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경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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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No.72 | |
조경택 曺敬澤 | Cho Kyoung-Taek | |
출생 | |
국적 | |
학력 | |
신체 | 183cm, 94kg |
포지션 | |
투타 | |
프로 입단 | |
소속팀 | |
지도자 | 한화 이글스 1군 배터리코치 (2004~2009)[2] 한화 이글스 2군 배터리코치 (2009~2011)[3] 한화 이글스 1군 배터리코치 (2011~2013)[4] 한화 이글스 2군 배터리코치 (2013~2014)[5] 한화 이글스 1군 배터리코치 (2014)[6] 두산 베어스 2군 재활코치 (2015~2017) 두산 베어스 2군 배터리코치 (2018~2019)[7] 두산 베어스 1군 배터리코치 (2019)[8] 두산 베어스 2군 배터리코치 (2019~2021)[9] 두산 베어스 잔류군 코치 (2021)[10] 두산 베어스 2군 배터리코치 (2022)[11] 두산 베어스 1군 배터리코치 (2022)[12] 두산 베어스 2군 배터리코치 (2023) 두산 베어스 잔류·재활군 코치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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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95년 4월 17일, 전형도를 상대로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었다.(당시 기사) 트레이드 당시 조경택은 직전 해인 1994년 11월에 가스 누출 사고로 부모와 어린 조카를 잃고 팔꿈치 통증도 있던 그야말로 정신적으로 극한으로 몰려있던 상황이었다. 실제로, 팔꿈치 통증 때문에 95 시즌은 26게임 출전에 그쳤다.
그러다 96 시즌부터 야구인생이 피게 되었는데 빙그레 시절부터 터줏대감이었던 주전포수 김상국[13]이 노쇠화로 인해 골골대는 틈을 타서 주전으로 발돋움하는 데 성공한다. 다만 풀타임 주전이었다기보다는, 2년 후배 강인권과 2:1의 비율로 출장하여 준주전포수로서 활약을 했다.
일단 투수 리드 부분에서는 무난하다는 평가를 들었고 타격은 포수로서 딱 필요한 평균수준의 타격을 보였다. 강인권과 같은 수비형 포수였지만 타격쪽에서 조경택 쪽이 컨택이 좀 더 좋았고 덕분에 좀 더 많이 출장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시절 조경택이나 강인권이나 파란불 신호등 어깨의 소유자라 도루허용률이 꽤 높았다. 둘 다 똑같이 수비형에 똑딱이형 & 약한 어깨까지 닮아서 형제 1 & 2호기 소리도 들었다.
이 탓인지 96년(VS 현대), 2001년(VS 두산) 준플레이오프에서 2패로 탈락했는데 당시 두 상대 팀(현대-장광호 두산-홍성흔)은 확고한 주전포수가 있었다.
그러나 2002년에 강인권과의 맞트레이드로 이도형이 한화에 오며 그의 위치는 불안해진다. 게다가 조경택은 가뜩이나 좋지 못한 타격과 도루저지능력이 모두 하락하여 2003년에는 이도형에게 완전히 주전자리를 뺏긴다. 그리고 2001년도에 적은 타수이지만 3할 2푼의 타율로 가능성을 보여줬던 유망주 신경현이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서 제대하면서 입지가 좁아진 조경택은 은퇴를 선택한다.
그 뒤는 신경현이 이도형의 부상을 틈타 주전포수를 승계하면서 2004년부터 터줏대감이 된다.
2000년에 선수협 출범 당시 한화 이글스 주장으로 선수들을 대변하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구단의 비호 하에 선수협을 방해하는데 앞장섰다. 이 때문에 당시 선수협을 주도하던 송진우와도 여러 차례 충돌했다. 그러나 소위 선수협 오적인 이호성, 김기태, 유지현, 김경기, 김태형에 비해서 워낙 인지도가 낮아서인지 양준혁을 폭행한 이호성, 그리고 전지훈련지에서 김경기가 전준호를 폭행하는가 하며, 자기네들끼리 멱살잡고 싸우던, 김기태, 유지현, 그리고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라는 태도로 일관하던 김태형에 비해서 상당히 묻히는 편이다.[14][15] 어쩌면 코치로서 무능한데도 이러한 과거가 있어 한화 프런트에 잘보인 덕에 살아남는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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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의 성실함을 인정받아 은퇴 후 배터리 코치를 맡아서 2014년까지도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렇긴 한데...
