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1-72 유러피언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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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72 유러피언컵 1971–72 European Cup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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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료 | ||
결승전 개최지 | ||
득점왕 | ||
우승 구단 | ||
열일곱 번째 유러피언컵이다.[1] 전 대회 우승팀 아약스가 2연속 우승에 성공했다.
홈 앤드 어웨이 2차전 후 재경기없이 바로 연장전 도입이 공식화 되었고, 셀틱과 인터 밀란과의 준결승전이 그 첫 사례가 되었다. 양 팀은 1, 2차전 모두 0-0으로 비겼고, 연장 후에도 득점이 없어서 승부차기를 통해 인테르가 5-4로 승리했다.[2]
1972년 5월 31일 로테르담의 스타디온 페예노르트 '더 카위프'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아약스가 인터 밀란을 2-0으로 누르고 대회 2연패를 달성하였다. 요한 크루이프가 두 골을 모두 넣었고, 이는 네덜란드 클럽에게는 두 번째 우승이었다. 결승전은 두 팀 모두 이전에 우승과 준우승 경험이 있는 클럽들 간의 대결로, 유러피언컵 역사상 처음으로 그런 경우였다.[3]
여담으로 다음 시즌인 1972-73 시즌에서도 아약스가 우승하면서 3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홈 앤드 어웨이 2차전 후 재경기없이 바로 연장전 도입이 공식화 되었고, 셀틱과 인터 밀란과의 준결승전이 그 첫 사례가 되었다. 양 팀은 1, 2차전 모두 0-0으로 비겼고, 연장 후에도 득점이 없어서 승부차기를 통해 인테르가 5-4로 승리했다.[2]
1972년 5월 31일 로테르담의 스타디온 페예노르트 '더 카위프'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아약스가 인터 밀란을 2-0으로 누르고 대회 2연패를 달성하였다. 요한 크루이프가 두 골을 모두 넣었고, 이는 네덜란드 클럽에게는 두 번째 우승이었다. 결승전은 두 팀 모두 이전에 우승과 준우승 경험이 있는 클럽들 간의 대결로, 유러피언컵 역사상 처음으로 그런 경우였다.[3]
여담으로 다음 시즌인 1972-73 시즌에서도 아약스가 우승하면서 3연패를 달성하게 된다.
[1] 출처[2] 이 승부차기에서는 현대의 규칙과 달리, 한 팀이 이미 수학적으로 이길 수 없는 상황이 되더라도 모든 키커가 5개의 페널티킥을 모두 차야 했다. 인테르가 먼저 시작했고 5명 모두 성공했는데, 셀틱의 첫 키커가 실패했기 때문에 현대 룰이었다면 4-3에서 종료됐을 것이다.[3] 아약스는 직전 대회(1970-71) 우승, 인테르는 1964, 1965년 우승과 1967년 준우승 경험이 있었다.[A] 4.1 4.2 4.3 원정 다득점[6] 본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가 1차전을 홈에서 치러 7-1로 대승을 거두었으나, 해당 경기 29분경 로베르토 보닌세냐 선수가 관중이 던진 코카콜라 캔에 맞아 실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UEFA는 경기를 무효화하고 재경기를 결정했다. 일정 조정으로 원래 2차전으로 예정되었던 인테르 홈 경기가 먼저 열렸고(4-2 인테르 승), 이 경기가 사실상 1차전이 되었다. 무효화된 원래 1차전의 재경기는 중립 지역인 베를린에서 열렸으며(0-0), 이 경기가 2차전이 되었다.[8] 승부차기 5-4[9] 인테르의 선공이었는데, 특이하게도 최종 결과와는 상관없이 양팀에서 5명의 선수가 모두 차야 했다. 만약 지금 규정대로 했다면 5-3으로 끝났을 것이다. 이게 더 잔인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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