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최근 수정 시각:

분류

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중국/행정구역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홍콩(동음이의어)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동아시아의 국가 및 지역

[ 펼치기 · 접기 ]

파일:일본 국기.png
일본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파일:중국 국기.png
중국

파일:몽골 국기.png
몽골

파일:북한 국기.png
북한

파일:대만 국기.png
대만
(중화민국)

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png
홍콩
(중국)

파일:마카오 특별행정구기.png
마카오
(중국)

[ 펼치기 · 접기 ]

화베이 지방

베이징시 [京] · 톈진시 [津] · 산시성(山西省) [晋] · 허베이성 [冀] · 내몽골 자치구 [内蒙古]

화둥 지방

상하이시 [沪] · 산둥성 [鲁] · 안후이성 [皖] · 장쑤성 [苏] · 장시성 [赣] · 저장성 [浙] · 타이완성 [台] · 푸젠성 [闽]

중난 지방

광둥성 [粤] · 하이난성 [琼] · 허난성 [豫] · 후난성 [湘] · 후베이성 [鄂] · 광시 좡족 자치구 [桂]
파일:마카오 특별행정구기.png 마카오 특별행정구 [澳] · 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png 홍콩 특별행정구 [港]

둥베이 지방

랴오닝성 [辽] · 지린성 [吉] · 헤이룽장성 [黑]

시베이 지방

간쑤성 [甘/陇] · 산시성(陕西省) [陕/秦] · 칭하이성 [青] · 닝샤 후이족 자치구 [宁] · 신장 위구르 자치구 [新]

시난 지방

충칭시 [渝] · 구이저우성 [贵/黔] · 쓰촨성 [川/蜀] · 윈난성 [云/滇] · 티베트 자치구 [藏]

* 중난 지방을 허난 성, 후베이 성, 후난 성의 화중 지방(华中地方)과 광둥 성, 하이난 성, 광시 좡족 자치구, 홍콩 특별행정구, 마카오 특별행정구의 화난 지방(华南地方)으로 나누는 분류도 많다.

공식 명칭

정체 한자

中華人民共和國香港特別行政區
中華人民共和國香港特别行政區
[1]

간체 한자

中华人民共和国香港特别行政区

영어

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SAR)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한국어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약칭

한국어

홍콩[2]

중국어

香港[3]

영어

Hong Kong

일본어

香港(ホンコン)

러시아어

Гонконг(간꼰크)

에스페란토

Honkongo(혼콘고)

상징

파일:홍콩 특별행정구기.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0px-Hong_Kong_SAR_Regional_Emblem.svg.png

특별행정구기

휘장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50px-Location_of_Hongkong_by_Guangdong_%28China%29.png

언어

공용어

영어, 중국어(사실상 광동어)

정부형태

주권

중화인민공화국특별행정구

행정부 수반
(행정장관)

캐리 람

임기

2017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ISO 3166 -1

HK, HKG

국가코드 최상위 도메인(ccTLD)

.hk .香港[4]

중국 성급행정구역 지역코드

[5]

기타

면적

1,105.6㎢

인구

7,389,500명(2017 추산)

민족구성

중국인 92.0%, 인도네시아인필리핀인 4.6%, 백인 0.8%, 기타 2.6%

1인당 명목 GDP

$48,829(2018)

화폐

홍콩 달러

무비자 입국

양국 모두 90일


1. 개요2. 구획3. 정치
3.1. 입법부3.2. 행정부3.3. 사법부3.4. 청렴도3.5. 문제점
4. 홍콩에서 통용되는 언어5. 역사6. 홍콩의 대외관계
6.1. 한국과의 관계6.2. 중국 대륙과의 관계, 갈등과 마찰
7. 종교8. 경제9. 생활10. 교육
10.1. 초/중등 교육10.2. 고등 교육
11. 군대와 치안
11.1. 군대11.2. 치안
12. 의료 및 보건13. 수도와 전기14. 교통15. 언론
15.1. 신문15.2. 방송
16. 문화
16.1. 영화16.2. 만화16.3. 음식16.4. 창작물 내에서의 취급16.5. 스포츠
17. 관광18. 기타19. 홍콩의 명절20. 홍콩 출신의 캐릭터21. 홍콩의 경관22. 관련문서

1. 개요[편집]

동아시아도시. 중화인민공화국특별행정구광둥 성 주장 강 삼각주 하구에 위치하여 있다. 과거에는 1841년부터 영국식민지였다가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되어 특별행정구가 설치되어 오늘에 이른다.

홍콩(香港)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향나무(香)를 실어나르는 항구(港)가 위치했던 곳(향항;香港). 광동어 발음으로는 '횡꽁' 또는 '헝꽁' 비슷하게 발음되는데. 이 '헝꽁'/'횡꽁'이 영국인들 귀의 몬더그린 필터를 거쳐서 Hong Kong이라는 표기로 확립되었다. 1926년 표기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Hongkong이라고 썼다. HK라는 약자를 쓰는 경우도 종종 있다.

구룡반도(九龍半島, Kowloon, 보통화로는 주룽)와 홍콩 섬(香港島, Hong Kong Island, 보통화로는 샹강다오)을 비롯한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광둥 성(廣東省) 선전(深圳)과 마주보는 지점에 있고, 또다른 특별행정구인 마카오(澳門)에서도 그리 멀지 않다. 대한민국보다 시차로 1시간이 느리고, 중국 대륙(본토) 및 대만 섬과 시간대를 공유한다.

아시아의 금융, 물류허브이자 쇼핑메카인 도시. 인구는 약 720만 명이고 면적은 1104㎢(서울의 1.82배)로 인구 밀도정말 높다. 1㎢에 6천 명 정도가 거주한다. 다만 홍콩 섬 북단과 까우룽 반도 남부 정도가 초고밀도로 개발되어 있고 나머지 지역(신계)은 인구밀도가 비교적 낮다. 엄밀히 말하면 체감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것이다. 2004년 조사에선 홍콩의 각 도심이 세계 인구밀도 1~9위를 석권할 정도였다. # 2012년 홍콩 정부가 다시 산출한 도심의 인구 밀도는 26,000명으로 세계 7위 수준이다.(마카오-4위 포함) 그나마 신계를 개발해서 홍콩 전체의 통계가 6000명 정도. 참고로 교외 지역인 신계가 홍콩 전체 면적의 8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앞의 26,000명은 홍콩에서 신계를 제외한 지역(면적 127㎢에 인구 약 340만 명 정도)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으로 보인다.

1997년 이전까지는 영국 땅이었으나 당해 7월 1일에 영국에서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혹은 이양[6])되었다. 이런 역사 덕분에 지금까지도 중국 본토와는 다른 위치에 있다. 홍콩은 홍콩 특유의 분위기가 있으며 중국 본토 부분 중 가장 가까운 광저우, 주하이, 선전 등과도 다른 분위기를 나타낸다. 이웃 마카오와도 또 다르고 대만과도 다르다.

홍콩의 언어인 광동어한자 발음이 고대 발음이 많이 남아있어 대한민국의 한자 발음과 비슷하다.김씨는 깜(kam)씨 한국은 혼궉(Hon Gwok) 일본은 얏뿐(Yat Bun) 베이징은 빡깅(bak ging)???이라고 발음한다.

홍콩인들은 자신이 중국인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적은 편이다. 영국의 도시로서 100년 이상 중국과 정치적, 문화적으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홍콩인들에게 중국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큰 실례이고 스스로를 중국인이라 여기는 홍콩인들도 대부분 중국 대륙의 중국인들과 스스로를 구분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외교관을 제외한 제3국(대한민국 포함) 사람이라면 중국과 홍콩을 완전히 다른 나라로 인식해도 큰 문제가 없다. 다만 반대로 본토 중국인에게 홍콩을 다른 나라인것처럼 말했다가는 그거대로 어그로가 되니 주의할 것. 애시당초 남의 나라의 예민한 정치문제에 외국인이 이러쿵저러쿵 말을 섞지 않는게 현명하다. 자세한 것은 홍콩-본토 관계 참고.

그리고 중국과 아예 국제 배송 코드가 다르다. 즉, 다른 나라로 취급한다는 말. 중국과 홍콩에서 주문한 물건이 같은 날 한국에 도착해 물품의 합산가격이 관세부가 기준에 걸려도 중국과 홍콩은 다른 나라로 취급하기 때문에 관세 부가가 안된다.

2. 구획[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Map_of_Hong_Kong.svg.png

홍콩은 영국의 점령 및 조차 시기의 차이에 따라 홍콩 섬, 까우룽 반도,[7] 신계로 구분된다. 홍콩은 총 18개의 구(區, district)로 나뉘어 있는데 위의 지역 구분에서 다시 세부적으로 나뉜다. 각 구는 1982년에 홍콩에 민주주의가 도입될 때 생겨났으며 모두 구 의회(區議會, council)를 갖추고 있다.

간혹 빅토리아 시티를 홍콩의 수도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정확하게는 홍콩의 행정적 중심지 역할을 하는 지역, 즉 홍콩 섬을 속칭 빅토리아 시티라고 일컫는 것으로 홍콩 내 법적 행정구역 상 빅토리아 시티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 영국에 홍콩 섬이 막 할양된 1841년에는 실제로 Victoria, Hong Kong이라는 도시가 행정적으로도 존재했다. 지금은 우편 주소 쓸 때에나 사용하는 명칭이 되었다. 행정구역으로서의 빅토리아는 중시 구(Central and Western District)에 속해있다.

배낭여행을 생각하고 있다면 홍콩, 마카오/관광 문서도 참고하자. 구글 맵스에서 한국어 설정시 홍콩의 구획명은 보통화 발음으로 표기된다. 몇몇 거리 지명들을 살펴보면 영어를 광동어에 음차해서 끼워맞추거나 그 역으로 끼워맞춘듯한 홍글리시스러운 지명들이 많다. (ex. 나단(네이선) 로드 -> 彌敦道 (nei don dou)

'백만불짜리 야경'이라는 별명이 있다. 마천루들도 계획적으로 세웠다. 호사가들은 나폴리, 하코다테와 더불어 세계 3대 야경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흥행한 영화 영웅본색에서, 싸움 끝에 도망쳐 빅토리아 언덕에 올라 홍콩 야경을 내려다보던 주윤발이 "홍콩의 야경은 참 아름답군"이라고 하는 대사가 나올 정도. 20:00~20:15에 펼쳐지는 레이저 쇼인 <심포니 오브 라이트>(Symphony of Lights)가 백미. 빅토리아 만의 양단에 있는 마천루들에서 레이저를 쏘아 보낸다. 통상 볼 수 있는 위치는 침사추이 스타페리 터미널 옆의 시계탑~스타의 거리, 완자이의 컨벤션 센터 앞, 빅토리아 피크, 빅토리아 만을 관광할 수 있는 유람선 등이 있다. 빅토리아 만의 양단이나 빅토리아 피크에서는 반대쪽의 레이저 밖에 볼 수 없으므로 돈이 충분한 사람은 배멀미에 완벽히 적응한 사람이라면[8] 침사추이에서 19:30, 센트럴에서 19:45에 출발하는 아쿠아루나를 탈 것을 권한다. 빅토리아 만의 해상에서는 양쪽의 레이저 쇼를 모두 조망할 수 있다. 단 <심포니 오브 라이트> 때문에 이 시간대의 자리를 구하기가 어려우므로 홍콩 가기 10일 전에는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9]

3. 정치[편집]

홍콩은 1997년 7월 1일 이후로 영국령에서 중국령이 되었지만,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하는 일국양제의 특성으로 인해 싱가포르처럼 도시국가와 비슷하게 굴러간다.

홍콩의 최고 법률은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으로 중국 헌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정부조직은 권력분립 원칙에 의거하여 행정부인 행정의회와 입법부인 입법회, 그리고 사법부인 홍콩법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베이징의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전국인민대표대회, 최고인민법원과는 엄연히 분리되어 있다.

홍콩의 정치제도는 영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영국 식민지 시절 정치, 입법, 사법 체제를 반환 후 최소한(at least) 50년간(1997년~2047년) 유지할 수 있고 이와는 별개로 특별행정구 설치로 인해 사회주의 체제를 영구히 적용하지 않기로 한 일국양제(1국가 2체제) 원칙에 따라 외교군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것들이 중국 본토와는 따로 돌아간다. 일단 관세부터가 별도 관세구역으로 들아가고 여권 또한 따로 나오며 출입국 정책도 크게 다르다. 국제 기구 참여(올림픽 참가 등)도 당연히 홍콩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한다.

외교 또한 원칙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전담해주기로 되어있지만, 중국 공산당은 홍콩 정부에게 '중국 홍콩(Hong Kong China)'이라는 명칭을 갖고 자율적으로 외교 활동을 하는 것을 허락해주었다.[10]

3.1. 입법부[편집]

파일:external/static.panoramio.com/60875474.jpg

2011년 정부청사와 함께 지어진 입법회 청사. 정부청사 옆에 위치하고 있다.

총 의석 70석의 입법회(Legislative Council, LegCo)가 설치되어 있다. 지역 직접선거 의석과 직능 선거구 의석에 각각 35석이 배분되어 있으며 직능 선거구 의석 중 30석은 직능단체별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임기는 4년. 식민지 시절이었던 1843년에 설치되었으며 1995년에 완전 민선화되었지만 홍콩이 중국에게 반환되면서 완전 민선화는 물건너갔다. 각 구에는 구의회가 설치되어 있다.

가장 최근 선거는 2016년 9월에 있었으며 친중파 계열 정치세력이 40석, 민주파 계열 정치세력이 29석[11]을 차지했다. 이전에 비해 친중파 의석이 3석 줄고 민주파 의석이 2석 증가했으며[12], 무엇보다 민주파 중에서 홍콩 우산 시위를 이끌었던 학생운동가들과 홍콩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급진 인사들이 당선되어 구 민주파 정당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홍콩 정부 당국은 홍콩 독립운동에 대해서 당연히 재갈물리기에 나서고 있으며, 홍콩 독립운동을 주장하는 의원들 대해서 의원직 박탈을 고려하였고# 중국 베이징 중앙정부 당국은 홍콩 기본법 제104조 해석 규정을 통해 홍콩 독립운동을 주장하는 인사의 공직 임명을 불허하는 규정을 마련해 홍콩 독립운동을 주장하는 의원들을 퇴출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발도 크다.# 입법회에서 의원을 퇴출하려면 정족수 2/3의 동의가 있어야 하지만, 홍콩 고등법원에서 입법회의 동의 없이 홍콩 독립운동을 지지한 의원 당선자 2명을 자격 박탈하였으며, 13명도 심사 중이다.# 2017년 7월에 그 중에서 민주파 4명을 박탈했으며, 그동안 받은 봉급마저 환수당해 1인당 수억 원의 돈을 토해한다는 판결까지 나왔다.

2018년에 홍콩의 독립을 주장하는 정당의 해산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시민단체, 야권에서 반발하고 있다.# 결국 9월에 홍콩민족당의 활동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3.2. 행정부[편집]

홍콩/행정조직 항목 참조.

행정부의 최고 수반은 홍콩 특별행정구 행정장관(香港行政長官, HKSAR Chief Executive)으로 임기는 5년이며 1차에 한해 연임할 수 있다. 관저는 홍콩 예빈부이다. 현재 행정장관은 4대째로, 2017년에 당선된 친중파 캐리 람(Kerry Lam, 여성)이며 전임자는 렁춘잉(梁振英, 표준중국어로는 량전잉)이다.

행정장관은 선거위원회라고 하는 투표인단 1200명[13]에 의한 간접선거로 선출된다. 이 투표인단은 직능단체와 홍콩 입법회 의원 등으로 구성[14]되어 있는데 직능단체 투표인단은 홍콩 주민들이 직접 선출한다. 즉 미국의 간선제와 비슷하면서 또 다르다.

2017년 3월 26일에 제4대 행정장관 선거가 오전 9시에 완차이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실시되었는데, 장관 선거의 후보로는 현재 당선이 유력하다고 할 수 있는 친중파 대표주자 캐리 람 전 정무사장(우리나라의 행정자치부 장관), 온건 친중파 존 창(John Tsang) 전 재정사장(우리나라의 기획재정부 장관), 민주파 우쿽힝 전 홍콩고등법원 판사 이렇게 3명이 후보로 출마했다. 투표 결과는 오전 11시에 발표된다고 한다.

파일:external/img.etoday.co.kr/20170326181726_1039936_400_266.jpg

캐리 람 후보는 강성 친중파로서 시진핑 중앙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현재 선거위원회 위원 중 70%에 달하는 579명을 확보했다.

파일:external/www.hktimes.co/f79380db9f5fedc69d52123db5502dcb_gOEFiK5j84CWwHCQ5eJsbeCv.jpg

존 창 후보는 온건 친중파로서 홍콩 정재계와 민주파의 폭 넓은 지지를 모으고 있다. 현재 선거위원회 위원 중 160명을 확보했다. 프링글스 캐릭터와 비슷하게 생겨서 프링글스 아저씨가 별명이며 젊은 층이 특히 좋아하는 사람이다.

파일:external/www.hktimes.co/f79380db9f5fedc69d52123db5502dcb_O9s6LapFIxCexRJ.jpg

우쿽힝 후보 또한 중도로 민주파에 가까운 인물로서 현재 선거위원회 위원 중 179명을 확보했다.

2017년 3월 26일 오후 6시, 홍콩 영자신문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SCMP)'의 보도에 의해 행정장관 선거위원회 위원 (선거인단) 1,194명 중 과반인 601표를 크게 초과한 777표를 획득해 "캐리 람" 후보가 제4대 행정장관에 당선되었다. 매일경제의 보도에 따르면, 당선의 원인은 투표권을 가진 선거인단 1,200명 (6명 공석으로 1,194명) 중 800명이 친중 성향이기 때문이라고 보도하였다. 반면 반중 성향이 매우 강한 홍콩 청년층의 지지를 받은 존 창 후보는 365표를 얻는데 그쳤다. 홍콩 영자신문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SCMP)'의 보도에 따르면, "투표권이 없는 홍콩 시민들의 지지율이 람 전 시장보다 최대 30%포인트 높았던 창 전 사장이 패배한 이유는 중국 정부의 신임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였다.

캐리 람 후보는 중국의 노골적인 지지로 당선된 만큼 중국의 홍콩에 대한 간섭도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언론들은 전망하고 있다.

사실 홍콩은 올해부터 행정장관 직선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중국 당국과 홍콩인들이 바라는 직선제안은 매우 달랐다. 중국 당국은 후보자가 중국 전인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했고 홍콩인들은 자유 출마를 보장해야 한다고 보았다. 우산 시위의 원인이 이것이었다. 게다가 독립파들을 중심으로 홍콩의 정치개혁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왔으며, 민주파 정치인들은 행정장관 직선제 도입 약속을 어기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3.3. 사법부[편집]

파일:external/www.discoverhongkong.com/1.4.5.1.12-Old-Supreme-Court-Building.jpg
파일:external/www.rthk.org.hk/mfile_56_1113404_1.jpg

홍콩 종심법원의 모습.

