전하긴 했는데 사람들 성에 안찬다는 이야기다. 어찌보면 국민들이 옛날보다 눈높이가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 2012년 이후로는 암운이 드리워졌다. 브라질 경제만으로 운운하기엔 새로 영입해오는 외국인 선수들의 수준도 많이 떨어졌고, 뭣보다 각 팀의 예산삭감과 아시아쿼터 제도의 도입으로 극심한 선수유출은 불가피하게 되었다.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중동 국가와 돈으로 경쟁할 수 없게 되었으니 유망주를 키워 파는 리그로 전환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연맹이 행정처리를 잘 해 주길 기대해야 겠지만 삽질만 하고 있는 편.

  • 프로토를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좀 꺼리는 리그이기도 하다. 강팀과 약팀의 차이가 확실한 다른 리그에 비해서, K리그는 비교적 팀별 전력이 평준화한 편이라 경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례로 2005 시즌부터 2010 시즌까지 총 6시즌 동안 같은 팀이 우승한 적이 없다. 심지어 2009 시즌 우승팀인 전북 현대 모터스는 창단 후 첫 리그 우승이었다.

  • 유럽축구에 익숙한 사람들은 K리그에 이렇다 할 빅클럽이 없고, 다 특색없는 고만고만한 팀들만 있다며 까는 경향이 많다. 물론 K리그가 타 리그에 비해 어느정도 평준화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런 예측 불가한 순위결과가 스포츠의 본질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무조건 까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오히려 순위 고착화가 되었는데도 인기있는 축구리그들이 다른 종목과 비교하면 의아할뿐이다.

  • K리그도 30여년 역사가 흘러 어느정도 성숙기에 이르다보니, 리그를 주도하는 대여섯 팀들이 서서히 정착되어가기 시작하고 있다. 서울, 수원, 포항, 성남 함정 발견, 전북, 울산 등의 팀들은 K리그의 빅6라 불리며 국내 축구팬들 뿐 아니라 아시아권에서도 명문클럽의 위상을 인정받고 있는 분위기이다. 두 구단은 워낙 빅클럽이고 다른 네 팀도 최근의 아챔 우승으로 이름을 확실히 알렸다. 포항의 경우 모기업인 포스코의 철강사업으로 인해 뜬금없는 그리스에 유명세가 상당하다. 재정박살 전 그리스가 조선 산업이 발달해 이쪽 분야의 교류가 컸던 영향으로 파악된다.

  • 이야기거리가가 없다고 까이는 리그지만, 찾아보면 다양한 팀들이 나름의 역사와 이야기가 있다. K리그/더비 매치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팀별로 여러 경기들이 많으며 잘 찾아봐야 한다. 모든 리그가 그렇지만 중립적으로 보면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 응원할 팀을 정해 놓고 그 팀을 중심으로 리그를 봐야 그 안에서 흥미를 느낄 수 있다. 응원팀이 확실하다면 동네 조기 축구나 학교 체육 대회조차 미칠듯한 감정이입과 열정을 느낄수 있는 것이 축구의 묘미이기도 하다.[39] 물론 축구를 중립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K리그의 경기스타일이 조금 뻑뻑해보일 수는 있는 것이 사실이다. J리그나 라 리가처럼 세련되고 매끄러운 패스위주의 경기가 아니라, 강력한 압박과 몸싸움으로 상대의 장점을 지워버리는 식의 게임이 많기 때문에 해외축구에 익숙해진 라이트한 축구팬이 즐기기에는 K리그 특유의 투박하고 뚝뚝 끊어지는 경기진행을 못견뎌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또한 축구스타일의 하나일 뿐이고 그렇게 투박하다고 까는 한국축구가 어째서 수십년간 아시아의 최정상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겠는가. 일단 축구는 이기는 것이 우선이지 무턱대고 스타일을 바꾼다고 그게 쉽게 바꿔지는 것이 아니다. 한 나라의 축구문화에는 오랜 세월 정착된 맥락과 역사가 있으므로 그것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 2013년부터 만 23세 이하 국내선수 의무 등록에 대한 규정이 신설되었다. 장기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유소년 육성 클럽 시스템을 한층 강화시키기 위하여 연맹이 신설한 제도이다. 23세 이하 국내 선수는 출전 선수 명단에 최소 1명 이상 포함되어야 한다. 만일, 23세 이하 국내 선수가 포함되어 있지 않을 경우, 해당 인원만큼 출전 선수 명단에서 제외한다. 2013년에는 1명이었고, 2014년 시즌은 2명으로 늘어났으며 2015년에는 2명 등록 및 1명 출전 의무화로 확대 될 예정이다. 단, 군경 팀은 적용받지 않으며 군경 팀과 경기시 그 상대 팀도 위 사항에 한시적으로 적용받지 아니한다. 군경 팀 선수는 9월 전역일 이후 원소속 팀을 상대로 경기 출전이 가능하다. 또한, 23세 이하의 국내 선수가 각급 대표 팀 선수로 선발될 경우, 소집 기간에 개최되는 경기에서 해당 클럽과 그 상대팀은 차출된 선수의 인원 수만큼 엔트리 의무 등록 규정에 적용받지 아니한다. 차출된 선수가 동일하지 않을 경우 많을 팀을 기준으로 한다.

