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니 바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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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바튼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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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前 축구 감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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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토니 바튼 Tony Barton | |
본명 | 앤서니 에드워드 바튼 Anthony Edward Barton | |
출생 | ||
사망 | ||
국적 | ||
신체 | ||
직업 | ||
소속 | 선수 | |
감독 | ||
국가대표 | 없음 | |
1954년 풀럼 FC에서 프로 데뷔했다. 49경기에서 8골이라는 시원찮은 성적으로 1959년 노팅엄 포레스트 FC로 이적한다.
노팅엄 포레스트에서는 22경기에 출장해서 1골밖에 넣지 못하면서 두 시즌 만에 포츠머스 FC로 이적한다.
포츠머스에서 130경기 34골이라는 준수한 활약을 했고 포츠머스에서 은퇴 후 팀의 코칭스태프가 되었다.
노팅엄 포레스트에서는 22경기에 출장해서 1골밖에 넣지 못하면서 두 시즌 만에 포츠머스 FC로 이적한다.
포츠머스에서 130경기 34골이라는 준수한 활약을 했고 포츠머스에서 은퇴 후 팀의 코칭스태프가 되었다.
1980년 아스톤 빌라 FC의 코치진에 합류하면서 당시 빌라의 감독이었던 론 손더스의 수석 코치가 되었다. 빌라가 1981년에 리그를 우승하면서 1981-82 시즌 유러피언컵에 진출하였다. 8년간 팀을 이끌었던 론 손더스가 계약 문제로 1982년 2월 팀을 떠나면서, 수석 코치였던 그가 감독이 되었다. 1981-82 유러피언컵을 우승하고 1982년 슈퍼컵도 우승하면서 아스톤 빌라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 되는 줄 알았으나, 리그에서의 부진으로 1984년 경질되었다.
이후 노샘프턴 타운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1985년 심장마비로 쓰러지면서 1985년 사임했다. 이후 선수시절 친정팀인 포츠머스의 임시감독을 하다가 또다시 심장에 문제가 생겨 감독직을 그만두었다.
이후 노샘프턴 타운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1985년 심장마비로 쓰러지면서 1985년 사임했다. 이후 선수시절 친정팀인 포츠머스의 임시감독을 하다가 또다시 심장에 문제가 생겨 감독직을 그만두었다.
- 리그에서의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었는데, 경질 5일 후 그의 아들의 결혼식이 빌라 파크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주변에서는 장소를 변경하는 것을 제안했지만 바튼은 자신이 빌라에서 이룬 업적에 자부심을 느꼈기 때문에 변경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고, 예정대로 빌라 파크에서 진행했다.
- 선수단의 단합과 팀 분위기 회복에 탁월했다고 한다. 선수들을 존중하면 그들도 자신을 존중할 것이라는 신념으로 선수단을 이끌었고, 실제로도 선수단의 신뢰를 한몸에 받았다.
- 유럽 정상에 오른 몇 안 되는 잉글랜드인 감독이지만, 언론 노출에서는 늘 조용하고 겸손한 인물로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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