대륙법 체계를 사용하는 중국 대륙, 대만, 마카오와는 다르게 영미법을 따른다. 그래서 영국,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과 법률이 비슷하다.

그리고 중국 대륙과 달리 삼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또한 중영공동선언홍콩기본법에 따라 사회주의 체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해서 중국 본토의 법률은 특수한 경우[15]를 제외하고는 적용되지 아니한다. 대표적으로 최고법원인 종심법원(Court of Final Apeal)과 2심법원인 고등법원(High Court)과 1심법원인 구역법원(District Court)과 형사상 경범죄를 약식 재판하는 치안법원(Magisrates 'Court)이 있다. 이외에도 토지 및 부동산 분쟁을 담당하는 토지법정, 노사 분쟁을 조정하고 심판하는 노동법정, 특정 상품이나 전시품의 음란성 여부를 심판하는 음란물품법정과 소액청구법정, 자연사 이외의 사인을 심판하는 검시법원과 소년법원 등도 있다. 사법부 수장인 종심법원 수석법관은 행정장관이 지명하고 입법회의 동의를 얻어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임명한다.

홍콩 반환 이전에는 현재 2심법원인 고등법원이 최고법원(Supreme Court)이였고, 상고재판은 영국 본토에 있는 추밀원에서 담당했다. 홍콩이 반환된 이후에 영국 추밀원이나 중국 본토의 최고인민법원에서 판결을 내릴 수 없으니 홍콩에 3심법원을 새로 세운 것이다. 법률 해석도 홍콩 종심법원에서 담당하지만, 홍콩의 헌법인 홍콩기본법의 해석 등은 중국 본토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에서 하고 있다.

외국인 판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영국령 홍콩 시절 사법 인재의 풀이 적었기 때문에 영미권 법조인들을 초청해 온 것도 있고 홍콩에서 태어난 유럽계, 인도계 판사들도 있다. 영국령 시절에는 법조인 대다수가 외국인이었다. 2000년대 이후 법관은 현지의 중국계 홍콩인으로 대체되어 가면서 계속 그 수가 줄고 있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충분히 많고 그 수가 늘고 있다. 공직의 경우 원래 식민지 때 백인들과 인도계가 독점하다 중국계에 오픈한 것에 가깝다. 그러나 종심법원 수석법관(한국의 대법원장 격)과 고등법원 수석법관은 다른 나라의 영주권이나 국적을 갖지 않은 홍콩인이어야 한다.

3.4. 청렴도[편집]

홍콩 경찰, 관료들의 부정부패는 아예 100%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99% 없다. 염정공서, 영어로 ICAC(廉政公署)란 행정장관 직속의 초법적 독립수사기구가 있어서 내부감찰도 있는데다 혐의가 있는 건 말이 필요 없을 정도고, 공무원이 자신의 재산 형성을 입증하지 못 할 경우에도 뇌물로 간주한다.

이게 생길만 한게, 1970년대 홍콩 사회의 부정부패를 보다 못한 당시 홍콩인들의 요구로 만들어진 기관이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초기엔 경찰들이 수사권을 이유로 반대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홍콩행정장관이 직접 지휘한다. 한국에도 국민권익위원회(구 국가청렴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ICAC는 1974년에 개설된데 비해 권익위는 2002년에 개설되어 커리어도 아직 부족하고, 실질적인 머릿수도 넘사벽으로 ICAC 1300명에 비해 권익위는 절반도 안된다. 인구는 7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 말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FBI식의 특별수사청이나 홍콩식 공직비리조사처가 자주 화제가 되지만 검찰이 반대하고 있어 검찰 스스로부터 무언가 두려워할만한 것이 있거나 직수권(직접수사권)을 박탈당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 아닌가 싶은 의혹을 많이 제기한다. 도대체 한국은 뭐하냐..

3.5. 문제점[편집]

중국 본토에 비하면 홍콩의 정치는 상당히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편이다. 그러나 일단 1당 독재국가 중화인민공화국의 특별행정구라 이런저런 절차상의 문제점이 많다.

우선 행정장관 선거위원회 위원 중 중국 중앙 정부에 우호적인 직능단체(예: 중의사)의 의석 비중이 인구에 비해 지나치게 크고[16] 중국 중앙정부에 적대적인 직능단체의 의석 비중이 낮아 선거 자체가 친중파에 유리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홍콩 행정장관으로 있었던 퉁치화(董建華)와 도널드 창(Donald Tsang, 曾蔭權), 렁춘잉, 현임 캐리 람 모두 친중파이다.

때문에 홍콩의 민주파는 행정장관의 직선제화를 계속해서 주장해왔으나, 중국 정부는 이를 들어주기는 커녕 설령 홍콩 의회에서 직선제 개헌안이 통과되더라도 중국 전인대에서 승인이 되어야 직선제 개헌을 인정할 수 있다고 못박아버렸다. 그러다가 중국 정부도 결국 이 요구를 이기지 못하고 2017년부터 홍콩 행정장관을 직선제로 선출하는 데 동의했다.

문제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과반수 지지를 얻은 후보자 2~3인을 내보내면, 홍콩 주민은 이 중 1명을 직접 선거로 뽑아야 한다. 당연히 전국인민대표대회는 민주파·반중파 인사가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반길 리가 없으니 직접 선거를 하더라도 친중파 후보 1·2·3 중 한 사람을 뽑어야 하여, '어용 선거'나 다름없다. 당연히 홍콩 민주파는 이 무늬만 직선제(사실상 임명)에 반발하고 있다. 결국 직선제 도입은 민주파와 친중파 간 의견 충돌로 인해 무산되고 2017년 행정장관 선거 역시 간선으로 치러졌다.

홍콩 입법회 역시 구조적으로 친중파가 유리하게 되어 있다. 지역구 선거에서는 친중파보다 민주파가 늘 우세한 편이다. 2016년 총선의 지역구 선거에서 친중파는 40.3%를 득표한 데 비해 민주파(독립파 포함)의 득표는 55%에 달했다. 그러나 홍콩 입법회는 70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35석은 지역구 의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머지 35석은 5명의 직선제 직능대표 의원과 직선제 선거로 뽑히지 않는 '30명의 간선제 직능대표 의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간선제 직능대표 의원 선출은 특정 기업이나 그 기업의 중역 등이 과대표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고, 그 결과 이 간선제 직능대표 의원 대다수(12년 총선 기준 30명 중 24명)가 친중파이다. 결과적으로는 친중파들은 득표 자체는 민주파보다 밀려도 입법회에서는 다수를 점하게 된다. 2012년 총선 결과 친중파는 43석, 민주파는 27석의 의석을 얻었는데, 이들 간선제 의원들을 제하고 보면 지역구에서는 친중파가 35명 중 17명, 직선제 직능대표 의원에서도 5명 중 2명으로 전부 민주파에 밀렸다. 홍콩 야권은 이것 때문에 의원 전원을 직선제로 선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대륙 정부가 듣지도 않고 있다. 대륙 정부의 입장은 일단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무사히 치른 다음 논의해 볼 사안이라는 것이다.

삼권분립의 또 다른 한 축인 사법부 역시 최근 들어 대륙 정부의 사법권 침해가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사실 영국령이었을 때부터 식민지의 한계로 인해 홍콩의 정치 체제가 완전히 민주적이었다고 하긴 힘들다. 홍콩의 의회 역할을 하는 홍콩 입법회 의원선거가 완전 직선이 된 게 1991년이었고, 이나마도 60석 중 17석은 총독이 임명했다. 행정권과 홍콩 주둔 영국군의 군령권까지 가진 홍콩 총독은 반환 직전까지도 영국에서 임명해 내려보냈다.[17][18] 겉모습만 보면 차라리 행정장관을 간선으로나마 뽑아온 오늘날 홍콩 특별행정구의 정치체제가 아주 조금 더 민주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겉모습만 그렇고 실제로는 언론 자유 침해나 은근한 출판의 자유 제한 등 영국이 하지 않았던 민주주의 침해를 오늘날 중국 정부는 자행하고 있다.

2047년까지 홍콩은 기본법 및 중-영 간 합의에 따라 체제를 보장받으며, 그와 별개로 사회주의 체제를 적용하지 않는 별도 행정 구역인 특별행정구로서 본토의 각종 규제들도 적용되지 않고 100%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돌아가며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이되 자체적인 통치를 하고 있다. 2007년 반환 10주년을 맞아 후진타오 정부가 "홍콩, 마카오 일국양제 지속"으로 천명했으며 시진핑 현 국가주석은 일국양제가 홍콩의 번영을 이룩했다며 일국양제의 적극 실천을 피력했다.관련기사 그러나 갈수록 중국 공산당의 입김이 강해지고 있어 홍콩의 민주주의는 쇠퇴한다는 우려가 많다. 중화민국 관련 뉴스에 관한 중국 공산당의 보도지침 하달, 홍콩 기본법 23조[19] 관련 논란 등 일국양제 원칙이 조금씩 손상되고 있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아예 중국 공산당은 2014년 6월 '홍콩 특별행정구에서의 일국양제(一國兩制) 실천’ 백서에서 '공산당이 홍콩에 대한 통치권을 가진다'라는 언급을 하여 홍콩의 자치권을 제대로 존중할 의사가 없고 일국양제는 껍데기에 불과함을 밝히기도 했다. 관련 기사

중국 대륙중국인들과 비교해 역사적 경험이나 기본적인 시민교육수준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홍콩 시민들의 정치 의식은 넘사벽으로 높은 편이다. 천안문 사태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정치 탄압을 비난하고 '중화인민공화국에도 민주주의가 실현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쓰투화(司徒華)[20]라는 사람마저 있었을 정도로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홍콩의 이런 진보적인 성향을 억누르려고 시도하고 있다. 게다가 홍콩 정치권 내에서도 갈수록 진보 성향의 민주파보다는 친중파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라 홍콩 민주주의의 미래는 암울해지고 있다.

법리적으로 일국양제 원칙이 2047년이라고 폐지될 가능성은 적지만[21], 만약 중국 공산당이 현 추세를 유지하며 행정장관 선거나 홍콩 사법부의 임명에 대한 간섭을 계속할 경우 사실상 일국양제는 껍데기만 남고 홍콩의 민주주의나 자유주의의 실질적인 요소들은 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위험성이 있었다.

때문에 계속 시위를 해왔고 결국 2014년 홍콩인들은 이러한 일국양제를 훼손하려 하는 중국 공산당의 방침에 반대하여 집단행동을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우산 혁명이다. 우리에게는 우산 시위가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도 민주 시위가 상당히 자주 일어나는 편이었다. 2011년 8월 리커창 중화인민공화국 부총리가 홍콩 방문 도중 시위대와 맞닥뜨리는 경우도 있었고, 2013년 6월말 보아의 페이스북으로 7월 1일에 열리는 홍콩 돔 페스티벌의 불참을 요구하는 탄원성 댓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기사 1 기사 2

홍콩에서는 이런 식으로 중국 공산당이 민주주의/자치 보장을 안 해준다면 차라리 떨어져 나가겠다는 홍콩 독립운동이 있다. 지지자들은 아직 적은 편이지만 대학이나 중고등학교에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공산당과 홍콩 정부가 긴장하는 중이다. 물론 국제적으로 보는 눈이 많아 대륙에서 하듯이 무조건적으로 때려잡기보단 홍콩인들을 달래는 방식으로 무마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중국 대륙으로 퍼져서 광둥 성의 도시들인 광저우, 선전 등 본토 연안도시들까지 이런 민주화 요구가 확산되거나 더 나아가 광동 분리 움직임이 보이면 즉각 반국가분열법을 적용, 때려잡는 게 가능하다. 본토는 국제사회 간섭이 덜하기 때문이고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는 항시 대기 중이다. 하지만 2015년 이후 경제난으로 통치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공산당이 언제까지 현재처럼 1당 독재로 대륙인들이라고 마냥 윽박지르기도 어렵다.

홍콩 독립운동을 주장하는 의원 2명이 자격을 박탈당했고, 나머지 13명의 독립 성향 의원들도 홍콩 정부가 조사중이다. 독립주장은 홍콩 기본법을 위반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그에 대한 의원직 박탈은 홍콩 사람들의 의사를 무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홍콩 시민과 홍콩 정부 간, 그리고 더 나아가 공산당과 홍콩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민주파에 대해서 중국 공산당이 내륙여행 제한 조치를 해제, 전면 자유화하는 등 민주파와 화해 모드에 들어갔다. 이는 중국 공산당이 홍콩의 민주주의 및 항인치항(港人治港, 홍콩인이 홍콩을 통치한다)이라는 현실을 어느 정도 인정하되, 대신에 홍콩에 대한 주권만큼은 강력히 행사하고 홍콩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극소수 극우의 망발로 고립시키겠다는 의도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2017년 차기 행정장관을 선출할 간선 선거인단을 뽑는 선거에서 홍콩 야권이 전체 1,194명 중 4분의 1인 327명을 확보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 결국 차기 행정장관으로 위에서 보듯이 친중파로 분류되는 캐리 람이 당선되었고 이로 인한 친중파와 민주파 혹은 독립운동 진영 간의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중국이 의도했던 1국가 2체제는 정치적 측면보단 경제적 측면이 강하다. 즉 사회주의가 아닌 전면적인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가진 별도의 행정구역들을 만들고 중국 대륙과 분리된 홍콩/마카오 특별행정구와 본토 간 무역을 활발히 하며 중국 국내와 달리 외국인이 아무런 법적 규제를 안 받는 곳[22]을 만들어 돈을 벌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한 자치나 완전한 민주주의를 약속한 건 아니다. 우산혁명 등의 충돌은 그러한 일국양제에 대한 해석의 차이로 일어나는 갈등이다. 중국은 홍콩에 경제 자유를 부여했지 완전한 자치나 완전한 민주주의를 허락하진 않았다. 위에서 나타나 있듯 이전 영국령 홍콩도 완전히 민주주의적인 정치체제나 자치를 보장했다고 보기 어려웠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의 논리가 먹혀들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4. 홍콩에서 통용되는 언어[편집]

5. 역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영국령 홍콩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영국령 홍콩 기.png
영국령 홍콩의 식민지기.

홍콩의 역사는 구석기 시대까지 그 기원이 올라간다. 현재의 홍콩인을 포함한 광둥인은 한족이 맞지만, 원래 이 지역은 현재 베트남과 같은 월족이었다. 지금도 엄밀히 말하자면 한족화된 월족으로 보는게 더 정확하다. 그래서 광동어의 이명(異名)은 "월어"라고 불렸다고 한다. 애초 광둥은 고대에 월지방 내진 남월 지방이라고 했는데 월나라보다 남쪽 또는 월나라의 영역 중에서 남쪽이라는 뜻이다. 사실 월나라와 산월의 영역을 고려해보면 광둥인 뿐만 아니라 복건인이나 저장성(절강성) 주민들도 원래는 월족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방언 차는 이쪽도 크다. 애초 한족 자체가 만들어진 아이덴티티로 중원의 한족, 북방의 한족 그리고 남방 한족은 생김새도 언어도 많이 다르다. 마치 아랍어를 쓰는 사람을 모두 싸그리 잡아다 아랍인이라고 정의한 것과 같다. 사실 민족이라는 것 자체가 19세기 이후 만들어진 자의적인 기준이기는 하다. 그러다가 진나라한나라한족 왕조의 정복으로 인해 복속되고 전란을 피해 중국대륙 중북부의 한족들이 남쪽으로 이주하여 섞여들어와서 한족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DNA도 홍콩이나 광둥성, 광시 좡족 자치구, 하이난성 쪽의 한족은 중원이나 화북 지방의 한족보단 오히려 동남아시아와 유사하다.[23]

역사시대에는 진시황에게 병합되었다가[24] 진시황 사후 이 곳에 파견되었던 임효와 그의 부관이었던 조타(베트남어로는 찌에우 다)가 광저우를 수도로 남월을 건국했다. 남월은 남쪽 월나라라는 뜻. 남월은 광둥성, 광시 좡족 자치구, 하이난성, 구이저우성, 윈난성 일부와 베트남 북부를 아울렀으나 대에 무제에게 정복당해 이후 중국의 영역에 들어가고 한족화된다. 당(통일왕조)북송, 원나라대에는 무역항과 해군 기지로서 활용되었다. 송나라 최후의 전투인 애산 전투가 이 근처에서였고 여기서 원나라에 패배한 조씨 황족들은 전부 까우룽 반도에서 바다에 뛰어들어 자결했으며 원나라는 베트남미얀마를 정벌하는 기지로 사용했다. 명나라가 망한 뒤 남명이 잠깐 들어섰다가 강희제의 친정으로 청나라에 복속되었다. 원과 청 둘다 북방 계통의 정복왕조라 자신들의 고향인 내몽골, 만주나 수도인 베이징과도 심지어 강남의 중심지 항저우와도 멀리 떨어진 이 곳에 무관심했다.

1513년에 포르투갈인 조르즈 알바레스(Jorge Álvares)가 서양인으로써 최초로 홍콩에 상륙한다. 그리고 서양과의 접촉이 이어지다가 마침내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광동성 근처 도시에 무역항을 건설하면서 처음으로 홍콩과 영국의 접촉이 이루어진다. 제1차 아편전쟁홍콩 섬1841년 영국군에 의해 점령되었고, 다음해의 난징 조약으로 청으로부터 정식으로 양도되었다. 이듬 해에 영국은 빅토리아 시티(Victoria City)의 건립과 함께 총독부를 신설하였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 패배 이후 바운더리 스트리트(Boundary Street, 限界街)의 남쪽 까우룽 반도(몽콕 주변)와 스톤커터스 아일랜드(石環島)가 베이징 조약으로 영속적으로 영국에 귀속되었다. 영국의 식민지가 된 셈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p_of_Hong_Kong_in_First_Convention_of_Peking_in_1860.jpg
파일:external/i0.wp.com/Zolima_Boundary.jpg

1860년 영국으로 할양되어 영구 귀속된 영역. 현재의 모습을 보면 육지의 확장으로 해안선에 많은 변화가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p_of_The_Convention_for_the_Extension_of_Hong_Kong_Territory_in_1898_-_1.jpg

1898년 추가 조차되어 편입된 지역. 현재의 지도와 거의 같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Map_of_Hong_Kong.svg.png

현재의 홍콩 지도.


1898년영국은 홍콩과 인접한 북부 섬과 산까이(新界, 신계)를 당시 충분히 영구 양도받을 수 있었음에도 99년간 조차했는데 유효기간은 1997년까지. 이는 후일 홍콩 반환의 원인이 된다. 국공내전 이후 중국 공산당 정부는 영국과 벌인 홍콩 반환에 관한 협상에서 공동강령 55조를 통해 영국과의 조약 자체를 인정하지도, 계승하지도 않겠다는 입장이긴 했지만 서방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존에 체결한 조약을 부정하는 건 무리였으므로 이 99년 조차만 아니었으면 영국은 홍콩을 지브롤터처럼 영구히 소유할 수 있었고, 99년 조차에 따라 신계를 돌려주더라도 1860년까지 귀속된 지역은 무조건 영국 영토로 영구 인정되는 상황이었다.