  • 수준에 대해서는 개개인마다 평가가 조금씩 다른 편이다. 단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제3자의 위치에서 보면 핌 베어백 감독이 2000년대 중반 시점 K리그를 네덜란드 2부 수준이라고 평했고, 그 외 대부분의 외국인 감독들이 내린 평가가 아예 유럽리그에 발도 못붙일 수준은 아닌데, 그렇다고 근접한 수준이라고도 할 수 없다 고 한다. K리그에서 매우 잘하는 선수들이 이재성(분데스리가)이나 김보경(EPL)처럼 2부리그로 가는 경우가 많고 중간 정도 되는 선수들도 3부리그까지는 안 가는 걸 보면[40] 대략 K리그의 수준은 빅리그의 2부리그와 3부리그 사이에 위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9. 여담 [편집]

  • 2007년 4월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서울과 수원간의 리그 경기에서는 관중 5만 5397명이 입장하면서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초로 한 경기 5만 관중 시대를 열었고 2010년 5월 5일에 역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 성남간의 경기는 6만 747명이 입장하는 대기록을 세우면서 한국 프로 스포츠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했다. 한편, 2010년 4월 4일에 있었던 서울과 수원 간의 경기에서는 역대 4번째 최다 관중 기록인 4만 8558명이 입장했고 12월 5일 있었던 챔피언 결정전 2차전에선 5만 6759명이 입장하면서 역대 플레이오프 최다관중 기록을 경신했다.

  • 2008년 5월 18일 K리그 10라운드 부산과 성남 간의 경기에서는 '일부러 골을 먹게 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전반 37분 부산의 김태영이 쓰러지자 부산은 치료를 위해 공을 밖으로 내보냈고 성남은 페어 플레이 정신에 입각해 부산에 공을 돌려줬다. 그런데 공을 내준 성남의 두두가 공을 내주자마자 곧바로 달려들었고 공을 받은 부산의 김유진은 두두가 달려오는 것을 모르고 등을 돌린 채 방향을 바꾸다가 두두에게 공을 뺏겼다. 결국 조동건의 패스를 받은 최성국이 그것을 득점으로 연결하자 부산 측에서 항의했고 결국 성남의 김학범 감독은 선수들에게 한 골을 주라고 지시, 부산의 안정환이 아무도 막지 않는 상태에서 공을 몰고 가 득점을 했다. 당시 대표 팀 승선을 앞두고 있던 안정환의 시즌 연속 2호골이었다(...). 경기는 원정 팀 성남이 3-1로 승리.

