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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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만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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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만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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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베스트팀
1971 · 1972
대한민국의 前 축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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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차만
李次滿 | Lee Cha-man
출생
국적
신체
172cm / 체중 68kg
주발
오른발
직업
학력
소속
선수
포항제철 축구단(1974~1980)
육군 축구단 (1976~1978 / 군 복무)
감독
고려대학교 축구부 (1980~1983)
대우 로얄즈 (1983~1986 / 코치)
대우 로얄즈 (1987~1989)
대한민국 대표팀 (1988~1990 / 코치)
대한민국 대표팀 (1990)
대우 로얄즈 (1992)
동아대학교 축구부 (1993~1996)
부산 대우 로얄즈 (1997~1999)
부경고등학교 축구부 (2004~2013)
경남 FC (2014)
국가대표
50경기 6골(대한민국 / 1971~1975)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1. 개요[편집]

 
 
 
 
 
 
 
 
 
 
 
 
 
 
 
 
 
 
 
 
 
 
 
 

2. 선수 경력[편집]

 
 
 
 
 
 
 
 
 
 
 
 
동신중 반대항 축구 중 눈에 띄어 축구를 시작했고, 축구 명문 동래중-경남상고-고려대를 거쳤다.

경남상고 2학년에 당시엔 드물게 고2의 나이로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됐고, 고려대 1학년부터 대표팀에 선발되는 등 197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드필더였다.
1 이세연 · 2 박영태 · 3 김호
C
· 4 이차만 · 5 임태주 · 6 고재욱 · 7 정호선
10 박수덕 · 11 이회택 · 12 김진국 · 13 김경중 · 14 노흥섭 · 15 박이천 · 16 황재만
17 김호곤 · 18 김인권 · 19 차범근 · 20 한상기 · 21 권이운 · 22 최상철
1972 AFC 아시안컵 태국 준우승 멤버였다.

부드러운 패스와 영리한 볼스킬, 엄청난 체력과 근성을 토대로 포항제철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30대 초반이던 1980년, 모교 고려대학교 축구부의 코치로 취임하며 다소 젊은 나이부터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1983년 출범한 슈퍼리그 클럽 대우 로얄즈에 창단 멤버 코칭스태프로 합류한 그는 1987 시즌을 앞두고 장운수 총감독이 사임하며 감독 자리에 오른다. 그가 36세 5개월일 때로, K리그 역대 최연소 감독 기록이다. 그는 감독 데뷔 시즌 리그 우승을 거머쥐며 일대 파란을 일으킨다.

대우에서 보여준 활약으로 1988년부터 국가대표팀 코치 겸임을 하며 이회택호의 코치로 합류한다. 부임 직후 첫 대회인 88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순조로운 시작을 알렸고, 1989년 대우 감독으론 리그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90 월드컵에서 3전 전패로 탈락했고 이회택 감독이 사임하자 후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1990년 초대 다이너스티컵에 감독으로서 대한민국을 초대 우승팀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다이너스티컵 대회서 보여준 지도자로서의 능력이 현재로선 미흡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는 이유로, 40일 만에 감독직에서 물러나며 역대 대표팀 감독 중 가장 단명한 감독이 됐다. 북경 아시안게임을 불과 40여일 앞둔 시점에서 후임 감독은 박종환 일화 감독.

1992년 대우로 돌아왔으나, 사무국장 교체를 두고 내부 갈등을 겪으며 선수단과 불화가 쌓인 끝에 9개월 만에 총감독으로 보직을 변경하며 사임했다.# 이후 동아대 감독을 맡았다.

1996년 12월 27일, 99년까지 3년 간 계약 및 억대 연봉을 수령하며 친정팀 부산 대우 로얄즈로 복귀했다. 그리고 복귀 첫해인 1997년, 정규리그인 라피도컵 우승 포함 컵대회 아디다스컵&프로스펙스컵 석권으로 전관왕을 달성하였다. 샤샤, 마니치의 투톱이라는 최강 투톱, 그리고 최후방 스위퍼로 김주성, 좌우 측면에 각각 하석주, 정재권 이외에도 김정혁, 이장관, 이용하, 신범철, 뚜레, 김현수, 이민성, 우성용, 유병훈, 김재영, 권해창 등을 내세워 대우의 안정적인 전력을 구축했다.

1998년을 앞두고 내내 불화가 끊이질 않던 샤샤를 수원에 팔아버렸고, 안정환를 아주대에서 콜업해 필립모리스컵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1999년 리그 준우승과 대한화재컵 준우승을 거두는 등 대우의 마지막 전성기를 일궈냈다.

1999 시즌을 끝으로 사임한 이차만은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다 2004년 8월 모교 부경고등학교가 폐지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막기 위해 감독으로 부임, 김기희, 윤빛가람, 정동호, 안진범, 이창민, 우주성 등을 키워내며 부경고를 전국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2005년 1월 18일에는 정규풍, 김주성 등과 대한축구협회 50대 집행부 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한편, 2008년 심판 판정에 대한 극심한 항의로 2009년 1월에 3년의 자격정지를 당했고, 같은 해 4월 사면되었다. 대신 2009년부터 총감독으로 직위를 바꿔 부경고를 마저 후방에서 지휘했다.

야인 생활을 하던 그는 2014년을 앞두고 고향 구단 경남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 시즌 개막전이 성남 FC와의 개막전이었고, 성남 FC도 팔순이 다 된 박종환이 새 감독에 선임되어 언론과 커뮤니티에서는 할배 더비라고 칭하기도 했다.(...)[1]

하지만 경남의 이차만 선임은 현장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공백[2]과 현대 축구의 흐름과 지도 방식에 둔하다는 점을 고려하지도 않고 그저 옛날의 명성과 화제성과 높으신 분들과의 코드[3]에만 과하게 기댄 무리한 시도였으며, 결국 이차만 부임 후 경남은 오히려 극도의 부진만 면치 못하였고, 결국 시즌이 한창 진행 중이던 2014년 8월에 자진 사퇴하였다. 그리고 그 해 경남은 결국 K리그 챌린지강등 당하고 만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기는 하지만, 애초에 전반기 동안은 이흥실 수석 코치가, 후반기부터는 브란코 바비치 기술 고문이 실질적인 감독 역할을 맡으면서 이차만은 사실상 바지감독이었다고 한다. #

 
 
 
 
 
 
 
 
 
 
 
 
[1] 훗날 2021년 연말 여자배구 V-리그에서 할배 더비가 성사되었는데, 김형실 감독의 신생 구단 광주 페퍼저축은행 AI 페퍼스와 김사니와 조송화 파동으로 인하여 팀 케미스트리가 와해되어 소방수로 갓 부임한 김호철 감독의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가 주인공. 또한 이 양 구단은 모기업이 은행이라서 '은행 더비'로도 꼽힌다. 김형실 감독과 김호철 감독은 한양대학교 선후배 사이이다.[2] 사석에서 포항 스틸러스포철, FC 서울LG라고 호명했다고 한다(...).[3] 홍준표 당시 경상남도지사안종복 당시 사장은 이차만의 고려대 동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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