19세기의 홍콩은 영국의 주요 무역항이었다. 홍콩은 영국의 물산 집산지로써 활용되는 자유 무역항으로 선언되었고 구룡반도에서 광동 성 곳곳으로 운행하는 철도가 개통되었으며, 영국식 교육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홍콩은 아시아의 영국령 중에서 가장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문화가 꽃핀 지역이다.

태평양 전쟁 개전 이후 홍콩은 일본군의 항복 요구를 거부하고 격렬히 저항했으나 정예군이 밀어붙인 일본군에 비해 영국 해군 소속의 극소수의 수병해병캐나다군을 포함한 소수의 지상군(그나마 대부분이 식민지에서 모집해온 용병들)이 수비전력의 전부였던 영국군은 병력, 화력의 차이로 점령되었고 이때 홍콩 총독이 항복 문서에 서명까지 했다. 당시 영국이 홍콩에 보내던 총독들은 일본군의 장성급 장교들이 주로 가던 조선총독부대만총독부의 일본 총독과 달리 법관 등 문관 출신들이 많았으며, 당시 총독은 까우룽의 페닌술라 호텔에서 일본 군인들이 총칼로 위협하자 겁을 먹고 투항해 버린다. 사실 일본은 영국이 홍콩을 통해 중화민국을 지원해준다는 이유만으로 무단으로 쳐들어간 것이었다.

여튼 1941년부터 1945년까지 4년 동안의 짧은 일본 식민통치 기간 중 홍콩 경찰은 강제 해산되고 그를 대신한 일본군 헌병들은 현지인들을 잔인하게 억압했다. 민간인 학살 의혹도 있다. 그리고 홍콩 소방처 역시 해산, 영국 왕실이 직접 선물한 소방차는 일본에 고철로 팔려 버리고 일본 해군공병대가 이를 대신했다. 종교적으로도 일본의 억압이 지속되어 홍콩신사 등 신사를 짓고는 (그것도 기독교 교회를 뜯어고쳐서) 홍콩인들에게 여기 참배를 강요하기도 했다. 페닌술라 호텔은 토야 호텔로 이름이 바뀌었고, 영어 사용은 금지되고 대신 일본어를 보급하였으며 거리 이름도 빅토리아 등 영국풍을 최대한 없애고 일본식으로 고쳤다. 홍콩 카이탁 국제공항이 이 때 일본 해군에 의해 활주로가 확장되었었다. 그리고 화교계 주민은 물론 현지 거주 영국인들도 위안부에 끌려간 경우가 있다보니 홍콩은 대만과 달리 지금까지도 반일 감정이 꽤 남아있는 편이다. 물론 지금은 그와 별개로 경제 교류가 활발하다보니 일본인들이 많이 이주해있는 지역이기도 하지만.

종전 후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로 다시 돌아갔다. 이때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되면서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로 돌아서자 공산주의 사막 속 자본주의의 오아시스처럼 여겨져 수많은 중국 부호들과 공산당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홍콩으로 몰려오기 시작하여 인구밀도는 이때부터 세계 최고를 찍었다.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하여 제조업 중심의 경제로 성장하였으나 70년대 이후 지리적 장점과 정치적 안정의 덕을 보아 동아시아 금융권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된다.

중국 공산당은 홍콩 할양은 아편전쟁으로 인한 불평등 조약의 결과라며 영국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고 행정권만 인정해 왔다. 실질적으로 자기 영토로 간주하고 상호 왕래 시 내륙여행 허가증을 비자 대신 발급받을 것을 요구했다. 즉 중국 영토 중 간접통치하여 따로 노는 곳 취급을 한 것으로 현재 타이완 섬에 대한 취급과 동일했다.[25]

물론 이곳도 격동의 현대사를 완전히 비껴간것은 아니어서, 1922년 홍콩 선원 파업, 1925년 5.30 운동, 1956년 쌍십폭동(雙十暴動), 1967년 67폭동이 일어났다. 특히 67폭동은 홍콩 현대사의 분수령이다. #영어판 다큐 발단은 오랫동안 저렴한 노동력이 강점으로 여겨지던 홍콩의 경제구조가 한계를 맞이하면서 사회갈등의 불씨가 된 것. 1966년에 스타 페리 요금 인상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이 해결은 커녕 방치되면서 영국령 홍콩 정부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고, 다음해인 1967년, 산발적으로 일어나던 노사분규에 경찰이 강경진압을 시행하면서 일파만파로 퍼진것. 여기에 민주적 지식인들, 중고등학생들, 대학생들, 공산주의자들, 모택동주의자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합세하면서 대투쟁이 벌어진 것. 당시에는 문화대혁명이 중국본토에서 벌어지던 시기여서 굉장히 강력한 집단을 이루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친중파로 규정되지만 현재의 친중파 정당과는 달리 마오쩌둥을 따랐던 공산주의자들이었다. 하지만 공산주의를 피해 본토에서 망명온 사람들이 많았고 이들이 반공인사들에 대한 적색테러를 감행하고 경찰들을 살해하여 전 시민들의 호응을 얻진 못했다. 다만 이 사건으로 흥분한 홍위병들이 영국 대표부를 공격해 점령하는 사건이 있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의 1966년 파트에서는 홍콩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등장인물들이 해외로 떠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사건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묘사한 것.

앞서 보았듯이 홍콩섬과 까우룽 반도 남부 등은 아편전쟁의 결과로 영구히 청나라에게 양도받은 영국 영토이지만, 까우룽 반도의 나머지 지역(신계)은 나중에 청나라로부터 99년의 기간을 정하여 추가 조차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신계의 조차 기간 만료를 앞두고 영국과 중국은 1982년부터 홍콩 문제에 관한 회담을 시작한다. 회담에서 영국은 조차 기간을 15년 연장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하고, 중국 측은 청나라 때 맺은 조약은 모두 불평등 조약이므로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영국이 점유하고 있는 홍콩의 모든 지역을 반환하라고 요구하다가 서방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홍콩 섬과 까우룽 반도에 대한 영국의 영유권은 인정하는 입장으로 후퇴했다. 그러나 홍콩 섬과 까우룽 반도의 공간은 매우 협소하고 전기 기타 인프라를 넓은 신계 북쪽 지역에 의존하였는데, 그 신계 지역을 상실하고 홍콩과 까우룽 지역만이 자립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으므로, 22회에 걸친 협상 끝에 1984년 영국은 홍콩 전 지역을 반환하되 중국은 홍콩에 일국양제를 적용한다는 내용의 중영공동선언이 발표된다.

홍콩 섬은 아편전쟁의 결과로 1841년 영구 할양, 구룡반도 역시 애로호 사건 이후 영구 할양 이었다. 이후 바운더리 스트리트에서 청나라와 직접 대치가 버거운 영국이 1899년 청으로부터 당시 신안현 즉 현재의 구룡반도 북부의 카우룬시티, 쿤통, 카우룬베이, 삼수이포, 메이푸, 쳥샤완, 라이킹, 웡타이신, 카이탁, 토콰완 등 이른바 신구룡 지구와 신계를 99년 조차했으며 이후 바운더리 스트리트 밖의 카이탁공항을 만들어 사실 상 이도 사문화시키고 중국에 반환해야 할 땅은 신계 외곽지대(초록색 교외용 택시가 영업하는 구간)으로 한정되었다. 당연히 중화민국은 이를 불인정했고, 뒤를 이은 중화인민공화국도 불인정했다. 홍콩 반환 협정의 원인은 중국의 개방 및 일본(1972년), 미국(1979년) 등과의 잇따른 수교로 굳이 중국을 적대시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과 홍콩 섬+구룡반도+신계의 일부(샤틴, 추엔완, 칭이 섬, 신구룡)만으로는 제대로된 식민지 경영이 어려워서가 복합적인 원인이었다. 그때 신계 외곽은 빈 땅이라고는 하지만 이쪽만 반환하고 도심은 영국이 계속 가지면 형평성 문제도 있었다.

영구 할양 받은 지역까지 통째로 반환해주는 대신 영국은 중영공동선언의 규정에 따라 홍콩에 어느정도 개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았다. 물론 반환 이후는 엄연히 중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하나의 중국을 중시하는 중국이 영국의 개입을 허락한 적은 없었다. 물론 이것이 중영공동선언의 폐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은 홍콩의 영유권을 지키는 선에서 영국의 경제적인 이권을 보장해준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만약 가정이긴 하지만 대처가 이 지역의 반환을 거부했다면 90년대 후부터 진행된 신계의 대규모 개발은 첫 삽도 못뜨고 모조리 백지화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26] 홍콩 섬과 카우룽 지역은 싱가포르 처럼 필수 인프라의 상당수를 외국에 의지해야 했을 것이다. 식량의 경우 신계가 있건 없건 어차피 홍콩의 식량 자급률은 바닥을 기는 수준이고, [27] 식수의 경우 어차피 96년도 이전에도 전부를 중국 선전 댐에서 공급받고 있었으므로 홍콩섬을 못 돌려받은 덩샤오핑이 불만을 품고 강짜를 부리지 않는한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지만, 사람들이 살 만한 시가지를 추가로 만들 남아있는 교외지가 신계 빼면 홍콩 섬 남부 말고는 거의 없어서 주거환경은 매우 열악해지고, 이렇게 되었다면 중국과 홍콩 국경선은 샌디에이고-티후아나 국경선을 가볍게 뛰어넘는, 세계에서 가장 통행량이 많은 국경선이 되었을 것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홍콩 섬 남쪽엔 대규모로 인공섬 간척사업이 진행되었을 수도 있다.

결국 홍콩은 마지막 총독인 크리스 패튼의 임기를 끝으로 1997년 7월 1일 중국령이 되는데, 천안문 6.4 항쟁의 여파 때문인지 홍콩인들이 받은 충격과 불안감은 실로 대단한 것이였으며, 실제로 과거 베트남이 공산화 되었을 때 탈출한 남베트남인(보트피플)처럼 홍콩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버린 이들도 꽤 된다. 특히 많이 간 곳이 캐나다에서도 밴쿠버[28]. 이 시기의 홍콩을 무대로 한 홍콩 97 같은 작품도 있을 정도. 반면 중국으로의 복귀를 환영, 지지한 홍콩인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홍콩 반환 이후 일국양제가 정착되고 10년간 홍콩 사회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홍콩으로 복귀한 홍콩인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29].

중국이면서 동시에 영국 같은, 또는 외국 같은 특이한 동네. 중국 땅이라지만 제법 따로 놀고 거의 보호'국' 수준의 자치를 한다고 보면 된다. 그래도 중국령은 중국령인지라, 홍콩 반환 당시 타이베이중화민국과 수교하고 있으면서 홍콩에 영사관을 설치했던 16개국[30]은 영사관을 폐쇄해야 했다.[31]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당시 중화민국과 수교가 유지되고 있었지만 이미 1996년 11월에 1998년 1월 부로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하겠다는 선언을 했었기에(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과도기 동안 영사관을 유지하는 것을 허락받았다.[32] 그리고 바티칸중화민국과 수교하는 관계로 아직까지 대사관을 홍콩에 두지 못하고 있고 대만을 거쳐 일을 처리하는 형편인데 중국과 수교한 뒤에는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가톨릭의 경우 본토 내 종교의 자유 문제로 홍콩인마카오인 신도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들의 신앙심도 깊어서 정식 교황청 대사가 파견되면 꽤 도움이 될것으로 보인다.

6. 홍콩의 대외관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콩/대외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1. 한국과의 관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국-홍콩 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2. 중국 대륙과의 관계, 갈등과 마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콩-본토 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종교[편집]

홍콩은 법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말로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고 실제로는 탄압하는 중국 대륙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각 종교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가톨릭은 중국 본토와 달리 교황의 수위권 하에 놓여있다.

단 홍콩 교구는 광저우 대교구 소속으로 중국 본토 가톨릭과 합일되어 있다. 중국 본토의 가톨릭이 보편교회와 일치되지 않은 것일 뿐이지 중국 자체는 엄연히 교황의 수위권 내에 있으며 홍콩의 추기경은 중국 추기경으로 인정되고 주교도 홍콩주교는 중국주교로 인정된다. 그래서 홍콩 주교는 중국 가톨릭을 대표한다는 의미로 거의 항상 추기경에 선임되는 편이다. 그리고 중국 본토도 지하교회는 정상적인 교황의 수위권 내에 있으며 최근 바티칸과 중국의 수교 노력을 통해 애국교회를 공인할 조짐도 보인다.

개신교도 중국과 달리 활동이 자유롭고 파룬궁도 활동이 자유롭다.

메이저 종교는 개신교+가톨릭기독교불교, 도교가 반반을 차지한다.

총 인구의 60%가 무종교 내진 무신론이고 40%는 종교인이다. 종교인은 기독교, 도교, 불교가 각각 20%씩 반반을 나누어 차지하는 모양새를 보이며, 젊은 세대로 갈수록 무종교화되거는 경향을 보인다.

총 인구 중 40%를 차지하는 종교인 중에는 불교도교 그리고 기독교신자가 많은 편인데, 특히 도교 사원을 접할 기회가 드문 한국인 입장에선 도교사원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2010년 통계에 따르면 불교도가 21.2%(약 150만명), 도교 신자가 14.1%(약 100만명)로 집계되며 불교와 도교 사원이 무려 600여개 정도 있다고 한다. 포린 사원의 거대 청동좌불상 등 홍콩의 영화촬영지나 관광지로 유명한 곳도 많다. 단, 현재 도교 및 불교는 교세가 쇠퇴하는 중이다. 집안 전통만 불교나 도교인 젊은 층이 대거 무신론자로 갈아타버렸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도 2014년 기준으로 로마 가톨릭정교회, 개신교 등을 모두 합하여 87만 명으로, 700만 인구 기준 12% 이상으로써 교세가 만만찮게 크다. 현재는 더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만 해도 84만 명이었으며 6년이 지난 현재는 100만에 근접했을 걸로 추정된다. 이 쪽은 2005년 72만에서 2010년 84만 명으로 확실히 수가 늘고 있다. 한국처럼 반기독교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민 오는 중국 대륙인들 중에 광둥 성의 지하교회 교인도 많아서이다. 물론 1997년 홍콩 반환으로 인한 불안감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대거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등으로 이민가고 그 자리를 본토 중국인이 차지하면서 교세가 쇠퇴했으나 2000년을 기점으로 다시 이민자들이 귀국하고 중국 본토인들 중에 개종자가 생기면서 수가 다시 늘고 있다.

홍콩의 각 교파 교회들과 한인교회들은 현재 셀교회(cell church)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셀교회는 교회 부서들을 셀이라는 소조직으로 나누어 조직 별로 활동하는 걸로 이 셀교회의 종주국이 싱가포르이며 홍콩 교회에도 들어왔고 현재 개신교의 쇠퇴 경향이 뚜렷한 한국 교회가 회복을 위해 들여오고자 연구 중이다. 셀 교회 덕분에 중화권의 교회들은 굉장히 활기를 띄게 된다.

홍콩은 중국 대륙이나 일본, 북한, 대만과 달리 기독교가 보편화된 곳으로 한국과 함께 기독교 교세가 커서 중국인들의 교회를 흔히 볼 수 있다. 교회는 여러 곳에서 자질구레한 교회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성공회의 유일한 동아시아 대교구가 홍콩 교구다.

그 중 개신교도가 6.7% 정도로 제일 많으며 성공회, 감리회, 장로회, 루터회 등 다양한 종파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영국의 영향으로 장로회성공회 교회가 제일 많은 편이다. 침례회는 침례대학 및 침례회 병원을 보유하고 있다. 홍콩 개신교는 미국 개신교가 들어와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 개신교와 다르게 영국 개신교가 들어와 복음주의이지 근본주의는 아니다. 한국에서 마이너한 성공회루터회, 감리회가 여기서 흔하며 한국이나 미국 개신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가톨릭 교도는 인구의 4.9% 정도로 한국, 마카오, 싱가포르, 필리핀, 레바논과 함께 아시아에서 그나마 가톨릭 영향력이 큰 지역에 속한다. 애초 아시아 최초로 가톨릭을 받아 들인 곳이기도 했다. 2014년 교황의 방한 당시에도 홍콩은 마카오와 함께 동아시아에서 큰 관심을 보였다. 중국 남부에서 홍콩, 마카오, 일부 대만인(외성인)으로 추정되는 트위터 맨션들이 이 당시 폭주했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은 트위터를 틀어막는 곳이라 그렇다.(...) 가톨릭은 다수의 사립학교를 갖고 있으며, 완차이에는 가톨릭 교도 묘지도 있다[33].

또 홍콩은 아시아에서 대한민국, 마카오,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레바논과 함께 성탄절이 공휴일인 몇 안되는 곳이기도 하다.

극소수의 정교회도 있다. 주로 아르메니아계 이민자들이 영국계 홍콩인의 일부로 자연스레 들어왔고 일부 중국인들도 믿는다. 1996년 11월에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에 의해 홍콩과 대만,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관장하는 홍콩-동남아시아 대교구가 설정되었다. 망명 러시아 정교회도 존재하는데 이들은 영국을 거쳐 들어온 소련 공산화 이후 난민들이다.

2014년의 우산 혁명은 모두 기독교인들이 주도했다. 학생 지도자인 조슈아 웡[34]도 그렇고 운동을 주도한 단체가 개신교가톨릭 계열 시민단체들이었으며 가톨릭 신자들의 참여가 특히 활발해, '"예수님은 주님이시다(耶蘇是主, Jesus is Lord)"'라고 쓰인 피켓과 예수상을 앞세운 천막들도 많았다.

반공 성향이 강한 홍콩 그리스도교인들은 대륙에서 망명한 파룬궁 신자들, 민주파 정치인들, 중국 민주화 운동가들과도 연대하며 공산당의 종교 탄압에 반대하며 중국의 민주주의 도입을 주장한다. 천멸중공(天滅中共: 하늘이 중공을 멸할 것이다)은 기독교인들도 심심찮게 외치는 구호이기도 하다. 이들은 당연히 하나의 중국을 중시하며 그리스도를 믿는 중국인임을 강조한다.

홍콩 독립운동의 주도층도 그리스도인들이나, 이들은 파룬궁 신도나 민주화 운동가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지는 않는다. 이들도 결국엔 대륙 출신이고 (민주화된) 중국과의 통합을 지향하므로, 완전독립을 추구하는 독립파의 가치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인이라고 다 반중 성향은 아니고 좀 보수적인 성향인 장로회는 친중 경향이며 성공회도 사회 안정을 중시해 현실 인정을 강조한다. 주로 가톨릭 신자들이나 감리회 혹은 복음주의자들이 주로 독립파나 민주파가 된다고 보면 된다.