한화 시절 배터리 코치로서의 평가는 상당히 나빴다. 몆 년 간이나 이어져 온 한화 이글스의 포수 상위 지명 러시로[16] 포수로만 9명 주전을 채울 수 있다고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상황 속에서도 배터리 코치로서의 성과는 영 아니라서 매년 까이고 있다. 일단 현장에서는 사람 좋고 순하고 인품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들었고 열심히 지도하는 점은 좋은데 성과가 별로 없어서 문제다.
김응용 감독 체제가 들어서면서 배터리 코치 진도 1군과 2군 모두 바꿔야 한다고 한화 팬들이 목청을 높였으나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유지했다.
100승 투수와 호흡을 맞춰본 포수가 몇 명이나 되겠나? 나는 4명의 100승 투수와 호흡을 맞춰봤다. 내가 현역 시절 명포수로 이름을 떨쳤던 것도 투수의 역할이 크다.
그리고 2013년 들어서 말실수인지 실언인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뷰 한번 잘못해서 아구 관련 커뮤니티에서 제대로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나 현역시절 명포수야! 실수가 아니고 스스로 명포수라 생각한 걸 수도.
일단 인터뷰 자체는 한화의 젊은 포수들의 성장에 대한 주제로 인터뷰를 한 것이고 말 자체는 그럭저럭 맞는 말에 무난하긴 한데 "100승 투수와 호흡을 맞춰본 포수가 몇 명이나 되겠나? 나는 4명의 100승 투수[17]과 호흡을 맞춰봤다. 내가 현역 시절 명포수로 이름을 떨쳤던 것도 투수의 역할이 크다." 면서 자기 자신을 명포수라고 말한 이 부분 때문에 자칭 명포수라고 제대로 까였다. 한화 팬들은 아, 그 시절에 조경택이라는 명포수가 있었구나 라고 그동안 명포수를 못 알아본 것에 대해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반응이었다. 사실 인터뷰를 자세히 읽어보면 포수가 투수에게 가능한 맞춰 줘야 하고, 투수가 잘해야 포수가 명포수가 된다는 말에 가깝다.
선수 시절 성적을 보면 주전 포수로서는 그럭저럭 준수한 편이긴 했는데 당시에도 도루저지가 떨어져 논란이 있었고 통산 12시즌 동안 100경기 이상 출전한 시즌은 겨우 3시즌 정도였으니 명포수를 자칭할 정도로 뛰어난 건 아니었다. 100승 투수 4명과 호흡을 맞춰본 것은, 흔한 일은 아니므로 자부심을 가질만 하긴 하지만 이건 너무 나간 발언이긴 했다. 결정적으로 이만수, 박경완, 김동수, 지명타자로 전향한 홍성흔, 심지어 진갑용은 고사하고 조경택과 마찬가지로 두산에서 건너온 포수이자 지명타자, 1루수 등으로도 뛰었던 이도형이나 신경현에게도 통산 성적이 밀리므로 명포수라고 보기는 더더욱 힘들다. 참고로 신경현의 통산 타율은 0.252, 경기당 실책수 또한 0.43개로 0.48개의 조경택보다 모두 앞선다. 말실수이거나 표현 선택의 실수로 볼 수도 있긴 하지만...
정의하자면 2013년까지의 기준으로는 얼굴값을 못하는 배터리코치.
