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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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손석희 (孫石熙, Sohn[1] Sukhee)

출생일

1956년 7월 27일[2](61세)[3]

출생지

서울특별시 중구

본관

밀양 손씨

신체

177cm[4]

원숭이띠

학력

서라벌중학교
휘문고등학교
국민대학교 국문학 학사
미네소타 대학교 대학원 저널리즘 석사

병역

육군 병장(육군군수사령부)

배우자

아내 신현숙

종교

천주교(세례명: 마르첼리노)

데뷔

1984년 MBC 아나운서

소속

JTBC 보도, 시사, 교양 총괄사장

링크

파일:다음카페2017_square.png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external/www.facebook.com/apple-touch-icon.png

1. 소개2. 생애
2.1. 어릴 때부터 학창시절까지2.2. MBC 입사
2.2.1. 기자 시절 주요 보도 뉴스
2.3. MBC 노동조합 활동2.4. 이후2.5. JTBC
2.5.1. 메인 뉴스 앵커로
3. 트리비아
3.1. 동안3.2. 정치적 성향3.3. 기타
4. 논란5. 이력
5.1. 방송 활동5.2. 약력5.3. 수상

1. 소개[편집]

한국언론인. 전 성신여자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현재는 JTBC 뉴스룸 진행자 겸 JTBC의 보도, 시사, 교양 총괄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1984년 MBC에 입사하면서 MC, 기자, 아나운서 등으로 활약했다. 시사저널에서 조사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부문에서 13년 연속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에 선정되었다.[5]

2. 생애[편집]

2.1. 어릴 때부터 학창시절까지[편집]

1956년, 서울토박이 집안의 2남 1녀 중 둘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위로는 누나가 하나 있으며, 밑으로는 남동생이 하나 있다.

그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으로, 6.25 전쟁 참전으로 인해 무공훈장을 2개나 받은 경력이 있다. 손석희가 6살이 되던 해 아버지는 직업을 그만두고 양수기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집안에 있던 돈을 다 털고 사들여 놓은 걸 경기도 연천군 전곡 어딘가에 풀어놓았다가 큰물이 져 몽땅 떠내려가 버렸다. 손석희는 "이후 우리 식구들의 사건은 그 사건처럼 극적인 데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중구 필동의 양철담장집에 세를 들고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상당히 고집이 세고 터프했다고 한다. 국민학교 2학년의 성적표에 '이 학생은 고집이 똥고집' 이라고 적혔다고 한다. 어릴 때는 근처 퇴계로 고아원 아이들과 자주 어울려 놀았는데 딱히 비슷하게 어려운 처지여서가 아닌 누구 하나 특별히 잘 살거나 못 사는 거 없는 처지였다고 한다. 그러다 3학년 때 부임한 담임교사가 도시락 반찬을 싸오지 않고 아이들의 반찬을 빼앗아 먹더니, 한술 더 떠서 아이들의 도시락을 둘러보고 "같이 먹자"며 아이들을 불러냈다. 곧 학급은 선생님 책상에 늘 불려가는 아이들, 가끔 불려 나가는 아이들, 전혀 불려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로 나뉘었고, 당연히 손석희는 마지막이었다.[6] 본인은 그때 비로소 가난을 알았다고 한다. 반면교사의 적절하고도 훌륭한, 한편으로는 굉장히 씁쓸한 사례

이후 성북구로 이사를 갔고, 조용했던 아이들 분위기에 맞춰서 덩달아 조용한 성격이 되었다. 6학년 때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를 보다가 갑자기 천장에서 작은 흙덩이가 떨어졌다. 대충 지은 집에서 빗물 새는 건 흔한 일이어서 식구 모두 신경 쓰지 않다가, 떨어지는 흙이 점점 많아지자 살림을 마루로 옮기고 옷을 챙겨 급히 집을 나오니 곧 천장이 무너졌다고 한다.[7] 국민학교 졸업 후에 서라벌중학교에 입학했다. 6~7정거장 거리를 꼬박꼬박 걸어다니면서 차비를 모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전축과 레코드 2장을 샀고[8] 결혼하고 새 전축을 살 때까지 15년을 내리 그 전축과 보냈다고 한다.

한 명문 공립 고등학교[9] 입시에 낙방하고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 직후 선배들의 눈에 띄어서 방송반원이 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방송실에 들어갔는데, 방송실 뒤쪽에서 쭈그려 앉아 있던 학생이 송승환이었다고 한다.[10] 열악한 시설이었지만 이 때 경험은 아나운서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휘문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부도를 내 중학교 때 살짝 여유로워졌던 집은 다시 어려워졌고, 산비탈에 있는 방 2칸에 부엌 딸린 집에서 살게 된다.

4수 끝에 1976년 국민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다.[11] 1979년 군대에 입대하고 부산에 있던[12] 육군군수사령부 본부근무대 행정병으로 자대배치되었다. 이 군 시절 동안 10.26 사건, 12.12 군사반란, 5.18 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사건을 모두 겪는다.

이 군 시절, 여군 헬리콥터 조종사이자 국가보훈처장인 피우진과 약간의 인연이 있다. 손석희가 영문 타자 주특기 교육을 받던 훈련소는 여군 부사관후보생들을 훈련하는 곳이었는데, 이 훈련부대 중대장 중 한 명이 피우진이었다고 한다. 피우진 본인도 군 시절 이야기를 쓴 저서인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훈련병 시절의 손석희에 대해 짧게 회고하였다.

국민대학교 시절에는 디자이너 장광효[13]와 동문이었는데, 장광효의 말에 따르면 위 아래 항상 검은 옷을 입고 다녀서 별명이 교복이었다고 한다. 훗날 화제가 된 손석희의 값싼 시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예나 지금이나 외형에 그다지 신경쓰는 성격이 아니었던 듯 하다. 그때도 외모는 알아줬는지 교복처럼 입고 다녀도 인기는 많았다고 한다. 어쩌면 외모 때문에 겉차림을 신경쓰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2015년 3월 16일 뉴스룸 2부에서 수학 교육에 계산기 사용을 넣냐 마냐를 다룬 팩트 체크 시간에, 자신은 사실 수포자였다는 말을 꺼냈다. 근데 미국 생활 때 가게에서 뭘 사는데 계산기를 안 가져온 점원이 2자릿수 계산을 못해 버벅이는 것을 자신이 암산해서 답을 알려주자 점원이 존경하는 눈으로 봤다며, '근데 전 수포자였습니다.'라고 마무리. 그리고 이 수포자 언급은 비교적 덜 진지해지는 코너에서 수학 관련 꼭지를 다루면 가끔 나온다.

2.2. MBC 입사[편집]

1984년 MBC에 입사했다. MBC에 입사하기 전에는 조선일보 판매국에서 일한 적이 있었으나 금방 그만뒀다. 조선일보에서 일하면서 아나운서 시험 준비를 했던 듯하다. 친구들이 방송반 경력도 있고 어울리니 시험 보라고 권유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한다.

이후 MBC의 대표 아나운서로 입지를 다지다가 1986년 앵커 이미지가 강렬해지는 것을 우려한 MBC 사측에서 보도국으로 발령하여 기자가 되었다.[14] 하지만 본인은 자기 자리가 아닌 것 같아 불만이었다고.[15] 1987년 2월 15일,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직을 맡으며 아나운서국으로 돌아온다. [16] 당시 땡전뉴스 시절이었긴 했으나, 전두환 집권 말기이기도 했고 땡전뉴스가 잘 보도되지 않던 주말 뉴스를 맡아서 그런지 땡전뉴스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앵커였다. 실제로 20년 뉴스 보기에서 당시 방송 자료를 찾아보면 손석희가 땡전뉴스를 진행했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설령 전두환이 첫 소식이라도 "오늘 전두환 대통령은~"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17]

이후 손석희는 1989년 10월까지 토요일 뉴스데스크와 일요일 뉴스데스크→뉴스센터[18] 앵커직을 맡는다. 이때가 1988 서울올림픽과도 겹쳤던 시기이기 때문에 20년 뉴스 보기를 통해 당시 올림픽이 진행되었을 때 날짜를 잘 검색해보면 1988년 서울올림픽때 손석희 앵커가 올림픽 특집 뉴스데스크를 진행한 모습을 볼수있다. 여하간 1989년까지 뉴스데스크 앵커직을 맡았다가 1990년에는 저녁뉴스 앵커를 맡게 되었고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까지는 아침뉴스쪽 진행을 맡게 된다.(MBC 뉴스와이드, MBC 뉴스투데이, MBC 아침뉴스 2000)

아나운서 생활 때 만난 6살 연하의 아나운서 신현숙[19]과 1년 7개월 열애 끝에 1987년에 결혼했다. 참고로 손석희-신현숙 이후 MBC 아나운서국에서는 문지애-전종환 전까지 25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내 커플이 나오지 않았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사회 분위기가 급변하던 1988년 8월, MBC 노조가 정부의 방송 관련 법에 맞서 쟁위 발생 신고를 하고 조합원 모두가 가슴에 공정 방송 리본을 달기로 하지만, 패용자가 모두 빼앗긴다. 주말 뉴스데스크 진행자였던 그는 갈등하다가 리본을 재킷 겉옷이 아닌 안쪽 와이셔츠 주머니에 달았다. 손석희는 이것을 '기억하는 한, 가장 수치스럽고 기회주의적인 행동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자괴심에 시달리다가 다음날인 8월 21일엔 제대로 달고 나갔다. 해당 날짜의 뉴스데스크. 그의 양복에 '공정방송'이라고 쓰인 리본이 달린 걸 볼 수 있다.

2.2.1. 기자 시절 주요 보도 뉴스[편집]


이 외에도 앵커 시절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공판을 모두 중계한 기록을 갖고 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 방송 때 브리지트 바르도와 인터뷰한 전력이 있으나, 시선집중 7주년 기념행사에서 자신이 유일하게 인터뷰 대상을 다그친 사례로 들었다. 말이 안 통하는 대상이라고.

2.3. MBC 노동조합 활동[편집]

이후, 1992년 가을에는 MBC 노동조합 활동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게 된다.

파업 당시 일화가 있다.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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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겼다
MBC 노동조합 파업 당시의 사진이다. 사실, 손석희의 사진을 찾아보면 웃는 사진이 별로 없긴 하다. 위 사진도 네이버에서 '해맑은 손석희' 로 검색하면 나오는 유일한 사진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당시 실제 나이가 만 36세였다.