구룡반도 조던역 근처에는'耶蘇是主"(예수는 주. 중국어로 야소가 예수를 뜻한다)이라고 한문으로 쓰인 대형 빌보드가 교회가 입주한 빌딩에 붙어 있다. 동아시아에서 기독교 색이 강한 빌보드를 보기 힘들단 점에서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더구나 내용 자체가 미국의 남부 바이블벨트에나 붙어 있는 신앙고백이다. 참고로 이것 외에 조던 로드에는 위에화 백화점 근처에도 비슷한 신앙고백 빌보드가 영문과 한문으로 붙어 있다. [35]

그리고 홍콩 국제공항이 있는 란터우 섬이 가까운 마완 섬에는 노아의 방주라는 기독교 테마파크도 존재한다.# 역시 동아시아에서 찾기 힘든 곳이다. 한국에서도 몇몇 교회에서 이 곳을 답사하기도 했고 한인교회의 수련회도 여기로 간다. [36]

홍콩 교회는 대형교회가 흔하지 않고 한국의 동네 길거리 교회마냥 상가건물 안에 십자가 하나 달랑 세우고 天主敎堂 내진 生命堂 등의 간판만 세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큰 교회는 오래된 교회로 영국인이나 포르투갈 정복자들이 세운 교회이며 전부 성공회가톨릭, 루터회의 교회들이고 크다고 해도 한국의 대형교회에 비하면 아기자기한 수준이다. 가령 침사추이에 있는 영국 양식의 세인트 안드류 교회라던가... 이 교회에서는 영어예배는 물론 표준중국어(!) 예배도 드리며 외국인이 가도 아무 상관 없다 (중국은 정부 공인교회에서 드리는 중국어 예배에 외국인 참석을 금지한다). 이렇게 소규모 교회가 흔한 이유는 바로 땅값이 비싸고 부지도 협소해 대형교회를 지을 터가 통 안나와서이다.[37]

무슬림 비율도 3.1%로 집계되며, 덕분인지 이슬람 성원이 5개나 있다.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인도, 이란에서 온 이민자들과 회족 출신 중국인들이 주축이라고 한다. 그 외 힌두교도, 유대교도, 시크교도 등 국제도시답게 다양한 종교가 분포해 있다. 유대교는 인구 중 극소수를 차지하는 유대인 계통의 홍콩 사람들이 신자로 숫자는 적지만 이들 유대인은 홍콩 경제에 화교와 함께 영향력을 행사한다. 영국계 홍콩인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유입되어서이다. 카두리 가든을 운영하는 바그다드 출신 영국계 유대인인 카두리 가문이 유대인이며 홍콩 회사 중 영국계 유대인 소유 기업도 많다.

대륙에선 금기시되는 파룬궁 신도들과 일본인들이 들여와서 주로 믿는 천리교 등 일본계 신흥종교도 극소수 존재한다. 이런 기타 종교들과 무종교인들이 50% 정도를 차지한다. 조사마다 좀 달라서 무종교인들은 그 이상을 보기도 한다. 무종교인은 일본처럼 젊은 층에 많은 편이다.

홍콩 섬에선 도교 사당인 문무묘나 틴하우 사당들 외에는 주로 교회 시설이 많고, 구룡반도, 신계는 치린 사원이나 천단대불로 유명한 포린사, 무간도에 나온 만불사 그리고 불종사(佛宗社)라고 쓰인 조그만한 법당 등의 절과 도교 사원이 많다. 야우마테이의 템플 스트리트의 유래도 이 곳에 위치한 틴하우 사당이다. 물론 쿤통의 량파기념교회, 조던 로드의 카우룬 유니온 쳐치(Kowloon Union Church), 구룡성채 근처의 중화연합교회(Chinese Union Church) 등의 교회 숫자도 충분히 많다. 홍콩 섬에는 성 요한 성당 등의 오래된 교회 외에 현대식 고층건물(!!!) 교회도 나오는데 완차이에는 이 고층빌딩 교회가 2개나 있고 센트럴에도 성공회의 본부가 고층 빌딩이다. 당연히 땅이 좁아 한국처럼 나대지에 으리으리하게 자리 잡은 대형교회는 거의 없다. 대게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조그만한 교회들이다.

가톨릭 성지순례로 홍콩과 마카오를 묶어서 다녀오기도 한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최양업 토마스 신부, 최방제 프란치스코가 마카오에서 유학한데다가 홍콩 내에도 트래피스트 수도원 등의 가톨릭 성지가 꽤 있어서이다. 홍콩은 영국성공회감리회개신교를 믿어 개신교가 기독교를 뜻할 정도로 주류이긴 해도 가톨릭 교세도 상당하다.

8. 경제[편집]

홍콩/경제 해당 문서 참조.

9. 생활[편집]

홍콩도 세대차가 심한 지역으로 꼽힌다. 특히 중국에 대한 시각에서 두드러지는데 기성세대가 친중 혹은 반중이더라도 적어도 중국을 모국으로 생각하는 한편 신세대들은 그렇지 않다. 홍콩 독립운동의 영향으로 "한때 친척이었으나 지금은 갈라진 국가", 심지어는 아예 홍콩과 일말의 접점도 없는 외국 취급을 하기 일쑤다. 우산 시위 이후 급증한 청년세대의 정치화와 홍콩 정체성 의식을 중국 정체성을 가진 기성세대는 못마땅해 한다. # 사실 그럴수밖에 없는게 2000년대 이후 홍콩이 부동산 가격이 급속하게 폭등하면서 집을 소유한 기성세대들은 막대한 이득을 얻었고, 임대료로도 상당한 수입을 벌수있는데 반해서 반해서 젊은층은 공공임대주택을 배정받을려면 최소 몇년은 기다려야 하는 꼴이 되어버려서 독립이 어려워지게 되고 집을 구할려고 해도 집값이 너무 비싸져버렸고 월세도 너무 비싸져버려서 좀 괜찮다싶은 집은 월급의 반 이상을 임대료로 내줄 처지가 되어버렸다. 더군다나 중국정부에서 자신들의 요구는 들어줄 생각조차 안하거나 들어준다 해도 하는 둥 마는 둥하면서 미적거리는데다가 그러면서도 홍콩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생각은 만땅이니 당연히 시각이 확 달라질수밖에 없어진것이다. 물론 기성세대라고 해서 다 같은 기성세대는 아니라서 쪽방촌에서 하루하루 어렵게 사는 기성세대들도 적지 않게 있기는 하며, 이들의 경우에는 중국정부나 홍콩정부에 대한 감정은 영 좋지 않은 편이다.

10. 교육[편집]

알려진 것처럼 한족들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이다. 물론 대학을 가지 않는 청년들도 꽤 있다. 대학진학률이 18% 정도로 한국에 비해 많이 낮다(#). 한국이 가장 높는 통계를 기준으로 약 80%의 대학 진학률을 보이는 것과는 반대이다.[38] 어차피 홍콩에서는 고졸 학력자들도 영어가 능숙하며 어차피 별 다른 복잡한 기술을 익힐 필요가 없는 3차 산업 위주 국가라서 고등학교만 나오면 다 취업한다. 그리고 경찰관이나 소방관, 세관원 등의 경우는 전원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자마자인 만 19세에 입직하며, 한국 군대와 비슷하게 신입직원 훈련이 있다. 세관원도 권총사격을 배운다.

물론 대학 진학 희망자들 사이에는 경쟁이 치열하며, 대학 자체가 8개 정도뿐이고 이마저도 다들 한 가닥 하는 명문들이라 들어가기가 빡세서 80%는 영국, 미국으로의 유학을 택한다. 영국에서는 1997년 이전에 태어난 학생의 경우 영국 국적자로서 그 이후에 태어난 학생들도 영국령 출신 홍콩 시민으로서 영국/EU/EEC 국적 학생들과 같은 저렴한 학비[39]를 내고 대학에 다닌다. 이 점은 싱가포르 국적의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캘리포니아뉴욕 소재 혹은 보스턴 소재 대학에서 홍콩 유학생이 꽤 보인다. 그리고 영국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대학은 홍콩 학생이 아주 흔한 편이다.

10.1. 초/중등 교육[편집]

영국식 학제를 적용하며, primary school(小學) 및 secondary school[40]의 2가지로 나뉜다. 학년 역시 미국식의 1~12학년이 아닌 소학과 중학을 별도로 나누는 영국식의 학제이다. 당연히 한국이나 중국본토, 일본과는 아예 학제가 다르다. 한예로 한국과 달리 홍콩은 겨울 방학이 없고 크리스마스 방학만 2주 있으며 부활절 방학이 2주[41]이며 학기가 5월에 끝나고 9월에 시작한다.

특이하게도 영어 교육 시 작문교육을 중요시해 초등학교 때부터 영작문을 제대로 배운다. 중국어도 마찬가지로 작문을 중요시한다. 어차피 말로 하는 광동어표준중국어 둘 다 작문은 동일한 중문법을 쓰는 백화문이라 가르치는 데 문제가 없다. 회화 교육 역시 싱가포르처럼 원어민이 직접 해당 언어를 가르친다. 영어미국인영국인 강사들이 주류고 일부 호주뉴질랜드 출신들이 있으며 공식적으론 영국식 영어를 가르치나 구어로는 미국식 영어를 가르친다. 미국인 강사들이 많아서 그렇다. 외국을 떠돌며 가르치는 원어민 영어 강사들에게는 꿈의 직장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여겨지는 데가 홍콩인데, 영어가 공용어이니만큼 수요도 많고 페이도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큼 까다로워서 한국처럼 낮은 진입장벽으로도 강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수학 교육은 한국, 일본, 대만, 중국, 싱가포르 등과 마찬가지로 꽤 어렵다. 영국본토에서 이민 온 영국인들이 자녀들을 홍콩 학교에 보냈다가 수학 점수가 뒤쳐지는 일이 많다고들 한다. 물론 그 만큼 수학 잘 하는 학생들도 많다. 원래 황인 자체가 서양에선 수학 잘 하는 족속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내용 중에 한국에서는 안 배우는 행렬, 행렬식, 정적분의 근삿값 등도 들어 있다.(물론 이전 교육과정엔 한국에도 행렬과 행렬식이 있었다.)

홍콩의 중고등 학생들도 교복을 입는다. 디자인은 원피스 형이 많으며 예쁘다고 느껴지는 투피스 교복들은 대부분 국제학교 교복들이다.

10.2. 고등 교육[편집]

2010년대 들어 고졸 취업 증가 및 대졸자 실업난,[42] 블라인드 채용, 저소득층 복지 향상 등으로 학벌의 영향이 어느 정도는 약해진 일본이나 대한민국과는 달리[43] 한동안 학벌직장을 잡는 데 좋은 역할을 하고 심지어 중국 대륙보다도 빈부격차가 크고 거의 영국 수준이기 때문에[44] 대학입시 열기가 미치도록 높았다. 물론 현재는 과거에 비하면 많이 완화되었다.

동네마다 입시 학원이 꼭 하나씩은 있는 편이고, 우리나라의 메가스터디같이 이름이 널리 알려진 기업 학원들이 여러군데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국과는 다르게 학원 이름보다도 스타 강사를 내세우면서 광고를 많이 하는 편이다. 수많은 광고들이 버스에도 붙여져 있는걸 볼 수 있을 정도. 홍콩대, 홍콩중문대, 홍콩과기대에 진학하기 위해 많은 학생들이 혹사를 당하고 있다. 홍콩 입시지옥을 이끄는 세 대학은 그 많은 인재를 빨아들여서인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학교들이다.[45] 학생의 입장에선 일단 월드클래스 대학들이 눈앞인만큼 열심히 공부할 동기는 부여되는데 이 곳의 진짜 문제는 대학의 질이 아니라 양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대학 진학률 자체는 한국보다 훨씬 낮은 18% 정도다(#). 그러나 공부하기로 맘 먹은 애들은 진짜 독하게 하고, 홍콩의 대학은 너무나 적다. 그래서 영국이나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보딩스쿨로 조기유학이 성행한다. 위에 서술한 학벌시대의 붕괴로 인해 2010년대 들어 미국캐나다, 호주로의 해외유학이 급감소중인 일본대한민국과는 대조적이다.[46] 특히 대놓고 광고 때리는 영국 기숙학교에 많이들 간다.

홍콩의 대입 시험인 HKALE은 흔히 현존하는 국가주관 대학입시시험중 가장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적어도 홍콩인들은 그리 주장한다.[47] 일단 1950년대 영국 식민지 시절 본국의 제대로를 그대로 도입해 온 것이 시초. 그 뒤로 영국 본토나 싱가포르 등에서는 구조가 많이 바뀌었지만 홍콩의 경우는 아직 그때의 모습을 가장 온전하게 보전하고 있는 케이스다. 일단 수능보다도 얼핏 보면 훨씬 어려운 것 같지만 일단 HKALE은 한 과목당 6시간동안 시험을 치룬다. 시험지가 두개로 나눠져 있어 첫번째 시험지는 오전에 치르고 두번째는 오후에 치르는 것. 당연히 시간 배분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문제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만... 그걸 따져도 일단 어려운건 맞다.

특히 사회과목의 난이도는 타국 대학교 1,2학년 수준과 맞먹는다고 보면 된다. 더군다나 문과과목의 특성상 에세이를 6시간 동안 쓰는 경우가 많은데 당연히(!) 영어로만 정답을 쓸 수 있는데다가 문법이나 철자도 읽는데 지장을 준다고 생각되면 감점처리 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한국과 정 반대로 문과가 시험이 어려운 케이스. 그렇다고 이과가 쉬운 것도 아니다! 일단 무엇보다 시험 범위가 기절하게 넓은 편이다. 명문고라는 학교에서도 고등학교 정규 교육시간만 사용해서는 진도마저 다 못나가는 상황까지 종종 발생한다. 학원에 의지하지 못하면 사실상 시험 치르는 자체가 불가능한 것. 주로 문과 과목이나 생물등에서 일어난다. 2때 생물은 고사리책을 끝내며, 수학은 테일러급수를 배우는데 그게 정규교과과정이다 이로 인해 자살같은 사회문제가 가면 갈수록 크게 대두되어 결국 2013년을 끝으로 HKALE는 폐지되었다. 새 시험인 HKDSE는 범위는 전과 비교하면 절반 정도로 줄어들게 된다. 그래도 수능보다 매우 어렵다 이러한 감축이 가능한건 대학 과정이 대신 1년 늘어났기 때문이긴 하지만...

여전히 대입 경쟁이라는 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범위가 줄어들어 공부할 양이 줄었다 해도 홍콩에 위치한 대학 정원 숫자는 그대로이기 때문. 홍콩에 있는 4년제 종합대학교8군데 뿐이고 평균적 정원조차 한국 대학들보다 적은 편이다. 홍콩 인구의 7배 가까이 되는 한국의 경우는 종합대학교가 300개 가량 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흠좀무.[48] 한국에 인서울 대학만 있다고 생각해보면 되겠다.

이러한 특이한 점 때문에 해외로 유학을 하는 학생이 많은데 홍콩 고등학생 중 매 3명의 학생이 홍콩내 대학 진학을 할 때마다 2명의 학생이 해외 대학교 진학을 하는 엽기적인 곳이다. 어느 해에는 영국캐나다, 호주영연방 대학 진학을 한 홍콩 고등학생의 숫자가 홍콩내 대학 진학생 수보다 많은 적도 있었다.

미국에도 많이 가는데 캘리포니아뉴욕 등에서 홍콩에서 온 유학생을 볼 수 있다. 기존 화교 커뮤니티에 가입하는 홍콩인 이민자들과 비슷하게, 본토 출신 유학생들과는 예상과 달리 그럭저럭 잘 어울리는 편이다. 다만 마카오인, 대만인처럼 국적에 관해서는 대륙과 자신을 철저히 구별한다. 대부분의 본토인 학생들은 홍콩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딱히 갈등을 일으키지 않지만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중국 유학생이라면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인 학생회에 가입하지 않고 홍콩 출신끼리 별도의 학생회를 만들어 홍콩 학생들끼리 모이는 경향이 강하다.

사안에 따라 중국인 학생회와는 협력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한다. 홍콩 독립운동을 대놓고 외치지 않는 이상 본토 학생이 먼저 시비거는 일은 없고 그냥 중국과 홍콩이 올림픽 등에서 별도 팀으로 출전하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편.

인구가 적고 세계를 이끄는 영미권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덕분에 홍콩인의 국제 안목은 한국인에 비해 높은 편이다. 일단 영어 구사력에서 평균적으로 한국인보다 훨씬 우월하니 어느 정도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아시아 최고 명문대학들인 홍콩대학, 홍콩과기대학, 홍콩중문대학 홍콩이공대학 등이 있으며 홍콩이 아시아의 금융 허브라는 점 때문에 홍콩으로 유학 오는 외국인 유학생도 많다. 대학들의 독자적인 아이덴티티가 강해서인지 대학간 라이벌의식은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

11. 군대와 치안[편집]

11.1. 군대[편집]

영국 식민지 시절에는 물론 영국군과, 영국군에 의해 창설&훈련된 현지 홍콩인 부대가 홍콩의 수비를 맡고 있었다. 홍콩 반환 이후에는 철수한 영국군 대신 중국 인민해방군 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중국인민해방군 주홍콩부대 참고. 역대 홍콩 군사사는 홍콩군 참고.

홍콩 주민들은 중국 인민해방군에 대한 병역 의무가 없다.

11.2. 치안[편집]

원래 모체였던 영국과는 다르게 정말 우수하다. 여행을 간다면 치안 걱정은 거의 안 해도 될 정도.

물론 침사추이의 청킹맨션, 몽콕(旺角, Mong Kok)이나 야우마테이(油麻地, Yau Ma Tei)-조던(佐敦, Jordan)) 지역[49] 등 일부 치안이 좋지 않은 지역이 있지만, 이런 지역조차 혼자 다녀도 나쁜 일 당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면 된다. 또 이런 지역에는 경찰이 정말 많다.

또한 홍콩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시지 않기 때문에 한국과 다르게 술 먹고 개가 되어 목소리를 높이거나 싸우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삼합회의 전성기이던 1960~80년대에는 범죄가 진짜로 상당히 많아서 1985년~1996년까지 홍콩 RTHK 방송국이 홍콩 경찰과 합작, 공개수배 사건25시의 원조격에 해당되는 繩之於法이란 프로그램을 방송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당시 방송 영상. 그러나 염정공서의 출범. 홍콩 반환 협정 체결, 부패방지 3륜법, SDU 테러진압 특공대 창설 등으로 1980년부터 삼합회가 물을 먹고 더 나아가 1979년을 기점으로 홍콩이 완전히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자 먹고 살만 해져 민생범죄도 줄기 시작했고, 1998년부터는 중국 정부가 광동 성 선전에 육전대를 포함해 인민해방군 해군을 대거 주둔시키며 범죄자들을 본토의 공안력과 해군 육전대 등으로 쓸어 버리겠다고 하자 잡범과 삼합회 둘 다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물론 홍콩 특별행정구 경무처도 반환 직후 대대적 범죄소탕에 나선다. 그리고 우범지역인 구룡성채 역시 없어지고 상당 수의 난개발지역이 사라지고 나머지도 재개발되어 우범지대 자체가 현재는 사라졌다.