그리고 2013년 개막전에서 신인포수인 한승택이 개막전 출전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는 걸 걱정해서 김응용에게 정범모의 선발출전을 건의했고 이건 신의 한수로 작용해서 역시 명포수출신임을 입증했다. 칰끼리 감독님의 인증 인터뷰
명포수의 혜안은 적중해서 정범모의 속터지는 포수 리드를 한화팬들은 실시간으로 감상해야 했다.
2군의 전종화 배터리코치와 교체된 사이 1군에서 엄태용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이준수 / 정범모의 수비가 나아지고, 2군에 내려가있던 한승택의 수비가 퇴화되는 것을 보면 역시 조경택 매직은 실존하는 듯하다.
2군 배터리코치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4월 24일 두산전을 앞두고 김응용 감독이 팀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1군으로 다시 올렸다. 대신 전종화 코치가 엔트리에서 말소되어 2군 배터리코치로 가는 보직이동이 이뤄졌다. 이를 두고 한화 팬들은 "칰무원 어디 안 간다"등등 혹평 일색. 이쯤 되면 일부러 팀을 망하게 하려고 작정한 것 아닌가 의심될 지경. 이상군의 이름값이 너무 커서 그렇지, 이상군이 1군 올라오는 것에 준하는 사태였다.
베테랑 포수 조인성이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자, 그의 1:1 멘토링에 정범모가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오죽하면 조경택이 9년 동안 가르친 것보다 조인성이 한 달 가르친 게 많다는 말까지 돌 지경. 팬들은 이 기회에 조경택 짜르고 조인성을 플레잉 코치 시키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리고 김성근 감독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은 10월 27일, 한화가 재계약하지 않을 것을 밝힘으로써 팬들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지난 1995년 이후 20년 만에 한화 구단을 떠나게 되었다.
다만 김성근 감독은 정범모의 사이드암 스로 송구를 오버핸드 스로로 교정시키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조경택을 까는 한화팬들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정범모가 그래도 도루 저지면에서는 발전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
그리고 새롭게 포수들을 책임지고 있는 후루쿠보 겐지 배터리코치는 '조인성을 제외하고 포수들이 기본기가 없다.' 며 현재 한화 안방마님의 처참한 실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로써 조경택의 평가는 더더욱 떨어졌다. 조인성은 작년 후반기 트레이드로 온 외부 출신인 데다 불혹의 나이를 감안하면 그동안 내부 포수 육성이 얼마나 부실하고 처참했는지가 암시된다.
베테랑 포수 조인성이 한화 이글스로 트레이드되자, 그의 1:1 멘토링에 정범모가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오죽하면 조경택이 9년 동안 가르친 것보다 조인성이 한 달 가르친 게 많다는 말까지 돌 지경. 팬들은 이 기회에 조경택 짜르고 조인성을 플레잉 코치 시키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리고 김성근 감독 취임 후 얼마 되지 않은 10월 27일, 한화가 재계약하지 않을 것을 밝힘으로써 팬들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지난 1995년 이후 20년 만에 한화 구단을 떠나게 되었다.
다만 김성근 감독은 정범모의 사이드암 스로 송구를 오버핸드 스로로 교정시키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조경택을 까는 한화팬들 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정범모가 그래도 도루 저지면에서는 발전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
그리고 새롭게 포수들을 책임지고 있는 후루쿠보 겐지 배터리코치는 '조인성을 제외하고 포수들이 기본기가 없다.' 며 현재 한화 안방마님의 처참한 실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로써 조경택의 평가는 더더욱 떨어졌다. 조인성은 작년 후반기 트레이드로 온 외부 출신인 데다 불혹의 나이를 감안하면 그동안 내부 포수 육성이 얼마나 부실하고 처참했는지가 암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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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30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4 곰들의 모임'중 신임 코치 환영식을 통해 강석천과 함께 두산 베어스의 코치로 영입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로써 1995년 이후 20년 만에 베어스 유니폼을 다시 입어보게 되었다. 여담으로 당시 트레이드 맞상대였던 전형도 역시 두산의 코치로 재직 중이라 한솥밥을 먹게 되었다.