당시 손석희 아나운서는 체포된 이후 "상식적 판단에서 옳은 일이라면 바꾸지 말자. 내가 죽을 때까지 그 원칙에서 흔들리지 말고 나가자."라는 말을 남겨서 눈길을 끌었다.#

당시 12월 대선을 앞두고 봄부터 여당에게 비판적인 PD수첩과 뉴스보도를 금지하고 노조간부들을 지방 한직으로 발령내는 등의 조치가 잇따르자, 즉시 노조가 반발을 하면서 파업이 일어났다. 결국 9월부터 52일 간 진행된 파업은 전투경찰의 투입으로 끝났다. 그는 이 때 주동자로 몰려 구속, 동료 몇 명과 함께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됐는데, 정확히 말하면 당시 손석희는 노조 간부도 아니었기 때문에 주동자라고 보기는 힘들다. 파업 참가자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본보기로 찍힌 사례다.

여담으로 이 때 이미 미남으로 유명해서 관련 보도 중에는 "누가 이처럼 선하게 생긴 미청년을 파업 현장으로 내몰았냐?"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당시 여성 앵커의 상징이었던 백지연도 다른 노조 간부들과 비슷한 수준의 중징계를 받았다.

훗날, 김주하 앵커는 2011년 출간한 <안녕하세요 김주하입니다>에서 손석희 앵커와 일화를 공개했는데 "존경해 마지않던 손석희 앵커와 파트너가 된다니… 공정방송을 위해 저항하다 수갑을 찬 채 차에 오르고, 그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던 흑백사진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분과 뉴스를 한다니!"라고 서술하기도 했다. 여기서 수갑을 찼던 것은 역시 노동조합 파업 사건 때문이었다.

2.4. 이후[편집]

그러다가 1997년, 불혹을 넘긴 나이에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국제 민간단체에서 장학금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사측에서 1년 갔다 오라는 것을 "쉴 바에야 확실히 쉬자"고 2년을 고집했는데, 공부만 하다 왔다고 한다. 유학을 위해 쳐야 하는 토플 공부부터 시작해, 미네소타 대학교 대학원에서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취득한다. 당시 미국 유학 때 찍은 프로그램 중 하나가 '손석희의 미국탐험' 으로, 그는 이 프로그램을 언급하며 '방송 역사에 길이 남을' 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그만큼 고생하기도 했고, 애착이 간다고 한다.

2년의 미국 유학 생활을 마친 후 귀국한 그는 2000년 MBC 라디오의 아침 시사 프로그램인 <시선집중>의 진행자가 된다. 이 시선집중은 지상파와 인터넷에 밀리던 라디오의 시사보도와 의제설정 역할을 되살린 프로그램으로 평가받는다. 아침 6시 15분부터 시작하는 프로그램이라서 초창기에는 섭외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언젠가부터는 정치인이나 유력인사들이 먼저 연락해 온다고 한다. 참고로 동명이인 프로게이머도 준프로 시절에 여기에 출연했던 적이 있다.

2002년 유시민의 뒤를 이어서 100분 토론의 3대 진행자[21]가 되었고 2009년 10주년 방송 때까지 진행한 역대 최장수 진행자다. 2009년 11월 19일 10주년 특집을 마지막으로 하차. 하차와 관련해서 높으신 분들의 사정이 개입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이에 따른 해명으로 제작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라고 하였다.[22] 하지만 아무리 제작비를 줄이고 싶다고 해도 100분 토론의 터줏대감이자 프로그램의 간판인 사람을 바꾼다는 것은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같은 MBC의 후배인 최승호 PD[23]는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에서 "방송문화진흥회가 극우인사들로 점령된 뒤 손석희 아나운서가 100분 토론에서 물러나게 되었다."라고 소회하였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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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아나운서 국장 시절, 목요일이면 밤에 100분 토론을 진행하고 숙직실에서 쪽잠을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시선집중 라디오 생방송을 하는 생활을 몇 년 동안 했다고 한다.

2011년 8월 24일에 치뤄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물러나고 보궐선거가 예정된 상황에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시장후보 출마를 묻는 질문에 '다 나가면 소는 누가 키우겠나'라고 소드립을 날렸다.[25]

이 선거를 앞두고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나경원 의원과 토론을 하던 도중, 손석희가 나경원 의원을 둘러싼 의혹들에 대한 검증성 질문을 계속 하자, 나경원 의원이 "정책이나 공약이나 이런 건 안 물어보시나요? 저는 사실 손석희 선생님의 인터뷰를 거의 해 본 적이 없거든요. 야권 후보는 많이 하셨더라고요. 저희가 예전에 보니까 그래서…" 라고 불만을 토로해 설전을 벌인 일이 있다. 다만, 그 때 당시 손석희는 아직 박원순 후보와 토론을 하지 않았고 그 당시에 <시선집중> 인터뷰는 가능하면 정책 위주로 가려고 하는데 한쪽에서는 네거티브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후보 검증이라고 하는 상황이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문제에 조금 더 질문이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결국, 나경원 의원이 보통 언론에서 형평을 기한다는 이유로 좀 수준과 차원이 다른 이야기를 자꾸 꺼낸다고 말하자 손석희는 "일반적인 언론이 그렇게 쓰고 있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을 말씀하신 건가요?"라는 대답을 했고, 곧 주제가 바뀌면서 토론은 다시 좋게 진행되었다.

2012년 2월, 진중권에게 시선집중 제작진이 출연을 요청하자 진중권 측이 거부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새누리당 영입설이 나왔던 적이 있었지만, 본인은 거절했다고 한다.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손석희가 가지고 있는 MBC라는 조직, 라디오 방송에서의 존재감은 당시에 엄청났다. 그렇기에 MBC 내부에서 김재철 MBC 사장이 부임한 이후 자르고 싶은 라디오 진행자 리스트에 배철수와 함께 높은 순위에 랭크되어 있었지만, 건드리기에는 너무 타격이 커서 인사 칼바람이 피해갔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2.5. JTBC[편집]

손석희 취임 이전의 JTBC.


손석희 취임 이후.

언론사 신뢰도 1위
미디어워드 10대 미디어
한국기자상 대상
채널평가 1위
방송채널 평가 1위

손 사장이 거기 처음 지휘봉을 잡았을 때 특히 MBC에 있던 고참 간부 기자들이 뒤에서 ‘아나운서만 해보고 토론 사회자와 라디오 진행자만 해 봐서 조직을 지휘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기자들처럼 보도국에서 상하 위계를 배운 것도 아닌데 저런 사람이 무슨 리더십이 있겠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봤고[26], ‘취재를 안 해봤는데[27] 뭘 알겠냐’라는 식의 퇴행적인 자존심을 내세우는 선배들 얘기도 꽤 접했는데. 얼마나 멍청한 생각이었는지 나타난 거죠.
-박성호 MBC 해직기자(현 MBC 뉴스데스크 앵커)

JTBC 보도국은 물론, 단순한 종편 채널이었던 JTBC의 위상을 지상파 이상으로 바꾸어 버린 JTBC의 신의 한 수

2013년 5월 9일, 종합편성채널 JTBC로 옮긴다는 보도가 나왔다. JTBC에서 보도 총괄사장직을 맡기로 했다고. 5월 10일 시선집중 마지막 방송을 끝으로 하차했다. 마지막 인사말을 전하면서 목소리가 좀 잠기고 억양도 살짝 떨리는 등, 심적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로 13년의 기나긴 여정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의 팬들은 손석희의 말처럼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도 지금처럼 정론의 길을 걷기를 바란다면서 성원을 보냈다. 하지만 언제나 중도, 중립적인 견지를 유지하던 그가 종편의 간부로 간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는 의견도 몇몇 있었다. 아무래도 주철환 JTBC 대PD가 손석희의 매형인데, 그게 영향이 있지 않은가 하는 기사도 나왔다.

손석희의 하차 이후 이재용 아나운서가 그 자리를 이어 시선집중을 진행했다. 당시 이재용 아나운서가 임시 진행인지 아예 전담하기로 한 건지는 아직 알 수 없었고, 단지 손석희가 쉬거나 할 땐 이재용 아나운서가 시선집중을 맡아서 진행했으니 앞으로도 계속 할 것처럼 보였다. 허나 이재용 아나운서는 결과적으로 임시 진행이었고 그 뒤를 이은 김창옥 아나운서도 임시로 진행했다. 손석희의 존재감이 워낙 커서 후임을 고르는 데 신중을 기하기는 했는데, 역시나 김창옥 아나운서도 대전MBC 사장으로 발령이 나서 가버린 관계로 다시 이재용 아나운서가 진행했다. 최종적으로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신동호 아나운서가 후임으로 진행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CBS 뉴스쇼김어준의 뉴스공장이 부친 없는 시선집중을 탈탈 털고 있다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중앙일보와는 논조가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본인에게 보도 부문 전권이 있는 만큼, 할 일은 하겠다는 의사 표시로 보인다.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도 있다. 인터뷰 보면 알겠지만 의욕은 정말 강하다. JTBC가 삼성을 비판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있다. 사실, 따져보면 JTBC는 삼성과 관련된 내용 빼고는 은근히 정치적으로 중립에 가까운 논조를 가지고 있는 편이었으니…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관련 기사.

출근 첫 날이라며 그의 출근 사진이 인터넷에 돌았는데, 사실 10시 출근이라 기자들이 10시에 맞춰서 사옥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는데 손 사장은 이미 9시에 출근한 상태라서 다시 내려와서 포토타임(?)을 가졌다고 한다. 일찍 출근하던 버릇이 아직…

2.5.1. 메인 뉴스 앵커로[편집]

대한민국 언론의 변화의 길을 제시하다

그리고 본인이 뉴스를 직접 진행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2013년 9월 16일부터 'JTBC 뉴스 9' 의 단독 진행을 맡게 됐다는 뉴스가 떴다. 2013년 9월 16일부터 JTBC 뉴스 9단독 앵커를 맡는다. 이 건들에 관련해서 오마이뉴스 인터뷰가 가장 정확하다.






JTBC 뉴스 9 티저 영상.


JTBC 뉴스 9에서의 첫 오프닝.

2014년 1월 1일, JTBC 뉴스 9의 신년 특집에서는 100분 토론을 그만둔 지 4년만에 토론 진행을 했다. 관련 기사.

