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1-62 유러피언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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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62 유러피언컵 1961–62 European Cup | ||
개막 | ||
종료 | ||
결승전 개최지 | ||
득점왕 | ||
우승 구단 | ||
일곱 번째 유러피언컵.[1] 전 대회 우승팀 벤피카는 레알 마드리드를 누르고 2년 연속 우승을 기록했다. 에우제비우가 3-3 상황에서 2골을 넣어 팀의 2연패 달성을 이끌었다.
이 시즌에 몰타가 처음으로 출전했다.
여담으로 이번 대회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페렌츠 푸스카스 선수가 59-60 시즌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의 결승전 이후로 또다시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는데, 이번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이 나온 것은 세번째 기록이며, 푸스카스는 유일하게 결승전에서만 두 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우승한 59-60 시즌과는 다르게 이번 결승전에서는 패배했다.
또한 해당 시즌 우승팀 벤피카의 마지막 유럽대항전 우승이기도 하다. 이는 당시 벤피카 감독인 벨라 구트만에 대한 일화와 관련이 있는데, 상세한 내용은 구트만의 저주 문단 참고.
대회는 전통적인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합산 점수가 동점일 경우 중립 경기장에서 재경기를 치렀다. 이 시즌에도 몇몇 흥미로운 재경기 사례가 있었는데, 특히 8강에서 유벤투스와 레알 마드리드가 1, 2차전 합계 1-1로 동점을 이룬 후 재경기를 치렀고, 레알 마드리드가 3-1로 승리했다.
이번 시즌에는 여러 전통 강호들 간의 치열한 경기가 펼쳐졌다. 특히 준결승에서 벤피카는 토트넘 홋스퍼 를 상대로 1차전에서 3-1로 승리했지만, 2차전에서 1-2로 패해 합계 4-3으로 간신히 결승에 진출했다. 다른 준결승에서는 레알 마드리드가 스탕다르 리에주를 양 경기 합계 6-0으로 대파하며 결승에 올랐다.
1962년 5월 2일 암스테르담의 암스테르담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결승전이 열렸으며, 벤피카가 레알 마드리드를 5-3으로 꺾고 우승했다. 이 경기는 공격적인 플레이가 돋보인 명승부였다. 벤피카의 조제 아구아스(1골), 도미시아누 카벵(1골), 마리우 콜루나(1골)와 특히 에우제비우가 후반에 연속 2골을 터뜨려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면 레알 마드리드의 푸스카스는 해트트릭을 기록했지만, 팀의 패배로 빛이 바랬다. 이 결승전은 61,257명의 관중이 지켜보았다.
벤피카의 2연패 달성 이후, 벨라 구트만 감독은 구단에 연봉 인상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하자 "벤피카는 앞으로 100년 동안 유럽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할 것"이라는 저주를 남기고 떠났다. 실제로 벤피카는 이후 여러 차례 결승에 진출했지만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이 일화는 축구계에서 유명한 '구트만의 저주'로 알려져 있다.
이 시즌에 몰타가 처음으로 출전했다.
여담으로 이번 대회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페렌츠 푸스카스 선수가 59-60 시즌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와의 결승전 이후로 또다시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는데, 이번 결승전에서 해트트릭이 나온 것은 세번째 기록이며, 푸스카스는 유일하게 결승전에서만 두 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우승한 59-60 시즌과는 다르게 이번 결승전에서는 패배했다.
또한 해당 시즌 우승팀 벤피카의 마지막 유럽대항전 우승이기도 하다. 이는 당시 벤피카 감독인 벨라 구트만에 대한 일화와 관련이 있는데, 상세한 내용은 구트만의 저주 문단 참고.
대회는 전통적인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합산 점수가 동점일 경우 중립 경기장에서 재경기를 치렀다. 이 시즌에도 몇몇 흥미로운 재경기 사례가 있었는데, 특히 8강에서 유벤투스와 레알 마드리드가 1, 2차전 합계 1-1로 동점을 이룬 후 재경기를 치렀고, 레알 마드리드가 3-1로 승리했다.
이번 시즌에는 여러 전통 강호들 간의 치열한 경기가 펼쳐졌다. 특히 준결승에서 벤피카는 토트넘 홋스퍼 를 상대로 1차전에서 3-1로 승리했지만, 2차전에서 1-2로 패해 합계 4-3으로 간신히 결승에 진출했다. 다른 준결승에서는 레알 마드리드가 스탕다르 리에주를 양 경기 합계 6-0으로 대파하며 결승에 올랐다.
1962년 5월 2일 암스테르담의 암스테르담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결승전이 열렸으며, 벤피카가 레알 마드리드를 5-3으로 꺾고 우승했다. 이 경기는 공격적인 플레이가 돋보인 명승부였다. 벤피카의 조제 아구아스(1골), 도미시아누 카벵(1골), 마리우 콜루나(1골)와 특히 에우제비우가 후반에 연속 2골을 터뜨려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면 레알 마드리드의 푸스카스는 해트트릭을 기록했지만, 팀의 패배로 빛이 바랬다. 이 결승전은 61,257명의 관중이 지켜보았다.
벤피카의 2연패 달성 이후, 벨라 구트만 감독은 구단에 연봉 인상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하자 "벤피카는 앞으로 100년 동안 유럽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할 것"이라는 저주를 남기고 떠났다. 실제로 벤피카는 이후 여러 차례 결승에 진출했지만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이 일화는 축구계에서 유명한 '구트만의 저주'로 알려져 있다.
팀명 | 결과 | 팀명 | 1차전 | 2차전 | 플레이오프 | ||
0-2 | 0-0 | 0-2 | - | ||||
9-1 | 5-0 | 4-1 | - | ||||
7-1 | 5-0 | 2-1 | - | ||||
5-6 | 4-4 | 1-2 | - | ||||
2-11 | 0-3 | 2-8 | - | ||||
5-10 | 4-2 | 1-8 | - | ||||
4-1 | 2-1 | 2-0 | - | ||||
3-0 | 3-0 | ||||||
4-6 | 2-3 | 2-3 | - | ||||
1-3 | 1-1 | 0-2 | - | ||||
2-3 | 1-1 | 1-2 | - | ||||
2-15 | 0-6 | 2-9 | - | ||||
1-5 | 0-2 | 1-3 | - | ||||
팀명 | 결과 | 팀명 | 1차전 | 2차전 | 플레이오프 | ||
1-3 | 1-2 | 0-1 | - | ||||
2-6 | 1-1 | 1-5 | - | ||||
4-5 | 4-3 | 0-2 | - | ||||
2-4 | 1-3 | 1-1 | - | ||||
0-12 | 0-3 | 0-9 | - | ||||
1-7 | 1-2 | 0-5 | - | ||||
7-1 | 5-1 | 2-0 | - | ||||
2-6 | 1-2 | - | |||||
팀명 | 결과 | 팀명 | 1차전 | 2차전 | 플레이오프 | ||
3-7 | 3-1 | 0-6 | - | ||||
2-4 | 1-0 | 1-4 | - | ||||
1-1 | 0-1 | 1-0 | 1-3 | ||||
4-3 | 4-1 | 0-2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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