  • 과거에도 위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데 1997년 4월 26일 울산과 부천의 경기에서 부천의 윤정환이 하프 라인에서 울산의 김병지에게 공을 돌려주려고 찼다가 힘 조절에 실패, 김병지의 키를 넘겨 골을 넣었다. 당시 부천 감독인 니폼니시 감독은 2008년의 김학범 감독처럼 울산에게 한 골을 내주라고 지시했고, 부천의 골키퍼 샤샤는 이것을 미처 듣지 못하고 연달아 슈팅을 막다가 나중에서야 골을 내줬다.

  • 2008년 11월경 K리그 통산 10000번째 골이 가까워지자 K리그 측에서 이벤트를 준비했으나, 하필이면 부산의 김태영자책골(...)로 10000번째 골을 넣으면서 모든 게 흐지부지. 10000번째 골을 자책골로 넣으려고 일부러 작정하고 넣기도 힘들텐데...[41]

  • 2010 시즌 AFC 챔피언스 리그에선, K리그 4개 구단이 J리그, CSL, A리그 팀들을 전부 격파하고 동아시아에 배정된 8강 티켓 4장을 싹쓸이하는 기염을 토했다. 4팀 중 성남과 전북은 리그에서도 잘 했지만 포항(12위)과 수원(15위)이 리그에서 크게 부진했던 팀이라는 걸 고려하면 놀라운 성과.

  • 2012 시즌엔 울산 현대가 ACL 우승 컵을 들어올리고 2013년 FC 서울이 결승에 진출하면서, 2009 시즌부터 K리그 클럽이 5회 연속 결승에 진출해서 3회 우승, 2회 준우승의 성과를 거두는 초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 또한 같은 시즌 K리그에서는 2부 리그와 승강제 창설을 앞두고, 처음 실시한 강등 제도에서 라이센스 미비로 상주 상무를 대회 진행 도중에 강제로 강등시키며 프로축구 역사상 최초의 강등팀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승강제가 구축되고 K리그 클래식으로 개편된 2013 시즌엔 최초의 승강 플레이오프가 실시되었으며, 당시 K리그 챌린지 우승팀인 상주 상무가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1승 1패 다득점 우세로 승리하며 승격이 성공하였다. 이로서 최초의 프로축구 승격팀 또한 상주 상무가 되며 이색적인 기록을 달성했다.

  • 2013 시즌 강원 FC는 K리그 클래식 소속으로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리고 2016 시즌 K리그 챌린지 소속으로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최초로 양대 리그 소속으로 모두 승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기록을 세웠다. 전자는 강등, 후자는 승격에 성공했으며 4경기 1승 2무 1패를 기록했다.

  • 2016년 성남 FCK리그 챌린지로 강등당하면서 만약 K리그 챌린지에서 우승할 경우, 성남 팬들은 K리그 클럽 팬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경험해볼 수도 있게 되었다. K리그 클래식 우승,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FA컵 우승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리그컵 우승까지 모두 경험해보았기 때문. 본격 K리그판 도장깨기...K리그 챌린지 타이틀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 안하는게 현명하다

  • 일반적인 홍보대사와는 다르게 뽑는 홍보대사들이 매우 열심히 활동하는 경향이 있다. 선수 은퇴 후 홍보대사가 된 안정환 [42]은 아예 직함을 '홍보팀장'이라고 하며 홍보활동을 했고, 중학교 시절 축구선수였던 비스트윤두준 역시 K리그를 알리는데 맹활약했다. 2016년 8월부터 홍보대사에 위촉된 박재정(가수)는 '성공한 축덕'이라는 이미지답게 전 경기장을 돌아다니면서 맹활약중.

  • 2017시즌부터는 걸그룹 러블리즈가 K리그의 홍보대사로서 박재정과 함께 활동한다. 2017년 2월 23일 있었던 K리그 클래식 미디어 데이에 참석해 홍보대사 위촉식을 가졌으며, 이날 위촉식에선 박재정이 러블리즈에게 위촉장과 함께 멤버의 이름이 새겨진 K리그 AD 카드를 수여했다. 이 카드를 통해 러블리즈는 전국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 22개 구단의 경기장에 출입할 수 있다. 2017년 5월 4일 러블리즈의 K리그 캠페인 티저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에는 멤버들이 K리그 구단들의 유니폼을 입고 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이 담겨져 있다.