JTBC 뉴스 9 진행 1,000일을 맞아 여성중앙과 인터뷰를 했다. 관련 기사.

2013년, 당시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 대한 보도평가와 관련하여 지상파 3사보다 JTBC 뉴스가 압도적인 보도 횟수를 자랑했다. 2013년 12월 19일, 결국 이와 관련하여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 9' 가 편파보도로 중징계를 받았다. 관련 기사. 반면에 방송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을 종북이라고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은 정미홍 전 아나운서가 출연한 TV조선 뉴스쇼 '판'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징계로 넘어가서 다소 논란이 일기도 했다.기사

2014년 4월 16일 JTBC 뉴스 9에서 세월호 참사를 보도하면서 이야깃거리가 나왔다. 우선, JTBC 기자의 망언에 가까운 표현으로 분위기가 안 좋던 상황에서 가장 먼저 사과했다. 의례적인 사과와는 달리 댓글 등을 통해서도 진심을 담은 사과였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평소의 언행이 인정을 받았기 때문일 듯 하다. 또한, 내부 보도에서도 순간적으로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손석희는 안전설계 전문가와 전화 인터뷰를 하던 도중 구조대가 침몰한 배에 공기를 주입해 생존 확률을 높이는 작업에 관해 얘기했으나, 전문가는 "여객선 운행 특성상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답했다. 이어 전문가의 상세한 설명을 들은 손석희는, 혀를 차다가 몇 초간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 질문을 기다리던 상대방이 '전화가 끊겼나??' 하고 당황했을 정도. 손석희는 바로 질문을 이어갔지만 목이 멘 소리를 내는 등 냉정을 찾기 힘든 듯했다.7분 20초부터. 또한 4월 21일 방송에서는 실종자 가족이 전화 인터뷰 직전 딸의 시신 발견으로 급히 자리를 비웠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보였다. 관련 영상.

2014년 4월 24일부터 29일까지 세월호 참사 보도를 위해 전라남도 진도군 팽목항에서 JTBC 뉴스 9를 현지진행했다. 따로 마련한 세트나 특별한 의상, 메이크업도 없이 현장으로 나와서 직접 보도를 하며[28] 실종자 가족들과 아픔을 함께 하는 뉴스[29]로 호평을 받았다. 이를 통해 국민적인 관심과 신뢰를 이끌어내 어지간한 지상파 방송에 근접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30]

손석희가 입사하기 전 JTBC 뉴스의 수준을 보면 한 사람으로도 방송사와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2014년 9월 22일 JTBC 뉴스9이 JTBC 뉴스룸으로 개편되었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2016년 10월 24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손에 꼽는 역사적인 보도를 진행하였다.[31] 자세한 내용은 JTBC 뉴스룸/주요 보도 참조.

3. 트리비아[편집]

3.1. 동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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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파문술사
하이랜더 신드롬은 실존한다
아 씨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

"그러면 정말 이런 말씀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말 동안이시네요. 정말 동안이세요."
- 아이유, 손석희의 시선집중 출연 중에 한 말

"잘 생기셨네요."
- 정우성[32]


위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외견상 나이를 안 먹어서 동안의 대명사로 통하기도 한다. 현재 61살로 물론 방송인지라 메이크업은 하겠지만(사진을 비교해보면 알겠지만, 스튜디오 사진들은 얼굴에 점이 잘 안 보인다. 조명 + 기본 메이크업), 메이크업을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동안이다.

심지어 JTBC 뉴스룸에 출연, 인터뷰에 응했던 서태지가 인사를 나누면서 "동안의 비법을 묻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이에 대한 손 앵커의 답변은 그런 거 없다. 참고로 서태지도 40대 중반의 나이에 거의 미청년 수준의 얼굴을 유지하는 동안이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말미에 "서태지와 손석희의 뱀파이어"라는 콜라보를 예고하기도 했다. 문답무용. 직접 보면서 확인해보자. #


2009년 100분 토론 고별방송에서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現 서울특별시장)와 노회찬 의원이 1956년생으로 손석희와 동년배인 것이 밝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33] 박원순의 동안 유지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대해 손석희는 "내가 동안이 아니라 박 변호사님이 노안이시다."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박원순은 한 인터뷰에서 "나이 들어보이는 외모가 변호사 일에서 도움이 되는 편이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또한 JTBC의 '보스와의 동침'에 출연했을 때는 "손석희에게 문제가 있다. (동안이라서)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꽃미남의 그윽한 유혹'이라는 제목으로 'Careless Whisper'란 음악과 함께 안경을 벗는 모습이 힛갤에 등극했다(혹은 <손 교수의 은밀한 유혹>이라고 한다). 원본 수정본

2016년 4월 13일 20대 총선 방송에서는 전원책 변호사가 60대 초반의 전형적 유권자라며 "60대가 되어 보면 아실 겁니다."고 말했지만 손석희는 바로 (저도) "60대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순간 전원책 변호사는 데꿀멍을 시전했다(...). 심지어 둘의 나이는 겨우 1살 차이[34].

그렇지만 2016년 들어서 뉴스룸을 시청하다 보면, 이전보다 얼굴에 팔자주름이 깊게 패이고 흰 머리가 늘어난 모습이 역력하다. 사장이 쉬운 줄 알아?[35] 아무래도 3월에 있었던 검찰 소환 등 여러 스트레스로 인해 급노화가 진전된 것일 수도 있다. 나이는 속일 수 없는지, 2017년 5월 31일 앵커브리핑에서는 노안이 왔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안습.

어찌됐든 자타가 공인하는 미장년이다. 이런 외모 때문인지 남성 팬들뿐만 아니라 여성 팬들, 특히 젊은 여성 팬들도 꽤 많이 존재한다. 이들의 바람은 '손석희 교수 같은 시아버님이 있으면' 이다. 다만 이에 빗대 '손석희 교수가 시아버님이라면 잔소리는 100분'(...)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긴 하다.

여담이지만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이미 MBC 시절부터 굴욕을 당했다.[36]

3.2. 정치적 성향[편집]

본인은 일단 언론인으로서, 진영 논리를 배제하고 언제나 중립적인 입장에서 사람들에게 시대의 상황을 전할 뿐이라는 입장을 주장하고 있다. 고로 수많은 러브 콜에도 정계 진출은 없다는 점을 여러차례 강조해왔다. 그리고 본인도 언론인으로써 오랫동안 현장에 있는 미국 등 서구의 앵커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방송에서 밝힌 적이 있다.

다만 그의 대중적 인기와 인지도를 노리고 영입을 노리는 정치인들 덕분에 1990년대부터 매번 선거철만 되면 본인의 의중과 상관없이 출마설이 신문에 오르내리긴 했다. 특히 1990년대 후반 15대 총선을 시작으로 정동영, 박영선(MBC), 박성범, 이윤성(KBS) 맹형규, 전용학(SBS), 한선교(프리랜서)등 지상파 방송인들이 줄줄이 정계 진출하자[37] '손석희도 혹시?' 하는 시각도 있었다. 100분 토론의 전임 진행자들이었던 유시민도 이 인기를 바탕으로 국회의원이 된 바 있고.

그러나 한국에서 방송 진행자나 기자가 정계 진출하는 경우는 의외로 드물다. 물론 언론인 출신의 정치인이 종종 보이기는 하나, 이들은 원래 유명했던 인물이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다. 일반적인 기자나 앵커라면 정계 진출이 상당히 특이 사례이고, 인지도도 그리 높지 않아 정계 진출에 유리할 것도 별로 없다. TV 토론회에서 강하다는 장점은 있지만 한국은 TV 토론회의 비중이 낮은 편이다. 다만 낙선해서 정계를 떠난 전직들이 방송 진행자로 나오는 경우는 가끔 있다.[38] 하여튼 2010년대 썰전에서 강용석이 밝힌 바에 따르면, 홍준표도 손석희에게 정계 진출(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을 매우 적극적으로 권했다고 한다.

하지만 손석희는 정중히 거절했는데, 실제 2011년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당시 한나라당 대표 홍준표가 서울시장 출마를 은근히 권유하자, 손석희는 당시 유행하던 개그를 빗대 "다 나가면 소는 누가 키우겠습니까?"라는 재치 있는 답변으로 거절한 일화도 있다.소셜 라이브 그 후 6년이 지나고, 2017년 4월 25일에 열린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사회자를 맡았는데, 문재인이 "국민 추천제로 내각을 구성할 계획인데, 손석희 앵커가 국민들에게 내각 인사로 높게 추천을 받는다면 사양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하였다. 이에 손석희는 "추천 이전에 사양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잠자코 듣던 홍준표가 “소는 누가 키우나 그 말이지요?”라고 물었다. 손석희는 “그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십니까?”라고 언급하여 다시금 회자가 되었다. 네이버TV

실제로도 대놓고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표적으로 탄핵 정국 직후 한나라당의 장 모 의원이 "탄핵 사태는 노무현 대통령이 고의로 유도한 것"이라는 발언을 하자 즉각 "알면서 왜 (탄핵을) 하셨습니까?"고 받아쳤다.해당 기사 탄핵 발의(3월 12일) 이전인 3월 6일에는 새천년민주당의 유모 의원이 탄핵안 발의가 총선 용이 아니라며 "오히려 노 대통령이 탄핵의 덫을 놓고 기다리는 게 아니냐" 라고 말하자 "그러면 그렇게 안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라고 말한 것. 이 질문에 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자체가 헌법 수호에 문제가 되므로 총선 유불리를 생각하지 않고 탄핵을 한다", "국민도 알아줄 거다" 라는 취지의 말을 어물거리며 말을 넘겼고 여기에 손석희는 "'글쎄요, 다른 분들도 그렇게 이해하실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관광 태우며 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그리고 탄핵은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되었다. 도깨비뉴스의 분석기사.

