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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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 朱哲煥 | Joo Chul-Hwa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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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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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 |
마산에서 태어나 서울돈암초등학교와 동북중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74년 고려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여 1978년에 졸업했다.
모교인 동북중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를 하다가, 1983년 MBC TV 프로듀서로 입사했다. MBC에서 PD 생활을 하는 틈틈이 고려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교양 국어 강사로도 일했다.
1987년 '퀴즈 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을 빅히트시켰다. 문제의 수준이 아주 높았고, 포맷도 짜임새가 있었으며, 전체 분위기에서 지성이 느껴지도록 프로그램을 잘 만들었기 때문. 더구나 프로그램의 엔딩 배경음악이 노찾사의 '사계'라는 점도 화제가 되었다.[4]
그 후 1989년에는 '우정의 무대'라는 프로그램을 맡아 역시 대박을 터뜨렸다. 특히 병사의 어머니가 부대를 방문하여, 비밀의 장막 뒤에서 아들에 대해 얘기하다가, 아들과 만나 포옹하고 '그리운 어머니'라는 노래와 함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당시 전국민의 심금을 울렸을 정도.
1991년에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MBC 간판 프로그램을 맡아 역시 초대박을 터뜨렸다. 특히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코너는 너무나 재미 있어 장안 전체를 들썩거리게 만들 정도였으며, 그 당시 전국민이 지켜보던 프로그램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어마어마한 시청률을 올렸다. 이 외에 '모여라 꿈동산', 'TV 청년내각', '테마게임' 등을 연출했다.
그 후 1995년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에 연수를 갔다가, 1997년 MBC TV 제작국 예능 1팀장이 되었다. 1999년에는 MBC 편성실 편성기획부 부장 직무 대리가 되었다. 2000년에는 MBC 예능국 차장까지 올랐다.
2000년 MBC를 퇴사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부교수로 부임했으며 김대중 정부 하에서 문화관광부 21세기문화정책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2007년 말 OBS경인TV 사장으로 방송계에 복귀하였으나 프로그램 흥행참패와 정권교체등 여러 이유가 겹치면서 2009년 초반에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이때를 기점으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이후 2010년에는 JTBC PD로 복귀하면서 방송계 활동을 이어갔으나 별 존재감 없이 마무리 되었다[5].이것이 사실상 마지막 방송활동이었다.
JTBC에서 나온 이후 2010년대 후반 까지는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했었으며 C&H 연구소 대표, 희망제작소 이사를 겸하기도 했다.
현재는 강연과 집필 위주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재미있게 살다가 의미있게 죽자', '살아보니 행복은 이렇습니다', 그리고 '가는 길이 내 길이다' 등 정말 많은 양의 책을 써내려가고 있다. OBS사장 이후 방송경력은 내리막을 걸었으나 그 외적으로는 괜찮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교육활동에 많은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현재는 문화일보에서 '주철환의 음악동네'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1주마다 제작하고 있다. 주로 음악에 대한 깊은 고찰과 가사의 미학을 담고 있다. '음악은 우리를 오늘도 만나게 한다' 라는 표어가 매우 인상적이다. #
모교인 동북중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를 하다가, 1983년 MBC TV 프로듀서로 입사했다. MBC에서 PD 생활을 하는 틈틈이 고려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교양 국어 강사로도 일했다.
1987년 '퀴즈 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을 빅히트시켰다. 문제의 수준이 아주 높았고, 포맷도 짜임새가 있었으며, 전체 분위기에서 지성이 느껴지도록 프로그램을 잘 만들었기 때문. 더구나 프로그램의 엔딩 배경음악이 노찾사의 '사계'라는 점도 화제가 되었다.[4]
그 후 1989년에는 '우정의 무대'라는 프로그램을 맡아 역시 대박을 터뜨렸다. 특히 병사의 어머니가 부대를 방문하여, 비밀의 장막 뒤에서 아들에 대해 얘기하다가, 아들과 만나 포옹하고 '그리운 어머니'라는 노래와 함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당시 전국민의 심금을 울렸을 정도.
1991년에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MBC 간판 프로그램을 맡아 역시 초대박을 터뜨렸다. 특히 이경규의 '몰래카메라' 코너는 너무나 재미 있어 장안 전체를 들썩거리게 만들 정도였으며, 그 당시 전국민이 지켜보던 프로그램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어마어마한 시청률을 올렸다. 이 외에 '모여라 꿈동산', 'TV 청년내각', '테마게임' 등을 연출했다.
그 후 1995년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에 연수를 갔다가, 1997년 MBC TV 제작국 예능 1팀장이 되었다. 1999년에는 MBC 편성실 편성기획부 부장 직무 대리가 되었다. 2000년에는 MBC 예능국 차장까지 올랐다.
2000년 MBC를 퇴사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부교수로 부임했으며 김대중 정부 하에서 문화관광부 21세기문화정책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2007년 말 OBS경인TV 사장으로 방송계에 복귀하였으나 프로그램 흥행참패와 정권교체등 여러 이유가 겹치면서 2009년 초반에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이때를 기점으로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이후 2010년에는 JTBC PD로 복귀하면서 방송계 활동을 이어갔으나 별 존재감 없이 마무리 되었다[5].이것이 사실상 마지막 방송활동이었다.
JTBC에서 나온 이후 2010년대 후반 까지는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재직했었으며 C&H 연구소 대표, 희망제작소 이사를 겸하기도 했다.
현재는 강연과 집필 위주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재미있게 살다가 의미있게 죽자', '살아보니 행복은 이렇습니다', 그리고 '가는 길이 내 길이다' 등 정말 많은 양의 책을 써내려가고 있다. OBS사장 이후 방송경력은 내리막을 걸었으나 그 외적으로는 괜찮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교육활동에 많은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현재는 문화일보에서 '주철환의 음악동네'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1주마다 제작하고 있다. 주로 음악에 대한 깊은 고찰과 가사의 미학을 담고 있다. '음악은 우리를 오늘도 만나게 한다' 라는 표어가 매우 인상적이다. #
[1] 강릉대학교 교직과 교수로 재직했다.[2] 석사 학위 논문 : 性의 文學社會的 意味 : 李箱과 孝石의 境遇[3] 박사 학위 논문 : 『모래시계』의 영상미학 연구[4] 노찾사의 '사계'는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로 시작되는 민중가요로서, 1년 365일 내내 밤낮없이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 미싱을 돌려야만 했던 여공들의 삶을 그리는 노래였다. 얼핏 들으면 발랄한 멜로디지만, 실제로는 강렬한 현실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던 노래였는데, 주철환은 이 노래를 지상파 인기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소개하여, 노찾사의 저항가요를 전국민에게 알리는 데 기여했다.[5] 그나마 손석희를 JTBC 보도부분 사장으로 추천한 것이 큰 성과라면 성과라 볼 수 있을 정도였다.[6] 손석희의 누나인 손영민이 주철환의 부인.[7] 임원인 동시에 현장에서 연출로도 동시에 근무하는 형태(대기자와 동일)[8] 군대도 안다녀왔었다. 참고로 이 당시에는 교사수요가 넘치던 시기라 대학에서 본인만 원하면 교직이수를 할 수 있었으며 졸업 후 사립학교들은 서류접수만 하면 교사가 되는 게 가능했다. 심지어 교생실습을 나왔던 학생들에게 졸업 후 자기 학교로 오라는 얘기까지 했을 정도였다.[9] 그의 롤모델은 죽은 시인의 사회의 존 키팅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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