  • 축구팀 중에서 상주 상무와 아산 무궁화가 서로 경기를 치르는 경우 군경더비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20. 관련 문서[편집]

20.1. 대회/규정[편집]

20.2. 역사[편집]

20.3. 관련 프로그램[편집]

21. 둘러 보기[편집]


[1] 당시 표기는 수퍼리그로, 현행 외래어표기법에는 부합하지 않는다.[2] 통산 11회 우승으로 1위. 참고로 2위는 일본 J리그의 6회. 2위와 거의 더블스코어 차이로 압도적인 걸 알 수 있다.[3] 풋볼 리그 챔피언십 - 풋볼 리그 1 - 풋볼 리그 2로 구성.[4] 터키 프로 축구 리그의 명칭은 2000-01 시즌까지는 'TFF 1. 리그'였다가 2001-02 시즌부터 리그 체계를 개편하면서 1부 리그를 '쉬페르리그'로 개칭하고 'TFF 1. 리그'라는 이름은 2부 리그로 넘겼다.[5] 돈 안들이는 방법은 당연히 구단들의 모기업이 돈을 내는 것. 이와 관렪련된 융자혜택을 주고, 야구장 입장세도 수년간 면제해 주는 등의 방식을 제안했던 것[6] 원래 이번 시즌부터 홈 앤드 어웨이의 지역연고에 기반한 리그를 실행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체육부지역감정을 조장한다는 명목아래 반대의사를 표시했으며, 경품으로 관중을 유치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인터뷰까지 했다.[7] 1983년 세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눈부신 활약4강 신화을 펼친, 현재 경남 FC 감독 킹컹의 조련사[8] 대우는 이미 김종부의 작은 형을 구단 경리담당으로 임명하고, 과거 2년간 김종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가족까지 접촉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 상황이었다. 현대도 만만치 않아서, 김종부의 모교인 고려대에 3억원의 시설투자를 약속했고, 고려대 측에서는 김종부에게 현대로 갈 것을 권유하게 된다. 김종부는 대우로 가고 싶은 의사를 여러번 드러냈으나 학교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은 점점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현대는 김종부와의 가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하며 법정싸움으로 옮겨가겠다는 자세를 취했고 김종부가 대우와 현대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혼란을 빚자 여론 또한 악화해간다. 결국 체육부가 나서서 이 사건을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여기에 고려대가 김종부의 제명을 요구하면서 축구협회는 김종부를 월드컵 대표에서 제외하는 충격적인 일로 이어진다. 결국 축구계가 나서서 김종부 구명운동이 일어나고 김종부는 우여곡절 끝에 대표팀에 합류하여 득점도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대우와 현대는 한치도 물러섬이 없이 김종부를 두고 계속 대결을 벌였고, 이 와중에 상처를 받는 것은 선수 뿐이었다. 월드컵 이후로도 계속된 싸움은 현대의 팀 해체 위협과 축구계 내분으로 이어졌고 결국 대우도 현대도 아닌 포항으로 김종부는 리그 데뷔를 이루게 된다.[9] 흥행이 실패하자 각 구단들과 언론들은 여러가지 흥행 방안을 내놓았는데, 결론은 역시 연고정착이었다. 선수를 연고지별로 선발한다던가 연고지 내 학교를 프로구단이 순회하여 교육한다든가 하는 지금과 비슷한 결론이었다.문제는 작심삼일[10] 다음에서 제작하는 한준희 장지현의 원투펀치에서도 선정되어 “한국축구에서 골키퍼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건”으로 언급되었다. 