보직은 2군 재활코치. 사실 배터리 파트의 경우 2군에 김진수, 1군은 강인권이 있다 보니 조경택에게 재활 보직을 맡긴 걸로 보인다.
배터리코치를 맡던 한화 시절 무능하다고 욕먹었던 것과 다르게 두산 시절에는 별 말이 나오지 않는 걸로 봐서는 딱히 문제는 일으키지 않은 듯하다. 애초에 2군에서도 배터리코치가 아닌 재활코치를 맡고 있다 보니 딱히 주목받는 보직도 아니라 팬들 사이에서도 별 말이 나오지 않고 있다.
2017년 10월, 차기 감독을 선임 작업 중인 한화 이글스가 한화 선수 출신인 투수, 포수 코치 중 한 명을 차기 감독으로 내정해 놨는데 그 후보가 한창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두산 소속이라 발표를 미루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다수의 팬들은 한용덕 수석코치나 강인권 배터리코치를 감독 후보로 유력하다고 보고 있지만 조경택도 두 조건에 부합하는 코치인지라 조경택을 차기 감독으로 내정한 게 아니냐는 소수의 추측도 있었다. 하지만 한화 감독은 예상대로 한용덕이 되었고, 이에 한용덕을 따라 한화 코치로 복귀한다는 썰이 돌았으나, 강인권, 전형도와 달리 두산에 잔류했다.
2019년 5월 28일, 팀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이뤄진 코치진 보직 교체에 따라 조인성과 보직을 바꿔 1군 배터리코치로 올라왔다. 그러다가 6월 4일 다시 조인성과 보직을 맞바꿔 2군으로 돌아갔다.
2022 시즌은 2군 배터리코치로 출발했다가, 6월 1일 코칭스태프 보직 변경 과정에서 김진수 코치와 보직을 맞바꿔 1군 배터리코치로 올라왔다. 그러나 평가는 좋지 않은 편이다.
이후에도 잔류군 코치로 좌천되었으나 26시즌에 들어가도 재계약하면서 두산에서의 코치 생활을 12년째 이어오고 있다.
- OB 시절이었던 1994년 11월 초에 갑작스런 가스 누출 사고로 부모와 어린 조카를 모두 잃는 비극을 겪었다. 막내 아들인 조경택이 1주일 후에 결혼 예정이라 예비 신부의 예단을 받기 위해 집에 들렀다가 본인의 집에 설치된 보일러에서 도시가스가 누출되어 그대로 질식사했다.[18] 조경택 본인은 이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아 부모의 시신을 붙잡고 울부짖고 술을 물처럼 들이부었다고 한다. 부모의 사망 이유 때문에 집 안에서 예비 신부를 '재수없는 여자' 취급하며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결혼식을 강행했지만 신부 측 하객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 2025년 한화 이글스와 LG 트윈스의 한국시리즈에서 구대성과 시구 시포 조합을 하였다.
