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마냐 마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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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마냐 마티치의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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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 사수올로 칼초 No. 18 | |||
네마냐 마티치 Немања Матић | Nemanja Matić | |||
출생 | |||
국적 | |||
신체 | |||
포지션 | |||
주발 | 왼발 | ||
소속 | 유스 | ||
선수 | |||
국가대표 | 48경기 2골 (세르비아 / 2008~2019) | ||
SNS | |||
세르비아 국적의 US 사수올로 칼초 소속 축구 선수.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
첼시에서는 팀의 프리미어 리그 2회 우승에 기여했으며,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다.
첼시에서는 팀의 프리미어 리그 2회 우승에 기여했으며,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다.
세르비아 국가대표로 2008년 12월 14일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였다. 2015년 3월 29일 유로 2016 예선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멋진 발리슛으로 A매치 데뷔골[3]을 기록하였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본선 최종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조별리그 전 경기에 출전했지만 팀의 조기 탈락을 막지 못했다.
2020년 8월 28일, 마티치는 세르비아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클럽에서의 경기에 집중하기 위함이라고 하며, 향후 네이션스리그와 유로 2020에도 영향을 줄까봐 대표팀 감독의 만류에도 은퇴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본선 최종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조별리그 전 경기에 출전했지만 팀의 조기 탈락을 막지 못했다.
2020년 8월 28일, 마티치는 세르비아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클럽에서의 경기에 집중하기 위함이라고 하며, 향후 네이션스리그와 유로 2020에도 영향을 줄까봐 대표팀 감독의 만류에도 은퇴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주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수비진 위에서 수비라인을 보호하고 큼지막한 피지컬과 많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중원싸움에서 주도권을 가져가는 홀딩 미드필더. 일명 학다리 태클이라 불리는 본인의 긴 다리를 이용해 상대의 볼을 갈고리처럼 끊어내며 가져오는 태클 스킬이 일품이다. 이처럼 다리가 워낙 길다보니 몇 걸음 걷지 않아도 잠시 방심하고 있는 상대에게 성큼성큼 접근해 공격을 차단시킨다. 거기에 전성기에는 활동량도 굉장히 많아서 중원을 거의 휩쓸어 버렸다. 예시로 첼시 2기 시절 리그 24라운드 맨시티와의 경기에서 역시 활동 범위가 상당히 넓은 다비드 루이스와 함께 투 볼란테로 나왔는데, 이 둘은 엄청난 활동량과 무시무시한 태클들로 당시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던 야야 투레를 지워 버렸다.
또한 패싱력도 나쁜 편이 아니라 후방 빌드업 능력도 매끄럽고 안정적인데, 가끔식 튀어나오는 날카로운 전진패스로 2선과 최전방에 찬스를 만들어낸다. 발밑도 부드러워 상대방의 압박을 받아도 특유의 떡대와 발밑을 바탕으로 볼을 지켜내고 압박을 빠져나온다.[4]
이러한 장점들로 인해 전성기 시절에는 스카이 스포츠의 제이미 레드냅이 마티치는 클로드 마켈렐레를 능가할 수 있는 선수라고 호평했으며 앨런 시어러는 BBC의 Match of the Day에서 상대방의 공을 뺏는 능력과 공을 뺏은 후에 뒤가 아닌 앞으로 패스할 수 있는 능력을 동시에 지닌 선수라며 호평했다.