한국과는 달리[50] 홍콩에서는 경찰에서 직접 TV를 통해서 범죄에 대한 모방 영상을 보여주고 그것을 통해서 범죄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직접 보여주면서 범죄 예방을 위해 제작한[51] 프로그램(警訊)이 있다. 방송 전에 모방영상(模擬片段)이라는 문구 달랑 보여주는 게 전부. 그럼에도 범죄율이 낮다는 것 자체가 충공깽.

중국의 공안과는 별도의 조직인 홍콩 경찰(Hong Kong Police, 香港警察)이 치안을 담당하고 있다. 홍콩 경찰은 아시아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손꼽힐 만큼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자세한 것은 후술된 내용과 홍콩 경찰 참조. 관광객이 길 찾을 때 경찰에게 물어봐주면 능숙한 영어와 함께 잘 도와준다.[52] 아니, 이 동네의 웬만한 제복 입은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들은 죄다 잘 도와준다. 최소 불친절한 미국 경찰이나 강압적인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 소속 본토 공안들보단 훨씬 낫다. 물론 다들 지리는 잘 모르는지(...) 무전기로 물어보곤 한다. 그래도 영어표준중국어 까지는 구사 가능하고[53], 광동어는 일상생활에서 쓰는 모국어 이므로 이 중 한 가지 언어를 알면 도움 받는것 자체는 쉽다. 소리라도 지르면 순찰 중이던 경찰들이 죄다 달려 온다.

홍콩 경찰을 총괄하는 기관은 경무처다. 이 경무처 형사보안국(CID)의 예하에는 삼합회 등을 수사하는 중안조가 있는 조직범죄및삼합회수사부(OCTB) 및 마약사건을 다루는 마약조사부 등이 있어 미국의 FBI, DEA를 방불케 한다. 홍콩 경찰은 영미법계로 영국식 경찰제도를 택해서 수사권은 경찰이 전담하며 부정사건만 염정공서가 담당한다. 율정사 소속 검사는 공소유지 및 기소만 할 뿐이다. 소방조직은 소방처가 한국의 소방청 역할을 하며 산하에 화재 및 구조업무를 맡는 소방국(소방서의 중국어 표현)과 구급업무를 맡는 구급센터(앰뷸런스 디포)가 있다.

SWAT 같은 개념의 경찰특공대도 있는데 이름은 영어로 Special Duties Unit. 줄여서 SDU로 불러도 되지만 영문 이름보다는 '비호대(飛虎隊)'로 자주 불리운다.[54] 설립 자체는 1962년에 이뤄졌지만 진짜 경찰특공대다운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70년대 후반부터다. 조단역 근처 대로변에서 적대하는 갱들이 AK소총으로 총격전을 벌였는데...여기 휘말린 민간인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터지자 영국 SAS에서 교관까지 초빙해서 단기간에 특공대다운 부대를 만들었다. 8,90년대 전성기 때는 지금의 러시아 알파팀 못지않은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벌였는데, 그래도 알파팀보다는 인권 존중 개념이 있어서 인질이 있을 경우에는 웬만하면 강경진압은 안 한다.

여담으로 비호대는 아직까지 여성대원이 없다고 한다. 또 2000년대 후반에 이들의 얼굴이 홍콩언론에 한번 공개가 되어서 홍콩경찰이 난리가 났었던 적도 있다.

대체로 부패도 없고 친절하며 공정한 경찰에 대해 신뢰도가 아주 높은 편이지만 한국의 견찰이라는 말처럼 공권력(공산당 혹은 홍콩 정부)의 개라며 나쁘게 보고 비하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2014년 홍콩 정부의 명령으로 우산 시위를 강경진압하면서 반감을 많이 사게 되었다. 중국 본토와 홍콩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는 카드 뉴스에서도 경찰에 대해서는 비슷한 거 같다고 할 정도다.

참고로 홍콩 시민이라고 다 영어를 잘하지 않아서 곤란할 때는 경찰에게 물어보자 왠만한 영어는 다 통한다.

12. 의료 및 보건[편집]

홍콩 소방처 소속 구급서에서 구급차가 나가며 999가 호출번호로 영국본토 및 아일랜드와 같다. 중국본토나 대만, 마카오와는 다르니 주의. 그리고 의료보험의 경우 개인병원 용 보험은 영국 회사들이 제공하는 민간보험이라 비싸다. 대신 정부병원에 가면 홍콩 시민권자는 납세를 하는 만큼 무료 진료고 외국인도 싼 값에 진료해준다. 대기시간이 긴 게 문제라서 되도록이면 비응급환자는 정부병원 이용을 자제하라는 조언도 있다. 물론 구급차에 실려 오면 당연히 1순위로 진료받고 의료진 전원이 달라붙는 건 물론 열 있으면 격리당하고 의사와 1대1 채팅을 할 수 있다.

2017년 2월 MTR 췬완선침사추이 역에서 중국 대륙 출신의 중노년 남성이 화염병(!!!)을 투척,[55] 전동차에 큰 불이 나서 췬완선의 운행이 조던역-침사추이역간 구간이 중단되고 침사추이역은 폐쇄되었던 사고가 벌어졌으나 홍콩 소방처홍콩 경찰 그리고 MTR사의 빠른 대응[56] 그리고 홍콩인들의 침착한 대응으로 11명 부상으로 끝났다. 2004년에도 비슷한 방화 사건이 있었으나 역시 발 빠른 소방당국 및 경찰의 대응과 높은 시민의식 등으로 경상자 몇 명에 그치고 말았다.

한국과 가까운 거리라서 취업 등으로 나간 장기체류자들은 그냥 주말 틈타 한국에 와서 진료받고 간다.[57] 저가 항공사들의 범람으로 이게 더 싸다. 치과는 한국처럼 보험적용이 안 되어 비싸다. 물론 미국이나 필리핀같이 100% 민간 의료보험만 있는 쓰레기 의료체계에 비해선 낫다.

홍콩의 의술은 높은 편이라 안심하고 진료받아도 된다. 정부병원은 퀸 메리 병원, 퀸 엘리자베스 병원, 프린스 에드워드 병원, 킹 조지 병원 등 영국 왕/여왕이나 왕족들의 이름이 명명되어 있으며 전술한 것처럼 홍콩 소방처에서 나오는 999구급대를 이용하면 이 곳으로 100% 온다. 본인이 따로 다니는 사립병원이 있다면 돈 주고 세인트 존(ST.JOHN)이라는 구급차 회사에 문의해 그 쪽으로 옮겨 달라고 해야 한다. 이 회사는 999 구급대와 달리 환자 셔틀 역할을 하고 대형 재난이 터질 때 소방처 보조를 위해 대기 의무도 있다.

위생수준은 한국이나 대만, 중국 본토에 비해 높은 편이다. 무엇보다 2003년 사스 대란을 겪어서 민감한 것도 있다. 사스신종플루, 메르스 덕분에 거리에서 기침이라도 하거나 침 뱉는 히드라리스크 같은 행위를 하면 야만인으로 여기며 비웃는다(...)

한국과 다르게 본인이 감기나 독감에 걸렸다고 생각하면 마스크를 쓰는게 기본 매너이다. 특히 한국에서 메르스가 대량 발병한 뒤 한국인이 기침하면 메르스 환자로 오인하기도 한다. 2015년 메르스 사태가 고스란히 보도되는 바람에 한국 보건행정 및 공중위생에 대해 대놓고 불신이 팽배해 그렇다.

하지만 해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인플루엔자 때문에 홍콩의 위생당국의 효율성에 대한 불신도 높다. 벌써 올해 여름철 유행성 인플루엔자에 감염된 사람만 14721명이고 이중 312명이나 사망했다. 이는 2003년 당시 홍콩 최악의 바이러스 사태라고 불리는 사스때보다도 더 많은 사망자다.

그리고 주방은 영미법을 따르는 나라답게 100% 오픈해서 공개하게 되어 있는데 이것도 싱가포르와 똑같다. 세관도 깐깐하게 검사를 해서 무작위로 여행객을 검문하기도 하니 행여나 검문에 걸려도 따지지 말고 순순히 협조하자. 괜히 안되는 영어로 따지면 더 의심받고 추가 조사를 위해 사무실로 끌려가는 불상사도 일어난다.

담배 피고 꽁초 버리다 걸리면 한국 돈으로 최대 50만 원 넘는 벌금 폭탄을 뒤집어 쓴다. 한국 골목과 다르게 거리에는 거의 50미터 간격마다 담배떨이 겸용 대형 휴지통이 있어 보통 휴지통 근처에서 피운다. 그리고 실내 흡연도 마찬가지로 금지인데 워낙 빌딩이 높아 엘리베이트로 이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다 보니 계단 층계로 가서 숨어 피우는 경우도 많다. 실내흡연에 관대한 중국 본토, 일본, 대만과의 차이점 중 하나이다. 사스의 폭격을 된통 맞은 원인이 흡연자들의 가래침이었기 때문에 실내흡연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13. 수도와 전기[편집]

홍콩은 공기업이 아니라 사기업이 전기, 도시가스 사업을 한다. 그래도 영국 같이 전기요금이 괴악하진 않다. 특히 홍콩섬 쪽에 전기를 공급하는 홍콩전력 등 홍콩 최고의 재벌 청쿵실업 소유로 CEO는 그 유명한 화교재벌 리카싱이다. 세계적 이동전화 회사 3 Mobile(홍콩에 본사가 있다), 대형 슈퍼마켓 체인 파크앤샵, 드럭스토어 체인 왓슨스(Watson's,屈臣氏)도 사실 청쿵실업(長江實業) 계열 회사인 허치슨왐포아(和記黃埔) 소속이다. 리카싱 회장은 자산이 30조원. 공식 아시아 제일의 부자이다. 물론 실제 전 세계 제일의 부자들은 석유로 떼돈 버는 중동에 있는 왕족들이지만 아시아로 한정하면 리카싱 일가가 제일 부자이다. 그래서 기부도 통 크게 한다! 홍콩이 빈부격차가 심하지만 똑같이 빈부격차가 큰 영국처럼 이러한 큰 부자들의 적극적인 기부로 그나마 완화되는 부분이 있다. 홍콩 최대 통신기업 PCCW는 리카싱 아들 몫. 홍콩의 도시가스 독점회사인 Towngas는 헨더슨랜드디벨롭먼트(恒基地産)라는 영국계 부동산회사 소속.

참고로 홍콩의 MTR도 원래 시작은 총독부의 공기업이었으나 2000년 주식시장 개방으로 30%의 상당 지분을 썬 흥 카이 그룹이라는 화교 부동산 회사와 영국계 부동산 회사인 핸더슨디벨롭먼트 등이 가져갔다.[58] 그래서 최근 MTR MALL이라는 쇼핑몰도 열고 있으며 부동산 개발에도 입찰하고 반쯤은 민간기업화 하면서 런던, 베이징, 난징, 선전 등 대외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이렇게 써놓으면 무슨 특정 기업이 한 도시 전체를 장악한 거 같지만 대신에 공공서비스 면에선 철저해서, 요금을 굉장히 싸게 제공한다. 기부를 한다는 개념으로 공공 서비스를 사기업이 정부와 계약을 체결하고 사실 상 공기업처럼 저렴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한국이나 미국처럼 민영화=요금 폭탄은 절대 아니다! 한국에서 기부에 대해 인식이 안 좋은 것과 달리 홍콩은 영국 영향으로 기부가 활성화되어 있고, 정부와 계약을 체결한 사기업들도 기부 개념으로 수도, 전기, 가스, 교통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전기 규격이 한국과 달라 변환기가 필요하다. 콘센트 모양이 Type G로 영국 표준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압은 똑같은 220v를 쓴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홍콩과 같은 콘센트라 어댑터가 굳이 필요없다. 반면 일본, 대만, 필리핀, 태국미국식의 110v를 써서 홍콩에서도 어댑터가 필요하다. 노트북PC나 맥북은 프리볼티지 제품이 대부분이라 어댑터만 있으면 변압기는 필요 없다. 마찬가지로 일본산 및 대만산, 미국산 가전제품 내수용을 홍콩에서 쓸 경우에도 어댑터 필수. 단 주파수가 50Hz이기 때문에 한국산 전자제품 중에서도 극소수는 이용을 못 할 수 있으니 한번 쯤 확인할 필요는 있다. 사실 220v에 60Hz를 쓰는 나라가 한국 외에는 거의 없다. 220v~240v를 쓰는 나라는 대부분 50Hz이고 60Hz를 쓰는 나라는 대부분 100v~120v를 쓴다.

중국 대륙호주, 뉴질랜드 등과도 콘센트가 다르다. 이 쪽은 Type I라는 특유의 괴랄한 콘센트를 쓰는 걸로 악명높다. 그래서 역시 대륙 전용 어댑터가 필요하다. 다만 중국도 호텔같은 곳에서는 외국인들의 편의를 고려하여 한국식 플러그 등 다양한 플러그를 이용할 수 있는 콘센트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영국식 Type G는 선전, 주하이 등 인근 광둥성 지역을 벗어나면 죽었다 깨어나도 없고 호환도 안 된다.

식수를 선전 댐에서 공급받는다. 영국령 시절부터 계속 식수를 중국에 의존해왔고 반환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반면 싱가포르는 물기근 국가로서 말레이시아와 식수공급 문제로 다툼이 잦은 반면, 일국양제인 중국과 홍콩은 중국 당국이 식수 공급에 협조적이라 그런 다툼은 없다. 대신 다른 부분에서 갈등이 많지만...

14. 교통[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콩/교통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홍콩의 국가관문으로는 홍콩 국제공항이 있으며 대동맥으로 도시철도MTR이 있고 모세혈관 노릇을 하는 홍콩 버스 시스템 등이 있다. 자세한 건 문서 참고.

그리고 홍콩의 플래그 캐리어는 영국계 부동산 회사인 스와이어 그룹(Swire Group) 소속의 캐세이퍼시픽 항공캐세이드래곤 항공이다. 저가 항공사로는 하이난 항공의 자회사인 홍콩 익스프레스 항공이 있다. 플래그 캐리어는 영국계, 저가항공은 중국계라는 점이 특이점이라면 특이점.

중국과의 관문으로는 육상 관문인 황강(皇崗 Huang Gang). 록마차우(落馬州, Lok Ma Chau. 중국 쪽은 푸톈), 로우(羅湖, Lo Wu, 중국 쪽은 뤄후), 선전완(深圳灣, ShenZhen Bay)과 해상 관문인 셔코우(蛇口, SheKou)가 광동 성 선전으로 통하며 황강과 선전완은 차량, 로우/록마차우는 동철선으로 접근 가능하고 셔코우 항구로는 MTR 홍콩섬선 셩완 역에 있는 슌탁 페리터미널과 췬완선 침사추이 역과 가까운 차이나홍콩 페리터미널에서 페리를 타고 갈 수 있으며, 로우와 황강, 셔코우 항구에서는 도착 비자를 중국 공안이 발급해준다. 록마차우와 선전완은 도착 비자 발급이 안 된다. 자세한 사항은 교통 문서에서 대륙과의 왕래 부분 참조.

택시는 일방통행인 길이 많아서 생각보단 많은 요금이 나온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경로거리당 택시비는 한국보다 약간 비싼 수준이며, 다리를 건너든 터널을 건너든 뭘 할 때마다 기사가 오고가는 왕복 톨비를 줘야 되는 것이 단점이라 하겠다. 공항에서 침사추이까지 160홍콩달러 정도, 침사추이에서 레이디스마켓까지 40달러 침사추이에서 icc까지 40달러정도이다.

참고로 택시는 기사들이 영어를 잘 못한다. 홍콩 섬의 택시는 그나마 좀 나은편이며, 침사추이 및 몽콕 등 구룡반도신계 쪽 기사들은 영어를 거의 못해 중국어로 된 지명을 한자로 보여주거나 사진을 보여주도록 하자.

그리고 택시를 잡을때는 우리나라와 반대편, 즉 왼쪽의 인도에서 기사들의 반대방향으로 타게끔 잡아야한다. 일방통행의 길에 오른쪽 보도에서 택시에게 승차거부당했다고 생각하지말자.. 그쪽에 서있는 대부분은 대기줄이라서 앞으로 가라고하거나, 예약택시이거나, 쉬는중이다.

홍콩 섬구룡반도 사이를 오갈때 페리 말고 택시를 이용할수도 있는데 지하 해저터널을 통해서 이어져있어서 톨게이트 비용을 내야한다.[59] . 해저터널[60]은 서쪽에 Western Tunnel 하나, 가운데 침사추이 쪽에서 완차이 쪽으로 가는 Cross Harbour Tunnel, 동쪽에 Eastern Tunnel 하나 총 3개가 있다. 기사분이 서쪽 터널로 갈까요 동쪽 터널로 갈까요 묻는 경우가 있는데 잘 대답하자.

보통 서쪽의 Western Tunnel이나 중앙의 Cross Harbour Tunnel의 경우 침사추이(尖沙咀, Tsim Sha Tsui), 야우마테이(油麻地, Yau Ma Tei) 및 야우마테이에 위치한 ICC, 몽콕(旺角, Mong Kok), 타이콕추이(大角咀, Tai Kok Tsui) 등 구룡반도 서부로 건너갈 때 혹은 센트럴이나 셩완(上環, Sheung Wan), 케네디타운(西環, Kennedy Town) 등 홍콩 섬 서부로 갈때 이용하고, 중앙의 Cross Harbour Tunnel 은 완차이(灣仔, Wan Chai) 및 코즈웨이베이(銅鑼灣, Causeway Bay) 등 홍콩 섬 중앙으로 갈때 이용한다. 그리고 섬쪽에서 홍콩 국제공항 및 란터우 디즈니랜드를 가거나 윈롱(元朗, Yuen Long)을 거쳐 선전시로 가는 시외버스를 탈때도 이 루트를 이용한다.[61]

반면 동쪽의 Eastern Tunnel은 청콴오(將軍澳, Tseung Kwan O), 쿤통(觀糖, Kwun Tong), 사이쿵 반도(西貢, Sai Kung), 마온산(馬鞍山, Ma On Shan) 등 구룡반도 동쪽 혹은 타이쿠싱(太古城, Taikoo Shing), 사이완호(西灣河, Sai Wan Ho), 시우사이완(小西灣, Siu Sai Wan) 등 홍콩섬 동쪽으로 갈때 이용하며 장기체류자들은 많이 이용하지만 관광객은 별로 이용할 일이 없는 루트이다.[62]

15. 언론[편집]

15.1. 신문[편집]

부류가 다양하고 신문의 종류수도 많다. 자료출처는 여기.