역대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삼진 | 실책 |
1989 | 1군 경기 없음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삼진 | 실책 |
1992 | 7 | 10 | .300 | 3 | 0 | 0 | 0 | 0 | 1 | 0 | 0 | 1 | 1 | |
1993 | 1 | 1 | .00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
1994 | 26 | 33 | .091 | 3 | 1 | 0 | 0 | 1 | 2 | 0 | 5 | 13 | 0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삼진 | 실책 |
1995 | 26 | 32 | .219 | 7 | 1 | 0 | 0 | 2 | 2 | 0 | 3 | 7 | 3 | |
1996 | 123 | 325 | .258 | 84 | 14 | 3 | 2 | 39 | 24 | 1 | 25 | 56 | 10 | |
1997 | 77 | 101 | .188 | 19 | 3 | 0 | 2 | 6 | 9 | 1 | 18 | 20 | 3 | |
1998 | 61 | 82 | .268 | 22 | 4 | 0 | 1 | 4 | 5 | 0 | 7 | 18 | 2 | |
1999 | 118 | 194 | .232 | 45 | 11 | 0 | 2 | 20 | 32 | 2 | 23 | 45 | 6 | |
2000 | 87 | 163 | .215 | 35 | 9 | 0 | 1 | 13 | 13 | 0 | 19 | 46 | 4 | |
2001 | 89 | 138 | .275 | 38 | 9 | 0 | 3 | 9 | 16 | 2 | 14 | 30 | 3 | |
2002 | 107 | 157 | .204 | 32 | 6 | 0 | 4 | 16 | 15 | 1 | 13 | 41 | 2 | |
2003 | 48 | 59 | .186 | 11 | 4 | 0 | 0 | 2 | 4 | 0 | 8 | 9 | 2 | |
통산(12시즌) | 770 | 1295 | .231 | 299 | 59 | 3 | 15 | 112 | 123 | 7 | 135 | 286 | 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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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택의 수상 경력 / 이전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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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네이버 인물정보와 두산 베어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1970년 11월 25일생이라고 기재되었으나 과거 신문 아카이브에서 확인 결과 실제 생일은 1970년 7월 15일이다.[2] ~6월 21일[3] 2009년 6월 22일~2011년 5월 5일[4] 2011년 5월 6일~2013년 7월 17일[5] 2013년 7월 18일~2014년 4월 23일[6] 4월 24일~[7] ~5월 27일[8] 5월 28일~ 6월 3일[9] 2019년 6월 4일~2021년 6월 14일[10] 6월 15일~[11] ~5월 31일[12] 6월 1일~[13] 울산 웨일즈에서 외야수로 뛰고 있는 김동엽 선수의 아버지. 95 시즌 후 박은진과 트레이드되어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했고 현대에서 2시즌(96~97)을 뛰고 은퇴했다.[14] 근데 김태형도 네임밸류가 딸려서 그런지 잘 기억 못하는 사람이 많다. 조경택을 기억하는데 김태형을 생각 못하는 사람도 있다...[15] 그리고 사실 김태형도 구단 측에서 선수협 가입 막는 대신 지켜주기로 한 조건(선수단 보호)를 어기고 심정수를 보내버리자 선수단을 이끌고 선수협에 가입해 버린다. 무엇보다 김태형과 조경택은 서로의 문서에서 각각 선수협 오적이면서 그 중에서도 상당히 묻히는 편으로 지목된다. 즉 김경기, 유지현, 김기태, 이호성의 사천왕보다는 김태형과 조경택이 그나마 낫다는 것이다.[16] 보통 포수는 정말 대어급이 나오지 않는 이상 상위 지명되는 케이스가 드물다. 애초에 상위 지명은 보통 투수이고 그 다음이 내야수다. 과거 국가 대표 급 포수가 아니라면 2차 2라운더 정도가 일반적으로 포수를 뽑는 마지노선이다. 다른 포지션보다 유독 경험이 중요하기도 해서 아마 때 평가가 프로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한화는 2004년에 박노민을 2차 3라운드에 뽑은 것을 시작으로 2006년 정범모 3라운드, 2007, 2008년엔 최연오, 이희근을 잇달아 2차 2라운드에서 뽑았으며 이후 잠시 쉬어가는 듯하다 2011년 나성용(3라운드), 2013년 한승택(3라운드), 2014년 김민수(2라운드)를 뽑으며 포수 수집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정상호 같은 대어급이 나올 경우 상위 지명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문제는 상위 지명을 거의 매년 포수에 할애하는데 포수가 가장 취약 포지션이라는 것. 물론 포수를 키운다는 게 그만큼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양적으로 그렇게 모아놓고 하나를 못 터트린다는 것은 조금 문제가 있다.[17] 송진우, 정민철, 한용덕, 이상군[18] 이 비극의 원인은 쌀쌀한 날씨에 켜 놓은 보일러가 화근이었다. 고향에서 잡아온 토종닭에 소주 몇 잔을 기울인 뒤 잠에 든 상태여서 대피하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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