한편으로 본인의 성향을 살짝 비춘 적도 있긴 한데, 2000년대 중반 노무현 대통령과의 특별담화 형식으로 진행된 100분 토론 특집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면전에서 좌우 대립 관련 이야기를 꺼내면서 "제 생각을 살짝 말씀드리자면 저는 참여정부를 별로 좌파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라는 발언[39]을 하기도 했다. 또 일부 보수 세력들이 '손석희도 좌빨이다' 라고 한동안 트집을 잡자, 100분 토론에서 "저에 대해서 한두 분이 말씀을 하시는데 분명히 말하는데 저는 중립, 굳이 따지자면 인본주의자(人本主義者)일 뿐" 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하기도 했다.[40] 그리고 이때 보수 쪽 출연자인 전원책 변호사가 농담식으로 "휴머니즘 자체가 바로 좌파의 시작"이라고 표현해서 관객석에서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인본주의, 휴머니즘이 뭐 어때서 활자로만 보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 날은 특집 방송이라 그냥 훈훈하게 친 농담이었다. 전원책 변호사의 좌파 드립(...)이야 거의 전매특허라서 이상할 것도 없는 말이다.

3.3. 기타[편집]

  • 2017년 시사저널이 선정한 영향력 1위 언론인에 13년 연속 뽑혔다. 해당 기사

  • JTBC 뉴스 9 진행 1주년을 맞아 인터뷰를 가졌다. 기사

  • 손석희의 여러 가지 어록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 시사 프로그램의 진행을 많이 맡아 대중적인 영향력을 갖춘 방송인으로 꼽히고 있다. 국내 방송에서 최초로 아나운서와 기자를 겸직한 인물이다. 아나운서로 입사했지만 한때 보도국에서 기자로도 활동했고 이후 아나운서국으로 복귀하여 아나운서 국장까지 역임했다. 아나운서 입사→보도국 기자 전직 코스는 이후 19대 국회의원(구로구 을) 박영선, 김주하 앵커 등이 뒤따른다.

  • 2013년 언론인 영향력·신뢰도 설문조사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관련 기사

  • 방송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것과는 다르게 의외로 사진 찍는 것을 매우 부끄러워한다고 한다. 여성중앙과의 인터뷰손석희표 뉴스를 묻다 때 사진 촬영 장소까지 함께 온 직원들에게 "쑥스럽다. 쳐다보지 말라."라고 했을 정도로 어색해 한다고.

  • JTBC랑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루머가 돈 적이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손석희는 JTBC와 7년 동안, 그러니까 2020년까지 일하기로 계약하고 왔기 때문에 재계약 문제는 그 이후에 논의될 문제이다. 2020년에 재계약을 하던 말던 결정할 테니 루머가 퍼졌던 당시에는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게 맞기는 하다

  • 시선집중, 100분 토론을 진행하며 탄핵 정국, 노무현 대통령의 토론, 독도 논쟁, FTA 광우병, 촛불정국 등 굵직한 일들을 다루며 이래저래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는데 자세한 내용은 다음을 참조하자. 100분 토론 8년간의 뜨거운 역사 근데 이 기사에서 맨 처음 나오는 내용이 위에서 루머라고 판명났다고 한 '알면서 왜 하셨습니까' 내용이다.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뭐긴 기자가 팩트 체크를 안 한 거겠지

  • 성균관대학교, 연세대학교의 겸임 교수를 거쳐서 2006년 2월 MBC에서 물러난 후 성신여자대학교의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를 맡았다. 성신여자대학교에선 '말하기와 토론' 수업을 맡았는데, 방송과는 달리(?) 워낙 빡세게 가르치는 까닭에 성신여대생들은 이 수업을 '말하기와 토하기'로 불렀다고(...). 수업 자체가 손석희와 토론[42]양민학살이다보니 눈물을 머금으며 나가는 학생도 많다고 한다. 또 커리큘럼엔 타 대학과 토론 배틀을 붙는 수업도 있었다. 또 수시 논술고사에서 직접 시험 감독을 맡고 있었다는 증언이 디씨 등을 통해 흘러나오기도 했다. 논술고사가 끝나면 사진과 사인 공세에 많이 시달렸다고.

  • 육군군수사령부 본부에서 비서실 행정병으로 군 복무를 했으며, 군수사 초청 강연에 온 적이 있을 정도로 군복무 시절 근무지에 대한 나름의 애정이 있다고 한다.

  • F 발음이 들어가는 외래어를 유난히 신경써서 발음하는 편이다. 그 예로 펀드(fund), 차명폰(phone이 /f/ 발음이다) 등.

  • 2012년 10월 30일 초록창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올라왔다. 이유가 뭔고 하니 오전 6시에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시선집중에 1시간이나 지각을 한 것이다. 지각을 했을 뿐인데 실검행! 지각 이유는 시차 적응을 못해 늦잠을 자서 지각을 했다고 한다. 그도 사람이었다 바로 요전까지 특집이라고 유럽 가서 방송을 하는 기획이 있었고 게다가 덤타로 EBS에서 방송하는 다큐멘터리(3부작인 킹메이커)의 진행을 맡았던지라 귀국하고 시차 적응을 못 했다고 한다. 이 분과는 정 반대로 인터넷 기사에서 말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교수님도 사람이다', '인간적이다' 등의 호의적 반응들이 많다. 참고로 손석희가 시선집중을 진행하면서 지각한 전력은 12년 역사상 딱 3회인데 그중 1회가 바로 저 일이다. 나머지 2회는 2007년과 2011년의 폭설 때인데 천재지변이라 어쩔 수 없었고. 당시 공백동안 대타 진행은 류수민 아나운서가 맡았다.

  • 웹툰 작가 윤태호와의 인터뷰에서 윤태호가 "국민학교 3학년 때부터 만화를 그렸다"니까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면서, "당시 <철인>이라는 만화를 워낙 잘 그렸고, 그걸 많이 뿌렸다"고 한다. 본인이 만화를 그리면 다른 애들이 숙제를 대신 해왔다고.

  • 시선집중에서 연말 기념으로 아이유와 함께 방송을 진행한 적이 있다. 시선집중에 처음으로 나온 아이돌이라고. "뭘 해도 안 예쁘겠느냐"라면서 아이유의 팬을 자처했다. "다만 삼촌팬 하기에는 나이가 많고, 나는 거의 큰아버지급 팬"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 가수 김종서의 팬이라고 한다. 미국으로 유학을 간 시절에 김종서 3집 테이프 하나만 들고 가서 주구장창 들었다고 한다. 후배 아나운서들에 증언에 의하면, MBC 아나운서 국장 시절에 회식 자리에 가면 항상 김종서의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높은데도 잘도 부른다고 한다.

  • 한 신문 인터뷰에서 밝힌 본인의 말로는, 갤러그고전게임을 매우 잘한다고 한다. 갤러그로 150만 점을 기록해 본 적도 있다고. 근데 오래된 일이라 착각한 건지 모르겠지만, 갤러그는 100만 점에서 자동 리셋되기 때문에 과장한 것 아니냐는 말도 있다. 아님 기자가 잘못 썼거나 아님 저 발언을 사실이라고 보면 100만 점 기록하고 50만 점 더 기록한 것을 뭉뚱그려 150만점 기록했다고 한 것일 수도 있다. 사실이라면 흠좀무.

  • 썰전 12회에서 손석희 사장의 자기 관리를 설명하며 그가 출근하면 신문을 보면서 담배를 '딱 한 개비'만 피운다는 불가능한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역시나 이후 썰전에서 정정하기로 한 개비만 피우는 게 아니라 아예 금연했다고 한다. 본인이 JTBC 임원 회의 때 자신은 현재 금연이라고 직접 언급했다고. 2015년 3월 5일 JTBC 뉴스룸 2부 팩트 체크에서도 "11년 전부터 금연 중"이라는 말을 했다. 이쯤 되면 훌륭한 비흡연자이다. 다만 한창 담배 피우던(?) 2000년대 초반 시절에 손석희를 알던 지인들 왈론 실제로 그가 하루에 담배 1~3개씩(!) 밖에 안 피웠다고 한다. 그 소문이 와전되어 썰전 작가들 귀에까지 들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뉴스룸 팩트 체크 200회에서 '손석희에 대한 팩트 체크를 희망하는 시청자가 있다'라는 얘기 도중 "담배는 13년 전 금연했다"고 밝힌 바 있다.

  • 손석희를 찍은 사진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다. 헤어스타일이 맨날 같다는 것. 이유는 30년 동안 MBC에 있으면서 구내 이발소만 사용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JTBC로 옮기고 난 뒤에도 헤어스타일은 크게 변화가 없다. 그 이유는, 인터뷰에 따르면 아직도 자신의 헤어스타일을 수십 년 동안 만져온 MBC 근처 이발사에게 가위질을 맡긴다고 하기 때문. 고로 저 헤어스타일을 하고 싶으면 MBC 근처 이발소로 가자. 그런데 MBC는 지금 상암동으로 이전하지 않았나? JTBC도 상암동에 있는데?

  • 진행에 있어 중립을 지키는 것으로 이름난 손석희지만, 그렇기 때문인지 가끔 드러나는 인간적인 면이 더 화제가 되곤 한다. 실제 2003년 2월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시선집중에서 사고대책본부 관계자와 전화 인터뷰를 하던 도중 관계자가 당시 피해 승객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투의 답변을 하자 손석희는 "그런 말씀하시면 안 된다"며 질타한 적이 있다. 손석희 "지하철 호통", 지하철 참사 정곡 찌른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또 2014년 세월호 참사 관련 인터뷰 도중 냉정을 잃은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손석희 앵커 침묵. 그리고 그 다음 날 이어진 사고 관련 보도에서 실종자 아버지와 인터뷰 중 방송 하단에 추가 사망자 발견 소식이 나오자 약 5초 동안 인터뷰를 멈춘 채 침묵하더니 이내 낮은 목소리 톤으로 "자막은 넣지 말아주시고요"라고 뉴스 제작팀에 요구했다.

  • 손석희가 자신의 이름을 건 책이 딱 1권 있다. 1993년에 출판된 <풀종다리의 노래>라는 수필집으로 1992년 MBC 파업과 자신이 MBC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점들을 서술해놓았다. 1993년의 손석희와 현 시점의 손석희는 많은 갭이 있을 순 있지만 이 책을 읽어 보면 '손석희란 사람이 어떠한 생각을 가진 사람인가' 하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다. 책 이름인 <풀종다리의 노래>는 MBC 파업으로 손석희를 비롯해 많은 노조원들이 구속되자 부산MBC 노조 조합원이자 아동문학가인 배익천 씨가 쓴 동화 제목이다.

  • 2015년 12월 29일 트위터 활동을 시작했다. 계정을 생성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지만 팔로워가 16,000명을 넘어가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다만 2016년 2월부터 사실상 잠수 상태(…).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면서 트윗보단 페북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링크

  • 억양은 현대 서울 방언이나 표준어 억양이 아닌 서울토박이 사투리에 가깝다. JTBC로 넘어가면서 MBC 시절보다 서울 토박이 억양이 좀 더 강해진 느낌이다.