  • 친중 신문: 文匯報(문회보), 大公報(대공보), 상보(商報)

  • 주류 신문: 東方日報(동방일보), 太陽報(태양보), 蘋果日報(빈과일보)[63]

  • 경제 신문: 信報(신보), 經濟日報(경제일보)

  • 지식 신문: 明報(명보)[64], 星島日報(성도일보)

  • 영향력 적은 신문[65]: 新報(신보. 위에 경제 신문인 신보(信報)와는 한자가 다르다. 광동어로 信과 新의 발음이 달라서 가능한 일.), 성보(成報)

  • 무료 신문: Metro, AM730, 頭條日報(두조일보)

  • 영자 신문: South China Morning Post(南華早報, 남화조보)[66]

  • 무료 영자 신문: The Standard [67]

15.2. 방송[편집]


지상파TV 방송국 3개가 있으며 라디오 방송국 4개가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케이블 채널이 있다. 대개 시청률 조사는 CSM媒介研究에서 조사하긴 하지만, aTV에서 "시청률을 너무 낮게 잡는다"라며 까면서 홍콩 대학(香港大學)에서 조사한 자료를 실은 적 있었다. 아날로그 TV 표준으로는 PAL을 채택했으며, 디지털 TV 표준으로는 DTMB를, 디지털 라디오 표준으로는 DAB를 채택했다.

홍콩의 음악 프로그램 순위는 대개 4곳에서 잡는데, RTHK, TVB, 新城라디오 997, 상업라디오 (商業電台) 903에서 잡는다.

공공방송RTHK는 홍콩 정부가 직접 소유하는 관영방송이지만 독립성은 보장되어있다. 라디오 방송으로 시작했으며, TV 프로그램은 자체 채널을 개국하지 않고 민영 방송사를 통해 내보내다가 디지털 TV 방송이 개시된 지 몇 년 뒤에 자체 채널의 시험 방송에 들어갔다. 이후 ATV가 2016년 4월 1일을 끝으로 폐국하면서 ATV의 아날로그 채널을 차지하는 식으로 아날로그 TV 방송에 진출했는데, 아날로그 시절에 개국했다가 디지털 방송을 개시하는 것과는 영 다른 모양새다. (참고로 홍콩은 아날로그 TV 방송을 아직 종료하지 않았다.)

민영 라디오 방송사로는 CRHK와 Metro, 디지털 라디오(DAB)로만 방송하는 DBC라는 곳이 있다. 디지털 라디오 방송을 개시하면서 봉황위성TV도 URadio라는 곳을 세워 진출했으나, 이후 폐국한다. 이 외에 허가를 받지 않은, 즉, 해적 방송인 곳이 두 곳 있다.

텔레비전 방송은 유선 라디오 방송을 운영하던 영국계 Rediffusion 사가 유선 TV 방송(ATV의 시초)을 개시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홍콩 정부에서 지상파 TV 방송 면허를 발급하면서 TVBCTV(佳藝電視)[68]가 개국했는데, TVB는 승승장구했지만 CTV는 재정문제로 3년만에 폐국한다.[69] 그 뒤 Rediffusion 사가 면허를 발급받고 지상파 방송을 개시하면서 유선 방송 사업 자체를 접었다. 80년대 초에는 Rediffusion 영국 본사의 사세가 기울어 홍콩 내 사업을 매각하면서 ATV가 됐다. ATV는 시청률이나 규모에서는 TVB에 뒤쳐졌지만 그래도 자리는 지켜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TVB의 독주는 심해지고, ATV의 시청률은 줄어들고 있었다.[70]

한편, 90년대 초에는 워프 (Wharf) 그룹이 세운 신생 유선 방송 사업자인 홍콩 유선 TV가 종합 유선 방송을 개시했다. 처음에는 워프 그룹의 통신 부문과 한 몸이었으나, 1999년에 유선 방송과 가정용 통신 사업이 I Cable로 분할됐고, Wharf T&T는 기업 전문 통신 사업자로 남았다. 이 이외에 TVB는 위성 방송에 뛰어들었고, 홍콩통신(HKT)은 ITV라는 유료 플랫폼을 운영했는데 망했다가 HKT를 인수한 PCCW에서 Now TV라는 IPTV를 개시했다. 리키 웡의 시티 텔레콤(City Telecom)은 HKBN BBTV라는 IPTV를 열었다. 이후 Now TV는 가입자 수로 홍콩 유선 TV를 추월했으며, 홍콩은 세계에서 IPTV가 가장 성공한 곳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홍콩 반환 이후 한참 뒤, 홍콩 지상파 TV 업계를 TVB가 사실상 장악한 양상을 타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되었다. 이 때, 리키 웡은 통신 사업을 다른 곳으로 매각하고 시티 텔레콤의 사명을 홍콩 텔레비전 네트워크(Hong Kong Television Network. 이하 HKTV)로 바꾸고 지상파 방송에 진출할 준비를 하였다. 한편 PCCWHKTVE를, 홍콩 유선 TV는 Fantastic TV라는 회사를 세웠다. 이 중 HKTVE와 Fantastic TV는 2013년에 예비인가를 얻는데 성공했고, 리키 웡의 HKTV는 탈락했다. 이후 HKTV는 자체 제작 프로그램과 홈쇼핑 방송으로 구성된 인터넷 방송을 개시했으며, 한편으로는 지상파 TV 방송 면허를 다시 신청한 상태이다.

ATV가 경영난과 삽질로 고전하던 중에 2015년 4월 1일, 도저히 만우절 장난같지않은 소식이 전해졌다. 홍콩 정부가 1년이라는 유예기간을 두고 ATV의 지상파 방송 면허를 말소하고 HKTVE에 정식 면허를 부여하였다. 이후 1년간의 준비기간이 지나고, 2016년 4월 1일/2일 사이 자정을 끝으로 ATV는 방송중이던 모든 채널의 프로그램을 완전히 끝내지 않은 채 지상파 TV 방송을 종료했으며, ATV가 사용하던 아날로그 TV 채널들은 RTHK가 차지하였다. 한편, HKTVE는 3월 31일에 인터넷 실시간 방송과 Now TV를 통해 광둥어 채널 ViuTV의 시험방송을 개시했으며, ATV가 방송을 종료한 이후에 디지털 지상파 방송을 개시했고, 4월 6일에 정식으로 개국했다.

2016년 5월 31일에는 Fantastic TV가 정식으로 면허를 부여받았다. 초기에는 홍콩 유선 TV가 구축한 케이블망으로 방송할 예정인데, 해당 통신 단자를 케이블로 연결해 TV 안테나 선에다 그냥 꽃으면 된다고 한다. 지상파 채널은 추후에 확보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2017년 5월 14일에 광둥어 채널을 정식으로 개국했다. 한편, ATV의 후예를 자처한 Forever Top (Asia) Ltd.라는 회사가 New Asia라는 이름으로 지상파 TV 방송 면허를 신청했으나, 이후 신청을 철회했다.

2017년에는 TVB가 위성 방송 사업을 중단했다. 현재는 TVB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OTT 다채널 플랫폼인 My TV Super를 미는 중. 같은 해에 워프 그룹은 통신 및 방송 사업에서 적자를 견디기가 어려웠는지 위의 Forever Top이란 회사에 I Cable을 매각했다. (Wharf T&T는 한국의 MBK파트너스와 미국의 TPG Capital이 매입해 WTT가 되었다.)

홍콩에 진출한 외국의 스트리밍 서비스로 Le.com, 아이치이 (이상 중국), 넷플릭스(미국)가 있으며, 이 중 Le.com은 홍콩에 실시간 채널을 들고 나왔고 스포츠 경기 중계권도 확보한 상태다.

16. 문화[편집]

사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중국 문화 이미지는 실제로 홍콩이 기여했던 바가 크다. 당장, 중국권법을 쓰는 캐릭터부터가 홍콩 영화 덕분에 대중적이게 되었고 치파오를 중국 대표 전통 복장으로 생각하는 것도 홍콩의 영향이며, 또 중국어를 흉내낸답시고 내는 억양[71]도 홍콩의 통용어인 광동어가 그런 억양을 지녔다.

16.1. 영화[편집]

5~60년대까지만 해도 멜로 영화와 호금전, 장철 감독의 무술 영화가 강세를 보였지만, 70년대 그 이름도 유명한 이소룡의 사실적인 액션 영화와 허관문, 허관영, 허관걸로 이루어진 허씨 3형제의 코미디 영화 '미스터 부 시리즈[72]가 등장하여 크게 히트하면서 리얼 액션과 코미디 영화가 홍콩 영화의 주된 장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두 장르를 적절히 조화시킨 성룡, 홍금보가 뜨면서 이러한 경향은 정점에 달했다. 그러다 80년대 말 그 유명한 영웅본색으로 대표되는 액션 느와르물이 대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암흑가와 속시원한 총격씬이 주가 되는 영화가 대세를 이루게 된다. 특히 이때 오우삼, 왕가위, 주윤발, 장국영 등의 명감독, 명배우들이 많이 등장했다. 90년대 초반에는 도신, 도협, 도성 시리즈로 대표되는 도박물과 특유의 병맛 코미디를 내세운 주성치가 인기를 끌었고, 중국으로의 홍콩 반환이 결정된 후에는 임청하동방불패이연걸 주연의 황비홍 시리즈로 대표되는 무협물 붐이 일어났다.

더불어 홍콩 배우나 감독들의 헐리웃 진출도 많았는데, 배우 중엔 주윤발, 성룡, 이연걸, 감독 중엔 오우삼이나 서극, 임영동, 당계레, 우인태, 양보지[73] 같은 사람들이 진출했다. 다만 성룡이나 오우삼, 우인태 등 몇몇를 빼곤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홍콩으로 돌아왔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와 합작으로 영화를 자주 만들기도 했었다.[74] 다만 당시 한국영화사의 외화 수입 규제[75] 때문에 진짜 합작품도 있었지만 후시 촬영만 하고 홍콩이나 대만영화를 짜집기해서 합작품으로 둔갑시킨 괴작들도 꽤 된다.[76] 어찌됐든 이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걸출한 무술 배우들이 배출되었는데 합기도 특유의 독특한 꺾기 기술로 파격적인 액션씬을 보여준 황인식이나 가위차기의 달인 왕호, 신묘한 발차기 솜씨를 자랑하는 태권도 고수 황정리 등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필름이 홍콩 측에 가있는 탓에 한국말 더빙이 사라져 버려서 광동어나 영어 더빙으로나 구해 볼 수 있는 게 대부분이다. 정창화감독의 천하제일권의 경우 중국어판으로 DVD가 정발되었지만 TV를 통해 한국어판을 방영해준 바 있다.

16.2. 만화[편집]

격투천왕이니 스트리트 파이터 가두쟁패전이니 하는 괴작 만화들의 빛나는 산실(…)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만화강국이다. 주로 일본만화와 서양의 극화풍이 혼합된 것이 특징.

16.3. 음식[편집]

광동 요리 위주인데 그 중 유독 완탕면이라는, 새우 육수 국수딤섬에 특화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홍콩식 완탕면과 딤섬을 먹을수 있는 청키면가(忠記麵家)라는 식당이 홍대거리에 있었으며 이태원역 근처에 이전했다가 2016년 8월에 폐업했다.
대신 2017년 현재 청담동과 무교동에 점포가 있으니 가서 먹어도 나쁘지 않을 듯.

디저트로는 에그 타르트가 유명하며 영국 영향을 주고받아서인지 밀크티 티타임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80] 또한 허이라우샨(허유산, 許留山)이라는 망고 주스 체인점도 유명한데 주스에 망고 젤리를 끼얹어서 큰 빨대로 다 빨아먹을 수 있다. 근데 가끔 마시다가 작은 플라스틱 조각이 나온다. 사실 홍콩 사람들은 허이라우샨에 안 간다고 한다.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 코스.[81] 서양의 팬케이크 문화가 유입되어 생긴 빤켁이라는 요리도 있다. 보다시피 "팬케이크" 를 광동어로 발음한 것. 대략 "반으로 잘라 먹는다"는 의미라고.

차찬텡(茶餐廳)이라고 간단한 디저트에서 값싸고 다양한 요리까지 파는 대중음식점이 있는데 대개 프랜차이즈로 운영된다. 홍콩의 3대 차찬텡 체인점은 (체인 차찬탱은 깨끗하고 가격은 저렴하지만 맛은 훌륭하지 않음)

  • 카페 데 코랄(따이까록, 대가락. 大家樂.)
    장국영을 기용한 CF를 찍은 적도 있으며 #[82] 근래에는 한국식 퓨전 메뉴[83]를 내놓을 때 강남스타일을 활용한 광고도 낸 적이 있다. # 이것과 별개로 같은 폰트에 마지막 한 글자가 다른 大家食(...)이라는 브랜드도 존재한다. 세트 메뉴가 N2, N3 등으로 주문하기 편리하다.

  • 맥심(메이섬)
    차찬텡 브랜드로만 한정하면 美心MX가 대표적이나, 사실 메이섬 식품 유한 공사(Maxim's Catering)라는 요식업 그룹의 일원이다. 제빵사업(美心西餠)에도 진출하거나 홍콩 내 스타벅스 운영권을 따낸 등 사업 영역이 넓은 편. 대가락이 한류 메뉴를 내놓자 이쪽도 역시 한류 메뉴를 내놓은 바가 있다. (광고)

  • 페어우드(따이파이웃, 대쾌활, 大快活)
    주성치 주연의 식신에서는 페어우드(대쾌활)와 대가락이 융합한 대쾌락(...)이라는 차찬텡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비체인 차찬텡도 많은데 그 중엔 야우마테이에 있는 미도 카페가 있다. 1950년대부터 있었던 곳이며 홍콩 영화 촬영지로 쓰이기도 하였다.

16.4. 창작물 내에서의 취급[편집]

블랙 블러드 브라더스에서는 1997년도 쿠롱쇼크라고 해서 홍콩이 박살난다. 이 도시도 만만찮게 동네북이다.(...) 그리고 블랙 블러드가 처음으로 인류에게 대대적으로 나타난 도시라고도 할 수 있다. 쿼런틴사이버펑크류의 SF소설이나 국제 폭력조직을 다루는 작품에도 자주 나온다. 구룡성채의 영향 때문인듯 하다. 삼합회가 나오는 작품에도 필수요소처럼 등장한다. 다크 나이트에서는 마피아들의 돈세탁 장소로 등장한다.

헐리우드 영화 내에서는 최근 차이나 머니의 영향으로 홍콩의 등장이 매우 잦아지고 있다. 특히 재난이나 SF 영화 등에서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 다만 이러한 현상이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중국 본토의 도시가 아닌 홍콩에 집중되는 이유는 중국 내 도시와 건축물등에 대한 파괴나 교전 장면 등이 체제의 불안감을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중국 내 심의에서 상당한 마이너스를 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84] 때문에 일국양제의 영향으로 이러한 심의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홍콩이 중국을 상징하는 동네북이 된 것(...). 쉽게 말해 중국 내 관객의 눈을 사로잡고, 친화력을 높히는 동시에 중국 정부의 심의를 최대한 피할 수 있는 접점이 바로 홍콩인 것이다.

좀 뜬금없지만 일종의 가상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일본작품 풀 메탈 패닉에서는 중국장강을 기점으로 남북으로 나뉘어 내전 중이고 때문에 홍콩이 베를린 마냥 갈라져있다는 설정이다. 이를 이용해서 가우룽이 테러를 일으키고 소설 7,8권과 애니메이션 3기의 주 무대가 된다.

퍼시픽 림에서는 중반 이후에서 비중이 매우 큰 배경이다. 기지의 위치나, 영화가 영화니만큼 도시가 신나게 박살난다거나 여러가지 의미로.(...) 영화 툼 레이더: 판도라의 상자(Lara Croft Tomb Raider: The Cradle of Life, 2003)에서 악당 조나단 라이스의 근거지로 나온다. 홍콩내 타임 스퀘어 쇼핑몰에 자신의 화학무기 연구소를 숨겨 놓았다.

게임에서는 격투게임에서 스테이지로 나오거나 전세계를 무대로 하는 게임에서 1~2 미션 나오는 정도였지만, 쉔무 2슬리핑 독스에선 주무대로 나온다. 쉔무의 주인공 하즈키 료는 아버지의 죽음에 숨겨진 비밀을 알기 위해, 슬리핑 독스의 주인공 웨이 쉔은 원래 홍콩 출신이였으나 가정사정으로 미국으로 이민갔다가 홍콩 삼합회에 잠입수사를 위해 다시 돌아왔다는 설정이라 주인공의 고향이기도 하다. 물론 실제에 비하면 게임이니까 현실 스케일에 근접한 구현을 기대하기에는 많이 아쉽긴 하지만, 주무대로 나온게 어디 나오니 그냥 넘어가자.(...) 두 작품을 비교해보면 아무래도 11년 늦게 나온 슬리핑 독스쪽이 그래도 구현도가 더 높다.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의 중국 미션 2에서 GLA가 홍콩의 컨벤션 센터를 장악해 중국군이 이 도시를 탈환하는 미션이 등장한다.

워게임: 레드 드래곤의 시나리오 동방의 진주의 무대로, 홍콩반환문제를 놓고 영국과 중국이 대립하다가 끝내 중국이 홍콩을 침공한다.

또한 절제할수 없는 끈적이는 기분을 느끼며 가버릴때 홍콩행 열차를 탄다고도 사용된다. 동음이의어 항목 참고.(...)

트랜스포머 4에서도 후반부 주무대로 등장한다. 그리고 오토봇들의 싸움에 휘말려 전쟁터가 되어버린다.

배틀필드 4에서 빅토리아 하버가 맵으로 등장한다. 'DAWNBREAKER'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여명의 시작' 정도의 뜻을 '여명의 파괴자(...)'라고 오역.

소년탐정 김전일에서도 두번 등장한다 김전일, 목숨을 걸다, 홍콩 구룡 재보 살인사건

16.5. 스포츠[편집]

홍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크리켓, 럭비이다. 축구는 이들보다는 조금 밀리지만 인기가 점점 늘고 있다. 야구는 인기가 거의 없는 편. 아무래도 영국의 영향이 큰 탓이다.

