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리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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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잉글랜드의 前 축구 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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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게리 쇼 Gary Shaw | |
본명 | 게리 로버트 쇼 Gary Robert Shaw | |
출생 | ||
사망 | ||
국적 | ||
신체 | ||
직업 | ||
소속 | 선수 | 아스톤 빌라 FC (1977~1988) → 블랙풀 FC (1987 / 임대) 키외벤하운스 볼클럽 (1988) SK 아우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1988~1990) 월솔 FC (1990) 킬마녹 FC (1990) 슈루즈베리 타운 FC (1990~1991) 에른스트 보렐 (1991~1992) |
국가대표 | 없음 | |
게리 쇼는 1977년 아스톤 빌라 FC에서 프로 데뷔하여 1988년까지 활약했다. 그는 1980년대 초 아스톤 빌라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는 당시 팀에서 유일하게 아스톤 빌라 연고지인 버밍엄 출신 선수였고, 1981년에는 PFA 올해의 영플레이어로 선정, 이듬해에는 유럽 대회에서 최고의 23세 이하 선수에게 주어지는 브라보 어워드를 수상했다.
아스톤 빌라 소속으로 1980-81 시즌 풋볼 리그 1부 우승을 차지했으며, 1981-82 시즌 유러피언컵 우승의 주역이었다. 디나모 키예프와의 8강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는 등 7경기 3골이라는 득점력으로 결승 진출에 힘을 보탰고, 결승전에서 선발로 출전하여 비록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으나 동료 공격수인 피터 위드의 결승골을 잘 지켜내며 FC 바이에른 뮌헨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서 1982년 UEFA 슈퍼컵 우승까지 차지하며 팀의 역사적인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1983년 9월 노팅엄 포레스트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그의 유망했던 빌라 경력은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게리 쇼가 상대선수로 부터 거친 태클을 당한 이후 이안 보이어의 도움으로 일어섰을 때 무릎에서 '딸깍'하는 소리가 났다고 쇼는 회상했다. 이 부상 이후 그의 선수 생활은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 그는 1987-88 시즌이 끝날 때까지 빌라에서 계속 뛰었다.
1988년 7월에는 덴마크의 키외벤하운스 볼클럽에서 해외무대에 데뷔했으며, 1989년에는 오스트리아의 SK 아우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로 이적했다. 이후 국내로 복귀한 쇼는 월솔 FC, 킬마녹 FC, 슈루즈베리 타운 FC, 홍콩의 어니스트 보렐에서 짧은 기간 활약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아스톤 빌라 소속으로 1980-81 시즌 풋볼 리그 1부 우승을 차지했으며, 1981-82 시즌 유러피언컵 우승의 주역이었다. 디나모 키예프와의 8강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는 등 7경기 3골이라는 득점력으로 결승 진출에 힘을 보탰고, 결승전에서 선발로 출전하여 비록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으나 동료 공격수인 피터 위드의 결승골을 잘 지켜내며 FC 바이에른 뮌헨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서 1982년 UEFA 슈퍼컵 우승까지 차지하며 팀의 역사적인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1983년 9월 노팅엄 포레스트 FC와의 원정 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그의 유망했던 빌라 경력은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게리 쇼가 상대선수로 부터 거친 태클을 당한 이후 이안 보이어의 도움으로 일어섰을 때 무릎에서 '딸깍'하는 소리가 났다고 쇼는 회상했다. 이 부상 이후 그의 선수 생활은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 그는 1987-88 시즌이 끝날 때까지 빌라에서 계속 뛰었다.
1988년 7월에는 덴마크의 키외벤하운스 볼클럽에서 해외무대에 데뷔했으며, 1989년에는 오스트리아의 SK 아우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로 이적했다. 이후 국내로 복귀한 쇼는 월솔 FC, 킬마녹 FC, 슈루즈베리 타운 FC, 홍콩의 어니스트 보렐에서 짧은 기간 활약하며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게리 쇼는 잉글랜드 U-21 대표팀 소속으로 7경기에 출전했다.
아스톤 빌라 FC와 함께 성공적인 유러피언컵 시즌을 보낸 후, 1982년 FIFA 월드컵 본선에 대비한 40명의 예비 잉글랜드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최종 22인 명단에는 들지 못했다.
아스톤 빌라 FC와 함께 성공적인 유러피언컵 시즌을 보낸 후, 1982년 FIFA 월드컵 본선에 대비한 40명의 예비 잉글랜드 대표팀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최종 22인 명단에는 들지 못했다.
2024년 9월 6일, 쇼는 버밍엄 자택에서 넘어져 머리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으며, 당시 상태는 "심각"하다고 알려졌다. 9월 15일 사망 보도가 있었으나, 쇼의 가족은 그가 여전히 병원에 있으며 상태가 "위중하고 심각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쇼는 다음 날인 9월 16일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스톤 빌라는 쇼의 가족을 대신하여 그가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평화롭게 사망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쇼의 사망 다음 날인 9월 17일, 아스톤 빌라는 쇼의 선수 시절 이후 처음으로 열린 유러피언컵경기에서 BSC 영 보이즈와 맞붙었다. 스위스 클럽은 경기 전 쇼에게 추모를 표했으며, 아스톤 빌라의 우나이 에메리 감독은 이어진 승리가 쇼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쇼의 사망 이후 아스톤 빌라의 첫 홈 경기인 울버햄튼 원더러스 FC와의 프리미어 리그 경기에서는 빌라 파크에 쇼의 배너가 걸렸다. 그의 前 동료들이 명예 손님으로 초대되었고, 경기 전 1분간의 박수가 이어졌다.
쇼의 장례식은 2024년 10월 16일에 거행되었으며, 수많은 팬들이 빌라 파크에서 시작하여 서튼 콜드필드 화장장까지 이어지는 장례 행렬을 따라 추모했다.
2024년 12월 6일, 검시관은 그의 사망 원인을 '우발적인 사고사'로 판정했다.
쇼의 사망 다음 날인 9월 17일, 아스톤 빌라는 쇼의 선수 시절 이후 처음으로 열린 유러피언컵경기에서 BSC 영 보이즈와 맞붙었다. 스위스 클럽은 경기 전 쇼에게 추모를 표했으며, 아스톤 빌라의 우나이 에메리 감독은 이어진 승리가 쇼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쇼의 사망 이후 아스톤 빌라의 첫 홈 경기인 울버햄튼 원더러스 FC와의 프리미어 리그 경기에서는 빌라 파크에 쇼의 배너가 걸렸다. 그의 前 동료들이 명예 손님으로 초대되었고, 경기 전 1분간의 박수가 이어졌다.
쇼의 장례식은 2024년 10월 16일에 거행되었으며, 수많은 팬들이 빌라 파크에서 시작하여 서튼 콜드필드 화장장까지 이어지는 장례 행렬을 따라 추모했다.
2024년 12월 6일, 검시관은 그의 사망 원인을 '우발적인 사고사'로 판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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