  • 솔직하고 실용적인 성격답게 외형보다 내형, 실리를 중시하는 타입으로 외모를 꾸미는 것에 신경을 안 쓰는 듯하다. 전술했지만 국민대학교 시절에 위아래 항상 검은 옷만 입고 다녀서 별명이 '교복(가난했기 때문에 그럴지도)'이었고 아나운서 국장 시절에 차고 있는 손목시계 역시 한 때 화제가 되었다. 엄청난 거액의 명품이라서가 아니라 군인들이나 찰 법한 카시오의 2만 원짜리 저가 전자시계라서 화제가 되었다(가장 위 2011 사진의 시계). 2만 원짜리도 사람에 따라 명품이 되는 마법이 벌어진다 아님 빨리 시간을 확인하는데 전자시계가 더 편해서 그럴지도 또 2010년대 중반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는데, 기자가 본문에 첨언하길 "20년 된 자켓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다른 이미지. 참고로 지금도 그 시계를 차고 있는 것 같다.

  • 체조선수 손연재와 인터뷰를 2번 했다. 첫 번째는 시선집중 시절이고, 2번째는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 따고 뉴스룸에서. 인터뷰를 할 때마다 본인의 방송을 듣느냐고 묻는데, "같은 손씨인 집안 어른이 하는 프로그램이니까 가끔은 들으라"고 압박(?)을 가하기도 한다. 다음 번 올림픽 끝나고 다시 만나자고 훈훈하게 마무리했다. 2016년 11월 뉴스를 통해 만난다

  • 배우 윤여정이 손석희의 팬인데, 2016년 뉴스룸 인터뷰 당시 윤여정이 돌발 질문으로 "'앵커 브리핑'을 본인이 직접 다 구성하는 거냐 아님 작가들과 회의해서 주제를 정하는 거냐"고 묻자, 사뭇 당황하면서도 웃으면서 "주제는 다 같이 논의해서 정한다"고 답변했다. 참고로 이 앵커 브리핑이 나름 유명해서, 대학생들 사이에 PT 교본으로 애용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 2016년 김혜수 주연작 굿바이 싱글이란 영화에 주민호라고 손석희를 패러디한 캐릭터가 나온다. 극 중 김혜수 왈 "이 나라에서 제대로 된 남자는 저 사람뿐이야. 다만 키가 아쉽다 키가"[45]

  • 김성주 아나운서에 따르면 은근히 뒤끝이 있는(…) 성격이라고 한다. 김성주 아나운서가 평소에 좋아하던 음악 CD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가져가서 좀 들어도 되겠느냐"고 물어봤는데, "어, 그래 가져가."라고 해서 "자기 가지라고 주나보다." 생각하면서 가져갔는데 1달쯤 지나서 단 둘이 있을 때 "CD를… 먹나?"라고 CD 왜 안 돌려줘? 물어보더란다. 다만 김성주 아나운서가 황금어장에 출연해 이 사실을 밝히자 강호동이나 김장훈 등 같이 출연했던 패널들 모두가 "손석희 아나운서가 제대로 정확하게 지적했는데 왜 그러냐?"라는 반응을 보였다.# 2018년 4월 2일 냉장고를 부탁해 방송분에서 김성주 아나운서가 다시 손석희와의 에피소드 하나를 회고하기를, 본인은 원래 입사 초부터 예능 쪽에서 뛰고 싶었지만 뉴스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아서 속으로만 앓다가 급기야 머리를 울긋불긋하게 염색을 하고 출근을 해버렸고, 그걸 본 손석희(당시 보도부장)가 바로 불러서 (머리를 가리키며) "왜 그러는거야?"라고 짧게 물었을 때 "부장님, 교양 예능에 집중하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해야 할 것을 기에 눌린 탓에 입이 안 떨어져서 그만 "그냥 한번 해봤는데요"라고 답했고 손석희는 짧게 "원위치 시켜"라고 한 마디했다. 그 말에 김성주는 바로 미용실 가서 흑발로 재염색했다나... KBS 출신 조우종도 MBC 신입 아나운서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손석희 선배님이 심사위원으로 있었고, '수험번호 OO번 조우종입니다' 했는데 네. 가세요하면서 더 이상의 면접을 보지 않았다고. 이어 "그래서 그때 저 정도 자리에 가면 말 한마디만 들어도 실력을 알수 있겠구나 했다. 나중에 제가 KBS 아나운서 면접 담당관이 되어서 신입을 뽑는데 절대 그 말 한마디로는 그 사람 전체를 파악할 수 없더라"라고 말하며 억울해했다. 이를 들은 장성규가 "제가 아는 손석희 사장님은 그럴 분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분명히 결격 사유가 본인에게 있었을 것이다. 본인에게서 이유를 찾으라. 아주 치명적인 사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해 웃음을 안겼다.

  • 2016년 10월 24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해 대통령 연설문 유출 물증 확보와 관련된 단독 특종을 내보내[46] 10월 25일 하루 종일 손석희와 관련 인물들이 인터넷 실검을 장식했고, 결국 이 보도의 파장으로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사과까지 나왔다.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보도를 이어가면서 뉴스룸은 사상 최고 시청률을 연일 갱신하며 KBS를 비롯한 MBC, SBS 뉴스를 모두 꺾고 동 시간대 뉴스 시청률 1위에 등극했다. 이에 네티즌들 사이에선 "KBS 대신 JTBC에 수신료를 주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또 '이런 때일수록 겸손하고 자중하자'며 손석희가 JTBC 보도국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문[47]

  • 유승민 의원과 인터뷰를 하는 날에는 지진이 난다카더라가 있다

  • 트라이버튼설문에 따르면, 2016년 11월 8일 현재, 응답자의 55.6%가 손석희의 정계 진출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손석희 본인도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 하다.

  • 2016년 11월 28일, 문재인 전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훈훈한 분위기를 예상했으나, 예상하지 못한 날카로운 질문을 통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중도를 지키는 언론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에 문재인 지지자들은 "지나쳤다"고 주장하며 손석희를 공격하기도 하였다.[48][49][50]

  • 2016년 12월 9일은 금요일로 JTBC 뉴스룸은 전진배 기자가 앵커로 진행하고 손 사장 본인은 쉬는 날이었으나, 그날의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본인이 직접 120분간의 특집 편성을 직접 진행하였다.[51]

  • 2017년 3월 16일 소셜 라이브에서 기억에 남는 방송 사고가 없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크게 2가지 일화를 소개했는데, 하나는 금연하기 전 MBC에서 태풍 특보를 열 몇 시간 넘게 진행할 때 (그 시절에는 스튜디오에서도 담배를 피우는 관습이 있던 시절이라) 카메라가 넘어간 사이 잠깐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예고 없이 갑자기 카메라가 넘어오는 바람에 당황한 적이 있었다는 일화였다. 다른 하나는 신입사원 시절에 뉴스를 진행하다 조명이 터져 뜨거운 유리 파편이 머리와 어깨 위로 떨어졌는데, 본인이 스스로 이야기하길 '둔한' 편이라(…) 화면이 넘어가고 나서야 식겁했다고 한다. 이에 선배들이 "신입인데 아주 담대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 위의 김주하 아나운서의 인터뷰에서도 나와 있듯이, MBC 시절 후배 기자들의 언급으로 보면 마냥 젠틀할 것만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욕도 걸쭉하게 하는 무서운 선배 같은 이미지였다고 했다. 그러나 뉴스룸 소셜 라이브에서 후배 기자가 졸라서 옷이나 장갑을 뜯기는 모습 등을 보면 또 아리송한 부분이다. 나이 들고 유해진 건지 JTBC 와서 유해진 건지 심지어 한 번은 관제 데모 이야기를 하는데 후배 기자가 "젊지 않은 선배님이 젊은 저희들에게 설명해 주십시오"라고 말하자 웃으면서 "옛날 얘기하는 사람을 꼰대라고 그러던데, 여러분이 저를 꼰대로 만들려고 이런 질문을 한다는 걸 잘 압니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 애플의 아이폰을 현재 사용하고 있다. 기종은 확인하기 어려우나 소셜 라이브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면 여기 하나로 보여진다.[52] 물론 바뀌거나 아닐 수 있다. 현재는 iPhone X의 실버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 소셜 라이브에서 스마트폰을 만지는 모습이 종종 보이는데, 카메라가 세로로 달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종종 뉴스룸 진행 도중에 시리가 작동해 참 당혹스럽다고 한다.앵커 멘트 중에 시리 특유의 소리가 들린다(...) 작동하는 이유로는 시리야라고 부르면 작동하는데 모 분의 이름을 부를 때 나온다고 한다(...).[53] 참고로 Siri는 설정에서 비활성화를 할 수 있다.

  • 2017년 5월 16일 소셜 라이브에서 "창업 생각을 한 적 있냐"는 질문에 "주변 사람에게 자주 하던 얘긴데, 은퇴 후에 공기 청정 카페를 열고자 한다"는 답변을 했다. 죽치고 앉아있을 사람에 대비해 시간제로 운영하겠다는 구상까지 내놓았다.

  • 2017년 5월 17일 소셜라이브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손석희는 보도국에 대한 인사권자가 아니라고 한다. 기자들의 발령이나 승진은 보도국장의 권한이지 자기는 마지막에 확인만 한다는 모양. 기자들도 잘 몰랐는지 "새 정권의 인사에 대해 비슷한 인사권자 입장에서 한 말씀을 부탁한다"는 취지의 질문을 하다가 인사권자가 아니라는 대답에 어버버(…)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그 뒤로 몇 번 물고 늘어졌음에도 질문이 다 꼬였는지 쫓겨나듯이 퇴장했다. 안습 물론 최종 결제는 손석희가 하니 결국 손석희의 의중이 반영되는 게 아니겠냐는 이야기도 있으나, 그런 것치곤 소셜 라이브에서 보이는 태도는 인사 발령 등에 대해 애초에 별 관심이 없는 걸로 보여서 의외라면 의외랄 수 있는 부분이다.

  • 10월 26일 대학생들이 뽑은 가장 좋아하는 언론인 1위를 차지했다.