사리체프를 시작으로 외국인 골리들이 대거 영입되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리그와 각 클럽에서 외국인골리 영입금지를 규정화 했기 때문. 그 때문인지 김병지 v. 이운재로 시작되는 라이벌 구도가 확립되고, 서동명, 김용대, 신화용이라는 수준급 골리들이 발굴 육성되고 월드컵에서는 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권순태, 김승규, 김진현 등 다수의 골리들이 J리그에 진출하게 된다. 외국인골리의 영입제한을 걸지 않은 일본에서 수준급 골리의 부재를 겪는 점을 볼 때 선견지명일 지도.[11] 일각에서는 종교적 색채가 강하기는 했지만,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이 만들고 지원했다고 하여 기업구단으로 분류하기도 한다.[12] 이후, 2000년에 재창단하였고 실업리그 전통의 강자로 군림하다가 2012년 해체 했다.2006년 내셔널리그 1위팀 이었던 국민은행을 K리그로 승격시키려 하자 승격을 거부해 파문이 일었다.[13] LG 그룹에서 GS 그룹이 분사 하면서 운영사가 바뀜.[14] 당시 부족한 슈퍼리그(현 K리그)의 팀수를 늘리기 위해 실업리그 우승팀을 참가시키는 바람에 실업리그는 유야무야 되버린다.[15] 통일교와 연관되어 다소의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공식적인 운영사는 일화그룹이며, 선수단 내에 종교에 대한 강요는 없었다.[16] 1993년 창단 하면서, 완산 푸마→완산 제우 엑스터→ 전북 엑스터 등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나, 1994시즌 정식으로 참가할때의 이름.[17] 프로리그 창설당시 국민은행이 호남을 연고로 했으나, 이는 명목상의 연고지일뿐 당시 리그가 전국 9개 도시를 순회하며 경기를 하던 상황이라 연고지 개념이 없었다.[18] 전북 버팔로와 사실상 같은 팀이나, 버팔로(현 전북현대)측이 역사를 승계하지 않았으므로 별개의 팀이다. 야구판의 현대 유니콘스넥센 히어로즈의 관계와 같다.[19] 군경팀이 이전할경우 다른팀으로 간주하므로 신생팀으로 분류.[20] 초기에 연고지가 없어서 전 경기를 원정으로 치뤘으나, 안산과 연고협얍을 맺었다.[21] 스포츠 용품 제작업체인 자이크로와 명명권 계약 하면서 바뀐 이름으로, 운영사등이 바뀐것은 아니다.[22] 원년 팀 중 원래 연고지와 모기업을 유지중인 팀은 포항밖에 없다. 포항도 정확하게는 원년에는 대구/경북 연고지로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처럼 대구를 주연고지로 출범하고 1987년도 대부분 홈경기를 대구에서 개최하기는 했지만 당시의 연고 개념이 광역연고제였기 때문에 불가피한 일이었고, 결론적으로 광역연고제때나 도시연고제때나 같은 지역인건 포항밖에 없다. 유공은 이리저리 떠돌다가 현재 제주도에 정착/대우는 연고는 그대로이나 모기업 도산크리/할렐루야는 해체(고양 Hi FC는 이 할렐루야와는 완전히 별개의 팀이다.)/국민은행은 실업으로 다시 돌아갔다가 해체.[23] 승강 PO의 성적은 제외한다.[24] 승강 PO의 성적은 제외한다.[25] 2016시즌 공인구 에레조타 캐치프레이즈는 공모를 통해 선정된 '너와 나, 우리의 K리그'[26] 다만 챔피언십부터 현대자동차 SONATA가 스폰서.[27] 스폰서가 없어진 이유로 2008년 국정감사에서 삼성이 너무 오래 스폰서를 한다는 이유로 태클이 들어와서(…) 삼성에서 스폰서 연장 계약을 안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2005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상관 없고 2008년 세계적인 경기불황으로 삼성전자가 스포츠 관련 스폰서를 대폭 철수하면서 생긴 일이다. 프로야구도 이때문에 마구마구에게 이전보다 적은 금액으로 스폰서를 받았다.