지금과는 달리 이래뵈도 축구는 1950~60년대만 해도 아시아에서 최정상급 리그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식민지 시절 영국 축구 영향이 커서인데 1908년에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축구리그가 열렸고 1945-46 시즌부터 아시아 처음으로 2부리그 체제를 가졌다. 그 시절 아시아 리그에서 유일하게 2부리그 체제 및 스폰서 체계를 잘 잡아서 한국에서도 첫 해외리그 진출 선수가 바로 홍콩 리그로 진출했다. 최초로 해외에 진출한 선수가 차범근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차범근은 한국인 최초로 유럽 리그에 진출한 것이지 해외 리그에 진출한 것은 아니다. 홍콩이든 말레이시아든 일단 국경 건너니까(...) 엄연히 해외 맞고, 6~70년대 우리나라 경제사정을 고려해 보면 다들 선진국(...)이었다. 당연히 이 시기 뛰어난 선수들은 적극 외화벌이해외 진출에 나섰다.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차범근보다 10년 앞서 최초로 해외 축구 리그에서 뛴 선수는 허윤정 선수로 1968년 Sing Tao(星島)팀에 입단했다. 이 선수는 공군사관학교 출신의 특이한 이력을 지녔던 선수로 이회택과 대표팀에서 같이 뛰었다. 연세는 이회택보다 훨씬 위. 참고로 허윤정 선수의 먼 친척뻘 조카가 바로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반론으로 허윤정 선수보다 훨씬 앞선 1952년 Kwong Wah(光華)팀에서 뛰었던 김규환 선수를 최초의 해외진출 축구선수로 이야기하는 의견도 있다.

물론 지금은 아시아의 승점 제조기 신세가 되었다.(...) 1998 월드컵 예선 당시 한국에게 2-0으로 졌을 당시 홍콩에서 선전했다고 기뻐할 정도이며, 2004 월드컵 지역예선에선 쿠웨이트중국에게 7-0으로 대패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축구선수 출신이던 김판곤 감독이 이끄는 홍콩 사우스차이나 감독이 되어 2008-09, 2009-10 시즌까지 리그 2연패 우승을 거두자 그가 홍콩 대표팀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2009년 동아시안게임에서 오랜만에 홍콩이 우승하자 홍콩에선 월드컵 우승 분위기였고 당시 김판곤은 거스 히딩크 급 인기를 얻었다. 그 뒤로 김판곤은 2011년부터는 경남 FC 코치로 일했지만 1년도 안가서 홍콩축구협회의 끈질긴 애원과 부탁으로 돌아와 2012년 현재 홍콩 A대표팀 감독 겸 유소년 대표팀 총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2017년 12월에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에 선임되면서 홍콩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사임하였다.

2012년 4월 25일부터 30일까지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14세이하 유스페스티벌에서 김판곤이 이끄는 홍콩은 6승 1무 2패로 3위를 차지했다. (우승은 9전전승인 한국, 2위는 7승 2패인 일본) 이를 두고 홍콩에서는 또 한번 김판곤 매직이라는 찬사를 받았는데 항상 5~6위에 머물던 홍콩 14세 이하 대표팀 역대 최고 성적이자 3~4위 단골 멤버였던 북한과 중국을 각각 4, 5위로 밀어버린 것이기 때문이었고, 게다가 2012년 중국과 갈등이 빚어진 가운데 바로 그 중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중국 14세 이하 대표팀 경기를 모두 이긴 것을 두고 유달리 홍콩에서 기뻐했기 때문이다. 경기를 본 AFC 관계자들이 홍콩 유소년팀이 놀랍게 성장했다면서 김판곤을 올해 아시아 유소년대표팀 최고의 감독 후보로 올리겠다고 할 정도였다.

이 나라의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해서는 홍콩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참고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A매치 데뷔전 상대이기도 하다. 1948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중간 기착지였던 홍콩에서 홍콩 대표팀과 한국 대표팀이 맞붙어 한국 대표팀이 5-1로 승리했고, 이것이 한국 대표팀이 사상 처음으로 가진 A매치 경기로 기록되어 있다.

야구의 경우 인기가 아예 없지만 대표팀은 있다. 한국이 세팍타크로 대표팀이 있듯이 아시안 게임에 몇번 나왔지만 좋은 성적은 올리지 못하였다. 2017 년 4 월 홍콩 야구 대표팀의 장신 잠수함 케네스 췌가 체코 엑스트랄리가 소속 올림피아 블란스코와 계약했다. 홍콩 야구계에 있어서는 역사적 사건으로 "최초의 프로 야구 선수 탄생 '이라는 기사가 언론에 소개되었다. 케네스는 두 번째 등판에서 프로 첫 승을 올린다. 케네스 췌는 최종 성적 1승 7패, 5.67을 기록했고 2018시즌부터는 베이스볼 분데스리가의 베를린 플라밍고스에서 뛰게 된다.

스포츠와 거리가 있는 스포츠 도박(?)에선 홍콩 경마회[85]에서 발행하는 축구토토가 인기가 높다. 주 베팅 대상은 유럽 빅리그. 가끔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홍콩경마회 로고가 새겨진 건물이 자주 보이는데 이 건물이 스포츠토토, 경마베팅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시설인듯. 어느정도 큰 사단법인쯤 되는 모양인지 췬완쪽에 홍콩경마회 탁와(德華)공원이라는 지역 시민공원을 세운 적도 있다. 까우룽자이싱공원보다는 조금 작지만 중국식 정원 위주의 인테리어고 주로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러 나온다. 아예 커다란 장기판으로 이루어진 휴식공간도 있어서 커다란 장기말(...) 위에 앉을수도 있다. 잠깐 그러고보니 공원 이름이 이분과 같다. 관련성은 불명.

경마 또한 인기가 높으며, 21세기 들어 일본, 호주 등과 함께 떠오르는 경마 시행국으로도 유명하다. 애드미럴티 동쪽에 평일 야간 경마를 주관하는 크고 아름다운 해피밸리 경마장과, 주말에 국제 레이스를 주관하는 샤틴 경마장이 있다. 남/북반구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G1급 경마국이라 일본, 호주, 유럽 등의 1류 경주마들이 국제 G1 우승을 노리고 원정오기도 한다. 서러브레드 생산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주마가 수입해 온 거세마라는 특징이 있다.

아시아권에서는 일본, 중국과 더불어 손에 꼽는 사이클 강국이기도 하다.

럭비는 일본 다음으로 한국과 같은 아시아 2인자 이미지도 갖고 있다. 그 때문에 한국과 경기 승패비율이 양국간이 비슷하다. 아시아 챔피언, 럭비 국가 리그, 럭비 월드컵 예선에서 자주 만난다. 이 정도면 라이벌이라 할 수 있다.

올림픽에서는 2017년 기준, 하계올림픽에서만 금은동 각각 1개씩 획득하고 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요트 경기에서 리라이샨(李麗珊)이 획득한 메달이 현재까지 유일한 홍콩의 올림픽 금메달로 기록되어있다.시상식 영상 참고로 1997년 중국 반환 직전에 열렸던 올림픽이었기 때문에 국기는 영국령 홍콩기가 계양되었고, 국가는 God Save the Queen이 연주되었다.

17. 관광[편집]

18. 기타[편집]

  • 커맨드 앤 컨커 제너럴에서 중국미션 2에 등장한다. 국제적 테러리스트인 GLA가 홍콩 컨벤션 센터를 장악하여 테러리스트와 독소 트랙터를 이용하여 홍콩을 점령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중국군에게 신나게 털리고 홍콩을 상실하게 된다.

  • 2007년 1월 1일부로 '완전 금연도시'를 선포하고 모든 실내 사업장과 공원이나 해변 등에서의 흡연을 금지하였다. 어길 경우 벌금이 5000홍콩달러(2015년 기준 약 75만원)에 이른다. 다만 흡연이 불법인 건 아니고 흡연구역에서의 흡연은 가능하다. 길거리에는 곳곳에 재떨이를 겸한 쓰레기통이 있어 흡연자들이 모여든다. 참고로 싱가포르는 이미 예전부터 실내 금연을 실시했다. 한국에서도 현재 실내 금연이 원칙이다.[86]

  • 위성지도를 보면 경상남도 통영시와 홍콩의 지형과 시가지 분포가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 국내 e-AMUSEMENT의 테스트 때, 드럼매니아 쪽은 지역명으로 '마카오'를 사용했었지만 유비트 쪽은 지역명을 '홍콩'으로 사용했다. 마카오 테마파크에서 5초만 움직이면 홍콩 테마파크로 이동이 가능합니다.

  • 중국집 이름으로 북경반점[87]이나 몽고반점 등과 함께 흔히 쓰이는 이름이기도 하다.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 사이트의 지도 검색에서 '홍콩'이라고 치면 홍콩XX, 홍콩반점 같은 중국집들이 많이 검색된다. 그 다음은 아리산이나 태로각 등 대만의 지명들이다. 과거 중국 대륙과 수교가 없었을때 홍콩과 대만이 중국의 대표였던 시절의 흔적이다. 외국의 차이나타운에서도 홍콩 출신 중국계 이주민들이 식당을 세울 때 '홍콩'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

  • 건물의 층수가 0층부터 시작한다. 한국의 10층이면 홍콩에선 9층 이런식. 한국의 1층은 홍콩에선 G(Ground)라고 표현된다. 영국과 같은 방식. 그리고 중국인에게 불길한 숫자인 4와 영국인에게 불길한 13이 모두 빠져 있다.

  • 참새가 많은데, 한국과는 달리 사람을 거의 겁내지 않으며 건물 내로 들어와 돌아다니는 것도 간혹 볼 수 있다. 밥 먹고 있으면 다가와 구걸까지도 한다.

  • 북쪽에 있는 중국 대륙 즉 본토와 한국, 일본의 도시보다 한여름 최고기온이 5도 가량 더 낮다. 즉 연중 최고기온이 35도를 넘는 해가 거의 없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이제 그런거 없다[88] 공식 역대최고기온이 36.6도다. 일단 해안도시여서 바다가 열 창고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대외적인 인식과 달리 구름이 많아 일조량이 연중 내내 부실하기 때문이다. 이 두 요인이 겹쳐 동절기에도 미미한 일교차가 하절기에는 1°C에도 못 미치는 기염을 토한다. 그것보다는 크다. 덕분에 이슬점도 밤낮에 따른 변동이 없고, 수증기는 바다에서 꾸준히 보급되므로 습도의 변동 역시 미미하다. 따라서, 5~8월 홍콩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섭씨 28도, 습도 80% 이상을 유지한다.[89] 동남아시아의 자카르타, 방콕,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 등의 도시들도 24시간 습도 80%를 찍는 날은 드물기 때문에, 아시아권 대도시 중에서 이 곳과 비슷한 기후인 오사카와 함께 고온다습의 교과서와도 같은 곳이다. 한국의 7~8월도 홍콩보다는 건조하다. 네이버 세계날씨를 통해 비교해볼 수 있다. 홍콩은 온난습윤기후에 속해서 여름에는 고온다습하고 겨울에는 비교적 온화하고 건조하다. 대체적으로 한국 남해안 일대 기후의 강화버전이라고 할수있다. 4계절이 있지만, 한국만큼 연교차가 크지않다. 물론 아열대기후라고 해서 겨울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홍콩의 겨울은 한국의 가을날씨에 해당할 정도로 그냥 쌀쌀한 수준으로, 그 기간이 대게 11월 중순부터 3월까지 4개월정도 지속된다. 다만 연중 가장 추울때는 최저기온이 10도 아래까지 내려가서 한겨울에 홍콩방문하려면 한국의 늦가을 옷 정도로 입는게 좋다. 더군다나 홍콩은 겨울에도 습도가 그럭저럭 높은데다가 바람도 세게불면 체감온도가 확 떨어진다. 그리고 한국과 비교적 가까운 곳이라서 동아시아 기후의 영향을 받는데 특히 겨울에 심해 한국의 기후패턴이 그대로 나타난다. 즉 한국에 한파가 닥치면 홍콩도 춥다는 것. 2016년 1월 전세계적인 이상한파 발생 당시 홍콩도 0도 가까이 내려가고 아주 추웠다. 일반적으로 3월부터 온도가 상승하기 시작해서 4월로 접어들면 한낮기온이 30도를 넘나들고, 습도도 꽤나 높아서 한국의 초여름 내지 한여름 날씨를 경험할수 있다. 최저기온도 20도선을 상회하고 4월말이 되면 열대야 수준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5월부터는 한여름과 다름없는 찜통더위가 10월까지 쭉 이어진다.

  • 홍콩 섬에선 주말만 되면 거리에서 모여있는 수십만의 필리핀인도네시아인 여성을 볼수있다. 그 이유는 필리핀인도네시아인 여성들이 가정부로 홍콩에 많이 들어오는데, 주말에는 쉬게 해주며 홍콩의 특성상 집이 작아 친구끼리 놀 곳이 거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최근에 인종차별 논란을 낳았다. 홍콩인 고용주가 주말에 가정부들을 집에서 쫓아낸 것이 아니냐는 것. 이는 사실로 드러나 홍콩 주재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영사관에서 항의성명을 내기도 했다. 홍콩에서는 홍콩 사회 내 제노포비아를 가감없이 드러낸 어두운 사건이라는 평을 받았다.

19. 홍콩의 명절[편집]

홍콩의 명절 문서 참고.

20. 홍콩 출신의 캐릭터[편집]

21. 홍콩의 경관[편집]

파일:external/www.incomingtouroperator.com/Hong-Kong-Skyscrapers.jpg

파일:external/img.wallpaperfolder.com/astonishing-hong-kong-night-id.jpg

홍콩 섬 빅토리아 피크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본 홍콩 섬 북부와 까우룽반도

홍콩의 야경

22. 관련문서[편집]