약점이 있단면, 일단 민첩성. 주력이 느린 타입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190이 넘는 거구이다 보니까 순간 민첩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이 때문에 빠르면서 테크니컬한 공격진에 대해서 약점이 있다. 때문에 팀의 전체적인 간격 유지가 잘 되면 자신의 활동량, 신체적인 능력을 이용하여 그야말로 진공청소기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자신이 커버할 공간이 넓어지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때가 많았다. 볼을 찰 때 왼발만 사용하는 왼발 편향적인 모습 때문에 탈압박 능력이 상당히 저하된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신체능력과 커버범위까지 저하되면서 크게 두드러졌다.[5]
또한, 시즌 전반기와 후반기의 경기력 차이가 꽤 있는 편이다.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며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던 14/15 시즌에도 후반기에는 경기력이 전반기에 비해 다소 떨어졌었고, 최악이었던 15/16 시즌에는 반대로 전반기 경기력이 형편없었지만 후반기에는 꽤 폼이 올라왔다. 첼시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16/17 시즌에도 시즌 후반기에 폼이 떨어지며 세스크 파브레가스에게 선발 자리를 내줬다.[6]
- FIFPro 월드 XI 5군: 2017, 2018
- FIFA 푸스카스상 2위: 2013
- UEFA 유로파 리그 올해의 팀: 2022-23
- 프리메이라 리가 올해의 선수: 2012-13
- 프리메이라 리가 이달의 선수: 2012년 12월, 2013년 1월 · 4월
- PFA 올해의 팀: 2014-15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올해의 골: 2017-18[7]
- 세르비아 올해의 축구 선수: 2014, 2015
- 네마냐 비디치와는 이름이 매우 비슷하고 국적도 같아서 형동생 사이로 생각할수 있지만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이다.
- 아내인 알렉산드라 파비치와는 10대시절부터 연애해서 2010년에 결혼하였다.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 장남인 필립 마티치는 맨유 아카데미 U-10 소속이다.
- 키도 크고 멀끔하게 생겨서 옷태가 좋다. 선수 본인도 옷을 깔끔하게 잘 입는 편이다.
-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세르비아의 조그만 동네에서 자랐다. 탑클래스 축구선수가 된 지금 고향을 방문하면 동네 마트에 가서 생활 필수품을 외상으로 산 사람들의 외상값을 다 갚아준다고 한다. 또한 암투병 소년에게 익명으로 7만 유로를 기부한 사실 등이 밝혀지는등 평소 남모르게 선행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 가난했지만 가족은 화목했고 친구들과도 원만하게 지냈다고 한다. 마티치의 아버지는 마티치가 5살 때부터 축구선수가 되길 바랐다. 항상 응원해주고 한계를 뛰어넘도록 격려해 마티치 스스로 축구를 꾸준히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2살 터울의 남동생 유로스 마티치도 축구선수로 뛰고 있으며 현재 세르비아 리그에서 뛰고있다.
- 에딘손 카바니와 상당히 친하다. 마티치의 경우 구단내 여러 선수들과 두루두루 친한 타입이나 카바니의 경우 상당히 내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초창기 카바니가 영국문화와 맨체스터 생활에 적응하지 못할때 마티치가 카바니를 많이 도와줬다고 한다. 특히 영어를 잘 하지 못해 다른 선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자 마티치가 적극적으로 스페인어를 잘 구사하는 마르코스 로호, 데헤아, 마타, 포그바와 함께 카바니의 말을 통역해가며 구단내 여러선수들 솔샤르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와 긴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많이 도와줬다고 한다. 원정길을 떠나는 유나이티드 선수단을 보면 항상 카바니가 마티치옆에 붙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실력과 별개로 소속팀과 마찰을 빚고 이적하는 패턴이 지속적으로 발생해 빈축을 사고 있다. 동유럽을 떠난 이후 마티치와 좋게 이별한 구단은 맨유 뿐이다. 첼시에서는 맨유 이적을 요구하며 팀 훈련과 프리시즌에 불참하더니, 로마에서 리그 시작 2주전 갑자기 스태프들과 마찰을 일으키며 이적을 요청하며 태업을 했고, 그렇게 이적한 렌에서도 한시즌만에 태업하며 이적을 요구해 리옹으로 떠났는데 그 리옹에서도 떠나고 싶어한다는 보도가 나왔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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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9-10시즌. 리그를 비롯한 국내대회에서는 24번을 달았는데,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당시 등번호 관련 규정 때문에 25번을 부여받았다.[2] 13-14시즌 ~ 16-17 시즌[3] 
