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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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역사
파비아 시기
파비아
이탈리아어: Pavia
국가
지역
면적
62.86km2
인구
71,587 명[1]
시장
Michele Lissia
시간대
UTC+1 (서머타임: UTC+2)
 
 
 
 
 
 
 
 
 


1. 개요2. 역사3. 관광4. 여담

 
 
 
 
 
 
 
 
 
 
 
 

1. 개요[편집]

 
 
 
 
 
 
 
 
 
 
 
 
이탈리아 북부의 롬바르디아주 서남쪽에 위치한 도시로 중세와 근세를 가르는 파비아 전투가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파비아도의 도청 소재지이다. 중세 시대의 주요 정치 중심지였으며, 540년부터 553년까지 동고트 왕국의 수도였으며, 572년부터 774년까지 랑고바르드 왕국의 수도였으며, 774년부터 1024년까지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였다.
 
 
 
 
 
 
 
 
 
 
 
 

2. 역사[편집]

 
 
 
 
 
 
 
 
 
 
 
 
고대 로마 시절 라틴어 이름은 티키눔(Ticinum)이었다. 타키눔은 로마의 기원전 2세기경 식민도시로 건설되었고, 전략적으로 포강과 티치노 강이 만나는 지역에 위치하여 군사·교통의 요충지로 기능하였다. 특히 갈리아로 향하는 중요한 도로들이 지나갔으며 이로 인해 중요한 중계지로 부상하였다. 3세기부터는 서로마 제국의 군사 거점이 되었으며, 4세기 말에는 훈족 및 게르만족 침입으로 인해 요새화된 도시 구조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서로마 제국이 붕괴하면서 파비아는 동고트 왕국이 차지하였다. 그러나 572년 롬바르디아인이 파비아를 정복하여 이 곳을 수도로 삼았다. 랑고바르드 왕국의 국왕은 매년 3월 1일에 파비아에 있는 자신의 궁전에 대규모 의회를 열어 법률을 제정하고 왕국의 중요한 문제들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파비아 주교는 로마 교구로부터 서서히 독립하게 되었다. 그러나 랑고바르드 왕국카롤루스 대제에 의해 정복당하자 그는 파비아에 위치한 산 미켈레 마조레 교회에서 자신이 이탈리아의 왕이라면서 대관식을 열었다. 이 시기 파비아는 프랑크 제국의 주요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왕국이 서서히 분열되고 파비아도 점차 자치 도시로 성장하였다. 파비아는 토질이 비옥한 데다 인근 밀라노 덕분에 전통적으로 부유한 지역이었으며, 1361년에 세워진 파비아 대학교가 세워지기도 했다.

파비아는 프랑크 제국의 주요 행정 중심지라서 전통적으로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린에 속하였다. 그래서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이탈리아를 침공하였을 때 물심양면으로 황제를 지원하였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가 레냐노 전투에서 패배한 후 신성 로마 제국은 서서히 이탈리아 문제에서 발을 때기 시작했다.

14세기 후반부터 파비아는 밀라노 공국의 지배를 받았다. 파비아 전투는 도시의 운명에 분수령이 되었다. 이 무렵 이탈리아반도기벨린구엘프의 대결에서 프랑스 왕국을 지지하느냐 신성 로마 제국(오스트리아 대공국)을 지지하느냐로 바뀌었다. 이탈리아 전쟁시기 파비아는 중세 시절과 마찬가지로 합스부르크 가문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지지하였다. 이에 격분한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이탈리아반도로 쳐들어왔고 프랑스군스페인군은 파비아에서 조우하였다. 파비아 전투 결과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스페인 국왕 카를 5세에게 포로로 잡혔다. 1535년 밀라노 공국스페인 합스부르크에 귀속됨에 따라, 파비아는 스페인 왕실의 행정령 도시가 되었다.

그 이후 파비아는 스페인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파비아는 마졸리카[2]를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북부 이탈리아에서 부유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스페인의 영향력이 매우 강해 종교재판소가 강화되어 많은 시민들의 불만을 샀다. 그러나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으로 인해 스페인이 이탈리아 영토를 포기함으로서 파비아는 오스트리아의 차지가 되았다. 이때 파비아 시민들에게 악명이 높던 종교재판소가 폐쇄되었다. 18세기 계몽주의 시기에는 파비아 대학이 근대 과학과 계몽주의 철학 확산의 중심지로 기능하였다. 이 시기 활약한 인물이 알레산드로 볼타이다.

19세기 중엽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파비아는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의 통합 정책에 동참하였고, 1861년 이후 이탈리아 왕국의 롬바르디아주에 속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3. 관광[편집]

 
 
 
 
 
 
 
 
 
 
 
 
  • 비스콘티 성 (Castello Visconteo) : 14세기 고딕 양식의 성곽 건축물로 밀라노 공국의 공작 갈레아초 비스콘티 2세가 세웠다. 현재 파비아 시립 미술관이 들어섰다.
  • 산 미켈레 마조레 대성당 (Basilica di San Michele Maggiore) : 7세기에 지어졌고 11세기에 재건축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석조 성당으로, 롬바르디아 국왕들의 대관식이 거행된 장소로 유명하다. 회색 사암을 이용한 중후한 외관, 부조와 장식기둥, 비잔틴·롬바르드 양식이 혼합되었다.
  • 산 피에트로 인 첼 도로 성당 (San Pietro in Ciel d’Oro) : 7세기에 지어진 성당으로 서방 기독교의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유해가 묻혀있다.
  • 산 테오도로 (San Teodoro) : 12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롬바르드 벽돌로 지어진 로마네스크 후기 양식의 교회로 778년에 사망한 파비아의 주교 산 테오도로에게 헌정되었다.
  • 파비아 대성당 (Duomo di Pavia) : 1488년에 시작해 1885년에 완공된 르네상스 건축 양식의 교회로 밀라노 공국 통치자 및 후계자들과 관련된 주요 예배 행사가 이곳에서 집전되었다.
  • 파비아의 탑 (Torri di Pavia) : 11세기~13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탑으로 원래 파비아에는 약 65개의 탑이 있었으나 현재는 20개만 남아있다.
  • 파비아 대학교 역사 박물관 (Museo per la Storia dell'Università) : 1936년에 설립된 박물관으로 이탈리아의 해부학자 안토니오 스카르파, 이탈리아의 병리학자 카밀로 골지,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알레산드로 볼타가 파비아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을 때의 물건을 시작으로 파비아 대학의 역사와 관련된 기념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 파비아 교구 박물관 (Museo diocesano di Pavia) : 파비아 교구의 주도로 2023년에 설립되었으며, 파비아 교구가 소장하고 있는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4. 여담[편집]

 
 
 
 
 
 
 
 
 
 
 
 
 
 
 
 
 
 
 
 
 
 
 
 
[1] 2025년 1월 31일 기준.[2] 석회질의 거친 도자기의 일종. 마졸리카 굽기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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