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던컨 에드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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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컨 에드워즈 Duncan Edward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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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사망 | |
국적 | |
포지션 | |
신체 | 180cm, 82kg |
유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52~1953) |
선수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53~1958) |
국가대표 | 18경기 5골(잉글랜드 / 1955~1957) |
출장/골 | 177경기 21골[1] |
내가 본 선수 중 가장 뛰어났다. 내가 열등감을 느끼게 만든 유일한 선수였다. - 바비 찰튼
던컨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기량이 있습니다. 최전방에 있으면 그는 헤딩을 할 것이고, 하프백(미드필더) 자리에선 패스를 하겠죠, 상대 팀에 누군가가 달려오고 있으면, 그는 바로 수비수로 변해서 마크를 할 겁니다. 우리 팀원들은 그의 플레이를 보고 스스로를 애송이라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 톰 피니
코치님, 다음 경기는 3시에 시작하나요? - 던컨 에드워즈, 뮌헨 참사 당시 잠깐 의식이 돌아오고 지미 머피 코치를 보고 했던 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활약한 잉글랜드의 축구 선수. 버스비의 아이들이라고 불리던 당대의 맨유 선수들 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재능이였으며, 1957년에는 만 21세의 나이로 발롱도르 포디움에 들어간 재능 있는 선수였지만[3] 안타깝게도 불과 몇 달 뒤 뮌헨 참사로 심각한 부상을 당하고 보름 뒤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워낙 오래 전에 뛰었던 선수라 제대로 된 경기 영상도 남아있는 게 별로 없고[4] 활약상은 물론이거니와 플레이 스타일이 어떤지도 파악하기 어렵지만, 당대의 수많은 레전드들이 남긴 평가만 보더라도 어마어마한 재능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뜨지 않았다면 펠레, 디에고 마라도나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 거라는 평가까지 받는 선수이다.
이 시대에는 장신으로 취급받은 180cm의 신장에 준수한 스피드, 단단한 피지컬과 강한 체력[5], 훌륭한 개인기와 드리블, 뛰어난 수비력과 양발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패스와 묵직한 슈팅, 넓은 시야와 뛰어난 득점 감각까지 두루 갖춘 멀티플레이어였다.
2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나 200경기에 가까운 공식 경기 출전 기록만 보아도 젊은 나이에 훌륭한 활약을 보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나 주목할 부분은 수비적인 포지션이었음에도 195경기에서 26골을 넣은 것인데, 수비 전술이 지금처럼 조직화되지 않았던 시대이긴 해도 수비형 미드필더 겸 수비수가 이 정도 스탯을 쌓는 것은 수비력뿐 아니라 공격력도 매우 뛰어났다는 것이다.[6]
공격형 미드필더, 공격수로 뛰었던 바비 찰튼이 던컨의 재능을 부러워했다는 것을 보면 같은 포지션이 아님에도 열등감을 느낄 만큼 축구에 대한 전반적인 능력이 뛰어났던 것으로 추측된다. 게다가 쟁쟁한 공격수, 미드필더들을 제치고 발롱도르 3위에 선정된 것 또한 놀라운 성과다. 안타까운 것은 이 모든 평가들을 뒷받침해줄 그의 플레이가 남지 않은 것이다.
- 잉글랜드의 월드컵 우승을 이끈 주장이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의 레전드 바비 무어가 유스 시절 가장 존경한 선수가 던컨 에드워즈였다. 둘은 포지션, 등번호가 똑같다. 무어는 4백 포메이션이 보편화된 이후에는 좀 더 수비적인 역할을 맡아 센터백 포지션에 정착했다.
- 바비 찰튼이 맨유에서 뛰었던 수비수 필 존스가 던컨 에드워즈와 생김새가 닮았다고 인터뷰에서 얘기한 적이 있다.
- 금욕주의자로 술담배를 전혀 하지 않아 당시 맨유의 수석 코치였던 지미 머피는 던컨을 때묻지 않은 순박한 소년처럼 여겼다. 실제 성격도 꽤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었다는 듯. 던컨은 여가로 낚시를 즐겼고 카드 게임, 영화 감상을 좋아했다.
- 당시 기준으로 체격이 걸출해서 Big Dunc 혹은 Tank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 즉흥적인 전술로 던컨을 잘 활용한 맷 버스비 감독과 달리, 지미 머피 코치는 그를 전술에 맞춰 활용하려 했다. 던컨이 유소년 팀에 있을 때 선수들이 너무 던컨에게 의존하는 경기를 하자 "쟤(던컨)한테 너무 패스하지 마라"고 이르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은 첼시와의 중요한 경기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바로 태세를 전환하며 "무조건 던컨에게 공을 줘!"라고 외쳤다고. 이후 던컨은 무려 10명을 제치고 골을 넣어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고 한다. #
- 1998년에 마이클 오언이 데뷔하기 전까지 가장 어린 나이에 잉글랜드 국가대표에 데뷔한 기록을 갖고 있었다.
- 한국의 스포츠 판타지 소설 레전드 1957에서는 역사가 개변되어 참사를 피하지는 못하지만 양쪽 다리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고 목숨을 건졌다. 부상이 완치된 후 그라운드에 복귀하여 맨유와 잉글랜드 국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한다.
[1] 당시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하고 때때로 중앙수비수로 출전하던 선수가 이 정도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2] 발롱도르 초대 수상자.[3] 역대 발롱도르 전체를 보아도 20대 초반의 나이에 발롱도르 포디움에 들어가는 사례는 극히 드물며, 던컨과 같거나 더 어린 나이에 포디움에 든 사례는 현재까지도 프란츠 베켄바워, 호나우두, 리오넬 메시, 라민 야말 단 4명뿐이다. 다른 사례에 해당하는 선수들이 당대 축구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역대급 재능으로 평가받는 선수들임을 감안한다면 수비수 내지 수비형 미드필더로 포디움에 든 던컨의 재능 역시 엄청났다고 볼 수 있다.[4] 물론 당대에 촬영된 영상이 있긴 하다.[5] 이 시절 선수들은 흡연과 음주를 아무렇지 않게 했는데, 던컨은 금욕주의자라서 담배와 술을 절대 하지 않았다고 한다.[6] 오버래핑의 개념이 없던 시대에 스스로 상대 진영으로 올라가는 플레이를 했을 정도로 창조적인 플레이를 했던 천재였다. 이런 재능을 알아본 버스비 감독도 경기 중 즉흥적으로 공수 라인을 조정하여 던컨이 프리롤로 활개칠 수 있게 하곤 했다.[7] 다만 자전거 라이트를 안 켜서 당시 규정에 저촉되어 벌금을 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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