그러나 팀은 2-1로 졌다.[4] 올레 군나르 솔샤르 감독 체제 맨유에선 포백 보호와 1차 빌드업은 에레라에게 맡기고 전진해서 이전보다 한층 공격적인 역할을 수행했었다. 전반기를 부상과 부진으로 허비한 19/20시즌 후반기 노련한 패스 길목 차단과 후방 빌드업으로 스콧 맥토미니의 부상 공백을 말끔히 메웠다. 피지컬과 활동량을 앞세워 포백 보호와 중원 장악에 앞장서던 미드필더가 나이를 먹고나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사례였으나 아쉽게도 다음 시즌부터 신체능력 저하가 심해져 후보로 내려갔다.[5] 노쇠화로 자연스럽게 신체능력이 하락한 맨유에서의 마지막 2시즌 이전 마티치의 기복은 첼시, 맨유 모두 로테이션을 통한 컨디션 조절 없이 혹사가 심했던 상황, 팀 경기력 자체가 저하되었던 시기와 겹쳐서 마티치와 감독 중 누구의 지분이 더 컸는지 판단을 애매한 요소이다. 다만 32~33세 시즌인 21/22 시즌에도 어느 정도 휴식을 부여받은 뒤에는 폼이 올라왔었고 PL에서 그를 기용한 무리뉴와 솔샤르 모두 선수혹사가 심한 감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감독 탓이 아예 없었다 하긴 힘들다. [6] 당시 파브레가스의 떨어지는 수비력과 캉테의 사이즈 문제 때문에 중원에서 마티치가 어느 정도 저 두 가지 문제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했지만, 후반기 폼이 워낙 좋지 않았고 파브레가스가 다비드 루이스에게 집중되는 빌드업 부담을 덜어주는 활약을 펼치자 자연스럽게 두 선수의 위치가 바뀌었다.[7] 29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전[8] 코소보 전쟁 참조.[9] 이 암묵적 영구결번이었던 25번은 기나긴 공석 끝에 23-24 시즌 첼시 최고 이적료를 갱신한, 어쩌면 긴 세월 끝에 마티치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새로 채운 후배 모이세스 카이세도에게 돌아갔다.[10] 2025년 8월 15일에 결국 리옹에서 방출되었다…
그러나 팀은 2-1로 졌다.[4] 올레 군나르 솔샤르 감독 체제 맨유에선 포백 보호와 1차 빌드업은 에레라에게 맡기고 전진해서 이전보다 한층 공격적인 역할을 수행했었다. 전반기를 부상과 부진으로 허비한 19/20시즌 후반기 노련한 패스 길목 차단과 후방 빌드업으로 스콧 맥토미니의 부상 공백을 말끔히 메웠다. 피지컬과 활동량을 앞세워 포백 보호와 중원 장악에 앞장서던 미드필더가 나이를 먹고나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사례였으나 아쉽게도 다음 시즌부터 신체능력 저하가 심해져 후보로 내려갔다.[5] 노쇠화로 자연스럽게 신체능력이 하락한 맨유에서의 마지막 2시즌 이전 마티치의 기복은 첼시, 맨유 모두 로테이션을 통한 컨디션 조절 없이 혹사가 심했던 상황, 팀 경기력 자체가 저하되었던 시기와 겹쳐서 마티치와 감독 중 누구의 지분이 더 컸는지 판단을 애매한 요소이다. 다만 32~33세 시즌인 21/22 시즌에도 어느 정도 휴식을 부여받은 뒤에는 폼이 올라왔었고 PL에서 그를 기용한 무리뉴와 솔샤르 모두 선수혹사가 심한 감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감독 탓이 아예 없었다 하긴 힘들다. [6] 당시 파브레가스의 떨어지는 수비력과 캉테의 사이즈 문제 때문에 중원에서 마티치가 어느 정도 저 두 가지 문제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했지만, 후반기 폼이 워낙 좋지 않았고 파브레가스가 다비드 루이스에게 집중되는 빌드업 부담을 덜어주는 활약을 펼치자 자연스럽게 두 선수의 위치가 바뀌었다.[7] 29라운드 크리스탈 팰리스전[8] 코소보 전쟁 참조.[9] 이 암묵적 영구결번이었던 25번은 기나긴 공석 끝에 23-24 시즌 첼시 최고 이적료를 갱신한, 어쩌면 긴 세월 끝에 마티치의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새로 채운 후배 모이세스 카이세도에게 돌아갔다.[10] 2025년 8월 15일에 결국 리옹에서 방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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