  • 2017년 12월, 차남 손구민씨가 서울경제신문 견습기자 공채에 합격하면서 아버지처럼 언론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 최근의 인터뷰를 보면 은퇴이후의 생활에대해서도 어느정도 생각중인듯하다. 소셜라이브에서는 농담으로 공기청정카페를 하고싶다고 하긴했지만, 실제로는 다시학교로 가서 저널리즘연구를 더 하고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쉼없이 계속일해왔기에, 아무것도 하지않고 쉬고싶은생각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55]

  • 2018년 6월 1일 남북 고위급회담 과정에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56]이 JTBC 기자 질문에 화를 내면서 언급되었다. '그 선생 잘 하는 거 같던데 왜 이 질문을 하냐' 이런 식으로...

  • 엄청난 강철체력의 소유자인듯 하다. 1999년 12월 31일 진행되었던 2000투데이를 10시간 넘게 연속으로 진행했던 기록이 있으며, 100분토론 진행시절 토론진행후 숙직실에서 쪽잠을 잔 후 다음날 아침 시선집중진행을 매주 한것은 매우 유명한 일화이다. 그리고 시선집중 진행시절에는 해외방송 진행후 다음날 아침에 나와서 진행한적도 있다.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인데, 2018년 북미정상회담 싱가포르 현지진행때 심야에 긴급하게 진행된 뉴스특보를 진행한후 바로 아침특보에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당일 뉴스룸현지진행후 밤 비행기를타고 한국으로 돌아와 저녁 개표방송 진행을 한다고 한다. 사장님이 이러시니 직원들이 힘들다는 말을 잘 못한다

4. 논란[편집]

  • 공정한 언론인 스탠스를 밀며 젊은 층에게 많은 지지를 받아왔지만 이후 아님 말고 스타일의 찔러보기식, 특정 성향에 상당히 치우친 편협한 오보나 짜맞추기식 보도를 내보내며 그와 그가 앵커로 활동하는 뉴스룸의 이미지가 상당히 추락했다. 심지어는 주 지지층이었던 젊은 사람들마저도 등을 돌리는 상황이 늘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논란이 JTBC에서 활동한 이후에 벌어진 일들이기 때문에 JTBC의 논란들과 궤를 같이 한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문제는 이러한 JTBC 뉴스룸의 오보에 대한 지적들이 기존의 보도했던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의심으로까지 이어져서 친박 중심으로 가짜 뉴스가 양산되는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데에 있다.

  • 정정 보도나 기타 논란이 되었던 리포트에 대한 사과 및 오보에 대해 앵커 브리핑을 할 경우 단순한 사과에 덧붙여 자사는 이렇게 자그마한 잘못도 바로 신뢰를 위해 고치고 사과드린다는 컨셉을 자주 유지하는데, 이 맥락에서 과도한 미화가 들어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즉 사과와 반성의 과정으로 JTBC는 이렇게까지 합니다라는 식으로 미화를 자주 한다는 점. 신뢰감이 있어서 이런 식의 앵커 브리핑이 통하는 것이겠지만 이런 논조가 여러 사건 이후 반복되면서 투박한 단신의 사과문보다 못한 효과를 얻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또한 제기된다.

  •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관련해서 다이빙 벨에 대한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이종인 대표의 인터뷰를 여과 없이 방송했다는 이유로 자유청년연합 등으로부터 이상호 기자, 이종인 대표와 함께 고발당한 적이 있다. 이후 방통심의위·방통위는 다이빙벨 보도가 객관성과 정확한 정보 전달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중징계 처분을 냈고, 이에 JTBC는 징계 취소 소송을 걸었다. 1심에서는 JTBC 측이 일부 승소했으나, 2심에서 "사실 관계에 대한 왜곡으로 시청자를 혼동케 했다”며 사실상 중징계가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법원은 손석희 앵커의 진행에 대해서도 “반론 등이 없어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를 한 바 없다”며 문제라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다이빙 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를 얻었다.

  • 2014년 6.4 지방선거 출구조사 무단 사용건으로 지상파 3사로부터 JTBC가 형사 고소를 당했다. 자세한 내용은 JTBC-지상파 3사간 법률분쟁 사건 참조. 이로 인해 손석희 사장은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기도 했으나 이후 무혐의 처분되었다.

  • 2015년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떠들썩할 당시, 경향신문이 단독으로 입수해 가지고 있던 성완종 회장의 전문 녹취록을 방송에서 무단 공개해 이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특히 경향신문과 유족들의 반대에도 JTBC에서 이를 무단으로 공개해 논란이 되었다. 이후 경향신문 측에서는 당연히 JTBC와 손석희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손석희 앵커는 뉴스룸에서 국민의 알 권리를 더 중요시했다는 뉘앙스의 소회를 밝혔다.

  • 2016년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 사태에 대해 JTBC 뉴스룸이 메갈리안 작가와 성우를 일방적인 피해자로 묘사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전부 일베로 몰아가는 뉘앙스의 뉴스를 보도하여 논란이 되었다. 특히 뉴스룸은 방송 불과 3개월 전과 이틀 전 메갈리아 같은 혐오 사이트에 대해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어 더 대비되었다. 물론 해당 기사들을 손석희 사장이 직접 작성한 것은 아니나[57] 뉴스룸의 개요 항목에 설명되어 있고, 일종의 마케팅 포인트처럼 내세웠던 것이 '손석희 사장이 기사를 직접 고르고, 구성하고, 진행하는 정통 앵커 뉴스'라는 것이니만큼 보도, 시사, 교양 부문 총괄 사장직을 맡고 있는 손석희 사장이 수습할 책임은 남는다는 의견도 있다. 그 외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JTBC 뉴스룸/논란 및 사건사고 항목 참고. 또한 이후 사드 배치에 대한 오역 논란에 휩싸이며 또 다시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손석희 사장을 방송가에서 밀어내려고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 뿐만 아니라 이재용 삼성 부회장한테까지 압력을 넣었다는 말이 나왔다.#[58] 다만 지금도 변함없이 뉴스룸을 진행하는 것을 보면 단순 루머로 여겨졌는데, 박근혜 탄핵 이후 홍석현 전 회장이 그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 극우성향 언론인 변희재가 운영하는 매체 미디어워치가 손석희의 장남 손구용이 2010년 대한민국 육군 운전병으로 복무하며 특혜를 받았다고 주장해 논란이 되었다.# 육군훈련소 수료 후 제2수송교육단에서 같이 교육 받은 동기들이라 주장하는 이의 회상에 따르면, 손구용과 또 1명의 명문대 로스쿨 재학생 출신 교육생 1명이 1개월 넘게 교육 없이 대기만 하다 소형 특기[59]를 뽑는 다음 기수에 편입되어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손구용의 기수는 원래부터 소형 TO가 없어 다들 포기하고 있었는데, 편한 후반기교육장에서 사실상 아무 것도 안 하고 놀다시피 하며 대기한 것도 모자라, 선호도가 높은 소형 특기 선발 기수에 편입되었다는 건 중간에 입원해 교육 차수를 놓치거나 하지 않는 이상 전례가 없다고 한다. 운전병으로 복무했던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수송교육단에서 소형TO가 없으면 중형이나 대형으로 배치되고 중형이나 대형은 소형을 몰 수 있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소형 기수를 편입하기 위해 수송교육단에서 대기했다는 사실은 불필요한 대기일 뿐더러, 수송교육단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군 복무 기간만 줄어들기 때문에 유례없는 파격 특혜라고 볼 수 있다. 그 와중에서도 소형 보직중에 가장 인기가 많은 1호차 운전병까지 꿰찼으니 사실 의아해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때문에, 손석희가 우병우 깔 자격이 있냐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손석희 사장측에선 딱히 반박 자료를 내진 않고 있다. 사실 미디어워치의 특성상 크게 화제가 되지도 못했다. 오히려 변희재와 손석희의 악연은 태블릿 PC 관련 건이 더 유명하다. 태블릿 PC가 조작이라고 주구장창 주장하던 변희재는 JTBC에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했다.

  •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선거운동 기간 동안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과 관련해서 국민의당을 옹호하는 쪽으로 보도하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따라 과거에 안철수가 민주당에 탈당했을 때부터 방송했던 앵커 브리핑이 재조명을 받는 중. 상기 문재인 당시 전 대표와의 인터뷰에서 보인 모습이나, JTBC 뉴스룸이 유독 문재인 측에 불리한 식으로 부적절한 보도가 많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문재인 정부 지지자 등 네티즌 층을 중심으로 JTBC에 대한 비판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JTBC 뉴스룸 보도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에 관하여 계속해서 사실 여부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도 JTBC 뉴스룸/논란 및 사건사고에서도 확인할 수 있으나 14건 정도의 논란 항목 중 문재인 측만 5건의 논란이 있으며 보도의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게 한 결정적인 사건은 4월 12일 앵커브리핑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노룩 취재(강경화 당시 외교장관 후보자 관련 부동산 의혹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현장 답사 없이 다음 로드뷰를 근거로 활용)' 등 여러 가지 해프닝이 있었다. 한미 정상 회담에서 코리아 패싱은 없다는 취지의 트럼프 대통령의 대답을 두고 무기 사주는 돈으로 얻어낸 발언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아 큰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만 2017년 7월 10일 방송된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에서 학교 급식 조리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가리켜 막말을 한 국민의당 이언주 부대변인에 대해 비판했다. 그리고 11월 6일 앵커 브리핑에서는 적폐청산 과정이 정치 보복이라는 취지로 주장한 안철수 대표에 대해 안 대표가 방문한 독일이 이뤄낸 나치 청산 작업까지 거론하며 직격타를 날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손석희는 어느 진영에 대해서든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강하다.