[1] 양자는 거의 비슷하되 '별'이 別과 别로 다르다. 중국 대륙(본토)에서 번체자(정체자)를 써야 할 때 쓰는 표준 자형은 간화자와 동일한 别이지만, 대만(중화민국)에서는 別을 쓴다(대한민국과 일본에서도 別을 씀). 여권 표지에 번체자인데도 别을 쓰는 이유는, 중국에서 <간화자총표(簡化字總表)>에 없는 번체자(구자형(舊字形)이라고 한다.)를 써야 할 경우에는 중국에서 쓰는 신자형(新字形)을 따라야 하는데, 홍콩과 마카오 여권 모두 중국 대륙측에서 디자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홍콩의 행정은 대륙과 분리되어 있으므로, 홍콩에서는 중국과는 다른 번체(정자) 규격을 정해서 "別"을 쓰고 있는 상황이다. 홍콩의 공식 문장(區徽)에서도 그냥 別을 쓰고 있을 정도. 이 표기가 사용되는 건 사실상 여권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여권에서도 전산처리되는 부분인 "발행 관청(簽發機關, Authority)" 부분에는 香港特行政區入境事務處라고 나와 있다![2] 중국 내 지명은 표준 중국어 발음을 따라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홍콩은 1국가 2체제로 별도 정부라 사회주의 체제가 적용이 안되고 자치권 역시 인정받고 있다. 홍콩 정부가 표준어 '샹강'이 아닌 광동어 '홍콩'이라 지칭하므로 홍콩으로 표기한다.[3] 중국어권(정체자·간화자 모두)의 폰트에서는 港의 밑 부분이 巳의 형태로 돼 있지만, 일본의 폰트(신자체 준거)들은 그 부분이 己의 형태로 돼 있다(구자체용 폰트는 巳). 대한민국의 폰트들은 폰트마다 제각각이다.[4] .香港은 국제화 국가코드 최상위 도메인이다.[5] 모든 성급 행정구역은 약칭을 갖고 있다. 홍콩도 특별행정구로서 성급 행정구역이므로 당연히 약칭이 있다. 표준중국어로는 , 광동어로는 이다.[6] 서방 국가는 대부분 handover라고 표현한다.[7] 구룡반도. 홍콩에서 까우룽 반도로 분류하는 지역에는 1898년 제2차 베이징 조약으로 신계 지역과 같이 조차한 신까우룽(신구룡)도 포함된다.[8] 이거 흔들리는 게 거의 바이킹 수준이다...[9] 홍콩편 출연자는 홍콩과학기술대학교 김성훈 교수이다. 현재는 네이버에 합류해 연구를 하고 있는 중이다.[10] 이것도 타이완에 비해 아주 관대한 거다. 타이완은 성으로 취급되어 특별행정구인 홍콩, 마카오와 다르게 자율적으로 외교 활동을 할 수 없다.[11] 홍콩 독립운동에 호의적인 정치인들을 홍콩에서는 본토파, 혹은 독립파라고 하는데, 이들을 빼면 23석이다. 민주파 정치인 대부분은 홍콩 독립운동에 부정적이기에 민주파에서 이들을 제외하는 경우도 많다.[12] 허나 위에서 언급한대로 민주파에서 독립파를 빼버리면 오히려 4석이 줄었다. 독립파가 6석이나 가져간 탓.[13] 반환 당시에는 고작 400명(...). 그러다가 800명이 되었고, 2010년부터 1200명으로 증가.[14] 자세한 것은 이 항목을 참조.[15] 거의 중국 본토와 거래를 할 경우나 홍콩인이 중국 본토에서 문제를 일으킬 경우, 혹은 중국계 홍콩인의 국적 문제.[16] 심지어 전인대와 정협의 홍콩 대표는 당연직 선거위원이다![17] 다른 영국의 해외 영토도 이런 식이지만 제국주의의 해체를 겪으면서 대부분의 경우 해외 영토 주민의 직접 선거로 구성된 의회에서 선출된 총리가 내정에 대한 실권을 맡고 총독은 실권이 없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영국 본국에서 내려보낸 총독이 반환 직전까지도 실권을 가졌던 홍콩은 특이했다.[18] 애초에 그때까지도 총독을 영국 정부에서 보냈던것도 특이했다.캐나다에서는 1952년 제1대 튜니스의 알렉산데 백작 해럴드 알렉산더,호주에서는 1965년 제1대 De L'sle 자작 윌리엄 시드니,뉴질랜드에선 1967년 Ballantrae남작(일대귀족)버나드 퍼거슨을 끝으로 국민들이 총독을 뽑게했다.[19] 보안 관련 법안으로 조항은 있지만 아직 처벌 법령이 없어 이걸 어겼다고 처벌할 수는 없다. 대륙 정부는 국가안전법을 제정해 이를 어기는 자를 처벌하려 하지만 정치 탄압 도구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아 홍콩 주민들이 격렬히 항의하고 있다.[20] 교사 출신으로 영국 식민지 시절에는 식민지적인 교육에 반대하였다. 2011년 1월 2일 향년 79세로 타계하였으며, 워낙 홍콩 시민들에게 명망이 높아 친중파인 행정장관마저도 공개적으로 추도했다. 1월 29일에 장례식이 열렸다.[21] 전술한 것처럼 프레임 자체는 일국양제 지속으로 중국이든 홍콩이든 영국이든 법을 해석하는 법조계에서 2047년 이후 자동 연장으로 본다. 물론 특별행정구 설치로 인해 사회주의 체제 자체는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22] 당장 마케팅에 필요한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은 중국 대륙에서는 막혀있으며 이런저런 사회주의적인 규제들 때문에 중국 대륙에 외국인이 직접 진출하는 건 불가능하다. 즉 특별행정구를 어차피 중국 진출의 베이스 캠프로 만들어야 한다.[23] 사실 이거는 홍콩, 광둥 쪽 한족만 그런 게 아니라 화북, 만주 지방의 한족도 중원과는 DNA 차이가 꽤 다르고 오히려 몽골인만주족과 더 비슷해서 한족 집단 내부의 DNA 차이가 크다. 한족 문서 참고.[24] 진시황이 천하를 먹었다니까 홍콩도 접수했다는 수준의 이야기이지, 사실 그 당시 진시황의 통치권이 저 멀리 홍콩까지 닿았는지는 미지수. 당장 서복만 봐도 불노불사약 찾아오라고 명받고 동해바다 갔다가 먹튀로 돌아오지도 않는 형편이었다.[25] 중화민국 역시 홍콩을 자기네 영토로 보고 주권이 중화민국에 있다고 보고 있으며 홍콩인을 중화민국 시민으로 간주해 병역을 제외한 납세 등 의무를 중화민국의 직접 통치 지역인 타이완 섬에 6개월 이상 거주시 부여한다.(예전엔 병역도 부과했다.) 이 쪽도 여행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26] 신계를 90년대부터 열심히 개발한 이유는 신계와 홍콩 도심이 함께 중국에 반환되기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1997년 되면 중국으로 넘어갈 땅' 취급당해서 영국령 홍콩 정부는 튄문 등 북부 신계 개발을 기피했다. 그래서 윈롱과 툰문 등은 황무지로 남아 있었다.[27]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게, 신계의 전체 면적은 울산광역시보다 작고, 그나마 모두가 경작지도 아니다. 이런 곳에서 홍콩 인구 700만을 먹여살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28] 홍콩인들의 이주로 밴쿠버에 중국계 인구가 많아져 캐나다 내 인종차별주의자들에 의해 홍쿠버(Hong Kong + Vancouver)로 비하당하기도 했다. 홍콩 반환과는 상관 없는 경우지만 왕조현도 밴쿠버에 거주한 일이 있다.[29] 그런데 중앙정부의 간섭이 심화된 2000년대 후반 2010년대 초반 이후에는 반중감정 및 홍콩 정부에 대한 반감이 커져 같은 중국계인 싱가포르 등으로다시 이민을 고려하는 홍콩인들이 생겨났다만 이렇게 극단적인 부류는 소수고 1990년대 같은 이민 열풍은 없다. 대부분의 홍콩인은 그렇게까지 극단적이진 않다. 단지 민주주의를 외면하는 홍콩 정부와 밀려 내려오는 대륙인에 불만이 많을 뿐이며 이 불만도 이민 대신 저항으로 풀고 있다. 민주화는 독립주장과 달리 홍콩은 중국의 영토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홍콩 정부도 시위 주동자 등이 아니면 노골적으로 막긴 힘들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서 홍콩의 집값, 생활물가 폭등으로 인해 일간지에 이민 광고가 자주 등장하고 언어와 문화가 비슷한 대만으로 이민 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중. 기사. 대학생의 경우 한국의 명문대로 유학 오는 케이스도 많다.[30] 감비아, 과테말라, 나우루, 니카라과, 도미니카 공화국, 도미니카 연방, 라이베리아, 벨리즈, 세인트 루시아,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코스타리카, 파나마, 파라과이, 투발루.[31] 파라과이는 영사관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일단 당시엔 아직 포르투갈령이었던 마카오로 이전시켰으나, 2년 후 마카오마저 반환되면서 결국 철수해야 했다. 라이베리아 영사관은 반환 후에도 버티고 있다가 1997년이 지나기 전에 쫓겨났다.[32] 이때 쫓겨났던 나라들 중 감비아(2013-2016), 도미니카 연방(2004), 라이베리아(2003), 중앙아프리카 공화국(1998), 코스타리카(2007)는 후에 중국과 수교(괄호 안 연도, 감비아는 '13년에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16년에 중국과 수교)했지만 수교 후 홍콩에 영사관을 복구하지 않았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만이 2006년까지 홍콩에 명예영사를 두었을 뿐이다.[33] 특이하게 아파트 바로 뒷쪽에 있으며 중국식과 서양식이 섞여있다. 묘비가 중국식이라 겉으로는 가톨릭 교도 묘지인지도 모른다.[34] 중국식 이름은 黃之鋒. 광동어로는 웡지풍, 표준중국어로는 황즈펑이라고도 한다. 홍콩 우산 시위를 주도한 인물이며 1996년생 대학생으로 당시 고3이었다. 조슈아(여호수아)라는 뜻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독실한 기독교인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여자친구인 티파니 친 역시 기독교인이다. 이 커플은 2015년 봄 중국 대륙인으로 추정되는 괴한에게 공격당했던 적 있고 2017년에도 타이완 타오위안 국제공항에서 친중파 외성인 삼합회원들에 둘러싸여 곤욕을 치룬 바 있다.[35] 기독교인이 많다는 대한민국 조차도 종교색 강한 기독교 빌보드는 찾아보기 힘들다. 붙였다가 당장 불교 단체나 반기독교 단체들부터 들고 일어나 욕 먹을 것이다. 일본은 인구 중 기독교인이 전 종파 합쳐 1%도 안 되니 논외. 북한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고, 중국 대륙은 공산당이 통치해 아직까지 종교의 자유가 제한된다. 대만은 인구 3%의 외성인만 기독교를 믿고, 본성인은 기독교를 믿는 장제스 같은 외성인 사회지도층을 싫어해 기독교 교세가 약했고, 워낙 도교세가 강해 불교도 소수였다. 현재는 10% 정도의 대만인이 기독교를 믿어 제법 교세가 늘었다.[36] 솔라 타워라는 베이스 캠프와 예배당이 있고 좀만 걸으면 공항으로 가는 칭마대교를 볼 수 있는 해변이 나온다.[37] 비슷하게 싱가포르도 90% 이상의 교회가 아파트 단지나 상가건물 내에 십자가만 세워놓은 수준이다. 오죽하면 이 나라는 물론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의 교회인 시티하베스트 교회(아시아에서 두번째로 크다. 아시아 1위는 다들 잘 아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이다)가 특이한 교회로 주목 받았을 정도. 그러나 2009년 시티하베스트교회의 공금횡령 사건이 터지고 2015년 콩히 목사가 징역 8년을 선고받면서 망했어요.[38] 물론 청년실업 문제로 들어가면 80%의 대학 진학률을 보이는 한국이 18%의 대학 진학률을 보이는 홍콩에 현저히 밀린다. 한국은 고학력 실업자가 넘쳐나 몸살을 앓고 있는데 홍콩 정부는 대졸자가 거의 전부인 한국인을 고급 인재로 보고 데려오려고 워킹홀리데이 협약도 맺고 취업비자를 완화하는 등 조치를 해 준다.[39] 9,000파운드로 비 EU/EEC 출신 학생이 내는 것의 반 정도 된다.[40] 미국이 High School을 쓰는 것과 달리 영국식 영어인 Secondary School을 쓴다. 중국어로는 中學이다.[41] 홍콩은 그리스도인이 많고 영국령이었던 적이 있어서 부활절과 부활절 전날인 성 금요일이 공휴일이다. 부활절 다음 날은 영업하는 회사도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사업장이면 대게는 쉰다. 한국은 부활절이 그리스도인에게만 의미가 있지 쉬는날도 아니고 인지도가 낮다.[42] 다만 일본의 경우 2010년대에 들어서는 대졸자 실업 문제가 많이 나아진 상황이다.[43] 물론 이들 나라들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학벌이 낮은 이들을 깔보는 문화나 일부 상위권~최상위권 대학 출신자들의 동질혼 고집과 같은 학벌 지상주의 시대가 만들어 놓은 잔재가 남아있다.[44] 물론 중국 대륙이나 베트남 이민자들의 영향이 크다.[45] Times Higher Education 2017기준 각각 세계랭킹 43, 76, 49위다. 덤으로 아시아 1위는 랭킹불문 국립싱가포르대학이 주로 꼽히고 (2017 세계 24위), 대한민국 1위 서울대는 2017년 72위다. 참고사항으로 이외에 베이징대, 칭화대, 도쿄대와 싱가포르의 난양공대가 매년 30~50위권의 비슷한 티어에 있다.[46] 대한민국의 경우 2018년 현재 미국캐나다, 호주 유학의 대체제로 또다른 선진국들인 대륙유럽권, 그중에서도 특히 독일네덜란드로의 유학이 새로 뜨는 추세이다.[47] 이와 관련해서 홍콩인들의 부심은 대단하다 할 정도... 가끔 인도공대 입시시험이 더 어렵다고 주장하는 인도인들과 다투지만 일단 인도공대 입시시험은 일반적 대입시험이 아니고 HKALE보다 커트를 보건 뭐건 쉽다는 평이다.[48] 다만 홍콩의 경우, 유입된 성인 노동인구의 비율이 높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굳이 우리나라에서 예를 들자면 광역시 규모로는 울산, 좁은 지역으로는 여의도를 들 수 있는데, 이 동네들도 고등교육시설들은 극히 부실하다.[49] 조던-야우마테이를 가로지르는 상하이 스트리트(上海街, Shanghai Street)는 매춘으로 악명이 높다! 실제로 그쪽을 밤에 돌아다니면 마사지를 빙자한 매춘업소를 많이 보게 된다[50] 이는 지상파의 범죄재연프로그램이 모방범죄의 우려가 있고 내용의 유해성 문제 등으로 인하여 종영되었기 때문인데, 특히 경찰청 사람들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51] 참고로 제작은 홍콩 라디오 텔레비전과 합동 제작.[52] 중국 반환 이후로는 중국어 실력을 경찰 선발기준에 넣었고, 대륙인 2세들이 슬슬 사회에 나오는 시기가 되자 영어 실력이 예전 같지 않다(대륙인 2세들은 광동어로 수업하는 공립을 주로 다닌다). 경찰에게 길을 물어 보았는데, 정말 친절하게 알려주고자 노력하는데 영어가 잘 안 되어서 땀 흘리는 모습을 몇 번 봤다. 물론 간부급은 영어 및 보통화는 기본이니 잘한다. 그리고 구룡반도홍콩 섬 간에도 격차가 있다. 위의 사례는 구룡반도 사례인 듯. 반대 사례로 홍콩 섬 완차이의 경우 경찰들의 영어가 아주 능숙하다.[53] 일부는 일본어 또는 한국어도 구사 가능하다. [54] 비호대를 다룬 홍콩 영화도 있는데, 제목도 비호대(...).[55] 정신 이상자로 동반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56] 어디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한 게 아니라 책임지고 승객들을 대피시켰다.[57] 한인신문에 한국 병원 광고가 많이 실린다.[58] 차량은 일본의 미쓰비시가 발주해 쿤통선에는 초도 전동차가 일본제였다. 디자인은 일본과 다른 영국식이었다. 현재 전동차는 한국제, 중국제, 프랑스제, 스페인제 등으로 다각화 되어 있다. 특히 중국제 차량이 값싼 수주비와 질 좋은 성능으로 50%를 차지하고 있다.[59] 기사가 오고가는 왕복을 다 내야한다! 해저터널은 공사비 때문에 모두 유료다.[60] 바다 밑을 지나므로 해저터널이 맞는 표현이다.[61] Western Tunnel은 바로 옆으로 MTR 공항선뚱충선이 병렬로 지나간다.[62] 사실 한국인 관광객이 Eastern Tunnel을 탈일은 없다고 봐도 된다. 타이쿠싱/사이완호는 주재원 등 장기체류자들이 주로 거주하고 쿤통에는 한국인이 갈일이 없다. 타이쿠싱-쿼리베이에 사진촬영지로 유명한 '익청빌딩'이 위치해 있으며, 타이쿠싱에 원더걸스 혜림이 다녔던 Delia School of Canada라는 학교가 위치해 있다.[63] 역명은 사과일보. 2003년부터는 대만판도 발간중. 민주파에 우호적인 신문으로 2012년 초 홍콩 네티즌의 반중국 광고를 전면게재하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이웃나라/한지붕 두가족 참조.[64] 무협 소설가 김용이 창간한 그 명보 맞다. 신뢰도는 SCMP와 더불어 최상위권.[65] 원래는 주류 신문이었지만 재정 악화 등으로 영향력 하락.[66] 과거 냉전시대에는 서방세계에 중국 대륙의 동정을 알리는 거의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영자신문이었다. 이 때문에 그 시절에는 이 신문의 중국 관련 보도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중국 관련 보도가 이 신문의 입지를 확고하게 만드는 데 한 몫을 했다. 그 시절 한국의 뉴스에서도 중국 내진 중화권 관련 뉴스를 전달할 때는 항상 '홍콩의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의 보도에 의하면...'으로 시작하곤 했다. 지금은 중국의 개방으로 직접 특파원이 중국에 파견되어, 중국 관련(특히 중화인민공화국) 소식 의존도는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국내외에서 신뢰도는 여전히 상당히 높다. 현지 언론을 통해 중국 소식을 알고 싶은데 중국어를 모를 경우, 사실상 SCMP 이외의 옵션이 없을 정도이다. 예나 지금이나 홍콩 내부에서는 영자신문인 점을 강조하는 듯, 1985년 CF 카피를 요약하자면 '영어를 배워야 홍콩사회에서 성공하니 닥치고 우리신문 보세염'이다. 뭐, 지금도 틀린 말은 아니다. 영국 지배하의 그 시절이면 더더욱 그랬고 현재도 2문3어 정책도 그렇고 국제 금융중심지라는 특성도 그렇고 이래저래 교육을 받아야 제대로 살수 있다.[67] 1949년에 영자신문으로 창간하여 2007년에 무료로 전환, 홍콩의 유일한 무료 영자신문. 타블로이드 규격으로 지면이 작다. 그리고 미국식 영어가 나온다?! 아마도 홍콩의 영어는 영국식/미국식에 약간의 호주식이 짬뽕되어서 가능한 듯 하다. http://www.thestandard.com.hk[68] 비록 3년만에 경영문제로 폐업했지만, 당시 김용 원작의 소설(사조영웅전, 신조협려, 벽혈검, 설산비호, 녹정기 등)을 최초로 드라마한 방송국이라는 것에 의의가 있다. 또 금도정협(金刀情俠; 고룡의 구월응비를 원작으로 한 작품. 일부 장면은 한국에서 찍기도 했다.)이란 드라마에서 서극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69] 원인으로는 황금시간대에 교육프로그램을 광고없이 방영해야 했고, 이외에도 면허 발급에 불리한조건 때문에 지장이 있었다. 게다가 폐국이 좋지 않았던 것이 이 방송국에 소속된 배우나 제작진들에게도 사전에 알리지 않은 상태였으며 그 이후 프로그램은 TVB와 RTV가 구매하였고 CTV의 소속 배우와 제작진들은 양대 방송사로 이적하였다.[70] 원인은 1987년 사옥 화재, 1994년 6명의 기자들의 집단 사퇴사건이 복합적으로 작용되었던 것이다.[71] 대충, 띵 똥 쌰옹 거리는 거[72] 귀마쌍성(鬼馬雙星), 반근팔량(半斤八兩), 매신계(賣身契), 천재백치(天才與白痴), 마등보표(摩登保鏢), 철판소(鐵板燒)의 6개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저 제목은 다 떼고 미스터 부 시리즈로 발매.[73] 梁普智. 이름이 한국에서 그대로 쓰기엔 좀 그래서인지 보통화 발음인 리앙부지라는 감독 이름으로 개봉된 등대여명 같은 영화로 소개된 바 있다.[74] 정통 중국 무협영화를 촬영해야 하는데 홍콩은 그럴 만한 고풍스런 사찰 등이 드물고 무엇보다 기후 조건이 안 맞는다. 사찰을 배경으로 무협영화 찍는데 배경으로 야자수나무? 뭥미? 본토에서 찍자니 당시는 문화대혁명 시절이라 아예 들어가지도 못한다. 대만에서 촬영하자니 거기도 아열대기후~열대기후다. 일본에서 찍자니 비용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 이런저런 규제가 심하다. 그러면 어디서 촬영해야 하는지는 딱 답이 나온다. 이건 80년대 초반까지의 홍콩산 무협 드라마 쪽도 마찬가지. 물론 절대다수는 세트로 떼우긴 했지만 몇몇 작품은 한국에 촬영을 하러 가기도 했다(ex: 호해쟁패록(湖海爭覇錄)과 위의 금도정협, 진시황. 이 중 호해쟁패록은 덕수궁에서, 진시황의 일부 겨울을 배경으로한 씬은 제주도에서 촬영하기도 했다.).[75] 한국영화 제작 수를 채워야 외화 수입을 허용했다.[76] 대표적인 작품이 용지인자(龍之忍者)란 영화를 짜깁기한 남기남의 흑룡통첩장.[77] 다만 위의 호금전, 장철 감독까지 포함해서 원체 시대가 옛날이다 보니 지금 보면 유치하다고 느낄 만한 장면도 있다. 다만 80년대쯤부턴 그런 부분이 많이 제거되어 지금 봐도 별 위화감이 없는 명작들이 많다.[78] 인지도는 영웅본색 시리즈에 비해서 밀리는 감이 없지 않지만, 동시기에 나온 홍콩 느와르물의 숨겨진 명작이다. 총 4편까지 만들어졌으며, 3편에서는 유덕화가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1편을 제외한 모든 시리즈에 서금강이 주연 또는 조연으로 나오는 것도 특징.[79] 장르가 원체 짬뽕이라 분간이 잘 안되긴 하지만(...), 여튼 명작이다. 왕조현 하나로 끝[80] 다만 밀크티의 경우 이런 류의 음식들이 으레 그렇듯 상당히 현지화된 맛이라는 듯.[81] 2017년에 허이라우싼은 한국에도 롯데타워점을 런칭했다.[82] 이 광고가 장국영의 첫 광고....는 아니고 이쪽이다.[83] 이후 한국 메뉴를 또 냈는데 그게 밥에다 양념치킨 다리를 올려놓은(...) 것도 나왔다.[84] 반대로 재난 영화나 SF 영화라도 중국 내에 범 지구적인 조직의 사령부나 최첨단 공장 등이 설정되어 있는 것은 환영받는다고 한다. 때문에 사령부는 중국에 있는데 정작 중국 본토는 털리지 않는 기이한 상황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종종 있다.[85] Hong Kong Jockey Club.도박산업 독점기관이다. 경마, 로또, 스포츠토토를 주최한다. 카지노가 없는 이유는 옆에 마카오가 있기 때문이지.[86] 반면 중국본토는 아직까지는 실내흡연에 꽤 관대하다. 일본도 마찬가지이다.[87] 정작 진짜 베이징 시에 있는 북경반점(北京飯店)은 호텔이다![88] 습도가 매우높아 체감온도는 대구 이상이다.[89] 한국여름은 그래도 화창한날의 경우 한낮습도가 50% 밑으로 떨어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