[28] 축구 관련 항목이므로 다른 직업과 달리 현역과 은퇴 선수를 구별하기 위해 전 축구선수로 표기[29] 데닐손이 동료 골키퍼가 후반전 경기중에 부상당하자 임시로 골키퍼를 본 적이 있다.[30] 출범 전 아마 시절부터 따지면 1973년으로 2013년 창단 40주년을 맞이했다. K리그에서 가장 오래된 프로 축구 구단. 단, 내셔널과 아마까지 확장하면 대전 코레일이 더 오래되었다.(1943년 창단)[31] 초창기에는 대구, 경북 연고였으나 경기개최와 인기가 포항에 집중되다 보니 거의 1980년대 후반부터 도시 연고가 가장 먼저 정착되었다. 포항 팬들의 원조 축구 수도라는 자부심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32] 그러나 단점도 있는데 훗날 대도시에 창단된 시민구단들은 동일 연고지에 이미 뿌리내려 있던 야구팀과의 경쟁에서 고전하고 있다. 그나마 광역시급 도시라서 시민구단 창단이 가능했던 거라고 어쩔 수 없었다고 자기위안을 했지만 그 덕분에 K리그의 재정건전성과 상업성은 바닥을 기고 있다. 애초에 대도시를 시민구단으로 채워서 다행이라는 논리는 오로지 프로축구는 구단이 많아야만 한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아무런 이론적 근거가 없다.[33] 사실 KBO리그보다 먼저 만들어질수도 있었다. 1981년 5월에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국민정서와 여가선용을 위한 3S정책의 일환으로 프로 스포츠 창설지시가 떨어졌고, 비서관은 야구협회와 축구협회에 프로화 검토를 의뢰하게 되었는데, 대한축구협회에서는 운동장 야간조명 설치 등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고 한 반면, 대한야구협회 전무를 지낸 이용일과 운영부장 출신 이호헌이 가세하여 수립한 야구 프로화 계획서는 정부의 지원금 한푼 없이도(=대기업을 등쳐먹으면 된다) 프로화가 가능하다는 골자의 내용이 주목받으며 우선 프로야구 부터 출범시키기로 낙착을 지었기 때문이다.[34] 여담으로 이후 이용일과 함께 프로야구리그를 준비했던 이진희 MBC 사장이 한국프로야구 준비 보고서를 전두환에게 제출했는데 전두환이 깜짝 놀랬다고. 이진희 사장이 "각하 뭐가 잘못됐습니까?"라고 물어보자 전두환 曰 "뭐야, 야구야? 난 축구인줄 알았지." 진성 축빠 전두환[35] 바이엘 레버쿠젠, PSV 아인트호벤, 뉴욕 레드불스 등.[36] 예를들면 스코틀랜드의 명문 셀틱 FC 같은 경우엔 아일랜드 이민자들을 종교적으로 위로하자는 의미에서 '수사(修士)'가 창설했다.[37] K리그에 만들겠다는 기업이 없으니 지자체로 타겟을 바꾼것이다.[38] 당시엔 울산 연고가 아니었다. 1990년이 돼야 울산광역시연고이전해 지금에 이르렀다.[39] 단, 여기에는 상기했다시피 특징 선수나 클럽에 대한 애정 혹은 관심을 가질 것과, 그렇지 않을 경우 최소 인터넷으로 봐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문제는 대부분의 프로 축구 팀은 지역 연고가 약하며, 텔레비전 중계의 수준이 해외 축구에 비해 떨어지고, K리그/문제점 해주는 중계조차 안해준다며 난리를 친다는 것. 2부리그 경기까지도 공짜로 전경기 생중계를 즐길 수 있는 나라는 흔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K리그 팬덤은 아무런 아웃풋이 나오지 않는 리그에 억지로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40] 가는 선수들도 K리그에서 가기보다는 현지에서 기회 찾아서 돌아다니는 것.[41] 그리고 이 장면은 2013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UCL 통산 6천호 골이 터졌는데 그 골이 바로 세르히오 라모스의 자책골이었던 것.(...)[42] 지금처럼 예능에서 맹활약하기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