  • 2018년 2월 7일에는 JTBC가 미투 운동에 대해 다루며 탁수정을 인터뷰하고 그녀를 옹호해서 비판을 받았다. 그런데 이후에 탁수정에 관한 비판을 가짜뉴스 취급하고, 탁수정에겐 아무 흠결이 없었던 것처럼 포장하였다. 사실상 JTBC 뉴스룸으로 온 손석희의 최대의 흑역사. (1) 먼저 탁수정은 허위사실 유포로 인해 논란이 되고 있는 인물이다. 촛불 시민의 중심이 된 언론을 이끄는 자가, 그 약간의 팩트체크조차 거부하고 그녀의 말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박진성 시인 등을 방송권력으로 두 번 죽이고 있다. (2) 두 번째로, 2월 28일에는 사실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의 피의자 혹은 피고인인 적이 없다는 식으로 탁수정을 옹호하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것 자체는 사실이지만, 그녀는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으로 인해 기소유예를 받았으며, 자신이 잘못 안 정보로 성범죄자라 단정한 경우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에 관한 사항을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싸그리 무시하고 사실유포 명예훼손의 문제점을 주장하는 행태를 보였다. 어찌보면 허수아비 때리기다.
    사실유포 명예훼손범이 아니라는 보도에 대한 문제점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러한 뉴스룸과 손석희 앵커의 행태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탁수정과 그에 의한 피해자가 어떤 피해를 겪는지, 진짜 문제가 뭔지 하나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일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조금만 주의해도 피할 수 있는 중대한 과실을 여태껏 저지르는 것이고, 손석희 앵커의 지적 능력과 JTBC 기자들의 취재력을 생각해볼 때 당연히 실수로 이런 보도를 하고 있는 건 아니다. (2) 그럼 탁수정을 감싸기 위한 최대한의 레토릭을 고의로 동원한 것이라고 봐야한다. 정말, 정말 잔인한 일이다. 미투 운동이 권력관계로 인하여 밝혀지지 않던 성폭행 사건을 끄집어내는 점은 누구의 정의관념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나 미투 운동을 취재한답시고 논란이 있는 사람을,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은커녕 여전히 자신이 만들어낸 혐의를 피해자 중 한 명에게 덮어씌우고 있는 사람을 미투 운동의 전문가인 것처럼 내세운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선택이다. 박진성 시인과 그 가족이 어떤 고통을 겪고 그 속에서 어떻게 회복해나갔는지 생각해보면 정말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일이다.

5. 이력[편집]

5.1. 방송 활동[편집]

5.1.1. MBC[편집]

  • 1985년《1분뉴스》 앵커, 《아침뉴스》 앵커, 《현장85》 앵커, 《청소년 특별기획》 MC

  • 1986년《0시뉴스》 앵커, 《건강 100세》 MC

  • 1986년《여기는 MBC》 앵커

  • 1986년~1987년 라디오 《젊음의 음악캠프》 진행

  • 1987년~1989년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60]

  • 1989년《뉴스센터》 앵커, 《장학퀴즈》 MC

  • 1990년《저녁뉴스》 앵커

  • 1993년《생방송 아침만들기》 MC, 《선택 토요일이 좋다》 MC, 《음악이 있는 곳에》 게스트, 《새벽을 연다》 MC, 《백상예술대상》 MC

  • 1994년 《뉴스와이드》 앵커, 《비디오산책》 게스트, 《한여름 밤의 재즈 콘서트》 MC, 《1994 MBC 강변가요제》 MC, 《손석희가 여는 아침》 DJ

  • 1995년《뉴스투데이》앵커

  • 1997년 《굿모닝 코리아》 앵커,《손석희의 미국탐험》 MC

  • 1998년 《박상원의 아름다운 TV 얼굴》 게스트

  • 1999년《아침뉴스 2000》 앵커

  • 2000년~2013년 MBC 표준FM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진행

  • 2001년 《와! e멋진세상》 MC

  • 2002년~2009년 《100분 토론

  • 2010년 창사특집 HD자연다큐멘터리 《라이온 퀸》 내레이션

5.1.2. JTBC[편집]

5.1.3. 기타[편집]

  • 2012년 EBS 《다큐프라임 킹메이커》 내레이션

5.2. 약력[편집]

  • 1989.11~1992.10 MBC 노조 교육문화부장 대

    외협력위 간사

  • 1997.4~1999.4 MBC 아나운서국 차장대우

  • 1999.4~2002.3 MBC 아나운서국 차장

  • 2000.9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 2002.3~2003 MBC 아나운서국 아나운서2부 부장

  • 2003 MBC 아나운서국 아나운서1부 부장대우

  • 2004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 2005~2006.2 MBC 아나운서국 국장

  • 2006.3 성신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문화커뮤

    니케이션학부 교수

  • 2011.1 대검찰청검찰정책자문단 자문위원

  • 2013.5~ JTBC 보도 담당 사장

5.3. 수상[편집]

  • 1995년 제22회 한국방송대상 아나운서상

  • 2002년 MBC 연기대상 진행자 부문[61]

  • 2003년 2003 한국아나운서상 대상

  • 2006년 제18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라디오 진행자 부문 출연자상

  • 2007년 제3회 한국참언론인대상 시사토론부문

  • 2008년 MBC 브론즈 마우스

  • 2009년 제10회 대한민국 영상대전 포토제닉상

  • 2009년 MBC 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최우수상

  • 2012년 제39회 한국방송대상 라디오진행자상

  • 2014년 제13회 송건호 언론상[62] 수상

  • 2015년 자랑스런 국민인의 상

  • 2016년 민주시민언론연합(민언련)상 본상 수상

[1] 특이하게도 Sohn을 쓴다. 이처럼 Sohn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그나마 성을 'Sohn'으로 쓰는 유명한 인물이라면 전 CNN 한국지부장이었던 손지애 기자가 있다. 사실, Son으로 하나 Sohn으로 하나 음가는 똑같아 문제는 없다. 2015년 10월 28일자 팩트체크에서 밝힌 바로는 부르는 사람에 의해 아들(son)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Sohn으로 정했다고. 그런데 사실 Son이라는 성씨는 영어권에서도 있다. Son 단독일 수도 있고, Anderson과 같이 붙어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son에 h를 넣은 Sohn은 독일어로 son에 해당하는 단어다. 독일어권에서도 Sohn이라는 성씨가 있다. 그리고 영어권에서는 일반 명사가 이름으로 쓰이는 경우도 많고 빈번하다. 이래나 저래나 아들 孫자 자체가 자손, 후손을 뜻하는 한자이니 의외로 뜻은 통한다.[2] 음력으로는 6월 20일. [3] 못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동갑으로는 노회찬 의원,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있다. 다 100분 토론에서 뿜고 뿜으며 공개된 팩트다.[4] 정세균과 함께 찍은 사진. 키 차이가 꽤 난다. 정세균은 168cm다. 1950년대에 태어난 사람치고는 키가 꽤 크다. 젊었을때는 178cm이였으며 현재는 177cm 정도 된다.[5] 이 조사에서 손석희의 지지율은 무려 70%로, 10%가 넘지 않는 2위 이하의 순위를 조사하는 일이 통계적 의미가 없어지는 불상사가 생기고 말았다. 2003년 당시 손석희는 12.5%로 첫 1위를 기록하였으며 그 아래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 그리고 각 방송국 사장이 있다. 이 중 13년 넘게 한번도 10위에서 빠진 적이 없는 사람은 손석희를 포함해 중앙미디어네트워크의 전 회장 홍석현, 조선일보의 회장 방상훈, 조선일보 고문 김대중이며, 특히 김대중은 손석희가 13년 연속 1위를 하기 전 9년 연속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를 유지했고 2016년까지도 3위를 기록하고 있다.[6] 가끔 독신 남교사들이 이런 짓을 했다. 이 시대의 대부분 성인 남성라면 말고는 달걀후라이도 제대로 못하는 시기였다. (라면도 못 끓이는 인간도 부지기수)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검열삭제 떨어진다'며, 남자가 집안일을 하는 걸 금기시하며, 안 그런 사람이 있더라도 굉장히 이상하게 보고 천시하는 시대였으니까. 즉, 자기 손으로 반찬 만들기는 싫으니까, 애들이랑 가까워진다는 핑계로 이런 짓을 했던 것. 뭐 이런 인간쓰레기교사를 할까 싶겠지만, 이 시기에는 '할 게 없으면 선생질을 한다'고 할만큼 교사 되기가 쉬웠고, 당연히 자격미달의 교사가 우글우글했다. 그리고 훗날, 교사들의 이런 행태를 보며 자란 아이들이 교사에 대한 존경심을 잃은 채 성인이 되고 학부모가 되면서, 교사들의 교권은 급격히 추락하게 된다.[7] 나중에 본인이 진행하는 JTBC 뉴스룸 2016년 9월 13일자 앵커브리핑 '아이들과 공유하고 싶지는 않았던, 9월의 밤 건넌방의 공포'에서 이 집에서의 기억이 회상된다. 해당방영분의 내용은 2016년 경주 지진에서 보여준 국민안전처의 미적거리는 대응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었다.영상 [8] 이때 구입한 앨범이 조지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 만토바니의 영화 OST 모음집이었다고 한다.[9] 경기고등학교경복고등학교로 추측된다 카더라.[10] 연기자 출신이자, 무언극인 난타의 기획자로 유명한 그 송승환 사장 맞다.[11] 국민대학교는 재수해서 들어 간 듯 하다. 일단 국민대 합격만 해 놓고 다음해나 다다음해 원하는 학교에 두번 입시를 봤으나 둘 다 낙방 한 듯 하다. 그 학교는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12] 2007년 2월 대전광역시로 이전.[13] 차승원을 모델 데뷔를 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자기 아들로 위장하여 키웠다는 점에, 말종과 결혼하여 정신적 타격을 입은 김주하와의 반대적 상황에 희안하다는 말도 있었다.[14] 여담으로 이때 자신이 맡고있던 라디오 음악프로그램도 그만두어야했다고 한다. 본인이 회상하기론 이때 점차 인기를 얻어가고 있었는데,만약 이때 기자로 전직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지 생각한다고. [15] 후일 회상하길 서울 시청 출입 기자였다고..실제로도 이 당시 서울시 정책에 관한 뉴스를 많이 리포트했다.[16] 후일 전종환 아나운서도 똑같은 코스를 밟는다.그리고 더 전까지 올라가보면 MBC아침뉴스를 10년 넘게 진행하고 나중에 한번더한아침뉴스의 엄기영 최우철앵커도 이 코스를 거쳤다. [17] 땡전뉴스를 몇 개 진행한 것을 보면 군부대 시찰내용1, 군 부대 시찰내용2, 1987년 개천절 경축사(땡전뉴스이지만 다른 대통령도 하는 국경일 경축사에 불과), 직선제 개헌안 국민투표일 공고 정도만 있다.[18] 1989년에 주말 뉴스데스크 자리에 1981년부터 1984년까지 편성된 이전의 뉴스센터가 잠깐 부활했다. 그러나 6개월만인 1989년 10월에 다시 폐지되었고, 이후로 1991년 4월에 다시 부활해서 1993년 10월까지 방송되었다.[19] 4대 뽀미 언니로도 유명하다. 그 덕인지 1995년 뽀뽀뽀 4000회 특집에 가족과 나오기도 했다. 참조.[20] 수도권 전철의 요금 인상 검토 관련한 내용이었다.[21] 1대 진행자는 정운영(99. 10~00. 6), 2대 진행자는 유시민(00. 7~02. 1).[22] 당시 손석희는 MBC 소속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를 사회자로 쓰려면 많은 출연료를 주어야 했다. 그래서 손석희를 하차시키고 거기에 MBC 소속 아나운서를 투입하면 그만큼 돈을 아낄 수 있었다.[23] 2018년 현재 MBC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24] 당시 정권 비판적인 클로징멘트를 자주 쏟아내던 신경민 앵커가 1년만에 뉴스데스크 앵커에서 하차하고 엄기영 사장이 정권의 압박에 못 이겨 사장에서 물러나는 등의 일들이 있었다.[25] 이 소 드립은 나중에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TV 토론회에서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가 다시 언급했다. #1[26] 하지만 손석희는 아나운서 국장을 지낸 이력이 있다. 조직지휘를 하긴 했다.[27] 1986~1988년에 기자로 활동했다.[28] 그것도 앉아서 진행하는 게 아니라 방송 끝날 때까지 서서 진행한다. 세트라고 해도 천막 하나 뿐이다. 서서 진행하는 게 뭐가 대수냐고 반문하시겠지만, 요즘에는 1시간 30분간 방송한다. 장장 90분간 서서 생방송으로 진행한다고 생각을 해 보자.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그것도 와닿지 않는다면, 지상파 진행자들의 진행 방식과 비교해 보시길.[29] "누가 믿고 뉴스를 보냐. 이제 알았어. 뉴스는 다 거짓말이야. 빨리 (중계차) 차 빼"라는 실종자 가족의 발언과 20일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로 행진할 때 여러 방송국들의 카메라가 파손당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팽목항에서는 기성 한국 언론에 대한 불신의 분위기가 팽배해져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손석희 앵커가 현지 진행을 시작한 첫 날, 실종자 가족이 직접 찾아와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실종자 이모 군의 아버지인 이호진 씨가 찾아와 하소연한 것을, 합의한 후 방송에 내보냈다.[30] 2014년 4월 28일 JTBC 뉴스 9의 시청률은 5.061%. 같은 날 SBS 8 뉴스는 6.0%, MBC 뉴스데스크는 5.6%를 기록했다. 지상파와 케이블 TV간의 시청률 표본집단이 달라서 정확히 비교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지만 여타 종편 채널 뉴스의 시청률이 1%대에 불과함을 생각해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결국 2014년 4월 29일 JTBC 뉴스 9의 시청률이 처음으로 5.401%를 기록하며 MBC(5.4%)를 넘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인터넷 시청까지 고려한다면 사실상 JTBC 뉴스 9가 뉴스데스크를 앞질렀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같은 날 SBS 8 뉴스의 시청률은 6.4%.[31] 이런 여파를 가지고 온 보도로는 중앙일보가 최초 보도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보도가 있다. 이 보도 또한 6월 항쟁의 단초가 되어 결국 5공화국이 몰락하게 된다. 신탁통치 오보사건이라는 더 여파가 큰 보도가 있기는 하지만 이건 정부수립이전이고 또 오보다.[32] 손석희 본인은 이 말에 잠깐 침묵을 지키다가 "거기에 대한 답변은 안 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답변(...).[33] 서로 같은 년생이지만 학번은 다르다. 3월생인 박원순은 마지막 4월 입학대상자 1962년도에 입학했고, 손석희와 노회찬은 1963년도에 입학했다. 여기서 노회찬은 지금은 사라진 고입입시에 한 번 떨어지고 재수해서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한 거라 1957년생인 이종걸, 황교안과 같이 입학했다. 대학교 학번까지 가면 박원순은 재수를 해서 1975년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지만 제적을 당하고 단국대학교에 재입학, 손석희도 재수를 해서 1976년도에 입학, 노회찬은 입시에 떨어지고 군복무를 마친 뒤 1979년도에 입학했다.[34] 전원책 변호사는 1955년생이다.[35] 그래도 나이에 비해서 10살 이상 어려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사실(...).[36] 1980년대에 두 사람이 MBC에 같이 있었으니 충분히 최문순 지사가 굴욕을 받을 만 하다! 문제는 한국 최장수 앵커가 최문순에게 굴욕을 당했다는 것이다[37] 이후 KBS에서는 안형환(18대 총선 출마), 민경욱(20대 총선 출마) 등이 있었다. MBC에서는 최문순(18대 총선 출마, 현 강원지사), 엄기영(2011 강원지사 재보궐선거 출마), 신경민(19~20대 총산 출마), 박광온(19대 재보궐선거 출마), 김성수(20대 총선 출마), 최명길(20대 총선출마, 17.12.05 의원직 상실), SBS에서는 홍지만(18~19대 총선 출마), 정성근(19~20대 총선 출마) 등이 있었다.[38] 당장 강용석, 유정현, 안형환, 진성호(18대 의원) 등은 종편에서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사프로그램에서 극우인사로 악명을 떨쳤던 장성민도 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39] https://www.youtube.com/watch?v=hgwBlxxijZA 9분부터 보면 된다.[40] 이 말은 나중에 만화가 주호민이 본인의 정치 성향을 밝히면서 사용하기도 했다.[41] 180cm가 아닐 뿐이지, 178이면 웬만한 사람보다 큰 키다. 그런데 손석희는 60대다.다 가진 남자 부럽다[42] 여담으로 손석희는 토론을 할 때, 아예 전제를 흔들어버린다고 한다.[43] 현재는 링크가 삭제되었다.[44] 폐지가 아니라 시즌 종료다. 담당 PD가 제작 발표회에서 이미 밝혔고, 해당 PD는 현재 시즌2 론칭 준비 중에 있다.[45] 극중 배역을 맡은 사람이 이성민이다. 물론 손석희는 키가 178cm로 결코 작은 편은 아니다. 오히려 큰 편. 하지만 180cm가 안 되어 루저가 되었다[46] 물론 관련 취재를 하고 물증을 확보한 기자는 손석희 사장이 아닌 서복현, 심수미, 김필준 같은 기자들이었다.[47] 이 메일이 인용 보도되고 외부에 알려진 것에 대해서 손석희 본인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7년 5월 10일 뉴스룸 소셜 라이브에서 '메일이 툭하면 바깥으로 새어나간다'라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는데 이 일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48] 오히려 손석희가 문재인을 편들어주듯 인터뷰를 진행했다면 편향성, 공정성 논란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 보자면 중립성을 유지해야 언론으로서의 신뢰도를 유지할 수 있다.[49]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상당히 집요하게 따졌다는 느낌도 없진 않은 게, 김무성 전 대표와의 인터뷰도 그렇고, 인터뷰를 할 때 상대방이 이상한 소리를 하면 손석희는 몇 번 되묻다가 일단 알겠다며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문재인 전 대표와의 인터뷰에선 납득이 안 간다는 의사를 꽤나 강하게 강조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반론이 있는데, 지금 사안이 워낙 민감한 사안인 데다가 정치인들의 의견이 하루가 다르게 약간씩 온도차를 드러내고 있어, 그들의 진짜 생각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집요하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는 것. 더군다나 이 부분은 정치인들 인터뷰에서만 이런 것이 아니라 기자들과의 연결에서도 확실한 정보만을 요구하는 모습을 종종 드러냈다. 혹 취재가 잘못됐을 경우, 특히나 지금 이 시국이라면 엄청난 후폭풍을 감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뉴스룸에서는 사드 관련 번역 오역 등으로 시청자들의 많은 비판을 받은 전례가 있기 때문에 이런 것 때문에라도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 또한 있을 것이라는 일부의 시각도 있다.[50] 그러나 문재인 전 대표 전에 했던 김무성 의원의 개헌 발언 후 동공 지진과 이후 자진해서 나갔던 박지원 의원의 "전국민 7-80%가 개헌을 지지한다"는 출처가 불분명한 이야기로 인해(실제로는 현 상황에서 개헌을 반대한다는 게 70%였다) 문재인 전 대표가 재평가를 받는 상황. 물론 본인도 후일 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확실히 손석희 앵커에게 말렸다."라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51] 2017년 3월 14일 뉴스룸 페이스북 라이브에서 이 이야기가 질문으로 나왔다. 후배 기자가 "왜 3월 10일에 하지 않으셨냐"고 물어보자 '원칙을 지킨 것뿐'이라는 대답을 했다. 그리고 곧이어 12월 9일에 했던 건 자기도 얼떨결에 한 거라서 하고 나서 나중에 많이 후회했다고.[52] 참고영상, 21초 즈음[53] 이름 최순실의 순실과 종결 어미 ~이가 결합하여 실이 [시리]가 된다고 한다.[54]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Can't Stop the Feeling의 후렴구에서 soon, so keep dancing라는 부분이 손석희 댄스라고 들린다.[55] 물론 잠깐 유학을 가긴했지만, 학위취득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쉬었다고 말하기에는 애매하다. [56] 5월 중순에 한미연합훈련을 문제삼아 우리 측을 비난한 그 분 맞다.[57] 클로저스 성우 교체 논란은 강버들 기자가, 혐오 사이트 비판 기사는 정재윤 기자가 작성했다. 손석희 직급이 엄연히 사장인데 직접 쓸 리가[58] 본래 시사플러스 단독 보도였으나 기사 삭제로 인해 아카이브에 기록되었다. 참고로 노회찬 의원도 탄핵 정국에서 노유진 공개 방송 당시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59] 육군 운전병은 소형, 중형, 대형 등의 세부 특기로 나뉘는데, 보통 일이 편한 지휘관 차량(1호차) 운전병이나 장군차 운전병으로 선발될 가능성이 높은 소형이 가장 선호된다.[60] 영화 퍼펙트게임이 다루는 선동열vs최동원 경기에 대한 보도도 한 바 있다. 영상은 여기.[61] 100분 토론을 진행할 때 받은 상. 당시 타임머신을 진행하던 박수홍과 공동 수상.[62] 한겨레 신문의 초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